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

일본사 이것저것 2011.10.17 07:58 Posted by 渤海之狼

각지를 전전하던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가 1568년 쇼우군이 되자, 그때까지 키나이[機内] 지방을 장악하고 있다가 쫓겨났던 미요시삼인중[三好三人衆]은 재탈환을 노리며 쇼우군 요시아키가 임시로 거처를 삼고 있던 로쿠죠우[六条]의 혼코쿠 사[本圀寺][각주:1]를 1569년 1월 4일 공격합니다.

1569년 1월6일 자신이 옹립한 쇼우군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기후 성[岐阜城]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자신은 단기(單騎)로 쿄우토[京都]를 향합니다. 하필 눈이 엄청나게 와 생각만큼 나아가질 못하던 중 노부나가는 오다 군(織田軍)의 물자를 수송하던 운송업자들이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노부나가는 운송업자들이 다투고 있는 곳에 가서 “어째서 다투느라 가질 않고 있는가?”라고 물어, 그 이유가 서로 자기 말에 배당된 물품이 더 무겁다는 등이 이유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부나가는 각자의 말들에 짊어진 물품들을 내리게 한 뒤 직접 짊어진 뒤 “똑같은 무게다. 서두르길 바란다”며 진격을 재촉합니다.

이때의 모습을 신장공기는

운송업자들이 물품 배당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말에서 물품을 내리게 하여 양쪽 다 살펴보신 뒤, “같은 무게다. 서둘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봉행(奉行)인 자가 어느 한쪽만 편들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셨기에 하신 일이다.
馬借の者も、御物を馬に負候とて、からかいを仕り候。御馬より下りさせられ、何れも荷物一々引見御覧じて、同じおもさなり、急ぎ候へと仰せ付げられ候。是れは奉行の者に依怙贔屓もあるかと、おぼしめしての御事なり。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 되시는 분이 자주 쓰시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이렇게 직접 해본 뒤 해결책을 내놓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뿐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는 비웃음만 살 뿐이라는 것은 어째서 몇 년이 지나도록 이해하지를 못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 여담으로 당시는 '혼코쿠 사[本國寺]'라고 '코쿠'의 글자를 國자로 썼으나, 에도 시대에 미토 코우몬[水戸黄門]으로 유명한 토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圀] 생모의 추선공양을 한 뒤 미츠쿠니의 보호를 받아, 이후 혼코쿠의 '코쿠' 자가 圀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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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일본판 >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난세를 위해서 태어난 듯한 인간이다. 출신이 수수께끼이며 더불어 악역무도(惡逆無道)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1570 4.

 쇼우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의 니죠우(二条) 어소(御所)에서 성대한 사루가쿠(猿楽)의 공연이 행해졌을 때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가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에게 한 사람의 노장(老將)을 소개했다. 그것이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이 분은 보통의 인간으로써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세 번이나 하였지. 우선 주가(主家)인 미요시(三好) 가문을 멸망시킨 것, 다음으로는 쇼우군()을 살해하였고 거기에 나라(奈良)의 대불전(大佛殿)을 불태워 버렸다

 노부나가의 거리낌 없는 막말에 주변은 일순 긴장했다고 하는데 이 말에는 히사히데가 걸어온 길이 축약돼 있다.

 그러나 [분별(分別), 재각(才覺)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무용(武勇)은 무쌍(無雙)하며 또한 굉장히 욕심이 많았다]는 동시대 사람의 평도 있다.

 

 근세 성곽 건축의 선구자로써도 이름이 높다.

 1567년에 쌓은 나라(奈良)타몬야마(多聞山)성(城)은 외국인 선교사도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근세 성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흰 벽에 주택 형식의 타몬야구라(多聞櫓[각주:1])는 히사히데의 타몬야마 성에서 처음 만들어졌기에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성 안에는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진 벽화가 있는 호화로운 쇼인(書院[각주:2])도 있었다고 한다.

