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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2 요도도노(淀殿), 그 아들 -5-
  2. 2008.03.23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4- (10)
  3. 2008.03.16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 -3- (8)

五.

 이 1586년 12월에 칸파쿠(関白) 히데요시는 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 되어 토요토미(豊臣)라는 성(姓)을 하사 받음으로써 타이라 씨(平氏), 미나모토 씨(源氏), 후지와라 씨(藤原氏)라는 고귀한 성(姓)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 귀족으로서의 위치와 체면을 확립하였다.
 이 때문에 히데요시는 궁중에서의 예식이나 축하연회 등으로 쿠게(公家) 사회에서의 사교로 매우 바빴다. 쿄우(京)에서는 쥬라쿠테이(聚楽第)에 주거하고 있었다. 쥬라쿠테이는 이 해의 2월에 완공되었고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각주:1])와 오오만도코로(大政所[각주:2])도 불려와 그대로 쿄우(京)에 있었다.


 오오사카(大坂)에는 챠챠(茶々)가 있었다. 챠챠에게는 토요토미 가문 일족의 쿠게(公家) 사교에 참여할 명분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입으로 쥬라쿠테이의 화려함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 한번 보고 싶구나
 하고 유모에게도 말하였지만 이것만은 유모도 어찌 해 줄 수 없었다. 쥬라쿠테이는 친왕, 상급귀족(公卿), 몬제키(門跡[각주:3]) 그리고 위계가 높은 무장들의 사교 장소이기에 아무런 위계도 가지지 못한 몰락 다이묘우(大名)의 고아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정말 화려하겠구나”

 챠챠는 동경하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키타노만도코로는 위계를 가지고 계신가?”

 “칸파쿠의 부인이시니까요.”

 여성이면서 종이위(從二位)였다. 다이나곤(大納言) 등보다도 상석이었다.

 굉장히 화려할 것이다. 챠챠는 쿄우(京)의 번화함을 상상하였다.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피여서는 저마다의 미를 자랑하는 화원을 연상했다. 쥬라쿠테이 주변에는 끊이지 않고 음악이 울려 퍼지며 시회(詩會)나 다회(茶會)가 열리고 항상 그 중심에 히데요시와 키타노만도코로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히데요시가 갑자기 오오사카 성(大坂城)으로 내려왔다. 성안은 북새통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자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챠챠의 유모를 불렀다. 유모는 서둘러 수 많은 복도와 복도를 가로질렀다. 히데요시는 이외로 혼자 있었다.

 “여어~”

 하고 히데요시는 유모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쓰윽 쓰다듬었다. 식초라도 마신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더구나 쪽팔리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알겠나? 이 얼굴”

 히데요시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도 보지 않고 아는 것 같았다. 이 얼굴을 보아라, 이 얼굴로 추측하라, 쪽 팔려서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 고 말했다. 유모는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유모는 이해했다. 챠챠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여 참지 못하고 이렇게 오오사카로 돌아왔네. 알겠나? 내일은 쿄우(京)로 돌아간다”

 ‘내일은 쿄우에?’
 그렇다면 오늘 밤만이 기회였다. 이렇게 경황없는 명령이라니……

 “허락하마. 그 편지상자를 열어보아라”

 히데요시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유모는 눈 앞에 편지상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송해하며 그것을 열어 안에서의 한 장의 시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놀랍게도 연애시였다. 히데요시는 요즘 시에 열심으로 또한 현실적인 필요로 인해 쿠게(公家)의 습관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애에 대해서까지 쿠게(公家) 풍으로 흉내 내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 사람을 꼬시는 데 있어서의 천재가 챠챠에게만은 이렇게 고풍스런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챠챠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익살꾼의 단순한 장난인가?

함께 자고픈 마음이 오오사카에 다녀온 듯하다
팔베개하며 꾼 오늘 밤의 꿈.
想い寝の心や御津に通ふらむ
今宵逢ひみる手まくらの夢

 음률도 갖추어져 있었다. 히데요시 시의 첨삭은 호소카와 유우사이(細川 幽斎)가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시도 그런 것일까?

 “내가 만든 시다”

 히데요시는 일부러 말했다. 유모는 황송해하며 그것을 편지상자 집어넣어 뚜껑을 덮고 보라색 끈을 묶어 머리 위로 공손히 들어올렸다.

 “오늘 밤 술시(밤 여덟 시)에 건너가겠다. 이불에 있으라고 하라, 누워 있으라고 전해라”

 하고 딱 잘라 말했다. 이런 것은 쿠게(公家) 풍이라기 보다는 말 위에서 천하를 획득한 무사 정권의 우두머리다웠다.
 유모는 물러나려 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불러 멈추게 하고는 시동(児小姓)을 불렀다. 시동은 흰 나무로 된 작은 상을 머리 위로 받쳐들고 와서는 유모 앞에 내려 놓았다. 하사품이었다. 더구나 황금이었다. 유모는 물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모는 히데요시의 방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건너면서 생각하였다.
 ‘전하는 3년이나 공들이셨다’
 라는 실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유모도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좋은 도우미가 되어 있었다. 다른 오우미 사람(近江人) – 예를 들어 이시다 지부쇼우유우 미츠나리(石田 治部少輔 三成) 등에게서도 유모는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어서 와야 함에 대해 음습한 기대가 담긴 말로 들은 적도 있었다. 어쨌든 챠챠가 가지고 있는 히데요시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도록 얼마나 신경을 쓰며 얼마나 손을 써 왔는지 몰랐다. 그것은 우선 성공하였다. 유모에게 있어 적어도 운이 좋았던 것이 챠챠는 그녀의 모친인 오이치(お市)처럼 도리가 명쾌한 뚜렷한 성격이 아닌 감정적으로 무엇이든 그렇게만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런 점에서 유모는 제대로 처리해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멋대로이고 변덕스러운 성격이기에 막상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해’
 유모는 혼잣말하며 스스로를 고무하였다. 그것이 결국 챠챠에 대한 충성이 되는 것이며, 결코 꿈에서라도 – 챠챠를 황금에 판 것은 아닌 것이다.

 이날 밤.
 술시. 히데요시는 챠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에 있어라, 누워 있으라고 유모에게 명령해 두었는데도 챠챠는 옷을 입은 채 촛대에 둘러싸여 앉아있었다.

 “여어~ 이 향은?”

 하고 히데요시는 순간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자신을 쪽팔림에서 건져 올리려 하였다. 방에는 향이 피워지고 있었다. 향이 피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히데요시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향은 여러 종류가 섞인 혼합 향(組香)인 듯 했다. 그런 쪽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로 하나하나 맞출 수 있다.

 “향의 이름은 무엇인고?”

