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江戸時代], 오우미[近江] 히코네 번[彦根藩] 이이 가문[井伊家]은 대대로 대로(大老[각주:1])를 배출하는 후다이 다이묘우[譜代大名[각주:2]] 필두의 가격(家格)으로 유명했다. 막말(幕末) 즈음, 안세이의 대옥[安政の大獄[각주:3]]과 사쿠라다 문밖의 변[桜田門外の変[각주:4]]으로 잘 알려진 이이 카몬노카미 나오스케[井伊 掃部頭 直弼]가 이 가문 출신이다.

 센고쿠[戦国] 시대, 이이 가문은 ‘이이의 적비대[井伊の赤備え]’라는 호칭으로 용명을 떨친 용맹무쌍한 전투집단이었다.  이이 가문의 깃발, 표식, 장병의 갑주는 물론 마갑(馬甲)에 이르기까지 모두 붉은 색으로 통일, 그 붉게 타오르는 듯한 붉은 무리가 전쟁터를 질주한 것이다. 이 집단을 처음으로 이이 가문에 도입한 것이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였다.

 적비대는 원래 타케다 가문[武田家]의 것으로 나오마사는 이를 모방한 것이다. 즉 1582년 텐모쿠잔[天目山] 산에서 타케다 카츠요리[武田 勝頼]가 죽은 뒤, 이에야스[家康]는 타케다의 유신(遺臣)들을 나오마사의 가신단에 편입시켰다. 나오마사는 새로 타케다의 유신들을 포함한 가신단을 편성하면서 타케다 신겐[武田 信玄] 휘하에서 용명(勇名)을 떨쳤던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 昌景]의 군단이 적비대였다는 것을 참고로 한 것이다. 그간의 사정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코우슈우 군[甲州[각주:5]軍]의 명성은 천하를 진동시켰었다. 누구나가 이 타케다의 유신들을 원했다. 그런 타케다의 유신들이 이이 가문에 배속되게 된 데에는 사카이 타다츠구[酒井 忠次]가, “젊고 신참인 나오마사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그의 휘하로 배속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이에야스에게 진언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 康政]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반 정도는 자신에게 배속해 달라고 부탁하며, 만약 들어주지 않을 경우엔 나오마사와 결투를 벌이겠다고까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타다츠구는 가당치 않다는 듯이 이렇게 답했다.
 “원래 주군께서 나에게 배속시켜 주신다는 것을 내 멋대로 나오마사에게 배속시킨 것이다. 만약 자꾸 네놈이 툴툴거리면 네놈 일족을 모두 꼬챙이에 꿰어버릴 테다”
 이 완고한 타다츠구의 태도로 인해 타케다 유신단은 이이 가문 배속이 결정된 것이다.

 나오마사는 토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인 무공파(武功派)이지만 사천왕의 다른 멤버들인 사카이 타다츠구[酒井 忠次], 혼다 타다카츠[本多 忠勝],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 康政]들 처럼 조상 대대로 토쿠가와 가문을 섬긴 것이 아니라 나오마사의 대가 되어서 처음으로 토쿠가와를 섬긴 신참이었다.
 이에야스를 섬기기 전까지 이이 가문은 대대로 토오토우미[遠江]의 이이노야[井伊谷]라는 곳에서 살며 이마가와 가문[今川家]에 속해 있었지만, 부친 히고노카미 나오치카[肥後守 直親]가 누명을 쓰고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 氏真]에게 살해당하자 나오마사는 도망쳐 친족의 손에 키워지던 중 이에야스가 나오마사를 발견하여 자신의 가신으로 삼았다. 이 이례적인 발탁과 그 후 이에야스의 지나친 총애로 인하여 나오마사는 이에야스 남색(男色) 상대가 아닐까? 하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신참이었지만 나오마사에 대한 이에야스의 신뢰는 두터워 토쿠가와 가문에서의 지위를 높여 갔으며, 나오마사도 또한 충실한 가신으로서 견마지로를 다하며 자신 스스로도 후다이[譜代[각주:6]]라 여기고 있었다.

