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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조우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4.14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6- (9)
  2. 2008.03.23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4- (10)
  3. 2008.03.03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1- (8)
  4. 2008.01.06 금오중납언(金吾中納言)-5- (7)
  5. 2007.12.09 살생관백(殺生関白)-7- (10)
六.

 윤
7월이 되어 이변이 일어났다. 12일 밤.

 후시미[伏見] 도바[鳥羽] 부근을 진원지로 하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사상 유례가 없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엔 달무리가 져[각주:1] 순식간에 후시미, 도바, 요도가와[淀川] 해안의 여러 마을이 무너지고, 후시미 성 밑 마을의 남녀 2천명이 깔려 죽었다.

 다이묘우[大名]들의 저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신중인 키요마사[正]의 저택도 객관(客館=大書院)이 무너져 내리고, 마구간에서는 불을 뿜었다. 하지만 키요마사는 이런 아수라장에서도 행여 있을지도 모를 위협에서 히데요시를 지키기 위해 성에 오를 것을 결심하여 부하들에게 준비를 명했다. 그 자신 몸에는 하라마키[巻]를 입고 흰 명주에 주색(朱色)으로 남무묘법련화(南無妙法蓮華)이라 쓰인 겉옷[陣羽織]을 걸치고선 이마에는 주황색 머리띠를 둘렀다. 손에는 8[각주:2] 길이의 봉()을 들었다. 봉은 쓰러진 가옥을 일으키는 지렛대로 쓰기 위해서였다. 무사 30, 일반 병사 200명에게도 봉을 들게 하여, 여진(餘震)이 계속되는 대지를 박차고 박차며 후시미 성[伏見城]에 당도하였다.
 
정문은 이미 무너져 쓰러져 있었다. 마츠노마루[
丸]라 불리는 성곽의 망루(望樓)도 무너져 시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키요마사는 서둘러 히데요시를 찾으려 하였다.

 혼마루[本丸]로 가자!”

 키요마사는 목소리 높여 호령하면서 돌계단을 서둘러 올라가자 혼마루 내의 누각, 건물 등은 전부 쓰러져 있어 비명만이 여기저기서 들려올 뿐이었다. 히데요시가 벌써 깔려 죽었나? 하고 키요마사는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등롱(燈籠)을 비추며 여기저기를 탐색하였다. 그러다 설마 하는 기분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가 문 앞 작은 마당을 지나 문을 거쳐 정원에 들어서자, 정원 안에 쌓은 작은 동산의 잔디 위에 병풍을 둘러치고 카츠기[被布]를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 상급 여관(女官) 20명 정도의 무리를 발견했다. 옆에 있는 소나무에 등롱이 걸려 있어 그 불빛이 닿는 곳에 히데요시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키요마사는 발견했다. 히데요시는 이 이변을 틈탄 자객을 겁내서인지 여성의 의상을 뒤집어 쓰고는 그 화려한 옷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왕년의 히데요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잔머리나 굴린 땜질이었다. 키타노만도코로[政所], 마츠노마루도노[丸殿][각주:3], 코우조우스()도 있었다.

 키요마사는 가까이 다가가 엎드려서는 코우조우스를 향해서[각주:4],

 졸자는 카토우 카즈에노카미[加藤 主計頭]이옵니다. 타이코우[太閤=히데요시]님을 시작으로 타이코우님를 모시는 여러분들이 깔려 있으시기라도 한다면 이 지렛대로 들어올리고자 근신 자중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왔습니다

 고 큰소리로 말했다. 곧바로 네네는,

 토라노스케[虎之助]

 하고 말을 걸었다. 서둘러 히데요시 앞에서 칭찬을 해버리면 이럴 경우 키요마사의 행동이 공인 받아 히데요시도 그것을 승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잘 왔네. 정말 빨리 와주었구나

 네네는 계속 말했다.

 언제나 언제나 너의 장함과 공적을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네

 라는 네네의 목소리는 키요마사의 목소리보다도 더 컸을 것이다. 키요마사는 더 납작 엎드렸다. 땅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키요마사는 고개를 들었다. 작법대로 시선은 코우조우스를 향해 코우조우스에게 말을 거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키요마사가,

 들으시게 코우조우스!”

 하고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졸자는 조선에서 억울한 누명을 입었소. 조선팔도에 공격해 들어가 경성(京城)을 제일 먼저 함락시켰으며[각주:5], 조선 왕자 형제 두 분을 잡기도 하였고[각주:6], 나중에는 간도(間島)의 오랑캐 땅까지 쳐들어갔으며, 길주(吉州)에서는 10만기()[각주:7]의 적을 쳐부수고 대장을 잡아 죽였으며, 그 외에도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하였건만 되돌아 온 것은 억울한 누명밖에 없어소. 타이코우님께선 지부쇼우[冶部少=미츠나리]의 말만을 믿으시며 그것의 진실인지 거짓인지 조사조차 해 주시지 않으시오

 라고 말하였다. 네네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키요마사의 말이 끝나자,

 전쟁터에서의 피곤이 쌓였는지 토라노스케의 얼굴이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구나

 라고 말하며, 키요마사를 위해서 히데요시의 동정을 자극해 주었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토라노스케에게 중문(中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장수들의 모습은 여전히 볼 수가 없군요

 라고 말하자, 히데요시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 인해 키요마사의 근신을 풀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뒤 네네는 히데요시를 더욱 설득하여 키요마사를 위해서 변호를 하였다. 결국 히데요시는,

 토라노스케를 거시기... 그래 용서한다

 고 말했다. 네네는 곧바로 코우조우스를 중문으로 서둘러 보내 키요마사에게 그것을 알리게 하였다. 네네가 자신의 피보호자를 위해서 해 준 마지막 중재(仲裁)였던 것일 지도 모른다.

 이 해로부터 3년째의 초가을. 히데요시는 후시미 성[伏見城]에서 죽었다.
 
유언에 따라 오대로(五大老) 필두인 토쿠가와 이에야스[ 家康]가 히데요리[頼]를 대신하여 조선에 있던 장수들을 철수시켰다. 조선에 있던 키요마사는 하카타[博多]에 상륙하여 후시미[伏見]로 돌아오자 복수를 선언했다. 지부쇼우를 죽이겠다고 하였다.

 나도 끼워 주게

 하고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 쿠로다 나가마사[ 長政], 아사노 요시나가[ 幸長], 이케다 테루마사[池田 輝政] 오와리(尾張) 파벌의 장수들이 너도나도 달려와서는 키요마사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복수심에 불타는 키요마사와는 달리 그들에게는 단순히 미츠나리를 조금 미워했던 감정 외에도 히데요시의 죽음을 기회로 미츠나리와 그의 파벌을 모조리 쓸어버려, 토요토미 가문의 권세나 중심을 그들이 생각하기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놓고 싶다는 정치적인 충동이 일었을 것이다. 적어도 쿠로다 나가마사, 이케다 테루마사, 아사노 요시나가는 그런 쪽의 즉 정치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사태는 절박했다. 공연한 소란이 아니었다. 때때로 시가전(市街戰)까지 일어날 뻔 했다. 미츠나리, 코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 쪽도 방심하지 않고 자기들 저택 주변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벽 구석구석에 망루를 설치하여 경계하였다. 이 사태를 이에야스는 이용하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는 순간부터 히데요리의 정권을 빼앗을 궁리만 하였고, 그것만을 생각하며 신중히 그러나 민첩하게 행동했다. 이에야스는 이 토요토미 가문의 분열 소동을 관찰하여 철두철미하게 오와리[尾張] 파벌의 다이묘우[大名]들을 꼬셔서 그들의 위에 섬으로써, 결국에는 이시다 파벌을 뭉개고 요도도노[淀殿], 히데요리 모자를 밀어내고자 하였다. 이것 외에는 천하를 취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나이후(=이에야스)가 뒤에서 그들을 후원하고 있다

 고 미츠나리는 성 안에서도, 동료들 앞에서도 세차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난하였지만, 이에야스는 개의치 않았다. 우선 오와리 파벌들과 연을 맺어, 인척(姻戚)의 끈을 이어놓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죽을 때 남긴 법이 있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죽은 뒤 사당(私黨)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여러 다이묘우(大名) 간에 결혼은 허락을 받은 다음에 할 것.
이라는 사사로이 멋대로 다이묘우 가문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는 법제를 남겼다. 이에야스는 그것을 무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혼자 무시한다고 하여도, 이에야스에게서 딸을 얻는 다른 다이묘우가 이를 꺼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여 이 일건에 대해서 키타노만도코로와 상담하기로 하였다. 키타노만도코로에게 허락을 얻는다면 그녀를 따르는 또는 그녀와 친한 여러 다이묘우들은 부담 없이 이에야스와 인척관계를 맺을 것이다.

 키타노만도코로의 마음을 잡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오게 해 두지 않으면, 토요토미 가문에서의 공작은 무엇을 하건 하기 어려웠다. 이에야스는 쿄우[]의 아미다가미네 산봉우리[阿弥陀ヶ峰]히데요시의 묘소를 참배한다는 명목으로, 그 묘를 지키며 상복(喪服)을 입고 있던 네네의 거처에 몇 번이고 방문하였다. 선물도 보냈다. 사자(使者)도 파견하여 그 적적함을 위로하였다. 이 때문에 후시미[伏見]의 성 안에서는,
 
-
나이후 님과의 사이가 보통이 아닌 것은 아닌가?
 
라는 핑크 빛 억측이 돌 정도였다.

 물론 네네에게 그러한 감정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히데요시가 죽은 뒤 누구보다도 이에야스의 역량과 성실한 듯한 인격을 신뢰하였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 이에야스는 언동 하나하나 조심하면서 네네를 대했다. 네네는 결국,
 
토요토미 가문과 히데요리 님의 장래를 맡길 수 있는 것은 에도 나이후[ 府][각주:8] 이외에는 없다. 부탁을 하려면 나이후를 신뢰하고 오히려 모든 것을 맡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에야스라면 절대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이대로 미츠나리의 파벌이 요도도노 모자를 내세워 토요토미 가문을 농단(壟斷)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지금까지 네네는 이성(理性)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네의 감정(感情)이 그것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미츠나리의 파벌과 그들이 내세우는 요도도노와 그녀의 늙은 시녀들에게 토요토미 가문을 넘긴다는 것 등은 네네의 감정이 참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질투가 아닌 - 히데요시를 도우며 이 가문을 세워 것은 네네이며 그들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들 파벌이 이기면 네네가 보호해 온 키요마사들은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네네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이 이에야스에게 옮겨질 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라면 예전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의 후계자인 히데노부[秀信][각주:9]를 기후 츄우나곤[岐阜 中納言][각주:10]으로 만들어 보호한 것과 같이, 히데요리를 셋츠[津]야마토[大和] 근방에 성()을 주어 50~60만석의 다이묘우[大名]로 만들어서는 가계(家系)를 보호하고, 제사가 끊기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하나 하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 각오도 네네에게 있어서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오우미[近江] 아시우라[芦浦]칸논 사[音寺]의 성주이며 승()이기도 한 센슌(詮舜][각주:11] 이라는 자가 네네에게 은밀히 말한 것이기도 했으며, 이때도 네네는 냉정히 그것을 듣고 있을 수가 있었다. 듣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네네의 이성보다도 오오사카[大坂]에서 요도도노를 내세우고 있는 미츠나리 파벌에 대한 혐오가 그렇게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러가지 생각이 합쳐진 결과 네네는 이에야스를 신뢰하였다.

