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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략으로 점철된 센고쿠 시대라 하여도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 直家]정도의 음모가는 드물다.

 그가 어렸을 적의 에피소드로 이런 것이 있다.
 나오이에는 백치와 같았다 한다. 동생 타다이에[忠家]는 똑똑했기에, 모두 형인 나오이에를 바보취급하고 동생을 칭찬하였다. 단 한 명 우라가미 가문[浦上家][각주:1]의 가로인 잇칸 노인[一閑老人]만이 "그렇지 않다. 나오이에는 마음 속 깊이 큰 뜻을 품고 있기에 보통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나오이에는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일부러 바보 흉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동생 타다이에는 나오이에가 죽자, "형만큼이나 무서운 인물은 없었다. 날 귀여워해주었지만 형과 만날 때는 반드시 옷 안에 사슬갑옷[鎖帷子]을 입고 조심하였다"하고 술회하였다.

 
 대충 나오이에 모략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주군인 우라가미 무네카게[浦上 宗景]를 국외 추방한 후 그의 영지(領地)를 빼앗았다. 거기에 미마사카[美作], 빗츄우[備中]의 실력자 미무라 이에치카[三村 家親]를 철포로 암살, 그와 친하다는 이유로 장인 나카야마 노부마사[中山 信正]를 독살하였다. 이때 장인의 유언을 위작하여 그의 땅을 손에 넣었다. 고토우 미마사카노카미[後藤 美作守]에게는 자신의 딸을 시집 보낸 후 독살하였고, 이 직후 매형인 타니카와 히사타카[谷川 久隆]도 같은 수단으로 죽였다. 이렇게 악랄한 수단으로 결국 비젠[備前], 미마사카[美作]와 빗츄우[備中] 일부를 수중에 넣은 것이다.

 1577년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츄우고쿠[国] 공략이 시작되어 모우리 가문[毛利家]와의 사이에서 치열한 항쟁이 전개되자 나오이에의 정절 없는 기회주의자적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항상 이기는 편에 붙는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쪽이 이겨도 상관없도록 손을 쓴다"
 
이것이 그의 모토였다.

 1577년 12월 나오이에의 가신 코우즈키 쥬로우[上月 十郎]가 지키던 코우즈키 성[上月城]이 히데요시[豊臣 秀吉]에게 함락당하자 곧바로 오다 노부타다[織田 信忠 – 노부나가의 적자]에게 "앞으로 오다 측에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예전과 마찬가지로 모우리 가문과도 끈을 놓지 않아 킷카와 모토하루[吉川 元春], 코바야카와 타카카게[小早川 隆景]를 설득하여 코우즈키 성 탈환을 꾀했다. 거기에 교활하게도 이 전투에는 병을 칭하며 출진하지 않고 승리 소식을 듣자 그제서야 기어나와 킷카와-코바야카와 양 진영에 인사를 한 것이다.

 나오이에의 계략은 이로 끝나지 않았다. 모우리의 두 장수에게 "쿄우토[京都]로 진격하신다면 제가 선봉이 되겠습니다. 또한 귀국하신다면 제 영내(領內)에 잔치를 열겠으니 꼭 참석해 주시길"고 하였다.

 이 뒤편에는 나오이에의 무서운 간계가 숨어있었다.

 쿄우토로 진격한다면 그대로 따라가겠지만,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성안에 초대하여 그 자리에서 두 장수를 죽이고 그 목을 들고 오다 측으로 배신하겠다는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계략은 모우리 측에게 그 내막이 알려져 버렸다. 킷카와 모토하루는 더 이상 나오이에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이후 그는 오다 측으로 넘어갈 결심을 굳히고 인질로 세자 하치로우(후의 히데이에[秀家])를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1581년 11월 나오이에는 병상에 누웠고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자, 히데요시를 한번 보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다. 나오이에 최후의 연기였다. 머리맡에 있는 히데요시에게 임종이 가깝다는 것을 고한 후,

 "인질로 받친 하치로우를 생각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하치로우의 뒤를 잘 돌보아 주셨으면 해서…"

 하고 애원했다. 인정에 약한 히데요시는 다 죽어가는 나오이에의 탄원에 넘어가 그의 유언을 지켜 히데이에(하치로우)를 유자(猶子)[각주:2]로 키워 후에 오대로(五大老)까지 만들어 주었다.

