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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3 시마즈 요시히로 - 죽기 직전까지 잊지 않았던 무장의 마음가짐 (9)
시마즈 요시히로[島津 義弘]

1619 7 21일 병사(病死) 85.

1535 ~ 1619.

형인 요시히사[義久]와 함께 큐우슈우[九州]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지만,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 秀吉]에게 항복한 후에 가독 상속. 분로쿠-케이쵸우의 역[慶長役][각주:1]에서 활약했다. 세키가하라 전투[ヶ原の戦い]에서는 서군에 속했지만, 패배 후에도 영지(領地)안도(安堵)받았다.

 

 

 







전쟁터가 어울리는 무인(武人)

 

 1535년.

 요시히로는 시마즈 가문[島津家] 15대 당주 타카히사[貴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요시히사가 후방에서 전군을 컨트롤하고 있었고, 요시히로는 그런 요시히사의 수족이 되어 각지에 출진.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며 화려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본래대로라면 시마즈 가문의 한 무장으로 생애(生涯)를 끝마쳤을 터였다. 하지만 1595년 토요토미노 히데요시가 토요토미 정권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던 요시히사를 은거하게 만들고, 시마즈 가문의 차기 당주에 요시히로를 앉힌 것이다. 요시히사나 시마즈의 가신들 대부분은 이 명령에 불만을 품었지만 히데요시의 명령에는 거부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랐다.

 

 당주 요시히로의 지위는 토요토미 정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1598년에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인해 정권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요시히로의 지위도 불확실한 것이 되었다.

 이 때문에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ヶ原の戦い]에서 요시히로의 동원 명령이 요시히사나 가신들에게 무시당했기 때문에 요시히로는 얼마 안 되는 수하를 이끌고 전쟁터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군이 패배하자 적중 돌파를 감행하여 귀국하지만 이 패전으로 인해 요시히로의 정치 생명은 끝나게 되었다.

 

다도(茶道)에 몰두

 

 정치 생명이 끝난 요시히로가 몰두한 것은 다도와 그것에 필요한 차제구(茶諸具)의 제작이었다.

 요시히로가 언제부터 다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카고시마[鹿島] 현립 도서관에는 요시히로가 센노 리큐우[千 利休]에게 다도의 오의(奧義)에 대해 질문한, '이신(惟新 = 요시히로)님이 리큐우에게 물어본 조서[惟新より利休江御尋]'사본(寫本)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조선에서는 언제나 츠루쿠비의 차기(茶器 - 鶴首の茶入 학의 목의 형태를 한 차 가루를 넣는 사기로 된 도구(비슷한 형태역자 주)를 허리에 차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차를 즐겼다고 한다.

 

 1606. 요시히로는 쵸우사[帖佐]에서 히라마츠[平松], 또 다음 해인 1607년에는 카지키[加治木]로 거처를 옮겼다. 이 카지키에 있을 때 요시히로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차를 함께 즐길 상대를 찾았으며 응하는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카고시마에서 열린 다회(茶會)에 초대받았을 때에는 기대에 부푼 나머지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전날의 오후 8시 즈음에는 카지키를 출발하여 날이 밝기 전에 카고시마에 입성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에 갔을 때, 자신이 원하는 차기를 만들기 위하여 조선인 도공(陶工)사츠마[薩摩]로 데리고 왔다. 이것이 사츠마야키[薩摩焼]의 기원이다.

 데리고 온 도공들은 총 80 여명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 김해(金海)라는 도공이 요시히로의 맘에 특히 들었다고 한다. 요시히로는 그에게 '호시야마 츄우지[星山 仲次]'[각주:2]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5년 정도 쿄우토[京都] 근방에 유학시켰다고 한다.

 

 요시히로는 김해에게 쵸우사 저택의 북서쪽에 '우토[宇都] 가마'를, 카치키 저택의 북서쪽에 '오사토[御里] 가마'를 만들게 하여 자신 취향의 차제구를 만들게 하였다.