 혼인에 관한 것은 제 입으로도 토라노스케 등에게 말하겠습니다.”

 하고 네네는 이에야스의 사자에게 답했다. 곧바로 그리 되었다. 키요마사는 당시 홀아비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부하인 미즈노 타다시게[水野 忠重]의 딸을 양녀[각주:12]로 하여, 서둘리 준비해서는 키요마사에게 시집 보냈다. 거의 동시에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적자(嫡子) 마사유키[正之]에게 이에야스는 양녀를 시집 보냈다. 하치스카 이에마사[蜂須賀 家政]의 아들 요시시게()에게도 양녀를 시집 보내는 일을 진행시켰다. 미츠나리 등은,

 아미다가미네 묘소의 흙이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백주대낮에 타이코우 님이 남기신 유법(遺法)을 어기고 있다!”

 고 이에야스나 키요마사 등을 규탄하였지만 키요마사 등은 그런 규탄을 묵살했다. 미츠나리가 요도도노 모자의 권위를 믿고 고압적으로 나오건 키요마사 등은 이미 키타노만도코로의 묵인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 마음 든든했으며 유법을 어긴다는 양심의 가책에서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었다. 더구나 키요마사는 네네를 내알(內謁)하였을 때,

 어떤 것이건 나이후를 따르렴

 이라는 은밀한 지시를 받고 있었다. 네네의 지시를 따르는 한 토요토미 가문에 대한 불충(不忠)이 아니라는 습성이 소년일 때부터 그들의 마음 속에 법칙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사후, 2년째에 소위 세키가하라 쟁란[ヶ原の役]이 일어났다. 난이 일어나 미츠나리가 주모자가 되어 오오사카[大坂]에서 거병하였을 때, 네네는 오오사카[大坂]에서 벗어나 쿄우[京]의 산본기[三本木]에 은거하며 히데요시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이때 네네는 자신의 조카인 와카사[狭] 키노시타 카츠토시[木下 勝俊]에게, 길을 잘 못 들지 마라, 에도 나이후를 따르라는 훈계를 하고 있으며 또한 그 카츠토시의 동생으로 네네에게 있어서는 양자 중의 한 명이기도 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 秀秋]에게는, 히데아키가 흐름 속에서 어쩌다가 서군에 참가하게 되어 버린 것을 알고는,

 나중에 나이후를 꼭 도와 주렴

 이라고 엄히 명령했다.

 키요마사큐우슈우[九州]에서 동군(東軍)이 되어 움직였으며 또한 세키가하라[ヶ原]에 있어서는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 네네가 어렸을 적 키웠던 무장들이나 친척들이 전부 동군의 이에야스 편에 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결국 히데아키의 서군에 대한 배반이 승리를 결정지어 서군에 있는 요도도노의 파벌을 격파했다.
 
보는 방식에 따라서는 히데요시의 처첩이 각각 십 수만의 병사를 움직여 세키가하라 분지[ヶ原]에서 싸웠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그 틈을 타고 천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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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가 네네의 여생(餘生)이 된다.
 
네네는 이 사태나 시세에 대해서 결국 한 마디의 발언도 하지 않았고 히데요시의 명목을 빌기 위해 불교에 전념하였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다. 세키가하라 쟁란
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1605,

 절을 가지고 싶구나

 하고 이에야스에게 코우조우스를 파견하여 그 뜻을 전했다. 이에야스는 물론 그 뜻을 받들어 자신의 중신(重臣)인 사카이 타다요[酒井 忠世], 도이 토시카츠[土井 利勝]의 관할로 하여, 쿄우[]의 히가시야마[東山]의 산허리에 장대하고 화려한 사원을 조영 시켰다. 코우다이 사[高台寺]가 그것이다.

 그녀는 이 코우다이 사[高台寺]에서 히데요시의 위패를 지키며 또한 이곳에 살았다. 이에야스는 자신에게 천하를 가져다 준 이 여성을 존중하여 카와치[内] 내에 화장(化粧)을 하는데 쓰시라는 명목으로 13천석을 주어 정중히 대하였다. 네네가 비구니가 되어 살아가는 동안 1615년에 오오사카 성[大坂城]이 공격받아 요도도노 모자가 죽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그녀의 수명이 이어졌다.

 에도 막부[江戸幕府] 3대 쇼우군[軍] 이에미츠[家光]의 시대가 된 1624 9 6. 76세의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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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시대의 어떤 유학자(儒學者),

토요토미 가문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은 키타노만도코로의 재기(才氣) 때문이다.
는 식의 말을 하였는데, 다소 빈정대는 듯하다. 그녀는 히데요시와 함께 토요토미 가문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히데요시의 죽음과 함께 스스로 칼을 꺼내어 그 뿌리를 끊었다.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없다는 호담함과 같은 것을 느낀다.

 그녀는 말년에 풍월을 즐기며, 그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여러 다이묘우들의 경애와 존경을 받으며 유유히 세월을 보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회한(悔恨)이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1.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주 관측된다고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한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에도 지진과 달무리가 병용되어 기록되어 있는 기사도 있다. [본문으로]
  2. 약 240cm [본문으로]
  3. 쿄우고쿠 씨[京極氏]로 거처가 이 후시미 성[伏見城]의 마츠노마루 성곽에 있었기에 이리 불렸다. 또한 이 당시에는 가장 총애를 받고 있었다는 말도 있다. [본문으로]
  4. 당시는 윗사람에게 직접 말하기 보다는 곁에 있는 부하 격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예법이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5. 경성(한성)에 제일 먼저 도착한 이는 코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이다. [본문으로]
  6. 두 왕자(임해군과 순해군)를 잡았다기 보다는 함경도 방면을 담당했을 때 당시 병사 모집을 하러 간 왕자들이 함경도에 갔다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鞠景仁)에게 잡힌 것을 건네 받은 것. [본문으로]
  7. 이런 말을 믿으면 진다. [본문으로]
  8. 에도는 현재의 토우쿄우[東京]. 이에야스의 본거지였기에 그의 관직명 나이후[内府]를 붙여 이리 불렸다 [본문으로]
  9. 노부나가[信長]의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의 아들. 즉 노부나가의 손자. [본문으로]
  10. 영지(領地)가 노부나가의 옛 본거지 기후 13만석에 관직이 츄우나곤이었다. [본문으로]
  11. 히에이잔[比叡山]의 서고(書庫) 세이쿄우보우[正教坊]의 주지였으며, 능력과 히데요시의 신뢰로 여러가지 행정관(奉行)을 역임하였다. [본문으로]
  12. 미즈노 타다시게는 이에야스의 외삼촌이었기에 자신의 외사촌을 양녀로 삼은 것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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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4.14 2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아들네미 같았던 동군 소속 무장 모두보다 더 오래살았군요(;;;) 역시 여성의 여생이란 생각할게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키타노만도코로에게 있어서 요도도노 모자의 여생따위, 아무런 상관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죠. 뭐 사실 그들 모자야 세키가하라 이후의 삶은 덤이었던 것이나 마찬가지고...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4.15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편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네네도 장수했군요)
    다음 편도 벌써 기대가 되는데, 주인공 [야마토 다이나곤]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빈약한 지식으로 추측해보면... 히데요시 동생 히데나가인가요?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4.15 0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에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길주는 함경도의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의 도 명명법이 목사-부였는지 병사-부였는지가 있는 대도시 두개의 이름을 따는 것인데요.(전라도는 전주랑 나주, 경상도는 경주랑 상주, 충청도는 충주랑 청조 같은 식이죠. 경기도는 일본의 긴키랑 같은 것이므로 예외 입니다만) 세조때 반란을 일으킨 이징옥이가 함길도 절제사 였습니다. 길주는 조선 초기까지만해도 상당히 큰 도시로 군사적, 행정적 중심지 였다는 것이지요. 아마 세조때 였는지 예종때 였는지 함경도로 바뀌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4.15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편에서 전개가 갑자기 급하게 흘러간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네요.
    2대로 단절된 야마토 고리야마 도요토미 가문의 초대 도슈로 든든한 형의 오른팔이라, 기대됩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4.15 0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키타노만도코로 편 완결이네요 야마토다이나곤도 기대됩니다
    일본문학을 전공하고있는 학생이지만 아직 실력이 빈약한 관계로(고어, 고어체는 정말 쥐약-_-) 책을 구해도 읽을 수 없으니 이렇게 발해지랑님의 번역하신 것을 기다리고있습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paak81 BlogIcon 파악 2008.04.15 14: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글 읽게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15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음...말씀해 주신 것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확실히 역사상의 결과만 보면 의미가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어떻게든 존재 의의를 찾아 주고 싶군요...또한 나름 살려고 발버둥 쳤던 인물들의 생을 덤으로 하기엔 너무 잔인하다는 느낌도 드네요. 뭐 조선침략 원흉의 핏줄이니 인과응보이기도 하지만요 ^^

    맹꽁서당님//재미있게 보셨으니 다행입니다. 밑에 신사본론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야마토 다이나곤은 토요토미노 히데나가(豊臣 秀長)이옵죠. http://blog.naver.com/valhae0810/100035744758 <- 전에 졸역했던 것입니다.

    지나가던님//드디어 저에게도 오셨군요. 그 유명한 '지나가던'님.... ^^
    실례했습니다. 좋은 지식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신사본론님//이책은 챕터 별로 그 인물에 대한 것만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것에 더하여 과감한 삭제가 시바 선생님 작품의 특징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많이 읽어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요)
    기대는 하지 마십시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

    박선생님//역시....기대는 마십시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 취향으로 재미있던 것 뿐이니까요
    아물러....고어 관련은 저도.... --;
    저는 그래도 운 좋게 연이 닿은 이웃이신 shotokanfist님이 그쪽으로 굉장하셔서 든든하답니다.
    박선생님도 함 그쪽 방문을 권하고 싶군요.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파악님//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보람을 느끼는군요 ^^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4.17 0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로 하시는 거라기엔 매끄러운 번역인듯 합니다^^
    shotokanfist님 블로그에도 방문 해봤는데 많은 자료들이 있네요(후한서부터 만엽집의 시가까지;)
    구경해보고나니 한문학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참 배워야할게 많네요;;;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17 1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취미로 하다 보니 그렇게 까지 깊게 안 들어가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군요 ^^

四.