 

 히사히데의 주인 미요시 쵸우케이(三好 長慶)도 또한 난세의 인물로, 주가인 호소카와(細川) 가문을 하극상에 의해 제치고 올라서서는 쇼우군까지도 압도하는 실력자였는데 그 과정에서 음지에서 활약한 히사히데의 힘도 컸다. 이 시기에 쿄우토(京都) 행정관(奉行)으로써 힘을 기른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었다. 이 즈음 쵸우케이의 장남 요시오키(義興)가 병사하였는데 이는 히사히데의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쵸우케이가 죽자 히사히데의 마음 속에 쇼우군() 타도의 음모가 싹을 틔었다. 미요시 삼인중(三好三人衆)이라 불리는 미요시 가문의 중신들에게 쇼우군 요시테루(義輝)가 미요시 가문 토벌을 꾀하고 있다고 하여 불안을 조장시켰다. 쵸우케이의 양자(養子) 요시츠구([각주:3])를 지키자는 것이, 히사히데가 미요시 삼인중에게 불어 넣은 대의명분이었다.

 이리하여 미요시-마츠나가의 군세는 1565 5 19일 쇼우군 어소를 습격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히사히데는 이 쇼우군 암살을 함께 했던 미요시 삼인중과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쫓겨나 사카이() 도망친다. 히사히데는 예전에 이곳의 대관(代官) 적이 있었으며, 이곳의 대표자들인 나야(納屋)()과도 교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사히데는 사카이 나야중에 도움을 받아 재기할 있었고 곧이어 야마토(大和)에서 미요시의 군세를 쳐부수었다. 토우다이(東大)() 대불전을 불태운 것은 시기의 일이다.

 

 이로써 14 쇼우군() 아시카가 요시히데(足利 ) 후견인으로써 위세를 떨치게 되지만 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다 노부나가로 인해 종지부가 찍힌다.

 다음 해인 1568.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여 입경한 것이다. 히사히데는 싸워보았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 그러나 히사히데는 속으로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나가가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 공격에 애를 먹게 되자 히사히데는 갑자기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간지 측이 츄우고쿠() 모우리(毛利) 카이(甲斐) 타케다(武田), 에치고(越後) 우에스기(上杉)와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대놓고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것이다.

 히사히데는 거성(居城) 시기산(信貴山)()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성도 일본 텐슈(天守) 시조라 일컬어지는 근세형의 성곽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패자(覇者) 노부나가의 기세에는 대항하지 못하였고 노부나가 휘하의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 信盛), 츠츠이 쥰케이(筒井 順慶)의 군세에 패배를 당한다.

 

 그 낙성에 관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에 빠져있던 노부나가가 탐내던 천하의 명기 [히라구모의 차 솥(平蜘蛛茶釜[각주:4]]을 손수 깨 부수고 성에 불을 질러 자인했다는 것과 또한 막 낙성이 되기 직전에 평소 앓고 있던 중풍때문에 머리에 뜸을 떴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되었는데도 또 목숨이 아까워서 그러냐는 부하에게 자인을 하게 되었을 때 행여라도 중풍이 발작되어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을 남들이 배 가르는 것이 두려워서 꾀병을 부린다고 할 것 같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히사히데다운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일화이다.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 久秀)]

미요시 쵸우케이의 유우히츠(右筆[각주:5])에서 입신 출세하였다. 쵸우케이의 대리인으로써 쿄우토(京都)에 머물며 여러가지 일을 처리했다. 기독교의 교회를 파괴하였으며 토우다이(東大)()의 대불전을 불태웠다. 1577 9 10일 야마토 시기산 성()에서 자해.

