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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4 토쿠가와 이에야스 - 천하인의 수명을 단축시킨 도미 튀김 (18)

도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
1616년 4월 17일 병사(病死) 75세.

1542년 ~ 1616년.
미카와
[三河] 오카자키[岡崎] 성주(城主) 마츠다이라 히로타다[松平 広忠]의 아들.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각주:1]를 기회로 이마가와 씨[今川氏]에게 독립. 토요토미[豊臣] 정권에서 오대로(五大老) 필두(筆頭)가 된다.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승리하여 에도 막부[江戸 幕府]를 열었으며, 토요토미 씨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손 안에 넣었다.




취소된 은거소(隱居所)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75세라는 장수(長壽)를 누리며, 생애(生涯)의 꿈이었던 천하 제패를 확립한 후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 따윈 없는 대왕생(大往生)으로 보였을 것이다. 단지 직접적인 사인(死因)이 식중독에 의한 쇠약이었던 것이 본인에게는 조금 아쉬웠을 지도 모른다.

 1615년 4월.
 오오사카 여름의 싸움(大坂 夏の陣)에서 소원이던 토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자, 순푸[駿府]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은거 생활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한다. 어느새 74살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도 이미 쇼우군[将軍] 자리는 히데타다[秀忠]에게 물려주고 순푸에서 은거를 하고 있었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오고쇼(大御所)로서 쇼우군[将軍]보다 더 강한 권력을 쥐고 정치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가장 신경 쓰이던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을 멸망시켜 이제는 더 이상 표면적으로 토쿠가와 가문[徳川家]에 대항하는 다이묘우[大名]도 없게 되자, 평범한 노인의 심정에 가까워졌던 듯 하다. 그래서 순푸 성(城)을 10째 아들인 요리노부[頼宣][각주:2]에게 물려주고 이즈[伊豆] 미시마[三島]의 근교인 이즈미가시라[泉頭]에 은거할 곳(隱居所)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마음의 변화가 생겼는지 건설은 중단되었고 결국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은거할 수 없던 은거

 다도(茶道)나 매사냥, 바둑 등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엇보다 즐겼던 취미는 역시 천하의 형세를 관망하면서 그때그때 자신의 정치이념에 따라 수정을 한다거나 보강을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죽은 뒤에도 히데타다 이하 토쿠가와 가문의 후계자들이 대대로 정권을 유지해 갈 수 있게 해 두지 않으면 아니 되었을 것이다.

 오오사카 여름의 싸움[大坂 夏の陣]에서 완승한 뒤 다이묘우 통제를 위해서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각주:3]), 텐노우[天皇]나 귀족[公家]을 통제하는 [궁중 및 쿠게 에 대한 법도(禁中並公家諸法度)], 불교계를 장악하기 위한 [오산과 십찰, 제산에 대한 법도(五山十刹諸山法度[각주:4]] 등의 반포되었다. 이런 법들은 쇼우군 히데타다의 이름으로 공포(公布)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이에야스의 지시로 그의 측근들이 만든 것이다.

 이에야스에게 평범한 노인과 같은 은거 같은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진심으로 속세에서 벗어날 생각 같은 것이 없었을 지도 모르며, 있다고 하여도 예전부터 바래왔던 정치이념의 실현과 토쿠가와 정권의 토대(土臺)를 굳건히 하기 위해선 유유자적한 은거 생활은 즐길 수 없었다. 이즈[伊豆]의 시골에서 은거하려다 관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에야스의 추종자들 중에는 정치나 군사 전문가들 외에도 취미나 교양이 풍부한 문화인들이나 상인들이 있어 그들과의 교류를 차마 끊을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즈[伊豆] 은거 대신 측근 중의 하나인 텐카이[天海]에게 권고 받아 염불을 매일 외는 것 만은 실행하였다.

도미 튀김이 목숨을 앗아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추종자들과의 교류가 남은 생명을 줄였다고 말할 수 있다.

 1616년 1월 21일. 그는 순푸[駿府] 근교의 타나카[田中]에 매사냥을 하러 간 날 밤. 격심한 복통을 일으켰다. 식중독이었던 듯하다. 타나카까지 문안 인사를 하러 온 어용상인(御用商人) 챠야 시로우지로우[茶屋 四郎次郎]의 추천으로 도미 튀김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챠야 시로우지로우는 토쿠가와 가문의 어용상인으로써 이에야스와 깊은 친분을 나누었던 시로우지로우(四郎次郎)의 아들 쪽이다[각주:5]. 본명은 마타시로우[又四郎]였지만 부친이 죽은 뒤 이름을 계승하였다.