 후년 히데요시[秀吉]와 만나러 이에야스가 상경하게 되는데, 그 동안 오오만도코로[大政所[각주:7]]를 이에야스의 성에 인질로 보내었다. 이에야스가 살아서 돌아옴으로써 오오만도코로의 인질 역할은 끝나 그녀를 반환하게 되었다. 이때 나오마사가 호위하는 역할을 맡아 히데요시에게로 향했다. 히데요시는 나오마사의 빈틈없는 호위에 기뻐하며 공을 치하. 다음 날 나오마사를 위한 향응의 자리를 만들어 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 数正]에게, “자네는 요전까지만 해도 나오마사와 동료였으니 함께 참석하게”라며 동석시켰다. 이시카와 카즈마사는 이에야스의 고굉지신이었지만 히데요시로 말을 갈아탄 인물이었다. 카즈마사를 본 나오마사는 참석해 있던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이 카즈마사는 우리 주군인 토쿠가와를 조상 대대로 섬겨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군을 배신하고 전하(히데요시)에게로 도망친 겁쟁이이기에 졸자는 동석하고 싶지 않습니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나오마사의 후다이[譜代] 의식을 강조한 일화이다.

 이어서 1590년 오다와라 정벌[小田原の役[각주:8]] 때의 일이다. 장기전으로 인해 장병들의 마음이 피폐해지는 일이 없도록, 히데요시는 쿄우토[京都]나 사카이[堺]의 상인들을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여 장병들이 술잔치나 춤, 노래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등 활발한 진중 위안을 행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측실 요도도노[淀殿]까지 쿄우토에서 불러들였고, 여러 다이묘우에게도 그들의 처첩을 부르도록 권했다. 전쟁이라기 보다는 축제와 같은 떠들썩함이었다.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나오마사는 한 가지 꾀함이 있었다. 빠질대로 빠진 히데요시는 불과 14~15명의 호위만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나오마사는 슬며시 이에야스에게로 가서,
 “주군. 지금이야말로 천하를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히데요시의 목을 취하기는 아주 쉽사옵니다”
 야심만만한 나오마사의 헌책이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천명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으켜선 안 된다. 모름지기 세상 일은 하늘이 내려주신 것에 따라야 한다. 이것을 명심하도록”
 하고 엄격하게 나오마사를 꾸짖으며, 어떤 일이건 성취될 때에는 때의 추세라는 것이 있음을 가르쳤다고 한다.

 1600년 세키가하라[関ヶ原] 결전 때, 나오마사는 동군의 선봉으로 출진하였다.
 9월 15일 결전 당일 새벽. 나오마사는 흰 갑옷을 입고 짙은 안개 속에 말을 채찍질하며 스스로 정찰을 나가 낌새를 엿보다 전투가 시작되자, 말 재갈을 쥐고 있던 부하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싸우다 전사하면 운명일 뿐”
 이라며 적진으로 돌입했다고 한다.
 또한 아군인 동군 선봉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의 부하 장수 카니 사이조우[可児 才蔵]가 막아 서자[각주:9], 정찰을 나간다고 속여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고도 한다.

 이 결전도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 秀秋]를 배반케 한 동군이 서군을 총붕괴로 몰아넣었지만, 그때 패잔병 500여기를 이끈 시마즈 요시히로[島津 義弘]가 동군 진영을 스치며 쏜살같이 질주하여 퇴각하였다.
 나오마사의 이이 군은 곧바로 이를 추격, 시마즈의 후군[殿] 시마즈 토요히사[島津 豊久]를 전사시켰지만, 난전 속에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던 나오마사는 시마즈 군의 저격에 오른 팔을 맞아 부상 당해 낙마하였다.[각주:10] [각주:11] [각주:12]

 이때의 상처로 나오마사의 오른 팔은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세키가하라 전쟁 다다음 해인 1602년 7월 나오마사는 거성(居城)인 사와야마[佐和山]에서 죽었다.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
1561년 토오토우미[遠江]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만치요[万千代]. 이에야스[家康]를 섬겼으며 1582년 이에야스코우슈우[甲州] 경영에 공적을 세웠다. 1584년 코마키-나가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の合戦]에 종군. 1588년 텐노우[天皇]가 쥬라쿠테이[聚楽第]에 행차했을 때 히데요시[秀吉]의 알선으로 종오위하(従五位下) 지쥬우[侍従]가 되었다[각주:13]. 배신(陪臣[각주:14])으로서는 파격의 대우였다. 1590년 이에야스의 칸토우[関東] 이봉(移封)으로 인해 코우즈케[上野] 미노와 성[箕輪城] 12만석에 봉해졌고, 후에 오우미[近江] 사와야마 성[佐和山城] 18만석으로 가증되었다. 1602년 42세에 죽었다.

