정말 짜증났다.
ps;근데 마지막에 새 타고 날라가면서 말하는 대사는 정확히 뭔가요?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히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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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기바시 다리에서 마사카츠(왼쪽)와 히데요시(오른쪽)가 만났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석상.
하치스카 코로쿠 마사카츠(蜂須賀 小六 正勝)의 이름은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 秀吉)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도적 두목이었던 코로쿠가 소년 시절의 히데요시 즉 히요시마루(日吉丸)와 야하기(矢作) 다리1위에서 만났다. 다리 위에서 자고 있던 부랑아 히요시마루의 머리를 발로 차서 깨우자 소년을 대담하게도 “무례하구나! 이리 와 사과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로쿠는 그 호방함에 반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시바 료우타로우(司馬 遼太郎) 선생의 글에 나오는 것인데, 선조가 도적이라는 것에 옛 아와(阿波) 번주인 하치스카 후작은 창피를 느꼈다고 한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귀족원 의장을 지낸 하치스카 가문의 당주 모치아키2(茂韶) 후작은 어느 날 메이지 텐노우(明治天皇)를 알현하였을 때 테이블에 진귀한 담배가 있었기에 2~3개를 품 안에 넣었다. 도중에 자리를 뜬 텐노우(天皇)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역시 선조는 속일 수 없구만”하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텐노우(天皇)까지 하치스카 코로쿠가 도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3
그러나 이 불명예스러운 전설은 쇼우와(昭和) 초기 와타나베 요스케(渡辺 世祐) 박사의 고증으로 인해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 당시 야하기바시 다리는 걸려있지 않았다는 것이 명확해 진 것이다.4
하치스카 가문은 도적 따위가 아닌 오와리(尾張) 아마 군(海部郡)의 호족으로, 현재도 렌게 사(蓮華寺)라는 이름있는 절이 남아있어 그곳에는 하치스카 가문에 관한 문서가 전해지고 있다.
히데요시와 연을 맺게 된 것이 히데요시의 떠돌이시절인지 오다 가문(織田家) 내에서 만나면서부터인지 확실치 않지만 코로쿠 마사카츠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히데요시의 스노마타(墨俣) 축성으로 인해서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자신의 영지(領地)인 오와리(尾張)와 사이토우 가문(斉藤家)의 미노(美濃)와의 국경에 성을 쌓아 전선기지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사이토우 군의 방해로 인해 그 시도는 참담한 결과로 끝나 거의 불가능이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오다 가문에서도 미관말직이던 토우키치로우(藤吉郎=히데요시)가 단번에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서 말하는 ‘스노마타 일야성(墨俣一夜城)’이다. 이를 계기로 토우키치로우는 크게 출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성공의 뒤에서 활약한 것이 코로쿠 마사카츠이다.5 코로쿠는 휘하의 도적들을 거느리고 스노마타 축성 공사와 수비에서 활약하였다. 스노마타 성이 완성되자 코로쿠는 오다 가문에 고용되어 성주가 된 토우키치로우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코로쿠 마사카츠에게도 무공담은 전해지지만 그의 본질은 정략(政略)에 있었다.
히데요시의 전투 방식은 상대를 죽이지 않고 항복시키는데 있었다. 상대를 이익으로 꼬시는 것인데 그 역할을 코로쿠가 담당하였다. 히데요시의 츄우고쿠(中国) 정벌에서 비젠(備前), 빗츄우(備中), 미마사카(美作), 호우키(伯耆)등의 여러 성을 공략했을 때 대부분 마사카츠의 외교절충으로 무혈 개성시켰다.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해적들도 코로쿠의 뛰어난 외교로 히데요시의 산하가 되었다.
특히 가장 커다란 외교적 무대가 된 것은 빗츄우(備中) 타카마츠 성(高松城) 공략 시의 절충이었다.
