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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다진베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06 스루가고젠[駿河御前] -3- (11)
  2. 2008.05.25 스루가고젠[駿河御前]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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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츠히데[光秀]미나미야마시로[南山城]의 들판에서 쓰러뜨린 히데요시는 그 후, 눈을 북쪽으로 돌려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까지 호쿠리쿠[北陸]에서 물리쳐 오다 정권[織田政権] 상속자로서의 발판을 다졌다.

 하지만 그것은 상속이 아니다. 찬탈이다. - 며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織田 信雄]가 오와리[尾張]에서 거병하였고, 토우카이[東海]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와 동맹을 맺고는 그와 연계하였다.

 1584년의 코마키-나가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い]이다.

 

 당시 히데요시는 쿄우[京]를 제압하고 오오사카[大坂]에 거성을 두어 그 세력범위는 24개국[国]에 이르렀으며, 총 석고는 620만석을 넘어 이미 판도는 옛 오다 정권보다도 컸다.

 그에 비해 오다 노부카츠는 107만석, 토쿠가와 이에야스 130만석이었다. 가지고 있는 힘으로만 보면 상당한 격차가 있었지만 그러나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능력과 그 가신단의 용맹함을 크게 평가하여 이 싸움에서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였다.

 

 너무 조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총동원 능력 15만 명중에서 투입할 수 있을 만큼의 병력을 미노[美濃]오와리[尾張]에 전개시켰지만 그러나 전군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만 지키게 할 뿐으로, 이곳 저곳에 야전용 진지를 구축하여 광대한 요새선(要塞線)을 쌓아 대치전의 형태를 취했다.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이건 자신들 머리에서 지혜를 짜내 만든 진지를 구축하여 대치하고 있는 이상 먼저 움직이는 쪽이 지게 될 것이다.

 

 개전이 시작된 것은 3월이었다. 4월에 들어서 히데요시 측의 한 부대가 섣불리 움직였다. 장거리를 재빨리 이동하여 이에야스의 본거지 미카와[三河]를 습격하고자 은밀히 행군하던 중에 이에야스에게 간파 당하여 이에야스 주력군의 공격을 받아 괴멸되어 패주하였다.

 

 이에야스는 국지전에서 이겼다. 그 이후에는 진지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고 히데요시가 걸어오는 싸움에도 응하지 않은 채, 이 국지전 승리의 평판을 될 수 있는 한 천하로 퍼트리려 하였다. 히데요시는 조바심이 났다. 히데요시에게 있어 최선은 결전을 벌이고 그 결전을 통해 이에야스를 멸하고자 하는데 있었지만, 이에야스는 조개가 입을 다물고 있는 듯이 하고서는 응하지 않았고, 그 단 한번의 승리를 지키며 계속 지킴으로써 사태의 호전을 기다렸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싸움에 응하지 않자, 자신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 중에 하나인 외교로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우선 이에야스의 동맹자인 오다 노부카츠를 꼬셔 농락하였다. 노부카츠는 이익에 낚여 아군인 이에야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히데요시와 강화(講和)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에야스도 충분한 여력을 남긴 상태로 전쟁터에서 이탈하여 자국으로 돌아갔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도 사자를 보내어 강화를 제시하였다. 이에야스로써도 천하의 추세가 이미 히데요시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납득하고 있었기에 그 강화를 받아들였다. 전쟁터의 승자이기는 했다. 그러나 모양새로는 패자의 모습을 해야만 했다. 인질을 히데요시에게 보낸 것이다.

 다만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입장을 생각하여 표면적으로는 인질이라 말하지 않고,

 - 아드님 중에 한 분을 졸자(拙者)의 양자로 얻고 싶습니다.

 고 말하였다. 실질이 어떻든 양자라고 한다면 이에야스의 면목도 설 것이다.

 이에야스는 그것을 승낙하여 둘째인 오기마루[於義丸]를 바치기로 하고, 가로(家老) 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 正]에게 호위시켜 오오사카[大坂]로 보냈다. 히데요시는 오기마루와 오오사카 성[大坂城]에서 만나자마자 양부자(養父子)의 의식을 치렀고 곧바로 성인식(元服)을 행한 후, ‘히데[]’라는 글자를 내려 하시바 히데야스[羽柴 秀康]라는 이름을 칭하게 해서는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하였다. 후의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승리자라는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그 본거지인 토우카이 지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성을 나와 쿄우[京]와 오오사카로 올라와서는 히데요시와 대면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마치 항복한 사람처럼 비쳐지기에 이에야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정략(政略)이었다. 이에야스가 토우카이에 엉덩이를 뭉개고 있는 한 히데요시와 대등한 관계였으며, 오기마루를 보낸 것도 토쿠가와 가문이 하시바 가문으로 양자를 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이런 이에야스의 태도에 당혹했다.