 동시에 이 당시에는 사츠마[薩摩]에서 사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백토(白土)를 찾지 못하여, 조선에서 가지고 온 백토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히바카리테[火計手]'이다. 조선인 도공이 조선의 흙을 사용하여 만들어 구운 불() 만이(ばかり)[각주:3]이 사츠마[薩摩]의 것이라는 의미이다.[각주:4]

 

 또한 요시히로는 자신이 맘에 드는 차제구가 만들어 졌을 때에는 도장[각주:5]을 눌러 구웠다고 한다. '고한테[御判手]'라 한다. '카지키 영감탱이 이야기[加治木古老物語]'에는 고한테 하나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손가락 하나쯤은 아깝지도 않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진중(珍重)받았다고 한다.

 

 타나카마루 컬렉션[田中丸コレクション]의 '카타츠키 챠이레[肩衝茶入][각주:6]'인 이름()사이노호코[サイノホコ], ‘토우쿄우 국립 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의 '코쿠유우분린챠이레[釉文琳茶入]'[각주:7]인 이름 모치즈키[望月]등. 현재도 '코사츠마[古薩摩]'[각주:8]의 명품으로써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다기(茶品) 등도 이 우토와 오사토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병상(病床)에서 울리는 전쟁터의 함성

 

 1618년 봄.

 요시히로는 병으로 쓰러졌다. 예전의 전우였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나 류우큐우[琉球][각주:9] 국왕 등이 문병(問病)의 사신을 보내고, 막신(幕臣)[각주:10]으로는 쿄우토 쇼시다이[京都所司代][각주:11]였던 이타쿠라 카츠시게[板倉 勝重], 요시히로의 아들이며 당주인 이에히사[家久][각주:12]의 요청을 받아 쿄우토[京都]에서 명의(名醫)로 소문 난 쥬토쿠안[寿徳庵]을 카치키에 파견하여 요시히로를 진찰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요시히로는 쇠약해져 음식도 먹지 못 하게 되었지만, 가신들이 전쟁터에서의 함성을 지름과 동시에 옆에 있던 가신이 빨리 준비를 갖추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요시히로는 갑자기 제 정신으로 돌아와 단번에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고 한다. 항상 전쟁터에 몸을 두고 있었기에 전쟁터의 함성을 들으면 멋대로 몸이 반응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허무하게 병은 회복할 조짐도 보이지 않고 다음 해인 1619 7 21일.

 카치키의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85.

  1.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일본에서 지칭하는 말. [본문으로]
  2. 대대로 타테노 계[竪野系]의 도공은 이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김해의 자손들이라 한다. [본문으로]
  3. 일본어로 “~만”, “~뿐”일 때 사용하는 부조사. [본문으로]
  4. 여담으로 '테[手]'의 의미는 차제구의 분류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보리 엔슈우[小堀 遠州]'라는 다인과 그 주변 인물들에 의한 것으로, 가장 뛰어난 다기에 붙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자신의 이름 글자 중 하나인 '요시[義]'라는 글자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6. 한 쪽이 돌출 된 형태를 말함. [본문으로]
  7. 검은 광택이 나는 것을 말함 [본문으로]
  8. 초기 사츠마 도자기, 즉 조선인 도공인 만든 도자기를 지칭. [본문으로]
  9. 현 오키나와[沖縄] 지역 [본문으로]
  10. 에도 막부[江戸幕府]의 신하 [본문으로]
  11. 에도 바쿠후의 쿄우토[京都] 치안 유지를 임무로 하는 직책이나, 쿄우토에 있던 막신들의 총 책임자였기에 황실 및 쿠게[公家], 서국 다이묘우[大名]들의 감시 등을 임무로 하였다. [본문으로]
  12. 타다츠네(忠恒)가 1606년 개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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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5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수했는데다 아들내미가..(우여곡절이 있었지만..)가독까지 이었으니,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전도 종종 있긴 했지만 세키가하라에서의 스테가마리는..원츄!(결국 이이 나오마사와 도쿠가와 아들내미를 골로 보낸 원인이 되게 한..)

    귀석만자던가, 벽제관에서 명군을 박살낸데도 일조 했다더군요,(코바야카와 다카카게와 함께였던가..)

