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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가이나오유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2.09 살생관백(殺生関白)-7- (10)
  2. 2007.11.30 살생관백(殺生関白)-6- (5)

七.

 이 즈음, 쥬라쿠테이(聚楽第)를 방문하는 다이묘우(大名)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눈치 빠르기로 소문난
다테 마사무네(伊達 政宗)같은 자는 예전 가장 친한 척하며 한때는 10일에 한번 정도 방문했던 인물이었지만 발길을 끊었으며, 히데츠구에게 황금 100매를 빌렸던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 忠興)는 그로 인해 서로 사이가 좋다는 의심을 사는 것이 두려워 그 돈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결국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에게 돈을 빌려 히데츠구에게 갚았다. 이에야스는 그 후 에도(江戸)로 돌아갈 일이 있었는데,쿄우(京)를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쿄우(京)에 있던 세자(世子) 히데타다(秀忠)에게,

 “타이코우(太閤=히데요시)와 칸파쿠(関白=히데츠구)가 싸우게 되면 무조건 타이코우에게 붙어라. 타이코우가 만에 하나라도 죽는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오오사카(大坂)에 가서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각주:1])를 호위해라”

 는 말을 남겼다.
 이미 세상이 그렇게까지 과열되기 시작한 이상 히데츠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쿠마가이(熊谷)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정에 3000매의 백은(白銀)을
진납(進納)하였다. 장래 일의 경과에 따라 히데요시를 쓰러트렸을 경우 신정권을 곧바로 승인 받고자 위함이었다. 1595년 7월 3일이었다. 바로 그날로 이 비밀이 후시미(伏見)로 새었다.

 히데요시는 결국 결심하여 다섯 명의 힐문사(詰問使)를 파견하였다.
 미야베 젠쇼우보우(宮部 善祥坊),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마에다 겡이(前田玄以), 마시타 나가모리(増田 長盛), 토미타 토모노부(富田 知信)였다.
 히데츠구는
인견(引見)하여, [모반이라니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모반할 생각은 없다]라는 뜻의 서약서를 써 건넸다. 백은을 진납한지 이틀째였다.

 다섯 명은 후시미(伏見)로 돌아와 히데요시에게 보고하였다. 그로부터 3일째 되던 날 다른 사자들이 쥬라쿠테이(聚楽第)로 파견되었다. 예전에 히데츠구의 숙로(宿老)였던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 一氏), 호리오 요시하루(堀尾 吉晴),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 一豊), 거기에 먼젓번의 미야베, 마에다 겡이를 포함한 다섯명이었다.

 “그런 뜬소문이 떠돌아 서로 의심이 생긴 것은 요컨대 서로 직접 이야기를 나누실 기회가 없어서일 것입니다. 후시미(伏見)까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를 죽음의 사자라고 생각한 히데츠구는 끝까지 거부하며 승낙하지 않았다. 그들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시미(伏見)에서 다른 이가 와서 별실에서
내알(內謁)을 청했다.
 비구니인 코우조우스(孝蔵主)라는 노녀(老女)였다. 키타노만도코로에게 가장 신임을 받고 있는
여관(女官)으로 히데츠구는 어릴 때부터 이 비구니와는 친했다.

 “이 비구니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라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타이코우님은 기분 좋으십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하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계시지는 않사옵니다. 아무 염려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고 하였다. 히데츠구는 숙로인 다이묘우(大名)들은 경계하였지만 이 비구니에게는 낚였다. 히데요시의 계략은 성공했다. 뒷문으로 들어온 이 비구니 쪽이 실은 죽음의 사자였다.

 “그런가? 그럼 가보세”

 라고 하며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측근인 쿠마가이들이 막을 틈도 없이 히데츠구는 비구니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히데요시에겐 손자뻘인 세 명의 아기들을 앞세우고 호위는 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오후 조금 지나 쥬라쿠테이(聚楽第)를 출발하여 타케다(竹田) 가도를 이용하였고 오후 3시 즈음에는 후시미에 도착했다. 후시미의 거리에서는 소란이 일어나 가재도구를 들고서 도망치는 이들도 많았다. 떠도는 소문에 히데츠구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온다고 한다. 히데츠구는 생각치도 못했던 이런 반응에 놀랐다.
 ‘내가…… 내가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인가?”

