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careerzine.jp/article/detail/1789
일본 IT 업계 전직 사이트 CAREERzine에 올라온 글입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회사 트렌더스가 20~59세 사이의 일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0%가 ‘있다’고 대답.
‘있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센고쿠 시대의 어떤 부분에 흥미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1위는 ‘센고쿠 무장의 캐릭터, 인물상’ 77%
2위는 ‘센고쿠 무장이 보낸 격동의 인생’ 59%
3위는 ‘혼돈스런 하극상 사회’ 38%
4위는 ‘전투의 전법, 전술’ 36%
센고쿠 무장 중에서 가장 빨리 출세할 듯한 인물은?
1위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秀吉] 41%
2위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21%
3위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 17%
4위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15%
5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 12%
‘기업가로 성공할 듯한 인물’은?
1위 토요토미노 히데요시 38%
2위 토쿠가와 이에야스 35%
3위 오다 노부나가 32%
4위 타케다 신겐 16%
히데요시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눈치가 빨라 임기응변에 능하고, 일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잘 만든다’ (23세 여성), ‘하극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성품’(27세 남성), ‘백성에서 천하를 손에 넣은 현명한 노력가에 오기가 센 무장이라 생각’(25세 여성)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저 질문에 가장 출세할 듯한 인물은 이건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히데요시일 듯. 하지만 기업가로는 노부나가,
기업가 히데요시의 단점을 보자면,
무엇보다 주제도 모른 해외침략.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의 규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덩치만 불리려 한 인수합병 혹은 주력 업종 외에 제대로 된 인식도 없으면서 문어발 확장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전 히데요시건 이에야스건 노부나가가 없었음 저렇게 컸을지도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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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셨을런지 모르지만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는 이와 비슷한 감상이 느껴졌는데, 극중에서 이순재옹은 이러한 대사를 남기셨죠.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회사를 세우고 영민(순재옹의 아들)이는 회사를 정리하고, 민재(손자 즉 3세) 대에 들어서 회사가 크게 번창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 대사를 들으면서 오다 - 도요토미 - 도쿠가와 3대가 생각이 났습니다. 앞의 두 명이 그러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자의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보통 삼대에 걸친 이야기하면 이에야스-히데타다-이에미츠가 떠오르는데, 확실히 말씀하신 것은 센고쿠 3영걸이 연상되는군요.
출세는 완전 히데요시 이미지인듯...
기업가는 호죠 우지야스 생각나네요
칸토우[関東]의 호우죠우 가문[北条家]가 시스템 운영은 최고였던 듯 합니다.
호우죠우 가문은 기록을 많이 남겨놓았기에 지금도 당시를 연구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호우죠우 가문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더군요. 거기에 선정을 베풀었는지 이에야스가 들어간 다음에도 옛 호우죠우의 시대를 잇지 않았다고 할 정도니까요.
여담으로 호우죠우 가문도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인해 멸망으로 이어집죠..어디까지나 결과론입니다만...^^
5대 당주 우지나오[北条氏直]의 정실로 노부나가의 딸을 맞이하여 가문과 영지를 보존하고 싶었는데, 혼노우 사의 변 크리.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 남겨 봅니다. 전국무장에 관한 글들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전국무장 중에서 히데요시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히데요시는 오다와라정벌 이전과 이후가 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서...(마치 삼국지에서 적벽대전 이후의 관우 같다능....)
이시다 미츠나리가 좀 의외네요. 적을 굉장히 많이 만드는 스타일일 듯 한데 출세를 빨리 할 무장으로 꼽히다니...
암튼 저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기업가'적 인물은 이에야스가 아닐까 하는....기업가는 일시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그 성공을 영속화시키는 능력을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런면에서 250년 막부의 초석을 놓은 이에야스에 한표....그런 의미에서 호죠가의 소운도 평가대상이지 싶은...^^;
방문 감사드립니다. ^^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인식입니다만,
히데요시는 원래 잔인하고 포악하며 욕심이 많았던 인물인 듯 하더군요. 나중에 여러 문학작품이 나오면서 조금씩 좋아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미츠나리는 오히려 시대가 내려오면서 안 좋은 쪽으로 변한 듯 합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발도 넓었기에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지만 아무래도 반역군의 수장이다 보니, 살아 남은 사람들이 안 좋은 것들을 전부 미츠나리에 밀어 넣은 것 같더군요.
특히나 그 일하는 방식만 본다면야, 현대 일본에서도, 일본식 관리 프로젝트의 선구자 운운할 정도니까요. 거기에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에도서 많은 돈을 뽑아내는 듯한 에피소드에, 부하에게 아낌없이 주는 모습을 보면 관리자로서는 최상급이었던 듯 합니다.