 히데요시는 턱을 들어 콧구멍을 벌름거렸지만 이제 막 쿠게(公家) 문화를 배우기 시작한 히데요시가 맞추기에는 무리였다.

 “어린 나물(若菜)의 향이옵니다”

 하고 챠챠는 희미하게 듣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답하였지만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 눈은 거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 챠챠는 히데요시에 대해서 그다지 예의가 바르지 못하였고 때때로 존대하기까지 하였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허용했다. 챠챠에 한해서는 에치젠(越前) 이치죠우다니(一乗谷)에서 만났을 때부터 계속 그런 태도를 허용해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히데요시는 그런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고 또한 그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없었다.
 히데요시의 측실은 많았다. 오다 가문(織田家)의 방계 출신인 히메지도노(姫路殿), 아시카가 바쿠후(足利幕府)의 명문가인 쿄우고쿠 씨(京極氏) 출신 마츠노마루도노(松ノ丸殿), 가모우 우지사토(蒲生 氏郷)의 여동생 산죠우노츠보네(三条局) 등 많은 명문가 출신들이 있었지만 모두 히데요시 앞에서는 숨죽이고 그의 심기를 민감하게 살피며 열심히 섬겼다. 히데요시도 역시 그녀들에게 상냥하였으며 오히려 너무 상냥할 정도였다. 그녀들 또한 히데요시의 그런 상냥함에 감동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섬겼다. 하지만 이 챠챠만은 달랐다. 그 제멋대로인 성격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 같았지만 히데요시 만큼이나 사람의 심성에 대해 정통한 사람도 그리 생각하지는 못하고 이 아가씨는 자신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하여 어딘가에 항상 품고서는 계속 원망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반해있었던 것이다. 그 반해있음이 히데요시의 태도를 약하게 하였다.

 “이 향은 히메가 피운 것인가?”

 하고 히데요시는 비위를 맞추려는 듯 말했다.

 “아니요”

 하고 챠챠는 말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챠챠라는 아가씨에게는 혼합 향을 조화시킬 수 있는 듯한 재주가 없었다. 이는 유모가 피웠다. 피웠을 뿐만 아니라, 아씨 잊지 마시옵소서. 이 혼합 향은 ‘어린 나물’이라고 하옵니다. 어린 나물이옵니다. 이와 연관된 옛 시(古歌)는 이것과 이것입니다, 하고 쪽지에 적어서는 하나하나 가르쳐갔다. 그랬을 뿐인 장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오해했다. 고개를 가로저은 것은 챠챠의 겸손함일 것이라 생각하여 그 교양의 깊음에 탄복하였다. 이런 점 - 사랑을 하고 있는 젊은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향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단다. 이 봄나물에는 어떠한 옛 시가 있는고?”

 “몇몇이 있사옵니다”

 하고 챠챠는 매우 부드럽게 답했다. 유모가 가르쳐 주었듯이 ‘어린 나물’에 연관된 옛 시 중 다음과 같은 것은 읊조렸다.

내일부터는 어린 나물을 캐자고 약속한 들에
어제도 오늘도 눈은 계속 내리고
明日よりは若菜摘むとしめし野に
昨日も今日も雪は降りつつ

 히데요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 내리는 눈’이라는 것은 거부하는 ‘수수께끼’인 것 같았다. 적어도 무언가의 사정으로 오늘은 어린 나물을 캘 수 없습니다, 고 챠챠는 말하는 듯했다.

 "허어~ 캘 수 없나?”

 히데요시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쿠게(公家)의 귀공자라면 아니 적어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무렵의 도련님들이라면 이렇게까지 수수께끼가 던져지면 여성의 방에서 물러나 나중에 시를 보내는 것이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같은 귀족이라도 말 위에서 검을 쥐고 칸파쿠(関白)의 의관을 쟁취한 전쟁터의 사나이였다. 물러나지 않았다.

 “히메! 기왕 이렇게 된 것이다”

 하고 히데요시는 오른손을 뻗쳤다. 행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뻗친 손으로 청자(靑磁)로 된 향로를 집어서는 뚜껑을 거칠게 열고 피워져 있는 불에 물통의 물을 부었다. 재가 일고 향기가 사라지며 동시에 ‘어린 나물’도 옛 시도 수수께끼도 사라졌다.
  키득, 하고 히데요시는 웃었다.
 ‘앗’
 하고 챠챠가 놀랄 정도로 히데요시의 웃는 얼굴에는 흠뻑 빠져버릴 듯한 애교가 있었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곧바로 그 웃는 얼굴을 지웠다.
 곧이어 챠챠를 노려보았다.

 “귀족놀이는 이제 그만하자”

 그것은 선언이었다. 무문(武門)에는 무문만의 사랑에 대한 작법이 있을 것이다.

 “오른손을 나에게 맡기라”

 위엄을 가지고 명령했다. 항복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무문의 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오히려 히데요시에게는 더 나았다. 챠챠는 순종적이 되었다. 그 하얀 오른 손을 히데요시 쪽으로 내밀었다. 마음이 멍해지며,
 ‘무엇을 하려고?’
 하고 챠챠가 생각할 여유도 없이 히데요시는 그 손을 잡았고 잡자마자 챠챠를 무릎 위에 눕혔다.

 “챠챠야”

 하고 히데요시가 ‘히메’라는 존칭을 버렸을 때는 이미 챠챠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자그마한 남자의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것일까? 그대로 이불 위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기서 히데요시의 힘이 다했다. 히데요시는 OTL이 되어 거친 숨을 토했고 토하고는 들이마셨다.

 “나도 늙었다”

 히데요시는 자조적이 되고 싶었을 터이지만 젊은 챠챠에게 허세도 부려야 했기에 무턱대고 큰 소리로 웃었다. 사냥감은 바로 앞에 뉘여있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숨이 진정될 때까지 뭔가를 떠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난 몸은 작지만 다할래야 다한 적이 없을 정도로 남들과는 다른 뛰어난 체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었지. 그러나 천하를 갈고 닦기 위한 큰일을 하다보니 조금 피곤해졌다. 옛날이라면 너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들었을 텐데……”

 ‘거짓말
 하고 챠챠는 엎드려 있으면서도 저 초로를 훨씬 넘긴 남자의 허풍이 웃겼다.

 “챠챠야 내 아이를 낳아라”

 히데요시는 OTL인 채로 고개만 쳐 들고 말했다. 토요토미 칸파쿠 가문의 아이를 낳으라고 거듭 말했다. 히데요시가 이럴 때 쓰는 상투적인 문구였으며 어느 여성에게건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어느 여성도 그 명령에 따르지 못했다. 히데요시의 아기씨가 드문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석녀(石女)들과만 조우하였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챠챠는 히데요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세가 취해졌다.
 받아 들였다.
 이 순간만큼 거대한 사건은 토요토미 가문 역사 속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자연적인 – 챠챠의 옷이 펼쳐지고 히데요시가 그 육체를 꽉 껴안았을 뿐인 단지 그랬을 뿐의 자연적인 행위가 이 순간부터 토요토미 가문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좋았다. 오우미 파벌(近江閥)이 이 이불 속에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히데요시의 이 상냥함이란…… 그것이 끝났더라도 챠챠를 놓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였다. 이 가련한 이를 위해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성(城)을 갖고 싶지 않은가?”

