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68398

저자 : JBpress - 곽문완

 

北朝鮮軍の軋轢で始まった主席宮攻防訓練の激しすぎる結末 訓練で死亡者28人、重傷者107人、

北朝鮮軍は冬季と夏季で演習を行う。毎年12月1日から3月末に冬季訓練が、7月1日から9月末に夏季訓練が行われる。こういった定期訓練とは別に特別訓練もある。振り返れば、1992年5月に(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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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겨울과 여름에 각각 훈련을 한다. 매년 12월 1일부터 3월말까지 겨울훈련이, 7월1일부터 9월말까지 여름훈련이 실시된다. 이러한 정기훈련과는 별도로 특별훈련도 있다. 되돌아보니 1992년 5월에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간에 죽음도 불사하는 "주석궁 공방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어떤 훈련이었을까?

 

 1992년 5월. 김일성이 주석궁 내의 저택정원에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리을설 호위사령관과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오진우 부장이 인민무력부의 공격능력을 자랑하자, 리을설 사령관은 호위사령부의 수비능력을 자랑했다.

 

 둘의 자랑을 듣고 있던 김일성이 '그럼 한번 붙어보라'고 농담삼아 말하자, 오진우 부장과 리을설 사령관은 이것을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김일성의 반쯤 농담이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의 죽음도 불사하는 "주석궁 공방 훈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이 정한 목표물은 주석궁이었다. 인민무력부의 군인이 한사람이라도 주석궁에 침입하여 훈련판정단이 발급한 빨간 종이를 건물벽에 붙이면 인민무력부의 승리, 호위사령부가 침입을 막으면 호위사령부의 승리였다. 판정기간은 30일로 실탄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한 훈련이었다.

 

 오진우 부장과 리을설 사령관은 김일성의 전투훈련 판정을 놓고 제대로 붙어보고자 했다.

 

 오진우 부장은 인민무력부의 한국침입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를 모아 침입조를 짰다. 한편 리을설 사령관은 호위사령부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주석궁을 수비했다. "인민무력부 공격침입조"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1개월 이내에 주석궁에 침입하여 빨간 종이를 붙이는 것에 목숨을 걸었고, 그에 대비하여 호위사령부 역시 침입저지에 목숨을 걸었다. 

 

차례로 목숨을 잃은 주석궁 침입조의 면면들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가 훈련에 목숨을 건 승부에 도전한 이유에는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인민무력부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이고, 호위사령부는 쿠데타나 반란 등을 진압하는 부대이다. 그러나 호위사령부는 수뇌부를 호위하고 있기에 인민무력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우대를 받고 있었다. 

 

 군복부터 달랐고, 물자보급에서도 훨씬 우대받았다.

 

 인민무력부의 병력은 120만명이고 호위사령부는 그 인민무력부의 11%에 지나지 않는 13만명이지만, 화력 밀도는 호위사령부가 북한군 전체의 40%에 달했다. 거기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호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긍지가 높았다.

 

 그에 대하여 인민무력부의 호위사령부에 대한 반감이나 열등감은 위험하다고 할 수준까지 달해있었다. 인민무력부의 군인들은 김일성 주석 앞에서 전투력을 과시하여 호위사령부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주석궁으로의 침입은 세 방향에서 행해졌다. 첫번째는 주석궁에 전력을 공급하는 고압송전선을 이용하여 침입하는 작전이었다.

 

 송전선의 전력을 차단하여 3인1조로 구성된 6명의 침입조가 반대측에 있는 철탑에서 고압송전선을 탔다. 등에 단 수소풍선으로 중심을 잡아 침입해서는 주석궁의 지붕에 착지하여 빨간 종이를 붙이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침입조가 한반 중에 철탑에 올라가 침입을 시도했지만 차단되었던 고압송전선의 전력이 복구되자 감전된 6명은 땅에 떨어져 죽었다.

 

공포의 "주석궁 공방 훈련" 매뉴얼

 

 두번째는 대동강에서의 침입이었다. 주석궁은 평양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에 인접하였기에 수중에서 침입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북한 호위사령부는 주석궁이 위치하는 수면 아래에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고압전기선을 깔아놓았다. 호위사령부 예하 1호위대 제3중대 군인들은 정기점검을 핑계로 수중고압선에 전기를 넣어 감전사하여 물에 뜬 생선으로 잔치를 열 때도 있었다.

 

 그 대동강에서 3조9인의 침입조가 잠수복을 입고 침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동강 가까이서 보초업무를 서고 있던 호위사령부의 군인이 실탄 이외에 무엇으든 사용가능하다는 "주석궁 공방 훈련"의 매뉴얼에 따라 수중의 고압전기선에 전기를 흘려넣었다.