츄우고쿠(中国)의 실력자 모우리 씨(毛利氏)와의 강화(講和)가 이번 공성전의 처리 결과에 달려 있었다. 마사카츠는 쿠로다 칸베에(黒田 官兵衛)와 함께 모우리의 외교승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 惠瓊)와 화의 교섭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혼노우 사(本能寺)의 변보가 전해진 것이다. 노부나가가 횡사했다는 소식이 모우리 측에 전해지면 강화는커녕 오다의 원군을 기대할 수 없기에 히데요시의 군은 모우리의 총공격에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패했을 것이다. 마사카츠는 이 중대한 위기 속에서 타카마츠 성주 시미즈 무네하루(清水 宗治)를 할복시키며 화의를 성공시킨 것이다.
하치스카 가문은 후에 아와(阿波) 토쿠시마(徳島) 25만 7천석으로 막말까지 이어진다.
[하치스카 마사카쓰(蜂須賀 正勝)]
오와리(尾張) 하치스카 출신. 처음엔 그 지역의 소영주(小領主)였지만 오다 가문(織田家)을 섬겨 노부나가(信長)의 명령으로 히데요시(秀吉)에게 배속6. 1581년 하리마(播磨) 타츠노(竜野) 성주가 된다. 1586년 오오사카(大坂)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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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인에게는 백옥같은 피부의 귀부인으로 보인 타케나카 한베에
사서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모략 있는 인물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여성을 보는 듯 했다]
흰 피부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듯하다.
전투에 임해서도 위압감을 풍기는 듯한 인물이 아니었다. 말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목면으로 된 겉옷(羽織)를 걸쳤으며 투구의 장식이 이치노타니(一ノ谷)1라는 평범한 것이었다.
한베에에게는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평소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자주 움직였으며 추울 때는 손을 파리처럼 비벼댔다. 자신의 주군인 히데요시(秀吉)2의 앞이라 하더라도 다리를 정신 사납게 떨거나 바꾸었다. 매우 의아히 여긴 어느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한베에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것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야. 갑작스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막상 다리가 저리거나 손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면 어처구니가 없잖아? 조금 버릇없이 보일지는 몰라도 급작스런 때를 의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체면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임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베에는 센고쿠(戦国) 굴지의 천재군략가로서 유명하다. 그 병법의 묘를 완벽한 작품으로써 살려 세상에 이름을 날린 것이 미노(美濃) 이나바야바 성(稲葉山城) 쿠데타이다.
1564년 한베에는 21살. 도우산(道三)의 시대부터 사이토우 가문(斉藤家)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이 당시의 사이토우 가문 당주는 도우산의 손자 타츠오키(竜興)였다. 암우하며 주색에 허우적대는 인망이 없는 당주였다.
한베에의 장인인 안도우 이가노카미(安藤
伊賀守)3가 행실을 올바로 하라고 충언을 하자 타츠오키는 도리어 화를 내며 근신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타츠오키의 측근들은 안도우 이가노카미의 사위인 한베에도 무시하기 시작하여 어느 날 술 마시고 있던 요시오키의 총신(寵臣)은 망루에서 등성하고 있던 한베에에게 오줌을 쌌다. 이때 한베에는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지만 마음속으로는 주군 타츠오키를 시작으로 한 이나바야마 성 안에 있는 자들의 콧대를 꺾어 놓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한베에는 타츠오키의 시동인 동생 큐우사쿠(久作)4에게 꾀병을 부리라고 하여 그 간병을 핑계로 의약품을 실은 수레를 성 안에 들여보냈다. 그 안에는 무구를 숨겨 놓았다. 이렇게 한베에와 그 부하 17명은 성 안 깊숙한 곳에 있는 큐우사쿠의 방에 들어가 거기서 날이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 곧이어 밤이 되자 한베에 일당은 재빨리 전투준비를 마치고 그 중 한 명이 성 안에 위급을 알리는 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북을 쳤다. 갑작스런 북소리에 성 안 모두가 당황했다. 그 순간 숨어있던 한베에의 부하들이 숙직하는 무사들을 습격했다.
처음 약속한대로 다시 북을 치자 한베에의 장인인 안도우 이가노카미가 수하 천여 명이 이끌고 단번에 성안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타츠오키는 여성들과 함께 서둘러 도망쳤다.