 “우선 오시는 길에서 맞은 먼지를 떨구시길”

 이라며 휴식소로 지정되었다는 키노시타 요시타카(木下 吉隆)의 저택으로 안내 받았다. 그러나 문에 들어서자 마자 은밀하고 재빨리 모든 문이 닫혔다. 이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곧이어 사자가 성(城)에서 와, 만날 필요 없다며 그대로 코우야(高野)산(山)에 가라고 하였다. 히데츠구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승복(僧服)으로 갈아입고 후시미를 출발하여 이틀 후 코우야산(山)에 올라가 세이쥬쿠 사(青宿寺)에 도착하였다. 다섯 날째에 산기슭에서 타이코우 히데요시의 사자들이 각각 부하들을 이끌고 올라왔다. 정사(正使)는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라 한다.

 “틀림없이 마사노리인가?”

 히데츠구는 확인을 위해서 물어보았다.

 “틀림없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을 깨달았다. 마사노리와는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안 좋은 채로 살아왔다. 그 마사노리가 이런 때 사자로 선정된 것을 보면 말로 듣지 않아도 명료했다. 죽음이다.

 역시 죽음을 언도 받았다.
 이 순간부터 히데츠구는 지금까지의 이 남자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 죽음의 명령을 받았을 때 히데츠구는 자신의 문서담당관인 승려 사이도우(西堂)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거의 이겨갈 때 즈음 마사노리의 명령을 받은 히데츠구의 측근 사사키베 아와지노카미(雀部 淡路守)가 와서는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히데츠구에게 보고했다. 히데츠구는 바둑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겼다”

 고 뜬금없는 말을 하였다. 바둑이었다.

 “모두들 나중에 증거로 봐 두라고. 내가 이겼다”

 과연 주위가 그것을 보자 히데츠구가 이긴 바둑이었다. 이것 자체가 기묘했다. 여태까지 히데츠구가 사이도우에게 바둑으로 이겨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날 이때가 되어서야 이긴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기뻤는지 짝사랑을 앞에 둔 소년과 같이 볼을 붉히며,

 “지금부터 나는 배를 가르러 가지만 이 바둑판은 흩뜨려놓지 말게. 조심히 방으로 옮겨라. 모두 나중에 돌을 놓은 것을 잘들 살펴보게”

 라고 말하곤 사사키베 아와지노카미를 향해,

 “유서를 쓰고 싶군. 허락되는지를 알아봐 주게”

 라 말하였다. 그것이 허용되었다.

 히데츠구는 자신의 친아비와 정실, 시첩(侍妾) 일동들에게 간결한 유서 한 통씩 세 통을 썼다. 붓놀림이 경쾌했다. 다 쓰고 난 후 붓을 던졌다. 던지고 난 후 승려 사이도우를 향해서,

 “내 일생은 타이코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죽음도 또한 그렇다.”

 고 말했다. 자신의 생애가 하나하나 타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묘함을, 이 남자는 마음속 깊이 되돌아 본 것일 것이다.

 “이제 나는 죽는다. 이것도 타이코우의 뜻이다. 그렇지만 내가 내 배를 가르는 칼은 내 손안에 있다.”

 요컨대 배만은 자신이 가른다, 그것만은 자기자신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사이도우에게,

 “자네는 중일세. 죽을 필요는 없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이도우는,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제 맘대로 함께하겠습니다”

 라며 자신도 배를 가를 준비를 하였다. 사이도우는 참고로 코우조우스(孝蔵主)의 조카이다. 숙모의 거짓말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내심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히데츠구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본 후, 곧이어 할복의 자리에 앉았다.
 착각을 했는지 이 남자는 동쪽을 향했다. 불법에 이르기를 부처는
서방십만억토(西方十萬億土)에 계시다고 한다. 서쪽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작법(作法)에 어긋납니다. 서쪽을 향하십시오”

 라고 사이도우가 충고를 하자 히데츠구는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다시 한번 충고를 하니,

 “부처님은 시방(十方)에 계시다고도 한다. 방위에 연연하진 않겠네”

 라고 말하였다. 적어도 생애의 마지막 정도는 자기 맘대로 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카이샤쿠(介錯)의 칼이 번쩍이며 시체는 작법이 틀린 채로 동쪽을 향해서 쓰러졌다.
 사이도우는 그것을 보고,

 “전하는…… 방향을…… 잘못 아시고 계시다. 이것이 묘하다. 전하의 생애도 이랬던 것은 아닐까?”