 네네의 몸가짐은 예절 바르다고는 할 수 없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번이나 세운 무릎 쪽의 발을 바꾸었고 바꿀 때도 옷자락 안쪽까지 보여버리기도 하였다. 뺨을 긁거나, 가래를 뱉거나 하여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다.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을 배우질 못했다기 보다는 천성이 활달한 편이어서, 자기자신을 바른 예절이라는 틀에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네네가 요도도노의 어떤 소문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멈칫한 적이 있었다. 측실들이 말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그녀의 여관장(女官長)인 코우조우스[主]가 이야기한 것이었다. 요도도노가 자신의 슬하에 오우미([近江]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다. 오우미[近江] ()의 다이묘우[大名]를 말이다. 그들 오우미 계의 역사는 히데요시[秀吉]나가하마[長浜]입성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信長) 휘하에서 처음으로 다이묘우[大名]가 되었는데, 그때 하사 받은 영지(領地)가 오우미의 나가하마였다. 석고는 구 아자이 가문[井家]영토인 3() 20만석이며, 이때부터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木下 藤吉郎]에서 하시바 치쿠젠노카미[羽柴 筑前守]로 불리게 되었다. 20만석에 상당하는 부하를 데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각주:1], 그 지역에서 이름난 가문이나, 많은 전투를 경험한 낭인(浪人), 승려가 못된 인텔리[각주:2] 등을 급히 대량으로 채용하였다. 그런 그들이 토요토미 가문의 [오우미 파벌(近江閥)]이 되었으며, 그 출신상의 특징으로써 경리에 밝았다[각주:3]. 재무 감각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는 없는 장부(帳簿)의 기록 기술까지 이 지방의 출신자는 알고 있어, 그런 기능이 있었기에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 마시타 나가모리[田 長盛]들은 토요토미 가문의 오봉행(五奉行)에 발탁되어 재정과 여러 정무를 담당하며 오우미 파벌의 정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 오우미 사람들(엄밀히 말하면 북부(北部) 오우미 사람들이지만)은 그 대부분이 아자이 가문의 옛 신하 출신이었다. 직접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망한 옛 주가(主家)에 대한 감정적인 충성심은 당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요도도노의 등장과 함께 그 감정적인 마음은 대상을 얻었다. 히데요시가 예전에 섬기던 오다 가문의 오이치[市]에게 성스러운 고귀함을 느낀 것과 같이, 그들은 아자이 가문 핏줄인 요도도노에게 그것을 느꼈다. 요도도노야 말로 진정한 공주님에 걸맞은 존재였으며 더구나 주군의 직계 혈통으로, 이미 남자 계통이 노부나가에게 살해당하여 끊긴 지금, 혈통에서 끝나지 않고 옛 주인 그 자체라는 감정을 요도도노에게 가졌다. 자연히 그 슬하에 모였다.

 요도도노도 옛 신하라는 친근감을 가지고 그들과 접했다. 또한 요도도노의 늙은 시녀들 역시 오우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 오우미 계의 다이묘우들과는 친척이거나 몇 다리 건너면 친척이었고 또한 교류가 있어, 그 분위기 속에서 요도도노는 자연스레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요도도노가 나에게 대항하려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코우조우스의 이야기에서 네네는 느꼈고 단순한 여관들의 뒷담화로 흘려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네네에게는 히고[肥後]에 관해서도 키요마사와 함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가 책봉되었다는 현상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요도도노가 미츠나리와 함께 히데요시에게 졸라서 그 파벌에 속해있는 코니시 유키나가를 추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송구스럽습니다만 요도도노가 키타노만도코로님을 언젠가는 넘어서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사물을 이해하는데 현명한 코우조우스는 말했다. 넘어선다고 하여도 정실(正室)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권세를 쥐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네네에게 있어서는 이것만큼 가소로운 것이 없었다. 토요토미 가문의 여성 중에 인사(人事)에 끼어들 수 있는 존재는 이 가문을 만든 조강지처인 자신 이외에는 없었다. 이외에 있을 턱이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되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네는 히데요시에게 그런 것에 대한 불평 같은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주인댁인 요도도노에게 기울면 기울수록, 네네에게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다정함과 배려를 잊지 않았으며, 그녀가 토요토미 가문에 있어서의 정실이라는 긍지를 더욱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다.

 요도 성[城]은 이외로 빨리 완공되었다.
 
1589
1월에 착공하여 3개월 후에는 거의 완성되었다. 그 건축의 빠름보다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요도도노의 임신이었다. 요도 성()이 완공된지 2개월 후인 5 27일에 남자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첫 아이인 츠루마츠[鶴松]였다.

 - 어쩌면……

 이라는 목소리가 성안에서 속삭여졌다. 태합(太閤)님의 씨 일리가 없다, 태합님은 속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들이 각 건물에 있는 측실들 주변에서 속삭여졌다. 히데요시에게 씨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히데요시의 살을 접해왔던 측실들은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렇게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만약 히데요시의 기능이 온전하다면 과거에 누군가가 임신했을 터였다.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의심스러웠다.
 
그렇지, 의심스럽지
 
라고 네네야말로 히데요시와의 함께 덮은 이불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네네는 그런 이상함을 절대 입밖에 내는 일 없이, 츠루마츠의 탄생을 토요토미 가문의 정실로서 크게 축하하였다. 정실로서만이 아닌 네네는 법적으로 모친이기도 했다.

 '어머님[お母さま=おかかさま]'
 
이라고 그녀는 불렸다. 츠루마츠의 모친은 둘이 있는 것이 되어, 요도도노도 '어머님'이라 불렸다. 히데요시나 츠루마츠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구별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면 요도도노는 단순히 어머님’, 혹은 엄마[おふくろさま]이며 네네는,
 
'어마마마[まんおかかさま]'
 
라 칭해졌다. ‘[まん]이라는 것은 만도코로[政所]의 만을 지칭할 것이다. 츠루마츠에게 물건을 보낼 때도 네네 자신, -이것은 어마마마가 보내는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

 츠루마츠의 출생은 오우미 계열의 다이묘우[大名]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개가(凱歌)였을 것이다. 요도도노가 토요토미 가문에서 자리잡고 있던 위치는 측실에서 생모(生母)으로 껑충 뛰어 오른 것이다. 토자마[様][각주:4] 다이묘우들도 키타노만도코로에게 선물을 보내기 보다는 요도도노에게 더 정성 들여 선물을 보내게 되었기에, 여러 다이묘우[大名] 사이에서 네네의 위세는 당연하게도 후퇴했다. 네네는,
 
-
요도도노가 큰 공을 세웠군요.
 
라고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코우조우스 이하 네네 휘하의 여관들에게 있어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으며,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항상 가시 돋친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대로 츠루마츠가 어른이 된다면 토요토미 가문의 중심에 요도도노와 이 적자가 자리잡게 되며, 키타노만도코로의 위세 같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깃거리나 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츠루마츠가 출생한 다음 해인 1590 8.
 
히데요시는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가 칸토우[東]에서 패권을 쥐고 있던 호우죠우 씨[氏]를 그들의 거성(居城)오다와라[小田原]에 몰아 넣었다.
 
히데요시는 장기 포위 방침을 취하여, 성안을 천천히 말라 죽이는 한편 포위한하고 있는 심심해 하는 부하 사졸들을 위해서 유녀(娼女)들을 불러 모으거나, 사루가쿠[]판을 벌리거나 하였다. 또한 다이묘우[大名]들에게는 각자의 처첩(妻妾)들을 부르게 하였다.

 [그렇게 하였다]

 고 네네에게도 편지로 알려왔다. 그 편지라는 것은,

재빠르게 적을 새장 속에 집어 넣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위험한 전투는 없을 것이기에 걱정 마시길.
도련님(츠루마츠)이 보고 싶지만, 그러나 이것도 장래를 위해서, 천하를 평온하게 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니 그립다고 생각하는 기분도 떨쳐버릴 수가 있다. 나도 여기서 뜸 같은 것을 받으며 몸에 신경 쓰고 있으니 아무쪼록 걱정하지 말길.

 어쨌든 이번 오다와라 싸움은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시하였다. 그 때문에 다이묘우[大名]들에게는 마누라를 이곳으로 불러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라고 히데요시는 본제에 들어갔다. 요컨대 히데요시는 요도도노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그 점에 대해서 네네의 심정과 입장을 살피고 자질구레하게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후 또한 거기에 그녀의 자존심에 주름이 가지 안도록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붓을 멈추지 않고 단번에 써내려 갔다.

우와같이(위와 같이)
싸움이 오래될 것이라고 말하였슨 즉
그 때문에
요도 녀석을 부르려고 하네
그쪽도
슬슬 요도에게 말하여 이쪽으로 오는 건에 대한 준비를 시키게
그쪽 다음은 요도도노가 나랑 마음이 맞는 것 같더군

 정실인 네네에게서 요도도노에게 오다와라로 내려가라고 명령해 주길 바란다, 준비를 시켜주게~하고 히데요시는 그녀의 지위와 체면을 그렇게 세워주고, 그녀가 가질 것 같은 불쾌함을, 그렇게 명령하게 함으로써 바꾸고자 하고 있었다.
 
여전하시군
 
하고 네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히데요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마음 밑바닥을 꿰뚫어보면서도 이래서는 화내기도 조금 그랬다. 더구나 편지에서,

그쪽 다음으로 요도도노가 나랑 마음이 맞는다.
 고 뻔뻔하게 네네를 우선시하는 것 같아서 이 편지 자체가 네네에 대한 사랑의 편지인지 하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욱이 말미에는,
나도 늙었다.
 는 한 줄을 히데요시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곧이어 오다와라에서 행해질 터인 요도도노와의 사이의 뜨거운 이불 속에 대해서 네네의 상상이나 연상을, 이 한 줄로 막아버리고자 하는 배려이며 이것은 네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는 뭐 둘러대기에는 좋지만 그러한 상냥함의 표현으로 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늙었으니 네네는 조금만 질투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라고 네네는 코우조우스에게 보여주었다. 네네는 오다와라에 오라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것을 코우조우스에게 읽게 하여도 치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서는 히데요시가 네네를 요도도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네네의 지위를 요도도노에 대해서도 윗줄이며 명령권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다와라에서 확인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네는 요도도노에 대해서 그리 가벼이 몸을 움직여 자신의 입으로 준비를 시킬 정도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네네라면 오히려 히데요시도 편했을 것이다. 이번 경우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 편지를 써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잘 하도록 힘써주세요

 라며 코우조우스에게 명령했을 뿐이었다. 코우조우스는 당혹했다. 요도도노에게 어떻게 힘쓰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하며 어느 정도로 요도도노의 준비를 도와야 하나?

 “…글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사옵니까?”

 라고 네네에게 되묻자,

 뭘 당혹해 할 것은 없습니다

 라고 처음으로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네네가 말하기를 자기에게도 이렇게까지 마음 쓴 편지를 보내는 히데요시이다. 당사자인 요도도노에 대해서도 편지를 보내어 충분한 것을 세세하게 지시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쪽에서 뭔가를 해 줄 것도 없다. 있을 턱이 없다. 쓸데 없는 것을 하면 반대로 창피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코우조우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히데요시의 편지에는 네네에게서 요도도노에게 말하라고 써있지 않은가?

 코우조우스도 융통성이 없으시군요

 네네는 한번 웃고는,

 그것은 즉, ‘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히데요시의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부는 이미 네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만으로 목적을 이루었다. 내용에 대해서 거기까지 꼼꼼히 할 필요는 없었다.

 당신이 요도도노의 늙은 시녀들에게 이번에 칸토우[東]로 가는 거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말 정도만 해 두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라고 네네는 말했다.

