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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5.12 대화대납언(大和大納言) -4- (10)
  2. 2008.05.04 대화대납언(大和大納言)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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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이 원고의 중간 즈음의 시기로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히데요시가 텐노우[天皇]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설을 유포시키며 칸파쿠[白]가 될 사전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을 시기이다. - 이러는 동안 전회에 언급한 바대로 키이[紀伊]를 다스리는 코이치로우[小一郎]의 실적이 한창 오르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히데요시 정권은 일본 열도 전부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손에 넣은 곳은 킨키[近畿]를 중심으로 토우카이[東海] 일부에 호쿠리쿠[北陸], 츄우고쿠[国]였으며, 오우슈우[州], 칸토우[東], 시코쿠[国], 큐우슈우[九州]는 아직 다른 세력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우선 히데요시는 시코쿠를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코쿠는 토사[土佐]에서 발흥한 쵸우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 元親]가 거의 전토를 정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 토사 일국()만은 소유하게 하겠다. 다른 삼국()은 포기하고 항복할 것.

 이라고 히데요시는 모토치카에게 전하였지만 모토치카는 따르지 않고 토우카이의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와 동맹을 맺어 동서에서 서로 호응하며 히데요시를 적대하였다.

 

 히데요시는 정벌을 결심했다.

 동쪽에 이에야스라는 적이 있는 이상, 될 수 있는 한 단기간에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이를 위한 전략으로써 적이 감히 대적할 생각을 못할 정도의 대규모 군단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히데요시는 동원 계획을 끝마치자 코이치로우를 불러,

 

 니가 총대장이 되어라

 

 라고 명했다. 코이치로우는 얼굴을 들어 고개를 갸웃거린 후 곧이어 통통하게 살이 붙은 흰 볼에 피를 통하게 하였다. 형을 섬긴 이래 20. 많은 전쟁터를 경험해 왔지만 총대장이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를 건너 시코쿠[国]로 가는 병사는 공칭 8만이었다. 코이치로우는 우선 아와지시마[淡路島] 섬으로 건너가 후쿠라 항[福良港]을 전진기지로 하여 군선 900척을 모았다.

 

 나루토() 소용돌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하고 수군(水軍)에 밝은 어떤 무장이 그렇게 말하자, 코이치로우는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어찌 하냐고 물어도 나루토의 소용돌이를 내가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와 용()이 있으면 건널 수 있다. 조수의 적당한 시기에 맞추어 서로 떠내려가지 않게 배를 엮고 노()를 맞추어 한 일자로 건너면 되지 않겠느냐"

큰 지도에서 나루토 해협(鳴門 海峽) 보기


 라고 말했다. 거친 말투가 평소 온화한 이 남자와는 달랐다.

 곧이어 그 말대로 하여 단번에 건너서는 아와[阿波]토사도마리 항[土佐泊港]에 상륙하여 거기에 임시로 성을 쌓아 교두보로 삼았고, 계속해서 병사들을 파견하여 점령지를 넓혀갔다. 동시에 별동대인 모우리 군[毛利軍]이요[伊予] 침공하였고, 또 하나의 별동대인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의 군은 사누키[岐]로 침공하여, 하루에 성 하나씩 점령하는 기세로 진격하였다.

 

 코이치로우는 주력군을 이끌고 아와[阿波]에 있는 쵸우소카베 최대의 요새인 이치노미야 성[一宮城]을 포위하였지만, 성을 지키는 타니 츄우베에 타다즈미[谷 忠兵衛 忠澄]라는 자가 제법 방어하여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당초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코이치로우도 이 이치노미야 성에는 애를 먹을 것이라고 각오를 하고 있었다. 



큰 지도에서 이치노미야(一宮) 성터 보기

 

 그러나 킨키[近畿]에 있던 히데요시는 동방의 토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위협을 종시 느끼고 있었던 만큼 장기전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이 코이치로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코이치로우는 저러니까 안 된다. 언제나 꽃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느긋하다니까

 

 현실은 별로 느긋한 것이 아니고 또한 아무리 히데요시가 갔다고 하여도 이 정도 교착 상태는 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코이치로우였던 만큼 히데요시도 불만을 말하기 쉬워 표현이 어느덧 과장되기도 하였다.

 

 내가 간다

 

 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친정한다는 것이었다. 말뿐만이 아닌 - 이 시기까지의 히데요시는 행동이 재빨랐다. 곧바로 사카이[]까지 내려가 거기서 대기하면서, 우선 사자를 보내어 아와 이치노미야의 진영에 있는 코이치로우에게 알렸다.

 

 그렇게 말씀하셨나?”

 

 코이치로우는 사자(使者)로 온 이시다 사키치[石田 佐吉=미츠나리[三成]]를 앞에 두고, 그렇게만 말하고 잠시 침묵하였다.

 참을 수 없다!’

 고 생각하였다. 형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에서 이제서야 겨우 날개를 펼친 것이다. 코이치로우가 그것에 흥분해 하고 있는 바로 지금, 또다시 형이 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평소의 그라면 온화하게 형의 말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만은…… 코이치로우는 작은 저항을 시도해 보았다.

 오지마!’

 하고 화내며 말하지는 못하고, 단어를 될 수 있으한 고분고분히 하여 [오신다는 것에 대해서 잠시 유예(猶豫)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으로 유우히츠(祐筆)에게 상소문을 쓰게 하였다.