한베에는 뛰어난 지략으로 순식간에 이나바야마 성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빼앗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 뒤 순순히 성을 타츠오키에게 건넸다.5 그리고 자신은 모반을 일으킨 사람이라며 거성인 보다이야마 성(菩提山城)를 동생 큐우사쿠에게 물려주고는 오우미(近江) 이부키야마(伊吹山) 산기슭에 은거해버렸다. 거기서 세상과 연을 끊고 독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한베에가 다시 전란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였다. 1567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에게 공격받은 사이토우 타츠오키가 이세(伊勢)로 도망쳐 미노(美濃)는 노부나가의 것이 되었다. 한베에도 장인 이가노카미의 주선으로 오다 가문을 섬겼고 다음 해인 1568년에는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木下 藤吉郎)6에게 파견되어 이후 히데요시의 참모로서 그 지능을 한껏 발휘하게 된다.
1570년 오다 노부나가는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연합군을 아네가와(姉川) 전투에서 물리쳤고 그와 동시에 아자이 나가마사(浅井
長政)의 거성 오다니 성(小谷城)의 지성(枝城)인 요코야마 성(横山城)를 점거하여 히데요시에게 수비를 명했다.
다음 해인 1571년.
아자이 나가마사는 이 요코야마 성을 탈취하기 위해서 히데요시가 없는 틈을 타 7000의 군사를 이끌고 맹공을 가했다. 한베에가 수성의 지휘를 맡았다. 한베에는 일부러 성안 병사가 적게 보이도록 만든 뒤 적이 깔보고 성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기다려 일제히 사격했다. 아자이 군의 기세가 죽어 물러나면 쫓는 일 없이 제자리를 지켰고 또 공격해 오면 총과 활을 쏘는 전법을 거듭했다.
곧이어 해가 저물자 아자이 군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한베에가 기다리던 바였다. 미리 성 밖에 수백 명의 저격병을 숨겨 놓았던 것이다. 그들의 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성에서도 추격대를 내보냈다. 협공에 아자이 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오다니 성으로 도망쳤다. 한베에는 깊이 쫓는 일 없이 성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히데요시가 소식을 듣고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아자이 나가마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즈음의 한베에에 대해서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군대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한베에는 아들인 사쿄우(左京)7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사쿄우가 잠깐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 갔다 온 것이다. 한베에는 그런 자세를 못마땅해 하며 화를 냈다.
"소변이 마려우면 앉아서 싸라. 무도(武道)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하면 칭찬을 들을지언정 누가 비웃겠느냐!?"
1575년 한베에는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에 참전하였고 그 후 히데요시가 츄우고쿠(中国) 정벌의 사령관에 임명되자 그의 참모로 종군하였다. 특히 히데요시가 벳쇼 나가하루(別所 長治)의 하리마(播磨) 미키 성(三木城)을 [말려 죽이기(干殺し) 전법]으로 나가게 만든 것은 한베에의 헌책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한베에는 죽었다. 결핵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병간호를 위해 쿄우토(京都)에 갔었지만 전황이 걱정된다며8 다시 하리마(播磨)로 돌아와 거기서 결국 돌아오지 않는 길을 떠났다.
[다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
1544년 미노(美濃) 이케다 군(池田郡)9에서 태어났다. 부친 시게모토(重元)가 죽어 10살의 나이10에 보다이야마 성(菩提山城) 성주가 된다. 사이토우 도우산(斉藤
道三), 요시타츠(義竜), 타츠오키(竜興)의 삼대를 섬겼지만 미노(美濃)가 노부나가(信長)에게 넘어가자 오다 가문(織田家)을 섬기다 1579년 하리마(播磨) 미키 성(三木城) 포위 중 병으로 죽었다. 3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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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할인과 제목에 낚인 책.
뭐 읽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간단히 요약하면
"지금하는 것 관두고 당장 니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 하시게"
여담으로...이 책을 읽고 나면서 부터...즉 3월말부터 제 포스팅이 급격히 늦어졌습니다. 이 책에 쓰인대로 하다보니까 그랬냐고요? 설마요...반은 그렇습니다... '그래! 내 인생에 대한 것을 우선 고민해 보자구~'하면서 포스팅이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요 몇 주전 영화 '미스트'를 이제서야 보고서 스티븐 킹에 뻑이 가 산 책...
