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동대문야구장, 논란속에 철거 시작 '48년 역사 뒤안길로'

발해지랑(valhae0810)...

개발독재....
과거 뭘 하던 경제 개발이라면 용서가 되던 시대의 개념.

김재박 감독의 개구리 점프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홈런으로
졸자를 야구의 매력으로 이끌어 주었던 곳.

프로야구 출범 개막식에서 이종도가 끝내기 홈런을 봄으로써 MBC 청룡 - LG 트윈스로 졸자가 응원하는 구단과 연을 맺어 준 곳.

한 때 프로야구에 미쳐서, 그들의 새싹들을 보고자 동대문에서 하는 모든 대회를 보러 갔었지...
(그곳에 매일 와서 기록하던 아저씨가 생각나는군.. 신문에 가끔 나시던데..)

졸자 한 사람도 이렇게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곳에서 청춘을 불살르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지..

찾아보기 귀찮아서 찾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주요한 스포츠 이벤트는 아마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했으리라...

이런 역사적인 곳을 경제 우선 논리로 없애야 한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ps;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현 한나라당 대선 후보께서 서울 시장 출마하셨을 때, 그 근처에 책사러 갔다가 아줌마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지금 이명박 지지자 분들과 비슷한 이유였다...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 터전 없애고 청개천 복원한다는데..) 이명박은 경제를 잘 알 것 같다는 식......
나중에 그 아줌마들도 그 데모대에 합류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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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겁난다.

그냥 생각난 것 2007. 12. 4. 13:02 Posted by 발해지랑
송파구의 인도 주차장 사용에 대해 블로깅을 했더니 삭제에 대한 분노
(작성하고 보니까, 송파구의 반론글이 올라 왔더군요.
근데... 이러면 되지 삭제 신청하고 글 올리다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글을 썼더니 역시 삭제에 대한 글

언젠가 한나라당 미디어 어쩌구 저쩌구의 감투를 가진 양반이,
"네이버는 잡았지만, 다음은 말을 안 듣는다"라는 등....

한나라당은 요즘 자신들의 불리한 것에 대한,
정정이나 시정, 반론을 할 생각은 안 하고 우선 포털에게 삭제를 요청하나 보다.
아니면 억지로 막거나...

야당인 지금도 그러는데(법을 만들어 국민의 정치 표현을 억압했지),
내년에 정권이라도 잡으면, 도대체 어떤 세상이 될까?
지금도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언론을 가지고, 세상을 일그러트리고 있는데...

하긴 뭐...
지내들도 알거다... 노무현이 그렇게 큰 잘못은 없지만, 인터넷과 언론으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열풍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그 덕에 자신들이 지금 힘을 얻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고 할 그 미래가 겁난다.

출처: http://ja.wikipedia.org/wiki/李明博

이 명박(1941년 12월 19일 ~ )은, 한국의 정치가. 전 서울 시장. 신장 173Cm, 체중 70Kg. 혈액형은 B형. 식민지 시대에 있던 창시개명 시의 일본명은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 明博)(~1945년까지). 호는 일송(一松). 별명은 [컴도저(컴퓨터 + 불도저)], [따스한 남자].

현대 건설 사장, 국회의원(한나라당)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02년에 서울 시장이 되어, 2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청계천 복원 공사를 실시했다. 또하 한국 대통령 선거(2007년 말)의 전초전인 한나라당 예비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승리하여, 대통령 선거의 당 공인 후보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의 각종 여론 조사에서는 모두 1위, 2위이다.

인물상

-태어났을 때는 굉장히 가난하여, 중학교 시대에는 영양 실조로 쓰러진 적도 있지만, 졸업할 때의 성적은 전교에서 2위였다고 한다(가장 낮았을 때라도 3위였다). 집이 가난하여 인문계 고교에 진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야간 상고를 다녔다. 참고로 성적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번 학년 1위였다.

-병역은 입대 후에 기관지 확장증에 의해 제대가 되었다.

-존경하는 인물은 안창호, 간디.

-정계에 입문하기 이전은 경제인으로 유명하여,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현대 건설에서 정주영의 가르침 속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36살에 사장에 취임하여 한국 톱 기업으로 상승시켰다. [현대의 한국을 창조한 50인]에 선정되는 등, 한국에서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별명은 [불도저]. 건설업 출신이라는 것도 있어 개발 정책이 특기로, 시장 시대에는 청계 고가도로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을 실현했다. 또한 차기 대통령 선거에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내륙 운하) 프로젝트] 구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 한일기본조약 체계의 사전 단계인 한일 회담 반대 투쟁(6.3사태)를 고려 대학 학생회장으로 주도하여, 체포되었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복역 6개월)의 판결을 받았으며, 이 일로 인하여 박정희의 딸이며, 같은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 라이벌이었던 박근혜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도 한다(출전이 필요)

-한국 정치가가 대부분 그렇듯, 시국에 맞춘 반일적 성향을 때때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세워진 현 서울 시청을 태극기로 덮는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해 기부금 1억 3200만원을 모은 것이나, 서울 남산에 세워진 유스 호스텔에 일본인 수학 여행을 유치하여 독도 영유권이나 일제의 잔혹성에 대해서 학습할 기회를 만드는 계획이나, “이시하라 신타로우(동경 도지사)는 4류, 5류인 정치인”이라고 발언, “경제 대국인 일본의 전후 처리는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구두쇠” 등의 주장이나 활동이 있다.

그러는 한 편 2006년 1월에 세계 경제 포럼에서는 “일부 아시아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의 역사에 묶여, 국가 간의 긴장을 높여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여, 정부 여당인 열린 우리당에게 [친일 발언]이라고 비판당하거나, 같은 해 11월에 일본에 와서, 아베 신조우(당시)와 회담했을 때에는 “한국 국민의 3대 현안(역사, 독도, 야스쿠니 신사)을 미래지향적인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부탁하고 싶다”고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는 발언을 하는 등, 안과 밖에서의 언동을 나눠서 사용한다.

또한 현대 건설 시대의 경험으로 인하여, 일본의 재계에 인맥이 있다고도 한다([사피오[각주:1]] 2007년 1월 4일판 “세계의 [반일수괴 vs 친일거인(世界の’反日首魁vs親日巨人’)]"에서

-일본어와 영어가 뛰어나다.

-현재 국회 부이장인 이상득은 실제 형이다.

-출생지는 경상북도 포항이라고 했지만, 후에 자서전에서 일본의 오오사카라고 밝혔다. 또한 당시 부친이 [츠키야마(月山)]이라는 성을 창씨하여, 본인도 그 성을 사용했었다고 형인 이상득이 말하고 있다.

약력

* 1941년 – 오오사카부 나카카와치군 카미촌(현 오오사카시 히라노구(大阪市平野区)에서 출생

* 1961년 – 고려 대학교 입학

* 1965년 – 현대 건설 입사

* 1977년 – 현대 건설 사장 취임

* 1988년 – 현대 건설 회장 취임

* 1992년 – 제 14대 국회의원 당선(민자당, 전국구)

* 1996년 – 제 15대 국회의원 당선(신한국당, 서울 종로구)

* 1998년 – 제 15대 국회의원 사임

* 2002년 – 제 32대 서울특별시 시장 취임

* 2006년 – 서울 특별시 시장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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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자가 아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이 당선되길 바라고 있더군.
  1. 일본 보수 잡지, 세계의 반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전을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