히데나가,
삼가 아뢰옵니다.
무릇 이번 시코쿠 정벌[四国征伐]에 있어 저는 형님의 대리를 명 받아 도해(渡海)하여 아와[阿波], 사누키[讃岐]에 군사들을 보내어 빠르게 적의 성들을 처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천하에 면목을 세움에 있어,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잔당(殘黨)이 여전히 남아있긴 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이곳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히데나가의 무(武)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기에 몹시 놀랐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출진하신다는 것은 저를 이곳에 파견한 형님의 안목이 부족하다는 뜻이 되어 형님의 위광을 스스로 줄이게 되는 것이며, 또한 모처럼 형님의 대리를 명 받은 저의 치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지금 조금 시일이 걸리고는 있지만 형님께서 바라는 바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옵니다.
바라건대 이번 출진을 중지해 주십시오. 그래 주신다면 이 얼마나 히데나가의 행복이겠습니까?
부디 이 히데나가에게 온 힘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전공을 세울 수 있게 해주신다면, 일생일대의 큰 은혜로 받들겠습니다.

부디 그것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겨주시길 바라옵니다
 코이치로우는 이 상소문을 비토우 토모사다(尾藤 知定)에게 주어서 사카이로 출발시킴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총공격을 개시하여 결국 하루 만에 성의 외곽(外廓)을 점령하고 물길을 끊어다. 성안을 말라 죽일 태세를 취한 상태에서 수비하는 타니 츄우베에에게 항복을 권했다. 츄우베에는 아와의 하쿠치 성[白地城]에 있는 자신의 주군 모토치카에게로 가서, 히데나가의 군세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여 결국 모토치카에게 항복을 결의시켰다.

 

 시코쿠()는 히데요시 정권의 산하로 들어왔다. 개전한지 50여 일만이었다. 이런 신속함은 전례가 드물 정도였다. 이후 히데요시는 바라 마지않던 칸파쿠[白]에 임명 받았고, 이어서 겐페이토우키츠[源平藤橘][각주:1]의 사성(四姓) 외에 새로이 토요토미[豊臣]의 성()을 창설하여 그것을 조정에게 하사 받는 방식을 취했다. 자연히 코이치로우도 이후 하시바[羽柴]라는 성(苗字)을 버리고, 토요토미노 히데나가라고 칭하게 된다.[각주:2]

 

 시코쿠[国]에서 개선한 뒤 코이치로우의 영지(領地)가 더해졌다. 키이[紀伊]에 더해 야마토[大和]가 추가된 것이다. 야마토도 키이와 마찬가지로 사정이 복잡한 곳으로, 지역의 대부분이 코우후쿠 사[興福寺][각주:3]카스가묘우진[春日 明神][각주:4]의 종교령(宗敎領)으로, 더구나 센고쿠[戦国] 백 년 동안 츠츠이 씨[筒井氏], 마츠나가 씨[松永氏] 등에게 땅을 강탈당해 왔기에, 히데요시 정권 성립 후에도 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소송이나 분쟁이 끊이질 않았으며 더구나 그런 것들이 쿄우토[京都] 공가(公家)와 엮어져 있었던 만큼 어떤 의미에선 키이보다 통치하기가 더 어려웠다.

 코이치로우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히데요시는 이 동생의 그러한 점을 기대하여 야마토를 맡겼다. 그 봉지(封地)는 야마토뿐만 아니라 이가[伊賀]와 그 외 여러 곳을 합하여 100만석으로 하였고 거성(居城)야마토 코오리야마[大和郡山]로 하였다.

 

 관작(官爵)도 시코쿠 정벌 다음해에 종삼위(從三位) 산기[議]가 되어 상급귀족(公卿)이 되어 궁궐에 입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587년 큐우슈우 정벌[九州征伐] 뒤 종이위(從二位)에 서임되어 다이나곤[大納言]에 임명되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를,

 [야마토 다이나곤[大和大納言]][각주:5]

 이라고 불렀다. 히데요시도 이제는 이 치쿠아미[竹阿弥]의 자식을 코이치로우라고 부르지 않고,

 [다이난고[なんご]]

 라 높여 불렀다. ‘다이나곤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난고쪽이 왠지 발음하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코이치로우가 오오사카 성[大坂城]에 문안 인사를 올리려 왔을 때 히데요시는,

 

 그 신국()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신국이라는 것은 - 야마토[大和]에 신사령(神社領)과 사원령(寺院領)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존중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 히데요시의 경우 어느 정도는 야유를 담아서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속내를 담고 있었다. 동시에 히데요시에게 그런 어려운 지역을 맡게 된 코이치로우에 대해서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소는.”

 

 하고 코이치로우는 짧게 답했다. 사실 코이치로우도 애먹고 있었다. 매일같이 다이죠우인 몬제키[院 門跡][각주:6]이치죠우인 몬제키[院 門跡][각주:7], 카스가 신사[春日神社] 등에서 진정(陳情), 소송이 코이치로우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어느 것이나 어려운 문제들로 대부분은,

- 토지를 돌려줘

 라는 것이었다. 코이치로우가 자신의 부하에게 나누어준 땅에 대해서,

 

 저 마을을 멋대로 그렇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백 년 전에는 우리 절의 영지(領地), 물증이라고 하시면 여기에 증거도 있습니다. 꼭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라는 식이었다. 하나하나 전부 들어주면 야마토에 있어서의 코이치로우의 영지(領地)는 한뼘도 안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것을 법적으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코이치로우는 다른 다이묘우[大名]들과는 달리 이런 점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센고쿠 백 년 동안에 일본 60여주()의 사원령이나 신사령, 황실령, 귀족령(公卿領) 등은 각 지역에 있는 센고쿠 다이묘우들이 강탈하였고, 그 강탈한 땅 위에 센고쿠 다이묘우의 경제는 성립해 있었다. 히데요시는 그 센고쿠를 종식시키고 통일하였다.

