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2년 3대 쇼우군[将軍] 토쿠가와 이에미츠[徳川 家光]의 아들 타케치요[竹千代]가 1오우미[近江] 히에이잔[比叡山]에 있는 산노우 신사[山王神社]에 처음으로 기도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2
이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자가 처음 성 밖을 나가는 것인 만큼 이에미츠는 그런 세자의 첫 나들이를 화려하게 장식해 줄 요량으로 어삼가[御三家] 3까지 함께 가라며 그 일에 대한 처리를 4마츠다이라 노부츠나[松平 信綱]에게 맡깁니다. 노부츠나는 우선 어삼가의 필두 5오와리[尾張]의 토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에게 연락합니다.
노부츠나 : 어삼가의 당주들께서도 타체치요님의 히에이잔 기도에 함께 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요시나오 : 다이나곤[大納言]인 내가 무위무관(無位無官)인 타케치요를 뒤따라 가야 한단 말인가?
노부츠나 : 무위무관이긴 하셔도 타케치요의 아버님은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이십니다.
요시나오 : 아버지를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시네.
…하고 거부하여 오와리의 요시나오는 물론 키이[紀伊]의 토쿠가와 요리노부[徳川 頼宣], 미토[水戸]의 토쿠가와 요리후사[徳川 頼房]까지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 후에 4대 쇼우군 이에츠나[家綱] [본문으로]
-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신호(神号) '토우쇼우다이곤겐[東照大権現]'이라는 이름이 나온 사상적 바탕이 된 곳...이라고 썼지만 사실 제가 철학적인 것을 알리가 없습죠. 단지 천태종(天台宗)을 믿는 텐카이[天海]가 신불습합에 따라 '산노우이치지츠 신도[山王一実神道]에 따라 이에야스를 '곤겐[権現]'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 조금 알고 있을 뿐입죠 [본문으로]
- 1634년 세자가 없던 이에미츠가 조금 아퍼 누워있자. 어삼가 중 하나인 오와리[尾張]의 요시나오[義直]가 군사를 이끌고 에도로 진격하였는데, 세자 없는 이에츠나가 죽으면 요시나오 자신이 쇼우군이 되고자 하여 에도 막부를 공포에 떨게 한 적도 있었기에, 이에미츠로서도, 에도 막부의 각료들에게 있어서도 세자는 절실히 필요했다. [본문으로]
- 사실 어삼가[御三家]라는 것이 정식으로 생긴 것은 5대 츠나요시[綱吉] 때나 가서야 생긴 것.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와리 가문, 키이 가문, 미토 가문. [본문으로]
- 별명이 '지혜로운 이즈[知恵伊豆 - 노부츠나의 관직이 이즈노카미[伊豆守]였기에]'일 정도로 현명했기에, 이에미츠는 힘든 일처리를 노부츠나에게 자주 맡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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