 여담으로 일설에 따르면 나오이에의 병은 매독으로 남 앞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부었다고 한다.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 直家)]

비젠[備前]의 슈고[守護] 아카마츠 씨[赤松氏]의 슈고다이[守護代] 우라가미 무네카게[浦上 宗景]의 가신이었지만 모우리 가문[毛利家]의 지원으로 주군을 멸하고, 이어서 미마사카[美作]를 공략하여 모우리 씨의 휘하가 되었지만,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히데요시[秀吉]가 츄우고쿠[国]에 진출하자 오다[織田] 측에 붙었다. 1582년 2월 오카야마 성[岡山城]에서 병으로 죽었다. 53세였다고 한다.

  1. 당시 우키타 가문[宇喜多家]의 주가. [본문으로]
  2. 양자와 비슷하나, 성까지 따를 필요는 없는 부자관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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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exsan 2015.06.20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갑니다..

.

 

 ()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히데요시[秀吉]가 후시미 성[伏見城]에 있었던 어느 날. 대청(大廳)에 가기 위해서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도중에 방이 하나 있어 거기에 다섯 자루의 칼이 놓여져 있었다. 히데요시는 발을 멈추고,

 

 누구의 것인가 맞추어 볼까?”

 

 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물론 놓여져 있는 방을 보아서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에서 가장 고귀(高貴)한 다이묘우[大名]들의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오늘 등성(登城)하고 있던 얼굴에서 추측한다면,

 

 나이다이진[大臣]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

 다이나곤[大納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

 츄우나곤[中納言]      모우리 테루모토[毛利 輝元]

 츄우나곤[中納言]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浮田) 秀家]

 츄우나곤[中納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 景勝]

 

 일 것이다. 이 다섯 명은 히데요시의 말년에 토요토미 가문의 [오대로(五大老)]가 되었으며,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는 다섯 명의 합의 하에 히데요리[]를 보좌하는 체제로 되었다. 이 체제는 세키가하라(ヶ原) 일전(一戰)까지 이어졌다.

 

 ? 어느 칼이 누구의 것인지 맞추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승려 출신으로 행정관[奉行]인 마에다 겡이[前田 玄以]가 짐짓 놀라는 척을 해 보였다.

 

 그럼 맞추어 보지

 

 라며 히데요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해서 그 칼의 주인을 맞추었는데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겡이 역시 놀랐다.

 

 어떻게 맞추셨는지요?”

 

 ~ 별 거 아니지

 

 하며 히데요시는 설명을 하였다.

 

 우선 에도님[殿[각주:1]]의 칼을 보게. 누가 보아도 특색이 없는 것이 특색이지. 에도님은 참된 용기를 가지신 분으로 한 자루 칼에 의지하려는 졸병의 마음을 갖고 계시지 않으시지. 그렇다면 저것이다.”

 

 카가[加賀 마에다 토시이에]는 마타자에몬[又左衛門]이라 불렸던 옛날부터 굉장한 무()를 지닌 자로, 선봉(先鋒), 신가리[殿]의 무공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저 칼자루에 가죽을 감아 놓은 실용적인 칼이야말로 그의 것일 것이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망부(亡父) 켄신[謙信]이 남긴 가풍(家風)에 따라 마상(馬上) 검기(劍技)를 배웠기에 자연히 장검(長劍)을 좋아한다. 저 날이 긴 칼은 그의 것이 아니면 안 되지.”

