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

일본사 이것저것 2011.10.17 07:58 Posted by 渤海之狼

각지를 전전하던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가 1568년 쇼우군이 되자, 그때까지 키나이[機内] 지방을 장악하고 있다가 쫓겨났던 미요시삼인중[三好三人衆]은 재탈환을 노리며 쇼우군 요시아키가 임시로 거처를 삼고 있던 로쿠죠우[六条]의 혼코쿠 사[本圀寺][각주:1]를 1569년 1월 4일 공격합니다.

1569년 1월6일 자신이 옹립한 쇼우군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후 성[岐阜城]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자신은 단기(單騎)로 쿄우토[京都]를 향합니다. 하필 눈이 엄청나게 와 생각만큼 나아가질 못하던 중 노부나가는 오다 군(織田軍)의 물자를 수송하던 운송업자들이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노부나가는 운송업자들이 다투고 있는 곳에 가서 “어째서 다투느라 가질 않고 있는가?”라고 물어, 그 이유가 서로 자기 말에 배당된 물품이 더 무겁다는 등이 이유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부나가는 각자의 말들에 짊어진 물품들을 내리게 한 뒤 직접 짊어진 뒤 “똑같은 무게다. 서두르길 바란다”며 진격을 재촉합니다.

이때의 모습을 신장공기는

운송업자들이 물품 배당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말에서 물품을 내리게 하여 양쪽 다 살펴보신 뒤, “같은 무게다. 서둘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봉행(奉行)인 자가 어느 한쪽만 편들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셨기에 하신 일이다.
馬借の者も、御物を馬に負候とて、からかいを仕り候。御馬より下りさせられ、何れも荷物一々引見御覧じて、同じおもさなり、急ぎ候へと仰せ付げられ候。是れは奉行の者に依怙贔屓もあるかと、おぼしめしての御事なり。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 되시는 분이 자주 쓰시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이렇게 직접 해본 뒤 해결책을 내놓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뿐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비웃음만 살 뿐이라는 것은 어째서 몇 년이 지나도록 이해하지를 못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 여담으로 당시는 '혼코쿠 사[本國寺]'라고 '코쿠'의 글자를 國자로 썼으나, 에도 시대에 미토 코우몬[水戸黄門]으로 유명한 토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圀] 생모의 추선공양을 한 뒤 미츠쿠니의 보호를 받아, 이후 혼코쿠의 '코쿠' 자가 圀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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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각주:1]말기 나는 에타지마[江田島]에 있는 해군병학교에 있었다.
 내가 재학하고 있을 때, 카야노미야[賀陽宮]와 쿠니노미야[久邇宮]라는 두 분의 왕가[宮家] 사람이 계셨다. 아무래도 그분들은 특별 취급을 받아, 일요일에는 그분들이 휴식할 수 있는 한 채의 건물이 따로 있었으며 시종무관도 있었다.
 일요일에는 나도 대개 거기로 호출되어 왕가분들을 상대하거나 하였다. 상대라고 하여도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잡담이나 식사를 하는 것이었고 때로는 과자를 받는 정도였다.
 다른 생도들은 보통 일요일에 외출하거나 교관의 집에 놀러 갔다. 나도 때때로 외출하였지만 다른 생도들이 보기에 왕가의 상대를 하는 것 자체가 특별취급이었기에 생도들에게는 나라는 인물 역시 거리감이 있는 생도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탈도 많았다.
 상급생에게 호출되어,
 “이름을 말하라”
 고 하여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목소리가 작다며 따귀를 맞은 적도 있었다.

- 타야스 토쿠가와 가문[田安徳川家][각주:2] 11대 당주 토쿠가와 무네후사[徳川宗英]

