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후사가 젊은 무사들의 질문에 답한 전쟁터에서의 비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노부토라[信虎], 신겐, 카츠요리[勝頼] 삼대에 걸쳐서 타케다 가문[武田家]를 섬기며 수 많은 무공을 세워 온 역전의 용장답게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이다.
-. 아군이 겁을 먹고 있는 날에 혼자 나아가서는 개죽음한다.
-. 창끝이 올라간 적은 약한 적, 내려가 있는 적은 강적이다.
-. 전쟁을 많이 경험한 무사와 친해져서는 그 사람을 본보기로 삼을 것
처음 노부후사는 '쿄우라이시 민부 카게마사[教来石 民部 景政]'라는 이름이었다.
이 즈음 노부후사는 시나노[信濃]의 스와 신사[諏訪神社]에서 매일 참배하였는데, 실은 여기에 어떤 목적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관(神官)과 친해져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신관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부후사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카이[甲斐] 타케다 가문의 미천한 놈입니다만 군역(軍役)에 끌려가는 것이 싫어 스와 명신[諏訪明神]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의 은혜 덕분에 지금은 군역에 끌려가는 일 없이 이렇게 있습니다.”
신관은 이 종군 기피의 겁쟁이를 눈 여겨 보았다. 당시 시나노[信濃]의 명문 스와 씨[諏訪氏]는 카이[甲斐]와 적대적인 관계였다. 신관은 이 겁쟁이를 이용하여 타케다 가문의 정보를 캐내려 하였던 것이다.
노부후사는 조금씩 타케다 가문의 내부 사정을 흘렸다. 둘은 술을 함께 마시는 관계까지 되었다.
어느 날, 노부후사가 술을 많이 마셔 취해 잠이 들어버리자 신관은 은밀히 그의 작은 칼[脇差]을 살펴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칼날은 녹 슬어 있었다. 소지품에도 이상한 것이 없었다. 신관은 완전히 노부후사를 믿게 되었다. 나중에는 병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 신사에 속하도록 권하였다.
노부후사의 계략은 성공이었다.
이리하여 순조롭게 적지에 잠입한 그는 3년 동안 스와 신사령(領)에서 생활하였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스와에 관한 모든 전략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것이 타케다의 스와 공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바바 미노노카미 노부후사[馬場 美濃守 信房]로 이름을 고침 다음부터는 항상 신겐의 선봉이 되어 싸웠다.
스루가[駿河]의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 氏真]를 멸망시켰을 때 신겐은,
“모두들 서둘러 이마가와의 저택에 가서 거기에 있는 보물들을 싹 긁어와라!”
고 명령하였다.
바바 노부후사는 그것을 듣자마자 단 혼자서 말을 달려 이마가와 저택으로 가서는 아군 병사들이 보물 약탈을 하러 오기 전에 저택에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 노부후사는 타케다 가문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약탈자라는 오명을 거부한 것이다.
1572년 신겐이 상경하여 천하에 패(覇)를 외치고자 하여 오다[織田]의 전선 기지인 미노[美濃]의 이와무라 성[岩村城]을 공격하였을 때 노부후사의 능란한 전술이 빛을 발했다.
오다 군 1만여의 대군을, 불과 800명의 어린진(漁鱗陣)을 이용하여 농락한 것이다 1. 어린진이라는 것은 생선의 비늘과 같은 진형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 인(人)자 모양의 중앙부로 적 중앙을 돌파하는 전법을 말한다.
이러했던 노부후사도 1575년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의 패배에서 전사를 하였다.
[바바 노부후사(馬場 信房)]
카이[甲斐] 쿄우라이시[教来石] 출신. 노부하루[信春]라고도 했다. 타케다 노부토라[武田 信虎], 신겐[信玄], 카츠요리[勝頼] 삼대에 걸쳐 타케다 가문[武田家]을 섬겼다. 카츠요리를 받들고 싸운 나가시노의 전투[長篠の戦い]에서 패하여 전사. 62세.
- 타케다 가문[武田家] 만세의 군기물 갑양군감(甲陽軍鑑)에만 나오는 이야기라 신빙성은 의심스럽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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