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빈고 님[備後殿][각주:1]오와리[尾張]의 군세를 규합하여 어느 달은 미노노쿠니[美濃國]으로 진격하셨고, 또 다음 달은 미카와노쿠니[三川の國]에 출격하셨다.

  어느 때[각주:2]인지 9월 3일. 오와리 국내의 군세를 이끄시고는 미노노쿠니에 침공하셨다.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며 진격하셨고, 9월 22일에 사이토우 야마시로 도우산[斎藤 山城 道三]의 거성 이나바야마[稲葉山]의 산 밑의 마을들을 목표로 불지르며 마을 입구까지 다가갔으나, 이미 밤에 가까운 오후 4시 전후가 되었기에 군세를 물리려 하셨다. 군세의 반 정도가 철수 하였을 즈음에, 야마시로 도우산이 갑자기 남쪽을 향해서 돌격해 왔다. 반격에 나섰지만  여기저기 무너졌기에 수비하지를 못하였고, 빈고 님의 동생 오다 요지로우[織田 與次郎][각주:3], 오다 이나바노카미[織田 因幡守][각주:4], 오다 몬도노카미[織田 主水正],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5], 센슈우 키이노카미[千秋 紀伊守][각주:6], 모우리 쥬우로우[毛利 十郎][각주:7], 가문의 장로인 테라사와 마타하치[寺澤 又八]의 동생 모우리 토우쿠로우[毛利 藤九郎], 이와코시 키사부로우[岩越 喜三郎]를 시작으로 총 5000명 정도가 전사하였다.

  1. 노부나가의 애비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2. 1544년 추정 [본문으로]
  3. 요지로우는 '與(与)二郎'라고도 씀.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4. 키요스 삼봉행[清洲三奉行] 중 한명. [본문으로]
  5.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 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로 한다 사족으로 아오야마는 앞의 '3. 킷포우시 님 관례식에 대하여[吉法師殿御元服之事].'에서도 등장하지만, 앞의 주석에서도 달았듯이, 노부나가가 관례식을 치른 해는 1546년이기에, 앞의 기록은 저자 오오타 규우이치[太田 牛一]의 착각으로 여겨지고 있다. 단, 신장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 4장의 기사를 1544년이 아닌 1547년의 일로 받아들여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본문으로]
  6. 센슈우 스에미츠[千秋 季光]. 사족으로 센슈우 가문[千秋家]은 아츠타 신궁[熱田神宮]의 신관들의 우두머리(大宮司)를 맡는 가문. 키이노카미 스에미츠는 83대째. [본문으로]
  7. 모우리 아츠모토[毛利 敦元]. 후에 신장공기에 또 모우리 쥬우로우[毛利 十郎]라는 인물이 등장(14. 부에이 님, 자결하신 일에 대해서[武衛様御生害之事])에도 등장하나 아들로 추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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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ㅅㅇㄴ 2014.03.02 15: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님// 도산과의 전투에 전사했던 모리쥬로우가 이후 다시 나온건 역시 아들이었나보군요. 전에 읽었을 땐 좀 의아했던 부분이었는데 발해님 번역 덕분에 맥이 집히는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이런 신장공기만큼의 사료가치성은 아니더라도 (다소 오다가에 주관되지만)

    모우리면 모우리, 아자이면 히가시아자이군지, 아사쿠라면 아사쿠라시말기등등의 이런 사료들은 역시 패스해야할 정도로 신뢰성이 떨어지는걸까요?

    개인적으로 모우리를 위시한 모리양천 그룹 다이묘들이나 나 쵸소카베 정도의 츄고쿠 시고쿠 가문들을 가쉽거리라도 조금더 알아보고 싶은데 어떤 관련 고서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해서요. 혹시 추천해주실 사료가 있으신지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3.03 0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아직 배우는 단계이고, ㅅㅇㄴ님의 목적이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기에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합니다만...

