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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요시마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18 요도도노(淀殿), 그 아들 -4-
  2. 2007.06.26 살생관백(殺生関白)-2- (2)

四.

 

 삼 년이 지났다.

 챠챠(茶々)는 20살이 되었다.

 “아자이 님(浅井殿)의 아씨를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하고 어느 날 밤에 히데요시에게 물은 것은 놀랍게도 그의 부인인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였다.

 “이미 시집갈 곳은 정하셨겠죠?”

 “아직이다”

 히데요시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한 얼굴을 하였다.

 “아직이요?”

 “그렇다”

 “알고 계십니까? 벌써 스무 살이옵니다”

 말할 것까지도 없사옵니다만 - 하고 키타노만도코로는 거듭 말했다.

 “보통 15살이면 시집을 갑니다. 20살이면 좋은 날이 다 가 정실이 먼저 죽은 곳이라도 찾을 수 밖에 없는 나이라고 할 수 있죠. 소중한 분을 맡고 계시면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하고 그녀가 끈질기게 말한 것은 성안의 소문을 하루 종일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존귀한 핏줄이며 저렇게 미인인데도 – 하고 소문은 말한다. 어디로 갈 것이라는 결혼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전하는 뭐랄까 그 거시기 한 마음이 있으신 것은 아닐까? 필시 그럴 것이다 - 라는 것이었다. 히데요시의 호색은 천하에 유명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시대는 남자건 여자건 모이면은 그런 종류의 이야깃거리로 쑤군거렸다. 예를 들어 성안의 소문에 따르면 –

히데요시님은 옛날부터 챠챠 님의 모친이신 오이치 마님(お市御料人)을 짝사랑하고 계셨었다. 아자이 씨(氏) 멸망 후 오이치 마님께서 오다 가문(織田家)으로 돌아오셨을 때도, 제발~제발~하면서 돌아가신 노부나가 님께 매달려서는, 제 부인으로 받아 들이고 싶습니다고 부탁하였지만 정작 오이치 님께선 그 분을 싫어하여 우연히 정실이 돌아가셔 홀몸이셨던 시바타(柴田)님께 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시바타 공격은 사랑의 복수이죠. 그 증거로 히데요시님은 좀처럼 적을 죽이시지 않던 분이셨는데 시바타 님만은 용서하지 않고 텐슈각(天守閣)을 아예 재로 만드셨잖아요.

 라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것은 억측에 지나지 않았다. 오이치가 아직 결혼하기 전엔 짝사랑하고자 하여도 아예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또한 오이치가 과부가 되었을 때 히데요시가 그녀를 부인으로 하고 싶다며 울며 매달렸다고 하지만 히데요시에게는 비루한 신분일 때부터 처 네네(寧々) – 키타노만도코로가 있었다. 히데요시는 엄청난 호색한이었으면서도 이 조강지처를 유난히도 존중하며 둘도 없는 상담 상대로 하였고 겸해서 조심하는데 있어 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처를 버리고 오이치를 정실로 맞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우선 이 남자에 한해서 있을 수 없었다. 참고로 호쿠리쿠(北陸)에서 시바타 카츠이에를 공격하여 죽였을 때는,

 “카츠이에를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하고 몇 번이나 부하들에게 말했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카츠이에를 죽이지 않으면 천하가 안정 되지 않는다, 이건 어쩔 수 없다 - 고 말하였다. 히데요시에게 놓여진 조건이 카츠이에를 죽여버렸다. 오다 정권의 필두가로를 이 세상에 살려두면 히데요시 정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 놀음이 아니었다. 또한 히데요시는 원한을 몸 안에 저장하기 어려운 성격으로 원한, 복수라는 에너지가 이 인물의 성정에서는 절대 끓어 오르지 않을 것이다.

 소문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도 확신할 수 없었다. 히데요시는 에치젠(越前) 이치죠우다니(一乗谷)에서 처음으로 성숙해진 챠챠를 보았을 때 이렇게 오이치님과 똑 빼 닮을 수 있을까? 하고 틀림없이 피가 끓었다. 오이치를 짝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과거는 없었다고 하여도, 오이치를 이 세상에서 미모가 제일인 사람이라고 마음 속으로 깊이 동경했었던 적은 틀림없이 있었으며 이는 히데요시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오다 가문의 가신들 중에서 수 없이 많이 있었을 터이며 오이치는 그런 존재였다. 오이치는 하늘나라 사람이었다. 히데요시는 거기까지 손을 뻗으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그것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현실인식 감각이 너무 예리했던 그 당시의 히데요시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할 정도 별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치젠 이치죠우다니의 단계에서 달랐다.