  1. 중요 정책 결정을 할 때, 혹은 다대한 공이 있는 원로 대신을 위한 비상임 막부 최고위직...여담으로 채널 J에서 방영 중인 NHK대하드라마 아츠히메[篤姫]에서는 '특별 정무대신'으로 번역되어 나온다. [본문으로]
  2. 주로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 이전부터 토쿠가와 가문[徳川家]를 섬겼던 가문이나, 쇼우군[将軍]이 새로 다이묘우[大名]로 만들어 준 가문. 막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3. 안세이[安政]는 당시 일본의 연호. 1858(안세이 5년[安政五年])~1860년 나오스케가 살해당할 때 까지 일어난 옥사. 당시의 대로(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 直弼]가 쿄우토[京都]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고 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을 무단 조인하고, 나오스케 주도로 14대 쇼우군[将軍]이 키슈우[紀州]의 토쿠가와 이에모치[徳川 家茂]로 결정되자, 그에 반대하던 사람들을 탄압한 사건. 덕분에 나오스케는 자신의 정적들을 단번에 몰아낼 수 있었다. [본문으로]
  4. 안세이의 대옥에서 나오스케의 정적 중 중심적 존재인 미토 번은 번주의 은거, 전 번주의 장기 칩거, 가로들의 할복 등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그에 불만을 품은 미토 번사 17인과 사츠마 번사 아리무라 지자에몬[有村 次左衛門]이 에도 성[江戸城] 사쿠라다 문[桜田門] 앞에서 등성 중이던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하여 살해한 사건. 여담으로 나오스케의 목을 자른 것은 주도한 미토 번사가 아니라 사츠마에서 혼자서 참가한 아리무라였다 . [본문으로]
  5. 카이[甲斐]를 달리 이리 부른다. [본문으로]
  6. 주가(主家)를 조상대대로 섬기는 가문 [본문으로]
  7. 히데요시의 애미 [본문으로]
  8. 히데요시가 호우죠우 가문[北条家]를 멸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 [본문으로]
  9. 선봉은 무가의 명예였기에 함부로 내주려 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10. 시마즈 요시히로의 전투기인 [유신공관원합전기(惟新公関原御合戦記)]에는 이리 쓰여 있다 한다. [본문으로]
  11.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한 시마즈 가문의 병사 쵸우사 히코사에몬[帖佐 彦左衛門]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나오마사는 서군이 패주한 후 아직 움직이기 전의 시마즈 군에 병사들을 데리고 와서 큰소리로, “무엇들을 하고 있나? 요시히로를 죽여라!”라고 외쳤을 때 카와카미 타다에[川上 忠兄] 휘하의 카시와기 겐토우[柏木 源藤]가 앞으로 나아가 철포를 쏘아 나오마사를 맞추자 나오마사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맞은 것에 놀라 동요하는 동안 시마즈 군은 퇴각을 시작했다고 한다.[旧記雑録後編 三] [본문으로]
  12. 덧붙여 이이 가문의 사료 [井伊家慶長記]에 따르면 카시와기 겐토우[柏木 源藤]가 쏜 총탄은 갑옷 오른 쪽 옆구리에 맞았지만 갑옷이 튼튼했기에 튕겨서 오른 팔에 맞았다고 한다. 나오마사는 이 충격에 창을 떨군 후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본문으로]
  13. 효우부쇼우유우[兵部少輔] 겸임. 이때 혼다 타다카츠나 사카키바라 야스마사는 무가(武家)가 관직을 얻었다는 의미인 쇼다이부[諸大夫]인데 비해, 나오마사는 지쥬우[侍従]가 되어 쿠게[公家]가 되었다. 이는 당시부터 나오마사가 토쿠가와 가문 필두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4. 원래는 중국에서 제후의 신하가 천자에게 자신을 부를 때를 지칭한 일인칭 대명사라고 한다. 그 뜻이 이어져 일본에서는 신하의 신하를 지칭할 때 쓴다. [본문으로]