      패스까지는 아니고 참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가령 오다 노부나가 가신단 연구의 일인자라고 하시는 타니구치 카츠히로谷口克広 선생의 경우, 다른 사료가 없을 경우 '참조'해도 되지 않냐는 입장입니다.
      한편, 무공야화武功夜話 까는데 유명한 후지모토 마사유키藤本正行,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선생의 경우 뒷받침하는 사료들(서장, 공가公家의 일기, 절의 연대기 등)이 없는 한 참조해서도 안 되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타니구치 선생처럼 다른 사료가 없는 한 '참조'의 형식으로 보는 것도 좋지 않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 서국西国 쪽은 근래에 출판된 몇몇 권만 읽은 지라 잘 알지 못해서 도움을 드리지 못하겠군요.
      다만, 김시덕 교수님의 '임진왜란 관련 일본 문헌 해제 - 근세편 (도서출판 문)'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침략한 서국 다이묘우大名들에 관한 군기軍記들이 설명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모우리毛利나 쵸우소카베長宗我部 등의 사료들도 설명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사료들 찾으심이 좋은 줄 아뢰옵니다.

    • ㅅㅇㄴ 2014.03.05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세한 배려 담긴 답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2. ㅅㅇㄴ 2014.03.02 1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2] 加納口の戦い를 1544년설[天文13年]로 추정해주셨는데, 이미 봐두셨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나하여 1547년[天文16年]설, 그리고 두 해 모두 번갈아 2번의 주장설도 있어 도움되시길 바라며 정리해봅니다.

    1. 1544년설[天文13年 9月22日] 주장 사료: 『甫庵信長記』,『享禄以来年代記』,『東国紀行』

    2. 1547년설[天文16年 9月22日] 주장 사료: 『定光寺年代記』,『岐阜市史』,『岐阜県史』

    3. 1544년 + 1547년 주장 사료: 『加納町市』

    려고 했는데

    이미 [주5]에서 1547년설도 써놓으셨군요 ㅠㅠ

  3. BlogIcon shotokan 2014.07.28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찾아왔습니다. 휴일이라 키노쿠니야에 들러 시바 료타로씨의 소설을 고르다 토요토미가의 사람들을 보고 발해지랑님 블로그가 떠올라 들어와봤더니 공기 번역을 시작하셨네요. ㄷㄷㄷ 수라의 길을 가시는군요. 저는 일에 치어 번역이랑 블로그 모두 포기했지만, 발해지랑님은 꼭 완성하시길 기원합니다. 건승하세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7.28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오~ 안녕하십니까!? 일본에 계신가 보군요. 쇼토칸님이 하시던 것을 이어서 한다는 생각으로 하였는데... 제대로 진행을 못 시키고 있네요. 건 그렇고 건강하신지요? 언젠가 뵙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겠사옵니다.

 킷포우시 님[吉法師殿]이 13살 되셨을 때, 하야시 사도노카미[林 佐渡守][각주:1],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 中務][각주:2],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3],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를 거느리시어, 후루와타리 성[古渡の御城]에서 관례식을 치르시고는, 오다 사부로우 노부나가[織田 三郎 信長]라는 이름을 칭하게 되셨다. 주연과 축하연이 무척이나 성대히 치러졌다.

 다음 해[각주:4], 오다 사부로우 노부나가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때 히라테 나카츠카스노죠우[平手 中務丞][각주:5]가 여러 준비를 해 주었는데, 그 모습은 빨간 줄이 그어진 두건, 하오리[각주:6], 말에도 갑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노부나가는) 스루가[駿河]의 군세가 배치된 미카와[三河]의 키라[吉良]와 오오하마[大浜]에 병사를 보내어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게 한 후, 이날은 야영을 하셨고, 다음 날 나고야[那古野]로 귀성하셨다.