 ‘이 아이는 내 날개 품 속에 있다’

 라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이치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녀와 쏙 빼 닮은 소녀가 하늘나라에서 떨어져 자신의 날개 품에서 보호받는 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품어주마 하고 몰래 결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히데요시의 기분을 집요하게 윤색하고 왜곡하면 소문과 같은 이야기처럼 될 것이다.

 히데요시는 요 삼 년 챠챠를 조용히 그 생활 속에서 살게 해 두었다.

 - 조용히……

 라는 것이 히데요시의 챠챠에 대한 방침이며 머지않아 챠챠를 얻는 길이라고도 믿고 있었다. 그것은 공성전과도 닮아있었다. 하리마(播磨) 미키 성(三木城)도 이나바(因幡) 톳토리 성(鳥取城)도 빗츄우(備中) 타카마츠 성(高松城)도 히데요시는 결코 무리하여 공격하지 않았다. 장기 포위전 형태를 취하며 적의 보급선을 끊고 수로를 끊어 때로는 수공을 하여, 어쨌든 농성하는 병사들의 전의를 잃게 하는 전술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그런 감각으로 챠챠라는 존재를 보고 있었다. 무턱대고 챠챠의 침실에 함부로 뛰어드는 식의 어리석음을 이 남자만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히데요시가 보건대 챠챠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긴 시간이 챠챠가 가지고 있는 옛 상처를 아물게 할 것이다. 그 동안 빈번한… 그러나 담백하고 온정에 넘치는 접촉이 히데요시에 대한 챠챠의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때문에 히데요시는 요 삼 년 궁중의례를 위해서 쿄우(京)에 올라와서 전쟁 때문에 몇 번이나 스즈카토우게(鈴鹿峠) 고개를 넘어[각주:1] 동쪽으로 정벌하러 떠나면서, 그렇게 간 곳곳마다 반드시 챠챠에게 진귀한 선물들을 보내며 근황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자연스레 챠챠도 예의상 그에 대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챠챠에게 있어서 요 삼 년은 일분일초가 히데요시의 온정 속에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네네는 그러한 히데요시의 거동을 그렇게 볼 수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시녀들에게서도 여러가지 소문을 듣고 있었다. 편지 왕복 등도 챠챠의 시녀가 남들에게 흘렸기 때문에 네네의 귀까지 들어왔다.

 불길한 생각을 계속 하던 차에 몇 일전 오다 우라쿠(織田 有楽)가 차(茶)의 자리에서,

 “오우미(近江) 사람들이 열심이더군요”

 라는 것을 네네에게 뜬금없이 말한 것이다. 우라쿠는 많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네의 현명함은 그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오우미 사람들은 토요토미 가문의 주력인 오와리 파벌(尾張衆)에 대항하기 위해 열심일 것이다. 오와리 파벌은 이 네네에게 옹호 받고 있다고 세간에서는 보고 있었다. 오와리 파벌의 다이묘우(大名)나 무장이 히데요시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하면 반드시 네네에게 울며 매달려서는 히데요시에 대한 중재를 부탁했다. 네네는 언제나 기분 좋게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네네에게 그 이상의 야망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성안의 소문은 달랐다. 오와리 파벌이라는 이 오오사카 성에서 가장 큰 관료, 무신 세력의 중심에 네네가 있다고 보고 있어, 네네의 존재는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선명하게 정치적 자력(磁力)을 띠기 시작하고 있었다.

 네네도 시녀의 입으로 그러한 풍문은 듣고 있었다.