 라고 말하였다.
 사이도우는 서쪽을 향했고 서쪽을 향해서 목이 떨어졌다. 자연히 시체는 히데츠구와는 반대 방향이 되었다. 사이도우가 마지막에 중얼거린 위에 말이 히데츠구의 생애를 상징한 말인 듯이 항간에 전해졌다.
 사실, 히데츠구는 태어난 연(縁)이 잘못된 것이다.

*********************************************************************************************************

 히데츠구가 죽은 뒤 그 처첩과 그녀들이 낳은 아이는 성별의 구분 없이 전부 사형당했다.
 
형장(刑場)은 쿄우(京)의 산죠우 강변(三条河原)이었다.
 60 평방미터 사방에
(濠)를 파고 거기에 울타리를 둘러쳤고 형을 집행하는 천인(賤人)들에게 갑옷을 입히고 활과 화살을 들려주었다.

 집행된 것은 8월 2일.
 쥬라쿠테이(聚楽第)의 남문(南門)부터 백색의
수의(壽衣)를 입은 그녀들을 몰아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천인들이 물건이라도 던지듯이 그들을 수레에 집어넣었고 한 대에 2~3명씩 태워서는 산죠우 강변으로 옮겼다.
 형장의 남쪽 구석에
토단(土壇)이 세워져 머리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히데츠구의 머리이었다.

 “저걸 봐라~! 저걸 보라구~!”

 라고 천인들은 소리 질렀고 지르면서 그녀들을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었다.
 울타리가 닫히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그녀들을 천인들이 쫓아가서 찌르고 잡아서는 베었다. 천인이 2~3살 먹은 어린 귀족을 잡아서는 모친의 눈 앞에서 강아지라도 죽이듯이 죽였고 그것을 보고 기절한 모친을 다른 천인이 안아 세워서는 목을 쳤다.

 이치노다이(一ノ台)도 그 딸인 미야노카타(宮ノ方)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녀는 사세구(辭世句)를 준비해 놓았다. 딸의 사세구는 이렇다.

 모녀의 헤어짐을 듣고 우울했지만, 같은 길을 가니 기쁘구나
 憂きはただ親子の別れと聞きしかど同じ道にし行くぞうれしき
 형은 공개로 행해졌다.
 수만의 구경꾼들이 형장을 에워쌌고 특히 장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죠우 다리에는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이 사형이 무엇 때문에 행해졌고,천하에 대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공개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곧이어 처형은 종료되었고 원래부터 강변 한 켠에 파여져 있던 구덩이 속에 그들의 시체와 히데츠구의 머리가 함께 던져졌다. 흙이 덮이고, 그 무덤 위에 석탑이 세워졌다.
 악역을 저지른 히데츠구의 무덤[秀次悪逆塚]
 이라고 그 비석에는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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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의 친아비인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三好 武蔵守 一路)는 영지(領地)와 위관(位官)을 몰수당해 원래의 신분인 평민으로 떨어져 사누키(讃岐)로 유배당했다.

 “뭔 일이래……”

 이 야스케는 사누키(讃岐)의 유배지에서 자신이 먹을 땅을 괭이질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뭔 일인지... 이 친아비도 또한 자기 일생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음에 틀림없다.

    ======================================================殺生関白,了====================

  1. 히데요시의 정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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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요시 카즈미치야 뭐.. 본래의 운명으로 돌아갔으니 담담했을듯, 히데츠구도 마지막되니 제법 용자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군요...

    그나저나 히데요시 친 누님은 어떻게 되었을련지.. 측근인 쿠마가이 녀석 운명도 궁금하고..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쪼록 수고하셨습니다. 대조해가며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할듯..(정말 소설은 읽으려니 ㅎㄷㄷ라..)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9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대조는 하지 말아주세요... 시바 선생의 필력을 살릴 수 없어서 여러 번 고생한 끝에 제멋대로 갔다붙인 곳이 많아서리..^^;

    참고로... 히데요시의 친누나이자 히데츠구의 어미인 즈이류우인 닛슈(瑞龍院 日秀)는 히데츠구가 죽은 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절 즈이류우인(瑞龍)원(院)을 세워 비구니 호인 닛슈(日秀)를 칭하며, 히데요시의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北政所)가 죽은 다음 해인 1625년 93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합니다... 친누나이니까 살려 주었나 보네요.