 

 9명의 수중침입조는 생선과 함께 물에 떴다. 곧바로 구급차로 병원으로 운반했지만 전원이 즉사였다.

 

 세번째는 터널을 이용한 침입이었다. 주석궁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부터 인민무력부의 공작부대가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침입목적으로 터널을 팠지만 주변도로나 건물에 균열이 생겨나 불만이 속출했다. 터널을 이용한 침입도 실패했다.

 

 이것들 외에도 주석궁에 출입하는 차의 아래에 붙어 침입을 시도했지만 군의 수색견에 물려 부상당한 병사나 호위사령부의 차를 탈취하여 침입을 시도한 병사 등, 훈련개시부터 2주 동안 28명이 사망, 중상자 107명, 경상자 322명이 발생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주석궁 공방 훈련"이 중지되었다. 이 이상 계속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한 김일성이 훈련의 중지를 선언한 것이다. 죽음을 불사한 "주석궁 공방 훈련"은 수백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고 끝났다.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의 오랜 갈등과 김일성 앞에서 전투력을 평가받는다는 것을 명예라 생각하는 북한군 군인의 세뇌가 낳은 참극이었다. 이러한 훈련은 김정은 시대인 지금도 행해지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북한의 젊은이들이 10년 이상의 청춘기를 군에 바치고, 정권자들의 장난에 목숨을 바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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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빈고 님[備後殿][각주:1]오와리[尾張]의 군세를 규합하여 어느 달은 미노노쿠니[美濃國]으로 진격하셨고, 또 다음 달은 미카와노쿠니[三川の國]에 출격하셨다.

  어느 때[각주:2]인지 9월 3일. 오와리 국내의 군세를 이끄시고는 미노노쿠니에 침공하셨다.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며 진격하셨고, 9월 22일에 사이토우 야마시로 도우산[斎藤 山城 道三]의 거성 이나바야마[稲葉山]의 산 밑의 마을들을 목표로 불지르며 마을 입구까지 다가갔으나, 이미 밤에 가까운 오후 4시 전후가 되었기에 군세를 물리려 하셨다. 군세의 반 정도가 철수 하였을 즈음에, 야마시로 도우산이 갑자기 남쪽을 향해서 돌격해 왔다. 반격에 나섰지만  여기저기 무너졌기에 수비하지를 못하였고, 빈고 님의 동생 오다 요지로우[織田 與次郎][각주:3], 오다 이나바노카미[織田 因幡守][각주:4], 오다 몬도노카미[織田 主水正],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5], 센슈우 키이노카미[千秋 紀伊守][각주:6], 모우리 쥬우로우[毛利 十郎][각주:7], 가문의 장로인 테라사와 마타하치[寺澤 又八]의 동생 모우리 토우쿠로우[毛利 藤九郎], 이와코시 키사부로우[岩越 喜三郎]를 시작으로 총 5000명 정도가 전사하였다.

  1. 노부나가의 애비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2. 1544년 추정 [본문으로]
  3. 요지로우는 '與(与)二郎'라고도 씀.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4. 키요스 삼봉행[清洲三奉行] 중 한명. [본문으로]
  5.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 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로 한다 사족으로 아오야마는 앞의 '3. 킷포우시 님 관례식에 대하여[吉法師殿御元服之事].'에서도 등장하지만, 앞의 주석에서도 달았듯이, 노부나가가 관례식을 치른 해는 1546년이기에, 앞의 기록은 저자 오오타 규우이치[太田 牛一]의 착각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 신장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 4장의 기사를 1544년이 아닌 1547년의 일로 받아들여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본문으로]
  6. 센슈우 스에미츠[千秋 季光]. 사족으로 센슈우 가문[千秋家]은 아츠타 신궁[熱田神宮]의 신관들의 우두머리(大宮司)를 맡는 가문. 키이노카미 스에미츠는 83대째. [본문으로]
  7. 모우리 아츠모토[毛利 敦元]. 후에 신장공기에 또 모우리 쥬우로우[毛利 十郎]라는 인물이 등장(14. 부에이 님, 자결하신 일에 대해서[武衛様御生害之事])에도 등장하나 아들로 추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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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ㅅㅇㄴ 2014.03.02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님// 도산과의 전투에 전사했던 모리쥬로우가 이후 다시 나온건 역시 아들이었나보군요. 전에 읽었을 땐 좀 의아했던 부분이었는데 발해님 번역 덕분에 맥이 집히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런 신장공기만큼의 사료가치성은 아니더라도 (다소 오다가에 주관되지만)

    모우리면 모우리, 아자이면 히가시아자이군지, 아사쿠라면 아사쿠라시말기등등의 이런 사료들은 역시 패스해야할 정도로 신뢰성이 떨어지는걸까요?