 -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려놔라

 고 야마토의 여러 절과 여러 신사들은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영토권 등은 시간도 흐르고 권리도 썩어 무효가 되었다고 말해도 좋았다. 그 억지를 토요토미 정권에 부리는 것은 대상이 잘못된 것으로, 부리려고 한다면 센고쿠 시대에 야마토에서 자기들 맘대로 강탈해 갔던 옛 영웅호걸들의 묘 앞으로 가져가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토요토미 정권의 야마토 담당자인 코이치로우는 될 수 있는 한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토지도 돌려주거나 하였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 온정을 베풀면 베풀수록 그를 만만하다 보고서는 계속 와서 투정 부렸다.

 그것을 무시하고 튕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여러 절들은 다른 지역의 경우와는 달리 몬제키[門跡] 사원이었다. 몬제키라는 것은 황족이나 상급 귀족의 핏줄들이 앉아있는 절로, 말하자면 쿄우토[京都]의 궁정과 하나의 세계였기에 그들을 거부하는 것은 궁정을 거부하는 것이며, 궁정을 머리에 이는 것으로 성립된 토요토미 정권의 일원으로서 그것이 불가능했다.

 

 정말 귀찮겠구나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 옛날은 옛날, 지금은 지금이었다. 과거의 권리는 백 년간의 혼란기에서 일단 없어진 것으로 보고, 토요토미 정권이 되었으니 새로 이 정권에서 토지를 기부한다. 과거와는 관계없다는 방침을 취하고 있었다. 때문에 히데요시는 궁정에 황실령을 헌상하고 상급 귀족들에게 영지를 새로 하사하였다. 그 옛날 선조들의 화려함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요 몇 십 년 동안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살아왔기에 지금은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奈良]의 몬제키들은 역사적 권리에 강하게 집착했다.

 

 이건 농담입니다만

 

 하고 코이치로우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예 겐지[源氏]를 칭하여 세이이타이쇼우군[征夷大将軍]이 되셔서 막부(幕府)를 열고 순수한 무가정치(武家政治)를 여는 편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토요토미 정권은 이런 점에서 어중간했다. 히데요시는 칸파쿠가 되었고, 그 일족도 히데츠구[秀次]나 자신을 시작으로 모두 상급귀족이 되었다.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여러 다이묘우들을 휘하에 두고 60여주를 통치하고 있었다. 토요토미 가문은 그런 귀족의 신분이었기에 나라의 몬제키들과 동일한 사회에 있었다. 동일 사회인 이상 동일 원리를 가지지 않으면 안되기에, 그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약하게 된다 고 코이치로우는 말하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만 말해라

 

 히데요시는 그렇게 말하였지만 그래도 놀라웠던 것은 코이치로우가 가진 행정이론가로써의 날카로움이었다. 어느새 이런 풍부한 사고 능력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알았으니까 됐고, 실제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입니다

 

 하고 코이치로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토지 대신해서 황금을 준다. 그러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효과를 발휘하여 소송인이 얌전해 지는 것이었다. 황금이라고 하면 근래에 사도[佐渡]를 시작으로 전국의 금광에서 솟아나듯이 나오고 있었다.[각주:8] 일본에서 이 금속을 정식 유통화폐로 채용한 것은 히데요시가 처음이었는데, 코이치로우는 이미 그 쓸모를 나라의 몬제키들을 상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크게 웃으며 그 처리에 만족하였다.

 

 코이치로우는 나라[奈良}의 난제(難題)들 뿐만 아니라 다이묘우들간의 불평이나 알력을 잘 조정하였다.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서 멀어지게 된 다이묘우들은 모두 키타노만도코로[政所]나 코이치로우에게 가서 부탁하였다. 또한 히데요시의 측근 관료들에게 미움 받아 곤혹해 하고 있는 다이묘우들도 코이치로우에게 그 조정을 부탁했다. 코이치로우는 직접 관료들의 사무실로 가 진실을 가려서는 측근 관료가 잘못했을 경우에는 호되게 질책했다. 이 때문에 다이묘우나 쿠교우들 사이에서는,

 - 토요토미 가문은 야마토 다이나곤이 지탱하고 있다

 고까지 말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 정권의 행복한 시간도 길지는 않았다.

 요 이십 수년, 히데요시의 온갖 작전에 참가했던 코이치로우는 1590년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小田原征伐]만은 결국 참가하지 못했다.

 이 시기. 쿄우토[京都]에 머물던 중 병을 얻어 중태에 빠졌다. 모친인 오나카[仲]는 이 즈음 종일위(從一位)가 되어 오오사카 성에 살며 78세가 되어 있었는데, 이 아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신사, 절에 토지를 기부하여 낫기를 기원하였다. 히데요시는 오다와라로 떠나기 앞서 가마를 돌려 코이치로우의 쿄우토 저택으로 향했고 특별히 방까지 들어가 병문안을 하였다.

 이 경우도 코이치로우는 형에 대하는 예를 버리는 일 없이, 병상을 치우고 의복을 새로이 하고는 기다렸다.

 

 이제는 그렇게 일어날 수 있느냐?”

 

 히데요시는 예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코이치로우의 몸을 걱정스럽게 보면서 말하였고, 이 동생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이제 힘든 것은 넘긴 듯 합니다

 

 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의 눈에도 히데요시를 걱정시킬 수 없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데요시도 그것을 느꼈다.