 하고 히데요시는 챠챠의 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히데요시는 말했다. – 바다 건너온 비단이나 면으로 된 옷 같은 것을 사라, 시녀의 수도 늘려라, 그러나 챠챠가 가져야 할 것은 성이다. 성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성을?”

 챠챠는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정부(情夫)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지배자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천하인의 선물이라는 것은 당연 성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저는 여자이기에 성은 필요 없사옵니다.”

 “사양하지 마라”

 히데요시는 말했다. 꼭 성을 주고 싶다. 그 이유로 히데요시는 쿄우(京)와 오오사카(大坂)를 왕복하니 그 중간인 요도(淀) 근방에 휴식을 위한 성을 하나 두고 싶었는데 그것을 쌓아 챠챠를 살게 하면 그녀도 기쁘고 자신도 편리했다.
 ‘단 다른 여성들에게도 납득시켜놓지 않으면 안 되지’
 다른 측실들은 모두 오오사카 성에서 살고 있는데 챠챠만이 [성주]가 된다면 대부분 질투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가 심술내지 않도록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히데요시의 버릇으로 생각나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빨랐다. 그날부터 몇 일 내에 동생인 야마토 다이나곤 히데나가(大和大納言 秀長)를 불러,

 “요도에 성을 쌓아라”

 고 명령했다. 장소는 카츠라가와 강(桂川)과 우지가와 강(宇治川)이 합류하여 요도가와(淀川)가 되는 합류점으로, 거기에는 예부터 아시카가 쇼우군 가문(足利将軍家)의 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불과 보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폐허인 성을 부활시켜 작지만 견고한 성을 만들어라, 건물을 화려하게 지어라, 귀부인을 위한 건물로 해라, 여성 침실의 앞마당에는 꽃나무를 잊지 말도록, 화장실도 특별히 생각을 해서 만들라고 명했다.

 요도 성(淀城)은 5개월 만에 만들어져 챠챠는 오오사카에서 거기로 옮겼다. 아자이 씨(浅井氏) 일족이나 시녀를 포함하면 이 새로운 성에서 생활하는 사람 수는 남녀 200이 넘을 것이다. 챠챠는 세간에게 ‘요도도노(淀殿)’라 불렸으며 히데요시에게는 ‘요도노모노(淀の者)’, ‘요도노뇨우보우(淀の女房)’ 등으로 불리거나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도도노는,
 - 어머님(お袋様).
 이라고 세간에서 불리게 되었다. 히데요시를 위해서 첫아들 츠루마츠(鶴松)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이 츠루마츠는 2년 후에 죽었다. 히데요시는 크게 낙담하였지만 그러나 요도도노에 대한 애정은 더욱더 깊어졌다. 곧이어 조선침략이 시작되어 그 대본영인 치쿠젠(筑前) 나고야 성(名護屋城)에도 그녀를 데려갔다. 이 나고야의 행궁에서 요도도노는 또다시 임신했다. 히데요시는 춤을 추며 기뻐했다.
 - 남자아이를 낳아라
 고 히데요시는 요도도노의 배에 손을 대고는 굉장히 진지하게 빌었다. 토요토미 가문에 아이를 낳는다는 기적을 요도도노는 별 힘 안들이고 실현해 주게 되었다. 그 해 – 1593년 8월 3일. 요도도노는 이미 요도 성(淀城)에 돌아와 있었다. 이날 히데요시의 희망대로 남자아이를 낳았다. 


 히데요리(秀頼)였다.

  1. 히데요시의 부인 [본문으로]
  2. 히데요시의 모친 [본문으로]
  3. 거대 사찰 혹은 그런 사찰의 주지가 된 황족이나 상급귀족의 자제를 지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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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네네의 몸가짐은 예절 바르다고는 할 수 없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몇 번이나 세운 무릎 쪽의 발을 바꾸었고 바꿀 때도 옷자락 안쪽까지 보여버리기도 하였다. 뺨을 긁거나, 가래를 뱉거나 하여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다.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을 배우질 못했다기 보다는 천성이 활달한 편이어서, 자기자신을 바른 예절이라는 틀에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네네가 요도도노의 어떤 소문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멈칫한 적이 있었다. 측실들이 말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그녀의 여관장(女官長)인 코우조우스[主]가 이야기한 것이었다. 요도도노가 자신의 슬하에 오우미([近江]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다. 오우미[近江] ()의 다이묘우[大名]를 말이다. 그들 오우미 계의 역사는 히데요시[秀吉]나가하마[長浜]입성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信長) 휘하에서 처음으로 다이묘우[大名]가 되었는데, 그때 하사 받은 영지(領地)가 오우미의 나가하마였다. 석고는 구 아자이 가문[井家]영토인 3() 20만석이며, 이때부터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木下 藤吉郎]에서 하시바 치쿠젠노카미[羽柴 筑前守]로 불리게 되었다. 20만석에 상당하는 부하를 데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각주:1], 그 지역에서 이름난 가문이나, 많은 전투를 경험한 낭인(浪人), 승려가 못된 인텔리[각주:2] 등을 급히 대량으로 채용하였다. 그런 그들이 토요토미 가문의 [오우미 파벌(近江閥)]이 되었으며, 그 출신상의 특징으로써 경리에 밝았다[각주:3]. 재무 감각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는 없는 장부(帳簿)의 기록 기술까지 이 지방의 출신자는 알고 있어, 그런 기능이 있었기에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 마시타 나가모리[田 長盛]들은 토요토미 가문의 오봉행(五奉行)에 발탁되어 재정과 여러 정무를 담당하며 오우미 파벌의 정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 오우미 사람들(엄밀히 말하면 북부(北部) 오우미 사람들이지만)은 그 대부분이 아자이 가문의 옛 신하 출신이었다. 직접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망한 옛 주가(主家)에 대한 감정적인 충성심은 당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요도도노의 등장과 함께 그 감정적인 마음은 대상을 얻었다. 히데요시가 예전에 섬기던 오다 가문의 오이치[市]에게 성스러운 고귀함을 느낀 것과 같이, 그들은 아자이 가문 핏줄인 요도도노에게 그것을 느꼈다. 요도도노야 말로 진정한 공주님에 걸맞은 존재였으며 더구나 주군의 직계 혈통으로, 이미 남자 계통이 노부나가에게 살해당하여 끊긴 지금, 혈통에서 끝나지 않고 옛 주인 그 자체라는 감정을 요도도노에게 가졌다. 자연히 그 슬하에 모였다.