 “오우미의 사람들이 자기들도 오와리에 태어나고 싶었다며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네네에게 있어서는 이외였다. 오우미 파벌의 대다수는 이 네네에게 접근조차 하지 않았으며 부탁하러도 오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극소수의 오우미 사람만이 네네와 접촉하고 있었다. 서 오우미 출신인 타나카 요시마사(田中 吉政)나 비와고(琵琶湖) 호수 동쪽 중부 출신인 토우도우 타카토라(藤堂 高虎) 등이 그들로, 그들은 오히려 같은 지역인 오우미 사람들과는 소원하며 오와리 파벌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참고로 오와리 파벌의 대표적 인물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일 것이다. 그 외에 젊은 축으로는 카토우 키요마사(加藤 清正), 이케다 테루마사(池田輝政), 카토우 요시아키라(加藤 嘉明), 다소 나이가 있는 자로는 아사노 나가마사(浅野 長政),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 一氏), 호리오 요시하루(堀尾 吉晴) 등이 있으며, 모두 초창기의 히데요시와 함께 전쟁터의 먼지를 뒤집어 쓰며 성장한 역전의 무장들이었다. 오와리 파벌의 특색은 전투의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에 있었다.

 이 점 오우미 파벌은 관리에 뛰어났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나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는 거의 ‘희대의’라고 붙여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경제 관료로, 미츠나리 등은 거대하게 성장한 히데요시의 재산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각종 장부를 발명했다. 천하 재정을 위한 장부부터 부엌의 자잘한 출납장에 이르기까지 장부를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하위 관료들을 지휘하였고 관리하였다. 그들 오우미 파벌의 관료가 없으면 히데요시는 병사를 일으킬 수 없었고, 직할지를 다스릴 수 없어 하루라도 편안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미 이 신정권의 중추에는 그들 오우미 사람들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오다 우라쿠의 걱정은 그들 오우미 사람들이 만약 결속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우라쿠는 네네에게 말로 하지 않았을 뿐, 조심하시길, 만약 그들이 옛 주인격인 아자이 님(浅井殿=챠챠(茶々))을 옹립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라기보다 좀더 대놓고 말하면,

- 그들은 아자이 님께서 측실이 되신다면……

 라고 그것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아예 까놓고 말하면 그들 오우미 사람들은 히데요시를 그녀의 침실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것이었다.

  1. 교통의 요지로 스즈카 산맥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어 이로부터 동쪽을 東国이라 일컬었다. 쿄우토에서 동쪽으로 간다는 의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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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는 성인식을 치른 후 카와치(
) 2만석의 영토를 하사 받고 이때부터 외삼촌인 히데요시를 따라다니며 10대 중반 즈음부터 전투에 참가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한 군단의 대장이었다. 16살 때는 이세(伊勢)타키가와 가즈마스(川 一益) 정벌에 참가했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라고 외삼촌 히데요시는 매번 말했다. 좋은 일이라는 것은 히데요시의 후계자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긴 했다. 이 세상에서 히데요시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것이 바로 이 마고시치로우였다.
 둘째인 고키치(小吉 = 히데카츠(秀勝))도 그렇기는 했지만 이 둘째는 지능이 좀 떨어졌고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외눈이었다.
 셋째인 아이는 후에 히데토시(秀俊)라는 인물이 되지만 이 아이는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이부제(異父弟)히데나가(秀長)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보아도 좋았다. 즉 히데요시의 혈통 중에 젊은 사람은 누나 오토모가 낳은 이 세 명밖에 없었다.

 
 ‘이 분이 후계자가 되신다.’
 라고 여러 장수들도 그리 생각하였다. 자연히 나이 먹은 장수들은 마고시치로우를 히데요시의 분신처럼 떠받들었다.
 이런 와중에 웃기지도 않다는 듯이 마고시치로우를 비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히데요시의 몇 없는 친척 중에 하나인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였다. 오와리 키요스(淸州)의 오케야(桶屋[각주:1])의 아들로 태어나 아명(
兒名

)
이치마츠(市松)인 마사노리(正則)는 히데요시의 죽은 아비의 혈연이었던 관계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하시바 가문(羽柴)의 부엌 밥을 먹고 자라며 코쇼우(小姓)가 되었고, 이어 시즈가타케(賤ヶ岳[각주:2])에서는 공을 세워 지금은 모노가시라(物頭[각주:3])가 되어 세 개의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원래 마사노리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였으며 광인(狂人)이라 생각되어 지는 곳도 있었고 또한 히데요시의 일족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남자였기 때문에 마고시치로우를 질투의 감정을 통해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괭이질 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남자다”