    개인적으로 모우리를 위시한 모리양천 그룹 다이묘들이나 나 쵸소카베 정도의 츄고쿠 시고쿠 가문들을 가쉽거리라도 조금더 알아보고 싶은데 어떤 관련 고서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서요. 혹시 추천해주실 사료가 있으신지요?

    • Favicon of https://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3.03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아직 배우는 단계이고, ㅅㅇㄴ님의 목적이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기에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합니다만...

      패스까지는 아니고 참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가령 오다 노부나가 가신단 연구의 일인자라고 하시는 타니구치 카츠히로谷口克広 선생의 경우, 다른 사료가 없을 경우 '참조'해도 되지 않냐는 입장입니다.
      한편, 무공야화武功夜話 까는데 유명한 후지모토 마사유키藤本正行,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선생의 경우 뒷받침하는 사료들(서장, 공가公家의 일기, 절의 연대기 등)이 없는 한 참조해서도 안 되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타니구치 선생처럼 다른 사료가 없는 한 '참조'의 형식으로 보는 것도 좋지 않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서국西国 쪽은 근래에 출판된 몇몇 권만 읽은 지라 잘 알지 못해서 도움을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만, 김시덕 교수님의 '임진왜란 관련 일본 문헌 해제 - 근세편 (도서출판 문)'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침략한 서국 다이묘우大名들에 관한 군기軍記들이 설명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모우리毛利나 쵸우소카베長宗我部 등의 사료들도 설명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사료들 찾으심이 좋은 줄 아뢰옵니다.

    • ㅅㅇㄴ 2014.03.05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세한 배려 담긴 답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2. ㅅㅇㄴ 2014.03.02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2] 加納口の戦い를 1544년설[天文13年]로 추정해주셨는데, 이미 봐두셨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나하여 1547년[天文16年]설, 그리고 두 해 모두 번갈아 2번의 주장설도 있어 도움되시길 바라며 정리해봅니다.

    1. 1544년설[天文13年 9月22日] 주장 사료: 『甫庵信長記』,『享禄以来年代記』,『東国紀行』

    2. 1547년설[天文16年 9月22日] 주장 사료: 『定光寺年代記』,『岐阜市史』,『岐阜県史』

    3. 1544년 + 1547년 주장 사료: 『加納町市』

    려고 했는데

    이미 [주5]에서 1547년설도 써놓으셨군요 ㅠㅠ

  3. BlogIcon shotokan 2014.07.2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찾아왔습니다. 휴일이라 키노쿠니야에 들러 시바 료타로씨의 소설을 고르다 토요토미가의 사람들을 보고 발해지랑님 블로그가 떠올라 들어와봤더니 공기 번역을 시작하셨네요. ㄷㄷㄷ 수라의 길을 가시는군요. 저는 일에 치어 번역이랑 블로그 모두 포기했지만, 발해지랑님은 꼭 완성하시길 기원합니다. 건승하세요.

    • Favicon of https://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7.28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오~ 안녕하십니까!? 일본에 계신가 보군요. 쇼토칸님이 하시던 것을 이어서 한다는 생각으로 하였는데... 제대로 진행을 못 시키고 있네요. 건 그렇고 건강하신지요? 언젠가 뵙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겠사옵니다.

 킷포우시 님[吉法師殿]이 13살 되셨을 때, 하야시 사도노카미[林 佐渡守][각주:1],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 中務][각주:2],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3],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를 거느리시어, 후루와타리 성[古渡の御城]에서 관례식을 치르시고는, 오다 사부로우 노부나가[織田 三郎 信長]라는 이름을 칭하게 되셨다. 주연과 축하연이 무척이나 성대히 치러졌다.

 다음 해[각주:4], 오다 사부로우 노부나가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때 히라테 나카츠카스노죠우[平手 中務丞][각주:5]가 여러 준비를 해 주었는데, 그 모습은 빨간 줄이 그어진 두건, 하오리[각주:6], 말에도 갑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노부나가는) 스루가[駿河]의 군세가 배치된 미카와[三河]의 키라[吉良]와 오오하마[大浜]에 병사를 보내어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게 한 후, 이날은 야영을 하셨고, 다음 날 나고야[那古野]로 귀성하셨다.

