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searchina.ne.jp/disp.cgi?y=2011&d=0415&f=national_0415_069.shtml

일본의 개소문같은 사이트 서치나의 기사입니다.
중국 검색사이트 서치나의 게시판에서 위무제 조조(魏武帝 曹操)와 일본 센고쿠 시대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중 누가 낫냐? 라는 스레가 세워져 중국어를 일본어로 쓰여진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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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 세운 사람:372436683
내가 생각하기에 노부나가는 500년에 1번 있을까 말까한 야심적인 영웅이다. 조조는 1000년에 1번 나올까 말까한 교활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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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織田龍秀一
노부나가는 영웅이고 조조는 간웅이다. 어느 쪽이 듣기에 좋냐? 현대 일본인은 다들 오다 노부나가를 영웅으로 간주하지. 현대 중국인은 조조가 영웅인지, 간웅인지, 야심가인지 잘 모른다. 시대가 달라도 답은 이미 나온 거 아냐?

● 122.96.254.*
어느 쪽이 강하냐고 하면 어렵군. 둘 다 많이 닮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중국인이니까 역시 조조를 지지해!

● 鳳雛一輝
완성 전투와 혼노우 사의 변. 누가 살아 남고 누가 죽었는지를 보고 알아야지.

● 玉柴政夏
조조는 단지 토지와 농민 획득 방법을 잘 알고 있었을 뿐이야. 한편 노부나가는 위대한 개척자다.

● LOVE歩歩ayumi
조조 쪽이 교활하다고 생각해. 노부나가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뭐 한때 지랄 좀 떤 거 같지만

● abcdxyz2010
노부나가는 천하인으로서 사리사욕이 없었다고 생각해. 조조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야심뿐이었다고 생각해

● 211.136.115.*
↑ 노부나가에게 사리사욕이 없었다고? 사리사욕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까? 조조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야심뿐이었다고? 젊었을 적의 조조는 손권과 함께 한왕조에서도 손꼽히는 충신으로 여겨진 적도 있다구. 정말 이 게시판에 있는 놈들은 어째서 이렇게 조조를 깔려고만 하는거야?

● 陸不遜
그다지 노부나가빠들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닌데, 노부나가는 자기 부하조차 확실히 관리하지 못해 결국 자살했잖아.

● sjy1201
조조가 죽은 뒤 그 자식들을 북방을 계속 지배했지.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 적자는 영지를 지키지 못했어[각주:1]. 다른 자식들의 결과도 모두 알고 있을 터.

● blkid
노부나가는 동탁과 닮았지. 동탁도 강했어. 하지만 조조에 비교하기엔 부족하지

● 849319572
그냥 둘을 몇 번 싸우게 해보면 알지 않아?

  1. 노부나가의 적자 노부타다[信忠]는 노부나가와 같은 날 죽음. 아마 글쓴이는 노부타다의 적자 히데노부[秀信]와 헷갈린 듯. 히데노부는 토요토미 정권[豊臣政権]에서 미노[美濃] 기후[岐阜] 13만석. 정삼위[正三位] 곤츄우나곤[権中納言]이 되나, 세키가하라 때 서군 측에 서 영지 몰수 후 얼마 안가(1605년) 죽음. [본문으로]


한국정부에서 보낸 지원물자를 인수

1. 오늘 17일(화요일) 오후 및 5월 18일(수요일) 오전. 한국정부로부터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지역에 보내기 위한 지원물자를 실은 비행기가 하네다 공항[羽田空港]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도착시각은 17일 21시 40분(JL094편), 18일 14:15(JL092편)가 될 예정).

2. 이번 한국정부의 지원에는 피해지역의 요청에 따라 비누 1만개, 수건 5만1000장, 물수건 2590개, 실내화 700켤레를 수송하여, 이 물자들은 WFP(국제연합 세계 식량계획)의 협력도 얻어, 이와테 현 토오노 시[岩手県 遠野市],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宮城県石巻市], 후쿠시마 현 후쿠시마 시[福島県福島市], 야마가타 현 카미노야마 시[山形県上山市]에 배포될 예정입니다. 한국정부는 예전에도 식량이나 물 등을 제공하여 피해지역에 차례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3. 우리(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의 협력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참고] 한국이 지금까지 보내 준 지원물자 내용

・식량(즉석볶음밥 3만개, 초콜릿 14만 4000개, 양갱 11만 2000개, 초코파이 12만개, 라면 12만 9024개, 스프 4만 8600개, 건빵 3600개, 햇반 10만개, 한국김 225kg, 즉석 비빔밥 2600개)
・음료수(물 580톤, 페트병 차(茶) 1만 4000개)
・이동식 발전기(4대)
・그 외 (장화 4000켤레, 고무장갑 1만 2000개, 모포 6000장, 마스크 2만개, 비누 2만개, 작업용 장갑 3500개)

1642년 3대 쇼우군[将軍]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 家光]의 아들 타케치요[竹千代][각주:1]오우미[近江] 히에이잔[比叡山]에 있는 산노우 신사[山王神社][각주:2]에 처음으로 기도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자[각주:3]가 처음 성 밖을 나가는 것인 만큼 이에미츠는 그런 세자의 첫 나들이를 화려하게 장식해 줄 요량으로 어삼가[御三家][각주:4]까지 함께 가라며 그 일에 대한 처리를 마츠다이라 노부츠나[松平 信綱]에게 맡깁니다[각주:5]. 노부츠나는 우선 어삼가의 필두 오와리[尾張]의 토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에게 연락합니다.

노부츠나 : 어삼가의 당주들께서도 타체치요님의 히에이잔 기도에 함께 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요시나오 : 다이나곤[大納言]인 내가 무위무관(無位無官)인 타케치요를 뒤따라 가야 한단 말인가?

노부츠나 : 무위무관이긴 하셔도 타케치요의 아버님은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이십니다.

요시나오 : 아버지를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시네.

…하고 거부하여 오와리의 요시나오는 물론 키이[紀伊]의 토쿠가와 요리노부[徳川 頼宣], 미토[水戸]의 토쿠가와 요리후사[徳川 頼房]까지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 후에 4대 쇼우군 이에츠나[家綱] [본문으로]
  2.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신호(神号) '토우쇼우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라는 이름이 나온 사상적 바탕이 된 곳...이라고 썼지만 사실 제가 철학적인 것을 알리가 없습죠. 단지 천태종(天台宗)을 믿는 텐카이[天海]가 신불습합에 따라 '산노우이치지츠 신도[山王一実神道]에 따라 이에야스를 '곤겐[権現]'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조금 알고 있을 뿐입죠 [본문으로]
  3. 1634년 세자가 없던 이에미츠가 조금 아퍼 누워있자. 어삼가 중 하나인 오와리[尾張]의 요시나오[義直]가 군사를 이끌고 에도로 진격하였는데, 세자 없는 이에츠나가 죽으면 요시나오 자신이 쇼우군이 되고자 하여 에도 막부를 공포에 떨게 한 적도 있었기에, 이에미츠로서도, 에도 막부의 각료들에게 있어서도 세자는 절실히 필요했다. [본문으로]
  4. 사실 어삼가[御三家]라는 것이 정식으로 생긴 것은 5대 츠나요시[綱吉] 때나 가서야 생긴 것.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와리 가문, 키이 가문, 미토 가문. [본문으로]
  5. 별명이 '지혜로운 이즈[知恵伊豆 - 노부츠나의 관직이 이즈노카미[伊豆守]였기에]'일 정도로 현명했기에, 이에미츠는 힘든 일처리를 노부츠나에게 자주 맡겼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