뭐 글솜씨도 늘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평소 생각하다 보니 읽게 되었습죠.
반은 글쓴이의 자서전이옵고, 반은 글쓴이가 생각하는 창작론...이 쓰여있습니다.
읽고 득 보았다는 느낌을 주는 책. 은근슬쩍 추천.
임진난의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 임진왜란이 관련된 챕터 69~80를 따로 발췌한 책.
프로이스의 글을 빼면 정말 허접한 책.
역자들은 포르투갈어 원본을 번역했으며, 이외에도 일본에서 출판된 여러 일본어 번역본과 기타 국내 자료들을 참고해 이 한국어파 번역본을 집필했다. - 임진난의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임진왜란, 역자 서문 p18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어 번역판 가져다 번역하고 포르투갈어판은 철자만 조사한 듯합니다.
거기다 각 챕터 마지막에 주석을 달아서(개인적으로 그 페이지 내에 주석이 실리는 것을 좋아함), 자주 책장을 넘겨야하는 귀찮음을 강요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석에 틀린 점이 많다는 점. 공부 좀 하고 주석 달지 그러셨어요~
대표적인 것 하나만...(무가관위를 이해 못해 태수를 역임했다는 것까지 까자면...전 게을러서 무리)
임진란에 관련된 나고야(名護屋)는 나고야(名古屋)하고 다른 곳입니다.
나고야(名古屋, Nangoya1)좁은 뜻으로는 아이치현(愛知県)의 중심도시인 나고야시(名古屋市)를 칭하지만 보다 넓은 지명의 주쿄권(中京圏)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젠(肥前)의 항구. - 임진난의 기록, 루이스 프로이스가 본 임진왜란, 용어풀이 p176포인트는 주쿄권과 히젠....
더구나 이 책...가격(14000) 높이기 위해서 종이질 캡 좋고(얼어죽을!!), 하드커버(썅~)
이번 달 산 책 중 가장 후회함.
대당제국 신역사군상 시리즈 18
중국사에서도 손 꼽히는 제국인 대당 역사 300년을 170페이지 안에 넣은 책.
당연히 수박 겉 핥기라는 표현도 과분하고 수박이 약 37미터 앞에 있다...는 것만 알려주는 책.
요 몇 일전 북오프에서 산 책
츠카사 시노부 오야붕과 타카야마 키요시 남바투의 6대 야마구치구미(9800원)
司忍組長と高山清司若頭の六代目山口組
-> 엠블렘 테이크냐고요? 나오긴 합니다만 그 만화의 무대는 스미요시카이(住吉会)일 겁니다.
기동전사 건담 일년전쟁 전사 상권(14700원)
機動戦士ガンダム 一年戦争全史、上
-> 네! 바로 그 책입니다. 예전에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 있길레 덥썩~입니다.(윗 사진은 한글판)
잠깐 훝어 보았지만 가상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에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역사군상 시리즈 71 닌쟈와 인술 - 어둠에 숨은 이능자의 허와 실(10500원)
歴史群像 忍者と忍術 - 闇に潜んだ異能者の虚と実
-> 솔직히 닌쟈 안 좋아합니다. 왜 샀냐고요? 역사군상 모으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결정판] 도설 센고쿠 합전집(13300원)
[決定版] 図説・戦国合戦集
-> 이런 것은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기에... 역사군상 시리즈 앞부분 전투 일러스트 모음집.
메이지 텐노우 - 막말 메이지 격동의 군상(14000원)
明治天皇-幕末明治激動の群像
->막말유신기는 에조 공화국(蝦夷共和国) 이후 손을 뗀 상태이기에 그다지 관심 없었지만, 다메엣찌님에게 질 수 없다 보니 덥썩... 만약 다메엣찌님을 몰랐으면 사지 않아도 좋았을 책.
헤우게모노 1~5권(1,2,3권은 4200원. 4,5권은 3500원)
へうげもの
->이번 북오프를 찾은 진정한 이유. 현재 8권까지 나왔다지만 5권만 있길레 전부 쓸어 왔음.