출처: 토쿠가와 무네후사, “토쿠가와 400년의 비밀이야기”(文春文庫, 2004), 280-281쪽

  1. 2차대전 [본문으로]
  2. 8대 쇼우군 토쿠가와 요시무네[徳川 吉宗]의 둘째 아들 무네타케[徳川 宗武]를 시조로 하는 가문. 요시무네 때는 쇼우군 가문[将軍家]에 후사가 없을 시 쇼우군을 배출할 수 있다는 어삼가[御三家]와 이러저러한 문제로 거리가 멀어진지라 요시무네는 자신의 핏줄로 새로이 쇼우군을 배출할 수 있는 어삼경[御三卿]를 만들었다. 타야스 가문은 그 어삼경 중의 필두. 가문 명칭의 유래는 에도 성[江戸城] 북측에 타야스 문[田安門] 근처에 저택이 있었기에 이리 불렀다고 한다. 10만석의 영지가 있었지만 다스리지는 않고 막부에게 위임하는 형식으로 봉록만을 받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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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oyalhouse.tistory.com BlogIcon Cavalier 2011.07.31 0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심정이 되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몰락한 집안의 도련님이 되었을 때 그 상실감과 허무함은 얼마나 강력한 타격일까요. 다야스 가문의 당주님이 책을 냈다는건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저분도 참 힘겨운 20세기를 살아왔겠군요.

    저만 그런건지 도쿠가와 가문의 사람이라거나 빙상에서 춤추고 있는 오다의 피라던가 그들을 보면 알 수 없는 경외감이 듭니다. 핏줄의 계승이란 자연의 법칙이 말이죠 ㅎㅎ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7.31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몰락이라기 보다는 타야스 가문은 그래도 백작 가문인지라..

      책은 제목에 비해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에도 시대를 다룬 책에서는 많이 거론된 것들입죠. 다만 에도시대의 것들이 주가 되다 보니, 오히려 한국사람이 읽으면 신선한 맛이 있을 듯(아무래도 한국사람들은 게임이나 만화 등 여러 매체로 인해 센고쿠 시대는 알지언정 에도시대는 잘 모를테니)

      이 책에서 무네후사 씨는, 일본에서 토쿠가와라는 이름으로 인해 득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실제로는 있을 듯 합니다만 ^^ )

  2. Favicon of http://pray4abyss.egloos.com/ BlogIcon 로날드럭 2011.09.01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름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인지 모르겠습니다,
    저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면 태평양 도서에서 죽은 쪽국 졸병들은 무덤에서 펄쩍 뛸지도(....)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9.05 1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야~ 뭐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저 이야기 나온 이유가 '토쿠가와 가문에서 태어나서 득을 본 적이 없다'라는 이야기 중에 나온 것이라서요.

      힘들었다기 보다는 따귀도 맞을 정도로 특별히 토쿠가와 가문이라서 득을 본 적이 없다...정도로 보면 좋지 않을까요?

  3. 플로리몽 2013.02.01 1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내용을 보내 우리나라 영친왕은 어땠을런지...싶군요?

일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던 불교의 중이 쿄우토[京都]를 방문했다. 그는 굉장한 사기꾼에 변설이 뛰어났지만 위대한 설교자로 유명하며, 더할 나위 없이 거만한 자세에 모든 불승(佛僧)의 통념을 파괴하는 극도로 특이한 중으로, 이름을 무헨[無辺]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무한(無限) 즉 ‘한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 전국에 그 이름을 떨쳤다.

어떤 사람은 그가 기적을 행한다고 말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무헨이 마음 속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보며 마음 속 비밀을 파헤친다고 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무헨에게 모여들었다. 무헨을 한 번 보고 그의 의상에 입맞춤하고자, 무헨의 숙소에 대군중이 모여들어 입구에서 그를 기다렸다.

원래 노부나가[信長]는 과도하게 기이한 짓을 뽐내는 자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또한 노부나가 자신 역시 거만하였기에,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노부나가의 영내(領內)에 있는 것을 참지 못하였기에, 예전부터 무헨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무헨과 사자이보우[栄螺坊]라는 – 무헨을 자신의 처소에 숙박시키고 있는 다른 중과 함께 출두하라고 명령하였다.

