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가 만약 이에야스[家康]의 아들이라는 자리에 있지 아니했다면, 어엿한 센고쿠[戦国]의 영웅으로 한자리를 차지하며 찬란한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뛰어난 자질을 가졌으면서도 그 핏줄로 인하여 결국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고 일생을 끝마쳐 버린 것이다.

 히데야스의 자질을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히데야스가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 67만석이라는 큰 영지에 봉해졌을 때,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가 방문해서는,
 “만약 천하에 이변이 일어났을 시에 소인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의 눈으로 보건 동생인 쇼우군[将軍] 히데타다[秀忠]보다 히데야스의 기량이 뛰어나 보였던 듯 하다. 아비 이에야스조차 히데야스를 두려워 했던 듯한 흔적이 있다.

 세키가하라[関ヶ原] 결전 때, 이에야스는 히데야스를 결전에 참가시키지 않으려고 아이즈[会津]의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 景勝]를 봉쇄하는 임무를 주며 우츠노미야 성[宇都宮城]을 지키게 한 것은, 행여 히데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전공이라도 세워 쇼우군 히데타다를 능가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각주:1]. 히데야스라면 이런 혼란을 틈타 천하를 취할법한 실력을 가졌다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히데야스의 생모는 이름을 오만[お万]이라고 하며 미카와[三河] 치리후[池鯉鮒[각주:2]]에 있던 신사에 근무하던 신관[각주:3]의 딸이었다고 한다[각주:4]. 이에야스의 정실 츠키야마도노[築山殿]의 시녀였던 것을 이에야스가 미카와 오카자키 성[岡崎城]의 목욕탕에서 손을 대어 히데야스를 낳게 했다고 한다. 오만이 임신한 것을 알아챈 츠키야마도노는 질투를 증오로 바꾸어 오만의 옷을 모두 벗겨 나무에 매달아 채찍질했다고 한다.[각주:5] [각주:6] [각주:7]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히데야스는 그 용모가
동자개[ギギ – 매기와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와 닮았다 하여 ‘오기마루[於義丸]’ 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혼다 사쿠사에몬 시게츠구[本多 作左衛門 重次]나 이에야스의 적자 노부야스[信康]가 꾀를 내어 대면시켜 결국엔 이에야스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기마루에 대한 이에야스의 애정은 박했다. 그리고 히데야스가 태어난 지 5년이 지나 이에야스의 애첩 오아이노카타[お愛の方]에게서 히데타다[秀忠], 타다요시[忠吉]가 태어나자 한층 더 히데야스의 존재감은 엷어져 갔다.

 11살 때, 오기마루는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 秀吉]의 양자가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에야스가 바친 인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히데야스의 호탕한 기질을 사랑했다. 이름을 자신의 ‘히데[秀]’와 이에야스의 ‘야스[康]’를 따 ‘히데야스[秀康]’로 지은 것도, 거기에 칸토우[関東]의 명족(名族) 유우키 씨[結城氏[각주:8]]를 계승하게 한 것도 히데요시의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큐우슈우 정벌전[九州の役] 때, 히데야스가 후방에 있어 공을 세우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 흘린 것을 보고,
삿사 나리마사[佐々 成正]가 히데요시에게,
 “역시 토쿠가와 님의 기풍을 물려받으신 듯”
 하고 말하자 히데요시가,
 “그렇지 않네. 히데야스는 이제 내 아들이니 무(武)에 관해서는 이 히데요시를 닮은 것일세”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히데요시가 히데야스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졌었는지를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러한 일도 있었다. 히데야스가 16살 때의 일이라 하는데, 히데야스가 후시미[伏見]에 있는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있을 때, 승마장 관리인이 경주라도 하려는 듯이 히데야스의 옆으로 달려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것이다. 히데야스는 그 무례에 분노하며 단칼에 베어 죽여버렸다. 관리인의 죽음에 승마장에 있던 관리인의 동료들이 살기를 띠며 히데요시에게 히데야스를 벌 주라고 간청하였지만 히데요시는 오히려,
 “내 아들에게 무례를 범한 승마장 관리인이야말로 죽어 당연하다”
 고 말하며 히데야스의 호방함을 칭찬했다고 한다.

