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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쿠아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5.18 스루가고젠[駿河御前] -1- (8)
  2. 2008.04.19 대화대납언(大和大納言) -1- (19)
  3. 2007.06.04 살생관백(殺生関白)-1- (2)

一.

 

 막내 여동생 아사히[旭]가 결혼할 즈음에 큰 오빠 히데요시[秀吉]는 그 근방에 없었다.

 

 “너에게는 7살 연상의 오빠가 있단다. 착실하게 괭이하고 가래질을 하고 있었으면 부모를 대신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하고 모친인 오나카[仲]는 투덜댔을 것이다. 오나카에게 있어서 히데요시는 죽은 첫 번째 남편인 야에몬[弥右衛門]과의 사이에 나온 자식으로, 그 때문에 야에몬이 죽은 뒤 재혼한 치쿠아미[竹阿弥]에게는 이 히데요시라는 존재가 조심스러웠고 불안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히데요시는 치쿠아미를 싫어하여 아직 꼬꼬마일 때 가출해 버렸다.

 그 후 바늘 장사를 하거나, 미카와[三河] 만담의 보조 광대[三河万(관련 사진(링크)][각주:1]되어 떠돌거나, 그릇을 굽는 곳에 노예로 몸을 팔거나[각주:2], 오와리[尾張]의 유랑인 길드라고도 할 수 있는 하치스카 코로쿠[蜂須賀 小六]의 길드원이 되는 등 수상쩍은 사회를 전전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 히데요시가 오와리로 돌아와 오다 가문[織田家]의 허드레꾼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즈음, 여동생인 아사히는 결혼하였다.

 - 요즘은 키요스[洲] 오다 님의 하인들 무리에 꼽사리 껴서 산다고 하더군

 라는 소문이 나카무라[中村] 주변에서도 들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사히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 이름은 요즘 토우키치로우[藤吉郎]라고 고친 것 같더군

 라는 소문도 돌던 중 곧이어 하급 무사로 출세하여 키노시타[木下]라는 성(姓)을 쓰게 되었다고도 들었다. 그 사이 물론 그 토우키치로우가 이 나카무라에도 왔었다.

 

 아사히가 결혼한 곳에도 찾아왔다.

 

 “여기냐? 여기가 아사히의 집이냐?”

 

 하고 토우키치로우는 시끄러운 소리로 혼잣말하며 들어왔다. 시아버지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하였고, 처음 보는 남편에게도 여어~여어~하고 어깨동무라도 하며 친근감을 보였다.

 ‘시끄러운 사람이다’

 아사히에게는 이 어색하기만 한 오빠가 그렇게 비추어졌다. 극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오빠가 말을 걸어도 부끄러움이 앞서 아무 말 않고 끄덕이거나, 바쁜 척을 하거나 둘 중 하나여서 한 문장으로 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아사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

 

 하고 토우키치로우는 말했다.

 

 “니는 누구하고 닮았을까~?”

 

 아사히는 말이 많은 이 오빠와 너무도 달랐는데 생김새라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사히는 토우키치로우의 기괴한 상판과는 닮은 곳이 없어, 오나카의 배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눈코가 뚜렷하였고, 피부색도 농사일로 검게 타기는 하였지만 바탕은 흰 것 같았다.

 ‘눈가는 아비인 치쿠아미를 닮은 것 같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토우키치로우는 이미 죽은 양아비가 정말로 싫은 듯 그렇게 느꼈지만,

 - 치쿠아미랑 닮았구나

 라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와 닮았건 토우키치로우는 아사히가 막내 여동생인 것도 있어 너무도 귀엽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서 애를 낳으렴”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라기 보다는 남자의 시선으로 이 작은 몸집의 여동생 허리 주변을 눈으로 핥았다. 작은 몸집이면서 전체적으로는 육덕져 허리 주변이 과즙을 담고 있는 듯이 싱싱했다. 이 정도의 몸을 남편에게 바치면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토우키치로우가 오다 가문의 중급 장교가 되어 스노마타[墨股] 요새의 수비장수가 되었을 때는 그의 나이 28인가 29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토우키치로우는 나카무라에 사는 오나카 이하 혈연들을 이 성으로 초대하여 수일간 머물게 하며 대접하였다. 스노마타는 야전용 요새로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엮어 만들었을 뿐인 조악한 건물이었지만, 그래도 나카무라에 사는 미천한 백성의 마누라인 아시히에게는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듯한 궁궐같이 보였다.

 

 그 나카무라의 일행이 돌아간 뒤 부인인 네네(寧)가,

 

 “아사히님은 정말 얌전하시더군요.”

 

 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 연상의 막내 시누이는 머물던 중 어떤 일이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바보는 아니겠지?’

 네네는 생각했지만 토우키치로우는,

 

 “아녀~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 테지”

 

 하고 자신의 핏줄인 만큼 그러한 해석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토우키치로우에게 있어서 아사히보다도 더 관심이 갔던 것은 그 남편이었다. 켄스케[源助]라고 하던가? 카스케[嘉助]라고 했던가?