 요도도노도 옛 신하라는 친근감을 가지고 그들과 접했다. 또한 요도도노의 늙은 시녀들 역시 오우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 오우미 계의 다이묘우들과는 친척이거나 몇 다리 건너면 친척이었고 또한 교류가 있어, 그 분위기 속에서 요도도노는 자연스레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요도도노가 나에게 대항하려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코우조우스의 이야기에서 네네는 느꼈고 단순한 여관들의 뒷담화로 흘려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네네에게는 히고[肥後]에 관해서도 키요마사와 함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가 책봉되었다는 현상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요도도노가 미츠나리와 함께 히데요시에게 졸라서 그 파벌에 속해있는 코니시 유키나가를 추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송구스럽습니다만 요도도노가 키타노만도코로님을 언젠가는 넘어서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사물을 이해하는데 현명한 코우조우스는 말했다. 넘어선다고 하여도 정실(正室)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권세를 쥐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네네에게 있어서는 이것만큼 가소로운 것이 없었다. 토요토미 가문의 여성 중에 인사(人事)에 끼어들 수 있는 존재는 이 가문을 만든 조강지처인 자신 이외에는 없었다. 이외에 있을 턱이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되었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네는 히데요시에게 그런 것에 대한 불평 같은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주인댁인 요도도노에게 기울면 기울수록, 네네에게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다정함과 배려를 잊지 않았으며, 그녀가 토요토미 가문에 있어서의 정실이라는 긍지를 더욱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다.

 요도 성[城]은 이외로 빨리 완공되었다.
 
1589
1월에 착공하여 3개월 후에는 거의 완성되었다. 그 건축의 빠름보다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요도도노의 임신이었다. 요도 성()이 완공된지 2개월 후인 5 27일에 남자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첫 아이인 츠루마츠[鶴松]였다.

 - 어쩌면……

 이라는 목소리가 성안에서 속삭여졌다. 태합(太閤)님의 씨 일리가 없다, 태합님은 속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들이 각 건물에 있는 측실들 주변에서 속삭여졌다. 히데요시에게 씨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히데요시의 살을 접해왔던 측실들은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렇게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만약 히데요시의 기능이 온전하다면 과거에 누군가가 임신했을 터였다. 그것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의심스러웠다.
 
그렇지, 의심스럽지
 
라고 네네야말로 히데요시와의 함께 덮은 이불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네네는 그런 이상함을 절대 입밖에 내는 일 없이, 츠루마츠의 탄생을 토요토미 가문의 정실로서 크게 축하하였다. 정실로서만이 아닌 네네는 법적으로 모친이기도 했다.

 '어머님[お母さま=おかかさま]'
 
이라고 그녀는 불렸다. 츠루마츠의 모친은 둘이 있는 것이 되어, 요도도노도 '어머님'이라 불렸다. 히데요시나 츠루마츠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구별해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면 요도도노는 단순히 어머님’, 혹은 엄마[おふくろさま]이며 네네는,
 
'어마마마[まんおかかさま]'
 
라 칭해졌다. ‘[まん]이라는 것은 만도코로[政所]의 만을 지칭할 것이다. 츠루마츠에게 물건을 보낼 때도 네네 자신, -이것은 어마마마가 보내는 것입니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

 츠루마츠의 출생은 오우미 계열의 다이묘우[大名]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개가(凱歌)였을 것이다. 요도도노가 토요토미 가문에서 자리잡고 있던 위치는 측실에서 생모(生母)으로 껑충 뛰어 오른 것이다. 토자마[様][각주:4] 다이묘우들도 키타노만도코로에게 선물을 보내기 보다는 요도도노에게 더 정성 들여 선물을 보내게 되었기에, 여러 다이묘우[大名] 사이에서 네네의 위세는 당연하게도 후퇴했다. 네네는,
 
-
요도도노가 큰 공을 세웠군요.
 
라고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코우조우스 이하 네네 휘하의 여관들에게 있어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으며,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항상 가시 돋친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대로 츠루마츠가 어른이 된다면 토요토미 가문의 중심에 요도도노와 이 적자가 자리잡게 되며, 키타노만도코로의 위세 같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깃거리나 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츠루마츠가 출생한 다음 해인 1590 8.
 
히데요시는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가 칸토우[東]에서 패권을 쥐고 있던 호우죠우 씨[氏]를 그들의 거성(居城)오다와라[小田原]에 몰아 넣었다.
 
히데요시는 장기 포위 방침을 취하여, 성안을 천천히 말라 죽이는 한편 포위한하고 있는 심심해 하는 부하 사졸들을 위해서 유녀(娼女)들을 불러 모으거나, 사루가쿠[]판을 벌리거나 하였다. 또한 다이묘우[大名]들에게는 각자의 처첩(妻妾)들을 부르게 하였다.

 [그렇게 하였다]

 고 네네에게도 편지로 알려왔다. 그 편지라는 것은,

재빠르게 적을 새장 속에 집어 넣었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위험한 전투는 없을 것이기에 걱정 마시길.
도련님(츠루마츠)이 보고 싶지만, 그러나 이것도 장래를 위해서, 천하를 평온하게 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니 그립다고 생각하는 기분도 떨쳐버릴 수가 있다. 나도 여기서 뜸 같은 것을 받으며 몸에 신경 쓰고 있으니 아무쪼록 걱정하지 말길.

 어쨌든 이번 오다와라 싸움은 오래 걸릴 것이라고 지시하였다. 그 때문에 다이묘우[大名]들에게는 마누라를 이곳으로 불러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라고 히데요시는 본제에 들어갔다. 요컨대 히데요시는 요도도노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그 점에 대해서 네네의 심정과 입장을 살피고 자질구레하게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후 또한 거기에 그녀의 자존심에 주름이 가지 안도록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붓을 멈추지 않고 단번에 써내려 갔다.

우와같이(위와 같이)
싸움이 오래될 것이라고 말하였슨 즉
그 때문에
요도 녀석을 부르려고 하네
그쪽도
슬슬 요도에게 말하여 이쪽으로 오는 건에 대한 준비를 시키게
그쪽 다음은 요도도노가 나랑 마음이 맞는 것 같더군

 정실인 네네에게서 요도도노에게 오다와라로 내려가라고 명령해 주길 바란다, 준비를 시켜주게~하고 히데요시는 그녀의 지위와 체면을 그렇게 세워주고, 그녀가 가질 것 같은 불쾌함을, 그렇게 명령하게 함으로써 바꾸고자 하고 있었다.
 
