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그 남자 히데요시(秀吉)의 진영으로 보내졌다고는 하여도, 본진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동남쪽에 있는 이치죠우다니()의 산 속이었다. 예전 이곳은 에치젠(越前)의 주인이었던 아사쿠라(朝倉) 가문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산림 속에 주춧돌만 남아있음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을 보낸 삼나무들이 많은 이 골짜기의 습도와 옛 성터의 한적한 분위기가 세 소녀의 신경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줄 것이라는 히데요시의 마음씀씀이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 차츰 알게 된 것인데, 히데요시라는 인물은 그러한 마음씀씀이가 후한때로는 너무 후하기까지 한 남자인 것 같았다.

 

 히데요시는 무슨 생각인지 곧바로 그녀들과 만나지 않았다. 키타노쇼우(北ノ庄)성(城)을 낙성시킨 후, 카가(加賀)로 진격하여 각지의 성을 항복시키고 노토(能登), 엣츄우(越中)를 굴복시킨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에치젠(越前)으로 돌아왔다. 그 도중 히데요시는 이치죠우다니에 들렸다.

 

 챠챠()님과 만나자

 

 라고 말하였다. 그 만남의 장소는 절이었다. 히데요시는 절의 객관(書院)을 깨끗하게 청소시킨 후 그녀들을 불러서는 자신이 상석에 앉지 않고 자신과 동격의 자리를 주어,

 

 제가 치쿠젠(筑前)이옵니다.”

 

 라고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투도 평소 덜렁대며 명랑한 인물과는 달리 오래된 종을 울렸을 때와 같은 긴 여음(餘音)을 남겼고, 어조는 극히 자연스럽게 젖어 있었다.

 

 무문(武門)의 길이라고는 하여도 어쩔 수 없이 슈리(修理=카츠이에(勝家))와 다투게 되었으며, 더구나 슈리 무운이 다하여 아씨님들의 모친도 함께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는 졸자 너무 슬퍼 드릴 말씀도 없사옵니다.”

 

 라는 듯한 것을 막힘 없이, 더구나 흘러 넘치는듯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씨님들은 고() 우다이진(右大臣=노부나가(信長))님의 조카이십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졸자에게 있어서 주인이 되십니다. 이제부터는…”

 

 하고 히데요시는 말을 한 박자 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돌아가신 우다이진님을 대신하여 이 치쿠젠(筑前)이 지켜드리겠사옵니다

 

 멋진 말솜씨였다. 노부나가(信長)의 이름을 거론함에 따라 히데요시의 행적과 입장은 모두 정의가 되어버렸다. 예전 오우미(近江) 오다니(小谷)() 공격도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번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 성의 경우도 이미 노부나가가 죽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오다(織田) 가문의 후계자를 어느 사람으로 하느냐는 것에 대해 카츠이에와 히데요시의 의견이 서로 달라 그것을 이유로 표면적이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즉 쌍방 [사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다 가문을 위해서] 라는 것이었다. 노부나가의 이름만 이용하면 아자이 나가마사(井 長政)를 멸한 것도, 시바타 카츠이에를 자살로 몰아넣은 것도 히데요시는 아니다. 정의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그러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이 정의는 꼭 연기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막료들을 뒤돌아보며,

 

 아 아씨님들께서는 내 주인에 해당하시며 또한 불행한 환경에 처해있으시니, 너희들도 그런 것을 마음에 잘 새겨 정성을 다해 모시거라

 

 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눈물을 흘리며 부하들의 정성을 요구했다. 본심이었다. 히데요시는 언제나 자신의 본심을 남들이 다 볼 수 있게 목의 핏줄처럼 드러내놓고 있는 인물이며 언제나 진심으로, 설령 거짓말을 할 때도 본심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드문 종류의 인물이었다. 성실이라는 것이 일편단심이라는 우둔함이 그에게는 없었으며, 그에게 있어서는 성실도 본심도 그 몸 안에 있는 혈관의 수만큼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죽은 옛 주군을 생각하며 추억할 때는 항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의 충성심을 가졌고,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옛 주군의 정권을 옛 주군의 자식에게 건네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인물로, 실제로 그 끝없는 야망을 위해 병사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히데요시의 본심인 것이다.

 

 동시에,

 이 아씨를…’

 하고 히데요시는 자기 몸을 욱신거리게 만들 정도로 새하얀 챠챠의 목줄기를 주욱 훑어보며

 품고 심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또한 어김없는 본심으로,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고()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심과 조금도 모순이 없었다. 오히려 옛 주군에 대한 동경이 이 욕망을 부채질하였다. 히데요시는 재앙이라고 할 정도로 여자를 좋아하며, 취향은 하천(下賤)한 여성이 아닌 귀족이었다. 귀족의 여성이야말로 이 비천(卑賤) 출신의 남자를 정염으로 불태웠다. 귀족이라고 하여도 그냥 귀족이어서는 안 되었다.

 상급 귀족인 쿠교우(公卿)의 딸은 관심 밖이었다. 쿠교우가 귀족중의 귀족이라고 하여도, 히데요시의 지금까지 인생길로 보면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가귀족(武家貴族)이 아니면 안 되었다. 때문이 이미 히데요시는 쿄우고쿠(京極) 가문 출신의 여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우키타(宇喜多)()의 후처와도 통하였고, 혼간지(本願寺) 주지(門跡)의 부인과도 몇 번인가 연을 가졌지만, 그러나 히데요시의 실감 속에서의 귀족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 하건 오다 가문이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다 가문 같은 것은 노부나가의 부친 대가 되어서야 갑자기 오와리(尾張) 반 정도의 주인이 된 신흥 다이묘우(大名)에 지나지 않았고, 그 선조가 뭐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원숭이라 불렸던 밑바닥 즈음부터의 주인 가문으로, 오다 가문의 가족들이라고 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구름 위의 사람이었다. 그 가문의 딸들은 그에게 있어서 신과 같이 성스러웠고,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미칠 듯이 아름다웠다. 가령 오다 가문의 여성 한 명이라도 품을 수 있다면 천명의 미녀를 포기하여도 후회가 없어, 이런 마음이 설사 천하고 비열할지라도, 동경이라는 점에서는 옛 주군에 대한 충성심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 아씨의 모친도 아름다우셨지

 하고 카츠이에와 함께 불타는 키타노쇼우(北ノ庄)()에서 죽은 오이치() 부인을 생각하였다. 오이치는 희대의 미녀라 불릴 정도의 절색으로, 히데요시는 예전 이루지 못할 바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맘속으로 그것을 바랬다. 그 딸이 미모는 조금 떨어질지 모른다고 해도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하고 오다 가문에 대한 동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 언젠가 이 소녀와 이루어 지게 될 이불 속에서의 여러가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당사자인 챠챠는 눈을 내리깔고 히데요시를 한 번 쳐다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남자라고?’

 챠챠는 다소 이외였다. 자기에게 그렇게까지 위해를 계속 가해왔던 인물치고는, 그냥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동네 꼬마들처럼 천진난만하고, 명랑하게 떠들며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웃었고,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의 하늘과 같이 맑아, 어딘가 얼이라도 빠진 듯한 남자였다. 이런 것에당혹했다.

 그 남자가 아니다

 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 남자라는 것은, 꼬꼬마 시절 자신의 오다니(小谷)()을 공격해서 무너뜨린 저 요코야마(山)성(城)오다니 성()을 감시하던 성 의 성주 토우키치로우(藤吉)는 이 남자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챠챠는 토오키치로우라는 남자의 별다른 모습을 뿌리박은 채 계속 자라왔건만 이 눈앞의 남자가 아니었다.