 ‘무사로 만들어 주자’

 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도 어엿한 중급 장교 나부랭이가 된 이상, 친척과 인척을 끌어들여 가신단의 중추로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의 출신이 만약 태어나면서부터의 무사나 호족이었다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하나 분가(分家)의 무리들을 데리고 강고한 가신단을 형성해 가는데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랑인 출신에 빈농의 자식인 토우키치로우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던 만큼, 어서 빨리 자신의 주변을 살펴 무사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네네 쪽의 친척에서 그녀의 양갓집 동생인 아사노 나가마사[野長政 – 아키[安芸] 아사노 가문의 가조(家祖)]나 숙부인 스기하라 시치로우자에몬[杉原 七左衛門 – 후에 후쿠치야마[福知山] 성주(城主)]을 채용하여, 각각 이 스노마타의 중요한 부서에서 일하게 하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의 일족에서는 동생인 코이치로우[小一郎]를 지금부터 교육하고자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아사히의 남편은 어떤가? 쓸만하다면 쓰고 싶다고 토우키치로우는 기대하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번 스노마타 초대를 기회로 면밀히 관찰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이 남편에게는 눈여겨볼만한 곳이 없었다. 눈코는 사람이었지만 머리는 소나 말과 다를 바 없었고, 더구나 소하고 말만큼의 힘도 없으며 눈동자가 멍했다. 무사는 재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래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백성인가’

 라고 생각하여 실망한 만큼이나 아사히가 불쌍해졌다. 적어도 출납 장부라도 볼 줄 아는 남편이었다면 곧바로 창고나 수송대의 대장 정도는 맡겨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정도도 못하니 아사히는 평생 저 남편을 위해서 밭에서 기어 다녀야만 할 것이다.

 다만, 토우키치로우의 이성은 그렇게 실망하였지만 감정은 남에게 한 없는 호의를 가지는 성격이었기에,

 

 “어떻겠나? 키노시타 성(姓)을 쓰시게”

 

 라고 말해 보았다. 자기와 동족(同族)으로 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무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사히의 남편은 썩소를 지으며 아니 원래가 그런 상판인 듯 했지만 –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양하게쯥니다”

 

 라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싫은가?”

 

 라고 묻자,

 

 “싫건 좋건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선조들의 위패가 있쯥지요”

 

 라고 말했다. 즉 미천한 백성이긴 하지만 어엿하게 이어 내려오는 가문이다, 그리 쉽게 마누라 쪽의 가문에 몸을 파는 듯한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런 의미라고 한다면 이 좆병진 같은 남자라도 역시 나름대로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맘대로 하게”

 

 하고 화가 나 냅두고 있었지만, 그 후 10년 정도 히데요시가 전쟁터를 질주하는 동안, 오다 가문의 세력이 커져 히데요시의 사정도 크게 변했다. 노부나가오우미[近江]의 아자이 씨[井氏], 에치젠[越前]의 아사쿠라 씨[朝倉氏]를 멸한 뒤, 자신 휘하의 군사령관들에게 지역을 나누어 준 것이다.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에게는 에치젠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는 남부 오우미[南近江]를, 히데요시에게는 북부 오우미[北近江]를 하사하였다. 히데요시는 비와[琵琶] 호반의 나가하마[長浜]에 성을 쌓아, 이때부터 성주(城主)의 신분이 되었다. 그 봉토는 20만석이었다. 이제는 신흥 귀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사히를 저대로 버려 둘 수는 없다’

 불쌍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미 동생 코이치로우뿐만이 아닌 모친과 누나도 불러와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20만석 다이묘우[大名]의 여동생 되시는 분이 언제까지나 오와리 나카무라의 최하층 백성의 마누라로 좋은 것일까?

 

 “호우키[伯耆] 어떻게든 해봐”

 

 하고 히데요시는 명령했다.

 호우키[伯耆] - 라고 대단한 호칭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이 사람은 네네의 숙부 스기하라 시치로우자에몬 이에츠구[家次]였다. 무사로서는 능력이 없기에 하시바 가문[羽柴家] – 히데요시는 이 나가하마에 성을 쌓은 다음부터 키노시타에서 하시바 성으로 고쳤다 – 의 가재(家宰)를 맡고 있었다. 호우키는 곧바로 오와리로 내려가 아사히의 남편을 만나,

 

 “고맙게 생각하라. 자네를 무사로 만들어 주겠다”

 

 라고 전해자, 남편은 아둔한 얼굴로 아무 말 않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고 스기하라 호우키가 목소리를 높이자?

 

 “싫쯥니다”

 

 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를 대라”

 

 고 호우키는 반쯤 소리지르듯이 말하자, 이 백성에게는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한 줄 정리하면 있던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 싫었던 것뿐으로 환경이 변하는 것을 무조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것을 호우키가 달래듯이 하여 겨우 나가하마 이주를 승낙시켰다. 나가하마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준비되어 있었고, 놀면서 살면 되었다. 그러나 무가(武家)답게 성(姓)이 필요했다. 그 성도 스기하라 호우키는 준비해 두고 있었다. ‘사지[佐治]’라는 성이었다.

 '사지'라는 성은 카마쿠라 시대[鎌倉時代] 때부터 오와리에 번영했던 명족으로, 치타 반도[知多半島]에 그 성터가 남아 있어, 지금은 힘이 없지만 그래도 오다 가문의 가신들 중에는 이 성을 쓰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에 신관(神主)가 있어, 스기하라 호우키는 특별히 부탁하여 그 성을 쓸 수 있게 허락 받은 후 나가하마로 데려왔다.

 가문의 문장은 부채였다. 그 문장이 들어간 옷과 갑옷 등도 호우키는 준비해 두었다. 결국 이 남편은 무사로 만들어 졌다. 사지 휴우가[佐治 日向]이다.

 

 그러나 나가하마의 으리으리한 저택 생활이 정말 맞지 않았나 보다. 사지 휴우가는 이곳으로 온 후 얼마 동안은 일단 살이 쪘고 곧이어 이전보다 더 말라,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야채처럼 쇠약해져 죽어 버렸다. 그것을 전후로 하여 이 남자가 나카무라에서 데려 온 양친도 죽어, 모처럼의 사지 가문도 끊겼다. 아사히는 하시바 가문으로 되돌아왔다.