  1. 하야시 히데사다[林 秀貞] [본문으로]
  2.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 [본문으로]
  3.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로 한다 사족으로 아오야마는 1544년 9월, 노부나가의 부친 노부히데[織田信秀]의 미노[美濃] 이나바야마[稲葉山] 공격 때 전사. 노부나가가 13세가 되는 해는 서력으로 1546년으로 이때는 이미 사망한지 2년이 지난 후로. 이는 작자 오오타 큐우이치[太田牛一] 착각으로 여겨지고 있음. [본문으로]
  4. 1547년 [본문으로]
  5. 상기의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中務'와 동일인물. [본문으로]
  6. 갑옷 위에 입는 조끼같이 생긴 옷.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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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ㅅㅇㄴ 2014.02.27 2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공기 0권 첫부분부터 번역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언젠가 완역되는 그 순간까지 응원하겠습니다.

    발해님 글 수시로 체크하는데 최근에 다시 전국 관련 포스팅 올라와서 너무 반가워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2.28 1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20140228/15:35 추가] 그러고보니 신장공기의 首巻을 인식하시어 0권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이쪽 방면에 박식하신가 보군요.

      제 능력이 많이 부족하니 틀린 곳이나 이상한 곳 있음 그때그때 알려주십시오. 따스한 지도 및 편달 부탁드립니다.

    • ㅅㅇㄴ 2014.03.02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저도 갑양군감이나 신장공기 원문 찾아가며 읽어도 이렇게 감히 포스팅할 엄두가 안나 발해님 포스팅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3권까지 읽고 다시 후반 13-15권 읽어나가는데 많이 복잡해지더군요. 이번 기회에 조금씩 정독해 봐야겠습니다.

      매번 발해님의 매끄러운 번역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4.03.03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대단하시군요. 전 갑양군감의 원문은 시도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8월 상순[각주:1]. 스루가[駿河]의 무사들이 미카와[三河]의 쇼우다하라[正田原] 들판으로 진출하여 7개의 부대로 나뉘어 진을 쳤다.[각주:2]
그 즈음 미카와의 안죠우[安祥]라는 성을 오다 빈고노카미[織田 備後守][각주:3]가 지키고 있었다. 스루가의 유하라[由原][각주:4]가 선봉에 서서 아즈키 고개로 군사를 파견하였다. 곧바로 빈고노카미는 안죠우에서 야하기[矢作]로 달려가 아즈키 고개에서 빈고노카미 님의 동생분들이신 요지로우[与次郎] 님[각주:5], 마고사부로우[孫三郎] 님[각주:6], 시로우지로우[四郎次郎] 님[각주:7]과 함께 적과 접촉하여 결국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때 활약한 사람들 - 오다 빈고노카미, 오다 요지로우 님, 오다 마고사부로우 님, 오다 시로우지로우 님.
 오다 사케노죠우[織田 造酒丞] 님[각주:8]은 창에 상처를 입었고,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는 굉장히 강한 적 무사를 쓰러뜨려 무명을 높였다. 키요스[清洲]의 무사인 나고야 야고로우[名古屋 弥五郎]는 전사하였다. 시모카타 사콘[下方 左近][각주:9], 삿사 하야토노카미[佐々 隼人正], 삿사 마고스케[佐々 孫介][각주:10], 나카노 마타베에[中野 又兵衛][각주:11], 아카가와 히코에몬[赤川 彦右衛門][각주:12], 칸베 이치사에몬[神戸 市左衛門], 나가타 지로우에몬[永田 次郎右衛門], 야마구치 사마노스케[山口 左馬助][각주:13]는 서너 번에 걸쳐 적에게 돌격하여 공적을 세웠다.
 이 전투에서 나고야 야고로우[那古野 弥五郎]의 목은 이하라[由原]가 취했다. 이때부터 (오다의 영지에) 스루가의 군세가 침입하게 되었다. 