(출두한 무헨을) 꿰뚫어지도록 쳐다본 뒤,
(너는)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무헨은 단지 “무한[각주:1]“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노부나가는 “중국, 시암 어느 쪽 사람인가? 하고 신문했다.
무헨은 자신이 순례하고 있다고 하였다.
노부나가는 “모든 인간은 일본, 중국, 인도가 아니면 안 된다. 너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의 신분을 알려고만 하면 곧바로 알 수 있으니 어서 말하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무헨은 “반도우 지방[坂東地方]인 데와[出羽]의 하구로[羽黒] 출신입니다”라고 말하였다.(확실히 이곳은 악마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각주:2]이다).
노부나가는 이에 답하여 말했다. “나는 이 자가 사기 치는 것을 좋아하는 요술사라고 예전부터 너희(가신)들에게 말하였다. 이 놈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출생지도 거주지도 갖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을 (일본의 옛 중인) 코보 대[弘法大師]라고 선전하며, 남들이 준 그 어떤 것도 받지 않고 자신에게 욕심이 없다며 받은 것들을 숙박했던 집에 놓고 간다 – 고 사람들은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어째서 이 놈은 항상 같은 집에서만 머무는가? 나는 그것을 물욕이 없기에 하는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은 받은 물건들을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한 잔꾀이다. 무헨 너는 기적을 행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내 앞에서 행해보거라”
고 하였지만 무헨은 기적의 ‘기’자도 보이질 못했기에,
노부나가는 “기적을 행하는 인간은 본성, 마음가짐, 눈의 움직임, 표정에서 그가 가진 덕을 나타낸다. 그러나 너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꾼보다도 천하며 야비하다. 너는 무지한 부녀자들을 속여 너가 통과하는 지역이나 마을에서 돈을 쓰게 만들고, 불쌍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있다. 그건 정말 악한 일이다”고 말하고선 가신들에게 “너희들 어서 이 놈을 혼내주거라”고 말했다.

무헨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조금 구타 당하고, 길고 아무렇게나 길렀던 머리를 빡빡 깎인 뒤 목줄에 매여 거리를 돌게 하는 불명예를 안겨준 뒤 도시에서 쫓아냈다.

나중에 노부나가는 또다시 무헨이 여전히 사기를 치며, 밤중에 남녀가 무헨을 방문하고, 무헨이 병든 여성들을 낫게 한다며 주술을 부린다는 것을 듣고, 자신의 명령이 엄격히 지켜지길 바라는 노부나가는 모든 길에 보초를 배치하여 무헨을 잡도록 명령하여 무헨이 잡히자 곧바로 참수시켰다. 이교도들은 노부나가가 무헨을 죽이는 것에 약간의 공포를 느꼈지만, 무헨이 죽고 난 뒤 그가 행했던 위선과 사기를 알려짐에 따라, 노부나가의 굉장히 사려 깊은 행위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각주:3] 제2부 29장


무헨에 대해서[無邊の事]

3월 20일. 무헨이라는 행각승이 이시바 사[石馬寺]의 사자에보우[栄螺坊]의 처소에 잠시 거주하고 있었다. 자주 기이하고 특이한 술법을 부린다고 한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바칠 수 있는 만큼의 돈이나 물건을 가지고 ‘술시의 비법[丑の時大事の秘法][각주:4]’을 전수받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절의 문 앞에 모여있다고 한다.

노부나가 공[信長公]은 무헨에 대한 소문을 평소 자주 들으셨는 바, 무헨을 만나보고 싶다 말씀하셨기에, 사자에보우는 무헨과 함께 아즈치로 왔다. 곧바로 마구간으로 행차하셔 이곳에서 무헨을 천천히 살펴보시더니 평소 생각하던 모습과 같더라.

(노부나가가) 행각승의 태어난 곳은 어딘가? 하고 물으시자

(무헨은) 무변(無邊)이라고 답했다.

(노부나가가) 다시 묻네만 중국인인가? 천축인인가? 하고 거듭 물으시자

(무헨은) 단지 수행자일 뿐, 이라고 답했다.

(노부나가는) 인간이 태어나는 곳은 중국, 천축, 일본 밖에 없는데도 그 외라고 하니 참으로 수상하구나. 그렇다면 네 놈은 틀림없이 괴물이겠구나. 그렇다면 불로 지져버리겠다. 여봐라 불을 이리 가지고 오너라. – 라고 명령하시자,

그 말에 겁이 난 무헨은, 데와[出羽]의 하구로[羽黒]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부나가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더냐? 여태까지 태어난 곳도 없고, 사는 곳도 없다면서 속였다. 또한 불법을 널리 퍼트린다(弘法)고 떠들고 다니며, 욕심이 없다면서 사람들이 물품을 주면 받아서 자신이 머무는 곳에 두면서 계속 그곳만 이용하는 것은 일견 욕심 없이 보이겠지만, 반대로 이는 무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이한 술책을 행할 수 있다고 하니 그 기이한 짓을 보여 보거라 – 고 명령하셨지만 무헨은 전혀 하지 못했다.