 

 아키[安芸] 츄우나곤(모우리 테루모토)은 몸을 꾸미는데 이풍(異風)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저 특색있는 장식을 한 칼이 그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비젠[備前] 츄우나곤(우키타 히데이에)……”

 

 하고 손가락을 쳐들었다. 그 중 가장 나이 어리고 더구나 히데요시 자신이 양아버지 명목으로 되어있는 우키타 히데이에의 칼을 가리키며,

 

 히데이에는 그 성격 상 무엇이든 아름답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저 황금을 박아 넣은 칼이야 말로 그 아이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영묘(靈妙)는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며 마에다 겡이는 이 이야기를 성안에 퍼트렸지만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내세울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인간과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것에 대해서는 역사상 비할 데 없는 천재였으며, 그렇기에 오다 가문[織田]의 짚신담당에서부터 출세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천하를 손에 넣은 뒤 말년엔 좀 노망끼가 들었지만 그러나 이 정도의 놀이라면 씨름꾼이 세 살배기 어린애랑 팔씨름하는 것보다도 쉬웠다.

 

 히데요시는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이 즈음 그 '아름답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우키타 히데이에의 후시미 저택에 놀러 가 차를 마시고 정원을 거닐며 심어진 동백의 꽃 핀 모양을 칭찬하거나 한 후,

 

 '노인분들~ 노인분들~'

 

 하고 박수를 쳐 정원으로 이어진 시라스[白洲]에 무릎 꿇고 있던 우키타 가문[宇喜多家]의 가로(家老)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키타 가문은 현재의 오카야마 현[岡山県]에서 효우고 현[兵庫県] 일부에 걸쳐 세토 내해[瀬戸内] 연안(沿岸) 57 4천석을 영유(領有)하고 있던 거대 다이묘우[大大名]였기에 가로의 숫자도 많았다. 오사후네 키이노카미[長船 紀伊守], 토가와 히고노카미[ 肥後守], 아카시 카몬[明石 掃部], 하나부사 시마노카미[花房 志摩守], 오카 에치젠[岡 越前] 10명이 넘었다.

 

 히데이에를 부탁한다~ 히데이에는 하치로우[郎]라 불렸던 아이였을 때부터 키운 내 자식이다. 거듭거듭 부탁한다~”

 

 라고 말하고, 곧이어 응접실[書院]로 돌아가던 중 뜬금없이 차석(次席) 가로인 토가와 히고노카히 타카야스[戸川 肥後守 達安]를 불러,

 

 날 업고 가시게

 

 라고 말했다. 토가와는 우키타 가문전대(前代)나오이에[直家] 때부터 산요우도우[山陽道]에 무명(武名)을 떨쳤던 사무라이다이쇼우[侍大将] 등짝이 굉장히 넓었다. 그런 그가 몸을 낮추고 히데요시를 업고 털이 북실북실한 정강이로 계단을 올라 힘 안들이고 응접실 앞 복도까지 갔다. 왜소한 체격의 히데요시는 기뻐하며,

 

 이거 참 편하구먼

 

 하고 신이 나 떠들었는데, 이것도 히데요시 정치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키타 가문의 가로들은 자아(自我)가 강한 사람들이 많아 자기 실력을 내세워 어린 주군인 히데이에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가로 무리도 파벌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토가와 히고노카미 타카야스는 말하자면 야당(野黨)영수(領袖)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이 인물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히데요시는 그런 타카야스를 자신과 친하게 하고, 그 정()으로 히데이에를 섬기게 하여 우키타 가문이 융화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치로우(히데이에)만큼 귀여운 녀석은 없지

 

 라고 히데이에가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는 남들에게 자주 말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혈통이나 처의 혈통에서 양자(養子), 유자(猶子[각주:2])를 많이 만들었지만 이 피가 이어지지 않은 히데이에를 가장 사랑하고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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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요시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가진 가장 곤란한 점은 극단적으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혈통이 좋고 더구나 얼굴이 예쁘게 태어난 여자를 보면, 그녀가 아무리 유부녀라도 한번은 다가가 말이라도 걸어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織田]의 장수로 츄우고쿠[]의 모우리 씨[毛利氏]를 공략 중일 때의 이야기이다.
 