 당연했다. 이에야스가 토우카이 5개국[(미카와[三河], 토오토우미[遠江], 스루가[駿河], 카이[甲斐], 시나노[信濃])에 엉덩이를 뭉개고 있는 한 시코쿠[国], 큐우슈우[九州], 토우호쿠[東北]의 여러 강호들은 이 이에야스와 연계하며 히데요시 정권에 계속 저항할 것이고, 예를 들어 당장 히데요시가 시코쿠를 정벌하고자 하여도 후방에 이에야스가 틈을 노리고 있기에 대군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는 15만 명의 대군단을 토우카이에 계속 투입하였다면 언젠가는 이에야스를 멸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천하는 흐트러지고 이제 막 성립되었을 뿐인 히데요시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히데요시는 그 천하 통일을 단기간에 이룰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 전쟁보다도 막상 성사만 되면 단번에 끝나는 외교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에야스를 어떻게든 외교로 손에 넣고 싶었다. 이에야스를 가신으로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에야스를 이쪽으로 올라오게 하고 싶다. 올라와서 히데요시를 알현 이라는 형식으로 둘이 얼굴을 맞대기만 한다면 그걸로 주종관계가 된다.

 어떻게든 쿄우[]로 올라오게 할 수는 없을까?’

 히데요시는 예전부터 이 세상에서 노부나가[信長]를 가장 두려워 하였고, 그가 죽은 지금은 이에야스만을 두려운 자로 보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직면하게 되자 그 이상으로 두려운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자들처럼 달래는 것도 협박하는 것도 먹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인질을 잡았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정치적 결단으로는 오기마루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인질에 미련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올라왔겠지만, 그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인질은 효과가 없었다. 

 히데요시는 필요로 몰렸다. 필요의 앞에 이치라는 것이 있더라도 치워버리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만약 이에야스가 가신이 되어 준다고 한다면 무릎을 꿇고 그의 발가락을 빨아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사히 히메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필요때문이었다.

 

 코이치로우[小一郎] 힘 좀 빌려줘

 

 하고 동생인 히데나가[秀長]에게 애걸복걸하듯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이 때이다. 일족의 희생이 없으면 안 되었다.

 

 만약 니가 싫다고 한다면 천하로의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 이제 막 생겼을 뿐인 하시바의 천하가 무너지고 이 가문은 멸망. 우리 일족은 죽게 된다. 그럴 정도로 중요한 것이 너의 한 마디 이라는 말에 달려있단다. 응이라고 말해주지 않을래?”

 

 라고 말했다.

 요건이라는 것은 아사히 히메를 이혼시켜 그녀를 이에야스에게 시집 보내고,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를 인척이라는 끈으로 이어서는 그를 히데요시 정권의 막하(幕下)에 집어 넣자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모친인 오나카[仲], 즉 오오만도코로[大政所]가 용서하겠냐는 것이다. 딸의 그러한 불행을 필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설득한다. 모친을 설득하기 위해서 히데요시보다는 모친이 히데요시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는 이 코이치로우 히데나가가 이야기 하는 편이 좋다. 또 하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아사히 히메는 아비 다른 여동생이기 때문에 반쪽 형제인 오빠 히데요시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 보다 아사히 히메와 같은 아비, 어미인 히데나가의 입으로 이야기를 하게 하는 쪽이 잘 될 것이다. 그러니 아사히 히메 쪽의 설득도 부탁한다 는 것이었다.

 

 히데나가는 벙쪘다. 예부터 이런 일이 있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전례가 없을 것이다. 아사히에게는 버젓한 남편이 있으며, 부부 사이도 남들만큼은 되어 아무런 풍파도 없이 편안히 살고 있다. 그 관계를 갑자기 찢고, 찢은 다음 곧바로 다른 남자의 마누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 부부의 역사 속에 여태껏 이랬던 적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는 절대 맡을 수 없습니다. – 고 히데나가는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알고 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라고 말하자 마자 히데요시는 소리 높여 통곡을 하였다. 히데요시는 웃을 때가 많은 남자이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언제라도 울 수가 있었다. 이번에도 울면서 그 어쩔 수 없는 필요와 이유를 빠른 말로 내뱉었고, 내뱉고 있는 동안 얼굴을 계속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이 히데나가를 침묵시켰다.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시다면 소에다 진베에[副田 甚兵衛]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진베에에게는 할 수 있는 만큼 해 주고 싶다. 5만석을 주어 다이묘우[大名]로 만들 생각이다.”

