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인에게는 백옥같은 피부의 귀부인으로 보인 타케나카 한베에
사서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모략 있는 인물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여성을 보는 듯 했다]
흰 피부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던 듯하다.
전투에 임해서도 위압감을 풍기는 듯한 인물이 아니었다. 말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목면으로 된 겉옷(羽織)를 걸쳤으며 투구의 장식이 이치노타니(一ノ谷) 1라는 평범한 것이었다.
한베에에게는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평소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자주 움직였으며 추울 때는 손을 파리처럼 비벼댔다. 자신의 주군인 히데요시(秀吉) 2의 앞이라 하더라도 다리를 정신 사납게 떨거나 바꾸었다. 매우 의아히 여긴 어느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한베에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것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야. 갑작스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막상 다리가 저리거나 손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하면 어처구니가 없잖아? 조금 버릇없이 보일지는 몰라도 급작스런 때를 의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체면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임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베에는 센고쿠(戦国) 굴지의 천재군략가로서 유명하다. 그 병법의 묘를 완벽한 작품으로써 살려 세상에 이름을 날린 것이 미노(美濃) 이나바야바 성(稲葉山城) 쿠데타이다.
1564년 한베에는 21살. 도우산(道三)의 시대부터 사이토우 가문(斉藤家)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이 당시의 사이토우 가문 당주는 도우산의 손자 타츠오키(竜興)였다. 암우하며 주색에 허우적대는 인망이 없는 당주였다.
한베에의 장인인 안도우 이가노카미(安藤
伊賀守)가 행실을 올바로 하라고 충언을 하자 타츠오키는 도리어 화를 내며 근신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타츠오키의 측근들은 안도우 이가노카미의 사위인 한베에도 무시하기 시작하여 어느 날 술 마시고 있던 요시오키의 총신( 3寵臣)은 망루에서 등성하고 있던 한베에에게 오줌을 쌌다. 이때 한베에는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지만 마음속으로는 주군 타츠오키를 시작으로 한 이나바야마 성 안에 있는 자들의 콧대를 꺾어 놓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한베에는 타츠오키의 시동인 동생 큐우사쿠(久作)에게 꾀병을 부리라고 하여 그 간병을 핑계로 의약품을 실은 수레를 성 안에 들여보냈다. 그 안에는 무구를 숨겨 놓았다. 이렇게 한베에와 그 부하 17명은 성 안 깊숙한 곳에 있는 큐우사쿠의 방에 들어가 거기서 날이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 곧이어 밤이 되자 한베에 일당은 재빨리 전투준비를 마치고 그 중 한 명이 성 안에 위급을 알리는 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북을 쳤다. 갑작스런 북소리에 성 안 모두가 당황했다. 그 순간 숨어있던 한베에의 부하들이 숙직하는 무사들을 습격했다. 4
처음 약속한대로 다시 북을 치자 한베에의 장인인 안도우 이가노카미가 수하 천여 명이 이끌고 단번에 성안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타츠오키는 여성들과 함께 서둘러 도망쳤다.
한베에는 뛰어난 지략으로 순식간에 이나바야마 성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빼앗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 뒤 순순히 성을 타츠오키에게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모반을 일으킨 사람이라며 거성인 5보다이야마 성(菩提山城)를 동생 큐우사쿠에게 물려주고는 오우미(近江) 이부키야마(伊吹山) 산기슭에 은거해버렸다. 거기서 세상과 연을 끊고 독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한베에가 다시 전란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였다. 1567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에게 공격받은 사이토우 타츠오키가 이세(伊勢)로 도망쳐 미노(美濃)는 노부나가의 것이 되었다. 한베에도 장인 이가노카미의 주선으로 오다 가문을 섬겼고 다음 해인 1568년에는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木下 藤吉郎)에게 파견되어 이후 히데요시의 참모로서 그 지능을 한껏 발휘하게 된다. 6
1570년 오다 노부나가는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연합군을 아네가와(姉川) 전투에서 물리쳤고 그와 동시에 아자이 나가마사(浅井
長政)의 거성 오다니 성(小谷城)의 지성(枝城)인 요코야마 성(横山城)를 점거하여 히데요시에게 수비를 명했다.
다음 해인 1571년.