(노부나가가 말하길) 대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용모에서 안색까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 네놈은 산적만도 못하다. 여자나 아이들을 속이고 내 영지에서 그들의 돈을 갈취하다니 참으로 괘씸하도다. 이놈에게 창피를 주어라 – 고 명령하셔서, 긴 머리를 가위로 군데군데 자르고 나체로 만들어서는 끈으로 묶어 조리돌림을 한 뒤 아즈치에서 추방하였다.

또한 나중에 노부나가는 무헨이 어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으셨는데, 여전히 술시의 비법을 전수한다거나 혹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 또는 병에 걸린 여성 등에게 ‘배꼽비교’라는 것을 행한다고 하였다. “미래를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시고는 노부나가 님 직할지와 휘하 다이묘우[大名]들에게 명령을 내려 잡아들이도록 하여 잡히자 심문 후 처형하였다.

(노부나가는 무헨을 머물게 했던) 사자에보우에게 “어째서 아즈치 근방에 저런 종자를 머물게 하였는가?”하고 물으시자,

“이시바 사의 본당에 비가 새, 그것을 수리하고자 권선(勸善)을 위해서 잠시 머물게 하였습니다”고 말하자,

노부나가는 이 돈으로 절을 수리하라며 은자 30매를 하사하셨다.

-오오타 규우이치[太田牛一] 신장공기(信長公記)[각주:5] 권13[각주:6]


개인적으로 기독교 프로이스의 이교도를 바라보면서 쓴 서술과 일본인 오오타 규우이치의 서술의 차이가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 배꼽비교...라는 은근 성적인 표현을 프로이스가 알면서도 안 썼는지 혹은 몰랐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의 세계사상인 중국, 천축, 일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천축(인도)를 시암(태국)이라 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또한 무헨이 칭했다는 것이 정말 프로이스의 기술대로 일본의 옛 승인 '코우보우 대사[弘法大師]'인지, 아니면 일본의 연구자들이 말하는대로 '불법을 넓힌다(弘法)'으로 쓰인 것인지도 궁금.
또한 그 후의 처방에서 프로이스는 기술 안 했지만, 오오타 규우이치의 기술에는 나오는 절의 수리비를 주는 노부나가의 모습은 나름 츤데레?

ps:...노파심 삼아 추가합니다만, 이 기술만으로 노부나가가 불교를 억압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노부나가가 싫어했던 것은 있지도 않는 것으로 남들을 현혹시키는 사람 혹은 단체를 혐오하고 벌을 주었을 뿐입니다.
  1. 포르투갈어로 infinito라 쓰여 있다 함 [본문으로]
  2. 하구로는 슈겐도우[修験道]의 수행장이다. [본문으로]
  3. 현대어역은 추오우코우론 사[中央公論社], 마츠타 키이치[松田毅一] 선생의 것을 이용. [본문으로]
  4. 술시는 오전 2시 즈음. 그래서 프로이스의 기록에 무헨의 처소로 밤중에 남녀가 찾아간다고 나온다. [본문으로]
  5.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마치다 판[町田版]을 이용 [본문으로]
  6. 신장공기 권13은 1580년의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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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yuphy IV 2011.07.22 1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면 머리빨로 만들어냈던 권위가 머리를 깎인뒤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삼손씨와 비슷한 스토리진행처럼도 보이는데요, 그런 성경적(?) 해석의 프로이스씨와는 다르게 신장공기쪽은 한국 중고딩들 두발단속하듯 몇군데에 고속도로를 내버렸다며 적어놓은걸 보면...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느껴집니다(;!)(어이쿠 이게 아니려나..)

    어휴 요샌 그나저나 꽤 덥군요.. 발해지랑님도 이래저래 건강 신경쓰며 잘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7.22 1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깍인 다음에도 여전히 배꼽비교를 하고 다닌 것을 보면, 여전히 권위는 살아있었던 듯.

      그차이가 재미있더군요. 악마라던가, 노부나가에게 거만하다는 수사를 붙여 놓는다거나..

      그러게요. 많이 덥군요. 규피님께서도 夏バテ가 되지 않도록 많이 그리고 잘 드시길 비옵니다.

