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다 나가마사 - 번(藩)과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며 병사
구로다 나가마사[黒田 長政]
1623년 윤8월 4일 병사(病死) 55세.
쿠로다 요시타카[黒田 孝高]의 장남. 부친과 함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 秀吉]를 섬기며, 빗츄우[備中] 타카마츠 성[高松城] 공략 때 데뷔전[初陣]. 부젠[豊前] 나카츠[中津] 성주(城主)가 되어 조선 침공[朝鮮の役]에 종군하였다 1.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에서 공을 세워 치쿠젠[筑前] 52만석을 하사 받아, 후쿠오카 번[福岡藩]의 번조(藩祖)가 되었다.
모친과 처를 탈출시켜 준 것에 대한 은상(恩賞)
1600년 12월 11일.
쿠로다 나가마사는 부젠[豊前] 나카츠 성(城)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이 성은 너무 좁았기 때문에 다음 해인 1601년에는 후쿠오카 성[福岡城] 축성에 착수함과 동시에 영내(領內)에 6개의 지성(支城)을 쌓아, 세키가하라[関ヶ原] 때 전공이 있던 중신들을 죠우다이[城代]로 임명 2, 배치하였다.
쿠라테 군[鞍手郡]의 타카토리 성[鷹取城]의 죠우다이에는 모리 타헤이[母里 太兵衛]가 임명되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에게서 명창(名槍) '니혼고우[日本号]'를 술내기로 따낸 일화로 유명한 타헤이는 세키가하라 때도 활약하였다.
나가마사가 이에야스[家康]의 우에스기 토벌[会津征伐]에 출진하자 3, 나가마사의 예언대로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세력은 오오사카[大坂] 텐마[天満]의 쿠로다 저택을 포위했다. 타헤에는 밤을 기다려 쿠로다 죠스이[黒田 如水] 부인 코우엔[幸圓]과 나가마사의 부인인 네네[栄]를 가마니 안에 넣고, 두 개의 가마니를 바구니에 담아 긴 막대 끝에 걸쳤다. 그리고 상인으로 변장하여 그 막대를 어깨에 메고 뒷문 쪽에 있는 목욕탕의 벽을 뚫고 탈출, 쿠로다 가[黒田家]에 출입하는 상인 나야 쇼우자에몬[納屋 小左衛門]의 집으로 옮겨 숨겼다.
부친 죠스이가 나카츠[中津]에서 파견한 배가 오오사카[大坂] 포구에 도착했지만, 이시다 측의 군선이나 작은 배들, 병사들의 경비가 심해서 타헤이, 쿠리야마 토시야스[栗山 利安], 미야자키 스케다유우[宮崎 助太夫]의 세 가노(家老)들은 당혹하였다.
7월 17일 밤.
타마츠쿠리[玉造]의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이시다 쪽의 인질요청을 거부하고 자살한 호소카와 가라샤[細川 ガラシャ] 4와 호소카와 저택이 불타오른 것이었다. 경비하던 병사들이 타마츠쿠리로 향한 틈을 타서 코우엔과 네네는 7월29일 본국인 나카츠에 무사히 도착했다.
모친과 부인을 탈출시킨 그들의 공적을 마음 속 깊이 감사하고 있던 나가마사는 새로운 영지(領地) 후쿠오카 번(藩)을 지배함에 있어서 지성 주둔 제도를 택하여 타헤이를 타카토리 성(城), 쿠리야마 토시야스를 아사쿠라 군[朝倉郡] 마테라 성[左右良城]에 죠우다이로 각각 임명했다. 또한 가중 통제의 일환으로 '화내지 않는 모임[腹立てずの会]'이라는 것을 만들어, 중신부터 하급 무사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토론회를 열어 그들의 의견을 나가마사에게 전할 수 있게 하였다.
번(藩)의 미래를 생각하며……
1623년.
55세가 된 나가마사는 에도[江戸]에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약을 복용했지만, 열격(噎膈)이 같이 생겼다. 쿄우토[京都]에 들리지 않고 후시미[伏見]에서 오오사카[大坂]로 이동. 치쿠젠에 귀국해서 몸을 돌보려 했지만, 이에미츠[家光]의 3대 쇼우군[将軍] 취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결국 오오사카에서 2~3일 정도 머문 후 상경하여 호우온 사[報恩寺]를 숙소로 정했다. 상경한 히데타다[秀忠], 이에미츠도 나가마사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병문안 하였다.
나가마사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깨달았을 때, 부하에게,
고 말했다고 한다(쿠로다 가문 족보[黑田家譜]).
[첫째는 어머니 코우엔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른 것이며,
둘째는 적자(嫡子) 타다유키[忠之]가 아직 약관(21세)임에도 뒤를 돌보아 주지 못하고 죽는 것.
셋째는 휘하의 장졸들을 데리고 평소 훈련시키며, 전투에 임해서는 엄숙과 절제를 지키고, 내 수족과 같이 움직이고 싶었다. 이것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이 이외에 미련은 없다.]
윤 8월 4일.
나가마사는 일어나 앉아서 타다유키에게,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자비롭게 대하거라. 절대 게으름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세구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속세를 떠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돌아간다 극락정토의 하늘로
此のほどはうき世の旅にまよひきて今こそかへれあんらくの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