  1. 하야시 히데사다[林 秀貞] [본문으로]
  2.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 [본문으로]
  3.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로 한다 사족으로 아오야마는 1544년 9월, 노부나가의 부친 노부히데[織田信秀]의 미노[美濃] 이나바야마[稲葉山] 공격 때 전사. 노부나가가 13세가 되는 해는 서력으로 1546년으로 이때는 이미 사망한지 2년이 지난 후로. 이는 작자 오오타 큐우이치[太田牛一] 착각으로 여겨지고 있음. [본문으로]
  4. 1547년 [본문으로]
  5. 상기의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中務'와 동일인물. [본문으로]
  6. 갑옷 위에 입는 조끼같이 생긴 옷.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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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ㅅㅇㄴ 2014.02.27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공기 0권 첫부분부터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언젠가 완역되는 그 순간까지 응원하겠습니다.

    발해님 글 수시로 체크하는데 최근에 다시 전국 관련 포스팅 올라와서 너무 반가워요

    • Favicon of https://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2.28 1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20140228/15:35 추가] 그러고보니 신장공기의 首巻을 인식하시어 0권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이쪽 방면에 박식하신가 보군요.

      제 능력이 많이 부족하니 틀린 곳이나 이상한 곳 있음 그때그때 알려주십시오. 따스한 지도 및 편달 부탁드립니다.

    • ㅅㅇㄴ 2014.03.02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저도 갑양군감이나 신장공기 원문 찾아가며 읽어도 이렇게 감히 포스팅할 엄두가 안나 발해님 포스팅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3권까지 읽고 다시 후반 13-15권 읽어나가는데 많이 복잡해지더군요. 이번 기회에 조금씩 정독해 봐야겠습니다.

      매번 발해님의 매끄러운 번역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3.03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대단하시군요. 전 갑양군감의 원문은 시도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출처 : http://www.mofa.go.jp/mofaj/gaiko/page23_000044.html?show=pc

이 글은 2013년 6월 17~18일 영국 북아일랜드 에른 호수에서 행해진 G8 서밋의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서 언급된 ‘오픈 데이터 헌장’을 해석한 것이다.




세계는 데이터나 정보를 이용한 기술이나 사회 미디어에 의해 촉진된 국제적인 움직임의 가속을 눈 앞에서 보고 있다. 이는 보다 설명가능하며, 효율적이고 책임이 동반된 실효적인 행정이나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커다란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오픈 데이터는,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
데이터로의 접속은 인간이나 조직의 생활을 개선하며, 국내 및 국가간 정보의 흐름을 개선하기 위한 시점이나 혁신을 진화시켜 간다. 정부 및 비즈니스는 폭 넓은 범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긴 하지만, 반드시 사람들이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공유되어 있진 않다.

이는 잃어버렸던 기회이다.
사람들은 정보나 서비스를 편리한 디지털로 가질 수 있길 기대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보 또한 그런 것 중에 하나다. 또한 오픈 데이터는 자국의 천연자원이 어떻게 사용되며, 자원사업의 수익이 사용되어지고, 토지가 어떻게 거래되며 또한 이용되고 있는지 등의 인식을 향상시킨다. 이런 것들이 책임이 의무나 안정된 행정을 촉진시키며, 사람들의 논의를 촉진시키고, 정부 비리에 대한 투쟁을 지원한다. 또한 G8의 개발원조에 대한 투명성 있는 데이터는 책임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데이터로의 접속을 제공하는 것은 개인, 미디어, 시민사회 및 비즈니스계에 보건, 교육, 안전, 환경보호나 행정 등 공공서비스를 보다 좋게 행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오픈 데이터는 이하에 따라 이런 것들을 행할 수 있다.

  • 세금이나 공금 사용의 용도를 게시함으로서, 보다 효율적인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사람들이 서비스나 그 수준에 관해서 상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무료로 된 정부 데이터는 사람들이 보다 쾌적한 현대생활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민간부분에서의 개혁을 위한 촉매가 되어, 기존의 시장이나 비즈니스 및 고용 창출을 지원한다. 우리들은 오픈 데이터가 기술혁신과 번영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시민의 요구에 합치된 강고하고 상호보완적인 사회를 구국하기 위한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미개발된 자원이라는 것에 합의한다.

그를 위해 우리들은 이하의 원칙에 합의한다.