 

 누군가가 마고시치로우를 '귀족'이라 말했을 때 마사노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저 놈이 귀족인가? 옷이야 귀족하고 같겠지만 안에 있는 몸뚱이는 보급대의 짐꾼조차 버거운 놈이다”

 
 고 말했다.
 그런 험담이 마고시치로우의 귀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종류의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자연히 허세를 부리게 되었고 보좌하는 노장들에게까지 거만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6살 때 말이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는 보좌역들이 모든 것을 관리하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기에 큰 공도 없었다. 이 젊은이가 전투를 - 라기보다는 역사를 좌우할 정도의 행동을 하게 된 것은 다음 해인 17살이었을 때였다.

 
 그 전투는 후에 코마키-나가쿠테(小牧-長久手)의 싸움이라고 일컬어 진다.
 때는 히데요시가 일본의 중앙 24개국을 휘하에 두었을 즈음으로 그 위세를 몰아 토우카이(東海)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
川 家康)를 제압하고자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로 진출했다. 이에야스도 본국인 미카와(三河)를 비워둔 체 오와리에 포진하여 거의 3배에 달하는 병력을 가진 히데요시군과 대치했다.
 서로 상대의 허실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대치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 견고한 야전진지를 구축하여 전선은 고착상태가 되었다. 이럴 경우 가벼이 군을 움직이는 쪽이 질 것이다. 적이 움직임에 따라 곧바로 대응하는 태세를 쌍방이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자중에 자중을 거듭하였지만 이럴 때 그에게 있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작전을 제안해 왔다.

 과거 오다 가문(織田家)의 동료였던 이케다 쇼우뉴우(池田 勝入[각주:4])와 테루마사(輝政) 부자(父子), 천하를 손에 넣고자 하는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기분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이케다 쇼우뉴우는 공을 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가 제안한 작전이라는 것은 -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미카와가 비어있다. 지금 은밀히 별동대를 편성하여 이에야스 모르게 우회 행군하여 곧바로 미카와를 공격하면 이에야스는 놀라 이곳을 버리고 지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별동대의 선봉을 자신에게 맡겨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찬동할 수 없었다. 이에야스가 알아채고 행여라도 패배라도 당한다면 이것을 계기로 전군의 사기가 떨어져 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쇼우뉴우는 다음날 다시 한번 간청했다. 히데요시는 쇼우뉴우의 마음이 멀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결국 허용했다. 단 하나하나 세세히 주의시켰다.

 

 곧바로 별동대가 편성되었다.
 선봉은 이케다 쇼우뉴우, 중군은 모리 나가요시(森 長可), 호리 히데마사(堀 秀政)라는 식으로 오다(織田) 시대부터 맹장으로 유명한 장수가 선발되었고, 후군은 미요시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가 담당함과 동시에 별동대 전체의 대장도 겸했다.
 유격군 총 1 5천이 오와리 가쿠덴(樂田)의 진지를 출발한 것은 1584 4 6일 심야였다. 모노쿠루이(物狂) 언덕을 살며시 넘어 이에야스의 진지 전방을 통과, 첫째 날은 무사히 그 행동이 탐지되는 일 없이 넘어갔다.
 이에야스가 알게 된 것은 다음날인 7, 그것도 노을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에야스가 히데요시군에 밀정으로 파견했던 이가(伊賀) 닌쟈(忍者) 핫토리 헤이로쿠(服部平六)라는 자가 돌아와서 이것을 보고했다.
 히데요시의 한 부대가 움직였다는 보고에 이에야스는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해가 짐과 동시에 행동을 개시했다. 그가 취한 방법은 은밀히 움직이는 적군을, 이 또한 은밀히 추격하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코마키의 본영에서 9천의 병사를 히데요시군이 알아채지 못하게 빼내는 데 성공, 그 뒤 재빨른 행군으로 뒤를 쫓았고 곧이어 심야에 적 후미를 발견했다.

 

 “적 후군의 장수는 누구더냐?

 

 “미요시 마고시치로우님이십니다.

