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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야쿠인젠소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27 대화대납언(大和大納言) -2- (4)
  2. 2007.12.25 금오중납언(金吾中納言)-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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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20년이 지났다.
 
마치 하늘나라에 사는 것처럼 모든 환경도, 운명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히데요시는 오다 정권을 계승하여 천하의 중앙부를 얻고, 쿄우[]를 발 밑에 두었으며, 오오사카[大坂]에 본거지를 두어 오나카[仲]는 그 성에서 수많은 시녀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치쿠아미[竹阿弥]와의 사이에서 생긴 딸은 사지 휴우가노카미[佐治 日向守]라는 하시바 정권[羽柴政権]의 조그만 다이묘우[大名]의 부인이 되었고, 코이치로우 히데나가[小一 秀長]는 종오위하(從五位下) 하시바 미노노카미[羽柴 美濃守]라 칭하며 하리마[播磨], 타지마[但馬]의 2개국 영주로써 히메지 성[城]을 거성(居城)으로 하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군
 
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단 오나카가 갑자기 이런 귀족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1년 전,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오우미[近江] 나가하마[長浜] 20만석의 다이묘우[大名]에 봉해졌을 때, 오나카는 기후[岐阜]의 저택에서 나가하마 성[長浜城]으로 옮겨와, 그 호반(湖畔)의 성()에서 처음으로 기와집(御殿)에 살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

 어쨌든 그때부터 11년이었다.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히데요시가 올해 즈음부터 공가(公家)가 되고자 하는지, 오오사카 성[大坂城]의 거주구역[奥]을 공가(公家) 풍으로 바꾸기 위해서 쿄우[京]에서 공가(公家)의 딸들을 다수 여관(女官)으로 들여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 화장실의 관례까지 바뀌어 버렸다.

 할멈은 혼자 갈 테다

 고 오나카가 말해도 시녀들은 허용치 않고 몇 명인가가 따라 붙어서는 입구에서 공가의 관례에 따라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 더구나 일을 본 것의 떨어지는 장소는 항아리가 아니라 모래상자였다. 모래 위에 그것이 떨어지면 어떤 사람이 와서 그것을 가지고 가 버렸다.

 저건 거름으로 쓰려는 것인가?”

 하고 오나카는 어느 날 쿄우[]의 궁궐에서 온 여관에게 물었다. 백성으로 살아온 오나카는 저것을 채소밭에 뿌리는 건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요 하고 여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이치쿠사이가 살펴 봅니다

 하고 말했다. ‘수이치쿠사이라는 것은 뭘까? 일본말로 쿠사이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뜻하기에, 웃기게도 오나카는 왠지 냄새 나는 것을 담당하는 관리를 그렇게 말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쿄우[京]의 궁정시의(宮廷侍醫)인 마나세 도우산[曲直瀬 道三]라는 사람이 요즘 오오사카로 내려와 히데요시 일족의 시의(侍醫)가 되어 있었다. 그 호() '수이치쿠사이[雖知苦]'라고 하였다. ()기는 하지만() 답답하다()는 의미로 붙인 호일 것이다.[각주:1]

 갑작스런 영달이 오나카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또 있었다. 어느 날,

 마님께선 옛날에 궁중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여관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와리[尾張] 고키소[御器所] 마을에서 가진 땅도 없이 소작이나 부쳐먹던 백성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카무라[中村]에 사는 야에몬[弥右衛門]의 배필이 되어, 다음 남편으로 치쿠아미를 들였다. 그랬을 뿐인 전반생이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이런히데요시가 말하고 있다고 했다.
 
저 녀석이?’
 
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녀석도 환경이 갑자기 변했기 때문에 미친 것은 아니겠지? 더 캐묻자 이야기는 정말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야기에서
 
오나카는 옛날 궁중에서 물을 담당하는 하녀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텐노우[天皇]인 고나라텐노우[後奈良天皇]가 오나카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오나카의 소매를 잡아 끄셨다. ‘갑자기 옥체(玉體)에 다가가 받든 적도 있다고 히데요시는 말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오나카는 텐노우의 씨를 품고 태어난 고향 오와리로 돌아와서 낳은 것이 이 히데요시다 고 말하며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것을 히데요시가 입 밖으로 낸 것은 쿄우토[京都]의 세야쿠인 젠소우[施薬院 全宗]의 저택에 있을 때였다. 히데요시는 입궐할 때, 이 저택을 옷 갈아입는 장소로 빌리고 있었다. 들은 사람은 마츠나가 테이토쿠(松永 貞)였다.