    쿠마가이 역시 연좌되어 할복을 명령받아 니손(二尊)원(院)에서 배를 갈랐다고 합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원서는 읽을 엄두도 안나서..(ㅎㅎ..)

    키타노만도코로보다 장수했다니..(히데요시보다 10여세 연하로 알고있는데..) 어지간한 장수군요...

    다시 읽어보니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소심함이 한층 엿보이는군요.. (어이, 아들내미한테는 한때는 이에야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며?ㅋㅋ..)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0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이야기는 조금 의심이 가는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나)
    몇 몇 책에서는 히데츠구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별일 아니었는데 히데요시 측에서 땡깡을 부렸다는 말도 있고, 또한 이에야스한테 돈을 빌렸다는 것도 조금... 왜냐면 그의 장인 마에다 토시이에의 경우 돈을 잘 빌려주기로 유명했거든요.(뭐 하필이면 그 때 토시이에에게 돈이 없었다면 그 뿐이지만 말입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10 1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시이에 돈 잘빌려주는 건 유명하지요(이아저씨는 꽃의 케이지에서의 주판영감이미지가 자꾸 떠올라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P.S. 타다오키 처 가라샤는 아케치 미쓰히데 딸내미로 알고 있는데.. 혈연이 참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에휴...어려워서 원;)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0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힘이 있는 가문끼리 만세에 걸쳐 좋은 게 좋은 것지~ 라면서 겹사돈 맺는 거야 어느 시대 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가라샤...하면 전 타다오키의 의처증이 우선 생각나더군요... ^^ 쪼잔한 녀석~ 하면서..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kelt200 BlogIcon 깃쨩 2007.12.11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살생관백 다음 챕터 대머리쥐의 일족 얘기도 있는지 궁금하군요. 고맙습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1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위에서 다섯번째 리플... 타다오키의 장인 마에다 토시이에라 했는데, 사돈이군요... ^^; 이 실수는 자주 하는군요...--;

    깃쨩님//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킨고 츄우나곤(金吾中納言) ->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 秀秋)를 다룬 단편.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 히데요시의 정실 '오네'를 다룬 단편
    야마토 다이나곤(大和 大納言) -> 토요토미노 히데나가(豊臣 秀長)를 다룬 단편
    스루가고젠(駿河御前) -> 히데요시의 막내 여동생을 다룬 단편.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둘째 아들로, 히데요시의 양자가 된 인물
    하치죠우노미야(八条宮) -> 황족으로 히데요시의 유자(猶子)가 된 인물
    요도도노(淀殿)와 그 아들 -> 히데요시의 측실 요도도노와 히데요리(秀頼)의 이야기......

    가 남아 있으며... 매주 일요일 업데이트 할 예정(이라고 쓰고 '어긋나기 위해 계획을 이르는 말'이라고 해석된다....)입니다.

  10.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처형장면이 너무나 비참하군요. 처자들이 뭔 죄가 있다고 죽여도 곱게 죽이지 어찌 저리 잔인하게 죽인건지... 이 때 이미 히데요시 정권은 끝난것 같습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그들의 명복을 빕니다

六.

 “이리 오시게. 술을 드리겠네”

 상냥한 목소리로 손을 잡았다. 불쌍한 장님이 고개를 들어,

 “어이쿠~ 이렇게 친절할 수가! 어디에 뉘신감?”