 
 고 부하 중에 하나가 답했다.
 이에야스가 히데츠구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어떤 인물인가?

 
 고 적 정세를 자세히 아는 자에게 물었다. 히데요시의 양자라고 한다. 나이는 17. 다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했던 것은 이 어린 대장이 몸에 걸치고 있는 무구(武具)였다.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는 그의 인생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수집했었는데 이 시기에는 열심히 유명한 무장의 무구를 모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 남자의 대장으로써의 특징인 부대표식에치젠(越前) 키타노쇼(北ノ庄)에서 패사(敗死)한 오다 가문 제일의 용장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의 금색 마토이([각주:5])이다.
 쓰고 있는 투구는 미노(美濃)출신의 무예가 뛰어난 무사로 지금은 히데요시를 섬기고 있는 히네노 빗츄우노카미 히로나리(
日根野 備中守 弘就)의 중국 관모(官帽)모양의 투구를 억지로 청해서 손에 넣은 것이었고, 몸에 걸치고 있는 새털로 된 진바오리(陣羽織[각주:6])오우미(近江)출신의 호걸(豪傑)로 지금은 히데요시의 군중에 있는 키무라 히타치노스케(木村 常陸介)가 항상 걸치던 것을 졸라서 손에 넣은 것이다. 말하자면 당대 영웅호걸의 전장도구들을 끌어 모아서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었다.

 

 “특이한 분이시군

 
 이에야스는 머리를 조금 갸웃거리더니 비웃었. 이에야스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적장의 강하고 약함이었다. 선봉인 이케다 쇼우뉴우의 용맹함은 천하에 떨치고 있었으며, 중군인 호리 히데마사는 역전(歷戰)의 용사였고, 모리 나가요시는 미노 사이토우(
)()의 옛 신하출신으로 무사시노카미()를 칭하며 노부나가를 섬겨 여러 전장을 경험하면서 오니무사시(鬼武蔵[각주:7])라는 이명(異名)을 얻고 있었다. 또한 이 일족은 그의 동생 란마루(蘭丸), 리키마루(力丸)가 혼노우(本能)()에서 노부나가를 지키며 분전하다 그와 함께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들 너무 강했다. 기습의 효과는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에 있다. 이에야스는 마고시치로우의 겉모습의 기묘함을 듣고,

 

 “그 분은 분명 약할 것이다

 
 고 말했다.
 이에야스가 보건데 그 히데요시의 친척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용렬함과 무능함을 그러한 허세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인간 관찰을 끝낸 후 이에야스는 마고시치로우로를 공격의 중점으로  두기로 하고
포위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하쿠산(白山)
 이라는 곳에 마고시치로우군() 야영했다.
 동쪽은 고지(高地) 서쪽으로 경사졌으며, 계곡 사이에 남북으로 길이 하나 나있을 뿐으로 주변은 울창한 숲이었다. 이런 지형으로 보건대 마고시치로우는 마치 습격 당하기 위해서 야영하고 있다고 밖에 없었다.
 더구나 공격하는 이에야스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척후는 커녕 보초도 게을리 하고 있는 상태였다.

 

 “편한 싸움이 되겠군.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고 이에야스는 명령하며 야심함을 틈타 9천명을 속에 잠입시켜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마고시치로우군은 일어났고 일어났지만 주변에 이에야스군이 잠복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한 채 왁자지껄대며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야스군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때였다.


 이미
전투가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대부분의 사졸들은 식기를 버리고 말을 버리며 맨몸으로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고시치로우는 이미 대장이 아니었다. 사냥터의 동물과 같은 신경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도망가기 위해서 옆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숲에서 돌격해 오는 토쿠가와의 병사들을 보고 몸을 반대로 돌렸고 막상 갈 곳도 없어 주변을 우왕좌왕 하기만 하였다. 이러는 동안 그가 내린 명령은 하나밖에 없었다.

 

 “큐우베에(久兵衛) 불러라! 큐우베에를 불러라~!


 고 외쳤다.
 큐우베에는
그의 선봉대의 대장인 타나카 요시마사(田中 吉政)를 말한다.
 요시마사는 오우미(近江) 출신으로 아시가루(足軽[각주:8])부터 시작하여 출세, 여러 직책을 역임하는 동안 히데요시의 눈에 띄어 지금은 마고시치로우에게 파견된 전술 지휘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남자였다. 남자의 부대만이 이런 혼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버티며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요시마사는 이상히 여겨 방어선을 철수시키고 왔다.