    시마즈가가 큐슈 3가문중에서는 제일 멀쩡히 버틴걸 보면 타카히사가 자식농사는 참 잘지은듯..(;;)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5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HK대하 드라마, "토쿠가와 3대"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의 스테가마리 얼마나 비장감 있게 할까? 하고 조금 기대했었는데..... 철포 쏘고 나더니, 우아앙~ 하면서 도망가더군요....--;;

    귀석만자... 벽제관은 참가했는지 어땠는지.. 유명해지 것은 사천 전투가 아니었나요?
    제가 읽은 것 중에 황당한 것은 조명 연합군 20만....(--;)을 물리쳤다는 것. 성 주변에 화약이 담긴 통을 놓았다가 철포로 맞추어 폭발시켰다던가 하는 만화적인 이야기였습죠.

    유일하게 남은 것은...여러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츠마라는 일본 최남단 지역... 큰 전투를 끝냈을 뿐인 동군 측에 거기까지 원정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남지 않았다는 점과 이시다 미츠나리 같은 뛰어난 후방 행정관이 없다는 점.(히데타다가 세키가하라에 늦춰진 이유 중에 하나는 그런 점에 있다고도 하더군요)
    또 하나는...그런 것을 염두에 둔 뻔뻔함.. 나중에 카이에키 당하는 무장들은 '꺼져~' 하면 알아서 기었지만, 시마즈 측은 '뭔 소리여~ 여까지 오기 힘들잔여~내 말 좀 들어봐~' 하면서 끝까지 버틴 점을 들 수 있지 않을까요?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5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ㄷㄷ.. 무슨 철포판 윌리엄텔입니까(;)

    ..그나저나 스테가마리개그란;;; ㅎㄷㄷ.. 한번 봐야겠군요(-_ㅋㅋ..)

    여담이지만 저희 일교과 교재에 보니 사츠마 석고가 73만석 나오더군요.. 그정도면 동군에 알아서 슬슬 긴 카가 100만석 다음인데.. 서군 출신 주제에 원츄군요(ㅋㅋ..)

    개인적으로는 도쿠가와와의 세키가하라 패전 후 교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뭐, 언젠가 기회가 되면 찾아 볼 생각입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5 2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졸자에게 명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시길.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5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종 의문이 있으면 질문드리도록합지요..(ㅎㅎ)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8.03.09 0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키가하라때 이미 65세의 노장이었으면서도 용맹을 뽐냈군요.
    전쟁 소리를 들으면 음식을 먹었다는 부분을 보니 중국 주나라 유왕의 애첩 포사가 생각나네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09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그 이야기는 웃지 않는 미녀 웃기기?
    파블로프의 개가 조금 더 비슷하지 않나요? ^^;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ttl00013 BlogIcon 라빈스텐 2008.08.31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신 시마즈라는 별명이있는데 그건 임진왜란때 이순신 수군에게 신나게 발리기 싫어서 도공들을 귀신같이 납치하여 도망가서 귀신 시마즈라고 불리는거 같네요.
    일본에서는 평가가 후할진 몰라도 조선장수들과의 능력치로 보면 정말 일본장수들은 갓나새끼에 불과한거같습니다.
    한마디로 요놈도 조선장군들에겐 쪽도 않되는 과대 포장 같은 인물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31 1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신 시마즈라는 별명이있는데 그건 임진왜란때 이순신 수군에게 신나게 발리기 싫어서 도공들을 귀신같이 납치하여 도망가서 귀신 시마즈라고 불리는거 같네요."

    ....이곳은 나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곳입니다. 리플 하나에 잘못된 지식을 가지게 될 분들이 생길 수 있으니 그러한 말씀은 미리 농담이라던지 하는 방식으로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마즈 가문은 일본 2ch에서도 요즘 날조의 대명사로 뽑히곤 합니다.
    鬼石曼子..라고 중국측 사료에 이름을 남겼다고 자신들은 주장하지만, 문제는 鬼라고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은 당시 일본에서나 행하던 것인데 말이죠.

    "일본에서는 평가가 후할진 몰라도 조선장수들과의 능력치로 보면 정말 일본장수들은 갓나새끼에 불과한거같습니다. 한마디로 요놈도 조선장군들에겐 쪽도 않되는 과대 포장 같은 인물"

    ...그래 어떤 능력치로 어떻게 평가하실 건가요? 그 능력치는 또 어떤 것을 기준으로 부여하실 것인가요? 역사에 이름이 남은 인물을 한마디로 평가하시는 그 자신감이 부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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