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 直茂)
1618년 6월 3일 병사(病死) 81세
1538년 ~ 1618년
의형 1인 류우조우지 타카노부(龍造寺 隆信)를 섬기며 활약하지만 타카노부가 전사한 후 그의 아들 마사이에(政家) 휘하에서 히젠(肥前)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 秀吉),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를 섬기면서 기반을 다져 후의 사가 번(佐賀藩)의 기초를 쌓았다.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류우조우지 가문의 가독(家督)을 가신인 나베시마 카츠시게(勝茂)가 상속하여 명실공히 [나베시마 사가 번(藩)]이 성립된 것은 1607년이다.
카츠시게의 아비인 나오시게는 이 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자식이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70세였다. 그 후 81세까지 산다.
그의 일생은 [기다림]의 인생이었다.
무리해서 덜 익은 과일을 따지 않고 [익어서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류우조우지 일문(一門)이나 나베시마 가신단(家臣團)을 시작으로 히젠(肥前), 치쿠젠(筑前)등의 호족들이 복귀하라고 사정에 사정을 하고 나서야 사가 성(佐賀城)에 가까운 카마치 성(蒲池城)으로 돌아왔다.
그는 과정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인간이었다.
오래 산다는 것
은거 후의 일이다.
나오시게가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다. 부하 중 하나가,
“이 마을에는 90살이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오래 산 노인이니 만나서 축하해 주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
하고 권했다.
“굉장히 불쌍한 인간이군. 오래 살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자식이나 손자, 친한 친구나 지인들과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 기분을 생각해 보게.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노인에게 정말로 축하할 일인지를”
나이를 많이 먹는 것에 존귀함과 경하스러운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가 성(城)의 개수(改修)가 끝날 즈음. 카츠시게(사가 초대 번주)가 부친인 나오시게에게 성 안내를 한 적이 있다. 안내를 받은 후 옆에 있던 측근에게 살짝 말했다.
“카츠시게는 적이 공격해 왔을 경우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여차했을 경우 배를 가를 장소를 잊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할복을 무사의 미학으로써가 아닌 매일매일 생활 속에서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종언(終焉) 중에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늙은 무장의 유머러스한 경고였다.
나뭇잎 그늘의 꽃
[나베시마 카가노카미 토요토미노 아손 나오시게(鍋島 加賀守 豊臣 朝臣 直茂)]
나오시게가 살아 있을 때, 은거소에서 자기 자신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 석탑에 쓰인 문자이다. 2
나오시게는 히데요시의 신뢰가 두터웠다.
“확실히 타카노부라는 사람은 명장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면 나오시게에게 국정(國政)을 맡겼기 때문이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다”
라는 의미의 말을 할 정도였다.
류우조우지 사가 번(藩)을 대신하는 나베시마 사가 번(藩)으로 현실 상의 이행을 처음으로 공인한 것도 히데요시였다.
이해(1589년)의 1월에 나오시게는 종오위하(從五位下) 카가노카미(加賀守)에 임명받았다. 물론 히데요시의 주청(奏請)에 의한 영진(榮進)이다. 이때 그 때까지의 이름인 [노부나리(信生)]에서 [나오시게(直茂)]로 고쳤다.
이 문구를 돌에 새겨 남기려고 그가 결심한 때 - 천하는 토쿠가와 2대 쇼우군(将軍) 히데타다(秀忠)가 다스릴 때였다.
나뭇잎 그늘에 떨어져 있는 꽃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에 그리던 당신을 만난 듯한 기분이더이다
葉隠れに 散りとどまれる 花のみぞ 忍びし人に 逢ふ心地する
라는 [하가쿠레(葉隠 3)]라는 책 이름의 유래라고 알려진 사이교우(西行 4)의 시구(詩句) 그 자체가 지장(智將) 나베시마 나오시게 일생의 좌우명이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 류우조우지 타카노부의 어머니가 나오시게의 아버지와 재혼하였다. [본문으로]
- 여담으로...그가 죽은 후,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는 “鍋島加賀守'藤原'朝臣直茂”로 ‘토요토미(豊臣)’라는 본성대신 '후지와라(藤原)'라는 본성이 붙어있는데, 나베시마 씨(氏)는 본디 우다 겐지(宇多 源氏) 사사키(佐々木)씨(氏)의 후예이기에, 제대로 하려면 “鍋島加賀守'源'朝臣直茂”라 해야 한다. 이리 된 데에는 바쿠후의 눈을 의식한 결과이겠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던 듯 하다. [본문으로]
- 무사도라는 것은 죽는 것을 깨닫는 것(武士道と云ふは死ぬ事と見つけたり)’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사가 번(藩)의 무사 교육서. [본문으로]
- 1118년 ~ 1190년. 승려, 시인(和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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