 

 저분은 좋은 분이십니다

 

 하고 나중에 말을 꺼낸 것은, 예전 토오키치로우에 대한 별개의 인상을 챠챠에게 계속 주입해 왔었던 유모였다. 유모는 서서히 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변한 듯했다. 이 즈음 태도도 묘하게 밝아져 히데요시에 대한 것을 자주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이야기의 요소요소에 예찬 가득한 형용사가 들어가, 명백히 챠챠가 히데요시를 좋아하게 만들고자 하고 있는 듯 했다.

 왜 이러지?’

 하고 챠챠는 생각하지 않았다. 챠챠는 이런 점에서 자라온 환경에 있을 법한 둔감함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챠챠가 눈치챈 것은 유모의 의복이 어느새 비싸고 화려한 것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유모는 어느새 자신의 고향 탄바(丹波)의 오오노(大野)에서 자식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유모는 탄바 오오노의 토착 사무라이(地侍)인 오오노 슈리노스케(大野修理亮)의 부인으로, 오다니 성()에 있었을 즈음에는 슈리노스케도 아자이 가문의 신하였지만, 낙성 후 그들은 탄바로 돌아갔었다. 남편은 그 후 병으로 죽었지만, 두 아이들은 무사히 성인이 되어, 장남은 이미 20살이 가까워져서는 오오노 하루나가(大野 冶長)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탄바의 오오노라는 곳은 미야즈(宮津) 서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었지. 맞어마을 근처에 타케노가와(竹野川)라는 강이 흘러 작은 계속을 만들고 있지

 

 하고 히데요시는 이 유모만 단독으로 불렀을 때 그렇게 그녀의 출신지에 대해 말했다. 히데요시는 탄바 오오노 같은 곳에 대해 몰랐었지만 마침 그 휘하에 있던 탄바의 다이묘우 호소카와 유우사이(細川 幽)에게 물어서 미리 지식을 얻어 놓고 있었다. 이에 유모는 감동을 먹었다. 그런 산골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 갑자기 친근감이 들었다.

 

 자식은 있는가?”

 

 하고 히데요시는 물었다.

 

 있사옵니다

 

 하고 답하자,

 

 자네의 아이라면 똑똑하겠군. 이쪽으로 데려오시게. 내 친위대(馬廻)에 넣어주고서는 기량을 보아 나중에 높은 위치에 두고서 크게 쓰겠네

 

 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유모는 이날부터 몸 안의 내장이 바뀌기라도 한 듯이 사람이 변했다. 곧바로 파발꾼(飛脚)을 고향으로 보내었고, 유모의 자식들을 탄바 미야즈 항(港)에서 배로 에치젠(越前) 미쿠니() 에 입항해서는 빨리도 왔다. 히데요시는 약속대로 그 두 형제를 부하로 삼았다.

 챠챠는 신경질적인 면이 있는 그렇기에 그 눈은 언제나 빈틈없이 깜빡이며, 항상 반짝반짝 하고 괴이한 광채를 머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모의 자식이 히데요시의 부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그것과 유모의 태도 변화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류의 지혜는 어째서인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천성이라 할까? 그러한 것이 결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오오사카(大坂) ()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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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히데요시(秀吉)가 남들과 다른 것 중에 하나는, 그가 너무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것에 있을 것이다. 장년일 즈음에는 그것을 자제하였다. 말년에는 자제의 테가 느슨해졌다. 요도도노(淀殿)는 그 시기에 히데요시에게 사랑 받았고, 히데요리()를 낳았다.

 

 이 여성은 오우미(近江) 출신이다. 꼬마숙녀일 즈음 - 7살까지 오우미에서 살았다.

 친가(親家)는 오우미 북부의 지배자였던 아자이()()이다. 거성(居城)은 오다니(小谷)에 있었다.

 오다니 성(城)은 산꼭대기에 있던 성이었다. 뒤로 이어진 산맥은 멀리 호쿠리쿠(北陸)까지 이어졌으며, 동남쪽으로 이부키야마(伊吹山) 이 있고, 산꼭대기에 서면 눈 아래로 비와(琵琶) 호수를 오가는 흰 돛단배가 조그만 벌레의 날개와 같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산꼭대기의 성새(城塞)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생이 다할 때까지 그녀는 이 성과 이곳의 풍경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꼬마숙녀기는 슬픔이 많았다. 철이 들었을 때는 성과 산이 적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산허리까지 차오른 적의 깃발과 인마(人馬) 속에서 꼬마숙녀기를 보내며, 매일 총소리를 들었으며 그 총소리 아래서의 생활은 아득할 정도로 길었다. 1570 7월부터 1573 9월까지 만 3년하고 2개월이나 이어졌다.

 

 - 적은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 히데요시(木下 藤吉 秀吉)

 라고 유모 후에 오오쿠라쿄우노츠보네(卿局) – 의 입에서 나오는 증오가 담긴 이름을 계속 들어왔다. 정확하게 하자면 적의 이름은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라고 말해야만 옳았다. 그러나 유모는 그 이름에 삼감이 있었다. 오다 가문은 꼬마숙녀의 모친 오이치()의 친정으로, 노부나가는 오이치의 오빠이기에 이 꼬마숙녀에게 있어서는 외삼촌이었다.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는 그의 부하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토우키치로우라는 인물은 이 아자이 씨()의 오다니 성() 공격을 위한, 오다 가문에 있어서의 담당관이었다. 그 이름을 증오하면 지장이 없었다.

 

 꼬마숙녀는 평생 기억하고 있었다. 성의 남측 벽에 있는 활을 쏘는 구멍()을 통해 내려다 보면, 멀리 아래로 벌판을 사이에 두고 언덕이 있고 거기에 적인 토우키치로우의 본진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역민들은 그 언덕을 요코야마(山) 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완만한 경사의 고분(古墳)이었다. 고분에는 견고한 성이 세워져 있어 낮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고, 밤에는 무수한 화톳불이 춤을 추었다. 그것이 32개월 동안의 풍경이었으며, 거기에서 아시가루()부터 벼락출세했다는 오다 가문의 부하장수 토우키치로우가 핍박하는 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저 남자를 아시옵니까?”

 

 하고 모친인 오이치에게 물어보았다. 오이치는 알고 있을 터였다. 오이치가 이 아자이 가문에 시집올 즈음 이미 히데요시는 상당한 지위에 있었고, 실제로 그녀가 기후(岐阜)에서 오우미(近江)로 시집가는 행렬의 관리관 중 한 명이었다. 애교 있는 미소와 날카로운 눈, 밝고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난쟁이처럼 작고, 얼굴은 막 태어난 미숙아처럼 추했다.

 

 “……………”

 

 오이치는 아무 말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는 것도 싫다 고 할 정도로 세찬 증오심이 날카로운 칼과 같이 번득거리고 있었다. 꼬마숙녀는 모친의 얼굴에 생긴 험악함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낙성의 날이 왔다. 꼬마숙녀에게는 전황에 대해 어떠한 지식도 전해지지 않았으며, 단지 이날 아침 미명에 깨워져 부친 나가마사(長政)와 대면했다. 그 후 모친인 오이치, 유모들, 거기에 두 여동생들과 함께 각각 가마(駕籠)에 태워져 성문을 나왔다.

 - 어디로 가는 건가요?

 하고 가마 안에서 창을 두들기며 몇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유모는 답해주지 않았다. 결국 오다 가문의 진중으로 옮겨져, 외삼촌이라는 노부나가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노부나가는 갑주를 입지 않고 시원하게 명주로 된 코소데(小袖) 한 벌만을 입고 있었다. 그 옆에 놀랄 만큼 왜소한 무장이 퉁퉁 부은 눈으로 여전히 울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라는 남자는 이 자가 아닐까?’

 하고 후년 어렴풋이 생각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애매한 기억으로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대로 그녀들은 오와리(尾張) 키요스(洲)성(城)으로 보내져 거기서 살았다.