 그 히데요시가 죽은 뒤,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에 응어리져 있던 카토우 키요마사[加藤 清正],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 등 무공파 장수들과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등 문치파 관료들의 알력이 표면화 되었다. 결국 카토우 등이 이시다 미츠나리 습격을 꾀함에 이르자 미츠나리는 어쩔 수 없이 이에야스에게 보호를 청하였고 그 후 목숨을 건지는 대신 사와야마[佐和山]에 은거 당하게 된다. 사와야마로 향하는 미츠나리의 안전을 위해서 이에야스는 히데야스에게 호리오 요시하루[堀尾 吉晴]와 함께 호위를 맡도록 지시하였다. 히데야스는 그때 병사[足軽]들에게는 철포의 화승에 불을 붙인 채 경계하면서 행군하도록 하였으며[각주:9], 무사들에게도 갑주를 두르게 하여 완전 무장한 채로 행군하는[각주:10] 등 히데야스는 철저한 경계태세를 유지하였다.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 후 히데야스는 에치젠[越前] 후쿠이[福井[각주:11]]로 이봉(移封)되어 마츠다이라 성[松平姓]를 칭하였는데[각주:12], 1605년 히데타다가 쇼우군[将軍]이 되자 히데야스는 쇼우군의 형님이었기에 히데야스의 에치젠 가문은 “제도 밖의 에치젠 가문[制外の越前家]’이라고도 일컬어지며 남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다.
 히데야스가 에도[江戸]에 올 일이 있을 때에는 쇼우군 히데타다가 일부러 시나가와[品川]까지 마중 나왔고, 시나가와에서 에도로 향하는 길에서 히데타다는 자신의 가마를 히데야스보다 아랫자리에 위치하도록 했을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히데야스의 행렬이 에도로 가기 위해서
우스이 고개[碓氷峠]]의 관문소[関所]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이때 에치젠 가문은 철포 100정을 휴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정도 에도로 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 천하의 법도였다. 당연히 관문소의 하급 관리들은 철포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를 보고 히데야스가 말했다.
 “그것은 토자마 다이묘우[外様大名[각주:13]]에게나 적용되는 법도일 것이다. 내가 에치젠 츄우나곤 히데야스[越前 中納言 秀康]임을 알고 막는 것인가?”
 히데야스가 이렇게 말하자 관문소의 하급 관리들은, 츄우나곤이건 다이나곤[大納言]이건 법도는 법도올시다. 통과시킬 수는 없소 하며 말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시팔시팔댔다. 히데야스는 격노했다.
 “관문소의 법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욕설들과 츄우나곤 다이나곤하며 운운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도다”
 라고 말한 뒤, 부하들을 향해서,
 “저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버려!”
 하고 명령한 것이다.
  에치젠 가문의 무사들은 일제히 창을 꼬나 쥐고 칼을 칼집에서 뽑았다. 하급 관리들은 놀라 모두 도망쳤다.
 이것이 에도에 전해지자 히데타다는,
 “관리들이 도망친 것은 분별 있는 행동이도다. 아무리 관리들이 죽더라도 함부로 츄우나곤(히데야스)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는 법”
 이라 말하며 불문에 부쳤다고 한다.

 히데야스의 마음 속에 배다른 동생 히데타다가 쇼우군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느 날, 후시미[伏見]에서 오쿠니[阿国]를 불러 그 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오쿠니의 춤을 보면서 히데야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천하에는 수천 만의 여성이 있겠지만 이 오쿠니를 천하 제일의 여인이라 한다. 하지만 나는 천하 제일의 남자가 될 수 없으니 여자인 오쿠니에게조차 이르질 못하는구나. 이 어찌 분하지 않단 말인가”
 하고 말했다 한다.

 히데야스는 동생 히데타다가 쇼우군이 된지 2년 후에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유키 히데야스(結城秀康)]
1574년
미카와[三河]에서 태어났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의 둘째 아들. 1584년 코마키-나카쿠테 전쟁[小牧・長久手の戦い]의 강화 교섭 후 인질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의 양자가 되었고, 1590년 시모우사[下総]의 명문가 유우키 가문[結城家]의 양자가 되어 10만 1천석을 상속.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 후 마츠다이라 성[松平姓]으로 복귀하여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 67만석에 봉해졌다. 1607년 죽었다.