  1. 링크는 후쿠오카(福岡)성(城)의 것. [본문으로]
  2. 무가(武家)에서는 손님 접대나 여러 행사를 치르는 건물을 지칭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3. 부친은 쵸우케이의 동생으로, 무용이 뛰어나 ‘오니소고우(鬼十河)’라는 이명을 가졌던 소고우 카즈나가(十河 一存)이다. [본문으로]
  4. 구모(蜘蛛)는 일본어로 거미를 말한다. 거미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平) 모습이라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본문으로]
  5. 문서, 기록 담당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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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almi BlogIcon 아케치 2008.07.05 0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이 잘 안 나왔네요.
    히사히데의 표정과, 산산조각나는 히라구모가 압권인 작품인데.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07.05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 히라구모를 던져서 깨뜨리는걸 묘사한 그림이군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7.05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의 무장들은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결단성을 배워야 한다..랬던가요. 세키가하라에서의 시마 사콘이 야그 했던 내용으로 기억하는디..(뭐 위키에서 얼핏 본듯하니 다 거기서 거기인 썰이겠지만서도..)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6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케치님//그림이 좀 작죠? ^^ 처음 저 그림을 보았을 때 손하고 머리하고 겹쳐서 잠깐 무슨 그림인가 하고 이해를 못 하겠더라구요.

    리더쉽님//퍼져가는 파편이 생생함과 동시에 땡깡부리는 얼굴 표정이 잘 살린 그림 같습니다.

    다메엣찌님//아케치 미츠히데와 동급으로 묘사되었죠. 그 말에서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07.08 0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 저게 얼굴 옆모습을 그려논거였습니까..??
    발해지랑님 말듣고보니.. 이제야 얼굴이 보이네요.
    여태껏 전 팔이 얼굴 정면을 다 가린 그림인줄 알았네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8 1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말이~~~~!!
    ^^ 실은 저도 그러했습니다. 그림 클릭하면 일본 위키로 이동하는 데, 거기서 확대 그림을 보고서야 알게되었습니다.

  7. Favicon of http://hyunby1986.tistory.com BlogIcon 턴오버 2008.07.13 2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의 야망 '혁신'에서의 캐릭터 모습이 떠오르네요.

    최후 역시 정말 그답네요.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15 0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람 이야기 나오면 빠짐 없이 나오는 것이, 삼대악행과 죽을 때의 모습이더군요.
    그만큼 당시로써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나 봅니다.


 그야말로 이색의 쇼우군[軍]이었다. 13대 쇼우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검술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에게 비기 [히토츠노타치(太刀)]를 전수받았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전란 다발하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자기단련이었다. 1546년에 쇼우군[軍]이 되면서부터 요시테루에게는 하루라도 평온한 날이 없었던 것이다.

 

 요시테루 치세인 1546년부터 1565년에 이르는 20년간은 중세의 암흑기에서 근세의 여명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였다. 일본에 온 하비에르[각주:1]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하였고, 노부나가[信長]가 오케하자마[間]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를 쓰러뜨린 것도 이 시기였다. 그 격동기의 고뇌를 요시테루는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 부친 요시하루[義晴]와 함께 전란의 쿄우[京]에서 피신하여 오우미[近江]에 있었던 요시테루는, 쇼우군[軍]이 되어 쿄우[]로 돌아와서도 호소카와 하루모토[細川 晴元] 미요시 쵸우케이[三好 長慶]의 다툼에 휘말려, 부평초[浮萍草]처럼 양 세력 사이를 떠도는 존재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오우미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었. 그러나 결국 미요시 쵸우케이의 실력에 굴복하여 미요시 체제에 옹립되는 형태가 되었다. 이때가 1558 11.

 쿄우()로 돌아온 요시테루는 이것이 정말로 기뻤던 듯, 어소[御所][각주:2]의 마당에 서서는 밤하늘을 향해서 환호성을 올렸다고 한다.


 이 즈음, 그제서야 칸파쿠[白]였던 코노에 타네이에[近衛 稙家]의 딸과 결혼식을 올렸다. 모친인 케이쥬인[寿院]이 오랫동안 권해왔던 이야기였다. 요시테루의 마음에 안정이 생겼다는 것을 말해 준다.[각주:3]


 미요시 쵸우케이가 죽자, 요시테루는 지금이야말로 막부(幕府)의 실권을 회복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붕고[豊後]오오토모 소우린[大友 宗麟]이나, 에치고[越後]우에스기 켄신[上杉 謙信] 등 여러 다이묘우[大名]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쇼우군의 의도는 죽은 쵸우케이의 모신(謀臣)이며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아시카가 요시히데[足利 義栄][각주:4]를 새로이 쇼우군으로 세우려고 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 久秀]가 간파하기에 이른다. 히사히데는 같은 쵸우케이의 가신이었던 미요시 삼인중[三好三人衆]과 상담한 후 선수를 쳐 요시테루의 어소(御所)를 습격하기로 한다.