사지 씨[佐治氏]에 대해


  1. 사진 중 부채를 든 인물을 타유우[太夫]라고 하는데, 춤을 추거나 재미 있는 말을 한다. 검은 북을 든 사람는 ‘사이조우[才蔵]’라는 보조로, 북을 쳐서 타유우의 춤을 흥겹게 하거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어 준다. [본문으로]
  2. 말은 노예지만, 결국 돈을 빌리고는 대신해서 그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것. 나중에 돈을 갚거나하면 면천되었다. [본문으로]
  3. 당시의 도기와 자기는 지금의 반도체와 맞먹는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본문으로]
  4. 미모는 근방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한다. [본문으로]
  5. 후에 에도 막부[江戸幕府] 2대 쇼우군[将軍]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 秀忠]의 부인. 2011년도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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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5.18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이에야스에게 시집가는 여인이지요? [대망]에서는 남편이 히데요시로부터 '마누라 회수' 명령을 받고 자결했다던데, 여기서는 그냥 죽어버리네요. 하긴 어느쪽이든 큰 상관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8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맞습니다. ...대망이라... 보다가 코웃음 치게 만드는 부분이 많아서 중간까지만 읽은 듯 합니다. 전...
    (여담으로... 바벨2센지 3센지 그린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이 그린 대망의 만화판은 과감한 삭제와 노부나가를 오히려 주인공으로 여기게 하는 부분이 있어 전 이쪽을 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19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생각해봤는데 같은 대정소님(;)의 자식이지만 치쿠아미의 씨들은 빨리 죽어버리는 듯 하군요. 히데나가도 간신히 50에, 스루가 고젠도 40대에 죽었으니..

    뭐, 생각해보면 당시 평균수명에 비하면 그 정도면 선전 한 것 아닌가도 싶지만 자연사 한 센고쿠시대 인물들은 은근히 수명이 긴편이었던지라(...흠;)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9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자는... 당시 수명이 짧았다는 것은 통계의 허점이라고들 하더군요.
    유아 사망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지, 그걸 제외하면 평균 수명은 나름 있었던 편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다메엣찌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암은 유전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치쿠아미 측의 부계 유전이었는지도 모르죠.

    요즘엔 아예 히데츠구의 어미 닛슈우 부터 막내 아사히까지 전부 야에몬의 자식들이라고도 합니다만...

    여담으로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따르면(일본 측 기록에는 없다네요), 젊은이 한 명이 이세(伊勢)에서 20~30명의 무리를 끌고 와 히데요시의 동생이라고 우겼다가, 이것을 히데요시가 오오만도코로에게 물어보자 대답을 궁색히 하며 낳은 적 없다고 하여 일당 전부 참수. 그 이후 또 여동생 하나를 찾아내어(오와리의 백성의 여편네를 하고 있었다네요) 오오사카로 데려와 역시 참수... 그런 것을 따지면 위에 두 명(닛슈우와 히데요시) 빼 놓고는 히데나가가 제일 오래(51~2살) 살았군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4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터에서는 대표값도 중요하지만, 분산 역시 중요하죠…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w_walker BlogIcon 친구 2008.06.12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이 쪘다가 말라서 죽었다..라는 말을 보니 꼭 당뇨같네요.. 부귀영화가 몸에 안 맞았던 듯..^_^;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6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안 맞아도 좋으니, 꼭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습니다!!!

一.

 그의 고향인 오와리[尾張] 무라[中村] 근방은 하늘이 넓고, 평야가 한 없이 넓어 바다와 맞닿는 곳 까지 펼쳐져 있다. 이 풍경에 변화를 주는 것은 구름뿐이고 산은 가까운 곳에 없었다. 그러나 강이나 개천은 사방팔방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바지락이나 붕어가 많았다. 히데요시[秀吉]도 그런 것들을 잡으며 꼬꼬마 시절을 보내었는데 그의 하나뿐인 남동생인 코이치로우 히데나가[小一 秀長]도 그러했다.

 '코치쿠[小竹]'
 
라고 하데나가를 꼬꼬마 즈음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아비가 치쿠아미[竹阿弥]라는 이름이어서, 그 치쿠아미의 아들이기에 코[小]자를 붙여서 코치쿠였다. 무가(武家)나 힘있고 재산 많은 백성의 자식처럼 특별한 아명(兒名)을 부모에게서 얻은 기억은 없었다.

 코치쿠가 원숭이보단 낫지

 라고 마을에서는 말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얼굴이 둥글었으며 턱에 붙은 살이 귀여웠다. 형이라고 하는 원숭이의 추하고 괴이한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성격도 같은 모친에게서 태어난 형제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을 마을 사람들은 축복했다.

 모친을 '오나카[仲]'라고 한다.
 
오와리[尾張]고키소[御器所]라는 마을 출신으로, 연이 닿아 이 마을의 백성 야에몬[弥右衛門]에게 시집왔다. 야에몬은 젊었을 적 마을을 나가 오다 가문[織田家]을 섬기며 아시가루[軽]가 되었지만 그러던 중 전쟁터에서 불구(不具)가 되어 원래의 백성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오나카에게 장녀와 장남을 낳게 한 뒤 죽었다. 장남은 히데요시를 말한다.

 오나카는 당황했다. 자기 소유의 밭을 갈면서, 다른 집에 고용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는데 여자인 몸으로는 그것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옆집에 치쿠아미라는 이 또한 오다 가문에서 손님이 왔을 때 차를 내오던 일을 하고 있던 남자가 살게 되었는데, 마침 홀아비였기에 마을에서 둘을 이어주는 사람이 있어 오나카는 신랑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이 치쿠아미와 한 몸이 되었다.