 

 마누라를 팔고 다이묘우가 되란 말이군 이라는 감정이 히데나가에게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히데나가는 너무도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얌전해 지겠군 이라고 생각할 뿐으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모친인 오나카이며 여동생인 아사히였다. 그 설득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

 

 히데나가는 우선 모친에게 이야기했다. 생각했던 대로 오나카는 광란하였다. 코이치로우 들어라, 저 원숭이녀석은 꼬꼬마일 때부터 고생만 시켰다. 이런 생활을 하는 것도 내가 바란 것은 아니다. 저 원숭이녀석이 무사가 되어 이렇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궁궐에서 살고 있는 거다. 저 오와리[尾張] 나카무라의 달빛 새는 지붕 아래서 살고 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 말했다. 그것을 히데나가는 어르고 달래어 어쨌든 승낙하게 하였다. 다음은 여동생이었다.

 

  히데나가는 아사히를 오오사카 성으로 불러 큰 언니인 토모[とも]와 함께 설득하며,

 

 이미 진베에도 승낙한 일이란다

 

 고 너무도 중대한 거짓말을 하였다. 이 한마디가 아사히의 수족을 차갑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한때는 숨이 멈추기도 했다. 의사가 회복시켰지만 새로운 결혼에 대한 것보다 진베에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뒤 아무런 말도 안 하게 되어, 히데나가가 하마마츠[浜松][각주:1]로 가는 것을 알겠지? 알겠지? 라고 거듭 묻자, 초점 없는 눈동자로 끄덕였을 뿐이었다.

 

 소에다 진베에는 이 당시 오우미[近江] 중앙부에 있는 하시바 가문 직할령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진베에도 아사히와는 별도로 오오사카의 스기하라 호우키[杉原 伯耆]의 저택으로 호출 받아, 대면하자 마자 갑자기,

 

 명령이다

 

 고 그것을 하달 받았다. 진베에는 분노했다.

 작은 칼[脇差]의 칼자루에 손이 갔다.

 

 진베에~ 어쩌려고 그러나

 

 호우키는 처음부터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는지, 사람이 하는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몸놀림으로 방바닥을 굴러 몸을 뺐다. 간격이 생겼다. 그 간격으로 좌우에 있던 스기하라 가문의 가신 10명 정도가 밀려 들어와 순식간에 둘 사이를 메웠다.

 

 , 날 죽이려는 것인가?”

 

 진베에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칼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방들의 눈빛만을 두려워했다.

 

 그럴 리 없잖습니까~”

 

 스기하라 가문의 늙은 가신이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하여 이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서 미소를 만들어 말했다.

 

 손에 위험한 것을 가지고 계신지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선은 그 손에 드신 것을 좀…”

 

 하고 손바닥을 예의 있게 들어 진베에의 오른손 쪽을 가리켰다. 진베에는 이때가 돼서야 비로소 자신의 오른손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차렸다.

 

 “…아무 짓도안 할 것이네

 

 힘없이 손을 축 늘어트렸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칼에 손을 대었는지, 뽑아서 자신의 배라도 가르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스기하라 호우키에게 칼을 내리치고자 했는지 자신도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이 굴욕과 자신에게 내려진 이 어처구니 없는 운명에, 몸도 마음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이성을 잃고 이유도 없이 작은 칼에 손을 대고 만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호우키를 벨 용기도 없었다. 벤다고 해도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짓도 안 하네

 

 하고 진베에는 한번 더 말했다. 벤다고 하면 히데요시이다. 하지만 이백수십 명의 다이묘우를 거느린 육십여 주()의 주인을 벨 수 있을까?

 

 거부한다!”

 

 한 시간 후에 진베에는 외치고 있었다. 거부하는 것 이외에 남자라고 할 수도 없다.

 라고 했지만 마누라 아사히를 빼앗기는 것에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홍수나 지진과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5만석의 다이묘우가 된다는 것은 거부할 수가 있었다. 이는 진베에의 자유이다. 자기는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거부한다. 마누라를 팔아서 그 대가로 5만석의 다이묘우가 되는 병진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고 진베에는 소리질렀다.

 

 대가는 필요 없다. 그냥 공짜로 가져 가도록. 진베에가 그리 말했다고 확실히 주군께 전해주시길. 절대 잊지 말도록

 

 현관까지 달려간 후, 거기서 뒤로 돌아서는 어두운 집안을 향해서 한번 더 같은 말을 외쳤다. 공짜이외다. 그냥 바칩니다. 그렇게 전해 주시길. 호우키님, 꼭 이외다. 이 말을 만약 전해주지 않는다면 진베에에게 기다리는 것은 지옥. 아미타(阿彌陀)미륵(彌勒)도 날 구해주지 못할 것이오. 적어도 이 말만은 꼭 위에 전해달라고 외치며 뛰쳐나갔고, 대문을 나서면서도 또 다시 뒤로 돌아서는 또 외쳤다. 그 모습이 결국 미쳤군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저 사람, 치욕으로 인해 배를 가르겠지?