여전하시군
 
하고 네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히데요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마음 밑바닥을 꿰뚫어보면서도 이래서는 화내기도 조금 그랬다. 더구나 편지에서,

그쪽 다음으로 요도도노가 나랑 마음이 맞는다.
 고 뻔뻔하게 네네를 우선시하는 것 같아서 이 편지 자체가 네네에 대한 사랑의 편지인지 하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욱이 말미에는,
나도 늙었다.
 는 한 줄을 히데요시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곧이어 오다와라에서 행해질 터인 요도도노와의 사이의 뜨거운 이불 속에 대해서 네네의 상상이나 연상을, 이 한 줄로 막아버리고자 하는 배려이며 이것은 네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는 뭐 둘러대기에는 좋지만 그러한 상냥함의 표현으로 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늙었으니 네네는 조금만 질투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라고 네네는 코우조우스에게 보여주었다. 네네는 오다와라에 오라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것을 코우조우스에게 읽게 하여도 치욕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편지에서는 히데요시가 네네를 요도도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네네의 지위를 요도도노에 대해서도 윗줄이며 명령권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다와라에서 확인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네는 요도도노에 대해서 그리 가벼이 몸을 움직여 자신의 입으로 준비를 시킬 정도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한 네네라면 오히려 히데요시도 편했을 것이다. 이번 경우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 편지를 써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잘 하도록 힘써주세요

 라며 코우조우스에게 명령했을 뿐이었다. 코우조우스는 당혹했다. 요도도노에게 어떻게 힘쓰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하며 어느 정도로 요도도노의 준비를 도와야 하나?

 “…글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사옵니까?”

 라고 네네에게 되묻자,

 뭘 당혹해 할 것은 없습니다

 라고 처음으로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네네가 말하기를 자기에게도 이렇게까지 마음 쓴 편지를 보내는 히데요시이다. 당사자인 요도도노에 대해서도 편지를 보내어 충분한 것을 세세하게 지시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쪽에서 뭔가를 해 줄 것도 없다. 있을 턱이 없다. 쓸데 없는 것을 하면 반대로 창피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코우조우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히데요시의 편지에는 네네에게서 요도도노에게 말하라고 써있지 않은가?

 코우조우스도 융통성이 없으시군요

 네네는 한번 웃고는,

 그것은 즉, ‘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히데요시의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부는 이미 네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만으로 목적을 이루었다. 내용에 대해서 거기까지 꼼꼼히 할 필요는 없었다.

 당신이 요도도노의 늙은 시녀들에게 이번에 칸토우[東]로 가는 거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말 정도만 해 두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라고 네네는 말했다.

  1. 노부나가는 부하들이 쓸데 없이 축재(蓄財)하는 것을 싫어했다. 영지(領地)를 하사하면 그 영지에 걸맞게 부하들을 등용하여 더 많은 활약을 하길 원했다. 그 예로 중신 서열 No.1인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 信盛] 같은 경우는 영지를 하사하여도 그것을 이용하여 부하들을 등용하기는커녕 자기 배만 불리자 쫓아버릴 정도였다(물론 이것 외에도 서열과 영지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였던 것도 있었다). [본문으로]
  2. 제대로 된 정식 승려가 되기에는 돈과 빽이 필요했다. [본문으로]
  3. 우리나라에 ‘개성상인’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일본에도 ‘오우미상인[오우미쇼우닌=近江商人)]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재가 뛰어났다. [본문으로]
  4. 여기서는 토요토미 가문의 직속이 아닌 나중에 항복한 다이묘우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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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4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곧 츠루마츠의 사망과 히로이의 탄생이 이어지겠군요(ㅎㄷㄷ..)

    최근에 이 시기와 관련이 있다면 있는 엔도 슈사쿠의 '숙적'을 읽고 있어서인지 한결 더 다가 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카톨릭 출판사답게 전문번역이라고 보기엔 좀;; 기타노만도코로를 북정소로 번역한 센스는;;; 히데요시의 어머니를 '대정소'로 번역 해 놓은것도 참..)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5 0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저도 돈 받고 일반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번역을 한다면, 북정소나 대정소로 번역했을 걸요 ^^
    거기다가 각 이름들도 국어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카토우 키요마사 -> 가토 기요마사... 라던가..
    이시다 미츠나리 -> 이시다 미쓰나리....
    라던가....
    .
    .
    저는 이글을 번역할 때, 당시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아는 분들을 기준으로 쓰는 것이고, 아마 카톨릭 출판사의 번역가 분은 당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분들도 생각해야 하기에 그러시지 않으셨을지..

    참... 근데 淀殿는 어떻게 표현했나요? ^^
    요거 번역의 차이도 제 나름대로 흥미가 일더군요.
    요도도노인지... 요도기미...인지.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도기미로 나왔던걸로... 음, 그런데 요시카와 모토하루는 좀 에러였던걸로(;;;) 쩝;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5 1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도기미군요...^^
    (당시는 사용되지 않던 에도 시대 비속어다 보니 전 절대 사용하지 않으려 해서 어떻게 하셨나 궁금해서요)

    확실히 모토하루의 성은 에러군요... 하긴 센고쿠 덕후들이나 킷카와라고 읽지 보통은 요시카와로 읽겠죠^^(...그거 번역한 분은 조금 공부가 부족했나 보군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초반에는 키츠카와(킷카와를 한국 표기법으로 쓰면 키츠카와가 되는가요? 좀 다를법 하긴 하지만서도..) 모토하루로 적더니만 2권에서 근성이 떨어졌는데 요시카와 모토하루로 쓰는 센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분이 썼다던데 센고쿠 덕후분은 아니셨던듯(ㅁㅎㅎ..)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5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떨어졌는데->떨어졌는지

    개인적으로 ctrl+V가 안되서 전부수정은 좀 버겁군요(쿨럭)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6 0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키츠카와는....(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책에 한자 위에 후리가나 붙여 있는 것(ルビ)이... 워낙 작다보니 'つ'하고'っ' 가 구분이 안 가셔서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 초반에는 독자를 위해서 きつかわ 라고 루비가 달려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센고쿠 덕후가 아니시다 보니 킷카와는 들어보지 못하셨겠고, 당연 키츠카와...) 하지만 책에서도 한번 나온 이후부터는 그냥 한자만 있었을 테고...
    그러다보니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새로운 모토하루의 등장인가!! 더구나 이 놈은 요시카와이고..."가 되지 않았을지...(즉 번역가분은 스토리를 이해 못하면서 번역하셨나 보네요..아쉽군요.)
    그리고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つ'와'っ'구분이 안되었는데, 21세기 들어와서는 그것도 구분이 될 수 있게 발전하더군요.