 

 “쇼우뉴우나 무사시에게 사태를 알려라~ 도우러 오라고 말해!

 
 하고 소리쳐댔다.
 요시마사는 어처구니 없었다.
 전령 역할이라면 츠카이반(使番[각주:9]) 대장 옆에 있다.
 제1선의 지휘관을... 그것도 방어하기에바쁜 와중에 불러서는 전령으로 삼으려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거기에명령이라는 것도 좋지 않았다.
 지금 혼란은 후군이 혼자서 막아야만 하지 리나 앞서 있는 전방의 부대를 불러, 설사 그들이 구원하러 오더라도 개미지옥과도 같은 적의 함정에 빠져 속에서 각개격파 당해 버릴 것이다. 그런 가지 이유로 요시마사는 거절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미친 듯이 외쳤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죽인다!!”

 
 고 소리쳐댔기 때문에 어쩔 없이 부하도 없이 혼자서 말을 몰고 전방 부대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달려 호리 히데마사의 부대를 따라 잡아 후군이 무너졌다고 알리자,

 

 “큐우베에. 자네는 츠카이반이 아니다, 미요시 가문에서 지휘를 하는 신분이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겁을 먹고 도망쳐 것이군

 
 하고 모두 앞에서 창피를 주었다. 요시마사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물러나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
장래 가능성이 있는 대장은 아니다
 며 마고시치로우에게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전투 후에 사표를 내고 낭인이 되었다.
 그 여담이지만 남자는 고향이 같았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주선으로 히데요시의 직속 신하가 되어, 기량에 걸맞게 10만석이 주어졌고 후에 세키가하라(ヶ原)에서는 이에야스측에 선 덕분에 치쿠고 야나기카와(筑後 柳川) 30여만석을 영유하게 된다.

 
 요시마사가 전령으로 떠나면서부터 마고시치로우의 군은 이상 군대가 아니었다. 모두 말을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다. 마고시치로우도 도망치면서 잔머리를 굴렸다. 중국 관모 모양의 투구, 금색 마토이의 우마지루시, 새털로 진바오리라는 호걸의 상징은 모두 버리고 역시 맨발로 도망쳤다. 이렇게 하면 적은 자기를 말단 무사로 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앞을 카니 사이조우(可児 才蔵) 언제나 자랑하던 말에 채찍질하며 조릿대로 개인표식을 비스듬히 등에 단 채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카니는
미노 출신으로, 창을 쥐면 남자를 당해낼 사람이 없다고 하는 남자이다. 히데요시는 마고시치로우에게 도움 된다고 생각하여 이런 종류의 능숙한 전쟁꾼들을 많이 배속시켜 주었다.

 카니는 역시 전장에 익숙한지 도망치는 방법도 어딘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이조우~ 사이조우~”

 
 하고 마고시치로우는 애원하는 듯이 불렀다. 물론 마고시치로우는 카니에게 아무런 용무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그가 타고 있는 말이었다.

 

 “말을 나에게 다오

 

 마고시치로우가 말하자 카니는 눈동자를 굴리며 뒤돌아서는,

 

 “비올 때의 우산이외다

 
 라고 말하고선 도망쳤다. 비가 때는 우산이 필요하다. 퇴각할 때는 말이 필요하다. 그리 쉽게 말을 줄까하는 말이었다. 카니와 같은 미노 사이토우 가문에서 오와리 오다 가문으로 말을 갈아타며 수 많은 전쟁터를 경험해 전쟁전문가들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패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의 앞길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남자는 후에 사표를 내던지고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섬기게 된다.

 
 그러는 동안 마고시치로우에게 배속된 부대장 중에 명인 키노시타 토시나오(木下 利直) 도망치면서 마고시치로우를 발견하곤 자신의 말에 태워 도망치게 하였고 자신은 맨땅에 서서 개인표식을 등에서 뽑아 땅에 꽂고서는 달려드는 적병을 막았지만 전사했다. 역시 그의 동생인 스오우노카미 토시마사(周防守 利匡) 형을 도와 말 없이 맨땅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마고시치로우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둘의 마지막조차도 알지 못했다.