 

 참고로 그녀는 그 생애에 있어 적어도 8개 이상의 성에 살았을 것이다. 평생 성에서 성으로 전전했다. 오우미(近江) 오다니(小谷)(), 오와리(尾張) 키요스 성(),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 성(城), 야마시로(山城) 요도(淀)성(城), 사가미(相模) 오다와라(小田原)성(城)을 포위하던 성, 치쿠젠(筑前) 나고야(名護屋) 성(城), 야마시로(山城) 후시미(伏見) 성(城), 오오사카(大坂) 성(城). …

 

 오와리 키요스 성()에서 생활한 기간도 길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치젠 키타노쇼우 성()으로 옮겼다. 왜냐하면 그 성의 성주이며, 또한 오다 가문의 호쿠리쿠(北陸) 방면 총사령관(元締)이었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에게 그녀의 모친인 오이치가 재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성도 함락당한다.


 적은 친가인 오다니 성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토우키치로우였다. 10년 동안 토우키치로우의 신분은 변화하여 그 호칭도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 筑前守 秀吉)로 바뀌어있었다. 이전 오다니 공격 때와 달라져 있던 것은, 그가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에치젠에 난입한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의지로 대군을 일으켜 그 인마(人馬)를 이끌고 키노메토우게(芽峠) 고개를 넘어 에치젠 평야에 난입해서는 키타노쇼우 성을 포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노부나가가 이 세상에 없었다. 이 해의 전년, 쿄우토(京都)의 혼노우(本能)()에서 자신의 부하장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그 미츠히데는 히데요시의 재빠른 도전에 의해 쓰러졌다. 자연히 오다 정권의 후계자 자리에 히데요시가 앉을 듯한 기세로 이어졌지만, 그러나 노신(老臣) No.1인 시바타 카츠이에가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서로 반목하고 단교(斷交)하여 결국 북부 오우미(近江)시즈가타케(賤ヶ岳)옛 오다니 성에서 가까운 에서 결전을 벌이기에 이르러서는, 히데요시가 해낸 절묘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군사를 잘 이끌어 카츠이에의 진영은 무너졌고 카츠이에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카츠이에는 자신의 거성 키타노쇼우(北ノ庄) ()에 도망쳐 들어와 성문을 닫았다. 히데요시는 쉬지 않고 그것을 추적했다. 그 하시바 측의 대군이 성을 포위하였을 때,

 어째서 저 남자는 이러는 것인가?’

 하고 그녀는 자신의 생애에서 두 번이나 자신의 생활을 부수려는 듯 총을 쏘아 대는 그 남자에게 증오보다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4 24, 밤이 아직 밝기 전 즈음, 성이 무너질 정도로 흔드는 총성이 일제히 일어나, 그녀는 자신의 침실에서 튕겨지듯이 일어나고 곧 쓰러졌다. 유모가 그녀의 포동포동한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녀는 17살이 되어있었다. 어두웠다. 방에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밤입니까?”

 

 겨우 말을 하였다.

 

 아니옵니다. 좀 있으면 밝아지겠지만, 그러나 아직 밝지는 않사옵니다

 

 하고 유모가 귀에 대고 느릿하게 소곤거렸다. 그렇게 소곤대는 것은 기억의 한 구석에 있었다. 오다니 성이 함락될 때도, 이 유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간도, 그 미칠듯한 총 소리도, 하나하나가 오다니 성에서의 그 때와 닮아있었다.

 그녀가 쓰러진 이 시각에, 이미 히데요시의 군사들은 성내의 한곳에 돌입해 있었다. 성 안이 전쟁터가 되었다. 카츠이에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텐슈(天守)로 이동했다. 이미 이 성주와 그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가 200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양부(養父) – 시바타 카츠이에가 그녀의 망부(亡父) 아자이 나가마사와 농후하게 공통되는 점은, 자신의 마지막에 화려함을 희구하고자 하는 기질에 있었다. 실제로 카츠이에는 그러하였다.

 카츠이에는 적을 향해서, 자신이 자인(自刃)한다는 뜻을 통고했다. 그 후 텐슈의 누상에서 주연(酒宴)을 열었다. 살아남은 무사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신은 검붉은색의 잠옷을 입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낙성 당할 때의 연회를 작법대로 행한 후, 이어서 적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지금부터 텐슈에 불을 질러 자인한다. 그러니 멀리 물러나 있으라

 

 하고 충고하였다. 텐슈에는 20년간 모은 화약이 꽉 차있었다. 불타오르면 여기에 불이 붙고 폭발해서 기둥이건 지붕이건 날려버릴 것이다. 부상 당하지 마라 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텐슈는 굉음과 함께 땅을 울렸고 곧이어 하늘 쪽으로 날라갔다. 양부 카츠이에, 친모 오이치는 30여명의 신하들과 함께 자신들의 시체를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이번에도 더 살게 만들었다. 그녀는 두 여동생들과 함께 카츠이에의 명령으로 적 측으로 보내졌다. 카츠이에는 자살하기 전에, 

 - 이 세 소녀를 구하도록 

 하고 히데요시에게 요구했다. 그 이유는, 

이 세 소녀는 귀하도 아는 바대로 이 카츠이에의 자식이 아니라,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이들일세. 따라서 돌아가신 우다이진(右大臣=노부나가) 님의 조카딸이며, 귀하에게 있어서는 주인댁이다. 보호할 것.
 이라는 것으로, 히데요시는 물론 받아들였다. 이런 점도 오다니 함락 시와 같았으며, 오히려 너무 똑같았다. 이 아명이 챠챠()라는 소녀는 - 꼬마숙녀 때부터 한창 꽃필 나이에 걸쳐, 살아서 지옥의 업화를 경험하였고 더구나 그것도 마치 지옥의 옥졸들이 착각이라도 한 듯이 같은 종류의 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지옥에서 친아비가 죽었고, 다음 지옥에서 친어미가 죽었다. 항상 그 지옥을 출현시켰던 것은 같은 남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적극성 있다고 평가 받는 남자였다. 그 남자…… 예전엔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였고, 지금은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라고 불리고 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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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orekun BlogIcon 고어핀드 2008.10.05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정성스레 번역해 주신 글 잘 읽고 갑니다. 난세가 다 그렇지만, 요도도노의 삶은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군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10.05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아자이때도 히데요시고 시바타때도 히데요시군요..-_-; 충분히 증오할만도 하겠다 싶습니다마는, 그렇다고는 해도 뭐 히데요시 말년에는 충분히 그 노망난 영감을 이용했으니 피장파장이려나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zardizm BlogIcon zardizm 2008.10.06 0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내년에 시작하는 nhk 대하드라마에서 요도기미를 후카다 쿄코가 연기한다더군요.
    일단 보기전 느낌은 뭔가 영 매치가 안되는 느낌;;;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10.06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어핀드님//좋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亂世라 불리나 봅니다.

    다메엣찌님//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이용했다면 다메엣찌님 말씀마따나 피장파장이라는 생각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 머리 속의 요도도노는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움직인 것 같지는 않더군요.

    zardizm님//오~ 그렇습니까??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후카?을 일본 여성 중에서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기대감 만빵입니다. 우헤헤~ (어울리지 않나요? 맹하고 어눌한 말투하며... 거기다 통통하기까지!!!)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10.07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덕진 후카다 쿄코 -_-)b 기대되는군요~!!!

.

 

 토요토미 씨[豊臣氏]는 갑자기 출현했다.

 지금까지 지상(地上)에 나타난 어떠한 정권보다도 호화롭고 장대한 이 정권은 불과 십여 일만에 1582 6 2일에 노부나가[信長] 횡사(橫死), 같은 달 13일에 미츠히데[光秀] 패사(敗死)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홀연히 지상에 나타났다. 귀족(貴族)이 되기 위한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채 이 일족은 서둘러 귀족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여러 형태의 뒤틀림을 낳았다. 그 혈족, 인척, 그리고 양자들은 이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우둔한 자는 우둔했던 만큼 똑똑한 자는 똑똑했던 만큼 편히 숨도 못 쉴 수가 없어 평온하게 있지 못하고 불에라도 덴 듯 항상 미쳐 날뛰었으며 때로는 무너져 갔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그만이 냉정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만은 계속해서 평온했으며 이 새로운 시대와 환경을 잘 견딜 수가 있었다.