후루타 오리베(古田 織部)가 주인공인 만화입니다.
이번에 북오프에서 산 책 중 읽은 것은 헤우게모노 4권까지...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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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이(如水)는 호(號)이며 이름은 요시타카[孝高], 통칭을 칸베에[官兵衛]라고 한다.
히데요시[秀吉]는 이 칸베에의 지략을 굉장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이미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가 측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쩌다 보니 히데요시가 죽은 뒤 누가 천하인이 되느냐로 화제가 옮겨졌다. 측근들은 한결같이 '오대로 중 한 사람이 아닐까?'고 하였다. 히데요시는 머리를 저으며 "그렇지가 않네. 저 쿠로다 칸베에 말고는 생각할 수 없지"라고 말했다. 모두 이상히 여겼다. 칸베에는 기껏해야 부젠[豊前] 12만석의 다이묘우[大名]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부나가[信長]가 급사한 이래 자신은 아케치[明智] 정벌1을 시작으로 여러 전투를 경험하였다. 전투에 임하여 아무리 고심해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가 생겨 이를 칸베에에게 상담하면 그 답은 자신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과 똑같았다. 오히려 칸베에 쪽이 훨씬 의표를 찌른 작전을 세웠다. –고.
또한 히데요시는 "세상에 두려운 자가 둘 있으니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와 쿠로다이다. 토쿠가와는 그래도 온화한 사람이지만 쿠로다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알 수 없는 자이다."라고도 말했다 한다.
칸베에가 센고쿠의 무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히데요시와 만나면서부터이다. 히데요시가 츄우고쿠[中国] 모우리[毛利] 공략을 위해 하리마[播磨]로 병사를 이끌고 왔을 때부터이다. 그때까지 칸베에는 하리마의 시골 다이묘우[大名]에 속한 가로(家老)에 불과하였다. 주군은 고챠쿠 성[御着城]의 성주인 코데라 마사모토[小寺 政職]라 하였다.
1577년 10월 히데요시가 모우리 정벌의 사령관으로 하리마에 왔을 때 칸베에는 자신의 거성(居城)인 히메지 성[姫路城]를 바치고 자신은 히메지 성의 두 번째 성곽(二の丸)으로 옮겨 살았다2. 히데요시는 이 해의 7월 칸베에에게 보낸 편지에 '자네는 내 동생 코이치로우[小一郎=히데나가[秀長]]만큼이나 편한 사람일세'라고 까지 적었다. 칸베에의 기량에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이 때 이후 칸베에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와 함께 히데요시 참모의 한 사람이 되었다.
칸베에의 노력으로 인해 하리마의 대부분은 오다 측에 붙게 되지만, 1578년 3월 하리마 최대의 호족 미키 성(三木城)의 벳쇼 나가하루[別所 長治]가 모우리 쪽으로 돌아서자 다른 호족들도 이에 동조하였다. 칸베에의 주군인 코데라 씨에게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흘렀다. 거기에 또 생각도 못했던 사태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하리마에 구원하러 올 예정이었던 오다 가문의 유력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荒木 村重]가 갑자기 반기를 치켜세웠던 것이다. 노부나가조차 벙찌기만 할 뿐인 급변이었다.
여기서 칸베에는 친구이기도 한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서 단신으로 무라시게가 있는 이타미 성[伊丹城]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무라시게에게는 오다 쪽으로 돌아갈 생각이 아예 없었다. 사자(使者)인 칸베에도 원래대로라면 살해당할 처지였지만 무라시게와 오랜 기간 친교를 맺어왔고 또한 종교가 같은 천주교였기에 살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참혹한 포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습한 시궁창 같은 감옥이었다. 가려움을 일으키는 피부병이 머리 부분을 잠식하였으며3 다리의 근육이 떨어지고 피부병 때문에 오른쪽 무릎이 썩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반년도 버티지 못했겠지만 칸베에의 생명력은 여기서 1년을 버틸 정도로 강했다. 낙성으로 인하여 구출되기는 하였지만 이 감옥생활로 인하여 죠스이는 오른쪽 다리의 자유를 잃었다. 또한 이 때 무라시게와 뜻을 같이한 코데라 씨는 히데요시에게 성에서 쫓겨났다. 칸베에가 코데라 성(姓)을 버리고4 원래의 쿠로다[黒田]로 돌아온 것은 이때부터이다.