 하고 문안에 있던 사람들은 생각하였고 실제로 길 위에서 달리고 있는 진베에도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우, 배를 가르는 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었다. 굴욕의 끝에 죽었다 고 세상에 퍼질 뿐이었다. 배를 가르는 것은 예로부터 자신을 과시하는 최고의 형식이며 화려한 것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이 경우 이렇게 혼자서 자결(自決)해 보았자 남들에게 우울한 동정을 살 뿐일 것이다. 그보다도 살아서 하시바 가문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무단(無斷)으로 떠난다. 주인에게 실망하였기에 떠나는 형식이다. 거기에 담긴 무언의 항의와 비판을 세상은 읽어 줄 것이다.

 보통 이럴 경우, 떠난 이는 주군 가문에 대한 일종의 반역으로 여겨져 토벌대가 파견되겠지만, 상대가 천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만큼 부족하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집의 얇은 벽 하나만 의지하여 크게 저항한 뒤 죽어 주마 , 그것 이외에 이 굴욕을 풀 방법은 없었다.

 

 진베에는 다음 날 새벽 숙소를 나와 오오사카를 떠났고, 도중 오우미의 저택에 들려 집을 정리한 뒤 고향인 오와리로 돌아와 아이치 군[愛知郡] 카스모리[烏森]자기 영지(領地) 내에 있는 에서 머리를 깎고 인사이(隠斎)’라는 호를 쓰며 은거해 버렸다.

 

 당연히 위에서 토벌대가 파견되었어야 했지만, 그런 점도 스기하라 호우키는 잘 처리하였다.

 다음날 아침. 진베에가 떠난 것을 확인한 뒤, 등성(登城)하여 히데요시를 알현하고서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그러면서 진베에가 오와리로 돌아간 것은 무단으로 떠난 것이 아닌 병으로 인한 은퇴이며 진베에가 제출한 퇴직서는 저한테 있습니다 - 고 적당히 얼버무린 후,

 

 은거 허락을 내리시겠습니까?”

 

 고 머리를 굴려 말했다.

 물론 히데요시는 호우키의 말 뒤편에 있는 진실이 생생히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경우 죄를 들추어 소란을 피우면 이쪽이 손해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고 허락하였다. 남아있는 더욱 중대한 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곧바로 사자를 하마마츠로 보내어 이에야스를 꼬셔 그를 자신의 매제가 되도록 승낙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잘 될까?’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이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

  1. 이에야스의 본거지가 있는 곳.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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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iroyume BlogIcon shiroyume 2008.06.06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기마루를 '받치기로'의 수정이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06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고맙습니다. ^^ 얼릉 고치겠'읍'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06 14: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너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고충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어색함없이 읽히는게 상당히 매끄러운 번역같습니다(직접 원문을 보지는 못했으나^^;)

    아사히도 충격이 심했겠지만 굴욕의 사나이 진베에도 참...
    힘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하는 짓은 상당히 병진같습니다 그런 말을 몇 번이나 당부할 필요는 없을텐데 말이죠;;;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06 2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처음 해 놓고 보니 제가 보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솔직히 매끄러운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 그렇게 보아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

    억울하다 보니 어쩔 수 없겠죠. 진베에는....
    이해는 갑니다.
    (어떻게 보면, 배를 가른 사람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그만큼 희소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 무사들은 굴욕을 당하느니 배를 가른다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기에 오히려 배를 가른 사람들이 기록된 것은 아닐지...)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6.07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한 아사히// 아사히 일생에 행복한 날들은 히데요시가 찾아오기전 시골에서 첫번째 남편과 살적이 아닐까 싶네요. 스루가 고젠을 읽으면 공명의 갈림길에서의 아사히 모습이 떠오릅니다. 잘 읽고 갑니다. ^^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gorekun BlogIcon 고어핀드 2008.06.07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기다리고 있다능 ^^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07 2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가 2차대전때 고베에서 살고 계셨는데 종종 하얀 장막 쳐놓고 하리키리 하는 모습을 봤다더군요. 그런데 어릴적에 그런걸 봐서인지 625동란때도 덤덤하셨다고..;;

    아무튼 뭐 멀쩡한 사람인 이상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말이 좀 역설이지만 참.. 상관에게 마누라 뺐긴 셀러리맨 느낌인지라..)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07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복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않았을 수도 있군요...
    마치 조선시대에 삼족을 멸한다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다충승님//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어핀드님//T.T 흑~ 고맙습니다.