 그는 요즘 쿄우토[京都] 부근에는 도미를 비자나무의 기름으로 튀긴 후 마늘을 갈아서 곁들여 먹는 것이 유행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곧바로 도미를 가져오게 하여 유행하는 것과 같이 튀겨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는지 참도미, 옥돔을 다섯 마리나 먹었다고 한다. 이래서는 건장한 사람이라도 위에 무리가 간다. 하물며 체력이 약한 노인에게는 버틸 수 있는 여지도 없을 것이다.

 그 이후, 25일에 순푸[駿府]로 돌아온 이에야스의 병상(病狀)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도 확실히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다. 에도에 있던 히데타다도 2월 2일에 순푸[駿府]로 달려와 병문안을 하였다.

 이에야스는 손수 약을 만드는 취미가 있어 이 때도 [만병단(万病丹)], [은액환(銀掖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던 자신이 제조한 약 이외에는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태는 더욱더 악화되어 간 듯하다. 결국 그도 죽을 때가 된 것을 깨달아, 4월이 되자 측근인 혼다 마사즈미[本多 正純]나 텐카이[天海], 곤치인 수우덴[金地院 崇伝]들을 불러 유언을 전했다.

 유체를 순푸[駿府] 가까이에 있는 쿠노우산(久能山) 산에 묻어줄 것, 장례식은 에도의 조우죠우 사[増上寺]에서 행할 것, 위패(位牌)는 미카와(三河)의 다이쥬 사[大樹寺][각주:6]()에 둘 것, 일주기(一週忌) 후에는 닛코우[日光]에 작은 암자를 세우면 거기에서 칸토우[関東]의 수호신이 되겠다는 등이었다.

 그리고 4월 17일 오전 10시 즈음. 75세의 나이로 순푸 성[駿府城]에서 파란 많던 생애의 막을 내렸다. 유체는 그날 밤에 이슬비를 맞으며 쿠노우 산(山)으로 보내졌다.

  1. 1560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가 오와리[尾張]에 침공해 온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를 오케하자마란 곳에서 물리쳐 이긴 전투.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사망. [본문으로]
  2. 후에 쇼우군 가문[将軍家]에 후사가 끊겼을 시 쇼우군을 배출할 수 있는 토쿠가와 어삼가(徳川御三家)의 하나 키슈우 토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시조. [본문으로]
  3. 한 다이묘우[大名]의 영지(領地) 내에는 성을 하나만 세울 수 있게 하는 것. 이에 따라 각 다이묘우는 방어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단 몇몇(ex. 다테 센다이 번[伊達仙台藩] 소속인 카타쿠라 가문[片倉家] 등)의 예외는 있었다. [본문으로]
  4. 오산, 십찰, 제산 등은 각각 다섯 개의 거대 사찰과 10개의 큰 사찰 및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각 지역의 절 등 사찰의 격식을 말한다. [본문으로]
  5. 2대째인 형이 젊은 나이에 죽어서 가문을 상속한 동생이다. 또한 챠야 가문[茶屋家]의 당주는 ‘시로우지로우[四郎次郎]’란 이름을 계승했다. [본문으로]
  6. 쇼우군[将軍]들의 위패는 대대로 이곳에 두는데, 위패는 관에 들어가기 직전의 키와 같다고 한다. 위패에 따르면 이에야스가 키는 159cm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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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kjw791 BlogIcon 허공 2008.02.14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오? 생각보다 이에야스의 키가 적군요. 센고쿠에서 센고쿠랑 비슷한 정도의 덩치로 나와서 장신이라고 생각했는데....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2.14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조이 재팬의 게시물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 158 cm, 60 kg 약간 뚱뚱하지만, 6명이서 취급하는 무게의 총을 혼자서 잘 다루는 만큼 완력이 있었다고 한다.너구리를 닮아 있다" 라네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2.15 0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공님//자...작은 건가요? 당시 일본 사람 키라면 평균은 갈 것 같은데...
    (여담으로 2미터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카토우 키요마사(加藤 清正)도 그렇게 안 컸다는 군요)

    본다충승님// 6명이서 드는 총을? 죄송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혹시 주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찾았는데 못 찾겠어요...--;) 나이 일흔에 화승총을 쏘아서 새를 맞추었다는 정도가 제가 알고 있는 이에야스와 총의 교집합...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2.15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은 네이버 인조이 재팬 -> 포토 번역 게시판 -> 전통 게시판 -> 검색란에 "무장"이란 단어로 검색하시면 제일 처음 게시물 입니다. 제목은 "일본의 전국 무장들의 체격·용모"입니다. 전국시대 무장들의 체격 용모에 관한 글인데, 짤막 합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2.15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원문은...
    小太りだが、6人で扱うような重さの鉄砲を1人で使いこなすほど腕力があったという。狸に似ている
    (조금 통통했지만 여섯 명이서 다루어야 하는 듯한 무개의 철포를 혼자서 사용했을 정도의 완력이 있었다고 한다. 너구리와 닮았다)

    이에야스의 별명 [너구리 영감(狸親父)]은 말년에 꾀를 잘 부려서 붙은 별명이긴 합니다만... 그게 닮았다는 것으로 연결될 줄이야...--;
    저 글의 소스가 궁금해지는 군요.