 

 오늘 출진한다면 길하다고 하더구나……”

 

 라고 말하면서 조심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는 불길해집니다

 

 고 코이치로우 쪽이 당황하여 곧바로 요시다 신사[吉田神社]의 신관을 불러 형의 운수를 고치고자 액막이[い]를 시켰다.

 히데요시가 저택을 떠날 때, 코이치로우는 시중드는 소년의 어깨를 빌려서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하였다.

 정말 날 위해서 많이 애써주는구나

 히데요시는 가마에서 코이치로우의 생애를 떠올리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 뒤 코이치로우의 상태가 다소 좋아졌다. 히데요시도 오다와라의 진중에서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모친인 오오만도코로(大政所)에게 편지로,

다이난고.
나아졌다고 하니
정말로 정말로 기쁘옵니다.
고 써서 보냈다.

 쿄우토에서 조금 나아졌기에 코이치로우는 거성인 야마토 코오리야마[郡山]로 돌아와 거기서 정양(靜養)하였다.

 

 오다와라 정벌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90 10월부터 코이치로우의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히데요시는 오오만도코로와 함께 여러 신사와 절에 쾌유의 기도를 시켰지만 눈에 띌 정도의 효험은 없어, 이 때문에 오히려 오오만도코로 쪽이 마음의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울 정도가 되었다. 히데요시는 모친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대규모 기도(祈禱)그 자신, 이런 종류의 것을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기로 하여, 조정(朝廷)에 부탁해서는 신사와 절에 쾌유기도의 칙사를 보내게 하였다. 신불(神佛)도 칙사가 오면 다소 긴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칙사는 9명이 선택되었다. 그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궁궐을 출발하여 두 개의 카모[賀茂][각주:9]를 시작으로 아타고[愛宕], 쿠라마[鞍馬], 타가[多賀], 리큐우하치만 궁[離宮八幡宮], 이와시미즈[水] 등 각각의 신을 모시는 곳에 가서 코이치로우를 위한 기도를 하였다. 하지만 병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이 해도 끝날 무렵, 히데요시는 차림을 가벼이 하고 코오리야마로 내려가 코이치로우를 병문안 하였다. 히데요시가 방까지 들어왔지만 코이치로우에게는 이미 머리를 들 수 있을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얼굴을 꿈틀대고 있을 뿐이었다. 형을 위해서 인사의 미소라도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무릎으로 다가가,

 

 어서 나으렴. 니가 없으면 토요토미 가문은 어찌하란 말이냐

 

 하고 격려하였다. 이 말이 코치이로우의 얼굴을 무참할 정도로 적셨다. 눈물이 끊임없이 넘쳐 흘렀다. 코이치로우에게 있어서는 히데요시의 이 말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형님은…”

 

 라고 듣기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듣기 위해서 입술로 귀를 가져갔다.

 

 새끼줄에다 발을 걸치고 오셨죠

 

 코이치로우는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히데요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래, 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의미가 아무래도 30년 전의 옛날에 히데요시가 키요스[清洲]에서 고향 나카무라[中村]에 처음으로 출세했다고 뻐기러 돌아왔을 때의 것을 - 코이치로우는 말하였던 것이구나 하고, 히데요시가 알아차린 것은 그 다음 달 23, 코이치로우가 죽은 다음이었다. 그 날. 코이치로우의 뇌리에는 고향의 그 드푸른 하늘이 걸쳐져 있었을 것이다.

 

 5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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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코우후쿠 사[興福寺] 등 나라의 절간에 있던 자들은,

 - 신불의 땅을 돌려주지 않았기에 벌이 내려진 것이다

 고 열심히 욕을 했다. 역시 나라[奈良]의 종교 귀족의 한 사람으로, [타몬인 일기[多聞院日記]]를 쓴 에이슌[英俊] 1 23일 항에,

다이나곤 히데나가 경이 죽었다.
금은을 조사해 보니, 황금은 56천매()가 넘었으며, 은은 4*4미터 크기의 방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아놓아 그 수는 셀 수 없다. 그 어마어마한 재산과 보물도 저 세상에는 가져가지 못했다. 정말로 목숨이 아쉬웠을 것이다.
천하디 천한 것.
이라고 썼다. 코이치로우는 탐욕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편이었다. 천한 것은 오히려 그가 살아있던 때, 갖은 이유를 다해서는 그에게서 금곡(金穀)을 계속 빼앗아 갔던 그들 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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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은 그로부터 6일 뒤. 코오리야마에서 행해졌다.

 상급귀족이나 여러 다이묘우들이 수없이 모였고, 죽음을 듣고 떼지어 모인 서민들의 머릿수만으로도 20만 명이라 한다. 참가했던 다이묘우 중 누구나가 이 다이나곤의 죽음으로 인해 토요토미 가문에 계속 내리쬐고 있던 햇살이 사라져 갑자기 싸늘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날부터 9년 후. 세키가하라[ヶ原]로 이 가문이 분열했을 때, 오오사카 성[大坂城]의 늙은이들은,

 -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하고 거의 넋두리처럼 서로들 소곤거렸다.