    다메엣찌님//제 생각엔, 그 즈음엔 에도 막부 배양 된 존황사상이 막말유신기에 꽃을 피워, 배를 가르는 것이 활성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다메엣찌님의 할머님도 修羅場をくぐってきましだね。)

    박선생님//어디까지나 생각만큼은... 이라는 의미입죠 ^^
    배를 갈랐던 사람도 있긴 있으니까요.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rknesseye BlogIcon 흑안 2008.06.17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앞에 나오는 오다 노부카츠는 信雄 아닌가요? 信勝은 노부나가의 동생이었던 칸쥬로 노부유키의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본문에 저렇게 나와있는 것인지?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0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오타입니다. ^^;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二.

 

 하시바 가문이나 나가하마 성[長浜城] 성 밑 마을에서는 과부가 된 그녀를,

 '아사히 히메[]'

 라 불렀다. 히메[姫][각주:1]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햇볕에 탄 잔주름은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었고 나이도 30을 몇 개인가 넘어, 이제는 그 호칭에 걸맞은 눈이 부실 듯한 화려함[각주:2]은 없었다. 더구나 남편의 죽음으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항상 어두웠고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어떤 심경인지……’

 히데요시[秀吉]만큼이나 사람 마음을 꿰뚫는 사람도 이 말없는 여동생이 지금 어떤 심정으로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새로운 남편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주변을 찾아보니 소에다 진베에[副田 甚兵衛]라는 자가 부인을 잃고 홀아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히데요시는 맘을 정하여 이때도 스기하라 호우키[杉原 伯耆]가 이 혼담을 담당하게 되었다.

 

 소에다 진베에의 신분은 원래부터 하시바 가문의 가신이 아니라, 이전 노부나가의 부하로써 히데요시에게 파견되었던 사람이지만 히데요시가 나가하마 성주가 된 이후 하시바 가문에 속하게 되었다.

 대단한 인물은 아니다

 히데요시는 그 점이 불만이었다. 무사(武士)로서 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장래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성()을 가질 수 있는 기량이 없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매력은 - 오와리[尾張]의 소에다 씨[副田氏]라고 하면 아이치 [愛知郡]의 명문가라는 점이었다. 히데요시는 피의 고귀함을 원했다. 소에다 씨 정도가 고귀하다는 것은 이상했지만, 이 시기의 히데요시의 지위로 본다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고귀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단 당사자인 소에다 진베에가 이 결혼에 그다지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하고 단호히 호우키에게 말했다. 이유를 말하길, 자기는 기량이 부족하며 남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만약 장래 내가 조금이라도 출세를 하게 된다면, 남들은 이 소에다 진베에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누라와 결혼한 덕분에 영달하였다고들 말할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남자로서 참기 힘들다, 이 결혼식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해주시길 이라고 말했다.

 이외로 기골이 있는 사나이군

 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히데요시는 진베에를 달리 보게 되었다. 역시 아이치 군[愛知郡]의 지방 명문가 출신답게 자부심을 가진 사나이라고이 이야기를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게 되어,

 

 어떤가? 한번 더 가보시게

 

 라고 말했다. 말을 바꾸면 [명령]이었다. 호우키는 그렇게 소에다 진베에에게 전했다. 진베에도 이렇게까지 되면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

 

 맞이하고부터, 이렇게까지 기묘한 여자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가(武家)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세한 격식 같은 것을 몰랐다. 예를 들면 무가에는 연중행사가 많아 팔삭(八朔)이나 상서(祥瑞)로운 날은 어떤 가정 행사를 하고 자신은 어떤 의복을 입으며 남편에게는 어떤 준비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몰랐고, 그러한 지식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소에다 가문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다스려갈 능력도 없었다. 다만 그러한 무가의 주인마님으로서의 일은 그녀에게 딸려 온 노녀(老女)가 전부 대행하였고, 그 밑의 시녀가 수족처럼 움직였다. 그런 점을 덮기 위해서 하시바 가문에서 화장할 때 쓰라는 명목으로 땅(化粧料)이 붙어왔다.

 

 아사히는 하루 종일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히데요시의 배려인 듯 ()나 습자(習字)의 선생이 붙어 있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에도 흥미가 없는 듯했다. 이 여성은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탄력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를 어떻게 누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도 모르겠군

 요괴와 같구먼 - 하고 소에다 진베에는 처음에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 말해야 할 것은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1개월 정도 지나 진베에는 과감하게 말해 보았다.

 

 조금만 더 힘내 줄 수 없으신가?”

 

 진베에는 말하길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어라. 행동도 씩씩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사히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같은 것을 말해 보았다.

