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생활을 할 때 고생을 많이 하였기에 백성이나 어민(漁民)들에게까지 잘 보살폈고, 언제나 따스한 미소를 잃는 일이 없었기에 여자 아이들조차 친근감을 가졌다고 한다.
가신(家臣)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더욱 헌신적이었다. 부상 당한 자는 손수 간호를 하였으며, 싸우다 죽은 이의 육친에게는 식록(食祿)을 늘려주었고, 명복을 빌며 직접 불경(佛經)을 읽었다. 이 때문에 휘하 병사들은 츠네히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고 씨[尼子氏]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조부(祖父) 모치히사[持久] 때 부터이다.
모치히사는 이즈모[出雲]의 슈고[守護] 쿄우고쿠 씨[京極氏]에게 중용 받아 슈고다이까지 출세해서는 토다갓산 성[富田月山城]을 본거지로 삼았다.
츠네히사의 부친 키요사다[清定]가 뒤를 이어서는 활발히 영토를 넓혀 미호노세키[美保ノ関]를 손에 넣음으로써 아마고 씨의 재정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즉 이 세키[関] 3의 세키센[関銭] 4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것이지만 횡령하였다.
강성해졌던 아마고 씨는 츠네히사의 시대가 되자 일시 몰락한다.
아마고 씨가 너무도 강대해 졌기에 슈고[守護] 쿄우고쿠 씨가 미사와[三沢], 엔야[塩谷], 미토야[三刀屋] 등의 호족을 꼬드겨 츠네히사를 공격시켜다. 츠네히사는 슈고다이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토다갓산 성에서 쫓겨난 츠네히사는 이곳 저곳을 방랑하게 된다.
눈보라가 치던 어느 날 밤. 츠네히사는 옛 신하 야마나카 카츠시게[山中 勝重] 5의 집에 방문한다. 얼굴을 다 가리는 삿갓[深編笠]을 쓰고, 살을 에이는 추위에도 얇은 마(麻)로 된 옷 한 벌이라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미 굶주림과 추위로 삐쩍 말라있었다. 야마나카는 젊은 주인의 몰락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불을 쪼이게 하고 술을 내와 위로하였다.
그러나 츠네히사의 의기는 드높았다. 몸을 녹이면서 토다갓산 성 탈환 계획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 야마나카 일당의 협력덕택에 아마고 재기의 발판이 되는 토다갓산 성 탈환이 가능하게 된다.
1485년의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목적지는 예전의 본거지 토다갓산 성이었다. 성주는 츠네히사에게서 슈고다이의 직책과 성을 뺏어간 엔야 카몬노스케[塩谷 掃部助]였다. 아마고 일당은 밤의 어두움을 이용해서 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천연의 요해(要害)였지만 예전엔 자신의 성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잠입에 성공하였다.
다음 날은 설날이었다.
아마고 츠네히사의 노림 수는 신년 축하 행사였다. 츠네히사는 이미 신년 축하에 흥을 돋구는 사당패 가마[賀麻] 일당을 포섭해 두고 있었다. 성 안에서 큰 북(太鼓)이나 작은 북(鼓)의 박자에 맞추어 춤이 시작되자 그와 동시에 갑자기 성 안의 곳곳에 숨어 있던 아마고의 군사들이 일제히 불을 지르며 공격하였다. 춤을 추고 있던 가마 일당도 아마고 측 군사들의 함성을 듣자 준비해 두었던 갑옷으로 갈아입고는 성병(城兵)들에게 칼질을 퍼부었다. 아마고의 기습은 보기 좋게 성공하여 불과 100여명으로 성병 700명 이상을 물리쳤다.
이렇게 토다 성을 탈환한 후 츠네히사는 최대의 강적인 미사와 씨[三沢氏]를 물리치는 것에도 모략을 이용하게 된다.
중신(重臣)이 된 야마나카 카츠시게에게 일부러 누명을 씌어 미사와 씨에게 도망치게 만든 것이다. 야마나카는 일년간 미사와 씨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이제 미사와는 야마나카 카츠시게를 완전히 신용하였. 야마나카 카츠시게는 “츠네히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였건만 사소한 죄를 하나 지었다고 저를 쫓아내어 여기로 왔는데, 츠네히사는 제 부인과 자식, 늙은 모친마저 감옥에 가두고 학대하고 있습니다. 억울해 견딜 수 없으니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미사와는 정예 500명을 야마나카에게 맡겼고, 그는 이 500명을 이끌고 토다 성으로 데리고 갔다. 토다갓산에 도착한 야마나카 카츠시게는 성 안에 있는 자기의 옛 부하들에게 연락을 하여 내응하게 만든다며 사라졌고, 사라진 사이 츠네히사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와 미사와의 병사들을 격파하였다.
아마고 씨는 이후 각지에 진출하여 산인과 산요우[山陽]의 11개 지역[国]에 위세를 떨치는 거대 세력으로 발전해 간다. 그러나 증손자인 요시히사[義久]의 대가 되어 모우리 모토나리[毛利 元就]에게 멸망 당한다.
[아마고 쓰네히사(尼子 経久)]
키요사다[清定]의 아들. 이즈모[出雲], 오키[隠岐], 이와미[石見], 이나바[因幡], 호우키[伯耆]를 영유(領有). 모우리 모토나리도 한때 휘하에 두었다. 1541년 죽었다. 84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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