 

================================================================大和大納言、了=============================

  1. 텐노우[天皇]가 하사한 본성(本姓) 중 유명한 성 네 개이다. 각각 미나모토[源], 타이라[平], 후지와라[藤原], 타치바나[橘]를 말함. [본문으로]
  2. 연구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토요토미는 본성(本姓)이기에, 하시바라는 성(苗字)은 그대로였다는 사람도 있다. [본문으로]
  3. 남도북령(南都北嶺 - 북령은 히에이잔[比叡山], 남도는 코우후쿠 사[興福寺])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불교 사원이다. 공가(公家)의 중심 후지와라 씨[藤原氏]의 우지데라(氏寺)이다. [본문으로]
  4. 카스가 대사[春日大社]라고도 한다. 후지와라 씨[藤原氏]의 수호신(守護神)을 모신 신사(神社). [본문으로]
  5. 그래서 대화대납언(大和大納言). [본문으로]
  6. 다이죠우인은 셋케[摂家] 중 쿠죠우 가문[九条家]의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본문으로]
  7. 이치죠우인은 셋케[摂家] 중 코노에 가문[近衞家]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사족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 義昭]가 환속하기 전까지 있었던 곳이다. [본문으로]
  8.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사도 금광이 개발되지 않았다. 사도 금광은 히데요시가 죽은 1601년에 금맥이 발견되었다. [본문으로]
  9. 카미가모[上賀茂], 시모가모[下鴨]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싸잡아 카모 신사[賀茂神社]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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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5.12 1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야기에 비해 화수가 적어서 아쉽습니다만 대신 이번 화는 길군요. 잘 읽었습니다. ^^
    (히데나가가 살아있었으면 히데요시의 대륙정복 망상을 제어할 수 있었을지... --a)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2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엔 중간에서 끊을까 하다가 끊지 못하고 그만...

    음...어땠을까요... 오히려 조선 정벌군의 총사령관이 되어서 코니시나 카토우같이 분열시키는 일 없이 더 조선을 고생시켰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결국 승리의 조선이 되겠지만 말이죠)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2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쉽군요. 적어도 히데나가가 살아있었더라면 도요토미가는 반석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건데.
    쵸소카베 모토치카도 억울하긴 했을 것 같습니다. 기껏해서 시코쿠를 평정하기 일보직전에 있었는데, 토사만 가지라니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5.13 0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루토는 세계에서 조류가 빠르기로 3번 째라... 소용돌이... NARUTO의 우즈마키 나루토란 이름이 어떻게 붙여진 건지 이제야 알았네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3 0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공님//저는 히데츠구와 권력 암투를 벌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요 ^^
    모토치카에 대해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었겠죠...정말...

    박선생님//우즈마키 나루토라...그야말로 걸맞는 이름이군요. ^^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nagoomo BlogIcon 볼리바르 2008.05.13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히데나가가 죽으면서 도요토미 가문이 정권을 수립한 가문에 걸맞는 혈족을 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히데나가가 타계한 후에 추진된 조선침략등도 히데나가가 '없어서' 제멋대로 굴러간 것 같은 인상을 보여주죠(물론 자기주장 내세우지 않고 침공군 사령관이 되었을것도 같습니다만).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13 14: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서는 도요토미 정권의 주석이 되어 주었지만.. 죽고 난 빈자리가 워낙 커서인지 히데요시가 엇나간 측면이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괜히 혁신에서 어정쩡한 능력치로 전용 특기를 준게 아닐거라는 생각이..(아마 코에이에서도 시바센세 매냐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_-ㅎ)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3 1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리바르님//확실히 히데요리라는 후계자가 생기면서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히데츠구를 견제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형을 잘 보좌해서는 조선침략도 더 잘 보강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메엣찌님//그쵸...빈자리가 너무 컸죠. 히데나가는 그 게임 상의 얼굴이 너무 선해서...
    (근데 코에이에 시바 선생 매니아가 있었다면 카즈토요를 그렇게까지 낮추진 않았겠지 말입니다~ ^^)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taebong0721 BlogIcon 태봉이 2008.05.15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악하악..형.. 나의 히데나가는 그렇지 않다능...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5 2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대의 기운 혹은 흐름이란 사람의 이성을 흐뜨리는 법. 결국 조선침략을 하였든 아니면 아시카가 타다요시(足利直義)처럼 권력 다툼을 벌였을 지도 모르지.

.

 

 선천적인 인격자였을지도 모른다.

 코이치로우[小一郎]히데요시의 부름을 받은 것은, 형제의 첫 대면을 치른지 3년 후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織田家]에서 낮은 신분인 채로 스노마타[墨俣]의 요새() 수비에 임명 받았을 즈음이었다. 히데요시는 코이치로우뿐만 아니라 그 어미, 누나와 매형, 그리고 여동생인 아사히[朝日]도 요새로 불러 크게 대접하였다. 이 때 오나카[]는 처음으로 히데요시의 처인 네네[々]와도 대면하였고, 네네의 양갓집 동생인 아사노 야헤에 나가마사[野 弥兵衛 長政]와도 면식을 텄다. 말하자면 히데요시의 가족과 네네의 친정 쪽의 사람들과의 대면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그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접대하였고 곧이어 술자리가 끝나자,

 

 코이치로우는 이 요새에 남아라

 

 라고 이 아비 다른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나카는 될 수 있으면 막고 싶었지만 코이치로우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코이치로우는 이날부터 무사가 되었다. 히데요시는 이 동생을 별실로 불렀고 이어서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처남에 해당하는 아사노 나가마사도 불러 오게 한 후,

 

 둘이서 나를 도와라

 

 고 말했다. 옛날부터 무가(武家) 관습으로 가문의 당주가 대장이 되며, 그 동생이나 숙부가 곁에서 수족과 같은 부장(副將)이 되어 그것을 보좌하였. 말하자면 가문은 일족의 혈맹에 의해 성립되어 가는 이상 히데요시도 그런 형식을 취하고 싶었다.