  2. 정동희 2011.07.25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부나가를 보면 중세를 넘어 근대적인 합리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종교를 억압했다기 보다는 부처를 등에 업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싫어했다고 생각하구요
    요즘도 이렇게 되도 않는 짓거리 하면서 예수나 부처를 팔아 제 욕심 챙기는 놈들이 있는데
    노부나가 처럼 불러다 때리고 창피를 줬으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7.25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장공기에서도 노부나가가,
      "미래를 위해서다(先々までの爲めにて候)"라고 했듯이, 나중을 생각한다면 위정자는 분명히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습죠. 다만...국내 정치가들은 정치꾼이다보니, 눈 앞의 표가 더 중요하지 나라의 미래 따위...

      여담으로...
      지금의 일본에서도 노부나가만한 리더가 없다면서, 미래를 위해서라면 당장의 비난 같은 것은 감수해야 하는데 그런 인물이 없다면서 투덜대더군요.

  3. Favicon of http://royalhouse.tistory.com BlogIcon Cavalier 2011.07.25 1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글을 쓰면 그 글의 요지는 안 읽고 엉뚱한걸 찾는 부류가 더러 있는데, 오늘은 제가 그러한 형국이었습니다. 저 글을 읽자마자 다른건 안 떠오르고 손책과 우길이 떠오르더군요(..) 우길 역시 무헨과 마찬가지로 목이 잘리는 참화를 피하지 못하였으며 손책과 노부나가 역시 폭력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이 자꾸 떠오르는 덕분에 글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손책의 모습이 그러했지만 노부나가 역시 자신의 위에 누군가가 선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인것 같습니다. 요시아키는 이것을 빠르게 파악했던 듯 합니다만 말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프로이스는 무헨과 노부나가의 대담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확실한 파악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노부나가의 세계관에서 왜 조선은 빠져있었던 것일까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7.25 2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군요. ^^
      못 보던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손책은 멸망시킨 적의 세력에 죽고, 노부나가는 자신의 부하에게 죽었으니 동일하게 보기에는 좀....
      ( 거기에 저는 노부나가가 동시대 일본의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포악하다거나 폭력적인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서는 것에 이것도 포함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노부나가의 경우 텐노우의 권위를 세워주는 편이었습죠. 가령 조정이 노부나가에게 관백, 태정대신, 장군...셋 중 원하는 것에 되시오...라는 삼직추임문제[三職推任問題] 때 조정의 칙사를 만나는 문제에 있어서, 너무 급작스러운 말이라 답변을 미루어야 하는데 그래도 칙사를 만나도 되나? 라고 물을 정도였습죠. 오히려 조정의 칙사인 카쥬우지 하레토요[勧修寺晴豊]는 "어쨌든 우선 만나뵙고 싶다"고 할 정도로 절차를 무시하집요.

      직접 보지는 않았을테고 아마 노부나가의 가신들 중 누군가에게 들었을테죠.

      중화라는 문명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듯 합니다.

    • Favicon of http://royalhouse.tistory.com BlogIcon Cavalier 2011.07.26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매일 가르침만 받아가서 적자나실까봐 걱정입니다. 좋은 지식 또 알아가네요.

      음식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ㅎㅎ

  4. Favicon of http://ndd247.tistory.com BlogIcon needled247 2011.07.31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공기의 한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 그런데 신장공기는 어디서 번역된 걸 찾으셨나요? (아니면 직접 번역하셨나요?) 소설, 드라마 말고 제대로 된 일본전국시대 역사서를 한번 보고 싶은데, 번역된 책이나 온라인 도큐먼트 같은게 있나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8.01 0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계획 상으로는 전국무장 100이라는 책을 다 번역하고 나면 신장공기의 번역을 할 생각입니다.

      음... 아무래도 제 관심사가 일본쪽이다 보니 주로 일본에서 검색을 하는지라, 한국에서 일본측 역사서 등을 번역하는 분이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한분 계셨지요. 중간에 관두셨습니다만)

    • Favicon of http://ndd247.tistory.com BlogIcon needled247 2011.08.01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어를 잘 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1642년 3대 쇼우군[将軍]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 家光]의 아들 타케치요[竹千代][각주:1]오우미[近江] 히에이잔[比叡山]에 있는 산노우 신사[山王神社][각주:2]에 처음으로 기도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자[각주:3]가 처음 성 밖을 나가는 것인 만큼 이에미츠는 그런 세자의 첫 나들이를 화려하게 장식해 줄 요량으로 어삼가[御三家][각주:4]까지 함께 가라며 그 일에 대한 처리를 마츠다이라 노부츠나[松平 信綱]에게 맡깁니다[각주:5]. 노부츠나는 우선 어삼가의 필두 오와리[尾張]의 토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에게 연락합니다.