1582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혼노우 사[本能寺]에서 죽었다. 죠스이는 이때 히데요시를 따라 모우리 가문[毛利家]의 최전선기지인 빗츄우[備中] 타카마츠 성[高松城]의 수공(水攻)에 참전하고 있었다. 흉보가 그 진영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정신이 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동요하고 있던 히데요시의 귓가에 "지금이야말로 히데요시님이 천하를 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옵니다"하고 칸베에는 속삭인 것이다.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한 정세판단이었다. 히데요시는 이 때 이후 칸베에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으며 히데요시 정권의 최대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히데요시가 칸베에에게 하사한 것은 부젠[豊前] 나카츠[中津] 12만석밖에 안 되었다.
죠스이가 가슴 속에 숨기고 있던 천하에 대한 야망을 잠시나마 비친 것은 후에 천하를 나누는 싸움이라는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 때였다.
당시 적자(嫡子)인 나가마사[長政]는 이에야스의 부사령관 격으로 세키가하라에서 싸웠는데, 그 사이 죠스이는 전격적인 움직임으로 치쿠젠[筑前], 치쿠고[筑後], 붕고[豊後] 등 큐우슈우[九州] 북-중부의 서군 세력을 물리치고 그 지역을 손에 넣은 것이다. 휘하의 주력병사들을 나가마사가 세키가하라로 거느리고 갔기에 죠스이에게는 소수의 병사밖에 없었다. 하지만 죠스이는 백성, 낭인을 긁어 모아 용병군단을 조직하였다. 금은을 방 안에 산더미같이 쌓아서 지원자들을 모았다고 한다.
나가마사가 이끄는 쿠로다 군은 동군 토쿠가와 쪽이라고 깃발을 선명히 하고 있음에도, 죠스이는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와 이에야스[家康] 양 쪽을 저울에 메달며 수상쩍은 행동을 보였다는 말이 있다. 미츠나리에게서 협력을 요청하는 밀사가 왔을 때, "큐우슈우[九州] 중 7개 쿠니[国]를 준다면 – "하고 서군에 설 듯한 척을 하였다.
본심은 이러했다. 토쿠가와와 이시다가 싸우고 있는 틈을 타 큐우슈우를 제압하고 양군이 싸우다 지쳤을 때를 봐서 단번에 중앙으로 진출, 천하를 손에 넣으려고 한 가공할 야망이었다. 하지만 세키가하라의 승패는 허무하게 결정이 나 토쿠가와가 이겼다.
예상이 빗나간 데에 대한 애석함 때문인지 세키가하라 전쟁 후 죠스이는 아들인 나가마사가 토쿠가와 세력의 중심이 되어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을 알자 "이 천하의 얼간이 같은 놈"하고 투덜대었다고 한다.
이 귀모(鬼謀)의 사나이는 죽을 때까지도 연기를 펼쳤다. 임종의 때가 다가오자 이유도 없이 중신들을 욕하며 쪽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도가 지나쳐 나가마사가 한마디 하자 "이는 너를 위해 서란다. 중신들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 빨리 나가마사의 대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함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구로다 조스이(黒田 如水)]
1546년 하리마[播磨] 히메지[姫路]에서 태어났다. 처음엔 코데라 마사모토[小寺 政職]를 섬겼지만 히데요시[秀吉]의 츄우고쿠([中国] 공략 때부터 히데요시의 모신(謀臣)이 되었다. 1580년 하리마 내에 1만석이 주어졌고, 1585년에는 야마자키[山崎] 성주가 되었으며, 1588년에는 부젠[豊前] 나카츠(中津) 12만 5천석이 되었다. 경건한 천주교도로 세례명을 '돈 시메온(Don Simeon)'이라고 하였다. 1604년 59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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