 

 코이치로우는 언젠가는 내 대리인(名代)이 되어야 할 때도 올 것이다. 뭐든 잘 익혀두도록

 

 라고 말하며 이 즈음 이미 스노마타 성에 와서 히데요시의 휘하가 되어 있던 미노[美濃] 출신의 군사(軍師) 타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에게 코이치로우의 교육을 부탁했다. 한베에는 스노마타로 쳐들어 오는 적과 싸우는 실전 속에서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 주듯이 전투의 밀고 당김을 알려 주고 적 상태를 보는 법, 명령을 내리는 법, 사졸들을 돌보는 방법 등 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가르쳤다.


 코이치로우는 좋은 학생이었다. 언제나 조신한 태도로 그것을 들었고 전투 속에서 보고 배웠다. 실제로 지휘시켜 보자, 어떤 것이든 과하지 않고 부족함 없이 한베에가 가르친 대로 행했다. 그 이상의 재능은 없었지만, 성을 지키는 것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한베에는 가졌다.

 이것도 하나의 기량일 것이다

 고 한베에는 생각하였다. 한베에가 보건대, 독창성이 없기에 어떤 일에건 익숙해지는 것이 빨랐다. 성격이 이의(異意)를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시한대로의 것을 한다. 더구나 그 행함이 견실했다. 마치 성을 지키기 위해서 태어난 듯한 성격이었다.

 

 실제로 히데요시는 오다 군[織田]기후 성[岐阜城]을 공격할 때, 이 동생에게 진()을 지키게 하였다. 히데요시는 이 전투에서 하치스카 당[蜂須賀黨]의 경병(輕兵) 소수만을 이끌고 기후 성 뒷산에서 샛길을 타고 성 안으로 잠입하였다. 출발에 앞서 코이치로우에게 미리,

 

 내가 이끄는 부대는 성 안으로 은밀히 잠입하여 안에서부터 성문의 빗장을 풀겠다. 그 때 신호로 장대에 매단 표주박을 높게 쳐들 테니까 그걸 보면 곧바로 밖에서 문을 열고 성안으로 들어와 나와 합류하거라

 

 고 사전에 계략을 설명해 두었다. 만약 이 방법이 어긋났다면 히데요시는 성안에서 자멸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코이치로우는 타이밍에 맞추어 지시한대로의 것을 멋지게 성공하였다.

 

 좋은 동생분을 두셨군요

 

 전투가 끝난 뒤 한베에가 일부러 축복할 정도였다.

 한베에의 지론으로는 혈족군단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은 형 하나로 족했고, 동생이라는 것은 형보다 능력이 뛰어나서는 안 되었다. 뛰어나면 사졸은 자연히 동생에게 달라붙어 가문 통제가 흐트러질 것이다. 또한 동생은 욕심이 없어야 한다 는 것이 한베에의 생각이었다. 욕심이 많으면 형의 부하인 다른 부장(副將)들과 공명(功名)을 다투기 때문에 가문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두 가지 점에서 코이치로우라는 젊은이는 거기에 딱 알맞을 정도로정도가 좋았다.

 

 스노마타 즈음부터 십 수년이 흘러,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명령 받아 츄우고쿠[国]로 향하였을 때, 코이치로우는 이 군단의 선봉장으로써 전쟁터에 있었고 하리마[播磨]에서 빗츄우[備中]에 걸쳐 각지를 전전하며 무공을 세웠다. 그가 지휘하는 모습은 오다 군단의 다른 무장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기에 무장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크게 높아졌다.

 

 이 시기.

 타케나카 한베에는 현지에서 지병(持病)이 재발하여 자리에 누웠다. 코이치로우가 병문안을 하러 왔을 때에 한베에의 용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는 시중드는 소년에게 등을 받치게 해서는 몸을 일으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고 스노마타 때부터 순종적인 제자를 위해서 이미 가냘퍼진 숨을 쥐어 짰다.

 

 몸의 안전을 꾀하시길. 병법에서 궁극(窮極)의 극의(極意)…. 그것입니다.”

 

 한베에의 걱정은 코이치로우의 평판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오르면 자연히 마음도 거만해 진다. 오만해 져서는 다른 부장의 원한을 사게 되어 참언(讒言)을 치쿠젠[筑前](=히데요시)에게 할 수도 있다. 공을 세우면 그것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시길. 다른 무장들은 공명을 세워야 출세를 할 수 있지만 당신은 아무리 공이 없다고 하여도 치쿠젠님의 동생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오셨다

 

 고 한베에는 새삼 코이치로우의 이 십 수년간의 발자취를 칭찬하였다. 전혀 명성을 떨치려고 하지 않았고 공은 부하에게 돌렸으며, 히데요시의 대리인[名代]이 되어도 히데요시만을 세우고 자신의 존재를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

 

 잘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어떨지 모른다. 특히 이 하리마[播磨] 부근에서의 코이치로우의 뛰어난 활약과 평판은 그의 인격을 바꾸어 버릴지도 몰라, 한베에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림자처럼 되시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히데요시의 그림자가 되어 그것만을 만족하고 코이치로우 히데나가라는 존재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앞날을 생각하면 그걸 말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있으실 장소가 없다. 병법의 극의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기는 것에 있다. 아시겠습니까? 하고 한베에는 확실히 해 두었다.