  1. 노부나가는 부하들이 쓸데 없이 축재(蓄財)하는 것을 싫어했다. 영지(領地)를 하사하면 그 영지에 걸맞게 부하들을 등용하여 더 많은 활약을 하길 원했다. 그 예로 중신 서열 No.1인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 信盛] 같은 경우는 영지를 하사하여도 그것을 이용하여 부하들을 등용하기는커녕 자기 배만 불리자 쫓아버릴 정도였다(물론 이것 외에도 서열과 영지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던 것도 있었다). [본문으로]
  2. 제대로 된 정식 승려가 되기에는 돈과 빽이 필요했다. [본문으로]
  3. 우리나라에 ‘개성상인’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일본에도 ‘오우미상인[오우미쇼우닌=近江商人)]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재가 뛰어났다. [본문으로]
  4. 여기서는 토요토미 가문의 직속이 아닌 나중에 항복한 다이묘우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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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4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곧 츠루마츠의 사망과 히로이의 탄생이 이어지겠군요(ㅎㄷㄷ..)

    최근에 이 시기와 관련이 있다면 있는 엔도 슈사쿠의 '숙적'을 읽고 있어서인지 한결 더 다가 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카톨릭 출판사답게 전문번역이라고 보기엔 좀;; 기타노만도코로를 북정소로 번역한 센스는;;; 히데요시의 어머니를 '대정소'로 번역 해 놓은것도 참..)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5 0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저도 돈 받고 일반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번역을 한다면, 북정소나 대정소로 번역했을 걸요 ^^
    거기다가 각 이름들도 국어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카토우 키요마사 -> 가토 기요마사... 라던가..
    이시다 미츠나리 -> 이시다 미쓰나리....
    라던가....
    .
    .
    저는 이글을 번역할 때, 당시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아는 분들을 기준으로 쓰는 것이고, 아마 카톨릭 출판사의 번역가 분은 당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분들도 생각해야 하기에 그러시지 않으셨을지..

    참... 근데 淀殿는 어떻게 표현했나요? ^^
    요거 번역의 차이도 제 나름대로 흥미가 일더군요.
    요도도노인지... 요도기미...인지.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도기미로 나왔던걸로... 음, 그런데 요시카와 모토하루는 좀 에러였던걸로(;;;) 쩝;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5 1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도기미군요...^^
    (당시는 사용되지 않던 에도 시대 비속어다 보니 전 절대 사용하지 않으려 해서 어떻게 하셨나 궁금해서요)

    확실히 모토하루의 성은 에러군요... 하긴 센고쿠 덕후들이나 킷카와라고 읽지 보통은 요시카와로 읽겠죠^^(...그거 번역한 분은 조금 공부가 부족했나 보군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초반에는 키츠카와(킷카와를 한국 표기법으로 쓰면 키츠카와가 되는가요? 좀 다를법 하긴 하지만서도..) 모토하루로 적더니만 2권에서 근성이 떨어졌는데 요시카와 모토하루로 쓰는 센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분이 썼다던데 센고쿠 덕후분은 아니셨던듯(ㅁㅎㅎ..)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떨어졌는데->떨어졌는지

    개인적으로 ctrl+V가 안되서 전부수정은 좀 버겁군요(쿨럭)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6 0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키츠카와는....(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책에 한자 위에 후리가나 붙여 있는 것(ルビ)이... 워낙 작다보니 'つ'하고'っ' 가 구분이 안 가셔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 초반에는 독자를 위해서 きつかわ 라고 루비가 달려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센고쿠 덕후가 아니시다 보니 킷카와는 들어보지 못하셨겠고, 당연 키츠카와...) 하지만 책에서도 한번 나온 이후부터는 그냥 한자만 있었을 테고...
    그러다보니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새로운 모토하루의 등장인가!! 더구나 이 놈은 요시카와이고..."가 되지 않았을지...(즉 번역가분은 스토리를 이해 못하면서 번역하셨나 보네요..아쉽군요.)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つ'와'っ'구분이 안되었는데, 21세기 들어와서는 그것도 구분이 될 수 있게 발전하더군요.

    ps;대사관이라고 하니 예전에 얼핏 흘려 본 것이 떠오르는군요... 한국 어느 외교관은 일본 주재(駐在)인 주제에 일본말은 못하고 영어만 써서, 어느 신문란에 가십 처리 된 것이 기억나는군요. 쓸데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지 일반지는 아니고 스포츠지 사회면에 조그맣게...(물론 일본 스포츠지도 막장이라 없는 사실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한국 외교관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s2;저도 오타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다보니 신경쓰지 마시길.. ^^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6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도 슈사쿠 원서를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네요(ㅎㅎ)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3.27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도 깃카와씨는 있지 않나요? 요시카와씨가 더 흔해서 그렇지…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9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겠죠...저는 갑자원 야구 중계 보면서 "노부나가(信長)"란는 성(姓)도 본 적이 있으니까요.

一.

검은 백합 한 송이
라는 편지가 네네()에게 전해진 것은 1587년의 한창 더울 때였다.
근시일 내에 보내겠습니다.
라고 편지를 보낸이는 말하고 있었다.
 
정말일까?’
 
네네는 처음엔 그 목록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백합(百合)이 검다니 - 그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너무 괴이했다.

 뭔가의 착오겠죠

 라고 네네는 시녀(侍女)들에게도 말했다. 그녀는 남편인 히데요시[秀吉]가 그러했듯이 세상의 괴이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네네[々], [々]라고도 쓴다. 네이코[寧子]라고도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귀족이 되면서부터였다. 귀족의 여성은, 예를들면 '켄레이몬인 토쿠[門院 ][각주:1] '식으로 子자가 붙는다. 남편 히데요시가 칸파쿠()가 되었을 때, 칸파쿠의 정실(正室)은 키타노만도코로[政所]라고 불리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세간(世間)에서 그리 불렸다. 그 즈음 궁정의 공식 문서에서는,
 
[
토요토미노 요시코[豊臣 吉子]]
 
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읽느냐에 대해서 그녀 자신에게 어떤 주체성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吉이라는 글자가 복스럽고 좋다는 뜻에서 그 글자가 선택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네네가 어떤 글자의 이름으로 쓰여지건 그녀가 종일위(從一位)라는 여성으로써 최고의 위계(位階) 소유자이며,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의 가정과 후궁, 여관(女官)들의 총지배자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목록을 헌상한 사람은 삿사 나리마사[ 成政]였다.
 
나리마사는 토요토미 가문에게 있어서는 정치적 범죄자였다. 오다 가문[織田家]의 토박이 가신(家臣)이며, 노부나가[信長]에게 그 무용(武勇)과 강직(剛直)함을 사랑 받아 계속해서 승진을 거듭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군의 장수가 되었다. 노부나가 말년에는 호쿠리쿠 탄다이[北陸探題[각주:2]]였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막하(幕下)에 배속되어 엣츄우[越中] 일국()을 소유하는 신분이 되었다.
 
노부나가가 죽어 호쿠리쿠의 시바타 카츠이에와 히데요시가 그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웠을 때, 나리마사는 당연하게도 카츠이에 측에 서서 히데요시에게 대항하였다. 단순히 정치상의 소속으로 그렇게 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이 인물만큼이나 극도로 히데요시를 싫어한 옛 오다 가문의 장수도 드물었다.

 히데요시는 호쿠리쿠를 제압하고 엣츄우[越中]로 진격해 들어가 나리마사를 항복시켰지만, 이 정도로 히데요시를 싫어하는 인물의 목숨을 이외로 살려주었다. 세상은 히데요시의 도량에 놀랐는데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나리마사 자신이었다.
 
어째서 내 목숨을 살려준 것인가?’
 
라는 의문은 나리마사와 같이 단순하고 목이 뻣뻣한 인물에게 있어서는 생애 풀 수 없는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히데요시는 나리마사보다도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였다. 자신을 혐오하는 나리마사까지 죽이지 않았다는 평판은 천하로 널리 퍼져 나가, 그것을 전해들은 여러 지역의 대항자(對抗者)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성을 열고 활을 땅에 던지며 복종해 올 것이다. 그런 효과를 히데요시는 기대했다. 이 효과를 더욱 크게 하기 위해서 나리마사에게 엣츄우의 일개 군()을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세상은 놀라 자빠졌다. 거기에 이어 큐우슈우[九州] 정복 후, 일본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라고 일컬어지는 히고[肥後] 50여만석을 나리마사에게 주었다.
 
어째서 이 정도로 후은(厚恩)을 받는 것인가?’
 
라고 나리마사는 생각하여, 이 인물 나름대로 겨우 답을 낸 것이 네네의 존재였던 것이다.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뒤, 나리마사는 잠시 오토기슈우[御伽衆[각주:3]]로서 히데요시를 가까이서 섬기고 있었다. 이 즈음 네네에게도 배알(拜謁)하였고 또한 선물도 보냈다.
 
이 부인(婦人)에게 허술히 해서는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나리마사에게 있었다. 일단 패해서 살아남은 인물인 만큼 그런 종류의 감각은 오히려 남들보다도 더 날카로워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토요토미 가문의 인사(人事)에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모신(謀臣)쿠로다 죠스이[田 如水]나 초창기부터 선봉대장(先鋒大將)하치스카 마사카츠[蜂須賀 正勝] 등이 아닌, 이 키타노만도코로라는 것을 나리마사도 알게 되었다.

 카토우 키요마사[加藤 正]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를 나가하마[長浜]의 꼬꼬마 코쇼우[小姓] 때부터 손수 길러 어렸을 때의 싹수부터 꿰뚫어 보아 일치감치 히데요시에게 추천한 것이 그녀라는 소문도 있었고 그 외에도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나리마사는 많이 듣고 있었다. 히데요시도 그녀의 인물 감정에는 신용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그것을 존중하였고 그 의견을 허술히 하지 않았다. 토우키치로우[藤吉[각주:4]]였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토요토미 가문은 히데요시와 그녀의 합작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네는 명랑한 성격에 더구나 거드름 피우지 않았고 조금도 권세를 휘두르는 일 없는 부인이었지만, 그러나 단 한가지 버릇이 있다면 키타노만도코로가 되어서도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가문 내의 인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여 인사(人事)에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평가에 사심이 없고 적확(的確)하다는 점에서 히데요시도 그것을 존중하여 때로는 상담하거나 하였다. 자연히 그녀의 위복(威福)과 다정함을 우러르는 무장(武將)의 무리가 형성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카토우 키요마사나 후쿠시마 마사노리 거기에 그녀의 양갓집의 아사노 나가마사[野 長政], 요시나가[幸長] 부자 등은 그 살롱(salon)의 가장 오래된 구성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삿사 나리마사가 자신의 기괴할 정도의 영달이 어쩌면 키타노만도코로덕분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것도 이런 토요토미 가문이었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저 부인은 나 같은 놈에게 호의를?’
 