 

 어떠하오?”

 

 하고 부드럽게 한번 더 말했다. 진베에는 이 시대의 무사로는 드물게도 여성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할 수가 있는 남자였던 것 같다. 그것이 아사히의 마음 어딘가를 단번에 녹였을 것이다.

 

 힘드옵니다!!”

 

 고 갑자기 외치듯이 말했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진베에가 놀랄 정도였다. 아사히는 굉장히 괴로운 듯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을 들여다 보자 이를 악물고 있었다. 울고 있는 듯 했다.

 

 뭐가 그리 힘드신가?”

 

 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물어 보자, 둑이 터진 듯이 처음으로 울음 소리를 내었다.

 이것이 이 여자의 울음 소린가?’

 마치 꼬꼬마로 돌아간 듯이 자기를 잊은 막무가내의 울음소리였다. 진베에는 아사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목소리에 반한 듯할 감정에 휩싸였다. 틀림없는 인간 여성의 목소리였다.

 

 날이 새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네. 울고 싶으면 울게. 무언가 말하고 싶으면 말해시게. 나를 남이라 생각하지 말시게

 

 그렇게 말해주자, 아사히는 조금씩 입술 안 쪽에서 말을 만들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놀랍게도 이 집에 와서 자신은 너무 긴장하고 있다, 그것이 힘들다고 말하였다.

 ‘……그랬구나

 하고 진베에에게는 이외였다. 아시하의 친정은 종오위하(從五位下) 치쿠젠노카미[筑前守]. 소령(所領) 20만석이라는 다이묘우[大名]의 가문이었다. 소에다 가문은 오다 가문의 부하였을 때 100석이었고 지금은 200석에 지나지 않았다. 20만석에서 200석 부하 가문에 와서 긴장하여 거의 정신을 상실해 버릴 정도였다는 것은 정말로 뜻밖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사히가 태어난 곳은 오와리에서도 최하층 소작농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시집간 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 세계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아사히도 편안히 세상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비 다른 오빠인 히데요시가 아사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세계에서 파워엘리트가 되어, 전례가 없는 입신출세하였고 지금은 오다 계열의 다이묘우로서는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아사히의 운명도 환경도 일변했다. 나가하마로 오자 마님이라 불리는 신분이 되었다. 전남편이 죽은 후, 그 생모인 오오만도코로[大政所]와 함께 요 일년간 성안에서 살며 많은 시녀들의 시중을 받았다. 모든 것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시녀들은 모두 오와리나 오우미[近江]의 무가(武家) 출신자로 모든 것이 아사히와는 달랐다.

 아사히는 그녀들이 쓰는 무로마치[室町] 풍의 무가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말 없는 성격이 더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는 가신인 소에다 가문에 시집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아사히의 가부도 묻지 않고 히데요시가 정하고는,

 

 소에다 가문은 누가 뭐라 하건 명문가다. 예의 범절이나 무가의 격식 등을 어서 빨리 배워 두렴

 

 이라고 말하며 예전에 오우미의 지배자였던 쿄우고쿠 가문[京極家]을 섬겼다는 노녀에게 배우게 하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번거로움을 뭐라고 할까…… 예를 들면 남편과 같은 방에 있을 경우, 코를 풀기 위해서는 옆방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푸는 방식도 품 안에 있던 종이()를 꺼내어 처음엔 약하게, 다음은 조금 힘차게, 또 다음에는 처음과 같이 약하게 푼다. 세 번에 걸쳐 푸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러했다. 오와리에서 밭일하고 있을 즈음 종이 같은 것이 백성에게 있을 턱도 없기에 모두 손으로 풀고 털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급변한 환경일 것이다.

 

 그런 긴장이 소에다 가문에 와서 더욱 더 심해져 피의 순환이 막혔는지 혀도 움직이지 않았고 긴장했는지 몸동작도 가르쳐준 대로 따라지지 않아 그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계속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좋은 여자구나

 고 진베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으로 이 오동통한 마누라를 보았다. 자신이 종오위하 치쿠젠노카미의 여동생 되시는 분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이렇게 몸을 굳히고 있었다.

 

 잘 알았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네

 

 고 진베에는 웃지 않고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될 수 있는 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의작법이라는 것은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 하면 이것만큼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없다. 창피를 두려워하지 말고 틀린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느긋하게 행동하면서 조금씩 고쳐가라, 그것이 중요하다, 나도 가르쳐 줄 테니 나쁜 제자가 되어라, 좋은 제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당신을 키워 주겠네

 

 라고 말했는데, 이는 진베에에게 있어서 아사히를 안심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여성을 무가의 부인으로 만드는 것에 열의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베에는 집에 있는 한 그러한 것에 신경을 쓰며 아사히를 가르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젊지도 않았으며 30년을 넘게 백성의 여자로 살아 온 아사히를, 이제 와서 다른 여성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들짐승을 가축으로 만드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진베에는 그런 것에도 열의를 느꼈다.