 라고 희희거리며 따라왔지만 얼마 안가 히데츠구는 허리를 돌리며 장님의 어깻죽지부터 오른팔을 베어 떨어뜨렸다. 지금까지 히데츠구의 경험상 보통 이런 충격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절하였다. 하지만 이 장님의 심리 세계는 어딘가 틀린지 이 순간 삼 척이나 껑충 뛰며 소리 높여,

 “어디 사람 없소~! 나쁜 놈이 사람을 죽이려 하오~ 사람들아 저 놈을 쫓으소~ 나를 구해주소~”

 하고 느릿느릿 그러나 침착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놈은 특이한 맛을 하고 있군”

 히데츠구가 말하자 이런 종류의 살생에는 항상 따라붙으며 히데츠구의 비위를 맞추는 쿠마가이 다이젠노스케 나오유키(熊谷 大善亮 直之)라는 젊은 다이묘우(大名)가 히데츠구의 흥을 더 돋구기 위해서 장님에게 다가가,

 “네 놈에게는 이제 팔이 없지. 피도 둑이 터진 것 같이 흐르고 있지”

 라고 현실을 가르쳐주어 알면 괴로워하며 기절할 거라 생각하여 그 반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장님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을 하였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목소리도 이외로 낮추어,

 “그래 알겠다. 그랬었군”

 하고 중얼거렸다.

 “이 나쁜 놈은 평소 이 부근에 나타난다는 살생 칸파쿠(殺生 関白)[각주:1]인가? 반드시 그럴 거다.”

 히데츠구를 호종하고 있는 쿠마가이는 - 쿠마가이 지로우 나오자네(熊谷次郎 直実 – 하단 역자주)의 후손이라는 인물이다. 가문은 한 때 무로마치 바쿠후(室町 幕府)에서는 후다이(譜代[각주:2])의 명문가로 대대로 쿄우(京)에 살며, 지금은 와카사(若狭) 이사키(井崎)의 성주(城主)이기도 했다. 잔머리가 잘 돌아갔던 만큼 히데츠구가 어떤 점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 상태라도 알려주는 듯이,

 “네 놈은 눈이 보이지 않지. 더구나 이제는 팔도 없지. 이렇게 장애가 둘로 늘었지. 그래도 네 놈은 살고 싶은지?”

 어떤 심경이냐? 라는 것이었다. 히데츠구도 쿠마가이의 어깨너머로 목을 쭉 내밀고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장님이 뭐라 하는지를 기다렸다.

 “살고 싶지 않아!”

 라고 소리치는 것이 장님의 회답이었다.

 “이 이상 이런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냥 죽여라! 이 목을 베란 말이다! 봐라!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낌새는 동네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여 내 목을 베라! 네 놈의 사악한 이름을 후세에 남겨라! 인과응보를 기다려라!”

 라고 외쳤다. 이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에 히데츠구는 자아(自我)를 잃고 흥분하여 칼을 휘둘렀지만 장님의 팔을 자를 때 칼날에 사람 기름기가 들러붙었는지 베어지질 않아 어깨뼈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다. 이 때문에 장님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굴렀다. 그러자 더욱 더 히데츠구의 손이 폭주하였다.
 칼로 얼굴을 치고 다리를 베고 배를 찌르자, 이빨이 날라가고 손이 잘리고 손가락이 떨어져 더 이상 사람의 형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잘리고 나서야, 겨우 이 장님의 숨을 끊을 수 있었다.
 길거리로 나와 사람 죽이는 것에 재미가 들린 이래, 이렇게 손이 간 작업은 없었다.

 “..이런...놈일...수록.. 재..재미...가 없군”

 히데츠구는 헉헉대며 말했지만 피로로 다리가 풀려 호종하던 사람이 뒤에서 지탱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귀족들에게~~”

 술을 들이키며,

 “이 정도로 용기가 있을 턱이 없지”

 라고 옆에서 술을 따르던 부인에게 말했다.
 이 부인은 키쿠테이 다이나곤 하루스에(菊亭 大納言 晴季)의 딸로 '이치노다이(一ノ台)'라 불리고 있었다. 정실(正室)이었던 이케다(池田)씨(氏)가 죽었기 때문에 히데츠구는 하루스에에게 강탈하다시피 이 부인을 뺏어와 근래에 이를 정실로 삼았다.
 이치노다이의 나이는 히데츠구보다 열살 정도 많았지만 그 미모는 쿄우토(京都)에서 으뜸이었다. 한번 다른 곳에 시집을 갔었고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다. 아직 11살의 꼬꼬마에 지나지 않았지만,히데츠구는 이 딸까지 데리고 와서는 ‘오미야노카타(お宮ノ方)’라 부르며 첩으로 삼아 모녀와 함께 3P를 하였다.
 사람들은,

“모녀병간(母女倂姦)이라니 인륜(人倫)이 아니다. 축생도(畜生道)다.”