노부츠나 : 어삼가의 당주들께서도 타체치요님의 히에이잔 기도에 함께 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요시나오 : 다이나곤[大納言]인 내가 무위무관(無位無官)인 타케치요를 뒤따라 가야 한단 말인가?

노부츠나 : 무위무관이긴 하셔도 타케치요의 아버님은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이십니다.

요시나오 : 아버지를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시네.

…하고 거부하여 오와리의 요시나오는 물론 키이[紀伊]의 토쿠가와 요리노부[徳川 頼宣], 미토[水戸]의 토쿠가와 요리후사[徳川 頼房]까지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 후에 4대 쇼우군 이에츠나[家綱] [본문으로]
  2.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신호(神号) '토우쇼우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라는 이름이 나온 사상적 바탕이 된 곳...이라고 썼지만 사실 제가 철학적인 것을 알리가 없습죠. 단지 천태종(天台宗)을 믿는 텐카이[天海]가 신불습합에 따라 '산노우이치지츠 신도[山王一実神道]에 따라 이에야스를 '곤겐[権現]'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조금 알고 있을 뿐입죠 [본문으로]
  3. 1634년 세자가 없던 이에미츠가 조금 아퍼 누워있자. 어삼가 중 하나인 오와리[尾張]의 요시나오[義直]가 군사를 이끌고 에도로 진격하였는데, 세자 없는 이에츠나가 죽으면 요시나오 자신이 쇼우군이 되고자 하여 에도 막부를 공포에 떨게 한 적도 있었기에, 이에미츠로서도, 에도 막부의 각료들에게 있어서도 세자는 절실히 필요했다. [본문으로]
  4. 사실 어삼가[御三家]라는 것이 정식으로 생긴 것은 5대 츠나요시[綱吉] 때나 가서야 생긴 것.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와리 가문, 키이 가문, 미토 가문. [본문으로]
  5. 별명이 '지혜로운 이즈[知恵伊豆 - 노부츠나의 관직이 이즈노카미[伊豆守]였기에]'일 정도로 현명했기에, 이에미츠는 힘든 일처리를 노부츠나에게 자주 맡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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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goreun.com BlogIcon 고어핀드 2011.05.18 1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텐카이? 설마 난코보 텐카이 스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양반이 천태종이었군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5.18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 난코보우 텐카이[南光坊 天海] 맞습죠.

      콘치인 수우덴[金地院 崇伝=게임 상에는 아마 이신 수우덴[以心崇伝]으로 나오는 것이 많을지도)]은 이에야스를 다이묘우진[大明神]으로 하려 했는데, 갑자기 텐카이가 이에야스는 죽기 직전에 '자신에게만' "난 '곤겐[権現]'이 되고 싶어"라고 했다고 주장하여 말빨로 히데타다를 설득하여 이에야스는 '토우쇼우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 됩지요.

      일본 천태종 총본산에 산노우 신앙[山王信仰]이란...제 능력이 부족해서 댓글로 설명하기가 복잡하군요. ^^: 언젠가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어쨌든 천태종의 텐카이가 임제종(臨濟宗)의 수우덴에게 승리함으로서 이후 텐카이는 막부의 중추에서 활약하게 되고, 천태종 역시 에도 막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에도 시대 내내 '노부나가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드는데 일조합죠.

출처: http://careerzine.jp/article/detail/1789 

일본 IT 업계 전직 사이트 CAREERzine에 올라온 글입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회사 트렌더스가 20~59세 사이의 일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0%가 ‘있다’고 대답.

 ‘있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센고쿠 시대의 어떤 부분에 흥미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1위는 ‘센고쿠 무장의 캐릭터, 인물상’         77%
2위는 ‘센고쿠 무장이 보낸 격동의 인생’      59%
3위는 ‘혼돈스런 하극상 사회’                    38%
4위는 ‘전투의 전법, 전술’                         36%

 센고쿠 무장 중에서 가장 빨리 출세할 듯한 인물은?

1위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秀吉]          41%
2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21%
3위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            17%
4위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15%
5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               12%

‘기업가로 성공할 듯한 인물’은?