이 당시, 히데요시의 본영(本營)히메지 성[]이었다. 적인 모우리 씨히로시마 성[]이었다. 그 중간인 오카야마 성[岡山城]에 히데이에의 망부(亡父)인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 直家]가 있었다. 나오이에는 비젠[備前]미마사카[美作]를 가진 다이묘우[大名]로 처음엔 모우리 측에 서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다 측에 붙는 편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우리 씨산요우, 산인[山陰] 10개 지역[]의 거대 영주(領主)라고는 하여도 석고로 따지면 110만석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오다 씨킨키[近畿]를 중심으로 이미 30개지역() 이상을 제압하여 300만석이 넘는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량으로 말하면 오다 씨의 승리일 것이다.

 나오이에는 계산이 빨랐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계산에 그 만큼 충실한 사람도 없었다.

 

 우키타 가문은 산요우[山陽]의 명족(名族)이라고는 하지만, 나오이에가 어렸을 때는 몰락해 있었기에 나오이에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가문을 일으켰다. 젊었을 즈음 비젠[備前]의 다이묘우[大名]였던 우라가미 가문[浦上家] 섬기며 남몰래 뜻을 세워, 우라가미 가문의 세력가들을 계속해서 모살(謀殺)하여 결국에는 우라가미 가문의 땅을 빼앗았다. 이 정도로 악랄하고 집요한 음모가(陰謀家)는 이 시대에도 드물었다. 풍운(風雲) 속에서 기어올라온 신흥 다이묘우[大名]라고는 하여도, 그가 일생 동안 해본 전투다운 전투는 한 번밖에 없었으며 모두 치밀하기 짝이 없는 음모를 펼쳐, 필요하면 주군(主君)이건, 주군의 가문이건, 은인(恩人)이건, 처의 부친이건, 친척이건 구별 없이 죽였다. 어렸을 때부터 이 나오이에와 함께 행동을 해 온 동생 타다이에[忠家]도 나오이에가 죽은 후,

 

 형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었다. 날 귀여워해 주긴 했지만 원래 속이 검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항상 형과 만날 때면 반드시 옷 안에 사슬갑옷[鎖帷子]을 입고 갔다

 

 라고 말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결국 나오이에는 오다 가문으로 넘어왔다. 실무(實務)상 오다 가문의 사령관인 히데요시를 통해서였다. 이런 그들을 중간에서 알선을 한 것이 나오이에의 영지(領地) 출신으로 사카이[] 상인인 코니시 쥬토쿠[小西 寿徳], 야쿠로우[弥九朗] 부자(父子), 아들인 야쿠로우는 이 교섭 중에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 후에 토요토미 가문의 다이묘우[大名]가 되어 '코니시 셋츠노카미 유키나가[小西 津守 行長]'라 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은 본편과 그다지 관련이 있지 않다.

 

 이 밀약의 인질로, 나오이에는 자신의 아들 히데이에(당시 하치로우[])를 히메지의 히데요시에게로 보냈다. 하치로우의 나이 8살 때였다. 히데요시는 히메지 성내에서 이 어린이와 대면(對面)한 후, 그 용모(容貌)가 너무도 아름다운 것에 놀라 함께 온 우키타 가문의 가로에게,

 

 이 하치로우님은 아버님을 닮으신건가? 아니면 어머님을 닮으신건가?”