 우리미노미야[瓜見宮][각주:1]

 라는 젊은이이다.

 정확하게는 하치죠우노미야 토모히토[宮 智仁] 친왕(親王)’이라고 한다. 텐노우[天皇]의 동생이다. 당연하게도 이 태어나면서부터의 귀족은 토요토미 가문의 양자들 중에서 혈통이라는 점으로는 군계일학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학문에 더해 정치감각까지도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쿄우토[京都]의 남쪽 교외에 있는 카츠라[桂]의 마을에는 보기 좋은 오이 밭이 펼쳐져 있다.

 쿄우토의 사람들에게는 사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 봄에는 아라시야마[嵐山]에서 놀며, 신록(新綠)의 계절에는 키요미즈[水]에서 태양빛에 반짝이는 비()를 구경하고, 가을에는 타카오[高雄]에서 단풍놀이를 한다. 한여름에도 즐길 거리가 있었다. 한낮에 탄바 가도[丹波 街道]를 이용하여 카츠라[]로 가, 그 근방에 자라고 있는 굵직한 오이를 보며 즐기는 '우리미[瓜見]'를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밭에 내려 쪼이는 강렬한 여름 햇빛을 오이 맛의 시원함 속에 담아서 맛보고자 하는 것이 이 우리미()의 풍취일 것이다.

 그 한여름의 풍취를 가장 즐긴 것이 이 친왕이었기에 [우리미노미야]라는 별명이 붙었다.

 

 토모히토[智仁] 1577년 정월에 태어났다[각주:2]. 아명을 코사마루[古佐丸]라 한다. 태어났을 시기, 이미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아즈치 성[安土城]을 완성하였고, 또한 츄우고쿠[国]의 모우리[毛利]나 오오사카[大坂]의 혼간지[本願寺]와 싸우면서 쿄우토의 시정(市政)에도 신경을 써, 그 질서를 안정시키는 것에 힘을 쏟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궁정을 존숭(尊崇)했다. 궁정이나 상급 귀족[公卿]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에도 마음을 써 그들에게 땅을 주고, 그 저택을 계속해서 새로 짓게 하였다. 궁궐 주변은 항상 망치소리로 활기차, 미야[본 항의 주인공 하치죠우노미야[]’를 부르는 말. 이하 그를 미야'로 지칭한다. – 역자 주]는 목수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인이 되었다. 후년 이 미야가 건축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어렸을 즈음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부친은 사네히토[誠仁] 친왕이다. 모친은 카쥬우지 하루코[修寺 晴子]라고 하였다.

 미야는 귀족의 관습으로 모친의 친정인 카쥬우지 가문에서 태어나고 또한 자랐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이 있었다. 후에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가 된다. 성인식을 치른 후에 이름을 카네히토[周仁]라고 하며, 6살 위에 형이었다[각주:3].

 

 꼬꼬마일 적에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였다.

 그러다 미야의 6살이 된 여름. 오다 노부나가가 쿄우[京]에서 죽었다. 이것이 미야가 꼬꼬마일 즈음 최대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1582 6 2일 새벽, 미야는 혼노우 사[本能寺]의 하늘을 붉게 물들인 화염을 카쥬우지 저택의 담 너머로 지켜보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지켜보면서 몸이 떨려 우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미야가 가진 용모의 특징인 면도날로 짼 듯이 길고 얇은 실눈으로 그 화염을 계속 지켜보았다. 곧이어,

 

 휴우가노카미[日向守=미츠히데]는 여기까지 쳐들어 올까?”

 

 하고 유모에게 물었다. 미야는 꼬꼬마이면서도 미츠히데라는 이름에 적의(敵意)를 느꼈다. 당연할 것이다. 지금 저 화염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는 궁정의 사람들에게 있어 요 수세기 동안 처음으로 출현한 구세주였으며, 궁정이나 상급 귀족들에게 땅을 내리고 저택을 지어주며, 옛 의식을 부활시키는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행복을 계속해서 가져다 준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지금 미츠히데가 공격하였다. 더구나 가신인 주제에 주인을 시해(弑害)하려고 하고 있었다. 소년의 마음에는 미츠히데라는 자가 악마(惡魔)같이 느껴졌다. 소년뿐만 아니라 궁정의 사람이라면 텐노우[天皇] 이하 누구나가 다 같은 생각을 - 저 불길을 보며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증오보다도 우선 공포 쪽이 더 컸다. 노부나가가 궁정의 아군인 이상,

 휴우가노카미는 필시 궁궐로 쳐들어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모를 뒤돌아 보며 그것을 몇 번이나 물었다.

 유모는 오오쿠라쿄우[卿]라고 하였다. 궁정의 여관(女官)들 중에서는 시가(詩歌)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미야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아니요. 아마도

 

 공격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군사들을 이끌고 온다고 하여도, 그것은 텐노우[天皇]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 고 유모는 반쯤 자신에게 납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믿고자 했다. 미츠히데는 무가(武家)이지만 공가(公家)만큼이나 교양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옛 것을 사랑하고, 옛 권위에 낭만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 궁정을 적으로 돌리겠는가?

 

 …”

 

 하고 유모는 미야를 안은 손에 힘을 담았다.

 

 가만히 계십시오. 이렇게 가만히 있는 한, 무가(武家)의 무리들이 여태껏 쿠게(公家)에 손을 댄 적은 없사옵니다. 침착하게 있으시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침착하고 담담함을 계속 지키는 것이 쿠게(公家)의 길이옵니다

 

 하고 유모는 말했다. 그랬지만 미야는 조용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으며, 오히려 유모 쪽이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낭패함을, 자신의 교훈으로 안정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교훈에 틀림이 있지는 않았다. 역사라는 것이 유모의 교훈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공가(公家)텐노우[天皇]와 궁정 신하 가 침착하고 담담하게 있는 한 권력을 놓고 싸우는 자들이 공가에 손을 쓴 예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가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공가를 자신들이 옹립할 수 있는지에 부심하였다. 유모는 미야에게 그것을 가르치고자 하였다.
  공가(
公家), 무가(武家)의 권력자들이 권력을 서로 빼앗기고 뺏고 있을 때, 어느 한쪽에 말씀을 주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항상 방관하며 어느 쪽에건 서지 마시길. 승패가 확정되고 승자가 살아남으면 그 살아남은 자가 맞이하러 올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 고 유모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미야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침묵하며 두 눈을 밝아오는 하늘로 열어두고 있었다. 유모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기에는 아직 미야가 너무 어렸으며, 거기에 그 정도의 교훈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미츠히데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지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1. ‘우리[瓜]’는 오이를 말한다. 우리미[瓜見]는 꽃구경이라 번역되는 ‘하나미[花見]’와 같은 개념으로, 오이 밭에서 시원한 오이를 먹으며 피서를 즐기는 것. ‘미야[宮]’는 황족의 존칭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위키에 따르면 1579년 2월 생. [본문으로]
  3. 역시 위키에 따르면 ‘周仁’는 ‘카타히토’라고 읽으며 8살 위(1571년 생)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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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8.06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황실의 핏줄이 원숭이의 유자가 됐을까요.. 잘 모르던 인물인데 이번 편을 통해서 좀 알아야겠습니다. 기대되네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06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잘 모르는 인물이어서, 이번에 번역하면서 좀 찾아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쿠게(公家) 쪽은 관심을 덜 가지고 있다 보니..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8.07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게들이 조총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면 메이지때까지 기다려야하니..(ㅎㅎ;) 이분도 조용히 전란을 구경하는 삶으로 일관했을 것 같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8.07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잘모르는 생소한 인물이라 다음 편도 기대되네요^^;

  5. Favicon of http://hyunby1986.tistory.com BlogIcon 턴오버 2008.08.16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바 료타로의 소설은 역시 재밌습니다. 저 슬램덩크 만화책 일본어판으로 샀어요. 지금 1권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어렵네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17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늦어져 정말 죄송합니다. -- __ ^^

    다메엣찌님//메이지 때라고 해도 쿠게 정도면 다들 멋진 정복을 입고, 본영에 앉아 있기만 하지 않았던가요? 메이지 때 전쟁이라고 하면 세이난 전쟁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서..