 
 이 붕괴는 곧바로 전방의 아군들에게도 파급되어 선봉대장인 이케다 쇼우뉴우는 아들인 모토스케(之助) 함께 전사하였고 명장이라 일컬어졌던 모리 나가요시도 적의 두터운 포위망 속에서 이마에 철포 탄환을 맞고 죽었다. 어쨌든 별동대는 전멸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 나가쿠테(長久手) 패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외교로 고립시킨 화해하여 결국은 신종(臣從)시켜 토요토미 가문 휘하 다이묘우(大名)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 이것이 오히려 그의 무위(武威) 나타내는 최대의 이력이 되었으며 히데요시는 죽을 때까지 이에야스에게 큰소리를 못쳤다. 또한 덕분에 히데요시가 죽은 천하를 손에 넣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마고시치로우의 실패가 없었다면 히데요시가 이겼고 이에야스는 패망(敗亡)하여 히데요시 정권 불안의 불씨는 꺼졌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히데요시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몰랐다. 도망친 히데요시에게 전령을 보내어,

 

 “대신할 장수를 주세요

 
 라고 하였다. 마고시치로우의 입장에서는 키노시타 형제가 죽었으니 그들을 대신할 인물이 필요하다, 히데요시 옆에 있는 인물 중에 하나를 보내주세요 - 라는 것이었다.
 이름까지 집어서 말했다. 무용(武勇) 뛰어난 이케다 켄모츠(池田 監物) 원합니다 하였다. 말투가 마치 물건이라도 바꾸자는 듯하였다.

 

 “ 놈이 인간이냐?”

 

 라고 히데요시는 뻔뻔스럽게 마고시치로우의 말을 가지고 사자 히토츠야나기 이치스케(一柳 市助 = 후에 이즈노카미(伊豆守)[각주:10])를 향해서 우선 격노하였다.

 

 “네 놈을 우선 죽이고 나중에 마고시치로우에게 배를 가르게 하겠다"


 까지 말하였다. 키노시타 형제를 개죽음 시키고 자신만 전쟁터에서 도망쳐 왔으며 거기에 그 때문에 모리 나가요시, 이케다 쇼우뉴우 부자까지 전사했다. 그것에 아무런 창피를 느끼지 못하고 도망쳐 오자마자 대신할 사람을 보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를 가진 것인가?
 '저건 그냥 바보인가
?’

 히데요시는 이 패전보다도 그 생각으로 인해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장래를 맡길 자신의 혈연이 어째서 하나같이 이렇게 졸렬한 놈들뿐인지 예전부터 생각했다.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동생인 히데나가(
秀長)를 제외하곤 모두 지능에 결함이 있던지 성격이 좇같았다. 처의 친척들을 둘러보아도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 중에서는 제대로 된 놈이 없었다. 적어도 마고시치로우 정도는 하고 생각하여 조금은 기대를 걸었다. 그 재능은 포기한다손 치더라도 저 가벼운 성격을 보면 자신의 뒤를 물려준다고 하여도 세상 사람들은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권력의 자리라는 것은 하루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히데요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히데요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젊은이를 어떻게든 제 앞가림은 하는 머리와 마음의 소유자로 만들어 그런대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후계자로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히데요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꾹 참고 있었지만, 일단락한 어느 날 조용히 자신의 비서를 불러, 붓과 종이를 준비케 한 후, 눈 앞에 땀구멍이 커다란 밉상 맞은 얼굴을 한 마고시치로우가 바로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받아 적게 하였다.

 
 [너는]이라는 말투로, 편지는 곧바로 본제로 들어갔다.

 평소 히데요시의 조카라는 것을 내세우며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이 많다.
 