 

 라고 물었다. 히데요시는 나오이에와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나오이에가 어렸을 적에는 주군 우라가미 무네카게[浦上 宗景]남색(男色) 관계를 맺어 출세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남이었다. 그러나,

 

 글쎄요……”

 

 라고 가로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무문(武門)의 남자 아이는 모친을 닮았다는 것보다도 부친을 닮은 편이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아쉽게도 하치로우는 나오이에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오히려 모친과 닮았다.

 

 황송하오나…… 모친과 닮으셨습니다.”

 

 라고 말하자 히데요시는 급빵끗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황송할 게 뭐가 있나? 그렇겠지…… 그럴 거다. 그 어머님도 저 도련님을 보건대 필시 아름다운 분이실 것이다

 

 하치로우는 오우미[近江] 아즈치 성[安土]에 있는 노부나가[信長]에게로 보내졌다. 하치로우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장남인 요타로우 모토이에[ 基家]가 전사(戰死)하여 우키타 가문의 외동아들이었기에 인질로써의 가치는 높았다. 아즈치 성의 노부나가도 저 권모가(權謀家)인 나오이에가 이 하치로우를 인질로 받친 것을 이외로 생각하여 그 성의(誠意)에 만족했다. 더구나 하치로우는 미동(美童)이었기에 부친뿐만 아니라 이 소년에게도 호의를 가졌다.

 

 비젠[備前]에서 온 저 아이. 맘에 드는구나. 각별히 잘 대해줘라

 

 라고 노부나가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하치로우는 소년일 때부터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밝아 1581년이 되었다. 비젠[備前] 오카야마 성에 있던 나오이에가 죽을 병에 걸렸다. 이미 나이는 50을 넘고 있었다. 쇠약한 상태로 보건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의사의 견해였다. 그가 병에 걸렸다는 것은 모우리 씨를 상대하는 전략상 깊숙이 숨겨졌지만, 그러나 히메지 성에 있던 동맹자 히데요시에게만은 비밀리에 전해졌다. 히데요시는 놀랐다.

 

 나오이에가 죽는다고? 죽지 않게 어떻게든 해라

 

 고 몇 번이나 말하며 마음 속 깊이 그 불행을 탄식했다. ()이 깊은 것은 히데요시의 특성이었고, 더할 나위 없이 친절했으며 남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특성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따랐고 안심하며 자신의 미래를 맡겼다. 간악무쌍(奸惡無雙)하다는 우키타 나오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나오이에의 바램은,

 

 숨이 있을 때 한번 하시바[羽柴]님을 만나 하치로우의 앞날을 부탁하고 싶다

 

 라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승낙했다. 히데요시의 측근들은 걱정했다. 나오이에는 유명한 모살(謀殺)의 명인(名人)으로 꾀병을 핑계삼아 히데요시를 오카야마 성으로 불러 히데요시가 가면 어디에 칼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총명한 히데요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지나친 생각이다. 저건 나오이에의 본심이지.

 라고 히데요시는 보았다. 거기에 오다 가문의 일개 무장에 지나지 않는 자기를 죽인다고 해서 나오이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오카야마 성에 갈 준비를 하였다. 이런 시세(時勢)에, 이제 막 동맹자가 된 가문의 성에 스스로 간 예는 전무(全無)에 가까웠지만, 히데요시는 그것을 굳이 그렇게 하였다. 이 대책 없는 친절함이야 말로 자신이 가진 정치적 자산인 것을 히데요시는 잘 알고 있었다. 친절은 적당히 하는 것 보다 한층 더 철저히 하는 편이 좋은 것도 이 인물은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아즈치의 노부나가에게 부탁하여, 나오이에의 외동아들 하치로우를 데려가기로 하였다.