근황 - 20091117

내 이야기 2009. 11. 17. 16:54 Posted by 발해지랑
1. 요즘 피가 모자르다는 말이 많아 헌혈하고 왔습니다. 2006년 1월 이후로 안하고 있었지만, 근래 피가 모자른 이 국가 위기적 사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죠.
(절대 궁핍한 나머지 나중에 책 살 때 이용하기 위해 헌혈하고 나면 주는 문화상품권에 눈이 멀어서 한 것은 아닙니다...확실히 전 너무 가난한 듯..)


2.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브래드 피트, 다이앤 크루거, 크리스토프 왈츠, 멜라니 로랑
상세보기
몇 일전에 본 영화이옵죠.
제가 이래뵈도 '저수지의 개들' 이래 쿠엔틴 팬입니다.
거친 녀석들...이라기 보다, 우리 편이라고 있는 것들이 캐망나니에 가깝습니다.
한국형 멋스러움(전우애, 다재다능)은 전부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듯.
무엇보다 브래드 피트가 원점회귀(??)하여 머리가죽 벗기는 모습이 반가웠습니다.
나름 추천.


3. 책들이 왔습니다. 우선 읽은 것은 역시 가볍게 볼 수 있다고 착각하고 단번에 읽은....
본격2차 세계대전 만화. 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굽시니스트 (애니북스, 2008년)
상세보기

웹에서 보던 것과 쫌 차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밀덕후'가 빠진 점이 좀 아쉽더군요.

본격2차 세계대전 만화. 2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굽시니스트 (애니북스, 2009년)
상세보기

2권은.....흠....
1권과 비슷한 형태였음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굽본좌께서 1권을 그린 후 생각도 많아지시고 욕심도 많아지신 듯.
보다가 무협작가 금강 님의 어떤 작품에 나오던 주인공[각주:1]이 떠오르더군요.

현재 센고쿠 무장열전을 보고 있습니다. 나름 마이너한 무장들이 많이 소개된 편이긴 합니다만... 열전의 탈을 쓴 만화 캐릭 감상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뭐 원작 만화에 꼽사리 껴서 나온 책이니 그건 그것대로 좋긴 합죠. 어쨌든 마이너한 무장들 설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족.

같이 온 센고쿠 합전독본은 아직 읽지는 못하고 어떤 책인가 스윽 훑어만 보았습니다. 제목만 보고 전 만화 센고쿠에 나온 전투 설명인 줄 알고 구입한 것인데......만약 만화 센고쿠를 가지고 역사군상이 나온다[각주:2]면 이렇게 나올 듯.

교보에서 산 오다 노부나가'라는 역사 - '신장기'의 저편에는 신장공기[信長公記]에 관해 성립부터 관련 인물 등등등등등등을 연구한 450페이지 가까운 책. 무엇보다 색인이 충실해서 맘에 듬(기억력이 나쁘거든요..전..). 다들 잊고 계시겠지만 담 장기 연재가 신장공기다 보니 산 책입죠.

역시 교보에서 산 서국의 센고쿠 전투..아직 책도 펴보지 않았습죠...다만 책 띠에 쓰인 문구가 맘에 드는군요.
오오우치, 아마고, 모우리, 오오토모, 시마즈, 류우조우지, 쵸우소카베...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던 무장들의 사투!
大内・尼子・毛利・大友・島津・竜造寺・長宗我部・・・。
歴史の本流になれなかった武将たちの戦い!


