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jbpress.ismedia.jp/articles/-/27372
저자 : 타마키 타다시[玉置 直司]

 2011년 10월 26일에 치러진 한국 서울 시장보결선거에서 야당계열의 무소속후보 박원순(55세, 당선 다음 날 시장에 취임)가 여당인 한나라당 후보인 나경원(47세)씨에게 압승하였다.

 1년 뒤 대통령선거를 남겨놓은 시점의 ‘수도결전’에서 승부수가 된 것은 ‘경제양극화’에 대한 불만이었다. 대기업이나 재벌을 강하게 비판해 온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씨의 당선에 경제계는 술렁이고 있다.


20~40대의 70%가 여당후보에게 NO!

참패한 여당 한나라당 후보인 나경원씨의 선거공보물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야말로 야당 단일후보의 압승이었다. 박원순씨의 득표율은 53.4%로 여당인 나경원 후보에 7포인트 이상 크게 앞섰다.

 특히 큰 차이가 났던 것이 젊은층의 득표율이었다. 지상파방송 3사의 공동출구조사에 의하면 20대 69.3%, 30대 75.8%, 40대 66.8%가 박원순씨에게 투표하여 여당의 나경원 후보를 압도하였다.

 20대~40대 젊은 층의 70%가 여당후보에게 NO를 외친 결과이기에 여당에게 있어서는 충격적이다.

 “또다시 하필이면 피곤한 사람이 당선되었군”. 개표 뒤 하루 지난 10월 27일 낮에 만난 한 재벌기업의 임원은 이렇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피곤한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 그럴 것이다.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한국 재벌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시장은 검사출신이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변호사가 되어 시민운동에 몸을 던졌다.

 2000년 총선거 때 특정 정치인을 저격하며 ‘낙선운동’을 펼친 것은 일본에서도 굉장히 유명한데, 한국 경제계에서는 그 이상으로 유명한 것이 ‘참여연대’라는 시민운동단체이다.


한국경제계가 두려워 한 ‘참여연대’

 박원순씨가 설립 시 주요멤버로 참여한 이 시민단체는, 재벌의 세습인사나 불투명한 기업통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상기업의 주식을 취득하여 주식총회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경영진을 추궁했다. 1998년 삼성전자 주식총회는 이 참여연대의 추궁으로 13시간 반이라는 기록적인 마라톤 총회가 되었다.

 박원순씨는 그 후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사회공헌단체를 설립하였는데, 이 단체에는 삼성,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이나 대기업이 빠짐없이 기부에 응하였다. 이 기부에는 대기업에 ‘박원순씨의 목표가 되었다간 큰일난다’는 생각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원순씨는 시민운동계에서 유명했지만 일반적인 지명도는 결코 높지 않았다. 박원순씨를 단번에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사회운동가로 서울대 교수이기도 한 안철수(49세)씨였다.

 안철수 교수는 서울대 의학부를 졸업 후 연구직에서 활동하였다. 원래 컴퓨터를 좋아하여 1980년대 말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이를 사업화하여 대성공을 거둬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고 있었다. 그 후 회사 운영에서 손을 떼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한 편, 전국을 순회하며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격려, 지원하는 강연이나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안철수 열풍’이 커다란 순풍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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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승리를 기뻐하는 박원순씨]

 그 인덕과 젊은이들을 자기 돈으로 지원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책을 쓸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지금은 젊은이들의 교주적 존재가 되어 있다. 안철수 교수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의향을 보였지만 ‘예부터 알던 맹우’인 박원순씨도 출마한다는 소식에 단념. 박원순씨 지원이라는 포지션을 취했다.

 둘이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모습은 계속해서 TV의 뉴스에 보도되어 박원순씨도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박원순씨는 야당인 민주당 등의 지지도 얻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압승하였다.

 이에 대해 여당 한나라당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열세인 선거전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소속의 전 시장이 야당 계열의 교육감이 결정한 ‘학교 무상급식’에 반대하여, ‘시장직을 건’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이 규정에 미치지 못해, 투표자체가 무효로 되어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시작된 소동극이 보궐선거의 계기가 되었다.