 

 허허~ 이거 이거~”

 

 하고 모신(謀臣) 쿠로다 칸베에[ 官兵衛]조차도 이 대담함에는 눈이 휘둥그래해 졌다. 인질과 함께 오카야마 성을 방문하다니, 나오이에가 그럴 생각이 있다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히데요시에게는 이런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 난세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이 히데요시의 원칙이었기에, 칸베에의 아는 체하는 간언(諫言)은 당연히 물리쳤다. 물론 이 목숨을 건 승부처에서 하치로우의 모친에 대해서는 절세의 미녀라는 모친에 대한 것 등은 히데요시의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호색(好色)은 즐기는 것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죽고 사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1. 토쿠가와 이에야스. 이에야스의 본거지가 에도에 있었기에 이렇게 불렸다. [본문으로]
  2. 양자이긴 하지만 성(姓)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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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20 2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혁신의 CG는 참 안습이던데..(능력치도...) 매력치가 있었다면 좋았으려만, 미청년 츄나곤에 맞지 않는 이미지라서 이거야 원....

    뭐, '임진록(..;)'이란 게임에 나온 헐크 이미지야 말할것도 없고;;;

    그래도 하치로우는 모친을 닮아서 그런지, 참 부친의 고생과는 다른 다복한 20대를 보낸 듯 하여 부럽습니다. 청년기가 평온한 모모야마 시대여서 그런 덕도 있었지만..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21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혁신은 좀 남자답게 나왔던가요?(기억이 가물가물...)

    임진록은 해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뭐 현지도 아니고 외국에서 거기까지 신경을 쓸 순 없겠죠..아마...(특히나 임진년 '총사령관'이면 아무래도 헐크여야 했을지도)

    운이 좋았죠. 한창 놀 나이에 천하는 이미 양아버지의 것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21 2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혁신은 무슨 간이 안좋은양 얼굴이 시커멓게 나왔더군요. 뭐랄까.. 정말 그렇군요. 한창 놀 나이에 아버님이....

    뒤를 좀 읽어보니, 원복을 10살 이전에 하더군요. 어쩐지 혁신에서도 빨리 나온다 했더니만... 나오이에가 죽기전에 男姿를 보고싶다고 해서리, 에보시오야로 히데요시가.. 이름에 히데가 들어가는 것도 그 인연이더군요. 더군다나 오카야마에 인질을 (아버지 간병해 드리라..)고 놔두고 가는 센스가..;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1.21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키타 히데이에의 혁신 CG가 어둡다면 천창 CG는 창백하죠. 창천록 CG는 그냥 완전 클론무장 CG 같고 특징이 있다면 아버지 나오이에를 닮았다는 것뿐입니다.
    우키타 아키이에, 그러니까 사카자키 나오모리라고도 하는 우키타 타다이에의 아들도 이 소설에 나옵니까?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21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혁신에선 일찍 나오는 것이 기억나는군요. "어이~ 이 나이에 이 얼굴이 혁신이다 !@#$"..
    라고 했던 기억이....

    신사본론님//예. 멋진 조연으로 나옵죠. 여기선 사쿄우노스케(左京亮)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죠.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22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보니 질문이..^^;; 2장을 읽다보니 所遇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두보의시해석..에서는 '길에서 우연히 만남'으로 해석되 있던데;; 일어 발음이 궁금하네요. 뜻도 그 뜻일까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22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우(処遇-しょぐう)의 오자 같습니다. 앞뒤 문장을 볼 때 그렇게까지 밖에 생각이 안드는군요.
    발음도 所(しょ)遇(ぐう)로 똑 같거든요.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22 2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1.23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풍신가의 사람들 너무 재밌고, 몰랐던 점을 알아가는데, 참 좋네요. 다음 편이 기대 됩니다.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23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보통 업데이트는 주말에 하고 있습니다.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filaments BlogIcon 서브머린 2008.01.28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일본무장중에서 우키타 히데이에를 매우좋아해서 오카야마성까지 다녀왔었는데
    이번시리즈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2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문 감사드립니다. ^^
    사족이지만 전 오카야마라면 일본 야구 감독 중에서 제일 호감이 가는 호시노 센이치의 출신지라는 것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13.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7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일단 이쁘고 잘나고봐야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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