 

 1565 5 19.

 때는 장마의 계절,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그 빗속을 마츠나가, 미요시 군세는 갓과 우비를 입고서, 키요미즈 사[寺]를 참배한다는 명목으로 쿄우[京]로 올라가고 있었다.

 히사히데는 밤이 되기 직전에 일부러 어느 소송(訴訟)에 대한 서장을 어소에 제출했다. 응답에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노림수였다. 그 사이에 히사히데의 무리들은 어둠에 섞여 어소 안으로 잠입하여 마루나 복도 밑에 몸을 숨겼다.

 

 갑자기 함성이 울려 퍼졌다. 궐기의 신호였다. 어소에는 사무를 보는 몇몇 외에 사람이 없었다.

 사태가 명확해지자, 검호 쇼우군답게 각오를 정하여 금생의 이별 주연(酒宴)을 열었다. 호소카와 타카요시[細川 隆是]가 여관(女官)코소데[小袖]를 뒤집어 쓰고 춤을 추었다.

 이때 요시테루는, 그 코소데 위에 사세구(辭世)의 시를 적었다고 한다.

지금 내리는 비는 이슬인가 눈물인가,

내 이름을 알려라 구름 위에까지

五月雨は露かかほととぎす

わが名をあげて雲の上まで

 그때부터 요시테루의 활약은 눈부셔 몇 자루나 되는 칼을 마루에 꼽고서는 날이 무뎌지면 계속해서 바꾸어가며 달려드는 적을 마구 베어 쓰러뜨렸다.

 하지만 결국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었다. 한 적병이 문틈에서 창으로 발을 걸어 넘어뜨리자 요시테루는 넘어졌다. 거기에 적병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장지문으로 몸을 누르고는 그 위에서 창으로 내리 찔렀다. 그때 불길이 한꺼번에 번져 요시테루의 목을 베지 못한 채, 건물은 화재로 무너져버렸다고 한다.(에이로쿠의 변[永禄の変])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 義輝)]

1536년생. 첫 이름은 요시후지[義藤]. 12대 쇼우군 아시카가 요시하루[足利 義晴]의 아들. 1546년 아시카가 제 13대 쇼우군이 되었다. 호소카와 하루모토[細川 晴元]를 칸레이[管領=쇼우군의 보좌역]로 임명 하였지만, 호소카와 우지츠나[細川 氏綱], 미요시 쵸우케이[三好 長慶] 등이 이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고, 미요시 측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바쿠후의 실권은 쵸우케이가 쥐게 된다. 쵸우케이가 죽자 실권을 쥐고 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 久秀]에게서 정권탈환을 기도하지만 히사히데 등에게 습격 받아 살해당했다. 1565년 당시 아직 30살이었다.
  1. 일본에서는 ‘자비에르[ザビエル]’ 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2. 높은 귀인의 거처 겸 정무소. [본문으로]
  3. 여담으로 요시테루의 모친 ‘케이쥬인’은 장인인 ‘코노에 타네이에’의 여동생이다. 즉 요시테루는 외사촌과 결혼한 것이다. [본문으로]
  4. 아시카가 바쿠후 14대 쇼우군, 요시테루와는 할아버지가 같은 사촌지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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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iroyume BlogIcon shiroyume 2008.06.24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생각하는 사나다 노부시게와 더불어 사나이의 로망 중에 한사람이라고 취급받는 그 사람이네요. 원래 단기필마로 다수와 맞짱뜨기는 영원 불멸의 로망이랄까요 (먼산-_-)
    그러고 보니 고노에 가문이 어떻게 된지 궁금하군요. 아마 1600년대 당시 얼마 못가 단절 된걸로 아는데 찾아봐야겠네요. 마법선생 네기마보는 중에 코노에 코노카 보다가 이거 보니 갑자기 떠오른 물음 ^^
    요즘 전기공사실기 땜에 죽겠네요. 완전 삽질 ㅠㅠ 더운 여름입니다. 잘 보내세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5 0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레쉬 오버덕분에 추한꼴을 면했군요(;; 노부나가도 그 덕을 봤더랬던;;;) 뭐 생각해보면 하늘에도 눈이 있어 히사히데 어르신도 염상에서 녹아나버리지만(;;;)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5 0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정말 막말의 간지쇼군(ㅋㅋㅋ) 어느 막부의 말에도 이런 쇼군은 없었다(!)랄까요.. 그런데 서른에 죽은 사람치고는 너무 삭아보이는군요(;;젊을적 고생이 심해서 그런겐가..)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5 0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세구를 읽다보니 호토토기스를 번역을 빠뜨리신 듯 하네요. 위키에는不如&amp;#24112;라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촉의 망제의 설화를 떠올리게 하려 하지 않았으려나 싶네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5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로유메님//저도 갑자기 궁금해 져서 찾아보니 지금도 코노에 가는 있는 것 같습니다. http://ja.wikipedia.org/wiki/%E8%BF%91%E8%A1%9B%E5%AE%B6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5 17: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로유메님//노부타다도 꽤나 멋있었다고 하더군요.
    제일 앞에 서서 정면 돌격하여 몰려드는 아케치의 잡병을 단번에 20명 가까이 벤 노부타다의 옆에 있던 근시에게 한 말...
    [용감하도다! 이번 생에서는 은상을 줄 수 없지만, 다음 생에서는 은상을 내리마]... 라는 말이 있더군요.
    코노에 가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죠. 예전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 護&amp;#29013;)의 외갓집이 코노에 가문이죠.
    전기 공사 실기. 무운을 빌겠습니다.