이라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았다. 네네의 남성에 대한 호의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어, 궁중에서 사교(社交)가 뛰어난 인물보다도 전쟁터에서 무용이 뛰어난 자에 대한 평가가 후했다. 남자의 와일드함과 강직함을 사랑하였고, 예를 들어 그들이 저돌적인 것으로 인하여 실패를 하였다고 하여도 그녀는 오히려 그 실패를 미덕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히데요시가 언젠가 두서너명의 무사(武士) '면밀하지 못한 자이다'라는 이유로 추방하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듣고 그들의 위해서 여러 번 옹호하여 결국에는 구해 준 적도 있었다.
 
그녀의 아래에 모이는 무장들의 무리는 이윽고 무단파(武斷派)라는 인상을 세상에 끼치기에 이르는 것도 거슬러올라가면 그녀의 그러한 기분에 의한 것일 것이다.

 나리마사는 그런 점에서 자신과 같은 남자가 키타노만도코로의 호감을 얻고 있다는 이유를 알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나리마사는 그녀나 히데요시와 같은 오와리[尾張]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런 점에서도 다소의 경향이 있어, 토요토미 가문에 많이 있는 오우[近江] 사람들에 대해서는 겉으로만 대하는 태도를 취하였고 자신과 같은 오와리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친근감을 보였다. 오와리 서부 카스가이 군[春日井郡] 히라 촌[比良村] 출신인 삿사 나리마사에 대해서는 - 이것만으로도 네네에게 타인(他人)이라 생각할 수 없는 기분을 들게 하였을 것이다.
 
이 호의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
 
고 나리마사는 생각했다.
 
이런 경우 인사(人事)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갖고 있는 키타노만도코로와의 유대(紐帶)를 강하게 해 두는 것이 앞으로 먼 지방에서 생활하는 몸으로써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보내야 좋을지에 대해서 나리마사는 곤혹해 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물욕(物慾)이 없는 것에 더해 지금의 신분이라면 무엇을 보내건 그다지 기뻐하지도 않을 것이다. 깊게 생각한 끝에 나리마사는 자신이 예전에 지배하고 있던 엣츄우[越中]의 명산(名山) 타테야마 산[立山]의 높은 곳에 검은 백합이 핀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 정도로 진귀한 꽃은 없었다. 엣츄우에서조차 검은 백합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어, 기껏해야 쿠로베[部] 계곡에 사는 사냥꾼이나 타테야마 산의 권현(權現[각주:5])을 존숭(尊崇)하는 수행자들 몇몇이 그것을 보았다고 하는 정도였다. 나리마사는 이 검은 백합을 보내고자 하여, 한때는 자신의 부하이기도 했던 엣츄우 지역의 무사들에게 급사(急使)를 파견하여 그 채집을 의뢰하였다. 진귀한 것이라고는 하여도 현지의 나무꾼이나 사냥꾼에게 부탁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그루를 얻어서는 그것을 통에 넣어 오오사카[大坂]로 운반시켰다. 꽃은 뜨거운 날씨를 싫어하기 때문에 수송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힘이 들었다. 그것이 오오사카에 있는 나리마사 저택에 도착하자 나리마사는 곧바로 그 중 한 송이를 금(金)으로 그림이 그려진 검은 옻칠을 한 통에 꽃꽂이하여 키타노만도코로의 비서(秘書)인 늙은 비구니 코우조우스()에게 보내었다. 코우조우스도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두지 않고 곧바로 키타노만도코로의 방으로 가지고 가, 그곳의 도코노마(床の間)에 놓았다.

 이것이 편지에 있던 검은 백합인가……”

키타노만도코로는 말을 입에 머금은 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목을 쭈욱 내밀을 수 있을 만큼 내밀어 꽃에 몰입되었다. 검다……기 보다 엄밀히 말해 검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상상했던 칠흑의 꽃잎보다도 그 자연스런 색조가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빛 속에서는 선명하게 검었다. 곧이어 키타노만도코로는 통통한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므츠지쥬우[従]님은 참으로 친절하시구나

 라고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나리마사는 이 당시, 하시바 성[羽柴姓]을 하사 받아[각주:6] 므츠노카미[守]가 되어 지쥬우[従]에 임명 받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하시바 므츠지쥬우(羽柴 陸)라 통칭되고 있었다.

 오히려 무사(武士)는 이래야 하는 것이죠

 라고 목소리를 적셔서 말했다. 강직하고 굽힘이 없는 속에 이런 친절함을 가진 인물이야말로 오다 가문[織田家]의 하급 무사 가문에서 자라난 그녀의 미의식(美意識)에 걸맞는 무장상(武將像)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히데요시가 총애하고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등 오우미[近江] 계의 봉행 나부랭이들에게 이렇게 빛과 색깔을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 속으로 비교해서 더욱더 나리마사라는 인물을 중히 평가하며,

 역시 사람에게 깐깐한 오다 우다이진[織田 右大臣[각주:7]]님의 눈에 든 사람이구나

 라고 말했다. 거기에 얄밉다고 할지…… 엣츄우[越中]에서 수백 리 길의 산과 강을 오르고 건너게 한, 이 꽃을 단 한 송이만 보낸 나리마사의 생각이었다. 그 터무니없는 노력과 비용 속에서 일편의 와비[[각주:8]]를 찾아낸 나리마사는 평소,

 졸자(拙者)는 차()를 모릅니다

 라고 말했으면서도 이것은 다도(茶道)의 극의(極意)가 아닌가?

 세상에 검은 백합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겠죠

 이것을 모두에게 보여주었으면는 생각에, 이 검은 백합을 위한 다회(茶會)를 열고자 그 준비를 명했다. 그녀가 대접해야 하는 주인(=테이슈(亭主))이기는 했지만, 다회를 실제로 운영하는 접대(=시타토리모치(下取持))에는 사카이[]의 모즈야[屋]의 젊은 부인이 맡았다. 모즈야의 부인은 센노 리큐우[千 利休]의 딸 '오킨[おきん]'을 말하며, 키타노만도코로를 시작으로 토요토미 가문의 부인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 다회는 성공하여 큰 평판을 얻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토요토미 가문의 후궁에 있는 귀부인(貴婦人)들로 당연히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부인들은 모두 이 높은 곳의 눈에서만 핀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에나 나오는 꽃에 감탄의 목소리를 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눈에 복을 받을 수 있어 일생의 영광이옵니다

 라고 입을 맞추었다.

 후세(後世).
 
이 다회에는 이야기가 더 추가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요도도노[淀殿]를 등장시키고 있다. 요도도노도 이 다회에 손님으로 초대되었는데 미리 검은 백합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거기에 한 번 더 궁리하여 자신도 수하를 엣츄우[越中]에 파견하여 검은 백합을 채집시켰다. 엣츄우[越中]는 삿사 나리마사 다음의 다이묘우[大名]를 두지 않고 토요토미 가문의 직할령으로 삼고 있었다. 직할령의 지배는 오오사카[大坂]의 봉행(奉行)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이 봉행들이야 말로 이시다 미츠나리,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 등 요도도노를 보호자로 우러르고 있는 오우미[近江]계의 문관(文官)들로, 이 점 그녀에게 있어서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이렇게 채집시킨 것이 아직 오오사카에 도착하기 전에 요도도노는 키타노만도코로가 주최한 다회의 손님이 되었다. 다른 손님들은 한 송이의 검은 백합에 이 세상의 신비에 놀라움을 보여 주었지만, 그러나 요도도노만은 예외였다.
 
조용히 그것을 지긋이 본 후 형식적으로만 찬미하였다. 이 담담한 태도가 키타노만도코로를 의아케 하였다. 원래 둔감한 것일지도 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요도도노는 검은 백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해 하지 않는 것, 그 둘 중에 하나였다.

 그로부터 3일 후.
 
일이 명확해졌다. 요도도노가 사는 니노마루[[각주:9]]의 긴 복도(長廊下)에서 꽃꽂이에 쓸 꽃을 채집하는 행사가 열려 키타노만도코로도 초대되었다. 그녀가 코우조우스를 데려 가자, 3일 전에 그녀가 그토록 자랑하고 그토록 떠들썩하게 다회까지 열게 한 그 검은 백합이 다른 마타리 같은 잡초와 함께 바구니에 마구 담겨 주변을 장식하는 꽃으로 꽂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한 송이나 두 송이가 아닌 20, 30이나 아무렇게나 꽂혀가며,
 
-
검은 백합 같은 것은 진귀한 꽃도 아니다.
 
고 키타노만도코로의 무지함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이런 창피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그녀의 굴욕은 공개되어 버렸다. 이 문제는 토요토미 가문의 여성들을 지배하는 사람으로서의 권위에 관한 것이 되었다. 그녀는 요도도노를 미워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이 모든 것이 검은 백합을 헌상하여 이런 굴욕을 맛보게 한 삿사 나리마사에게까지 증오하게 되었다. 곧바로 히데요시를 움직여 나리마사에게서 새로운 영지(領地)인 히고[肥後]를 빼앗아 결국에는 셋츠[
津] 아마가사키[尼崎]에서 할복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고 한다.
 
이 이야기를 후세 후세 사람들은 믿었지만, 그러나 사실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나리마사가 영지(領地)를 몰수당한 1587년에는 아직 요도도노가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나 되지 않았나 하는 시기이며, 저 만큼의 기획을 짜서 키타노만도코로와 대항할 정도의 위세(威勢)는 당연하게도 아직 가지지 못했다.
 
또한 삿사 나리마사의 실각(失脚)은 다른 사건과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으로 검은 백합의 이야기를 빙자하기에는 너무 유치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요도도노라는 두 규벌(閨閥)의 다툼이 후에 토요토미 가문의 정치와 운명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워간다는 사실을 사실 이상으로 상징화했다는 점에서 이 정도로 높은 함축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또 없을 것이다.

  1. 타이라노 키요모리[平 清盛]의 딸로 부친의 의향에 따라 황실에 들어가 안토쿠 텐노우[安徳天皇]를 낳았다. 헤이케[平家] 전성기의 상징적 인물. [본문으로]
  2. '탄다이’란 그 지역의 군사, 정치, 판결권을 소유한 총책임하는 기관 혹은 인물. [본문으로]
  3. 히데요시의 말 상대 [본문으로]
  4. 히데요시가 미관말직일 때의 이름 [본문으로]
  5. 일본은 산을 신으로 여기는 산악신앙이 있어, 타테야마 산을 이자나키[伊邪那岐]의 화신이라 여겼다. 또한 일본의 신들을 불교의 부처님들의 화신이라는 신불습합(神仏習合) 사상에 따라 이자나키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화신이라고도 여겼다. [본문으로]
  6. 히데요시가 토요토미 씨[豊臣氏]를 칭하기 이전에 사용했던 성(姓). 유력한 인물들이나 공이 많았던 부하들에게 이 하시바 성을 하사하여 일문(一門)의 효과를 기대하였다. [본문으로]
  7.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를 지칭. [본문으로]
  8. 심플함 속에서 맑고 한적한 정취 [본문으로]
  9. 두 번째 성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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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04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삿사 나리마사 이야기가 이 이야기였군요.. 어쩐지 겨우 이런일로 죽인다니 그 현명한 기타노 만도코로치고는 단순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뭐, 아무래도 자기 지방 사람들을 우대하는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싶습니다. 글쎄요.. 왜그럴까요?(쿨럭;)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05 0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화나 에피소드에 있는 이야기들은 뛰어난 인물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은 백합이야기도 그런 의미가 아닐지...