  1. 1542년 추정. [본문으로]
  2. 七段은 - 돌격대[先頭], 선봉[先備え], 측면부대[脇備え], 중앙친위부대[旗本], 후군[後備え], 수송대[小荷駄], 유군[遊軍]으로 구성된 진영. [본문으로]
  3. 노부나가의 애비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4. 스루가의 유력한 가문인 이하라[庵原]. [본문으로]
  5.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6. 노부사다의 삼남 오다 노부미츠[織田 信光]. [본문으로]
  7. 노부사다의 넷째 아들 오다 노부자네[織田 信実]. [본문으로]
  8. 성이 오다[織田]긴 하지만 오다 일족은 아니다. 사케노죠우의 아비는 아마도 승려(이름이 간조우보우[岸蔵坊]인 것을 보면)였으며, 노부히데를 섬기게 된 것도 사케노죠우 때부터라고 한다. 아마도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노부히데가 일문에 편입시킨 듯. 여담으로 사케노죠우의 아들은 노부나가의 최측근 중 하나인 스가야 나가요리[菅屋長頼]이다. [본문으로]
  9. 시모카타 사다키요[下方 貞清] [본문으로]
  10. 둘 다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의 형. 둘 중에서는 하야토노카미가 큰형. [본문으로]
  11. 나카노 카즈야스[中野 一安]. [본문으로]
  12. 아카가와 카게히로[赤川 景弘]로 추정됨. [본문으로]
  13. 야마구치 노리츠구[山口 教継].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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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尾張]는 여덟 개의 군(郡)이다. 오와리 위쪽에 네 개의 군(郡)[각주:1]이 있어 이곳은 오다 이세노카미[織田 伊勢守][각주:2]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다스리며 이와쿠라[岩倉]를 거성으로 하고 있었다. 오와리 반국(半国) 아래의 군(郡)도 네 개 군[각주:3]으로 오다 야마토노카미[織田 大和守][각주:4]가 다스리고 있었다. 위와 아래의 군(郡)은 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다 야마토노카미는 키요스[清洲]의 성에 부에이 님[武衛様][각주:5]을 모시며 보호하고 있었다. 오다 야마토노가미 휘하에 삼봉행(三奉行)이 있었는데 오다 이나바노카미[織田 因幡守], 오다 토우자에몬[織田 藤左衛門], 오다 단죠우노죠우[織田 弾正中] 세 봉행(奉行)이다.[각주:6]

이 중 단죠우노죠우는 오와리의 변방 쇼바타[勝幡]라는 곳에 거성을 두고 있었다. 사이간[西巌][각주:7], 겟간[月巌][각주:8] 그리고 지금의 당주 빈고노카미[備後守][각주:9]의 동생인 요지로우 님[與二郎殿][각주:10], 마고사부로우 님[孫三郎殿][각주:11], 시로우지로우 님[四郎二郎殿][각주:12], 우에몬노죠우[右衛門尉][각주:13]라고 있었다. 이 가문은 대대로 무명이 높은가문이다. 빈고노카미 님은 특히나 뛰어난 기량을 갖춘 사람으로, 여러 가문의 능력있는 사람들과 친교를 맺으며 아군으로 삼았다.

어느 때인가 빈고노카미가 오와리 가운데에 있는 나고야[那古野]에 오셔서는 견고한 요새를 만들도록 명하신 후 이 성에 후계자인 오다 킷포우시 님[織田 吉法師殿][각주:14]에게 머물게 하며 필두 가로(家老) 하야시 신고로우[林 新五郎][각주:15], 차석 가로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中務][각주:16], 삼번 가로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17], 사번 가로에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를 배치하였으며, 재정을 히라테 나카츠카사에게 담당시켰다. 킷포우시는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텐노우보우[天王坊][각주:18]라는 절에 공부하러 다녔다.

빈고노카미는 나고야의 성을 킷포우시에게 물려주고 아츠타[熱田] 근방 후루와타리[古渡]라는 곳에 새로이 성을 쌓고 거성으로 삼으셨다. 재정담당으로 야마다 야에몬[山田彌右衛門]을 임명했다.