 마츠나가 테이토쿠는 왕년에 쿄우()에서 위세를 떨쳤던 마츠나가 단죠우 히사히데[松永 久秀]의 아들로[각주:2], 히사히데 멸망 후에는 무사(武士)를 버리고 쿄우[京]에서 렌가[連歌], 하이카이[俳諧]에 전념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공가(公家) 사회에 섞여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이 테이토쿠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둠으로 인해 공가(公家)의 소식도 알고, 조정의 정보도 알 수가 있었기에 쓰임이 좋았다. 이 날도 테이토쿠를 근시(近侍)시키고 있었다. 이날 옷을 갈아입고 기둥에 기대어 휴식을 하고 있던 중에,

 나의 모친 젊었을 적에……”

 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테이토쿠는 그것이 믿기건 믿기지 않건 제쳐두고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 우선 그 이야기대로 필기하는 한편 사람들에게도 퍼트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오나카는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 후 히데요시가 키슈우[紀州] 정벌을 끝내고 오오사카 성으로 귀환했다. 이 효자(孝子)는 귀환해서 반드시 제일 먼저 오나카와 대면하여 모친의 건강을 묻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때 오나카는 일부러 사람들을 물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너는 감히 궁궐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구나

 라고 말하자 히데요시는 목소리 높여 웃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말을 퍼트렸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일을? 허영심 때문이냐?”

 고 물었다. 아무리 오나카라도 이 자신이 낳은 자식놈의 심사가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다 우다이진(織田 右大臣=노부나가)님을 보시길

 하고 히데요시는 혼노우 사[本能寺]에서 죽은 옛 주인의 예를 들었다. 노부나가의 선조도 가계(家系)가 애매했다. 오다 가문의 선조는 에치젠[越前] 니부 군[丹生郡] 오다 신사[織田(神社]의 신관(神官)으로, 노부나가부터 거슬러 올라가길 백 수십 년 전에 오와리로 흘러와 호족이 되었고 차츰 세력을 길렸다. 족성(族姓)은 후지와라 씨[藤原氏]라고 한다. 이 때문에 노부나가는 처음엔 후지와라 씨[藤原氏]를 칭하고 있었지만, 천하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갑자기,
 
-
우리 집안은 헤이시[平氏]이다. 타이라노 스케모리[平 資盛]의 후손이다[각주:3].

 라며 그 선조를 변경하였다. 이유는 겐지[源氏]인 아시카가 씨[足利氏]를 멸망시키고 그 천하를 잇기 위해서는 헤이시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당시 호족들은 [겐페이 교대사상(源平 交代思想)]이라는 것[각주:4]을 믿고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그 설을 이용하여 천하에 오다 대세론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노부나가는 유우히츠[祐筆]에게 명령하여 족보를 만들게 하였지만, 어째서 오다 가문이 헤이시[平氏]인 것이냐는 점에서 힘들었다. 그래서 타이라노 치카자네[平 親実]라는 가공의 인물을 창조하였다.

 치카자네를 단노우라[浦][각주:5]에서 죽은 타이라노 스케모리의 둘째 아들로, 헤이케[平家]가 멸망할 때는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였지만, 그 어미가 품에 안고 오우미[近江]도망쳐 츠다[津田] 아무개의 부인이 되었다. 그 후, 에치젠[越前] 오다 신사의 신관 오다 씨[織田氏]가 치카자네의 운명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후사로 삼았다 는 것이 노부나가가 만들게 한 오다 가문의 헤이시 전설이었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경우는 그러한 전설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비천한 출신이었다. 이럴 경우 히데요시는 겐지[源氏]를 칭하고 싶었을 것이다. 헤이시[平氏]인 노부나가 다음은 겐지인 히데요시여야 했다. 겐지라면 궁정의 전례에 따라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軍]에 임명 받아 막부(幕府)를 열 수가 있었다.[각주:6] 미카와[三河]토쿠가와 이에야스[ 家康]는 노부나가의 개성(改姓)과 비슷한 시기에 개성[각주:7]하여 족보를 창작해서는 겐지를 칭하고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경우는 이제 와서 그것이 불가능했다.