  1. 우에스기 정벌을 앞두고 세키가하라로 향하게 되는 오야마 평정[小山の評定] 후 약 1개월 간은 히데타다가 우츠노미야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후 히데타다는 후방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 昌幸]를 정벌하러 떠나고 대신해서 그제서야 그 임무를 맡게 된 것이 히데야스이다. 그 사이 미노[美濃]의 기후 성[岐阜城]이 너무도 단기간에 함락되어 상황이 변화되자 히데타다는 급히 세키가하라로 향하게 된다....한줄 요약하면 히데야스가 공 세울 것을 두려워 하여 처음부터 우츠노미야에 남긴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현 치류우 시[知立市]. 당시 연못[池]에 잉어[鯉]와 붕어[鮒]가 많이 살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신사(神社)의 말단 사무를 보는 직책인 샤닌[社人]이었다 한다. [본문으로]
  4. 나가미 시마노카미 요시히데[永見 志摩守 吉英]의 딸. 혹은 셋츠[摂津]의 의사인 무라타 이치쿠[村田 意竹]의 딸(또한 나가미 시마노카미가 나중에 셋츠로 가서 무라타 이치쿠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본문으로]
  5. 그렇게 매달린 오만을 혼다 시게츠구[本多 重次]가 구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낳게 했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6. 또는 오만이 매질을 맞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친척인 혼다 한에몬[本多 半右衛門]의 집으로 도망갔으며, 한에몬은 시게츠구에게 이런 일을 보고하여 시게츠구가 양육을 담당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7. 에치젠 가문의 가전[越前家伝]에 따르면 –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이에야스의 명령을 거역하고 혼다 한에몬[本多 半右衛門]의 큰엄마(伯母)에게 와서 도망치겠다고 하자 한에몬의 큰엄마는 성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오만은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 한다. 이 한에몬의 큰엄마는 과거 이에야스가 어렸을 때 시중 들던 여성이라 한다. 한에몬의 큰엄마 다음 날 입성하여 이에야스를 만나 오만에 대해 보고하였지만 이에야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그냥 한에몬 큰엄마 집에서 머물다 30일 뒤 쌍둥이를 낳았다 한다. 한 명은 곧바로 죽었으며 나머지 한 명이 히데야스라고 한다....(여담으로 쌍둥이 중 하나가 죽지 않고 나가미 사다치카[永見 貞愛]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당시는 동물이나 한꺼번에 여럿 낳지 사람은 한 명씩만 낳기에 쌍둥이는 사람 취급을 안 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8. 이에야스의 할머니부터 9대 쇼우군 이에시게[家重]의 생모에 이르기까지 에도 막부의 역대 쇼우군의 생모, 정실, 애첩, 측실 및 유모를 기록함과 동시에 그녀들의 출신 가문들을 기록한 [옥여기(玉輿記)]에 따르면, 유우키 가문은 카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초대 쇼우군[将軍]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頼朝]의 셋째 아들인 유우키 토모미츠[結城 朝光]를 시조로 하며 - 공인된 요리토모의 아들은 2대 쇼우군 요리이에[頼家], 3대 쇼우군 사네토모[実朝]로 두 명뿐. - 히데야스의 양아버지가 되는 유우키 하루토모[結城 晴朝]는 토모미츠의 19대손이라 한다. 참고로 유우키 토모미츠는 그 어미가 요리토모의 씨를 품은 상태로 요리토모가 오가와 토모미츠[小山 朝光]에게 하사하였고 그 후 태어난 것이 유우키 토모미츠라 한다....근데 이걸 믿으면 질 확률이 높다. [본문으로]
  9. 오발의 위험과 화승을 아끼기 위해서 막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본문으로]
  10. 갑옷과 투구 무게도 무시할 수 없는 터라 행군 시에는 상체 갑옷과 투구를 따로 챙겨서 이동하였다. [본문으로]
  11. 이때까지는 아직 키타노쇼우[北ノ庄]. 후쿠이[福居]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에치젠 마츠다이라 가문 3대이며 히데야스의 차남인 마츠다이라 타다마사[松平 忠昌] 때. 키타노쇼우[北ノ庄]의 키타[北]가 패배(敗北)와 글자가 같아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후에 후쿠이[福井]로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바뀌게 된다. [본문으로]
  12. 위키에 따르면 확실히 마츠다이라 성을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본문으로]
  13. 세키가하라 이후 토쿠가와 가문을 섬긴 가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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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oyalhouse.tistory.com BlogIcon Cavalier 2009.12.06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인은 매독이 가장 유력하지요?