    NOA님//잘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사 전면에 나서질 못한 곳에 있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턴오버님//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슬램덩크라... 저도 처음엔 H2로 시작했지만, 젊은 학생들이 나오는 만화는 아무래도 슬랭어나 말줄임 말이 많은 편이라 조금 힘들수도 있습니다. 뭐 그만큼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요.(전 그 다음에 본 만화가 '변변찮은 청춘들(ろくでなしBLUES)'이라 H2에서 배운 것이 나름 도움 되더군요 ^^)
    처음엔 뭐든 힘들더군요. 건승을 기원합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에게는 평생에 걸쳐 결코 잊지 못할 억울한 일이 하나 있다.
 "마왕"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명사 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명령에 따라 아들인 노부야스[信康]와 마누라 츠키야마도노[築山殿]를 자신의 입으로 사형선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맹자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손으로 마누라와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이에야스에게도 엄청난 고뇌가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른 노부야스, 츠키야마 살해사건'은 어딘가 이상하다.
 우선 사건의 개략을 살펴보자.


 1560년 5월.
 오다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를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물리쳤다. 그리고 3년 뒤 천하통일을 목표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는다. 동맹의 증거로써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와 이에야스의 아들 노부야스의 결혼이 성립된다.

 그리고 1570년.
 이에야스는 그때까지 거성이었던 오카자키 성[岡崎城]을 아들 부부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새로이 지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10년 정도 흐르자... 이에야스의 처 츠키야마도노가 등장하여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 아들 노부야스 부부는 금슬이 좋아 사이에 딸 두 명을 두고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토쿠가와 가문의 장래를 걱정한 츠키야마가 노부야스에게 미녀를 보낸다. 노부야스는 그 미녀에게 빠졌을 뿐만 아니라 오카자키 성 밑 마을에서 유행하던 풍류춤[風流踊り]에도 흠뻑 빠져버린다.
 거기에 츠키야마도노도 타케다[武田] 측의 스파이 겐케이[減敬]를 통해서 타케다 측과 내통할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츠키야마도노의 모친은 노부나가가 죽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여동생이다. 노부나가에게는 처음부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그 때까지 무시 받고 있던 토쿠히메의 역습이 시작되었다(이번에는 노부야스의 부인 토쿠히메의 등장인 것이다). 토쿠히메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편지에 적어 그것을 사카이 타다츠구[酒井 忠次]를 통해서 애비 노부나가에게 보냈다. 편지는 12개조로 되어 있어 그 중의 2~3개를 거론해 보면,

-. 요즘 오카자키 성 밑 마을에는 춤이 유행하고 있는데 노부야스는 그 춤에 빠졌을 뿐만 아니고 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활로 싸 죽였다.
-. 노부야스는 토쿠히메에게 딸려 온 시녀 코지쥬우[小侍從]를 자주 고자질한다고 입을 찢어 죽였다.
-. 츠키야마도노는 타케다의 스파이 겐케이라는 의사와 밀통하고 있으며 오다 토쿠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을 망하게 해달라며 부탁하고 있다.
 이 편지를 읽은 노부나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사실관계를 사카이 타다츠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카이 타다츠구는,
 "12개 중 10개는 사실이옵니다"
 며 인정해 버린 것이다. 노부나가는 노발대발했다. 화를 냄과 동시에 이것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노부나가에게 는 적자로 노부타다[信忠]가 있다. 그러나 기량이 노부야스보다 훨씬 떨어지기에 내심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부타다와 노부야스의 시대가 된다면 노부타다는 노부야스의 쨉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호기로 삼아 노부야스를 죽인다면.... 이라고 생각하여,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와 츠키야마도노의 사형을 명했다.

 이에야스는 앙천했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 있어 시국이 어려운 이 때에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깰 수도 없어 눈물을 삼켜가며 부인 츠키야마를 죽이고, 다음에 아들 노부야스의 배를 가르게 하였다.
이상이 사건의 개략이다.....

◎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기대고 있었다?!

 이 사건은 거의 정사로 취급 받고 있으며, 이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진 토쿠가와 이에야스 관련의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고뇌하는 이에야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말로 이상한 점이 많다. 그 이상한 점을 거론해 본다.

 우선,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의 죽음을 명한 노부나가인데, 아무리 마왕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명사라고는 하여도 이때 이에야스가 어쩌면 반항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반항까지 안 가더라도, 부인과 아들의 죽음까지 명령하는 노부나가와는 더 이상 같이 못 해 먹겠다며 동맹을 파기해 올 것이라고 생각을 안 했을까??
 그랬다면 정말로 곤란한 것은 노부나가였을 터인 것이다. -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시 상황은 이에야스보다는 노부나가가 힘든 때였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를 선언해, 무(武)의 의한 천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는 이에야스 이외에 모두 적들뿐이었다.
 그 때문에 에치고[越後]의 우에스키[上杉]에게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를, 츄우고쿠[中国]의 모우리[毛利]에게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 秀吉]를, 탄바[丹波]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를, 이세[伊勢]에는 타키가와 가즈마스[滝川 一益] 등 장수들을 각지에 파견하고 있었다.

 이것 외에도 '나가시노 전투[長條合戦]'에서 타케다 측과 싸워 한번은 이겼다고는 하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 勝頼]는 살아 남아 반격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에치젠[越前]의 잇코잇키[一向一揆]가 힘을 길려왔지, 칸토우[関東]에서도 호죠 우지마사[北条 氏政]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은 이렇게 노부나가의 주위가 모두 적 투성이로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에야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있다. 당시 노부나가에게 적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를 다스리기에도 바빴다. 부하인 시바타 가츠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불화를 시작으로, 우군으로 편입한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 久秀]가 배반, 이어서 아라키 무라시게[荒木 村重]도 배반...이란 상태였다.
(상기는 세세히 따지면 오류가 있다. 그냥 대세가 그런 분위기였다…는 정도로 하자 – 역자 가필)

 노부나가에게 있어, 정말 기댈 수 있는 것은 이에야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에야스에 대해 딸이 푸념을 했다는 정도로 '처와 아들을 죽여라'며 잔인하고 위험한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덧붙여 노부야스의 기량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면서 호기라 생각해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이상하다. 딸인 토쿠히메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부야스는 춤에 빠진 얼간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백성을 죽이는 바보인 것이다. 기량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그 정도라면 가만 놔두어도 자멸할 터이다.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타다는 그런 춤에 빠진 노부야스보다 바보였던 것일까?

 이에야스가 둘을 죽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죽인 날짜도 이상한 것이다.
 위에서 적은 개략에서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둘을 죽여라'하고 노부나가가 명령한 것이 1579년 7월16일. 그리고 이에야스가 자객을 풀어 츠키야마도노를 죽인 것은 8월29일인데, 이 사이 한달 반이나 걸린 것이다. 시간이 너무 걸린 것은 아닐까?
 노부나가의 성격으로 본다면 말한 것은 곧바로 실행시켰어야 할 터이다. 더구나 그 이유가 [타케다와의 내통]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한달 반 동안이나 그대로 놔두고 있었던 것일까??
 더불어 이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를 한꺼번에 죽이지 않은 것도 이상한 점이다. 최종적으로 노부야스가 자인을 명령 받은 것은 츠키야마도노의 죽음에서 또 보름 정도 지난 9월 15일인 것이다.