 옆집 치쿠아미가 내 부친이 된다고?”

 하고 꼬꼬마인 히데요시는 이 새로운 양아비를 싫어하여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치쿠아미 역시 이 귀염성 없는 꼬꼬마를 사랑하지 않았고, 특히 코치쿠인 히데나가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인의 전 남편 아이에게 심하기 대했기 때문에 결국 히데요시는 가출했다.

 이 때문에 히데나가는 이 아비가 다른 형을 몰랐다.

 원숭이와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 마을 사람들은 말했지만, 원숭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상상도 가질 않았다. 성격이 들판을 달리는 짐승처럼 교활하고, 사람의 허점을 발견하면 대담한 악행 장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을 하여 온 마을 사람들에게 따를 당했다고 한다.

 형은 뭐하고 있을까?”

 하고 코치쿠는 치쿠아미에게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치쿠아미는 그 밉살스러움을 떠올린 듯,

 이 집안은 내 집이고 이 집을 잇는 것은 너다. 니한테 형 따위가 있을 턱이 없지

 라고 말했다. 치쿠아미에게 있어서는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열심히 밭을 갈아 재산을 모은다고 하여도 결국 코치쿠의 것이 되지 않고 원숭이의 것이 된다면야 재미없었다. 원숭이를 쫓아 낸 것도 그것이 이유였다.
 
그가 가출했었을 때, 역시 생모인 오나카는 슬퍼했지만 그러나 내심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걸로 치쿠아미가 원숭이를 때리는 광경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 새로운 남편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날도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코치쿠는 그런 형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모친이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살며시 물어보았다. 그러나 확실한 소식은 알 수 없었다. 행상인(行商人)과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코우야히지리[高野聖][각주:1]를 따라다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몸을 노예로 팔아[각주:2] 도자기 만드는 곳에서 흙을 주무르고 있다고도 하며, 해가 지남에 따라 도적 무리에 섞여 있다는 소문도 나왔다. 그 도적단 설이 나왔을 때, 치쿠아미는 크게 흥분하고 분노하여,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 하지. 나는 원래부터 놈이 그럴 줄 알았다. 만약 마을에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처리하마. 내 손으로 곡괭이를 들어올려 머리의 두개골을 산산조각을 내줄테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치쿠는 그러한 부친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원래부터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또 하나는 부친 치쿠아미에게 있어서 형은 다른 사람의 자식이었지만 코치쿠에게 있어서는 피가 이어진 아비가 다른 형이기에 자연히 생각하는 감정도 달랐다. 코치쿠는 밖에서 원숭이의 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부친에게 말하지 않고 살며시 모친에게 가르쳐 주었다. 모친은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흑흑 울었다. 그러는 한편 때로는,

 아예 죽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이라고 소리지를 때도 있었다. 코치쿠는 꼬꼬마인 주제에 그러한 모친을 타일렀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합니다. 어서 부뚜막 신(荒神)에게 미안하다고 하세요

 라고 말하였다. 더욱이 부친이 가진 감정의 근원에는 이 집안 상속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저는 이 집이나 밭은 필요 없습니다. 형한테 물려 주세요

 라고 모친에게 말했다. 모친은 그런 말 하지 마라,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허둥댔다. 치쿠아미가 코치쿠의 이런 마음을 알게 되는 것도 두려웠지만, 한편으로 오나카에게 있어서도 원숭이보다 이 코치쿠 쪽이 귀여웠다. 허리가 꼬부라진 후 코치쿠와 같은 성격을 가진 아이에게 업히는 쪽이 훨씬 노후의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코치쿠는 나이 같은 것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모친이라고 하여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 17, 8살이 되었다. 이 시기 이미 치쿠아미는 이 세상에 없었다.
 
이 해는 여름이 일찍 왔다. 코치쿠는 다른 집의 소작인이 되어 태양에 뒷등을 익히면서 밭에 물을 대는 작업을 하고 있었을 때, 마을 저쪽에서 말을 타고 오는 무사가 있었다.
 
‘뭐야 저건
?’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무사의 모습은 이상했다. 말은 아무리 봐도 무사들이 타는 말이라기 보다는 밭을 가는 말이었으며, 더구나 너무 늙었는지 목이 올라가지 않아 늙은이의 거시기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변변치 않은 안장(鞍裝)을 얹었고, 등자[鐙子]조차 없어서 짚으로 새끼줄을 엮어 올가미를 만들어 거기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저것도 무사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곧이어 눈과 코가 보였다. 조그만 남자로 작은 얼굴에 턱이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다. 양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는 것에 비하면 눈망울은 둥글둥글했고, 눈꼬리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어딘가 원숭이랑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코치쿠의 몸 속에 전류가 흘렸다. 형이 아닐까? 라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생각이 아니었다. 형이 오다 가문에 아시가루로 일하다가 무사 신분으로 출세했다는 소문은 이미 마을에도 전해져 있었다. 코치쿠는 곡괭이를 던졌다. 하지만 이 차분한 남자에게는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단지 을 벗어, 조금 허리를 굽혔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말 위에 남자의 눈에도 들어왔을 것이다.

 네놈은 누군고?”

 라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뻥 뚫릴 정도로, 그런 굉장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큰 목소리는 원숭이 친아비의 유전이라고 한다.

 치쿠아미의 아들이옵니다.”

 바보 녀석!!”

 원숭이는 안장에서 떨어졌다. 떨어졌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몸놀림으로 코치쿠에게 다가와,

 치쿠아미의 아들이라고 에둘러 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너는 내 동생이 아니냐~ 나는.. 그래 토우키치로우[藤吉郎].”