 라 소근거렸으며, 아비인 하루스에도 이 모녀병간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의 어긋남에 울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히데츠구가 자신의 무용을 이 이치노다이에게 자랑한 것은 그녀가 귀족(公家)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귀족 놈들은 문(文)을 비틀고 옛 일을 흥얼거리며 예식(禮式)에는 밝을 지 몰라도, 이 정도의 무(武)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지. 모두 칼이나 피를 보면 벌벌 떨 놈들뿐이다”

 라 말했다. 이치노다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뭐라고 말을 해봐라!”

 하고 히데츠구는 항상 이 입을 열지 않는 모녀에게 말을 하게하고자 했지만, 그녀들은 쥬라쿠테이(聚楽第)에 와서 산지 일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태까지 히데츠구 앞에서는 목소리라는 것을 낸 적이 없었다.

 참고로 히데츠구 처첩의 수는 양아버지 히데요시가 제한했던 수를 훨씬 상회하였고 이 즈음에는 30명이 넘어 히데츠구라고 해도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혀가며 세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아무래도 나사가 빠졌나 보군’
 하고 히데츠구에게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게 권고했던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도 이 벼락치기 칸파쿠가 불과 1~2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한 것을 보고 후회보다는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히타치노스케보다 히데요시 쪽이 훨씬 마고시치로우를 알고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렇게 쪼잔히 나사를 쉴 세 없이 조여야만 그제서야 이 인물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었다. 이 나사가 풀릴 대로 풀려 자기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남자는, 예를 들면 이런 일도 하였다.
 마루모 후신사이(丸毛 不心斎)라는 늙은 신하의 부인을 보고서는, 노파는 어떤 몸을 하고 있을까라는 흥미를 가져 억지로 데리고 와서는 첩으로 삼았다. ‘아즈마(東)’라고 부르며, 나이는 61살이었다.
 50대는 없었지만 43세의 여자는 있었다. 또한 오카모토 히코사부로우(岡本 彦三郎)라는 가신(家臣)에게 모친이 있어, 히데츠구는 어느 날 모친이라는 것 즉 그런 종류의 여자가 필요하다며 이도 첩으로 삼았다. ‘카우(かう)’라 불렀으며 38살이다.
 여성들을 나이별로 나누면 10대가 11명, 30대가 4명, 40대가 1명, 60대가 1명으로 나머지는 20대였다.
모가미 요시아키(最上 義光)의 딸 ‘오이마(お伊万)’와 같은 다이묘우(大名)의 딸도 있었으며, 거지 출신의 오타케(お竹)라는 이도 있었다. 이런 여성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모아져 쥬라쿠테이(聚楽第)라는 새장 속에서 사육되었다.[각주:3]

 히데요시는 쿄우토(京都)에서 펼쳐지는 히데츠구의 망나니짓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신들은 나중을 생각하여 몸 사리며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랐다. 단지 걱정하는 것이라고은 자기 피를 이은 히데요리의 미래뿐이었다. 히데요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국 생각을 정하여 히데츠구를 후시미(伏見)로 불렀다.

 “그 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일본을 다섯 개로 나누고자 한다”

 라고 히데요시는 제안했다.

 “이렇게 하자. 그 쪽에게 그 중 네 개까지는 주마. 나머지 하나를 히데요리에게 주면 어떻겠나?

 고 말했다. 말하면서 히데츠구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이미 후계 상속을 한 뒤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말하기도 뭐한 것도 있어, 그것을 이래저래 염려하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제안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데츠구의 표정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히데츠구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 둔하고 무신경한, 어느 쪽인가 하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는 상판때기를 보고 있자니
자기 혼자만 기를 쓰고 있는 듯한 모습에 오히려 우스웠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라기보다 히데요시는 히데츠구의 동정에 기대고자 하는 자신을 보았다. 히데요시의 심정은 이젠 애원에 가까웠다.
 늙어서 아이를 얻은 이 노인이 불쌍하지도 않냐? 나는 이렇게까지 고뇌하고 있다. 그 기분을 읽어다오~ 읽었다면 칸파쿠를
사직(辭職)하고, 양자(養子)와 후계자를 관두겠다는 말을 해다오~ 라고 히데요시는 은근슬쩍 기대했다.
 하지만 히데츠구의 감수성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대답은 했다.