    여튼 좋은 지식 감사드립니다. ^^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iroyume BlogIcon shiroyume 2008.02.16 0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59센티라..아아 센코쿠15권에서 간지나던 이에야스의 풍채는 허상이었단 말인가~~ -_-;;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2.16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이란 그 사람의 그릇으로 인해 키에 비해서 크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작아지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2.16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으막에 도미튀김으로 목숨이 날아가가다니.. 챠야 시로지로우의 도요토미가와의 관계 음모설 같은걸 만들어봐도 재밌겠군요(-_-ㅎ)

    뭐 할만큼 다하고 죽었으니 여한은 없었을듯, 같은 나이에 죽은 모리 영감보다야 좋은 상황속에서 죽었으니까요.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2.17 1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기에는 아쉽게도 이미 토요토미 가문이 멸망한 것이 조금 아쉽네요.
    저 튀김을 추천한 것으로 인해 챠야 가문은 아무래도 바쿠후한테 미움을 받았다고도 하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위험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죽음일테니까요.
    뭐 저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만(일본에선 長生き功名 라고도 하더군요..), 확실히 일본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태평성대를 만든 그 수완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nagoomo BlogIcon 볼리바르 2008.02.21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마가와 우지자네 편에서 언급하신 4년 전, 슨푸에서의 양자대면이 떠오릅니다.
    사람도, 장소도 그대로인데 세월만이 변한 가운데 어떤 감회를 가졌을런지.. 그리고 튀김 건으로 발병하고도 석달이나 더 버티면서 신변을 싹 정리할 시간도 얻었으니 죽음에 있어서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어느 무장들보다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2.21 2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급이라뇨....^^;
    이 글은 http://blog.naver.com/valhae0810/100030678378 라는 책의 번역글입니다.
    아직 직접 이런 글을 쓸 능력이 안 되어서리....

    확실히... 자신이 다스리던 도시에서.. 자신 가문에 인질로 와 있던 이에야스와의 만남은 정말 감회(여러가지 의미에서)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소설이나 만화 상에선 우지자네가 이에야스를 엄청 괴롭히던데.. 특히 세나는 이미 우지자네의 손을 거쳐간 여자로 나오는 경우도 많고...[이 여자는 왼손잡이에게 길들여진 여자다... - 어떤 만화의 한 장면])

    찾아보면 복상사한 무장이 있지 않을까요?(...아~ 운이시라고 하셨군요.. 행복이 아니라..^^; )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8.03.09 0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미를 많이도 먹었네요;;
    <대망>에 나온 그림을 보면 상당히 뚱뚱해보이는데, 그냥 통통한 정도였군요.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09 1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 그러더군요. 일생 처음으로 미식과 대식을 즐기자 마자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저 댓글은 인조이 저팬에 나온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비만체였다고 하더군요. 상당히는 아니고 그냥 뚱뚱했다고 생각합니다.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30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균키는 기준과 결과가 워낙 분분하고 말들이 많아서...

    뭐 고기 등의 섭취가 부족하다 보니 그런가 봅니다.
    (여담으로 참혹한 농성전을 표현할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말과 소를 잡아 먹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1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9 11: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인들은 그당시만해서 평균키가 130대 초반 일텐데요.. 158이면 큰 키네요.

  16. Favicon of http://blog.naver.com/xtaiji83 BlogIcon 심플리진 2008.07.27 2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담아갑니다 ㄳ

  17. ckyup 2010.03.04 2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항상 이에야스 가문에 대해서 궁금했는데요, 조부 마쓰다이라 기요야스가 젊은나이에 가신에 의해서 몸이 반토막나서 살해되지 않습니까..., 근데 확실한 이유를 찾을수가 없네요, 그 아베라는 자가 왜 주군을 베었는지. 혹시 behind story를 아시면 좀 알려수십시오.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0.03.20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늦어 죄송합니다.

      답글로 쓰기에는 좀 과하니 따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제가 요즘 바쁜 일이 있다보니 언제라고 딱 정해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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