 라고 원숭이는 울부짖듯이 말했다. 토우키치로우라는 이름은 이 남자가 오다 가문의 아시가루가 되면서부터 스스로 붙인 통칭(通稱)이었다. 성은 키노시타[木下]라고 한다.

 나무 목()하고 아래 하() 하고

 토우키치로우는 나뭇가지를 집어 땅에다 크게 썼다.

 이것이 우리 가문의 성()이다. 성이 생겼단다

 고 말했다.[각주:3]

 지금은 이런 신분이 되었지

 라면서 토우키치로우는 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말을 타는 신분 즉 무사(武士)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 영지(領地)는 아직 받지 못했단다. 아직은 성에서 쌀을 받는 처지지. 그렇지만 언젠가 공을 세울 거다. 세우면 비록 30(貫)[각주:4] 정도의 수입이 나는 땅이라도 하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그 땅으로 고용해야 하는 부하 2~3명을 데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단다. 그 때문에 돌아온 것이다

 고 토우키치로우는 말했다. 우선은 마을에 자기가 이만큼 출세했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마을에서 쓸만한 젊은이를 물색해두고 싶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부하로 삼는다면 역시 친척이 좋다. 동생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떠냐? 나를 따라 오겠느냐?”

 무사가 되라는 것입니까?”

 그제서야 코치쿠는 말했다. 무사가 된다는 것 자체를 코치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날 밤, 토우키치로우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잔뜩 취해서는,

 내가 다이묘우[大名]가 되면 니는 사무라이 다이쇼우[侍大将]. 무사가 되라! 어여 각오를 정혀!”

 라고 한말을 또 하고 한말을 또 했다. 코치쿠는 곤란하게 되어,

 저한테는 힘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무사라면 창도 잘 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엉켜서 그라운드 기술로 넘어가서는 적의 목을 단숨에 자를 정도의 힘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토우키치로우는 웃기 시작했다.

 무사에게 힘이 필요하지는 않지

 과연…. 그러고 보니 토우키치로우는 힘도 없고 거기에 조그만 남자로 창도 잘 다룰 것 같지가 않았다. 토우키치로우는,

 대장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이며, 무사에게 필요한 것은 고지식함이지. 물러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뼈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떨리고 무서워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좋은 무사이며, 아무리 힘이 있고 평소 큰소리 뻥뻥 치더라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할 때 무너져 버리는 남자는 무사가 아니지

 그런가요……?”

 코치쿠는 이 아비 다른 형의 말솜씨에 넘어가 그렇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것이 이 남자의 운명을 바꾸었다. 토우키치로우는 틈을 주지 않고,

 코이치로우[小一郎]라는 이름을 써라

 라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토우키치로우 양아비의 장남이니까 작은 즉 가장에 준하는 첫째 아들[一郎][각주:5]이라는 뜻으로 지었을 것이다.

 토우키치로우는 시종(始終) 기분이 좋았다. 형제의 대면에 대한 옛 이야기로서는 요우와[養和]라 불렸던 시대에[각주:6]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頼朝]츠네(義経)와 천[黄瀬]에서 이 유명하다고 토우키치로우는 맹인 이야기꾼[琵琶法師][각주:7]에게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말했다. 겐지[源氏]의 동량(棟梁)[각주:8]과 그 가문 도련님의 화려한 대면을 연상케 할 정도라고.
 
이날 밤의 토우키치로우는 익살스러울 정도로 들떠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요스[洲]로 돌아갔다. 그 뒤 모친 오나카는,

 난처한 녀석이군

 이라고 몇 번이나 혀를 찼다. 저 녀석을 낳아 버렸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르는데, 이제는 또 코치쿠를 꼬셔서 자신의 부하로 전쟁터에 끌고 가려 하고 있다. 오나카에게 이제는 코치쿠 이외의 남자 아이는 없었다. 코치쿠까지 무가(武家)에 종으로 들어가 버리면 누가 자신의 노후를 돌봐준단 말인가……

  1. 코우야히지리[高野聖]는 코우야 산[高野山]에서 다른 지방으로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중을 말한다. 이 즈음에는 땡중화 되어 악행을 일삼는 일이 많았기 – 행상인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하거나, 다른 집에 하루 밤 신세를 진다며(거부하면 부처님의 저주 운운하며 괴롭혔다고 한다) 들어와선 그 집 여자를 강간하고 심지어는 강도로 돌변하는 등 - 에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그들을 억압하였으며, 에도 시대 막부[江戸幕府]도 활동에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옛 만화 공작왕에서는 이를 왜곡(주인공이 코우야의 퇴마승(退魔僧))하여 작품상에서 노부나가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본문으로]
  2. 말은 노예지만, 결국 돈을 빌리고는 그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것. 나중에 돈을 갚거나하면 면천되었다. [본문으로]
  3. 하층민은 성(姓)이 없었다. [본문으로]
  4. 세키가하라[関ヶ原] 당시(1600년)의 비율은 1석(石)=1.3관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5. 둘째는 지로우[次郎], 셋째는 사부로우[三郎] …로 이어진다. [본문으로]
  6. 1181년. [본문으로]
  7. 비파(琵琶)를 타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중을 말함. [본문으로]
  8. 기둥과 대들보를 말하며 그 뜻이 이어져, 가문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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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4.19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새로운 편이 시작되는군요. 이번 편도 재밌게 읽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총 몇 편인지 미리 궁금해지네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19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총 9편이며...
    1편 살생관백
    2편 금오중납언
    3편 우키타 히데이에
    4편 키타노만도코로....까지 끝냈으며...
    5편 대화대납언........이 이번 편이고,
    6편 스루가고젠
    7편 유우키 히데야스
    8편 하치죠우노미야
    9편 요도도노, 그 아들.....이 남아있습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4.19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정소 어르신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는군요(ㅎㄷㄷ-_-;;;)