 세이이타이쇼우군이 될 수 없는 이상, 히데요시는 아예 공가(公家)가 되어 칸파쿠()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각주:8] 칸파쿠는 셋케[家]의 후지와라 씨[藤原氏]가 아니면 안 되었다. 그 점이라면 편법을 써 누군가 친한 공가(公家)의 양자(養子) – 결국 키쿠테이 다이나곤(菊亭 大納言)의 유자(猶子)[각주:9]가 되었지만[각주:10]가 되어 버리면 그걸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로 명문가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자신의 출신이 지금과 같아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자신이 텐노우[天皇]의 씨라는 풍설을 유포시켰다.

 물론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그래도 좋았다. 히데요시 자기도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가 묻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크게 한번 웃고 그 자리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치부할 생각이었다. 즉 후지와라 공가(公家)의 양자가 될 때까지의 시간 동안,
 
-
세간에서는 그렇다고도 한다.
 
라는 정도의 풍설만 만들어 퍼트려 두면, 형식 중시인 궁정은 히데요시라는 남자를 받아들이기 쉽게 될 것이다. 이 텐노우의 씨라는 설은 그것만을 위해 쓰려고 창작한 것으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친이 트집을 부려오면 오히려 히데요시 자신이 곤란했다.

 너에게는 누나가 있지 않느냐

 라고 오나카는 말했다. 그 누나가 죽었다면 모를까, 지금 남편과 함께 아와[阿波]의 명족 미요시 씨[三好氏]의 성()을 잇고 있으며, 현재 그 아들 히데츠구[秀次]가 히데요시의 양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오나카가 앳된 소녀일 즈음에 텐노우[天皇]의 씨를 품고 오와리[尾張]로 돌아왔다면, 이 누나의 존재가 이상해지지 않느냐? 아이가 있는 앳된 소녀라면 이야기의 설정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하하~”

 히데요시는 웃었다. 어떻든 상관 없는 것이다.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는 궁정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만들었을 뿐인 동화 같은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설정붕괴건 뭐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다면 니 동생 코이치로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건 치쿠아미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너만이 텐노우(天皇)의 아드님이신가?”

 오나카는 자못 무서운 말이라도 들을 듯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가 낳은 아이이면서 이 야에몬의 씨로 낳은 자식은 꼬꼬마일 때 가출해버렸던 만큼 예상도 할 수 없는 인물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치쿠아미의 씨인 코이치로우 히데나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오나카가 직접 키웠으며, 저런 형과 비교해 보면 어쩜 이렇게 솔직하고 귀염성이 있는 남자란 말인가……

  1. 斎라는 글자의 의미에는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 호에 많이 쓰였다. [본문으로]
  2. 사실 손자라고 한다.(이것조차 추측) [본문으로]
  3. 타이라노 스케모리는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서 무사의 모범이라고 하는 타이라노 시게모리[平 重盛]의 둘째 아들. 여담으로 시게모리는 무가(武家)로서는 처음으로 다이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 된 타이라노 키요모리[平 清盛]의 첫째아들. 즉 스케모리는 키요모리의 손자. [본문으로]
  4.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가 교대로 천하를 쥔다는 사상. 카마쿠라 막부 쇼우군 가문[鎌倉幕府将軍家](겐지) -> 카마쿠라 막부 싯켄 호우죠우 가문[鎌倉幕府執権 北条家](헤이시) -> 무로마치 막부 쇼우군 아시카가 가문[室町幕府将軍家 足利家](겐지). [본문으로]
  5. 겐페이 쟁란 최후의 전투. 해전(海戰). [본문으로]
  6. 겐지[源氏]만이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노부나가의 경우 조정에서 칸파쿠[関白], 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 중 아무 거나 하나 되라는 말을 들었다.(三職推任問題) [본문으로]
  7. 후지와라[藤原]에서 겐지[源氏]로. [본문으로]
  8. 실제로는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보다 칸파쿠[関白] 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본문으로]
  9. 성이 바뀌지 않는 등 계약에 따른 양자 관계. [본문으로]
  10.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키쿠테이 가문[菊亭家]은 칸파쿠가 될 수 없는 세이가케[清華家]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히데요시는 셋케[摂家] 필두인 코노에 가문[近衛家]에 유자로 들어갔다. 키쿠테이는 그 코노에 가문과 히데요시를 연결해 주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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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4.27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이번 편에서는 히데나가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오네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27 1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끝에 솔직하고 귀염성 있는 남자라고...^^;
    다음 편은 본격 히데나가 이야기입니다(원래 이번 편 자체가 히데나가긴 하지만요..^^;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4.28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혁신 플레이 하다보면 키쿠테이공이 자꾸 헌납하라고 시쯔코이하게 불러대서 초반에 귀찮았던(이라고 말하고 힘들었던 이라 읽는다) 기억이..