4. 처음으로 위키를 만졌습니다.
도쿠가와 사천왕...인데, 처음엔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라 되어 있는 곳에 이이 나오스케[井伊 直弼]라 쓰여 있길레 그것만 고치려 하다가 쫌 더 손을 보았네요....근데 먼저 만든 분들에게 실례인 듯하여 왕창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고친 부분은 요 정도 입니다.
  1. 절대 무공을 가지기 보다는 상대의 무공을 한 번 스윽 본 것만으로 전부 따라하며 더욱 강한 무공을 펼치지요. [본문으로]
  2.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역사군상시리즈 마에다 케이지[前田 慶次] - 까불이 면허증을 받은 센고쿠 까불이[天下御免の戦国傾奇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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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마를렌

동영상 2009. 11. 16. 02:13 Posted by 발해지랑


굽본좌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만화 2권을 읽다가 나온 릴리 마를렌(Lili Marleen).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유투브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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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 康政]가 죽고 나서 100년 뒤, 에도 시대[江戸時代] 중기의 학자 겸 정치가 아리이 하쿠세키[新井 白石]는 야스마사가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役] 이후 소극적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게 된 것은, 이에야스[家康]의 모신(謀臣) 혼다 마사노부[本多 正信]가 막정(幕政)의 중추가 되어 활약하였기에 그런 마사노부와 대립하면 주가(主家)인 토쿠가와 가문[徳川家]을 위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그 마음 속을 헤아리며, 
 ‘그 당시의 무장으로서는 특별한 일이었다’
 고 야스마사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하였다.

 사카키바라 야스마사는 성실하고 솔직하며 용감한 미카와[三河] 무사로, 같은 나이의 혼다 헤이하치로우 타다카츠[本多 平八郎 忠勝]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토쿠가와 군단의 으뜸가는 맹장(猛將)이었다.

 야스마사는 미카와 잇코우잇키[一向一揆][각주:1]에 16살의 나이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때 무공을 세운 덕분에 이에야스의 신뢰를 얻어 이에야스의 이름글자 중 ‘야스[康]’를 하사 받았다. 이후 이에야스가 출진하는 곳에는 반드시 이에야스의 직속군[旗本] 선봉을 맡았으며, 1566년에는 혼다 타다카츠와 함께 '직속군 선봉부대 부대장[御旗本先手侍大将]'이 되어 토쿠가와 군단을 지휘하여 그 용장()을 전쟁터에 드러내게 되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秀吉]와 싸운 1584년의 코마키-나가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の合戦] 때 야스마사는 적의 기세를 죽이기 위해서 격문(檄文)을 만들어 히데요시에게 욕설을 선사하였다.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덕분에 출세한 가신[家臣] 주제에 지금은 그 주군의 아들을 상대로 활을 쏘고 있다. 이야말로 팔역의 죄[각주:2]에 해당하는 것이다. 비도(非道)한 히데요시와 같은 편에 서는 자에게는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군의 아들’이란 노부나가의 둘째 아들 오다 노부카츠[織田 信雄]로, 이에야스는 노부카츠를 맹주로 하여 히데요시와 싸웠던 것이다.
 야스마사의 격문을 본 히데요시는 분노하였다.
 “코헤이타[小平太]를 산 채로 잡아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은상은 바라는 대로 다 주겠다”
라고 사졸들에게 말했을 정도로 열화와 같이 화를 냈다.

 히데요시의 분노도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이유 중 하나는 이에야스에 대한 야스마사의 충성스런 성격이 히데요시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1586년의 일이다. 코마키-나가쿠테가 끝난 뒤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강화를 맺었다. 히데요시는 토쿠가와 가문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여동생 아사히히메[朝日姫]를 이에야스에게 시집 보냈다. 그때 함을 가지고 온 사자로 온 것이 야스마사였다. 히데요시에게 알현하였을 때 히데요시는,
 “여어 야스마사 왔는가. 코마키 전투 때는 자네의 잘린 목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자네의 충성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다네”
 하고 가볍게 언급하였을 뿐이었으며, 거기에 함을 가지고 온 중요한 사자가 관직이 없어서는 안 된다며, 같은 해 11월 9일에 종오위하(従五位下) 시키부노타이후[式部大輔]에 임명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이날 토쿠가와 사천왕[徳川四天王]로 불리는 동료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 혼다 타다카츠도 서임되었다. 토쿠가와 가신 서임의 시초였다.