◎ 이에야스에게 있어 처와 아들은 방해물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에는 이상한 점이 많은데 이 [이상함]은 사건에서 노부나가를 빼버리면 부드럽게 연결되어 간다.
 처음부터 노부나가의 명령 따위는 없었다. 노부나가의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후세의 창작인 것...이라고 해 보는 것이다.

 노부나가가 명령했다......고 쓰여 있는 것은 [徳川実紀[각주:1]], [改正三河風土記[각주:2]], [武徳編年集成[각주:3]] 등 전부 후세의 것으로, 또한 이에야스를 신군(神君)으로 쓰고 있는 자기네들끼리의 것들뿐이다. 이에야스에게 불리한 것들은 쓰여 있지 않다.

 노부나가에게 명령 받았다는 것은 창작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는 이에야스 자신의 뜻으로 죽였다...... 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에야스 스스로 사랑하는 처와 귀여운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사실 이에야스는 더 이상 츠키야마도노와의 사랑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1570년.
 이에야스는 그때까지의 거성인 오카자키 성을 노부야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신축한 하마마츠 성으로 옮겼다. 이때 츠키야마도노는 하마마츠로 가지 않고 노부야스와 함께 오카자키에 남아있었다. 이후 7년간 이에야스는 츠키야마도노와 별거 상태였던 것이다. 사랑이라고는 없었던 것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는 이에야스의 영지(領地) 왼쪽 반인 오카자키 성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오른쪽 반인 하마마츠 성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고....
 당시 노부야스는 21살로 이에야스는 36세. 가신들은 자연히 좌와 우로 나뉘어져 있었다. 결국,노부야스를 맹주로 하는 [오카자키 파]와 이에야스를 맹주로 하는[하마마츠 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이다. 파벌이 생겼던 것이다.

 적으로부터의 공격보다도 내부 분열을 우려한 이에야스는 기선을 제압해 오카자키 파의 중심인물 츠키야마도노를 죽였다. 그리고 오카자키 파 면면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주요인물들을 확인해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에 오카자키 파의 중핵인 노부야스에게 죽음을 명한 것이다. 귀여운 아들이라고 할 틈은 없었다. 파벌을 형성하여 영지를 둘로 나누려 했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기에, 귀여워했던 만큼 미움도 그 만큼 커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케다 신겐[武田 信玄]도 파벌항쟁 과정에서 아들 요시노부[義信]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다테 마사무네[伊達 正宗]도 동생 코지로우[小次郎]를 참살하였다.

 덧붙여 주요인물로 확인된 [오카자키 세 행정관(岡崎三奉行)]인 고우리키 키요나가[高力 淸長], 혼다 시게츠구[本田 重次], 아마노 야스카게[天野 康景] 등의 가신은 오카자키 파에 속하였기에 사건 후 푸대접을 받았고, 오카자키 파의 필두가로(筆頭家老)였던 이시카와 가즈마사[石川 數正]는 참을 수 없어 토쿠가와 가문을 떠나 히데요시에게로 도망친 것이다.
(이 부분은 오버. 대부분 이후에도 중요한 일들을 맡았으며 카이에키나 푸대접 등에는 각각의 사정이 있었다. - 역자 가필)

 이에야스를 신군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들끼리의 책이었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토쿠히메의 푸념, 노부나가의 잔인한 명령 등이 창작되어 눈물을 꾹 참으며 신군 이에야스는 사랑하는 처와 아들을...... 이 된 것이다.

 츠키야마와 노부야스의 살해는...... 이에야스 본인의 의사였던 것이다..

ps; 이 글은 1994년에 발간된 고토우 쥬이치[後藤 寿一]의 [뭔가 이상하잖아! 일본사(なんかヘンだぞ!日本史)]에 있던 것을 번역한 것입니다.예전에 하이텔 전클에 올렸던 것을 조금 손 봐서 올립니다. 조금 오버기가 있지만 그냥 그런 흐름이었다고 생각해 주시길... 세세하게 파고드면 양이 너무 많아져요~(그래서 그런 능력이 없어서 번역해서는 올리는 것입니다. --; )

  1. 에도 바쿠후의 공식 기록서. 19세기 전반 즈음 편찬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토쿠가와 가문의 역사를 기록. 19세기 전반 편찬. [본문으로]
  3. 이에야스의 전기. 18세기 중반에 작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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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zinil2 BlogIcon zinil2 2008.06.29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글이네요. 읽고 나서 끄덕끄덕합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6.29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9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zinil2님//처음 댓글 달아 주신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

    맹꽁서당님//덧붙여 비교적 예전에 생겼던 기록에는,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에게 죽이고 싶다고 청하자, 노부나가는 [いかようにも存分次第 - 맘대로 하셔]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노부야스가 반역의 생각을 가졌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며, 그 기록들에서는 이에야스 쪽에서 청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부야스를 오카자키에서 쫓아낼 때는, 오카자키에서 일하던 소위 오카자키 파들에게 등성을 금지시키고, 직접 끌고온 하마마츠의 하타모토들로 성을 점거했다고 하더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30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이 마쓰다이라 노부야스는 제법 당대엔 인기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생존설까지 뜨는걸 보면..(;)

    뭐 위키에도 이런 내용이 있긴 하던데 세키가하라에서 노부야스를 떠올리는 이에야스의 모습도 있고 해서 진위가 불분명하다.. 뭐 이런식으로 얘길 하더군요. 여기 관한 괜찮은 원서를 시간날때 한번 찾아보곤 싶지만서리..(요새 이런저런 공부 준비로 바빠서;;)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30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카와(오카자키) 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순리대로 라면 노부야스가 쇼우군이었을 테니까요)

    http://ja.wikipedia.org/wiki/%E5%BE%B3%E5%B7%9D%E5%AE%B6%E5%BA%B7%E3%81%AE%E5%BD%B1%E6%AD%A6%E8%80%85%E8%AA%AC

    참고로 이 이에야스 영무자 설의 노부야스 항목의 묘소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더군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7.01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한 노부타다... 괜히 노부야스랑 비교 되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노부나가가 죽였다는 설이 인정받고 있겠죠? ㅎ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2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부타다의 굴욕?? ^^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 그런 것에 대해 다룬 책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대세가 노부나가 명령설인 것 같습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xjapan1231 BlogIcon 나오 2008.09.28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카자키슈와 하마마츠슈 간의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라고 하죠 노부야스는.. 그리고 지금은 노부야스에 대한 모반(타케다와의 내통)사실자체도 그리 신빙성이 없고 말이죠.. 무엇보다 고도쿠가 노부나가에게 보낸 12조항 자체도...ㅡㅡ;;;;;;;;;;;;; 여튼 너구리놈 잔악하기 그지없는게 나중에 이것또한 신군전설의 하나로 그 죄를 모두 노부나가와 사카이에게 뒤집어씌운..ㅡㅡ;;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9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토쿠가와 가문이 천하를 잡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을 것 같습니다.
    (전 노부나가가 노부야스를 죽인 이유 중에 가장 웃긴 것이....노부타다보다 노부야스가 뛰어나서 죽이려고 했다는 거 더군요)

  10. 골룸 2009.10.28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하이텔 전클이라... 추억의 이름이네요...

一.

 유우키 히데야스라는 젊은이는 처음부터 토요토미 가문[豊臣家] 사람이 아니었다. 1574년 토쿠가와 가문[徳川家]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이다. 이 젊은이만큼이나 어두운 사정 속에서 태어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즈음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기후[岐阜]를 근거지로 하여 킨키[近畿]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토쿠가와 가문은 오다 가문 맹하(盟下)의 다이묘우[大名]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이제 서른을 조금 지났을 뿐이었다.