    저도 그게 이해가 안가더군요... 자기 지역 출신 우대가...
    임진왜란 때 출진한 어느 부대(...음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군요)는 히데요시와 같은 오와리 출신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무장단과 그렇지 않은 하급자들의 알력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렇게 전 생각합니다.
    당시는 세금 & 병사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람 머리수를 갖추어야 했기에, 자기 영내의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히 다른 쿠니(国)의 사람들과 만나기 힘들었고, 지금도 외국인을 배척하듯이 당시는 더욱 배타적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다른 지역의 흉은 곧바로 받아들이지만, 칭찬은 믿기 힘든 것도 또한 사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없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일본은 있다"는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당시의 관습법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国質,郷質라는 것이 있어,
    같은 쿠니, 혹은 마을의 A라는 사람에게 타지역의 B라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며, B는 A와 같은 쿠니 혹은 마을 사람인 C에게 돈을 받거나 물품 대금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면에서 사기 치는 사람이 분명 생겼을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서로간에 불신도 싹트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06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오오.. 생각할 점이 있는 답변을..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07 1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단 것에 오타가 수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군요.. --;;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

  5. 이노센스 2010.02.13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현은 일본어로는 곤겐이라 읽습니다. 이는 인간의 몸을 입고 속세에 내려온 부처를 이르는 호칭으로서 명망이 높은 인물에게 종종 붙여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유명한 경우가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죽은 뒤에 도쇼구에 모셔져 도쇼다이곤겐의 칭호를 얻었지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0.02.22 0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신호(神號)같이 고유명사를 제외하곤 '권현'이란 불교 용어를 일본식으로 고쳐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권현은 신이 이 세상에 임시의 모습을 가지는 것으로 산악신앙과도 많은 연관이 있던 것 같더군요. 굳이 인간의 몸을 입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지식이 부족해서 묻습니다만 이에야스 말고 또 権現의 호를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명망 높은 인물에게 종종 붙여진다고 하시니 생각 외로 여러 명이 있었나 보군요.

      개인적으로는 이에야스가 곤겐이 된 것은 텐카이[天海]와 그의 말에 넘어간 히데타다[秀忠]에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6. 이노센스 2010.02.13 22: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의 하단이 잘리는 것이 아쉽네요. [도요토미 가문 사람들]은 저도 서울 교보문고에서 일본어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나는 데 번역을 생각보다 잘 해놓으셔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리마 사람 이야기]는 없어서 아쉬웠지만요. 다만 한글로 옮기기 곤란한 말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다소의 장난기 어린 표현이 시바 료타로의 간결하고 침착한 문장 스타일을 망가뜨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어 번역보다 돌출되는 문제인 듯합니다.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0.02.22 0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이버에서 이쪽으로 오면서 뒷글이 많이 잘리더군요....근데 이번 편은 한 번 손을 본 곳이라 잘리지 않았는데...

      '하리마 사람 이야기'는 쿠로다 죠스이[黒田 如水]가 주인공인 '하리마 바다 이야기[播磨灘物語]'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장난기 어린 표현...이라....
      ^^ 그렇군요. 이노센스님은 제가 쓴 장난기가 담긴 표현을 어떻게 표현하실수 있으시려나요? 시바 선생의 간결하고 침착한 문장 스타일을 살리는 방법 좀 알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다음 해인 1598 4.

 히데아키[秀秋]는 귀환 명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키요마[清正] 이하 수비군을 전장(戰場)에 남겨둔 채 후시미[伏見]개선(凱旋)하였다. 히데아키는 전쟁터에서 얻은 햇볕에 멋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멋진 때였을 것이다. 출발할 때는 아직 공사 중이었던 후시미 성[伏見城]은 완성되어 있었다. 히데아키는 가슴을 펴고 입성하여 히데요시를 배알(拜謁)하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히데요시[秀吉]의 노성(怒聲)이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다.

 히데요시는 울산성 구원 때 히데아키가 졸병들과 함께 창질이나 한 것에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나는 너 같은 놈을 상장(上將)으로 삼을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까지 말하여 히데아키의 공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뭔 일이래

 처음엔 멍했다. 이어서 이거야 말로 조선에 있는 여러 장수들 모두가 원망하고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참언(讒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히데아키는 천성이 소심한 탓인지 격앙()하여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 더듬은 탓인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것이 양아버지였으면서 이모부를 공갈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 않아…아니…않사옵니다. 전하는 트린 틀린 보고를 받으신 거다 아니 겁니다.”

 

 라고 외치곤,

 

 그렇다면 여기에 감찰관들을 불러 주십시오. 그 지부노쇼우[冶部少=미츠나리] 놈도 불러주세요. 전하의 앞에서 흑배 아니 흑백을 가릴 테니

 

 니 뭔 말을 한다냐?”

 

 히데요시도 오와리[尾張]의 사투리로 히데아키보다 더 큰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비해 히데요시는 이미 (老衰)해 있어 그 쇠약함에는 죽음의 그림자 조차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때 역사를 창조했던 그의 이성(理性)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단지 감정(感情)만이 그의 몸을 가늘게 흔들고 있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이 괴이한 소년을(이라고는 해도 21살이었지만) 귀족으로 만들어 주며, 거대 다이묘우도 만들어 준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은혜를 망각하고 이 늙어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큰소리 치며 공갈을 하다니 이 무슨 배은망덕이란 말인가.

 

 히데요시는 혓바닥을 잃어버린 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슬픔과 분노가 그를 지배하여 호우(설명, 그림) 속에서 떨었다. 히데요시가 이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원래 말이 많았으며 재치가 뛰어났고, 너무나도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던 히데요시는 - 그런 점에서도 지금까지의 히데요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 말 않은 채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자리에 들겠다

 

 히데요시는 시중드는 신하에게 그리 말했다. 먼젓번에는 몸이 쇠약한 나머지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려 몸이 오줌으로 적셔진 적도 있었다. 오늘의 히데요시는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분했고 불안했다. 저 배은망덕한 놈이 히데요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 상태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데요시는 히데아키의 처분을 새삼 결심하였다.

 

 한편 히데아키는 아직도 성안에서 큰소리를 질러대며 히데요시의 측근들에게 욕설을 퍼부는 식으로 지랄하고 있었다. 미츠나리를 이리 내오라~ 고 하였다.
 그
미츠나리가 나왔다.

 

 킨고님 부르셨습니까?”

 

 미츠나리는 양 눈을 똑바로 쳐들고, 히데아키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히데아키님의 지금 상태로는 히데요시님의 분노가 당장 풀릴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나중에 히데요시님의 기분이 풀리시면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겠사오니 오늘은 일찍 자택으로 돌아가시옵소서

 

 라고 조금도 떨림 없이 말했다.

 

 ……지부쇼우!!”

 

 히데아키는 작은 [脇差]의 칼자루를 쥐고 달려 들었다. 진짜로 벨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승이며 가로(家老)인 야마구치 겐바노카미 마사히로[山口 玄蕃頭 正弘]가 제지했다. 그 손을 히데아키는 떨쳐버리고서는,

 

 네 놈도 저 지부쇼우와 한 편이냐?”

 

 라고 소리질렀다. 이 폭언에는 아무리 마사히로라도 참을 수 없어, 이 일이 있은 뒤 히데요시에게 청하여 스승 겸 가로의 자리에서 물러나, 그의 영지(領地)카가[加賀] 다이쇼우지 성[大聖寺城](6만석)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이때 부속 가로인 스기하라 시게마사[杉原 重政]가 지랄하는 히데아키의 등 뒤에 매달리며 말렸다. 그러는 사이 이러한 소동을 알현(謁見)에 동석하고 있던 토요토미 가의 대로(大老)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곧이어 일어서서는,

 

 킨고님, 졸자는 성을 나서려 합니다. 함께 나가시지요

 

 라고 조용히 말하자, 히데아키는 일종의 위압감에 굴복했는지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몸이 일순간에 멈추어지며 얌전해졌다. 이 광경은 익살스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야스는 이 즈음 무게감있고 의지할만한 장로의 풍모로 토요토미 가문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자신의 뱃속은 히데요시가 죽은 뒤 반드시 올 것인 정변(政變) 만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예전부터 키타노만도코로[政所]에게 신뢰를 받고 있었던 운도 있기에, 키타노만도코로를 통해 그녀를 따르는 다이묘우[大名]들의 신뢰를 얻고자 틈만 나면 은혜를 팔려고 하였다. 히데아키는 어리석다고 하여도 52만석의 거대 다이묘우이며, 키타노만도코로의 조카이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에야스는 이 젊은이에 대해서 과분할 정도의 친절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히데아키는 이에야스에게 껴안기 듯 성을 나왔다. 자택에 돌아가 술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3~4잔 정도로 숨 쉬는 것을 괴로워할 정도로 취했다. 원래 이 남자는 술에 약했다.

 자택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히데요시에게서 히데아키에게 사자(使者)로 코우조우스[主]가 파견되었다. 코우조우스에 대해서는 제 1 [살생관백]에서 언급하였다. 토요토미 가문 가정 내의 것들을 다스리는 여관장(女官長)이다. 히데아키는 토요토미 일족의 예우를 받고 있었기에, 사자도 딱딱한 관리가 아닌 토요토미 가문의 여관장이 맡았다. 히데츠구의 쥬라쿠테이[第]에서 물러나게 설득한 것도 이 비구니였다. 사람됨이 둥글둥글하여 누구에게나 경애 받았다. 그 비구니가 토요토미 가문의 두 양자인 경우에는 2번 다 저승사자가 되었다. 비구니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치쿠젠[筑前]과 그 외의 영지(領地)들은 몰수 되었습니다. 어여 빨리 에치젠[越前]으로 옮기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외치려 하였다. 하지만 말문이 막혀 입만 뻐끔대며 숨이 거칠어 졌다. 코우조우스는 이런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도망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히데아키가 비구니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봐~ 내는 죄가 없다

 

 전하의 말씀이십니다. 얌전히 따르시는 것이 신상(身上)에 좋습니다

 

 죄가 어없단 말이다. 그런데

 

 히데아키의 뇌리에, 형 뻘이었던 히데츠구와 그 처첩들의 비참한 최후가 떠올랐다.

 도 죄라고 하던 모반의 사실 등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가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다.

 

 나를 죽여라

 

 라고 외쳤다. 미친 것은 아니었다. 히데아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냉정하다고 생각하였다.

 

 죽여 주길 바란다. 살아 있는 동안은 전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에치젠[越前]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죽음을 내리신다면 더 이상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니! 그렇게 전해주게. 차라리 이 킨고[金吾]를 죽이라고

 

 코우조우스는 도망치듯이 저택을 나왔지만, 그러나 이런 상태로 성으로 돌아가 아까 본 모습을 보고할 순 없었다. 곤란한 나머지 타고 있던 가마를 재촉하여 큰 길의 서쪽으로 가 이에야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에야스에게 구원을 청하고자 한 것이다.