  1. 하구리 군[葉栗郡], 니와 군[丹羽郡], 나가시마 군[長島郡], 카스가이 군[春日井郡]. [본문으로]
  2. 오와리[尾張] 상사군(上四郡)의 슈고다이[守護代] 가문. 이 당시의 당주는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3. 카이사이 군[海西郡], 카이토우 군[海東郡], 아이치 군[愛知郡], 치타 군[知多郡]. [본문으로]
  4. 오와리 하사군(下四郡)의 슈고다이[守護代] 가문. 이 당시 당주는 오다 타츠카츠[織田 達勝]로 추정되고 있다. [본문으로]
  5.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수상 격인 칸레이[管領]가 될 수 있는 세 가문[三管領] 중 필두인 시바 가문[斯波家]의 종가(宗家). 무로마치 막부 중기부터 시바 가문 종가의 당주는 지부다이후[治部大輔]->사효우에노스케[左兵衛佐]->사효우에노카미[左兵衛督] 순으로 승진하였기에, 효우에[兵衛]의 당명(唐名)인 부에이[武衛]로 칭해졌다. 이 글에서 지칭하는 인물은 시바 요시무네[斯波 義統]. [본문으로]
  6. 소위 '키요스 삼봉행[清洲三奉行]'. [본문으로]
  7. 노부나가의 증조부 오다 나가노부[織田 良信]의 법명. [본문으로]
  8. 노부나가의 조부 오다 노부사다[織田 信定]. 사족으로 이 오다 노부사다가 당시 오와리 제일의 상업도시였던 츠시마[津島]를 장악한 것이 단죠우노죠우 가문[弾正忠家] 비약의 초석이 되었다. [본문으로]
  9. 노부나가의 부친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10. 요지로우는 '與(与)次郎'라고도 씀.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11. 노부히데 사후 세력이 약화된 노부나가를 도와 오와리 통일에 조력한 오다 노부미츠[織田 信光]. 노부사다의 삼남. [본문으로]
  12. 노부사다의 넷째 아들 오다 노부자네[織田 信実] [본문으로]
  13. 노부사다의 다섯째 아들 오다 노부츠구[織田 信次]. [본문으로]
  14.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본문으로]
  15. 하야시 히데사다[林 秀貞]. [본문으로]
  16. 히라테 마사히데[平手 政秀]. [본문으로]
  17.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谷口克広-織田信長家臣団辞典],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로 한다. [본문으로]
  18. 츠시마 신사[津島神社].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셨기에 별칭이 텐노우 사[津島天王社]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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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yuphy IV 2012.01.10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새해 첫 포스팅(!) 신장공기 시작하시는군요(~!) 그러고보면 마침 요즘 학교근처 레스토랑에서 타임슬립 노부나가대역 고교생이 주인공인 信長協奏曲을 아주 열심히 읽는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피한방울 안나는 전국물(...)인데도 잡다한 역사적 내용은 많은터라 그러고보면 노부나가가 1551년이던가 斯波씨를 토벌한 다른 오다씨(..어휴 이놈의 오다씨는 왜 이렇게 많은지)를 치는 내용인가 하던것도 나오더군요. ..어휴 저도 발해지랑님처럼 이런걸 좀 읽어야 되는데 만화만 읽고 있으니..ㅠㅠ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2.01.10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거 3년전부터 한다고 한다고 하다가 더 늦기 전에 우선 시작이나 해 둘려고요. ^^:

      요즘 화제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고삐리가 타임슬립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보고 싶긴 한데...더 이상 집에 책을 놓을 곳이 없는지라 만화책은 센고쿠 천정기와 헤우게모노(효우게모노)만 모으려고 하고 있습죠.

      그 오다씨는 오와리 하사군(下四郡)의 슈고다이[守護代]로 키요스에서 부에이[武衛=시바 씨[斯波氏]]와 함께 있던 오다 야마토노카미 가문입죠. 노부나가에게 있어선 바로 직속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문입니다.

      저도 주로 만화를 통해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편이라... 뭐 좋지 않나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cjswj BlogIcon 별마 2014.03.02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부나가 공기 우리 말 작업 완전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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