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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12.02 내각 총리대신 오다 노부나가 2
  3. 2006.12.02 아시카가 요시아키 2
  4. 2006.12.02 요번에 산 게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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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정권탄생

일본서적 번역/총리대신織田信長 2006. 12. 4. 10:38 Posted by 발해지랑








내각 총리대신 오다 노부나가

일본서적 번역 2006. 12. 2. 18:47 Posted by 발해지랑


요 밑에 "총리대신 織田信長"의 책표지.

있을 때(...라고는 해도 1권과 2권만 있었고 당시만 해도 속은 게 너무 많은 지라....일본도 [서서보기(=立ち読み)를 막기 위해서 비닐로 쌓여 있었고) 살 수 있을만큼 살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

1579 8 28일 병사 61

1573 ~ 1597.

무로마치 바쿠후(室町 幕府) 15대 쇼우군().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에게 옹립되어 쇼우군이되었다. 노부나가와 사이가 틀어져 병사를 일으키지만 패하여 무로마치 바쿠후는 기능이 정지. 모우리(毛利)()를 의지하여 쿄우토(京都) 복귀를 노리지만 실패하였다. 후에 출가하여 쇼우산(昌山)이란 이름을 칭했다.









칸파쿠()와 쇼우군()이라는 위치


 [토요토미 칸파쿠(豊臣 )]의 위광을 쿄우토(京都) 구석구석까지 알린 - 쥬라쿠테이(聚落第)로 천황을 초대하여 연 잔치의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은 1588 9 10일.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오오사카(大坂) 저택에 있었다. 하지만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실외의 마당까지 내려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서국(西)에서 으뜸가는 거대 다이묘우(大大名) 7월 하순에 첫 상경(上京)하여 한달 정도 쿄우()에서의 생활을 즐기다 돌아가는 길에 히데이에에게 초대 받아 같은 저택에 머물고 있던 모우리 테루모토(毛利 輝元)도 곧바로 문 밖의 다리 위에까지 나가 의관을 가지런히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아닌 오전 10시 즈음에 히데이에의 저택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칸파쿠] 토요토미노 히데요시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요시아키라고 하면 종삼위(從三位)에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으로 무문(武門)의 최고 권위(權威)였다. 이 해의 정월 13일에 모우리(毛利)()의 영국(領國)에서 쿄우()로 돌아와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쇼우산(昌山)]이라는 도호(道號) [도우케이(道慶)]이라는 법명을 쓰는 것과 동시에 산구우(三宮)에 준하는 지위를 얻었다.(쥰산구우(准三宮))=쥬고우(准后)[각주:1].

 그런 요시아키가 히데요시가 방문하는 자리에 예를 갖추고 맞이한 것이다.


 어떠한 심경이었을까?

 요시아키와 히데요시는 1568년에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이 되기 위한 상경전(上京戰) 때 부터의 관계였지만, 그것은 쇼우군과 오다 가문(織田)의 일개 부하 장수로서의 히데요시 - 즉 주군(主君)과 배신(陪臣[각주:2])이라는 주종(主從)의 관계에서, 칸파쿠와 쇼우군이라는 동급으로 변하기는 했어도 주종의 관계가 뒤바뀐 것은 아니었던 만큼 주위의 시선은 아무래도 특이하게 비추어졌을 것이다.


 사실 이 즈음 요시아키(쇼우산)는 오오사카에 저택을 가지고 있는 한편 예전 머물던 야마시로(山城) 마키노시마(槇島)에 따로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히데요시의 방문 같은 행사에 행동을 같이 하고 있었다. 쿄우토(京都) 다이고(醍醐)() 산보우(三宝)()의 몬제키(門跡[각주:3])인 기엔(義演)에 따르면, 정월에 요시아키가 출가할 때 히데요시에게서 1만석을 하사 받아 오오사카에 저택을 세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 무문(武門)의 상징적인 존재로써 토요토미 칸파쿠 정권의 권위를 세우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칸파쿠 히데요시의 방문에 따라 예를 올리는 모습도 그런 역할의 일환으로 자존심 덩어리와 같은 요시아키가 기분 나빠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히데요시와 그의 정권에 권위를 세워주는데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있다는 자부심 쪽이 강했음이 틀림 없다.