 

 어찐 일이신가?”

 

 이에야스는 잘 여문듯한 볼에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킨고님에 대한 것입니다

 

 킨고님?”

 

 킨고님은 어릴 때부터 성질이 사나워 한번 신경을 폭발시키면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사옵니다

 

 라고 히데아키의 상태를 고한 뒤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야스는 수긍하여 부하에게 구두로 계책을 알려 코바야카와[小早川] 저택으로 보냈다. 이에야스의 계책은,

 

 신상을 위해서입니다. 우선 이봉(移封)을 받아들이십시오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데아키는 치쿠젠[筑前]에서 곧바로 옮기지 말고, 또한 중신들도 옮기지 않으며, 우선은 부속 다이묘우[大名]의 부하들이나, 신규 채용한 부하들을 몇 명씩 에치젠[越前]으로 보내십시오. 한줄 요약하면 옮기는 척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졸자(이에야스)가 어떻게든 타이코우[太閤=히데요시] 전하에게 부탁하여, 명령을 철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이에야스의 이치에 맞는 더구나 마음이 담긴 조언에는 히데아키도 감격하여,

 

 어떻게든 잘 부탁 드립니다

 

 라고 모든 것을 맡겼다.

 

 다음 날 이에야스는 등성하여 누가 보아도 급한 일이 있는 듯이 히데요시에게 내알(內謁)을 청했다. 히데요시는 자리로 나왔지만 이에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쌍한 척을 하며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였다. 그 후 두 마디 정도 날씨나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한 후 물러났다.

 다음 날도 똑같이 내알을 청하였고 그러나 역시 똑 같은 짓을 하였다. 3일째도 그러했다. 히데요시는 수상히 여겨,

 

 나이후[内府=이에야스]께서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라고 물었다. 히데요시는 항상 이에야스에 대해서만은 부하라기 보다는 손님의 예를 취하여 다른 제후와는 다른 말씨를 사용했다.

 이에야스는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킨고 츄우나곤님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해 드리고 싶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알현을 청하였으면서도 막상 말할 때가 되면 전하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하여 이렇게 말씀도 못 올리고 있습니다.”

 

 ~ 그일 때문인가

 

 히데요시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그 후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에야스는 굳이 말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다음 날도 성에 올랐으며 또한 그 다음 날도 알현하여 끈질기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왜 그러신가? 아직도 킨고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가?”

 

 몇 일 지나 히데요시는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이에야스의 대답은 먼젓번과 같았다. 히데요시는 결국 참지 못하고,

 

 히데아키의 죄는 명백. 그러나 처분에 대해서는 나이후에게 맡기겠소

 

 라고 말했다. 이에야스는 희열에 찬 표정을 만들어,

 

 그렇다면 토요토미 가문의 먼 장래를 위해서 좋은 계책을 내 놓겠습니다.”

 

 고 절을 하며 대답했다. 히데요시는 그 말 만으로도,

 

 아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나이후의 그 말 한마디. 부처님의 목소리처럼 성스럽게 들렸습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탁 드리겠다는 말은 히데아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히데요리를 말한 것이다. 히데요리를 위해서 히데아키의 처분을 잘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성을 나와 자택에 코바야카와 가문의 가로들을 불러 모아 히데요시의 말을 전했다.

 모두 이에야스의 호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또한 이에야스는,

 

 나는 공의(公儀=정부(政府))의 대로(大老)로서 킨고님의 처분을 행하게 되었다. 본심을 말하자면 영지(領地)에 대해서는 예전과 같이 치쿠젠의 영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 그러나 손바닥을 뒤집듯이 곧바로 그럴 수는 없다. 히데요시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송구스럽다

 

 는 것이었다. 이에야스의 처분은 세심했다.

 

 우선 각각의 자택에서 근신(謹愼)할 것

 

 이라는 것과,

 

 그 후 좋은 소식을 기다릴 것

 

 이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이에야스가 보기에 히데요시의 생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죽어버리면 그 뒤는 흐지부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야스의 이 처분은 사무면에서 다소의 혼란을 만들었다. 이미 히데아키의 치쿠젠[筑前]의 옛 영토는 토요토미 가문의 직할령이 되었기에, 미츠나리 등은 코바야카와 가문에게 비우라고 재촉을 하였다. 히데아키는 다시 이에야스에게 울며 매달렸다. 이에야스는 이에 대해서,

 

 조금씩 반환하시길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코바야카와 가문은 영지(領地)를 조금씩 반납했다. 때문에 일부의 가신들은 코바야카와 가문에서 받았던 영지(領地)를 잃었기에 낭인(浪人)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낭인들이 100명 정도 생겼을 즈음 히데요시가 죽었다. 히데아키가 죄를 얻어서부터 4달이 지난 1598 8 18일이었다. 이에야스의 예상대로 히데아키는 그대로 옛 영토에 눌러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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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츠나리의 막장은 계속되는군요(;;;)
    -쓰던 코멘트가 다 날아가 버려서 이거야 원;;-

    코우조우스는 전하도 돌아가셨는데 어쩔련지 모르겠습니다(-_-ㄲ..)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08 2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서 '가끔' 다 쓰고 난 뒤 우선 Ctrl+C를 눌러 복사를 해 둡니다 ^^
    (문제는 가끔 하다 보니 어떤 때는 왕창 쓰고 난 뒤 그냥 전송했다가 날라가고 난 뒤에야,
    '아~ 왜 하필 오늘따라 복사 해두지 않았지..'하면서 후회할 때가 더 많지만 말이죠..--;)

    코우조우스는 키타노만도코로 쪽 인간이다 보니 그 후에도 잘 살았겠죠.(줄 잘 서는 것도 능력)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 블로그에서 안전하게 코맨트를 남기려면 메모장에서 우선 써놓고 ctrl+a + ctrl+c ctrl+v 3연타를 때리는게 안전한데...

    군바리다 보니 귀찮군요(...;)

    기다리다 못해서(아.. 근성이 없어서 원;) 긴코츄나곤 뒷쪽도 좀 읽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후, 이에야스 앞에서 쭈삑쭈삣되는 히데아키를 외면하는 키타노만도코로 당 애들을 보니 참.. 한편의 블랙코메디랄까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킨고'가 맞겠지요..(이런 실수를;;)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08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리 읽으셨다면 저도 허투루 할 수 없으니 더 조심해서 써야겠죠 ^^

    그 애들도 우스웠겠죠. 자신들은 피를 뒤집어 쓰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지만, 혈통으로 그 자리에 오른 킨고가 좋게는 보이지 않았겠죠.(더구나 비굴한 모습을 보았으면 더욱 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1.09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7.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4: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야스 수완이 대단하네요. 계속 찾아가서 될때까지 뚱하니 있는다ㅎㅎ

七.

 이 즈음, 쥬라쿠테이(聚楽第)를 방문하는 다이묘우(大名)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눈치 빠르기로 소문난
다테 마사무네(伊達 政宗)같은 자는 예전 가장 친한 척하며 한때는 10일에 한번 정도 방문했던 인물이었지만 발길을 끊었으며, 히데츠구에게 황금 100매를 빌렸던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 忠興)는 그로 인해 서로 사이가 좋다는 의심을 사는 것이 두려워 그 돈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결국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에게 돈을 빌려 히데츠구에게 갚았다. 이에야스는 그 후 에도(江戸)로 돌아갈 일이 있었는데,쿄우(京)를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쿄우(京)에 있던 세자(世子) 히데타다(秀忠)에게,

 “타이코우(太閤=히데요시)와 칸파쿠(関白=히데츠구)가 싸우게 되면 무조건 타이코우에게 붙어라. 타이코우가 만에 하나라도 죽는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오오사카(大坂)에 가서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각주:1])를 호위해라”

 는 말을 남겼다.
 이미 세상이 그렇게까지 과열되기 시작한 이상 히데츠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쿠마가이(熊谷)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정에 3000매의 백은(白銀)을
진납(進納)하였다. 장래 일의 경과에 따라 히데요시를 쓰러트렸을 경우 신정권을 곧바로 승인 받고자 위함이었다. 1595년 7월 3일이었다. 바로 그날로 이 비밀이 후시미(伏見)로 새었다.

 히데요시는 결국 결심하여 다섯 명의 힐문사(詰問使)를 파견하였다.
 미야베 젠쇼우보우(宮部 善祥坊),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마에다 겡이(前田玄以), 마시타 나가모리(増田 長盛), 토미타 토모노부(富田 知信)였다.
 히데츠구는
인견(引見)하여, [모반이라니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모반할 생각은 없다]라는 뜻의 서약서를 써 건넸다. 백은을 진납한지 이틀째였다.

 다섯 명은 후시미(伏見)로 돌아와 히데요시에게 보고하였다. 그로부터 3일째 되던 날 다른 사자들이 쥬라쿠테이(聚楽第)로 파견되었다. 예전에 히데츠구의 숙로(宿老)였던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 一氏), 호리오 요시하루(堀尾 吉晴),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 一豊), 거기에 먼젓번의 미야베, 마에다 겡이를 포함한 다섯명이었다.

 “그런 뜬소문이 떠돌아 서로 의심이 생긴 것은 요컨대 서로 직접 이야기를 나누실 기회가 없어서일 것입니다. 후시미(伏見)까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를 죽음의 사자라고 생각한 히데츠구는 끝까지 거부하며 승낙하지 않았다. 그들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시미(伏見)에서 다른 이가 와서 별실에서
내알(內謁)을 청했다.
 비구니인 코우조우스(孝蔵主)라는 노녀(老女)였다. 키타노만도코로에게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여관(女官)으로 히데츠구는 어릴 때부터 이 비구니와는 친했다.

 “이 비구니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라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타이코우님은 기분 좋으십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하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계시지는 않사옵니다. 아무 염려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고 하였다. 히데츠구는 숙로인 다이묘우(大名)들은 경계하였지만 이 비구니에게는 낚였다. 히데요시의 계략은 성공했다. 뒷문으로 들어온 이 비구니 쪽이 실은 죽음의 사자였다.

 “그런가? 그럼 가보세”

 라고 하며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측근인 쿠마가이들이 막을 틈도 없이 히데츠구는 비구니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히데요시에겐 손자뻘인 세 명의 아기들을 앞세우고 호위는 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오후 조금 지나 쥬라쿠테이(聚楽第)를 출발하여 타케다(竹田) 가도를 이용하였고 오후 3시 즈음에는 후시미에 도착했다. 후시미의 거리에서는 소란이 일어나 가재도구를 들고서 도망치는 이들도 많았다. 떠도는 소문에 히데츠구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온다고 한다. 히데츠구는 생각치도 못했던 이런 반응에 놀랐다.
 ‘내가…… 내가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인가?”

 “우선 오시는 길에서 맞은 먼지를 떨구시길”

 이라며 휴식소로 지정되었다는 키노시타 요시타카(木下 吉隆)의 저택으로 안내 받았다. 그러나 문에 들어서자 마자 은밀하고 재빨리 모든 문이 닫혔다. 이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곧이어 사자가 성(城)에서 와, 만날 필요 없다며 그대로 코우야(高野)산(山)에 가라고 하였다. 히데츠구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승복(僧服)으로 갈아입고 후시미를 출발하여 이틀 후 코우야산(山)에 올라가 세이쥬쿠 사(青宿寺)에 도착하였다. 다섯 날째에 산기슭에서 타이코우 히데요시의 사자들이 각각 부하들을 이끌고 올라왔다. 정사(正使)는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라 한다.