    그나저나 코치쿠가 코이치로가 되었지만 아직 작디 작은(小) 신분이군요(;) 30관도 못받은 안습 무사의 시종이라;;;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0 0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쓸데없는 걱정이 나중에 일어날 성대한 영달로 이어질지는 이때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 시바 소년의 역사 기록부....(요즘 이상하게 요 말이 입에 붙네요... ^^ )

    그래서 성경에 실려 있지 않습니까~(...바이블코드!!! ^^; )
    보통 중국집에 많이 걸려 있던데...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라리.."(맞나?)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0 0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석을 1.3관이라고 하셨는데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은 8석에서 10석을 영락전1관으로 치더군요. 그리고 1관을 환산하면 7~9만엔 정도라던가요.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4.20 0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소년탐정 김전일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발해지랑님까지 그런 말씀을…
    중간에 한 번 치쿠아미가 타케아미로 나오네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0 1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사천사님//고사천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시대별로 다르고, 같은 시대라고 하더라도 지역별로 다르더군요. 그래서 1600년 세키가하라 때의 것이라고 특정해서 지칭한 것입니다.(근데 말씀해주신 오오와다 교수의 것도 기준으로 삼은 쌀의 가격이 에도 시대의 것이라...). 아울러 제가 본 계산 중엔 가장 레이트가 낮아서 이 글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미관말직의 신분과 낮은 신분에서 그 정도도 기뻐하는 것을 극대화하고자 나름 가장 낮은 레이트를 써 보았습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

    신사본론님//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재미있죠? 그 작품... 전 작품 중에 많은 살인을 본 미유키의 정신이 붕괴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얼른 고쳐야 겠습니다. ^^ 지적 고맙습니다. 꼼꼼하게 읽어 주시는 반증이라고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더욱 조심해야겠네요.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4.20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사천사/시기에 따라서 좀 다릅니다만 전국기 전체를 통해서는 1관이 약 3석 미만 정도로 보시면 크게 상위는 없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0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otokanfist님//흑~ T.T 오셨군요. 어떤 분의 리플에 허락도 받지 않고 님의 블로그 링크 시켜서 혹시 쓸데없는 짓 한다고 기분 나빠지신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하였는데...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4.20 1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엇, 무슨 일 있었나요???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0 2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blog.naver.com/valhae0810/100049774901 에 달린 리플에서 shotokanfist님 안다고 자랑하느라... shotokanfist님의 블로그를 허락 없이 거론해서요. ^^;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4.20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상관없습니다만 좀 쑥스럽네요. 저도 그냥 장난질로 하는 일이라 ㅎㅎ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iroyume BlogIcon shiroyume 2008.04.20 2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무엇보다 꼬꼬마로 해석해주시는 센스가 일품이네요. ㅋㅋ 이 히데나가 녀석도 능구렁이! 될 수 있을까 이런식으로 말해놓고 정권후반기에 가서는 만능 엔터테이너. 엔간해선 못하는 일도 없고 인격자인데다가 마치 키르히아이스를 떠올리는(응? 그럼 히데요시는 로엔그람 -_-;;)
    .........아 속 안좋다. 저게 야마토 다이나곤으로 읽나요? 한동안 일본사 관련 포스트를 작성안했더니 가물하네요. 전 이런 성실이 온몸에 새겨전 인물을 좋아한답니다. 물론 히데요시 정권을 빨리 무너뜨리기 위해 죽어준것도 감사......라고 해야하나.
    유명한 말:내용이 아마 사적인 일에는 소에키가 있다면 공적인 일에는 이 히데나가가 있다.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4.21 0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관문의 지행지를 갖는다는 건 환산해서 대략 300만엔..
    현대에선(다르겠지만) 연봉 3000정도 받는 회사원이 밑에 자기가 월급주고 먹여살리는 부하가 몇 명 둔다고한다면 이상하겠죠? 출판사에 소속된 만화가와 어시스턴트 2~3명의 관계가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 . . . . .
    ...그냥 생각해봤습니다 -_-;;;

    발해지랑 님도 shotokanfist님도 재미로 장난질로 하시는 일이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_<)b

  1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4.21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렇군요. ^^ 사실 제가본 현대화폐 환산 기준은 NHK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이었습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선생님/ 밥먹여주고 재워주는 시종, 잡병 연봉이 3~5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신 직전 아시가루 연봉도 대략 그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못할것도 없지 않을까요?

  1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1 1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흰꿈님//그 오오토모 소우린이 말한 [内々の儀は宗易,公儀の事は宰相]의 内々를 저는 토요토미 가문 내의...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
    저는 2인자를 굉장히 좋아합니다(그래서 어렸을 때는 김종필씨를 삼김씨 중 제일 좋아한 적도...)만 히데나가 처럼 경애를 받는 조정자 보다는, 히지카타 토시조우(土方 歳三)나 [바람의 검심(국내명)]에서 시시오 일파의 참모(손톱 물어 뽑는 놈)처럼 조직 내의 분노를 전부 자기가 받아 수장을 세우는 타입을 좋아합니다.