아자이 나가마사는 이 요코야마 성을 탈취하기 위해서 히데요시가 없는 틈을 타 7000의 군사를 이끌고 맹공을 가했다. 한베에가 수성의 지휘를 맡았다. 한베에는 일부러 성안 병사가 적게 보이도록 만든 뒤 적이 깔보고 성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기다려 일제히 사격했다. 아자이 군의 기세가 죽어 물러나면 쫓는 일 없이 제자리를 지켰고 또 공격해 오면 총과 활을 쏘는 전법을 거듭했다.
곧이어 해가 저물자 아자이 군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한베에가 기다리던 바였다. 미리 성 밖에 수백 명의 저격병을 숨겨 놓았던 것이다. 그들의 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성에서도 추격대를 내보냈다. 협공에 아자이 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오다니 성으로 도망쳤다. 한베에는 깊이 쫓는 일 없이 성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히데요시가 소식을 듣고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아자이 나가마사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즈음의 한베에에 대해서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군대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한베에는 아들인 사쿄우(左京)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사쿄우가 잠깐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 갔다 온 것이다. 한베에는 그런 자세를 못마땅해 하며 화를 냈다. 7
"소변이 마려우면 앉아서 싸라. 무도(武道)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바지에 오줌을 쌌다고 하면 칭찬을 들을지언정 누가 비웃겠느냐!?"
1575년 한베에는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에 참전하였고 그 후 히데요시가 츄우고쿠(中国) 정벌의 사령관에 임명되자 그의 참모로 종군하였다. 특히 히데요시가 벳쇼 나가하루(別所 長治)의 하리마(播磨) 미키 성(三木城)을 [말려 죽이기(干殺し) 전법]으로 나가게 만든 것은 한베에의 헌책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한베에는 죽었다. 결핵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병간호를 위해 쿄우토(京都)에 갔었지만 전황이 걱정된다며 다시 하리마( 8播磨)로 돌아와 거기서 결국 돌아오지 않는 길을 떠났다.
[다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
1544년 미노(美濃) 이케다 군(池田郡)에서 태어났다. 부친 시게모토( 9重元)가 죽어 10살의 나이에 10보다이야마 성(菩提山城) 성주가 된다. 사이토우 도우산(斉藤
道三), 요시타츠(義竜), 타츠오키(竜興)의 삼대를 섬겼지만 미노(美濃)가 노부나가(信長)에게 넘어가자 오다 가문(織田家)을 섬기다 1579년 하리마(播磨) 미키 성(三木城) 포위 중 병으로 죽었다. 36세.
- 겐페이(源平)가 싸우던 시대에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 義経)가 깍아 세운 듯한 절벽을 타고 내려와 이치노타니(一ノ谷)에 있는 헤이케 군을 물리친 것에서 본받고자 만든 투구의 장식. 임전무퇴를 상징하는 것으로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링크를 누르면 볼 수 있는 쿠로다 나가마사(黒田 長政)의 투구가 유명한데 이것이 원래 타케나카 한베에의 투구였다고 한다. 죽을 때 유품분배로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함께 있던 쿠로다 나가마사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본문으로]
- 히데요시는 주군이 아니다. 한베에의 주군은 어디까지나 노부나가(信長)로, 히데요시에게는 파견을 나가있었음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으로]
- 미노 삼인중(美濃三人衆)의 하나인 안도우 모리나리(安藤 守就) [본문으로]
- 타케나카 시게노리(竹中 重矩). 아네가와 전투(姉川の戦い)에서 노부나가 군 행세를 하며 본진으로 들어와 노부나가의 목숨을 노리던 엔도우 나오츠네(遠藤 直経)를 죽인 인물. [본문으로]
- 실제로는 약 1년 가까이 계속 점령하며 이제 미노는 내꺼임~ 이라는 푯말과 세금고지서를 날리는 식으로 노력했지만 다른 호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성을 내놓고 본거지로 퇴거. [본문으로]
- 초창기 토요토미노 히데요시의 이름 [본문으로]
- 타케나카 시게카도(竹中 重門). 후에 '토요카가미[豊鏡]'라는 히데요시 일대기를 저술. [본문으로]
- 무사는 전쟁터에서 죽어야 한다며 돌아왔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 현재는 이비군(揖斐郡)에 통합되어 있다. [본문으로]
- 16세~20세까지 여러 설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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