 

 한편 사적이 아닌 공적으로써의 진베에는 그다지 출세를 못했고,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500석으로 더해진 것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었다.

 하시바 가문이 군단(軍團)인 이상 이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를 들어 1000석이라면 자신의 가신이나 부여된 아시가루[軽] 한 조 정도[각주:3]는 이끌 수 있어, 한 개 전투 단위의 대장으로써 전쟁터에서는 단순한 용맹뿐만이 아닌 전술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기량이 없는 진베에에게 1000석을 주면 가문 내의 사기에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군단의 활동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에,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이런 사정 때문에 진베에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 줄 수는 없었다.

 

 세상의 난이 진정되면 성 하나는 주겠다

 

 고 히데요시는 아사히에게 그런 약속을 하였다. 평화로운 시대가 온다면 무능한 자에게 아무리 많은 땅을 주어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후 5년이 흘렀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信長]의 명령으로 츄우고쿠[国] 방면 사령관이 되어 오우미를 출발하여 하리마[播磨]로 향할 때, 진베에를 전열에서 빼서는 나가하마를 지키게 하며 영지(領地)의 민정을 담당시켰다. 이것은 다소 적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김에 700석으로 해 주었다.

 그 정도의 신분이었지만 소에다 가문은 소유한 석고(石高)보다 훨씬 유복했다. 성에서 아사히에게 보내지는 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쌀 덕분에 아사히는 충분히 작은 다이묘우[大名]급의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진베에는 물론 그 혜택을 관리하였다.

 

 진베에는 이 즈음 병이 많아져 더 이상 전쟁터에 갈 수 있는 몸이 아니게 되었다. 자주 열이 낫고, 열이 나면 10일 이상 자리에 누웠는데, 아사히는 이런 경우가 되면 마치 물을 만난 고기와 같이 활기를 찾아 열심히 병간호를 하였다.

 병간호를 시키면 이 여자보다 잘하는 마누라도 없을 것이다

 라고 진베에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사히는 여전히 들냄새가 빠지지 않았고 여전히 무가 부인으로서는 부족했지만, 그러나 환자의 간호에는 무로마치 풍습 등의 구속이 없었기에 아사히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해방된 듯한 마음으로 열심히 했을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

 이 점은 진베에도 곤란했다. 아사히가 석녀인 것이 확실해진 이상, 보통이라면 마땅한 여자를 들여서는 후계자를 만들어 소에다 가문의 제사가 끊기지 않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다른 무사의 경우 필요이상으로 미녀를 들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진베에는 히데요시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하고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아사히에게 무가의 관습을 가르치면서 은근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진베에는 말했다. 무문의 가문이라는 것은 가문의 이름과 제사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하는데, 후계가 없을 경우 정실(正室)은 자신이 맘에 드는 시녀 중에 하나를 남편에게 보내는 것이 통례이다. 그렇게 말하자 아사히도 원래부터 그러한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듯 아무 말도 안하고 엎드려 울어버렸다. 여전히 의사는 명료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하자면 꼬꼬마와 같이 통곡하는 모양이 이미 세찬 거부를 표명하고 있었다.

 역시 안 되나?’

 이 하나만은 진베에도 아사히를 교육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는 본래의 질투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역시 자란 곳이 무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무가에서 자랐다면 질투심의 억제는 가훈으로 행해졌으며 가문이 끊기지 않게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도 마음 속으로 새기고 있었을 터였다.

 결국 백성의 딸이군

 라고 이러한 때는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었으며, 거기에 그냥 백성의 출신보다 성가셨던 것은 그녀의 오빠가 진베에의 주인인 치쿠젠노카미라는 것으로, 이 때문에 무턱대고 강행할 수도 없었다.

 

 오빠한테도 아이는 없습니다

 

 고 아사히는 흐느껴 울면서 한마디만 하였다. 이런~ 그건 아니지~, 하고 진베에는 생각한 것이다. 하시바 가문 같은 것은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중신 니와 나가히데[ 長秀]시바타 카츠이에[田 勝家]를 가져다 붙였을 뿐만인 성으로, 본성도 지역 연고도 없었다. 거기에 비해 소에다 가문은 작다고는 하지만 카마쿠라 시대[鎌倉時代]부터 내려오는 가문으로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보다도 가문은 뚜렸했다. 친정인 하시바 가문과 같은 감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했다. 하지만 이것을 말해보았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기에 진베에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4년 후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1582 6 2. 오다 노부나가가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 쿄우[]의 혼노우 사[本能寺]에서 죽음을 당한 이다.