    다메엣찌님//플레쉬 오버?? 뭐죠 그건?? ^^; 저는 노부나가도 나름 멋지게 싸웠다고 생각하지만요 ^^.
    네덜란드의 로번(로벤)이라던가, 맨유의 전설 바비 찰튼의 10대 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젊은 편...
    참... 전 시쪽은 딸려서 그러는데, 그 호토토기스...는 번역할 때 집어 넣어야 하는 것인가요?
    형식의 하나다 보니 빼도 될 것 같아서 뺐습니다만...

    고사천사님//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워낙 명문가다보니 단절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6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토토기스는 불여귀(두견새)를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 그냥 제 생각에 두견새전설(촉 망제가 부하에게 쫓겨나서 피를 토하며 죽었더라..)을 떠올리고 요시테루가 읊은게 아니었나 싶어서요.

    그나저나 그 난국에서도 살아 도망간 사람이 있었으니 저런 멋진 사세구가 남았지.. 그런 의미에서 혁신 켜서 한번 참수시켜봐야겠습니다(쿨럭;)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6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레쉬 오버는 제가 이쪽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론으로 설명하긴 힘든데.. 공장 화재 때 현장에서 한번 봤는데 잘 타던 건물이 한쪽 격벽 부서지니까 엄청난 불길이 바로 그쪽 격벽의 연소 가능한 산소를 태우러 몰려가더(..;)군요.

    불 났을때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엘리베이터에는 불이 좋아하는 맛있는(;) 산소가 가득 차 있는 상태기 때문에.. 신나게 내려가다 화재층에서 멈춰서 문 틈이 열리기라도 하면 그 사이로 엄청난 불길이 화르르르..들어와 버리거나 하는 일 때문에(;;)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6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좋은 거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근데 [鳴かぬなら殺してしまえ、ホトトギス]라는 말과 같이 왠지 형식적으로 집어 넣은 듯 해서 두견새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플레쉬 오버란 것이 그런 것이었군요!!! 이 또한 좋은 지식 감사드립니다.
    (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기법 중의 하나를 말씀하시나 해서 착각했습니다. ^^; 그래서 노부나가 운운해 버렸구요...그러고보니 비오는 날의 혼노지도 그렇게 불타오른 것을 보면 거기도 비슷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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