    아무튼 고노에가의 유자로 히데요시가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일제 강점기 때의..(뭐 실권은 없었다지만) 먼 후손(..이라고 말하면 비약일테지만)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이 떠오르네요. 나름대로 선조의 유지를 이은건가;;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4.30 0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 護熙)라는 수상까지 만들었으니, 그걸로도 코노에 가문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어느 날 밤, 쿠로다 죠스이[黒田 如水]가 히데요시소소(小小)한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생각난 듯이,

 킨고[金吾]님에게도 좋은 양갓집이 생긴다면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은 만만세겠군요.”

 하고 히데요시를 찔러보았다. 양자(養子)로 보낼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히데요시는 죠스이가 뭔가를 꾸미기 시작한 것을 알아채었다. 거기에 동참해 주고자, 짐짓 시치미를 떼며,

 뭐 그렇췌~!”

 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선 곧바로 말을 딴 데로 돌렸다. 그 한마디만으로 죠스이는 족했다. 나머지는 양갓집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
 
모우리 가문[毛利]이 좋겠군
 이라고 죠스이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천하의 거대 다이묘우[大大名]인 것이다. 전성기를 구축한 모우리 모토나리[毛利 元就]가 등장한 이후 그 영지(領地)산인[山陰], 산요우[山陽] 10개 지역[]에 이르며, 노부나가[信長]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노부나가가 죽을 때까지 오다 가문[織田家] 최대의 적이었다. 히데요시의 천하가 되자, 히데요시의 교묘한 외교 정책으로 인해 모우리 가문은 무릎을 꿇고 토요토미 가문의 종속 다이묘우가 되었다. 마침 당주(當主) 츄우나곤[中納言] 테루모토[輝元]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킨고를 거기로 보내자
 서쪽의 거대 제후와 끈을 이어두면 히데요시가 죽은 후의 토요토미 가문도 든든할 것이고 또한 모우리가문 자신들에게도 든든하니 쌍방에게 득인 것이다.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小早川 隆景]를 꼬시자
 고 죠스이는 생각했다.

 참고로 모우리 가문가정(家政)은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항설(巷說)에 말하는 [세 대의 화살]이며 죠스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모토나리가 죽기 직전에 세 명의 아들을 불러, 세 대의 화살을 건네주고는 꺾어 보라고 하였다. 한 대씩 꺾을 때는 간단히 부러졌지만 세 대를 한꺼번에 꺾고자 하니 쉽게 부러지지 않았다. 모든 일이건 협력하라는 교훈이며 그것이 가법이 되어 있다. 이때의 삼형제가 모우리 타카모토[毛利 隆元], 킷카와 모토하루[吉川 元春],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이며, 이후 모우리 씨[毛利氏]를 중심으로 킷카와-코바야카와 양 가문은 하나의 연합국가처럼 되어 있었다.

 지금은 장남 타카모토가 죽어 본가(本家)는 그의 아들 테루모토가 잇고 있다. 킷카와 모토하루도 죽어 지금 삼형제 중에서 생존해 있는 것은 종삼위(從三位) 츄우나곤[中納言] 코바야카와 타카카게 뿐으로, 이 타카카게 스스로도 큰 영토를 가진 다이묘우[大名]이면서도 동시에 본가인 모우리 가문의 최고 고문을 겸하고 있다.
 설득하고자 한다면 이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일 것이다.

 죠스이건 타카카게건 둘 다 후시미[伏見]에 집이 있다. 죠스이의 집은 이와야마 산[岩山] 기슭에 있으며, 여기서 산을 넘은 다음 동쪽으로 가면 성 밑에서는 가장 광대한 코바야카와 저택이 있다.
 
죠스이는 집을 나섰다. 만약을 위해 이코마 치카마사[生駒 親正]라는 노인과 동행했다.
 
치카마사는 히데요시가 직접 키워낸 다이묘우[大名] 중 한 사람으로, 260석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사누키[岐] 타카마츠[高松] 17만여 석의 신분이 되어 있다.