1위 토요토미노 히데요시                        38%
2위 토쿠가와 이에야스                           35%
3위 오다 노부나가                                 32%
4위
타케다 신겐                                    16% 

히데요시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눈치가 빨라 임기응변에 능하고, 일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잘 만든다’ (23세 여성), ‘하극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성품’(27세 남성), ‘백성에서 천하를 손에 넣은 현명한 노력가에 오기가 센 무장이라 생각’(25세 여성)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저 질문에 가장 출세할 듯한 인물은 이건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히데요시일 듯. 하지만 기업가로는 노부나가,

기업가 히데요시의 단점을 보자면,
무엇보다 주제도 모른 해외침략.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의 규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덩치만 불리려 한 인수합병 혹은 주력 업종 외에 제대로 된 인식도 없으면서 문어발 확장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전 히데요시건 이에야스건 노부나가가 없었음 저렇게 컸을지도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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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oyalhouse.tistory.com BlogIcon Cavalier 2011.04.27 0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셨을런지 모르지만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는 이와 비슷한 감상이 느껴졌는데, 극중에서 이순재옹은 이러한 대사를 남기셨죠.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회사를 세우고 영민(순재옹의 아들)이는 회사를 정리하고, 민재(손자 즉 3세) 대에 들어서 회사가 크게 번창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 대사를 들으면서 오다 - 도요토미 - 도쿠가와 3대가 생각이 났습니다. 앞의 두 명이 그러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자의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2. 178 2011.04.28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세는 완전 히데요시 이미지인듯...
    기업가는 호죠 우지야스 생각나네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4.28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칸토우[関東]의 호우죠우 가문[北条家]가 시스템 운영은 최고였던 듯 합니다.

      호우죠우 가문은 기록을 많이 남겨놓았기에 지금도 당시를 연구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호우죠우 가문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더군요. 거기에 선정을 베풀었는지 이에야스가 들어간 다음에도 옛 호우죠우의 시대를 잇지 않았다고 할 정도니까요.

      여담으로 호우죠우 가문도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인해 멸망으로 이어집죠..어디까지나 결과론입니다만...^^
      5대 당주 우지나오[北条氏直]의 정실로 노부나가의 딸을 맞이하여 가문과 영지를 보존하고 싶었는데, 혼노우 사의 변 크리.

  3. 나그네 2011.05.05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 남겨 봅니다. 전국무장에 관한 글들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전국무장 중에서 히데요시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히데요시는 오다와라정벌 이전과 이후가 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마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 이후의 관우 같다능....)
    이시다 미츠나리가 좀 의외네요. 적을 굉장히 많이 만드는 스타일일 듯 한데 출세를 빨리 할 무장으로 꼽히다니...
    암튼 저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기업가'적 인물은 이에야스가 아닐까 하는....기업가는 일시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그 성공을 영속화시키는 능력을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런면에서 250년 막부의 초석을 놓은 이에야스에 한표....그런 의미에서 호죠가의 소운도 평가대상이지 싶은...^^;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5.05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드립니다. ^^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인식입니다만,

      히데요시는 원래 잔인하고 포악하며 욕심이 많았던 인물인 듯 하더군요. 나중에 여러 문학작품이 나오면서 조금씩 좋아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미츠나리는 오히려 시대가 내려오면서 안 좋은 쪽으로 변한 듯 합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발도 넓었기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지만 아무래도 반역군의 수장이다 보니, 살아 남은 사람들이 안 좋은 것들을 전부 미츠나리에 밀어 넣은 것 같더군요.

      특히나 그 일하는 방식만 본다면야, 현대 일본에서도, 일본식 관리 프로젝트의 선구자 운운할 정도니까요. 거기에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도서 많은 돈을 뽑아내는 듯한 에피소드에, 부하에게 아낌없이 주는 모습을 보면 관리자로서는 최상급이었던 듯 합니다.