 세키가하라 결전 시에 야스마사는 히데타다[秀忠 – 후에 에도 막부 2대 쇼우군[将軍]]에 속해 있었다
 히데타다 군은 토우카이도우[東海道]를 거슬러 올라간 이에야스의 본군과 다른 길을 취하여 나카센도우[中仙道]를 서상(西上)하였다. 야스마사 외에 혼다 마사노부, 오오쿠보 타다치카[大久保 忠隣] 등이 속해있었다. 양군은 미노[美濃]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군 도중 강적이 나타나 히데타다 군의 서상을 막았다. 시나노[信濃] 우에다 성[上田城]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 昌幸], 유키무라[幸村] 부자였다.

 기략을 연발하는 사나다 군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 히데타다 군은 결국 세키가하라 결전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이에야스는 굉장히 불쾌해 했다. 히데타다가 겨우 오우미[近江] 쿠사츠[草津]에 도착했을 때도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3일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히데타다는 안절부절 못했다. 히데타다 진중은 침묵이 지배하였다. 이때 결심한 야스마사가 밤에 이에야스를 찾아갔다. 야스마사는 우선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며 사죄한 뒤 이어서 소신을 당당히 말하였다.
 “주군의 분노가 만약 세키가하라 결전에 시간 맞추지 못한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라면 주군에게도 잘못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부자가 함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를 물리치고자 했으면 어째서 사자를 보내 빈번히 연락을 취하려 하지 않았습니까?”
 고 이에야스에게 따지며,
 “언젠가는 천하인(天下人)이 되실 히데타다 공이 무공 부족으로 인하여 부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무시한다면 이는 히데타다 공만의 치욕이 아니라 주군 자신에게도 그 비웃음이 쏟아질 것입니다”
 고 논리 정연히 설득하였다. 야스마사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이에야스라도 분노를 풀고 다음 날에는 히데타다와 대면하고 격려하였다.
 히데타다의 한없이 기뻐하였다. 자신의 가문이 있는 한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야스마사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편지를 야스마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미담과 같은 이야기 외에 야스마사에게는 이에야스에 대한 반골심을 나타내는 일화도 전해진다.
 1606년 4월, 야스마사의 병이 중하여 이에야스, 히데타다의 병문안 사자로 사카이 타다요[酒井 忠世], 도이 토시카츠[土井 利勝]가 파견되었을 때의 일이다. 사자를 향해서 야스마사는 이불 안에서,
 “저도 장(臟)이 썩어 이렇게 추해졌습니다”
 고 빈정대며 말했다. 예전 작전회의에서 혼다 마사노부가 발언하였을 때 마사노부를 향해서 야스마사는,
 “된장이나 소금이 늘고 주는지만 신경쓰는 장이 썩은 사람이 전투에 관해서 무엇을 안다고 말을 하는가?”
하고 매도한 적이 있었다.
 병상에서의 말은 마사노부 등을 중용하는 이에야스를 비난하는 것이고 하였으며, 평화로운 시대에 들어와 잊혀져 가는 존재인 예전 전쟁터 용사의 자조(自嘲)이기도 했다.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 康政)]
1548년 미카와[三河]에서 태어났다. 토쿠가와 사천왕[徳川四天王] 중 한 명. 1581년 토오토우미[遠江] 타카텐진 성[高天神城]를 공격하였을 때 적의 수급 40을 취했다 한다. 코마키-나가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の戦い]에서는 미요시 히데츠구[三好 秀次 – 후에 칸파쿠[関白] 토요토미노 히데츠구[豊臣 秀次]] 군을 물리쳤다. 1590년 토쿠가와 에야스[徳川 家康]가 칸토우[関東]로 이봉(移封)되자 코우즈케[上野] 타테바야시[館林] 10만석에 봉해졌다. 1606년 악성 종양을 앓아 5월에 죽었다. 59세.