  • 원칙적으로 오픈 데이터
  • 질과 양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우리들은 각각 자국의 정치적, 법적 틀 안에서 행하면서도, 본보기나 국내 행동계획에 설정된 시간축에 따라, 이러한 원칙을 이행해 간다. G8각국은 연말까지 이 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활동계획을 책정하여, 2014년 다음 회담에서 진행평가를 행한다.

우리들은 다른 국가 및 다자간협의[각주:1]에도 이 헌장의 검토를 호소한다.

원칙 1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 데이터에 따라서는 공개할 수 없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편, 이 헌장에 제시되어 있듯이 정부의 모든 데이터가 원칙적으로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양성한다.

원칙 2 : 질과 양

  • 시기적절하게 포괄적이고 정확한 질 높은 오픈 데이터를 공개한다.
  • 데이터의 정보는 다른 언어들로 번역될 필요는 없지만, 평이하고 명확한 언어로 기술될 수 있도록 한다.
  • 데이터가 장단점이나 분석의 한계 등, 그 특성이 알 수 있도록 설명될 수 있도록 한다.
  • 가능한 빨리 공개한다.

원칙 3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폭 넓은 용도를 위해서 누구나가 입수가능한 오픈적인 형식으로 데이터를 공개한다.[각주:2]
  •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공개한다.

원칙 4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오픈 데이터의 이익을 전세계의 누구나가 얻을 수 있도록, 기술적 전문성이나 경험을 공유한다.
  • 데이터의 수집, 기준 및 공개 과정에 관한 투명성을 확보한다.

원칙 5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오픈 데이터의 응용도를 높여, 오픈 데이터에 관련된 사람들을 육성한다.
  • 다음 세대의 데이터 기술혁신가의 능력을 강화한다.


(기술적인 면에 관한 첨부)

파트 1. 본보기

원칙 1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 공공에 대한 취지 설명 중 우리들의 오픈 데이터에 관한 노력을 알린다.
  • 자국내의 활동계획을 공개한다.
  • 자국내 포털사이트에 데이터를 공개한다.

원칙 2 : 질과 양

  • 확실하고 일관성 있는 메타데이터(테이터에 관한 속성정보를 설명하는 테이터)의 사용.
  • 최근에 생성된 중요한 메타데이터 해설의 최신화 및 갱신(업데이트).
  • 충분히 구체화된 데이터의 확보.
  • 데이터 사용자에게 의견 청취.

원칙 3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편리하고 공개된 포맷으로 데이터를 이용 가능하게 한다.

원칙 4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민간조직이나 개인과의 연결을 구축한다.
  • 우리들의 데이터 수준에 대해 정보개시한다.
  • 오픈 데이터에 관한 작업을 행하며 얻은 경험을 기록한다.

원칙 5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저작권을 존중하면서, 오픈 라이센스를 사용한 데이터의 생성을 지지한다.
  • 데이터를 모아 기계판독할 수 있도록 한다.
  •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공개한다.
  • 데이터의 혁신적인 사용방법을 촉진한다.


파트 2. 공동 행동

행동 1 : G8 각국내행동계획

  • 자국내 체재에 맞춘 오픈 데이터 헌장의 이행을 위해 각국의 행동계획 발표(2013년 10월).
  • 연 1회 이행보고(2014년 10월 및 2015년)

행동 2 :고부가가치 데이터의 공개

  • 고부가가치 데이터의 이행 및 개발의 촉진.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및 ‘질과 양’의 각각의 원칙에 따라, 특정 우선분야의 데이터를 점진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힘쓴다.
  • 통계, 지도, 국정선거, 국가예산의 주요한 데이터 세트의 작성(2013년 6월부터).
  • 2013년 12월까지 공통된 데이터 세트의 설정을 행한다.
  • 자국내 체재에 따라, 그 외의 데이터 공개에 관한 자국내 활동계획을 작성한다(2013년 10월).

행동 3 : 메타데이터의 도표화

  • G8의 메타데이터 도표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2013년 6월)


ps;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다 보니 관련 용어 등의 차이가 있으나, 하해와 같은 맘으로 이해해 주심 고맙겠습니다.
ps2; '오픈 데이터'를 '정보 공개'로 번역해야 하나 담배 필 동안 고민했습니다만, 검색해보니 '오픈 데이터' 쪽이 많은 듯 하여 '오픈 데이터'란 용어를 썼습니다.

  1. 예를 들어, OPEC이나 ASEM, NATO 등. [본문으로]
  2. 그러니까 .hwp 나 .alz 같은 거 쓰지 말아달란 이야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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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님의 체조송

그냥 생각난 것 2013. 5. 20. 10:28 Posted by 渤海之狼

...그냥 웃으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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