 미츠히데는 이 반란을 일으킨 후 오다 가문의 근거지인 오우미를 제압하고자 5일에 그 부장()아케치 미츠하루[明智 光春]에게 아즈치 성[安土城]을 공격하게 하였다. 아즈치 성의 수비는 오다 가문의 모우 카타히데[蒲生 賢秀]가 지키고 있었지만 병력 부족으로 인하여 적이 오기 전에 성을 버리고 노부나가의 측실 20, 시녀 수백 명을 호위하며 카모우 군[蒲生郡] 히노[日野]자기 으로 철수했다. 아즈치 성의 북쪽으로는 오다 가문의 중신 니와 나가히데의 거성인 사와야마[佐和山]가 있었지만, 여기도 지키는 병사가 소수였기에 빈 성이 되었다. 거기에서 그 북쪽은 히데요시의 나가하마 이었다. 하시바 가문의 유력 무장들은 하나같이 츄우고쿠[国]에 있었으며 나가하마에는 없었다.

 성에 있는 것은 몇 안 되는 무사와 히데요시의 가족뿐이었다. 단 이미 문관(文官)같은 일을 하고 있는 소에다 진베에가 있었다.

 

 성을 지킵시다

 

 고 처음엔 진베에가 떠들었다. 히데요시의 부인 네네[々]는 이 인물의 당황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성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성안에 무사다운 사람은 10명도 없지 않은가? 10명 정도의 무리도 오다 가문의 장래에 절망하였고 또한 진베에의 지휘하에서 싸우는 것을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슬며시 가족들을 데리고 미노[美濃], 오와리[尾張]로 도망쳐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막는다는 것일까?

 

 다음날 진베에는 주장을 바꾸어, 오와리로 도망칩시다, 고 말했다. 도망칠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이 인물은 단지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시끄럽게 떠들 뿐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역시 싸울 때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하고 네네는 진베에가 맘에 안 들어,

 

 내가 지시를 하겠네. 자네는 닥치고 있게

 

 하고 말했다. 이 나가하마의 동쪽에 히데요시가 예전에 오다니 성[小谷城]을 공격할 때 쌓았던 야전용의 성이 남아 있었다. 산성(山城)이었기에 적을 막기에 나가하마보다는 훨씬 든든했다. 거기로 물러나기로 하고 네네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보호하며 성에서 나왔다.

 그 성을 나올 때도 진베에는 짐들을 지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성 밑 마을(城下町)이나 근처의 마을 사람들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리는 일 없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후일 히데요시의 마음을 굉장히 상하게 하였다. 진베에가 조금만 머리를 써서 적어도 편지 한 장이라도 츄우고쿠[国]에 있는 히데요시에게 보내어, 가족들은 모두 무사하십니다 는 소식을 알렸다면 히데요시는 크게 안심하여 신경쓸  필요 없이 복수전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진베에라는 남자가 녹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빗츄우[備中]에서 서둘러 군세를 돌려 히메지[路]에서 아마가사키[尼崎]로 내달리고 내달리는 동안 말 위에서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셀 수 없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보다 가신의 무능에 대해서 너그러운 편이었지만, 그러나 이 때는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초조해져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1. 보통 젊은 나이의 ‘아가씨’를 뜻 함. [본문으로]
  2. 아사히[旭]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뜻한다.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의 경우는 1000석의 부하에게 32명(기마무사 5명, 등에 깃발을 꼽은 자(指物) 10명, 창 10명, 부대 깃발 2명, 철포 5명)을 지휘케 하였다. 1581년 기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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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5.25 1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번이나 시집을 간 것인지... 이에야스가 3번 째인가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1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에서는 이에야스가 3번째입니다. 저도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인물인지라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힘들군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5.25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내용이 공명의 갈림길에서 본것과 상당히 유사 하네요. 공명의 갈림길에서는 맘고생 하다가 진베에와 재혼하고 좀 잘 사나 싶었는데, 강제 이혼 당하고 이에야스에게 시집 가더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무래도 관련 자료가 적어서 그런가 봅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26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사히 히메라.. 생각해보면 전혀 호칭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군요, 30여년 하루종일 뙤양볕 내려쬐는 밭에서 밭일하며 태웠을테니(-_-..)

    아.. 하긴 아사히는 아침해를 뜻하니 좀 엇나간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횡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06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닷가에서 뱀새 술 마시고 모래 사장에서 자다 새벽 햇살에 깰 때의 따끔함은 장난 아니죠(저도 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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