    박선생님//그 현대의 돈으로 계산한 것이 쌀을 가지고 계산한 것이라 현대와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마치 예전엔 소 한마리 팔면 대학을 졸업시켰다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하는 것 처럼요) 이런 류의 비교는 그냥 참고로(동시대에 어느 정도였는지 만큼만) 해야지 현대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서 공자 할배도 말하지 않습니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부럽죠~ ^^

    고사천사님//그 드라마... 본다고 본다고 하는데 여태 못 보았네요. 저같은 경우 대하드라마는 개인적으로 리듬이 끊기면 안 보게 되더군요.(마지막으로 본 것이 신선조)
    여담으로 그 [공명의 갈림길]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새삼 네이버 낭풍 카페의 아케치님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전에는 그냥 辻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 것 같던데(저는 '공명의 거리' 정도로 해석했죠) 아케치님이 갈림길이라고 쓰자 마자 사람들이 갈림길로 바꾸더군요. 네이밍 센스 발군!!

  17.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4.21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집..허허; 그렇네요. 이윽고 불과 10년 안에 대정소어르신도 대저택에 살게 될 줄은 생각 못했던 것 처럼 말이죠.

  18.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4.23 0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진정 즐길줄 아는 이 나라의 챔피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명의 갈림길하니 마츠와 토시이에도 생각나네요
    남자는 성실함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여자도 잘 만나야된다는 거, 또 줄을 잘 서야된다는 거..
    볼 때마다 깨닫습니다

  1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3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습니다. 세상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실력보다 빽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빽이 없으면 아무런 것에도 쓸모가 없습죠.

一.


 오와리(尾張), 치타(知多) 반도의 뿌리 부근에 오오타카(大高)라는 적적한 곳이 있다.

 예전엔 나루미 개펄을 끼고 있던 어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센고쿠(戰國) 중기 즈음, 오다(織田)가문이 계속해서 이 근방을 간척(干拓)했기 때문에 바닷바람에서 상당히 멀어진 농촌이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을에서 높은 곳에 오르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이세(伊勢)의 바다가 넘실대는 것이 보인다.

 아무 특징 없는 그런 마을이다. 마을의 사당이 이외로 엔기식(延喜式)[각주:1]에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랜 사당인 것을 보면 굉장히 옛날부터 마을이 생겼던 것 같다. 사당의 이름을  [히카미아네코(火上姉子)신사(神社)]라고 한다.

 [아네코[각주:2]]

라는 사당의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모시는 신은 상고(上古)시대 이 근방에 살고 있던 여인이다.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라고 한다.

 아주 옛날 이 지역의 추장이었던 이나타네(稲種)라는 사람의 여동생으로, 야마토(大和)에서 동쪽 오랑캐 정벌하러 온 야마토 타케루(日本 武尊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여러 밤 같이 보냈을 것이다. 단지 고대 영웅과 그 정도의 연(緣)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여인의 이름은 고사기(古事記[각주:3])에 기록되어 이 지방에서는 숲에 사당을 짓고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숭배해 왔다.


 인간이란 단지 하나의 개체로 존재할 때는 단순히 동물과 다르지 않다.

 연(緣)으로 존재한다.

 연(緣)이라는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으로 성립한다고 불가(佛家)는 말한다. 이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말하려는 이야기와 상징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같다.


*******************************************************************************************************


 센고쿠 시대(戰國 時代).

 이 오오타카 마을에 빼빼마른 농부가 있었다.

 야스케(弥助)가 그의 이름이었으며 손바닥만한 밭과 소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능력도 없고 용모도 추했다. 마누라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새 마누라를 찾고 있었다.

 이런 마을과 마을들 사이에 행상인(行商人)들이 오고 간다. 이런 상인들이 마치 바람이 꽃씨를 옮기는 것과 같이 남자와 여자를 중매한다.

 나카무라(中村) 마을에 - 하고 그런 행상인 중에 하나가 말했다.

 알맞은 여자가 있다.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운 좋게 애도 없지. 어때? 하고 다리를 놓는다는 사람이 있어 혼담이 맺어졌다.

 여자는 ‘오토모’라고 한다. 추녀였다. 야스케는 실망했지만, 이 여자가 후에 즈이류우인 닛슈유(瑞龍院 日秀)라는 일본에서 아주 이름 있는 귀부인이 될 것이라고는, 물론 야스케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이 계층의 사람들에게 결혼식이라는 것은 없다.

 문 앞에 모닥불 좀 피워 밝히고 친척이나 이웃사람들에게 식초 같은 술을 먹이면 그걸로 끝난다.

 초대한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오토모는 마루바닥에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돌아갈 곳이 없사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귀여워 해 주세요.”

 

 하고 겉모습과는 달리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괜찮을 지도’

 하고 야스케가 생각한 것은 이 목소리와 순진함 때문이었다.

 그랬다. 오토모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아비는 자신과 동생을 어머니에게 낳게 한 뒤 죽었다. 어머니는 옆집의 치쿠아미(竹阿弥)라는 남자를 집에 들여 재혼하여 이 치쿠아미의 자식을 이번에 낳았다. 의붓아비인 치쿠아미는 성격이 뭐 같은 남자로, 이 때문에 오토모와 같은 아비의 자식인 동생은 집을 나가버렸다. 자신도 자기가 태어난 집이면서도 친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고맙다”


고 야스케는 말했다. 

 언제까지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누라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남편에게도 불행일 것이다. 어서 빨리 뿌리를 내려 이 마을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생각하길…….

 

 “뭐든 연(緣)이니까”


 라고 야스케는 말했다.


 “뭐든 연(緣)이니까”


 고 야스케는 말한다.

 그런데 기묘한 연(緣)이 이 세상 한 구석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것도 야스케 부부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싹트고 자라 쭉쭉 커가고 있었다.

 원숭이 - 라는 것이 이 마누라 동생의 어릴 적 이름이다.