 둘이서 산을 넘었다. 왼편에 아키야마[秋山]의 언덕에 자라고 있는 거먕옻나무의 단풍이 눈에 아플 정도로 선명했다.

Rhus succedanea L.
Rhus succedanea L. by kodamatic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거먕옻나무]

 일이 있을 때는 둘이서 가는 것이 일본인의 풍습이다. 나중에 서로가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카카게는 이미 환갑을 넘기고 있었다. 온후한 인품이지만 센고쿠[戦国] 한창일 때둘째 형 킷카와 모토하루와 함께 모우리 가문을 끝까지 지켜낸 그의 능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우선 둘을 별실로 인도한 후 그 사이 다실(茶室)을 준비하고 곧이어 거기로 옮겨서 ()에 둘러 앉아 잡담을 하였다.

 건께~ 딴게 아니고 말이지

 라고 죠스이는 고향인 하리마[播磨] 사투리가 혀에 남은 말투로 히데아키 양자 건에 대해서 말했다. 물론,

 토요토미 가문과 각별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모우리 가문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 이 이상 좋을 것이 없지요

 라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과연~ 이는 정말 좋은 이야기군요

 라고 타카카게는 차를 끓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지만 속마음은 반대였다.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모우리 가문 최대의 위기다'
 하고 생각하였다.

 모우리 가문이라고 하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선조(先祖)도 모르는 벼락치기 다이묘우[大名]가 아니었다. 타카카게의 망부(亡父) 모토나리가 아키[安芸] 요시다[吉田] 1000관에 불과한 땅에서 몸을 일으켰다고는 하여도, 모우리 가문 그 자체는 옛부터 명족(名族)으로 카마쿠라 막부[(鎌倉 幕府]의 만도코로[政所][각주:1]의 최고책임자인 오오에노 히로모토[大江 ] 이래의 역력(歷歷)한 가계(家系)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가문에 어디서 주워왔는지도 모르는 히데요시의 친척을 들인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성스러운 신전(神殿)에 똥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타카카게는 생각했다. 역대의 선조들은 둘째치고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남보다 더 신경 쓴 죽은 모토나리가 저 세상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이는 내가 어떻게 되건 막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타카카게는 결심했지만, 그러나 얼굴엔 미소를 계속 지으며,

 말씀하신 대로 모우리 본가에게 있어서 이 정도로 축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주 테루모토가 들으면 굉장히 기뻐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고, 둘은 돌아갔다.

 이 후 타카카게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슬며시 집을 나와 후시미 [伏見城]해자(垓子) 근처에 저택을 가지고 있는 세야쿠인 젠소우[ 全宗]를 방문했다.

 세야쿠인 젠소우는 무로마치[室町] 말기의 명의(名醫)인 마나세 도우산[曲直瀨 道三]의 제자로 그 능력이 뛰어나 처음엔 궁정의(宮廷醫)였지만 지금은 히데요시의 시의(侍醫)이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늙고 병든 몸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히데요시의 그림자처럼 곁을 떠나질 않고 있었기 때문에 전제군주(專制君主)가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세야쿠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자연히 여러 다이묘우들도 세야쿠인을 정중히 대했다. 타카카게도 이 시의장(侍醫長)에게 예물(禮物)을 보내어 히데요시 근처에서 일어나는 정치 쪽 정보를 얻거나 하였다.

 세야쿠인에게 물어보면 죠스이가 말한 것이 히데요시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어떤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허허~ 저는 처음 듣는 소리군요.”

 세야쿠인 젠소우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히데아키를 양자로 보낸다는 듯한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디로 보낼지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심……’
 타카카게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히데요시의 생각이 아니라면 아직 손을 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를 들어 좌담(座談)에서라도 "모우리"라고 한마디라도 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날, 타카카게는 후시미 성의 대문을 지나 성 안에 있는 -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의 저택이 있어서 이름 붙여진 이시다 성곽[石田廓]에 있는 미츠나리의 집을 방문하였다.

 미츠나리를 선택한 것은 그가 죠스이와는 다르게 공식적인 토요토미 가문의 집정관(執政官)이며 또한 히데요시의 비서 역할도 겸하고 있기에, 때로는 히데요시의 의사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권세가(權勢家)였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미츠나리를 통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미츠나리는 이미 출근하여 집에 없었다. 타카카게는 실망했다.
 