    ps;대사관이라고 하니 예전에 얼핏 흘려 본 것이 떠오르는군요... 한국 어느 외교관은 일본 주재(駐在)인 주제에 일본말은 못하고 영어만 써서, 어느 신문란에 가십 처리 된 것이 기억나는군요. 쓸데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지 일반지는 아니고 스포츠지 사회면에 조그맣게...(물론 일본 스포츠지도 막장이라 없는 사실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한국 외교관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s2;저도 오타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다보니 신경쓰지 마시길.. ^^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26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도 슈사쿠 원서를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네요(ㅎㅎ)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3.27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도 깃카와씨는 있지 않나요? 요시카와씨가 더 흔해서 그렇지…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29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겠죠...저는 갑자원 야구 중계 보면서 "노부나가(信長)"란는 성(姓)도 본 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히데요시[秀吉]의 그녀에 대한 태도는 이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당신은 특별에서도 특별하니까

 라고 히데요시는 말버릇처럼 말했다. 수 많은 측실을 거느리고 있지만 네네 당신과 그녀들은 다르다. 각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당신이 사랑스럽다는 애정의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지위를 지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네는 토요토미 가문의 유일한 정실(正室)이며 토요토미 가문 그 자체였다. 많은 측실들은 법제상 고용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히데요시가 주군(主君)인 것과 마찬가지로 네네 역시 주군이었다. 때문에 '특별에서도 특별하다'는 것이다.

 사실 토요토미 가문의 정실인 네네의 지위는 어떤 시대의 어느 귀부인(貴婦人)보다 더욱 화려했다.
 
히데요시가 나이다이진[大臣]이 되었을 때[각주:1] 동시에 그녀는 종삼위(從三位)가 되었고, 더욱 지위가 높아져 1587년에는 종이위(從二位)가 되었다. 계속해서 이 해의 9 12, 그녀는 시어머니인 오오만도코로[大政所]와 함께 오오사카[大坂]에서 쿄우()의 쥬라쿠테이[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히데요시의 취향대로 꾸며진 행렬, 행장(行裝)은 과거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수행하는 여관(女官) 만으로도 500명 이상에 달했을 것이다. 네 명 이상이 메는 화려하게 치장한 가마가 2백정, 두 명이 메는 평범한 가마가 100, 짐을 멘 상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에 따르는 여러 다이묘우[大名]들과 경호 무사들은 전부 타는 듯이 붉은 색의 복장을 하고 있어, 그야말로 이 나라 최고 귀부인(貴婦人)의 상경 행렬을 장식하는데 어울렸다.

 더구나 길가에서 남성은 구경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라고 하더라도 구경꾼 속에 섞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유는 그들이 젊은 여관(女官)들의 미모를 보고 저속한 마음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배려 때문이었다. 속으로 품는 마음조차 키타노만도코로에 대해서 불경(不敬)이라고 하였다. 이 행렬은 굉장한 평판을 불러 천하에 선전되었다. 키타노만도코로야 말로 일본국 넘버 원 귀부인이라는 인상을 60여주()에 전해진 것은 히데요시가 연출한 이 행렬의 성공에 의한 것이 컸다.

 다음해인 1588 4 19.
 
즉 키요마사가 히고[肥後] 책봉되기 1개월 전, '토오토미노 요시코[豊臣 吉子]'는 종일위(從一位)로 승진하였다. 이미 신하로서는 가장 높은 위계였다. 오와리[尾張] 키요스[清洲]의 다세대 주택에서 조악한 결혼식을 올린 옛날을 생각해보면 그녀 자신조차 믿기 힘든 영달(榮達)이었다.

 그러나 제가 저 자신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요

 라고 네네는 항상 시녀들에게 말했다. 그녀의 굉장한 점은 그 영달보다도 오히려 그 영달로 인해 조금도 그 인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는 종일위(從一位)가 되었어도 절대 쿄우[京] 말투나 궁중 말씨를 사용하지 않았고, 어떤 경우건 듣기 힘들 정도로 빠른 오와리[尾張] 사투리를 썼다. 평소 히데요시에게도 그러했다. 토우키치로우[藤吉郎]의 마누라라고 불렸던 아주 옛날 화장도 못하던 맨얼굴일 때랑 조금도 변함이 없어,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 보는 앞에서도 떠들썩하게 말싸움을 펼쳤으며, 또한 시녀들을 상대로 항상 큰소리로 웃었고, 밤에 이야기라도 할 때에는 옛날 가난한 시대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말하여 모두를 웃겼다. 또한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의 부인인 오마츠[松]와는 기후 성[岐阜城] 밑의 오다 가문[織田家]의 무사들이 사는 곳에서 이웃사촌으로 친하게 지냈는데, 그 당시 담을 사이에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네네의 태도는 오마츠에 대해서도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다시는 없을 분이시다

 고 오마츠는 자주 말하였다.

 키타노만도코로님은 타이코우(太閤)님 이상 일지도 모른다

 오마츠는 예전부터 그 적자(嫡子)인 토시나가[利長], 둘째인 토시마사[利政]에게 말했다.
 
이 오마츠라는 마에다 토시이에의 조강지처 자체가 토시이에의 창업(創業)을 도우며 왔던 만큼 보통의 여성은 아니었다. 토시이에가 죽은 후에는,
 
'
호우슌인[芳春院]'
 
이라는 요염한 법명(法名)으로 불리며[각주:2], 마에다 가문에서는 '비구니 쇼우군[尼将軍]'[각주:3]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권세가 있었다. 이것은 훗날의 이야기가 되지만 토시이에가 죽은 뒤 그녀는 마에다 가문의 앞날에 대해서 하나하나 네네와 상담하였고, 하나하나 네네의 의향에 따랐다. 그 적자(嫡子) 토시나가에게도,

 모든 것을 키타노만도코로님이 하시는 말씀대로 따르렴

 이라 훈계하였다. 이럴 정도로 네네가 가진 소탈함과 총명함은 그녀의 인기를 만들었고, 그것이 토요토미 다이묘우[大名]들 속에서 은연 중에 정치 세력을 만들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네네가 가진 위엄과 덕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히데요시의 네네에 대한 과대할 정도의 애정과 존경이 세상에 투영되어 있었다. 세상의 누구나 히데요시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 중 넘버 원은 키타만도코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보게, 이보게

 하고 히데요시는 쿠게(公家) 말투로 네네를 불렀다. 편지에도 그렇게 썼다.