꾸짖어야 할 때가 왔다. 마음가짐도 올바르지 못하다. 반대로 역시 히데요시의 조카라고 존경 받을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한 때는 죽이려고 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가엾다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마음을 고쳐 남들에게도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뭐든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어쨌든 이번 전투에 대해서다.
 키노시타 형제를 붙여주었더니 너는 그 둘을 개죽음 시켜 버렸다. 그것을 너는 미안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도 없이 히토츠야나기 이치스케를 보내와 이케다 켄모츠를 달라고 말해 왔다. 창피함을 느끼고 분발해야 할 때에, 그 대신할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냐? 그 말을 전하러 온 놈도 얼간이여서 한 때는 내 직접 죽이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심사 숙고하여, 히데요시의 조카는 굉장한 인물이라고 남들에게 들을 수 있게 되어 준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에 만족하겠다.
 지금의 마음 가짐만 고친다면 어느 나라건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얼간이라면 아무리 목숨을 구해주어도 내 체면에 걸린 문제이기에 내 손으로 직접 베겠다. 히데요시는 사람 베는 것을 싫어하지만 너를 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은 더욱 창피해지기에 다른 사람 손을 쓰지 않고 내 손으로 너를 죽이겠다.
  누가 봐도 훈계(訓戒)의 편지임을 알 수 있듯이 똑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항목에,
 [너는 요령 좋고 잔재주가 많다
.]

 라는 말로 마고시치로우의 능력을 평하였. 요령 좋고 잔재주가 많다는 말을 제대로 인간이 들으면 내겠지만,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정도의 표현만이 간신히 마고시치로우를 칭찬할 있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언젠가는 나의 묘우다이(名代[각주:11]) 시켜주려고 까지 생각했었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끝이 보였다. 이것은 하늘이 히데요시의 이름을 남기지마라, 가문이 끊어져라라고 말씀하시는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라고 계속해서 훈계를 주제로 강조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편지의 의미를 이해할 없었다. 읽고 나서는,

 

 “나는 무예도 부족하 겁쟁이다라는 뜻인가?”

 
 라고 말했다. 말한 상대는 편지를 전하러 미야베 젠쇼우보우(宮部 善祥坊), 하치스카 히코에몬(蜂須賀 彦右衛門) 사람에게 였다. 둘은 마고시치로우의 난독증 놀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하고 둘은 히데요시의 진의를 열심히 설명했다.

 

 “알고 있다!

 
 고 마고시치로우는 소리 높여 날카롭게 말했다. 정도의 독해력이라면 젊은이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가지 이해할 없는 것이 히데요시의 분노였다.
 마음가짐, 마음가짐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의 부족한 무예와 많음을 질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히데요시는 마고시치로우라는 인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틀리다 마고시치로우는 생각했다. 억울하다.
 ‘
나는 원래 용감한 남자다
 마고시치로우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는 습관이 되어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듯이 이렇게 믿는 습관을 항상 마음속에 갖추고 있기에 군단의 대장으로써 말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용감함을 히데요시는 모른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한번의 패배로 이렇게 질책 받지 않아도 되잖아? 라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마고시치로우는 아무리 그래도 말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둘에게 물었다. 세상살이에 익숙한 둘이라면 히데요시의 분노를 피하여 그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엇을 하던지, 히데요시님에게서 붙여드린 숙노(宿老)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심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둘은 말했다.

  1. 상자나 통 등을 제조, 판매하는 가게 혹은 사람을 뜻함. [본문으로]
  2. 오다(織田)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가 싸운 전투. [본문으로]
  3. 중급 지휘관. [본문으로]
  4. 이케다 츠네오키(池田 恒興)를 말함. [본문으로]
  5. 대장 옆에 세우던 표식. [본문으로]
  6. 갑옷 위에 조끼처럼 걸쳐 있는 옷. [본문으로]
  7. 전장에서의 모습이 괴물(鬼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과 그의 관도명을 붙인 것. [본문으로]
  8. 최하층 무사(侍). [본문으로]
  9. 전령(傳令)을 말함. [본문으로]
  10. 히토츠야나기 나오스에(一柳 直末).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든 듯 호우죠우(北条)를 멸한 오다와라 정벌에서 그가 전사하자 "칸토우를 손에 넣은 것보다 그를 잃은 슬픔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하다. [본문으로]
  11. 대리인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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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ayasea BlogIcon 오연 2007.06.27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느껴보는 역사소설의 즐거움입니다...감사합니당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06.27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지만, 워낙 제 번역 실력이 딸려서 시바 선생의 필력을 전해드리지 못함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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