 코이치로우는 역시 이론(異論)을 말하지 않고 순순히 끄덕이며,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고 눈물을 담아 감사를 전했다. 이로부터 2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베에는 숨을 거두었다. 자연히 위에 있는 것은 한베에가 이 세상에서 말한 최후의 말이 되었다.

 

 이 히데요시의 츄우고쿠[国] 공략이 한창일 때, 노부나가가 혼노우 사[本能寺])에서 죽었다. 히데요시는 쿄우[京]를 점령한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를 물리치기 위해서 빗츄우[備中]에서 군을 되돌려 우선 히메지 성[城]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북부 오우미[近江] 세 개의 군() 외에 하리마[播磨]도 하사 받아서는 이 히메지 성을 거성(居城)으로 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빗 속의 급행군을 마치고 입성해서는 곧바로 욕탕(浴湯)에 들어가, 욕실(浴室)에서 온갖 군령을 내렸다. 히데요시는 이 일전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듯이 성 안에 있던 금은이나 쌀을 모두 사졸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명령한 뒤,

 

 성을 지키는 것은 코이치로우가 해라~!”

 

 고 말했다. 코이치로우는 욕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것을 들었다.

 이것은 치욕이다

 라고 생각하여, 한베에가 죽은 뒤 히데요시의 모신(謀臣)의 자리에 앉아 있는 쿠로다 칸베에[田 官兵衛=죠스이[如水]]에게 따지며, 이 너무도 불명예스러운 자리 배치의 변경을 원했다.

 하고자 하는 주장은 당연할 것이다. 형인 히데요시가 아케치와의 일전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이 히메지 성은 적의 일격에 무너져 버릴 것이. 성 안에는 500명의 수비병밖에 없으며 더구나 농성에 필요한 병량(兵糧)은 나누어 주어서 없고, 또한 그 수비 임무라는 것이 하리마[播磨]의 여러 호족들에게 받은 인질의 감시와 히데요시의 첩인 통칭 히메지도노[路殿][각주:1]라고 불리는 여인의 보호 정도였다. 이 천하존망의 시기에 남자로서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쿠로다 칸베에는 코이치로우의 소매를 끌고서는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말씀을 하시는군요

 

 라고 말했다. 칸베에가 말하기를 이번 일전은 천하를 판가름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히데요시 휘하에 있는 무장들의 8할은 오다 가문에서 파견 나온 장수들로, 이번 일전에서 히데요시를 앞세워 자기 가운(家運)을 트이게 하기 위해서 안달들이 나있다. 치쿠젠님(=히데요시)의 운은 이런 그들의 활약으로 인해 트이는 것이기에, 지금 당장은 육친이시니 참으시길. 그들과 공을 다투면 안됩니다. 공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시라는 것이었다. 평소의 코이치로우였다면 온후한 얼굴로 끄덕이며 이 도리에 따랐을 것이지만,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이 온후한 남자라도 감정을 주체 못하고,

 

 나는 언제나 성이나 지켜야 한다. 형이 모든 것을 거는 이 때만큼은 이 코이치로우도 야마시로[山城]의 전쟁터에서 죽고 싶다!”

 

 고 큰소리로 외쳤다. 목소리만이 히데요시와 닮아 컸다. 그 목소리가 욕실에 있던 히데요시의 귀에도 달했다.


 코이치로우!!”

 

 하고 역시 큰소리로 외치며,

 

 다 들린다! 뭐 그런 생각이 다 있느냐! 니가 그런 말을 한다면 나가하마[長浜]는 어쩌란 말이냐? 나가하마는 지금 버린 성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쯤 어머니도 내 마누라도 시뻘건 불길 속에서 타 죽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고 소리질렀다.

 오우미 나가하마 성은 히데요시의 본성(本城)으로, 거기에 오나카도 네네도 살고 있었다. 적은 당연히 이 성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병가상사(兵家常事). 어머니도 네네도 아녀자지만 성벽 뒤에 몸을 기대고 지키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래도 니는 히메지의 수비가 불만인가? 아니면 히메지에서 죽을테냐?”

 

 히데요시도 역시 흥분했는지 말을 꼬여가며 되지도 않는 논리를 내세우며 무조건 호통만 치고 있을 뿐이다. 코이치로우는 이미 그 호통소리에 압도되어 풀이 죽었다.

 세상에 동생이라는 자리만큼 처량한 것이 없다

 고도 생각하였다. 형인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세상에 동생만큼 편리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매도(罵倒)당하면 - 다른 무장이라면 원한을 가지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론가 갈지도 모르지만, 동생이라면 그런 점에서 안심할 수 있어 좋았다. 지금도 코이치로우는 뚱뚱한 몸을 움츠리고서는 둥그런 얼굴도 들지 않고 그냥 떨고만 있었다.

 

 알겠느냐?”