너무도서글픈 죽음


 확실히 오오사카에 저택을 가지면서부터 요시아키는 당시 토요토미 정권 최대의 군사, 외교적 안건이었던 대륙 침공 계획 등에 남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1591 8월.

 쇼우코쿠()()의 로쿠온(鹿苑)()의 전 원주(院主)인 사이쇼우 죠우타이(西笑 承兌)가 히데요시에게서 [카라이리(唐入[각주:4])]에 따른 수행을 명령 받았다는 이야기를 - 이 다음 달인 9 18 마키노시마(槇島)의 저택을 방문해 온 로쿠온(鹿苑)()의 현() 원주(院主) 유우세츠 즈이호(有節 瑞保)에게 전해들은 요시아키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鹿苑日錄].

 이 이야기를 들은 요시아키가 갑자기 [속세의 명예심을 드러내 종군(從軍)할 결심](오쿠노 타카히로(野 高廣)가 쓴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을 하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이미 예정 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음해인 1592년 정월 5일에 여러 다이묘우(大名)에게 출진 명령을 내린 히데요시가 3 26일을 기해서 쿄우토(京都)를 출발함에 따라 히데요시 본진의 제 2진으로 요시아키도 종군하게 된 것이다.


 이 달(3) 20일에 입경(入京)한 요시아키는 다음 날 로쿠온(鹿苑)()의 남문(南門) 밖에 깃발을 휘날리며 로쿠온원()에 들어가 이곳을 주둔지로 삼는 한편 출진을 준비하였다.

 26일 출진식에서 요시아키는 금칠을 한 보로(母衣[각주:5])를 등에 멘 차림을 하였고, 금문(禁門)을 통과할 때에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더욱 눈에 뛰었을 것이다.

 총대장인 히데요시는 제 5진이었다. 환송에 나선 고요우제이(後陽成) 텐노우(天皇)의 좌석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 예()를 올렸다. 셋케([각주:6]), 신노우케(親王家[각주:7]), 몬제키(門跡)들 전부 서서 구경하여 평민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히데요시가 히젠(肥前) 나고야(名護屋) ()에 도착한 것은 4 25일로 요시아키는 3500명의 장병을 이끌고 성의 외곽에 포진하였다.

 오오사카로 되돌아 온 것은 히데요시가 오오사카로 되돌아 옴에 따른 1593 8월 하순을 지나서라고 보여지는데, 이 원정의 장식물로써의 역할이 끝났는지 그 후의 모습은 확실치 않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597 8 28일.

 요시아키는 종기를 원인으로 하는 병때문에 20일 가까운 투병 끝에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지금까지 쇼우군이라는 자존심으로 일관해 온 생전과는 달리, 히데요시에게 장례를 주관하도록 명령받은 죠우타이(承兌) 쿄우토쇼시다이(京都所司代[각주:8]) 토쿠젠인(德善院 마에다 겐이(前田 玄以))에게 관과 화장(火葬)하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 목수 두 명을 신청하여, 한 명밖에 허가 받지 못할 정도로 서글펐다.