 혼란을 일으킨 여당의 전 시장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던 중 반한나라당 세력은 눈깜짝할 새에 박원순씨를 내세웠다.

 당황하며 여당이 내세운 후보가, 서울이 지역구로 미모로 인기가 높은 국회의원 나경원 후보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선두주자’인 박근혜(59세) 의원도 4년 만에 선거지원 유세에 나서 필사적으로 나경원 후보를 지원했지만, 그 차이는 마지막까지 좁히지 못했다.


‘선거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차기 대통령후보에게 뼈아픈 상처

 이번 선거결과의 의미는 (1) 수도 서울에서 여당후보가 참패했다. (2) 당선자가 무소속후보였다. (3)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야당측 후보에게 투표하였다 – 일 것이다.

 서울시장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2012년 총선거(봄), 대통령선거(연말)를 앞두고 정치계에 큰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여당 한나라당에 있어서는 수도결전에서 참패한 타격이 크다. 박근혜씨는 지금까지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그녀는 지원한 후보를 대부분 당선시켜 왔다.

 이번에도 서울시장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부산시 구청장 선거 등에서는 지원 유세한 후보를 격전 속에서 전부 당선시켜 자신이 가진 위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유세한 서울 시장선거에서 여당후보가 참패한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도 큰 상처가 될 것이다.

 투표일인 10월 26일은 부친인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일이었다. 박근혜씨는 32주년인 이날 부친의 묘 앞에서 무엇을 보고하였을까?

 야당인 민주당은 더 큰일이다. 무엇보다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조차 내세우질 못했으니까. 박원순씨에게는 집요하게 민주당 입당을 권했지만 박원순씨는 일축했다. 어쩔 수 없이 박원순 지원에 힘쓰긴 했지만, ‘민주당 해체와 정계재편은 불가피’라는 목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결과가 된 것인가? 경제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기존정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새로운 얼굴의 정치인’을 원하는 커다란 흐름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경제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폭발, ‘새로운 얼굴의 정치인’을 요구하는 목소리

 한국은 1997년에 IMF위기로 일컬어지는 통화위기,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초경쟁사회, 초격차사회로 재탄생 해버렸다. 과감한 합리화와 국제화를 추진한 일부 대기업은 더 강해지고 더 거대해졌다. 그런 한편 경제격차도 훨씬 벌어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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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통령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은 돈을 벌었지만 일반시민의 생활은 어려워지기만 했다.]

 2007년 말의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후보가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 CEO출신으로 누구보다 경제에 정통한 내가 경제를 재건하여 누구나 잘 살게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에 많은 국민들이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중시’의 경제정책으로 일부 대기업은 더 거대화했지만 격차는 벌어지기만 했다.

4년 전에 경제를 지지했던 젊은층…’그들만의 경제’에 분노, 反한나라로(링크:조선일보)’. 선거 다음날 ‘조선일보’는  이런 제목으로 시장선거를 총괄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크게 성장하는 한편 ‘생활은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라는 것이 일반시민의 체감경기이다.

 이명박대통령은 파이를 크게 한 뒤 분배한다고 약속했다. 확실히 파이는 커졌지만, 일부 대기업으로의 부의 편중은 더욱더 심화될 뿐이었다.

 이러한 정권에 대한 잠재적 불만에 불을 붙인 뉴스도 선거기간 중 나왔다. 이명박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 집을 준비하였는데, 토지구입비 등을 위해 43억 원의 국비를 투입한다는 발표로 인해 국민의 반발을 사 허둥지둥 철회를 하게 되었다.