이에야스도 센고쿠 3영걸 중 하나로 꼽히니 당연 인물이겠지만, 250년 이어진 에도 막부 전체로 본다면은 흔히 토쿠가와 3대로 지칭하 듯 -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 이 세명이 다 공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야스가 남겨놓은 유산만 보면 분쟁의 씨앗은 남아 있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히데타다가 그 씨앗을 잘 뽑았고, 거기에 이에미츠가 시스템으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호우죠우 소우운北条早雲은 확실히 창업은 잘 했지만, 그의 인생 후반기에 행한 업적들이 대부분 그의 아들 호우죠우 우지츠나北条氏綱가 한 것들이라고 하더군요.
편협한 제 주장만 주저리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이 경영자적인 면을 창업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 아니면 그 이후 번영으로 이어가는 부분에서 놓아야 할지에 따라서 평가는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ps;제가 노부나가빠..에 가까운지라 노부나가말고 다른 사람 언급하시면 단점 찾아내기 바쁩지요. 이건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
이해까지야....
저야 일본사를 그다지 잘알지도 못하고 일본어도 잘 못하고 한국사람이 쓴 교양개론서 하나 읽은게 고작인데요. 발해님 번역하신 글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제가 히데요시를 평가한다고 한건 일본사 통틀어서 그렇게 출세한 인간이 없는 걸로 알고 있고 그 출세가 필요불가결한 무력동원만 하고 나머지는 이해조정(말빨?)으로 가능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에야스에게 한방 먹기는 했지만 혼노지변 이후 오다와라 정벌까지의 히데요시의 정략을 보면 실로 깔끔하다고 느껴져서요.(열도 통일을 위한 최단거리를 가로지르는 듯한...)
뭐 그 이후에는 삽질의 연속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원래의 본 모습인지 아니면 자만심이나 노망(?)에서 나온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걸 본 모습으로 본다면 발해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p.s 저는 이에야스빠가 아닐뿐더러 절대 히데요시빠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에야스케릭터(능구렁이 너구리)는 밥맛이고 한국인으로서 히데요시를 좋아하기는 참 어렵지요.^^
당시 일본 전쟁의 흐름은 반드시 투항교섭 -> 결렬시 무력...으로 이어졌습지요. 히데요시만이 그렇게 이해조정을 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죠.
오히려 히데요시의 경우(그리고 타케다 신겐 등 몇몇도 그러했지만) 나중에 알아서들 기라며 츄우고쿠中国에 첫번째로 공략하는 곳은 싸그리 죽이고 시체들을 창에 꿰어 진군하는 식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습죠.
어쩌면 말년의 히데요시의 삽질이 너무 빠른 성공에서 기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네요. 경쟁상대(대표적으로 이에야스)를 박살내 놓은 것이 아니라 적절히 타협을 통해 무마해 놓은 거였고 빠르게 형성된 세력이었기에 내부결속도 공고하지 못했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오버하게 된 건 아닌지...결국 그 오버스러운 행태에 의해 단점이 덧난 꼴이 되었겠지만 말이죠.(어디까지나 갠적인 망상)
다시한번 강조하는데 저는 절~~때(x100) 수길이빠는 아니지만요 센코쿠 무장중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야스를 상대로 교섭에 나선 것은 저도 나그네 님과 비슷합니다. 당시 히데요시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킨키近畿라는 발판이 확고히 다듬어진 편이 아니었기에, 이에야스와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그네님 말씀대로 너무 빠른 성공에 발판을 다질 틈이 없었다고)
ps; 개인적으론 히데요시에게 흥미는 많이 있습죠. 다만 그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좀 아쉽더군요.
'주제도 모른 해외침략"이라고 하셨지만, 애초부터 히데요시는 매우 낮은 신분의 남자였습니다. 일개 다이묘의 가신으로도 설 수 없을 천한 신분의 남자가 오직 능력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며 그것들을 모두 현실로 이뤄낸 인간입니다. 그런 히데요시기에, 역시 '가질 수 없는' 혹은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는' 조선과 대륙을 가지려고 한 것은, 어쩌면 그의 속성으로는 당연한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보통 그런 것을 '주제(혹은 분수)도 모른다'라고 합지요. 아니면 '허황된 망상'이라고도 하고요.
꿈을 추구한다..라고 말하고 싶군요
가정에 불과하지만 연개소문이 정말 중원도모를 시도했더라도 "주제도 모르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꿈이라...
전쟁은 거는 쪽의 백성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미사여구로 표현하시다니... 참 안타깝군요.
"가정에 불과하지만 연개소문이 정말 중원도모를 시도했더라도 "주제도 모르는 망상"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연개소문이 우리 역사에 속한 인물이기 때문인가요? 제 블로그 우상단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그런 식의 인식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잣대는 항상 일정하기에 잣대인 것입니다. 기분에 따라 줄거나 는다면 그것은 잣대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