      이에야스도 센고쿠 3영걸 중 하나로 꼽히니 당연 인물이겠지만, 250년 이어진 에도 막부 전체로 본다면은 흔히 토쿠가와 3대로 지칭하 듯 -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 이 세명이 다 공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야스가 남겨놓은 유산만 보면 분쟁의 씨앗은 남아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히데타다가 그 씨앗을 잘 뽑았고, 거기에 이에미츠가 시스템으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호우죠우 소우운北条早雲은 확실히 창업은 잘 했지만, 그의 인생 후반기에 행한 업적들이 대부분 그의 아들 호우죠우 우지츠나北条氏綱가 한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편협한 제 주장만 주저리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이 경영자적인 면을 창업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 아니면 그 이후 번영으로 이어가는 부분에서 놓아야 할지에 따라서 평가는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ps;제가 노부나가빠..에 가까운지라 노부나가말고 다른 사람 언급하시면 단점 찾아내기 바쁩지요. 이건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4. 나그네 2011.05.06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까지야....
    저야 일본사를 그다지 잘알지도 못하고 일본어도 잘 못하고 한국사람이 쓴 교양개론서 하나 읽은게 고작인데요. 발해님 번역하신 글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제가 히데요시를 평가한다고 한건 일본사 통틀어서 그렇게 출세한 인간이 없는 걸로 알고 있고 그 출세가 필요불가결한 무력동원만 하고 나머지는 이해조정(말빨?)으로 가능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에야스에게 한방 먹기는 했지만 혼노지변 이후 오다와라 정벌까지의 히데요시의 정략을 보면 실로 깔끔하다고 느껴져서요.(열도 통일을 위한 최단거리를 가로지르는 듯한...)
    뭐 그 이후에는 삽질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원래의 본 모습인지 아니면 자만심이나 노망(?)에서 나온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걸 본 모습으로 본다면 발해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p.s 저는 이에야스빠가 아닐뿐더러 절대 히데요시빠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에야스케릭터(능구렁이 너구리)는 밥맛이고 한국인으로서 히데요시를 좋아하기는 참 어렵지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5.06 2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일본 전쟁의 흐름은 반드시 투항교섭 -> 결렬시 무력...으로 이어졌습지요. 히데요시만이 그렇게 이해조정을 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죠.

      오히려 히데요시의 경우(그리고 타케다 신겐 등 몇몇도 그러했지만) 나중에 알아서들 기라며 츄우고쿠中国에 첫번째로 공략하는 곳은 싸그리 죽이고 시체들을 창에 꿰어 진군하는 식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습죠.

  5. 나그네 2011.05.06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면 말년의 히데요시의 삽질이 너무 빠른 성공에서 기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네요. 경쟁상대(대표적으로 이에야스)를 박살내 놓은 것이 아니라 적절히 타협을 통해 무마해 놓은 거였고 빠르게 형성된 세력이었기에 내부결속도 공고하지 못했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오버하게 된 건 아닌지...결국 그 오버스러운 행태에 의해 단점이 덧난 꼴이 되었겠지만 말이죠.(어디까지나 갠적인 망상)
    다시한번 강조하는데 저는 절~~때(x100) 수길이빠는 아니지만요 센코쿠 무장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인 것은 사실입니다.;;;;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5.06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에야스를 상대로 교섭에 나선 것은 저도 나그네 님과 비슷합니다. 당시 히데요시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킨키近畿라는 발판이 확고히 다듬어진 편이 아니었기에, 이에야스와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그네님 말씀대로 너무 빠른 성공에 발판을 다질 틈이 없었다고)

      ps; 개인적으론 히데요시에게 흥미는 많이 있습죠. 다만 그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좀 아쉽더군요.

  6. 하시바 2011.07.29 0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도 모른 해외침략"이라고 하셨지만, 애초부터 히데요시는 매우 낮은 신분의 남자였습니다. 일개 다이묘의 가신으로도 설 수 없을 천한 신분의 남자가 오직 능력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며 그것들을 모두 현실로 이뤄낸 인간입니다. 그런 히데요시기에, 역시 '가질 수 없는' 혹은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는' 조선과 대륙을 가지려고 한 것은, 어쩌면 그의 속성으로는 당연한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7.29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통 그런 것을 '주제(혹은 분수)도 모른다'라고 합지요. 아니면 '허황된 망상'이라고도 하고요.

    • ken 2011.08.25 0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꿈을 추구한다..라고 말하고 싶군요
      가정에 불과하지만 연개소문이 정말 중원도모를 시도했더라도 "주제도 모르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1.08.27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꿈이라...
      전쟁은 거는 쪽의 백성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미사여구로 표현하시다니... 참 안타깝군요.

      "가정에 불과하지만 연개소문이 정말 중원도모를 시도했더라도 "주제도 모르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연개소문이 우리 역사에 속한 인물이기 때문인가요? 제 블로그 우상단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그런 식의 인식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잣대는 항상 일정하기에 잣대인 것입니다. 기분에 따라 줄거나 는다면 그것은 잣대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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