  1. 쥬고우(准后)라는 것은 태황태후(太皇太后),태황후(皇太后),황후(皇后)의 지위에 준하는 위치나 봉록을 받는 것을 이른다. 요시아키의 선조 3대 쇼우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満)가 무가(武家)로는 처음 받은 이후 무로마치 쇼우군가(家)는 이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부하의 부하를 이른다. [본문으로]
  3. 황족이나 귀족의 자제가 뒤를 잇는 절 또는 사람을 말함. [본문으로]
  4. 나중에 임진왜란이 된다. [본문으로]
  5. 등에 메는 풍선과 같이 생긴 화살막이. [본문으로]
  6. 칸파쿠를 낼 수 있는 다섯 가문. [본문으로]
  7. 텐노우(天皇)와 핏줄이 이어진 가문. [본문으로]
  8. 쿄우토(京都)의 치안과 행정을 맡은 직책. [본문으로]

요번에 산 게임

내 이야기 2006. 12. 2. 18:08 Posted by 발해지랑

이번에 산 게임이다.
불타오르리라!!!
다만... CM폐인까페에서예약 공구를 못해서
몇 개의 특전을 못 받았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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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내보았다.

내 이야기 2006. 11. 30. 20:43 Posted by 발해지랑

너무도 광고성 댓글이 달려서 참다참다 못해 네이버에 문의해 보았다.

질문제목 : 불량 덧글에 관하여....
접수시각 : 2006년 11월 28일 18:21:08
요즘 따라 자주 상업성 & 화상채팅 & 인터넷 도박을 권유하는 덧글이 자주 달리더군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 사용자가 똑같은 내용의 덧글을 다수 올릴 때 제재하는 방법이나,
특정 단어를 여러 블로그의 덧글에 사용할 때 제한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만

네이버 측에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과연 광고성 덧글을 제한할 의지가 있으신지 궁금하군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자 오늘온 메일 내용....

안녕하세요. valhae0810고객님!
즐거운 지식 세상 네이버 상담원 *** 입니다.

불량 덧글이 있어 문의 주셨는지요?

네이버에서는 운영원칙에 명시한 불량 게시물로부터
회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불량게시물이 발견되는 모든 카페에 동일한 원칙하에 조치하고 있으나
미처 조치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게시물이 있을 있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고객님께 불쾌감을 드렸다면 깊은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경우 해당 게시물이나 운영을 하고 있는 페이지의 URL과 ID를
자세히 기재하여 신고하여 주시면 확인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경우 고객센터로 문의해 주시기 바라며,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라는 답장을 받았지만....
밑에 만족 불만족과 그에 대한 의견을 쓰는 곳에 아무리 "확인"을 눌러도
갔다는 말이 없어서다시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냈다.

-----------------------------------------------------------------------------

너무 성의없는 답변을 하시는군요.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카페가 아닌 블로그였으며,
님이 보내신 내용은 '내용에 따라 비슷한 형식의 메일을 보낸다'는 대충대충
정신을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라는 것을 말곤 저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요?

더구나 우리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못 찾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니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하지만 미처 발견 못한 것이니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해라

라는 뜻이죠?

저는 제가 생각한 방법까지 알려드렸는데
그 방법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으시군요.
(아무리 뭐해도 "님이 생각해 주신 방법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도는 써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똑같은 형식의 답변을....
누구에게나 보내는 것을 받았다고 해서
전혀 기쁘진 않습니다.

업계 최고라는 인식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의 있는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메일을 또 보냈는데 어떤 답변이 올지....

12월 2일 온 답장....

안녕하세요. valhae0810고객님!
즐거운 지식 세상 네이버 상담원 ### 입니다.

고객님, 불량 블로그 때문에 추가로 문의 주셨지요?

먼저, 다른 사용자의 불량 행위로 인해 고객님의 심기가 불쾌하게 되신 점,
대신하여 사과 드리겠습니다.


현재 네이버는 24시간 모니터링 및 신고접수를 통해 발견되는 광고 덧글에 대해
아이디 영구 이용정지 및 블로그 이용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여러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보다 신속한 조치로 고객님들의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불량 덧글이 확인될 경우, 아이디와 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시면
검수하여 이용약관 및 운영원칙에 위배되는 경우 경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따끔한 지적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뭐 상담원이 할 수 있는 것이야 여기까지겠지..

이 상담원이 보고가 어디까지 갈지가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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