 이보게 밥을 많이 취하시게

 라는 단지 그렇게만 써서는 성을 지키고 있는 네네에게 보냈다. 밥을 많이 먹고 있는가? 라는 정도의 것만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농담도 잘 하셔
 
라고 그럴 때마다 네네는 생각했다. 그녀는 남다른 정도로 건강하였으며 평소 식욕이 왕성하였고, 그렇지 않아도 살집도 넉넉한데 이 이상 먹는 것에 격려 받는다고 하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만 앙상한 히데요시는 풍만한 여성을 좋아하는 부분도 있었으며, 시대도 그러한 여성을 미인이라고 하였기에 미용 상의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식욕이 어떻든 이러한 히데요시의 극진함이 토요토미 가문에서 그녀의 위치에 한층 더 무게를 실려 준 것은 확실했다. 예를 들면 1587년의 큐우슈우[九州] 공략전에서 히데요시는 오오사카[大坂]에서 수백 리 떨어진 히고[肥後] 야츠시로[八代]의 진영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오오사카[大坂]의 네네에게 편지를 보내어 전투 상황이나 큐우슈우(九州)의 정세 등을 알린 후 그 말미에

아니~ 나도 이번 싸움에서는 나이를 먹은 게 느껴지더군. 나도 모르는 새에 흰머리가 많아진 것이 아닌가? 이래서는 하나하나 뽑는 것도 힘들 정도야. 이제는 그쪽과 만나는 것도 창피할 정도네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듯한 내용이었다. 더구나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욱 네네를 기쁘게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리 흰머리가 늘었다고 해도 다른 여자라면 모를까 그쪽이라면 거리낄 것도 없지. 그쪽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이렇게 흰머리가 늘어난 것이니까

 여전히 아부는 천하제일이시군
 
라고 네네는 반은 어처구니 없이 생각하였지만, 그러나 본심은 기쁘지 않을 턱이 없다. 그 증거로 이 편지를,

 모두 보세요. 칸파쿠(関白) 전하의 웃긴 편지를

 라고 말하면서 시녀들에게도 읽게 해 주었다.
 
히데요시의 육체는 이 즈음부터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큐우슈우[九州]에서 개선한 즈음부터 밤에 네네의 침실을 찾아 오는 것이 드물어 졌다. 오더라도,

 여어~ 건강하신가? 오늘도 밥은 취했나? 그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지

 라고 여전히 시끄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더욱더 네네에 대해서 친밀한 태도를 보이기만 할 뿐으로, 그런 주제에 남편으로써의 의무인 침실의 일까지는 기력이 미치질 못했다. 과연…… 히데요시는 늙었다. 먼 큐우슈우의 진중에서 보내왔던 늙음을 한탄한 편지의 내용대로 몸이 쇠약해졌을 것이다. 다른 측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칸파쿠님이 너무 오시질 않사옵니다

 라고 그녀들은 규원(閨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쓸쓸함을 네네에게 호소했다. 네네는 허물없이 그것을 들어 주었다. 그 때문인지 네네는 그런 그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어, 특히 카가노츠보네[加賀ノ局], 산죠우도노[三条殿], 마츠노마루도노[松ノ丸殿]등은 네네를 마치 언니와 같이 따랐다. 이 때문에 그녀들의 친정에서도 네네를 우러르는 곳이 많았다. 카가노츠보네는 마에다 토시이에와 그 부인인 위에서 언급한 오마츠를 양친으로 하는 딸이었으며, 산죠우도노는 카모우 가문[蒲生家] 출신이었고, 마츠노마루도노는 쿄우고쿠 가문[京極家] 출신이었다. 그녀들의 친정은 토요토미 가문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다이묘우(大名)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으며, 그런 가문들이 히데요시의 측실들을 통해서 네네와 엮여, 그것을 연줄로 삼고 있었다. 네네의 강한 정치력은 그녀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는 하여도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토요토미 가문 내의 세력에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히데요시가 이 남을 배려하는데 세심했던 남자이기에 여태까지 그랬던 적이 없었지만, 단 한 여성의 침실에만 완전히 빠져 살게 되었다. 아자이 가문[浅井家] 출신으로 어렸을 때의 이름을 챠챠[々], 토요토미 가문에 들어와서 처음엔 니노마루도노[丸殿]라 불리며, 결국에는 요도도노[淀殿]라 불리게 된 여성이었다. 그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요도도노의 혈통만큼은 히데요시가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네네는 깨닫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비천한 몸에서 출세를 했기 때문인지 귀한 가문에서 자란 여성에 이상할 정도로 동경을 품고 있었으며, 그것은 지금의 신분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히데요시가 아직 낮은 신분이었을 때, 당시의 위치로써는 오다 가문의 하급 무사를 양갓집으로 하고 있는 네네가 그 동경의 대상이었다.
 
남자의 동경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성장하지 않는 듯하군
 
하고 네네는 오히려 기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귀족을 좋아한다고 하여도 무가(武家) 귀족 만으로 상급귀족[公卿]이나 친왕(親王)의 딸 등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상급귀족이나 친왕의 딸들을 후궁에 데려오려고 하지도 않는 것은 그런 귀족들을 히데요시가 아직 젊었을 적에는 본 적도 없었기에, 현실적인 동경의 대상으로 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히데요시의 성적인 동경은 젊은 시절 눈으로 스친 범위 안을 한계로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히데요시의 가까운 무가 귀족은 오다 가문[織田家]이었다. 그 즈음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도, 지금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도 노부나가[信長]의 일족만이 최고의 귀족이었으며, 그 피를 잇는 여성이야 말로 히데요시에게는 공주님이라 불리기에 어울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 즈음 오다 가문에는 오이치[市]라는 노부나가의 여동생이 있었다. 미모를 따지면 가까운 지역에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의 용색을 가지고 있어기에, 히데요시도 맘 속으로는 높은 곳의 꽃이라도 쳐다보는 듯이 사모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오이치는 오다 가문에서 북() 오우미[近江]의 다이묘우[大名] 아자이 나가마사[浅井 長政]에게 시집을 갔다. 그 후 정세가 변하여 아자이 씨는 오다 가문에 멸망 당하여고, 오이치는 딸들을 데리고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와 재혼하였다. 그 카츠이에를 히데요시가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에 몰아넣고 멸망시켰을 때 오이치도 자살했다. 남겨진 딸들은 '우다이진[右大臣=오다 노부나가']님의 조카분들 이다'고 하며 소중히 다루고 교육시켰다. 그 세 명의 딸 중 장녀가 요도도노였다. 그녀를 오오사카 성[大坂城] 두 번째 성곽에서 살게 하였기 때문에 '니노마루도노[丸殿]'라 통칭되었는데, 그 즈음에 요도도노가 히데요시를 받아들였는지 어땠는지는 네네에게도 알 수 없었다. 네네가 추측하기에 요도도노가 히데요시를 그 침실에 받아들인 것은 큐우슈우[九州]에서 개선 후인 1588년 가을 즈음이었다고 생각하였다.