 토오토우미[遠江] 하마마츠[浜松]가 – 이에야스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거성(居城)이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정실인 츠키야마도노[築山殿]는 이에야스의 그 전 거성인 미카와[三河] 오카자키[岡崎]에 머물면서 이 새로운 성으로 가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때때로 고향에 돌아오듯이 오카자키 성(城)에 돌아왔던 것이었다.

 오카자키 성(城) 성주의 위치에는 적자(嫡子) 노부야스[信康]를 어린 나이지만 앉혀놓고 있었다. 노부야스는 부친과 따로 살며 모친과 함께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모친 츠키야마도노는 생활 면에서 허세가 있는 여성으로, 그 주변에는 많은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시녀들 중에서,
 [오만(おまん)]
 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오카자키 성 밖
치리후[池鯉鮒] 근방에 있는 시골 신사(神社)의 딸로, 출신 성분이 좋지는 않았다. 거기에 츠키야마도노를 모시며 세월을 보내어 나이도 한창때가 지나고 풋풋함의 고개를 넘어 이제는 소녀라고 하기에 조금 창피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오만이 22~3일 즈음의 일일 것이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오만은 혼기를 놓친 채 츠키야마도노를 모시는 시녀로써 평범한 인생을 보냈음에 틀림이 없다.

 이에야스는 오카자키 성(城)에 돌아오면, 매일 밤 안채로 건너갔다.
 당연했다. 안채가 이에야스의 가정인 것이다. 안채의 주인은 정실 츠키야마도노이며,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시녀들은 모두 츠키야마도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이에야스는 안채로 건너가는 복도에서 오만에게 눈이 가 그녀를 품었다.
 오만이 이에야스에게 안긴 장소에 대해서 역사도, 오만도 침묵하고 있다. 필시 츠키야마도노가 거주하는 안채 건물은 아닐 것이다. 츠키야마도노는 질투심이 강하였고 이에야스 역시 항상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채가 아닌 성내의 다른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어쨌든 이에야스는 이 오만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시녀에게 허리를 주무르게 하고 있었다. 어쩌다 그게 오만이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더구나 이에야스는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한여름에 조금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오이라도 먹는 듯 별다른 생각 없이 오만과 육체관계를 맺었다. 그랬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그 후, 예를 들면 먹은 오이의 색이나 모습 등을 잊어버리듯이 오만을 잊었다. 모든 것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 별다름 없음이 별다름 없는 채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 단 한번의 기회로 오만이 임신한 것에 있었다. 오만은 그 사실을 이에야스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 알릴 기회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오만의 직접적인 주인은 츠키야마도노이며, 오만은 그녀의 거처에서 일했고, 평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다 그 거처나 복도에서 이에야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있어도 동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고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에야스는 25리(里[각주:1]
) 동쪽에 있는 하마마츠에서 항상 일하고 있어 오카자키 성(城)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좋을까…’
 하고 오만은 굉장히 심각하게 그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관습이 계속 그녀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었다.

 수개월이 지났다.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그것이 밝혀졌다. 임신한 모습이 여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츠키야마도노에게 알린 사람이 나왔던 것이다. 츠키야마도노는 오만을 불렀다. 무릎 근처까지 불러서는,

 “묻노니 너의 몸은 홀몸이 아닌 듯 하구나”

 하고 내장까지 파고드는 듯한 시선으로 오만을 째려보며 심문이 개시되었다. 부친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도리에 어긋난다면 죽여버려도 상관 없었다.
 츠키야마도노가 품고 있던 의심 중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부친이 이에야스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라면 문제가 간단치가 않았다.

 츠키야마도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이미 15살이 되어 있는 토쿠가와 가문의 적자 노부야스였다. 토쿠가와 가문에는 그 외에 아들이 없었다. 만약 첩에게서 둘째가 태어난다면 가문이 번창할 수는 있겠지만 츠키야마도노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 는 사정도 있지만 무엇보다 츠키야마도노를 미치게 한 것은 남들보다 훨씬 강한 그녀의 질투심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벌을 내리겠다!”

 하고 낯빛을 바꾸어 소리지르면서 피고를 협박하였다. 오만에게 있어 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이에야스가 부친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밖에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오만은 외쳤다.

 “이 씨는 주군의 것입니다”

 고 말했을 때, 위에서 내려다 보던 츠키야마도노의 얼굴은 더욱 섬뜩하게 변하였고 일순 침묵하며 잠시 궁리하는 듯했다. 츠키야마도노는 생각했다.
 ‘태내에 있는 아이까지 한꺼번에 죽여버리자’
 이런 경우, 죽이는 것이 가장 좋았다.

 “거짓말 하지 말아라! 네 년이 미쳤구나!”

 고 츠키야마도노는 더욱 큰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께서 너처럼 흙내 나는 계집에게 정을 주실 리 없다. 너는 미친 것이 아니면 거짓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몸으로 듣겠다. 너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여 진실을 말하게 하겠다 - 고 츠키야마도노는 말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 죽여버리자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지혜라고 말해도 좋았다.

 츠키야마도노는 시녀들에게 명하여 오만의 수족을 잡게 하고, 그 옷을 쥐어 뜯어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 사지를 짐승처럼 새끼줄로 묶어 성 안에 있는 나무숲에 끌고 가서 나무의 가지에 매달았다.
 - 죽어라~
 시녀들은 때릴 때마다 외치며 부러진 활로 그 배를 채찍으로 때리듯이 때렸다. 오만은 이미 6개월의 임신부로, 어째서인지 보통보다 배가 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쌍둥이가 들어있었다. 때릴 때마다 마른 북을 치는 듯이 묘한 소리가 났다. 오만은 이미 생명체로서의 아름다움도 위엄도 없이 단지 허공에 매달려 배를 동성(同性)에게 계속 매질 당할 뿐이었다. 필시 태내의 아이는 유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찬 바람도 맞았다. 여자들은 숲을 떠났고 실신한 오만만이 허공에 떠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계절이 여름이라 얼어 죽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밤이 되자 모기가 달려들었다. 그녀는 실신에서 깨었다.

 자기 몸의 이런 비참함에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통곡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남아있던 것도 다행이었다. 그 울음 소리가 다른 건물에까지 들렸다. 거기에서 숙직하고 있었던 것이 혼다 사쿠자에몬 시게츠구(本多 作左衛門 重次)였다.

 [오니사쿠자(鬼作左)][각주:2]
 라고 불리는 토쿠가와 가문의 명물(名物)이었다. 이미 전편에서도 히데요시의 생모 오오만도코로[大政所]의 숙소 주위에 태워 죽이려고 마른 장작을 쌓아 감시했던 남자로 등장하였다. 충실한 개와 같이 자신의 주가(主家)만을 생각하고 더구나 융통성이 없었으며 굉장히 강하다는 – 마치 표본과도 같은 미카와[三河] 사나이였다. 이 사쿠자가 숲에서 나는 소리를 수상히 여겨 짧은 창[手槍]을 꼬나 쥐고는 그 주변을 탐색하여 곧 거기에 매달려 있던 고깃덩이를 발견했다. 소리는 거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너는 오만이 아니냐?”

 사쿠자도 이 시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만의 큰어머니는 예전에 토쿠가와 가문의 안채에서 일했던 여성으로, 지금은 하마마츠 성 밑에서 살며 사쿠자의 친척을 남편으로 두고 있었기에 자연히 사쿠자는 친족 뻘인 오만을 알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에야스의 씨를 품고 있다고 한다.

 “설마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이 남자는 몇 번이나 확인하였다. 미카와 사람은 성실하지만 의심이 많다. 그것을 결국 납득한 후 사쿠자는 오만은 나뭇가지에서 끌어내려 풀 위에 눕혔다. 새끼줄을 풀어 주고는 남자 것이지만 옷도 주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그날 밤은 사쿠자의 독단으로 성에서 내보내 부하 세 명을 붙여서는 오만을 자기 큰어머니 집에 맡겼다.