 “아버님이 편하신대로”

 라고 말하였지만 그 상판때기에는 표정이 없었고 입술 끝엔 토라진 기색까지 담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그렇게 보았다. 아니 오히려 억지로라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심경에 히데요시는 몰리고 있었다.
 ‘천하는 누구의 천하더냐!’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참았다. 그 분노를, 히데요시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훈계로 바꾸었다. 하지만 훈계를 듣는 표정과 태도조차 히데츠구는 어딘가 이전의 마고시치로우같지는 않았다. 마고시치로우였을 때에는 아직 작은 새와 같이 두려움에 떠는 부분이라도 있어 그런 면에서 간신히 귀여운 맛이 있었던 듯했다.
 ‘이 녀석 변했군’
 히데요시는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다. 자신이 죽은 뒤 히데요리를 보호해 줄 인물은 이 히데츠구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이제는 히데요시 쪽이야말로 애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후, 히데요시는 이 일에 대해서 또 생각하여 하나의 꾀를 생각해내었다.
 히데츠구에게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를 장래에 히데요리의 부인으로 하는 것이었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의 배후자를 지금 정한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히데요시는 거기에 매달렸다. 그런 끈이라도 이어 놓으면 히데츠구는 장래 히데요리에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급사(急使)를 보내려 하였다.

 “음…… 그게 좀…… 서두르실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측근은 말했다. 무엇보다 먼 장래의 일이다. 측근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러나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빨리 그리해두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 즈음 히데츠구는 이즈(伊豆)의 아타미(熱海)에 온천 치료를 하러 동쪽으로 가 있어 쿄우토(京都)에는 없었다. 히데츠구에게는 두통이 있었다. 온천에서 그걸 치료하고자 하는 여행이었다.
 아타미에서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급사를 맞이하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편지를 펼치자 기껏해야 그 정도의 일이었다.

 “알겠다고 말씀 드려라”

 히데츠구는 사자(使者)에게 그렇게 답했다. 사자가 후시미(伏見)로 돌아와 히데요시에게 보고했다.

 “칸파쿠는 그렇게만 말했을 뿐인가?”

 히데요시는 자신의 불안과 의욕에 비해 상대가 너무도 냉정한 것에 불만과 불쾌감까지 느꼈다. 사직한다 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히데요리가 성인이 된 후에는 천하를 물려주겠다 라고 말만이라도 이 노인을 안심시키고 기쁘게 해 줄듯한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정도 없고 달래려는 마음 조차도 없다.
 ‘
축생이다’
 고 생각했다. 그 때 키쿠테이 다이나곤이 후시미(伏見)에 와서는 히데츠구의 모녀병간의 사실을 눈물 섞어 호소하였다.
 ‘설마 그 마고시치로우 녀석이?’
 그렇게까지 막되먹은 일을 할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히데츠구의 사생활을 조사시켰다. 조사를 담당했던 것은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와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였다.

 역시 마고시치로우는 사람이 변해 있었다.
 칸파쿠 전하의 놀랄만한 행태가 이때 하나도 빠짐없이 한꺼번에 히데요시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기절할 정도로 놀라 히데요시나 되는 인물이 얼마 동안 감정의 정리가 되지 않아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한 말이,

 “저건 사람이 아니다”

 였다.

 “축생이다”

 고 말했다. 이 때부터 저 단어를 사용하여 히데츠구를 그렇게 정의(定義)했다. 그렇게 정의하는 것 말고는 토요토미 정권을 구할 길이 없었다. 이미 히데츠구의 악행으로 인해 쿄우토(京都)의 지도층이나 서민들이 가진 토요토미 정권의 인기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사람들은 히데츠구를 미워하기보다 그 배후에 있는 토요토미 가문을 원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토요토미 가문과는 별개의 존재이다는 것 말고는 그 원망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축생이다. 그 증거는 모녀병간이다고 - 히데요시는 그 이론을 명쾌히 이시다와 나츠카에게 고했다.