 나경원 후보에 대해서는 연회비가 1억 원이나 하는 ‘초고급 피부관리 클리닉’에 다니고 있다는 뉴스가 선거전 종반에 진보계열의 인터넷 뉴스사이트에 ‘특종’으로 올라와, 눈깜짝할 새에 네티즌에게 퍼졌다. 나경원 후보진영은 ‘연회비가 1억 원이라는 것은 허위보도다’고 반론하였지만, ‘역시 갑부 패거리’라는 네거티브이미지를 붙여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격차확대’에 대한 불만 이상으로 커다란 변화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어, 이것이 선거전에 영향을 끼쳤다는 흥미 깊은 시각도 나왔다.


한국사회에 커다란 변화? ‘경제논쟁은 아무런 성과도 없다’라는 의식도

 어떤 정치학자는 이렇게 분석하였다.

 “IMF 위기직후부터 한국은 극심한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국가로 변신하였다. 누구나가 경제를 최우선시하였다. 이명박씨에게 기대한 것도 실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MF위기에서 15년 가까이 지나 최근에는 경제적 가치관보다도 도덕적 의식이나 정(情) 등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졌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꿈과 같은 경제성장을 말하며, 야당인 민주당은 분배중시를 주장한다. 많은 국민, 특히 젊은 층은 이러한 경제논쟁이 성과가 없기만 하다는 것에 자각하여 기존 정당에 속하지 않는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씨에게 끌린 것이 아닐까?”

 박원순씨는 시민운동 출신이라고는 해도 지금까지의 많은 시민운동가들과는 굉장히 다른 경력의 소유자이다. 서울의 명문고인 경기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생운동으로 중퇴)를 거쳐 검사가 되었다. 그 후 시민운동으로 위치를 바꾸었지만,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과격파가 아닌 보다 실무에 정통한 시민운동을 계속해 왔다.

 안철수 교수도 좀 특이한 경력이다. 둘의 공통점은 프로 정치가가 아니라는 것.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운동가도 아니라는 것이다.

 투표 이틀 전인 24일 오후.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씨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하여 격려했다. 기자 등 보도진의 앞에서 악수하고 대화를 나눈 것은 불과 5분이었지만, ‘안교수가 직접 응원했다’는 모습이 몇 번이나 TV에 나와, 마지막까지 투표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던 젊은층에 나름 영향을 끼쳤다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이번 선거결과는 앞으로의 한국 정치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계에서 당면의 최대 초점은 안철수 교수가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할지 안 할지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씨를 당선으로 이끈 최대의 공로자는 안철수 교수이다. 8월말에 정계진출의 뜻을 나타낸 이후 그 인기는 상승일로이다.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면 그 전에 있는 총선거에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교수가 기존 정당에 입당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그럴 경우 야당의 재편은 불가피하다.

 안철수 교수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지금까지 ‘박근혜 대세론’으로 굳혀져 있던 여당도 커다란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의 계절, 대기업은 전전긍긍

 투표 당일인 10월 26일부터 27일에 걸쳐 한국의 정계, 미디어 관계자는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의 반응은 “충격적인 결과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는 필시 안철수 교수가 출마할 것이다. 이젠 누구도 안교수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성질 급한 어느 학자는 “여당은 2012년의 대통령선거를 포기하는 편이 좋다. 2017년을 향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물론 대통령선거까지는 1년 이상 남았다.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의 인기가 일과성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단지 젊은층의 압도적 다수가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선택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간단히 바뀔 것 같지는 않으며, 정계는 큰 변화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좀 더 눈앞의 일을 생각한다면 대기업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에 취임하여 시장이라는 자리에서 대기업을 때리는 사태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세론의 대기업에 대한 시선이 더욱 싸늘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세론의 압력으로 이명박정권이 ‘친기업정책’에서 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정치에는 될 수 있는 한 관여하지 않는다’가 한국 대기업의 기본적인 자세이지만, 세계경제가 불경기인 지금 기업성과 악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정부의 협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기업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2012년 총선거(봄)과 대통령선거(연말)를 실시한다. 같은 해에 두 대형선거가 실시되는 것은 20년에 1번 있을 수 있는 일로, 앞으로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맞이한다. ‘예측 불가능한 정치의 계절’은 대기업에 있어서도 굉장히 불안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