 이에야스는 이 날 오카자키에 있었다. 사쿠자는 그 다음날 등성(登城)하여 곧바로 이에야스의 옷깃을 붙잡고는,

 “오만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없으십니까?”

 하고 확인하였다. 이에야스는, 그가 여러 차례 그러했듯이 표정을 숨겼다.

 “기억에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오만이 어떻게 되었는가?”

 “오만이 임신하였습니다”

 “설마!”

 라는 감정을 이에야스는 주체할 수 없었다. 사랑했다는 마음의 기억도 없었으며, 몇 날 밤을 함께 보냈다는 몸의 기억도 없었다. 단 한번 그냥 건드렸을 뿐이었고 얼굴조차도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으며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 정도로 희미한 상대가 갑자기 주군의 아이를 낳는다, 주군이야말로 부친이라는 말을 느닷없이 들어서는 아무런 감동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강제적으로 떠맡김 당하는 듯한 방식에 불유쾌한 감정까지 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두마”

 하고 이에야스는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 이에야스에게 오만을 처벌한 츠키야마도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해서 떠들썩하게 하지 않는 한 공식적인 것이 되지 않을 것이며, 공식적인 것이 되지 않는 한 그 아이는 토쿠가와 가문의 씨라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2월 8일. 오만은 쌍둥이를 낳았다. 하나는 질식사했으며, 하나는 이불 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남자 아이였다.
 사쿠자는 그 소식을 하마마츠의 이에야스에게 알렸다. 이에야스는 토쿠가와 가문의 문장(紋章)이 들어간 아이 옷을 내려 약식이지만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만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또한 생모와도 만나지 않았다. 깊은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과정과 사태가 아무래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어떠한 마음의 움직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군의 아이이십니다. 이름을… 붙여 주십시오”

 하고 사쿠자는 요구했다. 아이의 이름을 그 부친이 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야스는 그러나 생각하는 것도 귀찮은 듯 했다.

 “어떤 얼굴인가?”

 하고 사쿠자에게 물었다. 사쿠자는 붓을 들고 그 아기의 얼굴을 그렸다. 처참하게 못 그린 그림이었다. 어딘가 메기와 닮았다. 이에야스는 그 그림을 받아서는,

 “이건 동자개(ギギ)다”

 하고 중얼거렸다. 동자개(기기, 黄顙魚)라는 것은 미카와[三河] 근방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기바치’, ‘게바치’, ‘긴교’라고도 하며 메기의 일종이지만 메기보다는 몸통이 가늘다. 수염이 8개이다. 지느러미에 가시가 있어 찔리면 굉장히 아프고 이것을 잡으면 공중에서 ‘기기’하고 운다. 미카와 근방에서는 통째로 잘라서 된장국에 넣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오기이(於義伊), 라고 해라”

 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익살을 느껴서 붙인 것이 아니라 이에야스에게 있어서 이 출산은 그 정도밖에 아니었고 실제로는 조금 귀찮았을 뿐이었다. 사쿠자는 그 이름을 가지고 성 밑에 있는 상가(商家)에서 산후 조리하고 있는 오만에게 가서, 그것을 알렸다.

 “[오기이]님 입니까?”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오기이’라고 불리며, ‘오기마루(於義丸)’라고도 불렸다. 정말 물고기와 같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기마루는 3살이 되었다.

 그러나 토쿠가와 가문의 아들이 되어 있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사쿠자가 키운 것이 되어 버렸는데, 이에야스의 버젓한 둘째 아들이면서도 토쿠가와 가문의 가족이 되지는 못하고, 부자 대면도 아직 행하지 못한 이 불행한 아이를 사쿠자는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 궁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토쿠가와 가문의 적자인 노부야스의 동정을 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적자 노부야스는 이에야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거기에 젊은이다운 정의감이 있었다. 사쿠자는 이 때문에 일부러 오카자키까지 가서 사정을 호소하였다. 생각했던 대로 노부야스는 동정심을 보였다.

 “그런 동생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모친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노부야스는 말했다. 모친인 츠키야마도노가 알게 된다면 오기마루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까지, 이 20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는 알고 있었다. 모두 자신에게 맡기라고 노부야스는 말했다. 노부야스는 정의감을 자극 받아 꽤 흥분해 있었다.

 노부야스는 연극을 계획했다. 요 몇 일 내에 이에야스는 기후의 노부나가에게 호출 받아 하마마츠를 출발하여 도중에 이 오카자키 성(城)에서 하룻밤 머문다. 그 때 부자 대면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날이 왔다. 이에야스는 그 숙소인 오카자키 성(城)에 입성하여 적자이자 성주인 노부야스와 일실에서 대면하였다.

 “건강해 보이니 정말 기쁘구나. 그 외에 별다른 일은 없었느냐?”

 고 이에야스는 인사를 대신하여 말했다. 노부야스는 눈을 치켜 뜨고 이에야스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썹에 노기가 서려있었다. 이에야스는 그 시선에 당혹했고 조금 상대방의 기분을 풀기 위해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느냐? 별다른 일이라도 있느냐?”

 “대단히”

 하고 노부야스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방의 복도 쪽 문이 달캉달캉하며 누군가가 열려고 하였다. 더구나 그 누군가가, 말했다.

 "아빠~, 아빠~"

 꼬꼬마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이에야스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노부야스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또 하나 이에야스에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사쿠자가 키우고 있는 오기마루였다. 이에야스는 곧바로 그것을 헤아려 노부야스의 얼굴을 보았다. 노부야스는 따지는 듯한 시선으로 이에야스를 응시한 채였다.

 “알았다”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가서는 문을 열어 주었다. 복도에는 꼬꼬마가 부들부들 떨면서 이에야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그것을 안아 올려 방으로 돌아와서,

 “내가 너의 아빠다”

 라고 무릎 위에 있는 꼬꼬마에게 말했다. 꼬꼬마는 울지 않고 이에야스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 때 노부야스는 고개를 숙이며,

 “정말 축하 드리옵니다”

 라고 말하며 이 장면의 의미를 축복하였고, 그렇게 하여 이 대면을 공식적인 것으로 하였다. 이 순간부터 오기마루 – 후에 토요토미 가문의 양자가 되는 유우키 히데야스는 이에야스의 둘째 아들이 되어 버젓한 토쿠가와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Ps; 내가 너의 아빠다 - 라고 했을 때 세찬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1. 1리는 약 3927미터. 25리는 약 98킬로미터. [본문으로]
  2. 당시 오카자키 행정관료 세 명[岡崎三奉行]를 일컬어, 仏高力、鬼作左、どちへんなきは天野三郎兵衛(부처님(관대한) 코우리키, 저승사자(엄격한) 사쿠사, 치우치지 않은 아마노 사부로베에)...라고 했다 한다. 저 중 저승사자 사쿠사[鬼作左]가 혼다 시게츠구이다. 전쟁터에서는 괴물같은 활약을 펼쳤으며, 법에는 엄격하고 강직했음을 평가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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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려 조선우표(;)군요.. 다난했던 ?은 삶을 살았던 사람 치고는 희극적 시작이니 보기 좋군요(;;__)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1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편부터는 연속되는 우울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2 1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 참~ 스포 금지라니까요~
    (...이런 것도 스포일러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22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조의 거부반응은 정말 적절한 링크입니다'-^)b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22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너무 재미를 반감시킨것 같아 얼른 수정했습니다
    물론 보신 분들은 다 보셨겠지만요.. 그런 분들은 죄송합니다 (-_-)(_ _)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헤헤 감사 (굽신~굽신~)

  7.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7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키 히데야스가 왜 그렇게 미움받았는지 몰랐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가는군요. 남자는 출산을 하지 않기에 기억하는건 엄마되는 여자의 몸 뿐이니 여자를 사랑하는만큼 아이를 사랑하게되겠군요. 유키와 그 어머니의 일생이 너무 가엾군요. 서자의 인생이란 이런것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