아니지.. 그렇다면……'
 하고 타카카게는 다시 생각했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미츠나리에게 부탁하는 것 보다 오히려 히데요시 곁에서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는 세야쿠인 젠소우의 입에서 타이코우[太閤]의 귀에 사적인 말로 흘려 보내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여 곧바로 세야쿠인 저택으로 길을 서둘렀다. 타카카게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실 코바야카와 타카카게로서는 이 이야기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
모우리 본가'라는 계획이 쿠로다 죠스이[田 如水]가 혼자 생각하고 있다고는 하여도, 이미 이코마 치카마사가 옆에 있던 자리에서 입술을 통해 나온 말이었다. 생각이 아닌 현실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곧바로 모든 것이 히데요시의 귀로 들어가 그대로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타카카게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었다. 이쪽에서 선수를 친다.
 
-
부디 킨고 츄우나곤 히데아키[金吾中納言 秀秋]님을 저희 코바야카와 가문[小早川家]의 양자로 얻고자 합니다. 이를 허락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하고 타이코우에게 전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본가로 향해진 총구를 분가(分家)인 자기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소리를 치는 것과 같았다.
 
죠스이가 생각해주는 척 하는 계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것밖에 없다
 타카카게는 전쟁터에서 머리를 쓰는 듯한 심경이었다. 죠스이와는 예전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織田家]의 모우리 공격군 사령관일 즈음, 빗츄우[備中]의 전쟁터에서 서로의 지략으로 무기로 불꽃튀기며 싸웠다. 그때의 인연(因緣)이 쌓이고 쌓여 좋은 마음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 억울한 것은,
 
저 킨고 좇병신 때문에
 라는 것 때문이었다.

 모우리 가문의 분가(分家)인 코바야카와 가문[小早川家]도 분가이긴 하지만 타카카게에게 있어선 명문가였던 것이다. 코바야카와 가문은 대대로 아키[安芸] 타케하라[竹原]지토우[地頭]였던 가문으로, 카마쿠라 막부의 가문 목록[御家人帳]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전통 있는 가문이었다. 그런 명문가를 모토나리가 책략을 써 3남 타카카게가 그 가문을 이었다. 타카카게에게는 양갓집이라고는 하여도 이 명문가의 피에 히데아키의 피가 섞여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타카카게의 감정은 그에게만 있는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토요토미 정권의 다이묘우에는 카마쿠라 때부터 이어지는 명문가가 몇몇 있다.
 북쪽에서부터 말하면 사타케 씨[佐竹氏], 모가미 씨[最上氏], 모우리 씨, 코바야카와 씨, 시마즈 씨[島津氏] 등이 그런 명문가이다.
 그들이 비록 지금은 토요토미 가문의 위세에 굴복하였다고 하여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 비천한 피를 경멸하고 있었다. 만약 토요토미 가문이 그들에게 사위를 보내준다고 하면 전부가 타카카게처럼 전율(戰慄)할 것이다. 더구나 타카카게에게는 서자(庶子)가 있었다. 그런 자기 자식을 제쳐두고 자신의 가문에 히데아키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카카게는 그 감정을 죽였다.

 다행히 세야쿠인 젠소우는 아직 집에 있었다. 타카카게는 누가 보아도 자신이 히데아키를 굉장히 원하고 있는 것처럼 히데요시에게 그 말을 전해달라고 이 늙은 의사에게 부탁했다.

 졸자는 타이코우 전하의 깊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라고 우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 혼노우 사[本能寺]에서 쓰러진 직후 전선(前線)에 있던 히데요시는 정면의 적인 모우리 씨와 급히 화친하고자 하였다. 이 화친 교섭에 히데요시의 군사 쿠로다 죠스이가 활약하였다. 타카카게의 둘째 형 킷카와 모토하루는 적극 반대하였지만 타카카게는 히데요시의 인물을 꿰뚫어보고 히데요시와 싸우는 것 보다 오히려 그에게 천하를 잡게 하고 그 세력하에서 모우리 가의 안태(安泰)를 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주장하여 결국 그렇게 되었다.