  1. 잇코우 종[一向宗 - 정확히는 혼간지[本願寺]]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종교 반란. 미카와 잇코우잇키[三河一向一揆]는 세금을 내지 않던 미카와의 혼간지 계열의 절에 세금 징수하려 하다가 그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 [본문으로]
  2. '八虐'라고도 쓴다. 율령제 시대에 가장 무거운 죄. 기본 사형이며 감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텐노우[天皇]에 살해에 관한 모반(謀反), 황거나 황릉에 관한 불경인 모대역(謀大逆), 일본 국가에 관한 반란획책인 모반(謀叛), 신사에 관한 불경인 대불경(大不敬), 존속살해인 악역(悪逆), 대량 살인죄인 부도(不道), , 존속살인 이외에 존속에 관한 죄인 불효(不孝), 주군에 관한 배신인 불의(不義)...인 여덟가지 죄. 여담으로 이중 존손에 관한 악역, 부도, 불효의 경우 당시 일본에 유교논리가 없었기에 사법(死法)이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근황보고

내 이야기 2009. 11. 5. 19:24 Posted by 발해지랑
1.
저는 두통을 달고 삽니다.
가방에는 항상 위장약과 두통약이 들어 있을 정도입죠.

재작년 이맘때 부터 머리가 아프면 몇 시간 뒤 오른 쪽 안구로 그 아픔이 전이되고, 그로부터 한 이틀 간은 눈이 부어 오르며 아퍼요. 마치 제 해골에서 탈출을 시도라도 하려는 듯. 그래서 한때 일기장 비슷하게 쓰던 플레이톡(자꾸 쓸데없는 업데이트에 넌더리가 나 지금은 트위터를 쓰고 있습죠)에는 '제 *차 안구독립전쟁'이라고 썼었습죠.

약국에서는 안과라도 함 가보라고 하는데... 그러기엔 귀찮기도 하고 돈도 없고.
얼음으로 당장 아픔만 넘기고 있습죠.

요 몇 일전에도 제 17차 안구 독립전쟁으로 인해 주말을 끙끙대며 보냈습죠.

2.
요즘 본 영화.
팬도럼
감독 크리스티앙 알바트 (2009 / 미국, 독일)
출연 벤 포스터, 데니스 퀘이드, 캠 지갠뎃, 안트예 트라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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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보고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이와하라 유우지[岩原 裕二]의 가시나무 왕[いばらの王]이 다시 보고 싶다는 것. 무엇보다 용서 못하겠던 것은 화면이 너무 어둡다는 거! 뭐가 뭔지 구별이 안 감. 더구나...영화 중간 때 이미 반전 읽었음. 하아~ 나같은 사람에게 읽혔음 이미 막장임.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제이슨 코프, 나탈리 볼트, 데이빗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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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너무 했음. 이런 영화 만들고 나면 다른 감독들은 영화 어떻게 만들라고... 하여튼 강추.
슬픈 장면이 넘 많아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눈을 계속 저수지 상태로 만들었음.

3.
주문 후 기다리고 있는 책.

예스24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2권.
センゴク合戰讀本
センゴク武將列傳.....근데 센고쿠 합전과 무장열전이 직수입일서 인지라 언제 올지 모르겠음. 알아서 따로따로 배송해 주지는...않을 것 같음.

교보문고

織田信長という歷史-『信長記』の彼方へ....몇 일전 일본 유명 역사 연구가의 블로그에서 소개하길레.
西國の戰國合戰....시리즈를 한꺼번에 사려다 그렇게 하다간 평생 사지 못할 것 같아 그냥 매달 한 권씩 사기로.역시 두 권 다 해외 주문인지라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음.

여태까지 교보만 이용했는데 9월달부터 LG텔레콤의 오즈 &  북을 이용하다 보니 예스24도 이용하게 되었습죠. 전체적으로 일서의 경우 교보문고 보다 약간 비싼 편이지만 5000원을 내면 10000원짜리 쿠폰을 주는지라 저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입죠....제가 언젠가 부터 매달 영화를 보는 이유도 오즈 & 영화 덕분이기도 합죠. 5000원을 내면 영화 티켓 2장이 꽁짜이옵죠. 문제는 한꺼번에 사용 불가인지라 언제나 혼자서..오호호흐흐흐흑 T.T

4.
사실 오늘 전국무장 100의 혼다 타다카츠 편(업데이트 하였습죠)과 컴 고장났을 때 산 책들 포스팅 할려고 했는데 친구가 무려 공덕동 족발을 사준다고 하길레 나가 보아야 합죠....한 마디로 땜질 포스팅 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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