 “틀림없이 마사노리인가?”

 히데츠구는 확인을 위해서 물어보았다.

 “틀림없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을 깨달았다. 마사노리와는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은 채로 살아왔다. 그 마사노리가 이런 때 사자로 선정된 것을 보면 말로 듣지 않아도 명료했다. 죽음이다.

 역시 죽음을 언도 받았다.
 이 순간부터 히데츠구는 지금까지의 이 남자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 죽음의 명령을 받았을 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문서담당관인 승려 사이도우(西堂)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거의 이겨갈 때 즈음 마사노리의 명령을 받은 히데츠구의 측근 사사키베 아와지노카미(雀部 淡路守)가 와서는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히데츠구에게 보고했다. 히데츠구는 바둑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겼다”

 고 뜬금없는 말을 하였다. 바둑이었다.

 “모두들 나중에 증거로 봐 두라고. 내가 이겼다”

 과연 주위가 그것을 보자 히데츠구가 이긴 바둑이었다. 이것 자체가 기묘했다. 여태까지 히데츠구가 사이도우에게 바둑으로 이겨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날 이때가 되어서야 이긴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기뻤는지 짝사랑을 앞에 둔 소년과 같이 볼을 붉히며,

 “지금부터 나는 배를 가르러 가지만 이 바둑판은 흩뜨려놓지 말게. 조심히 방으로 옮겨라. 모두 나중에 돌을 놓은 것을 잘들 살펴보게”

 라고 말하곤 사사키베 아와지노카미를 향해,

 “유서를 쓰고 싶군. 허락되는지를 알아봐 주게”

 라 말하였다. 그것이 허용되었다.

 히데츠구는 자신의 친아비와 정실, 시첩(侍妾) 일동들에게 간결한 유서 한 통씩 세 통을 썼다. 붓놀림이 경쾌했다. 다 쓰고 난 후 붓을 던졌다. 던지고 난 후 승려 사이도우를 향해서,

 “내 일생은 타이코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죽음도 또한 그렇다.”

 고 말했다. 자신의 생애가 하나하나 타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묘함을, 이 남자는 마음속 깊이 되돌아 본 것일 것이다.

 “이제 나는 죽는다. 이것도 타이코우의 뜻이다. 그렇지만 내가 내 배를 가르는 칼은 내 손안에 있다.”

 요컨대 배만은 자신이 가른다, 그것만은 자기자신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사이도우에게,

 “자네는 중일세. 죽을 필요는 없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이도우는,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제 맘대로 함께하겠습니다”

 라며 자신도 배를 가를 준비를 하였다. 사이도우는 참고로 코우조우스(孝蔵主)의 조카이다. 숙모의 거짓말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내심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히데츠구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본 후, 곧이어 할복의 자리에 앉았다.
 착각을 했는지 이 남자는 동쪽을 향했다. 불법에 이르기를 부처는
서방십만억토(西方十萬億土)에 계시다고 한다. 서쪽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작법(作法)에 어긋납니다. 서쪽을 향하십시오”

 라고 사이도우가 충고를 하자 히데츠구는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다시 한번 충고를 하니,

 “부처님은 시방(十方)에 계시다고도 한다. 방위에 연연하진 않겠네”

 라고 말하였다. 적어도 생애의 마지막 정도는 자기 맘대로 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카이샤쿠(介錯)의 칼이 번쩍이며 시체는 작법이 틀린 채로 동쪽을 향해서 쓰러졌다.
 사이도우는 그것을 보고,

 “전하는…… 방향을…… 잘못 아시고 계시다. 이것이 묘하다. 전하의 생애도 이랬던 것은 아닐까?”

 라고 말하였다.
 사이도우는 서쪽을 향했고 서쪽을 향해서 목이 떨어졌다. 자연히 시체는 히데츠구와는 반대 방향이 되었다. 사이도우가 마지막에 중얼거린 위에 말이 히데츠구의 생애를 상징한 말인 듯이 항간에 전해졌다.
 사실, 히데츠구는 태어난 연(縁)이 잘못된 것이다.

*********************************************************************************************************

 히데츠구가 죽은 뒤 그 처첩과 그녀들이 낳은 아이는 성별의 구분 없이 전부 사형당했다.
 
형장(刑場)은 쿄우(京)의 산죠우 강변(三条河原)이었다.
 60 평방미터 사방에
(濠)를 파고 거기에 울타리를 둘러쳤고 형을 집행하는 천인(賤人)들에게 갑옷을 입히고 활과 화살을 들려주었다.

 집행된 것은 8월 2일.
 쥬라쿠테이(聚楽第)의 남문(南門)부터 백색의
수의(壽衣)를 입은 그녀들을 몰아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천인들이 물건이라도 던지듯이 그들을 수레에 집어넣었고 한 대에 2~3명씩 태워서는 산죠우 강변으로 옮겼다.
 형장의 남쪽 구석에
토단(土壇)이 세워져 머리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히데츠구의 머리이었다.

 “저걸 봐라~! 저걸 보라구~!”

 라고 천인들은 소리 질렀고 지르면서 그녀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었다.
 울타리가 닫히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그녀들을 천인들이 쫓아가서 찌르고 잡아서는 베었다. 천인이 2~3살 먹은 어린 귀족을 잡아서는 모친의 눈 앞에서 강아지라도 죽이듯이 죽였고 그것을 보고 기절한 모친을 다른 천인이 안아 세워서는 목을 쳤다.

 이치노다이(一ノ台)도 그 딸인 미야노카타(宮ノ方)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녀는 사세구(辭世句)를 준비해 놓았다. 딸의 사세구는 이렇다.

 모녀의 헤어짐을 듣고 우울했지만, 같은 길을 가니 기쁘구나
 憂きはただ親子の別れと聞きしかど同じ道にし行くぞうれしき
 형은 공개로 행해졌다.
 수만의 구경꾼들이 형장을 에워쌌고 특히 장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죠우 다리에는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이 사형이 무엇 때문에 행해졌고,천하에 대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공개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곧이어 처형은 종료되었고 원래부터 강변 한 켠에 파여져 있던 구덩이 속에 그들의 시체와 히데츠구의 머리가 함께 던져졌다. 흙이 덮이고, 그 무덤 위에 석탑이 세워졌다.
 악역을 저지른 히데츠구의 무덤[秀次悪逆塚]
 이라고 그 비석에는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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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의 친아비인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三好 武蔵守 一路)는 영지(領地)와 위관(位官)을 몰수당해 원래의 신분인 평민으로 떨어져 사누키(讃岐)로 유배당했다.

 “뭔 일이래……”

 이 야스케는 사누키(讃岐)의 유배지에서 자신이 먹을 땅을 괭이질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뭔 일인지... 이 친아비도 또한 자기 일생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음에 틀림없다.

    ======================================================殺生関白,了====================

  1. 히데요시의 정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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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요시 카즈미치야 뭐.. 본래의 운명으로 돌아갔으니 담담했을듯, 히데츠구도 마지막되니 제법 용자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군요...

    그나저나 히데요시 친 누님은 어떻게 되었을련지.. 측근인 쿠마가이 녀석 운명도 궁금하고..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쪼록 수고하셨습니다. 대조해가며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할듯..(정말 소설은 읽으려니 ㅎㄷㄷ라..)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9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대조는 하지 말아주세요... 시바 선생의 필력을 살릴 수 없어서 여러 번 고생한 끝에 제멋대로 갔다붙인 곳이 많아서리..^^;

    참고로... 히데요시의 친누나이자 히데츠구의 어미인 즈이류우인 닛슈(瑞龍院 日秀)는 히데츠구가 죽은 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절 즈이류우인(瑞龍)원(院)을 세워 비구니 호인 닛슈(日秀)를 칭하며, 히데요시의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北政所)가 죽은 다음 해인 1625년 93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합니다... 친누나이니까 살려 주었나 보네요.

    쿠마가이 역시 연좌되어 할복을 명령받아 니손(二尊)원(院)에서 배를 갈랐다고 합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원서는 읽을 엄두도 안나서..(ㅎㅎ..)

    키타노만도코로보다 장수했다니..(히데요시보다 10여세 연하로 알고있는데..) 어지간한 장수군요...

    다시 읽어보니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소심함이 한층 엿보이는군요.. (어이, 아들내미한테는 한때는 이에야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며?ㅋㅋ..)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0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이야기는 조금 의심이 가는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나)
    몇 몇 책에서는 히데츠구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별일 아니었는데 히데요시 측에서 땡깡을 부렸다는 말도 있고, 또한 이에야스한테 돈을 빌렸다는 것도 조금... 왜냐면 그의 장인 마에다 토시이에의 경우 돈을 잘 빌려주기로 유명했거든요.(뭐 하필이면 그 때 토시이에에게 돈이 없었다면 그 뿐이지만 말입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10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시이에 돈 잘빌려주는 건 유명하지요(이아저씨는 꽃의 케이지에서의 주판영감이미지가 자꾸 떠올라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P.S. 타다오키 처 가라샤는 아케치 미쓰히데 딸내미로 알고 있는데.. 혈연이 참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에휴...어려워서 원;)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0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힘이 있는 가문끼리 만세에 걸쳐 좋은 게 좋은 것지~ 라면서 겹사돈 맺는 거야 어느 시대 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가라샤...하면 전 타다오키의 의처증이 우선 생각나더군요... ^^ 쪼잔한 녀석~ 하면서..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kelt200 BlogIcon 깃쨩 2007.12.11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살생관백 다음 챕터 대머리쥐의 일족 얘기도 있는지 궁금하군요. 고맙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1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위에서 다섯번째 리플... 타다오키의 장인 마에다 토시이에라 했는데, 사돈이군요... ^^; 이 실수는 자주 하는군요...--;

    깃쨩님//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킨고 츄우나곤(金吾中納言) ->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 秀秋)를 다룬 단편.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 히데요시의 정실 '오네'를 다룬 단편
    야마토 다이나곤(大和 大納言) -> 토요토미노 히데나가(豊臣 秀長)를 다룬 단편
    스루가고젠(駿河御前) -> 히데요시의 막내 여동생을 다룬 단편.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둘째 아들로, 히데요시의 양자가 된 인물
    하치죠우노미야(八条宮) -> 황족으로 히데요시의 유자(猶子)가 된 인물
    요도도노(淀殿)와 그 아들 -> 히데요시의 측실 요도도노와 히데요리(秀頼)의 이야기......

    가 남아 있으며... 매주 일요일 업데이트 할 예정(이라고 쓰고 '어긋나기 위해 계획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석된다....)입니다.

  10.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처형장면이 너무나 비참하군요. 처자들이 뭔 죄가 있다고 죽여도 곱게 죽이지 어찌 저리 잔인하게 죽인건지... 이 때 이미 히데요시 정권은 끝난것 같습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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