 

 하고 히데요시가 못을 박자 코이치로우는 허리를 굽히며,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히데요시는 히메지를 출발, 곧이어 야마시로[山城] 야마자키(山崎)에서 아케치 군[明智軍]을 물리치고 오다 정권의 후계자로써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 후 코이치로우는 히데요시의 천하 패권을 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い][각주:2]에도 참가하였고, 코마키[小牧] 전투[각주:3]에도 종군하였다. 또한 킨키[近畿]소탕전(掃蕩戰)이라고 부를 수 있는 키슈우 정벌[紀州征伐]에 참가하여 평정 후, 히데요시에게서,

 

 코이치로우는 키슈우를 다스려라

 

 는 명령을 받았다. 키슈우는 노부나가 시대부터 골치를 썩여왔던 곳으로 지역 무사들의 기풍이 거칠고 독립심이 강하여, 센고쿠[戦国] 100여년 동안 그들은 연합하여 키이[紀伊]를 합의에 의해 운영하여, 한 번도 통일 다이묘우[大名]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잇코우 종[一向宗][각주:4]의 기반이 되는 땅으로 영민(領民)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만을 절대적인 존재로 하여 지상(地上)에 있는 현세의 교주(敎主)조차 존중하지 않는 풍토가 있었고, 또한 산에는 산적이 많았으며 해안의 항구는 대부분이 해적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히데요시가 보건대,

 키이[紀伊]는 코이치로우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다스려지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그들을 쓰다듬으며 가지고 있는 불평들을 끈기 있게 잘 들어주고, 계속해서 불공평을 없앤다는 점에서는, 많은 장수들이 있다고 하여도 코이치로우만이 할 수 있었다.

 

 이 동생은 그 기대에 응했다. 1585 3월 봉토(封土)를 받자마자 코사이가[賀][和歌山城]을 쌓아 신영주(新領主)의 위용을 나타내는 한편, 부하의 잘못에는 벌을 내려 법제를 철저히 하고, 민치에 힘을 썼기에 그토록 다스리기 어렵다고들 하던 이 지역의 호족들이 이상할 정도로 잘 따라 키노카와[川] 강 주변은 물론이거니와, 히데나가의 영지(領地)북으로는 이즈미[和泉]에서 남으로는 쿠마노[熊野]에 있는 70여 만석의 산야(山野)가 아주 평온해 졌다.


 코이치로우에게는 기묘한 품성과 재능이 있구나

 하고 그것을 명령했던 히데요시가 제일 먼저 놀랐다. 히데요시가 보건대 코이치로우는 천성의 조정가(調整家)이며 민정가(民政家)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히데요시를 또 기쁘게 한 것은 좆병진들이 많은 히데요시의 혈연 중에서도 이 코이치로우만은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걸출하다는 것이었다. 장래에 그 기량과 인격을 보건대 필시 히데요시 정권의 (柱石)이 되어 줄 것이다.

이 글은 소설입니다.


  1.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카네[織田 信包]의 딸인 히메지도노[姫路殿]가 히데요시의 측실이 된 것은 노부나가가 죽은 다음의 일로(내가 알기로는 노부나가의 셋째 노부타카[信孝]와 히데요시가 싸울 즈음 노부카네가 히데요시에게 인질로 받쳤다는 설이다). 아무리 히데요시가 유력 무장이라도 노부나가의 조카를 측실로 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오다 가문 서열 1위인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와의 싸움. [본문으로]
  3. 보통 코마키-나가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の戦い]라고 한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와 오와리 근방에서 싸운 전투. [본문으로]
  4. 정확히 설명하면 복잡하니 여기서는 혼간지[本願寺] 세력을 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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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0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케나카 시게하루가 하시바 히데나가에게 하는 말은 마치 자신이 그래 온 것 같이 해 달라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자신의 한을 그대로 물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사노 나가마사라. 그러고 보니 얘도 하시바 히데요시의 육친으로써 히데나가보다도 더 숨어서 일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히데요시의 일문중 중에서 이 히데나가랑 나가마사 빼면 쓸 만한 사람이 없긴 없네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04 14: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까 나가하마 성을 공격한 것이 다케다 모토아키랑 교고쿠 다카쓰구군요. 좀 중량 있는 무장을 여기다 배치했으면 어땠을까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5.04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김이 약간 빠졌습니다. ^^a

    신사본론 님의 답글을 읽고 아사노 나가마사는 히데요시와 어떤 친척 관계인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 봤는데, 위키의 친족표를 보니 데릴사위와 양녀 관계가 섞여서 뭔가 복잡하더군요. --a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04 1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사본론님//나가마사 아들 있잖습니까~
    (히데츠구도 나름 괜찮았다~ 는 글들이 보이더군요... 저도 실은 그런 쪽입니다 ^^; )
    나가하마가 오우미다 보니 거기의 슈고였던 쿄우고쿠 씨는 제법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
    뭐 결과가 그렇다 보니 뭐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말입니다.

    맹꽁서당님//에... 끝에 요약글 말씀이십니까?
    달까 말까 하다가... 일본에서도 시바 선생의 글을 역사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고 하다 보니 달게 되었습니다.(^^ 다음 부터 비슷한 경우가 생길시에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5.04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아니요... 그래도 소설도 읽고 정확한 역사적 지식도 얻는 것이 금상첨화겠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면 정확한 지식을 알게되는 기회가 잘 없는지라... 다음에도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04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젊은이-라고 평한 히데나가가 다케나카 한베에보다 4살이나 더 많았으니..;;

    그런데 히데나가 보면 볼 수록 삼국지의 노숙이 떠오르는군요;; 참 온화한 사람의 내면에서도 그 사람 나름대로 고충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걸 보여줄 수 있는게 소설의 묘미 아닐까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0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맹꽁서당님//타이밍이나 흐름봐서 적당히 하겠습니다. ^^

    다메엣찌님//아~ 그런가요?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요 ^^;
    그러고보니 말씀대로 형주의 관우와 자기 주군을 오가며 고뇌하는 모습과 겹치는 부분도 있군요.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5.06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실제 노숙은 문무를 겸전한 상당한 터프가이입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06 2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그렇군요!!! 저는 삼국지연의의 노숙말고는 모르다 보니.. ^^;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07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의 말고는 정사는 촉서 번역된거 밖에 안읽어봐서(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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