 그 증거로 이 해 즉 1589 1월 히데요시는 갑자기,

 요도()에 성을 만들겠다

 라고 말을 꺼내 그 건축을 동생인 야마토 다이나곤 히데나가[大和 大納言 秀長]에게 명하였다. 요도는 야마시로[山城]에 있으며, 오오사카[大坂]에서 쿄우[京]에 올라갈 때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 거기에 요도도노를 살게 하겠다고 하였다. 측실을 위해서 성 하나를 세운 예는 지금까지 히데요시에게 없었던 것으로, 그만큼 이 여성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굉장한 일이군요

 라고 네네는 그것을 들었을 때,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히데요시에게 말했다. 히데요시는 목을 움츠리며 급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들었는가?”

 마치 남일을 딴사람이 들을까 두렵다는 듯한 그런 말투였지만, 얼굴만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 애교로 가득 찬, 악의를 완전히 없애버린 웃는 얼굴에 네네는 몇 번이나 속아 넘어왔던 것일까? 어쩌면 반평생을 웃는 얼굴에 낚여서 보내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건 주인댁이시다

 라고 히데요시는 힘을 실어 말했다. 보통의 측실이나 여관(女官)들이 아니라 노부나가의 조카인 이상 주인댁이다. 주인댁이기 때문에 각별한 대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의리라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주인댁인 것입니까?”

 노부나가에게서 보면 여동생의 딸이었다. 여동생의 딸까지 주인댁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지~ 아니지~ 주인댁이다

 히데요시는 근거를 들었다. 1583 4 23.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에서의 옛 동료 시바타 카츠이에를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로 몰아넣었을 때, 카츠이에는 결국 싸움을 포기하고 자살하겠다는 뜻을 히데요시에게 통고하였다. 그때 토미나가 신로쿠로우[富永 新六郎]라는 가신을 히데요시의 진영에 파견하여,

 여기 세 명의 딸이 있다. 아자이 나가마사의 딸들이다. 귀하도 알고 있겠지만 3명은 돌아가신 주군과 같은 피를 잇고 있으니, 귀하에게 있어서도 주군의 혈통에 해당한다. 필시 귀하라면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귀하의 진영으로 보낸다.”

 고 입으로 전해왔다. 히데요시는 당연히 카츠이에의 희망을 받아들였다. 이 때 [주군의 혈통]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요도도노와 두 명의 여동생이 히데요시 주군의 혈통이라는 것은 역사 속에서 이미 공시되었고 공인되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네네에게 그 전말을 이야기하며, 그에 따라 요도도노에게 행하는 각별한 대우에 이유를 붙이고자 하였다.

 그건 당연히...

 죽은 노부나가인 것이었다.

 알겠습니다만

 하고 네네는 말하며 턱을 끌어서 어색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이상 이 호색한을 몰아넣어보았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핑계로는 그녀의 이성도 감정도 납득은 할 수 없었다.
 
주군의 혈통이기에, 즉 그렇기에 밤마다 그 여성의 침실에서만 보내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라는 점을 언제나 우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죠우도노나 카가노츠보네도 그 점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들은 네네의 방에 놀러 올 때마다 자란 환경에 비하면 이외라 할 정도로 노골적이게 험담을 하였다. 물론 히데요시에 대한 험담이 아니었다. 요도도노에 대해서였다.
 
요도도노는 자신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거나, 콧대가 높아서 히데요시님에게 대해서도 거만하다거나, 요도도노 소속 시녀(侍女)의 수는 밥짓는 여자까지 포함하면 500명은 될 거라는 거나, 또 요도도노는 오오쿠라쿄우노츠보네[卿局]나 쇼우에이니() , 예전 아자이 가문을 섬겼던 여자 낭인(浪人)들을 너무 모으고 계십니다 등, 그러 종류의 험담이었다.

 저런~저런~”

 네네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안색도 바꾸지 않고 끈기 있게 잘 들어주고 있었다.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녀들에게 동조했다가는 토요토미 가문의 정실이라는 자신의 입장과 체면을 손상시킬 것이다.

 우선은 화를 푸시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지켜 보아 주세요.”

 라고 네네는 때때로 그녀들을, 그녀들의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달랠 수 밖에 없었다.
  1. 1583년. 정이위(正二位). [본문으로]
  2. 방춘(호우슌=芳春)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젊은 시절’이란 뜻이 있다. [본문으로]
  3. 카마쿠라 막부[鎌倉 幕府]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頼朝]가 죽자 비구니가 된 그의 부인 호우죠우 마사코[北条 政子]가 아직 어린 쇼우군[将軍]의 정무를 대행했던 예가 있어, 이후 성주 혹은 다이묘우[大名]였던 남편이 죽고 후계자가 어려 미망인이 권세를 가졌을 때 ‘비구니 쇼우군’이라 일컬어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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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eomin61 BlogIcon 푸른하늘 2008.03.16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너무 좋은 글이라 불펌해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네요. ㅎㅎㅎㅎ
    그런데... 이런 좋은 콘텐츠가지고 계시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나요?
    티스토리 같은데로 독립해 보지 그러세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16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른하늘님 오셨군요 ^^
    방문 감사드립니다. 네이버에도 좋은 분들은 많으셔서요..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3.16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역시나 요도도노는 참 인기가 없으시군요(-_-;;) 뭐 제가 봐도 아버지의 원수에게 잠자리를 허락하면서 썩 건실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긴 힘드리라 생각은 했지만서도.. 아무래도 요도도노 그 개인의 자질의 문제이려나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16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싹싹했더라도 역시 미움받지 않았을까요? 이건 행동의 문제라기 보다는 질투라는 정신적인 문제이다 보니 그 때가서는 또 다른 것을 가지고 꼬투리잡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nagoomo BlogIcon 볼리바르 2008.03.17 0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총애 측면에서는 마츠노마루나 카가씨가 더 뛰어났는데도 요도기미만 유독 두번이나 수태한걸 보면 역시 의심스럽지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3.17 2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오노 하루나가(大野 治長)랑 칙폭해서 나은 거 같기는 하지만....
    히데요시는 그 전에도 (실존은 불분명하지만) 1남1녀를 가진 적도 있은 만큼 단정은 지을 수는 없는 것 같더군요.
    요도도노만 임신한 것도 그녀가 난자를 많이 배란할 수 있는 몸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현재도 임신 유도제 같은 것을 먹을 경우 쌍동이 낳을 확률이 높다고 하니까요).

  7. 이노센스 2010.02.13 2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에다 도시이에의 아내인 마츠의 법명은 일본어로 호슌인이라 읽습니다. 난코보 덴카이처럼 승려의 이름이나 은거 이후의 자호는 대개 음독으로 읽는다는 이 점 참고하시면 더욱 매끄러운 번역이 되시리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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