 만약 그 때 화친하지 않고 모우리 쪽이 결전에 임했다면 히데요시는 쿄우[]의 미츠히데를 물리치지 못하고 어쩌면 천하를 놓쳤을 지도 모른다. 히데요시는 후에 이 사실을 알고 타카카게를 두텁게 대했다.
 모우리 가문의 분가임에도 독립된 거대 다이묘우로 만들어 치쿠젠[筑前] 1[]이라는 광대한 땅과 치쿠고[筑後], 히젠[肥前]의 각각 두 군() 4개 군()을 잘라 주었고, 관위(官位)도 종삼위(從三位) 츄우나곤[中納言]으로 하여 본가의 모우리 테루모토와 동격으로 하였다. '깊은 은혜'라는 것은 그걸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늙고 앞으로도 얼마나 살지 몰라 이제는 타이코우 전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하사 받은 이 땅들을 전하의 양자이신 킨고님에게 물려드리고 싶습니다

 세야쿠인도 이 미련 없는 태도에는 놀랐다. 다이묘우라는 자가 그 봉토(封土)를 버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츄우나곤 미치신건가? 그렇지 않음 어지간히 절박한 사정이라도 있으신건가?’
 하고 세야쿠인은 오랫동안 침묵하며 그 진짜 뜻을 살피기 위해서 타카카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는 타카카게에서는 무엇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구 세야쿠인도 고개를 숙여,

 잘 알겠사옵니다

 하고 말한 후 고개를 들어,

 그 후 츄우나곤님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많이는 바라지 않습니다. 산요우도[山陽道] 어딘가에 조그맣게 은거할 자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은거할 곳이라면 보통 기껏해야 3000석 정도이다. 세야쿠인은 말을 잃었다.

 세야쿠인은 서둘러 성으로 등성하여 히데요시에게 전했다. 히데요시는 아이같이 기뻐했다. 이 인물의 천재성은 그런 것 즉 지금보다 나이를 덜 먹었을 때는 뭐든 다 꿰뚫어 본 상태에서 누가 보아도 아이같이 행동하여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굉장함 에 있었지만 말년의 이 시기가 되자 노쇠가 뚜렷하여, 그런 천진난만함은 단순히 소박함으로 끝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코바야카와 가문이 명문가라고 기뻐하는 것에, 보는 세야쿠인이 창피할 정도로 기뻐하며,

 코바야카와 가문을 잇는다는 것은 히데아키 녀석에게도 명예다.

 타카카게 안도감에 빠졌다. 그러나 이후 바빠졌다.
 문제가 된 본가의 후계자 자리를 서둘러 메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타카카게는 무리를 하였다. 모우리 가문의 가신(家臣)으로 타네다 모토키요[種田 元[각주:2]]라는 사람이 있다. 모토나리 말년[각주:3]에 얻은 서자로, 타카카게에게 있어선 배다른 동생이 되지만 생모의 출신이 미천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가신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아들로 미야마츠마루[宮松丸[각주:4]]라는 소년이 있어, 그를 모우리 가문에 양자로 들였다.

 종삼위(三位) 츄우나곤[中納言] 킨고 히데아키로 보면 - 피의 존비(尊卑)라는 점에서 모우리 가문 가신의 자식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지만 어쨌든 모든 것이 무사히 낙착(落着)되었다.
  1. 카마쿠라 막부의 정무와 재정을 담당. [본문으로]
  2. 모토나리의 넷째 아들 '호이다 모토키요[穂井田 元清]'를 말한다. [본문으로]
  3. 모토나리 54세 때. 당시 평균 수명은 50세 근처라고 한다. [본문으로]
  4. 후에 정유재란 때 일본군 우군(右軍) 총사령관이 되는 '모우리 히데모토[毛利 秀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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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25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듯 37만석의 주인이 되는거군요... 도무지 히데아키 녀석도 살생관백처럼 '재능'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녀석인듯;; 모든건 주변인들이 힘써준 결과라(..)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25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휘둘렸다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 책 자체가 히데요시라는 거대 소용돌이에 빨려 든 인물들의 이야기 이지만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7.12.28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데아키의 초임관위가 사에몬노카미인줄 알았는데, 발해지랑님 글을 보니 우에몬노카미로 나오는군요. 제가 잘못알고 있었던듯 하네요. 뭐 어차피 그관직이 그관직 =,=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29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otokanfist님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시바 선생이 일부러인지 착각인지 몇몇 부분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그쵸...어차피 그 관직이 그 관직 ^^

  5.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죠스이와 다카카게간의 공방전이 정말 재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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