 참고로 타이코우수세이키(太閤素生記)라는 책이 있다. 술자는 이나쿠마 스케에몬(稲熊 助右衛門)이란 나카무라 촌의 대관(代官[각주:4]) 의 딸로, 어렸을 때 이 누나하고도 동생하고도 놀았다. 그녀는 늙어서 양자인 츠치야 토모사다(土屋 智貞)에게 자신의 고향에서 나온 희대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그것을 기록시켰다. 거기에 말하길 [아명을 원숭이,  고쳐서 토우키치로우(藤吉郞). 후에, 치쿠젠노카미(筑前守[각주:5])] 이것이 오토모의 동생을 기록한 글의 첫머리이다.

 계속해서 이 책은 말한다, [노부나가공에게서 하시바(羽柴)라는 성을 받았다. 그렇기에 하시바 치쿠젠노카미라고 불리운다. 후에 칸파쿠(関白[각주:6])에 임명받아 토요토미(豊臣) 성을 받다. ...(중략)..타이코우(太閤[각주:7])의 누나, 같은 곳(오와리 나카무라)에 태어나다. 즈이류우인(瑞龍院)이라 불리다. 위 두 사람은 같은 배에서 태어나다].


 이 처남 히데요시의 영달이 오오타카 마을의 야스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을 걷게 하였다.

 야스케는 이름까지 바뀌어졌다. 그 이름이라는 것도,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三好 武蔵守 一路)[각주:8]

 이다. 자신의 신분의 변화에 놀랄 틈도 없이,

 

 “매형 다이묘우(大名)가 되세요.”

 

 하고 처남인 히데요시가 말하며 오와리 이누야마(犬山)에 10만석의 제후로 봉했다. 아무리 그래도 야스케는 다이묘우가 될 자신이 없어 봉지에 가지는 않고 히데요시의 직할령으로 하여 녹봉만 얻어서 오오사카(大坂)에서 사는 형식을 취했다. 

 ‘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미요시라는 성을 얻은 이유도 하나의 술책과 같은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비천한 신분에서 올라온 만큼 일족을 -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화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아와(阿 波)의 명족 미요시씨는 한 때 쿄우(京)도 지배한 적이 있는 거족이었지만 지금은 몰락하여 간신히 쇼우간 뉴우도(笑巌 入道)라는 노인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전성기 때는 미요시 야마시로노카미 야스나가(三好 山城守 康長)라는 이름으로 셋츠(摂津), 카와치(河内), 이즈미(和泉) 3주(州)에서 무위를 떨쳤었지만 노부나가에게 패하여 쫓겨났다. 지금은 나이 먹은 몸을 히데요시에게 의지하고 있었고,히데요시도 이 사람을 제후 격으로 예우하며 오토기슈우(御伽衆[각주:9])로 삼았다. 이 쇼우간 뉴우도에게,

 

“뉴우도. 자네의 성(姓)을 나한테 빌려주게”

 

 라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의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야스케 부부를 양자로 삼았다. 부부뿐만 아니라 부부가 낳은 자식들도 손자로 삼아 그 중에서 키베에(次兵衛)라는 인간을 미요시 가문의 후계자로 삼아, 미요시가의 후계자가 받는 이름인 마고시치로우(孫七郞)이라는 이름을 칭하게 하였다.

 - 미요시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三好 孫七郞 秀次)

라는 것이 후의 칸파쿠(関白) 히데츠구이다. 


 그러니까 그의 부모인 야스케 부부는 자신의 운명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으며 무엇이든 '연(緣)'으로 인해 귀족이 되었다.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도 이 행운의 은혜를 받았다. 받기는 했지만 마고시치로우는 그의 부모와는 달리 다소의 노력은 했다. 아니 다소정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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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바 료우타로우(司馬 遼太郎)선생의 토요토미가의 사람들(豊臣家の人々)를

번역한 것입니다.

시바 선생은 워낙 유명해서 어느 출판사인가가 판권 가지고 있겠지만,

상용이 아니니까 용서해 줄지도.. (용서 안해주면 대략 난감 --;)

원래는 타올라라 검(燃えよ剣)하고 싶었지만, 이거야 시중에서 팔리고 있으니까 안 하지만,

이건 없는 것 같으니...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할 예정...(예정이란 어긋나기 위해 존재한다!!)

  1. 967년에 작성된 율령제 시행 세칙. 종교에 관련된 신기관(神祇官) 제 9,10에 각 지역(国)마다 일본 조정에서 중요시하여 지원한 신사들이 실려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누나'라는 의미 [본문으로]
  3. 일본 신화 모음집. 여담으로 고사기에 등장하는 야마토타케루는 이 미야즈히메에게 쿠사나기 검(草薙剣)을 놓고서 이부키야마(伊吹山)의 악신을 정벌하러 갔다가 죽는다. 미야즈히메가 야마토타케루를 그리워 하며 검을 봉납시킨 신사가 후에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공격을 나가기 전에 들린 아츠타 신궁(熱田 神宮)이다. [본문으로]
  4. 그 땅의 주인을 대신해서 관리하는 사람. [본문으로]
  5.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처음 받은 관도명 [본문으로]
  6. 옛 일본 텐노우(天皇)를 대신하며 정무를 처리한 직책. [본문으로]
  7. 칸파쿠를 그만 둔 사람의 존칭. [본문으로]
  8. 카즈미치(一路)는 호이기에 '이치로우'라고 읽어야 할 듯. 그의 이름(諱)는 미요시 요시후사(三好 吉房)이다. [본문으로]
  9. 히데요시와 말상대를 하는 무리. 히데요시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식의 지식을 늘려나갔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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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7.06.04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간만에 전국시대 이야기군요^^

  2. BlogIcon 블루 2016.03.28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바 선생님 팬입니다 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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