 이윽고 온천 치료의 여행에서 돌아온 히데츠구는 그 사태를 알게 되었다. 쿄우토(京都)에 머물러 있던 측근들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알 수 없군”

 그가 알고 있던 것은 자신의 딸을 먼 장래에 히데요리와 결혼시킨다는 기껏해야 그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발전한 것인가? 측근들은 아무래도 모녀병간 하나만은 말하기 그래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부노쇼우(冶部少=미츠나리(三成))들이, 참언(讒言)한 것이겠지요”

 라고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히타치노스케는 미츠나리 참언설을 믿고 있었다. 만약 타이코우(太閤)가 죽어 히데츠구의 시대가 되면, 타이코우 소속의 미츠나리들은 권세를 잃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그들의 정적(政敵)이었던 자신이 권세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여 빨리 히데츠구를 실각시켜 갓난아기인 히데요리의 후계권을 확립시켜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리 된 것은 미츠나리 등 타이코우 측근들의 음모다라고 히타치노스케는 말했다.

 히데츠구가 후시미(伏見) 방면의 소문을 살피게 하고 보니 사태는 예상외로 심각했다. 죽음을 언도 받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살해당하는 것인가”

 이른 밤,

 “그리 되겠지요”

 라는 예측을 힘주어 말한 것이 쿠마가이 다이젠노스케(나오유키 – 直之)였다. 그는 히데요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여 넌지시 그리고 자주 경계해야 한다고 히데츠구에게 말했던 것이다.

 “오히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 반대로 후시미를 습격하여 타이코우를 죽이고 일거에 정권을 안정시켜야만 하지요. 그에 대한 방법은 이렇습지요”

 라고 말하며 쿠마가이는 그 방법을 설명했다.

 “우선 후시미성(城)은 전쟁 준비가 덜 되어 있습지요. 습격하면 타이코우는 오오사카(大坂)로 도망치겠지요. 그것을 가정하여 요도(淀)와 히라카타(枚方)에 철포대(鉄砲隊) 천 명을 숨겨 놓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오오츠(大津) 등의 주변 도시와 다이부츠(大仏) 가도(街道), 타케다(竹田) 가도 등 후시미(伏見)와 연결된 도로에 병사들을 숨겨 놓으면,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습지요.”

 라는 것이었다. 히데츠구는 놀라 귀를 막으며,

 “...다이젠, 더 이상 말하지마! 모반은 무섭다구...”

 라고 핏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이 날부터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습격을 대비하여 외출할 때는 반드시 따르는 자들에게 갑주를 입게 하였다. 이것이 후시미로 곧바로 알려졌다.
 당연히 칸파쿠는 항상 후시미를 노리고 있다고 해석되었다.
 히데츠구는 자신이 조심한다는 것이 그렇게 해석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쿠마가이 나오자네(熊谷 直実)


  1. 일본어로 살생(殺生)와 섭정(摂政)은 발음이 셋쇼우(せっしょう)로 같다. 예전엔 섭정에 이어 관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섭정관백(摂政関白)라고도 하였다. 저 말은 섭정과 살생의 발음을 같은 것으로 한 언어유희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대대로 섬겨온 가문. [본문으로]
  3. 이해를 돕기 위한 사족을 두자면 히데츠구 죽을 때의 나이 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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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이케 이야기 번역본 읽어보니,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잡병들이 몰려오기에 하는 수 없이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나, 나름대로 애정인가(!)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마가이 나오자네는 징기스칸4에도 나오더군요.. 관동 제일의 무법자..라는 별명이 있었다던데..(헤이케 이야기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가..)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9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이런 고귀한 무장을 잡병 따위에게 목숨을 잃게 할 수가 없다는 식의??

    헤에~ 징기스칸4라는 게임은 그런 게임입니까? 예전에 잠깐 해 보았지만, 그 놈의 도시 공략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서... 무엇보다 맵이 너무 큽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기스칸 4 도시 공략이야.. 화포병만 끌면 뭐..;;

    맵은.. 가도 안 깔면 기병 안 쓰는 이상 답답해서 못하죠..; 두번쯤 엔딩보다 접은 기억이;;

  5.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생관백이라더니 어느 정돈지 잘 몰랐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군요 죽어도 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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