    본디 성정이 색을 밝혔는지 혹은 삶에 대한 불만이 그 쪽으로 향했는지 (개인적으로는 후자) 모르겠으나 뛰어난 재능이 센고쿠 시대에 발휘되지 않은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아, 물론 발휘되면 히데야스의 손에 수많은 목숨이 이슬처럼 사라질테니 오히려 인류애적 차원에서는 잘된 일인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마쓰다이라 가문은 장남에게 있게 했지만 유키 가문은 4남에게 상속시켰던게 맞는가요? 벌써부터 까먹으면 안되는데.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09.12.06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죠....
      히데야스의 얼굴에는 츠키야마의 증오가 서려 있어서 이에야스는 그것을 볼 때마다 꺼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스님(텐카이[天海]라고 하지만 텐카이가 이에야스와 만나는 것은 빨라야 1590년인지라...)에게 그것을 없애는 기도를 부탁하자, 효험이 있었는지 그 증오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신 얼굴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더 정나미가 떨어진 이에야스는 히데야스를 히데요시에게 양자(...라 쓰고 '인질'이라 읽는다고 합니다)로 보냈다고 합니다.(1584년)

      상기의 이야기에서는 이에야스가 매독균을 보유하고 있었는 듯 하고 히데야스는 모친의 태내에 있을 때부터 매독균에 감염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쵸. 난세의 재능이라야 결국 사람 죽이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라.... 그래도 자질(뭐! 패왕의 자질을 가졌다고!? - by 삼국전투기 4권 장수가 조조를 평하며)과 성망을 갖추었으면서도 결국 반란 일으키지 않은 것만은 평가해야 할 듯.

      다섯째 아들 나오모토[直基]라고 하는데 바로 위에 넷째가 일찍 죽었으니 넷째라 해도 무방할지도...

      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닌지라 그럴 땐 위키를 자주 이용합죠. ^^

  2. 나라 2009.12.07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우키 히데야스가 실제로 기량을 보인 적이 있나요? 기량을 펼친 적이 없다면 있는지 없는지 아는 건 불가능할텐데..
    물론 히데타다에 비한다면야...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09.12.08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니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에피소드 3개만 들으면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뭐 머리 짱 좋은 니체니 할 수 있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도 대여섯개 이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 인물의 그릇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3. Asura 2010.01.10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의 씨라고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좋아했던 유키 히데야스군요.
    '그' 미츠나리가 좋아했다면.. 분명 재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얼굴이 동자개 닮았든, 고름이 뚝뚝 떨어졌든, 상대가 미츠나리라면 납득이 가네요..(업병(한센병유력)을 앓은 오타니 요시츠구와 친하게지냈던 인물).

    이사람에 대해서는 유곽에 들락날락하다가 스스로 코를 잘랐다는 애기도 있던데.

    저는,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받은 마사무네를 '이시다 마사무네'라 명명하고 평생 아꼈다는 에피소드가 제일 좋습니다.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0.01.10 2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말씀하신 대로일지도 모릅니다.
      (후세에 전해진 미츠나리에 대한 잘못된 인상이 워낙 많아, 있던 사실도 없애다는 것이 많은 것을 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코를요? 으~ 끔찍하군요.(전 처음 들어봅니다만... ^^; )

  4. shiroyume 2012.02.13 15: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밌네요. ^^

一.

 유우키 히데야스라는 젊은이는 처음부터 토요토미 가문[豊臣家] 사람이 아니었다. 1574년 토쿠가와 가문[徳川家]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이다. 이 젊은이만큼이나 어두운 사정 속에서 태어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즈음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기후[岐阜]를 근거지로 하여 킨키[近畿]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토쿠가와 가문은 오다 가문 맹하(盟下)의 다이묘우[大名]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이제 서른을 조금 지났을 뿐이었다.

 토오토우미[遠江] 하마마츠[浜松]가 – 이에야스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거성(居城)이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정실인 츠키야마도노[築山殿]는 이에야스의 그 전 거성인 미카와[三河] 오카자키[岡崎]에 머물면서 이 새로운 성으로 가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때때로 고향에 돌아오듯이 오카자키 성(城)에 돌아왔던 것이었다.

 오카자키 성(城) 성주의 위치에는 적자(嫡子) 노부야스[信康]를 어린 나이지만 앉혀놓고 있었다. 노부야스는 부친과 따로 살며 모친과 함께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모친 츠키야마도노는 생활 면에서 허세가 있는 여성으로, 그 주변에는 많은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시녀들 중에서,
 [오만(おまん)]
 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오카자키 성 밖
치리후[池鯉鮒] 근방에 있는 시골 신사(神社)의 딸로, 출신 성분이 좋지는 않았다. 거기에 츠키야마도노를 모시며 세월을 보내어 나이도 한창때가 지나고 풋풋함의 고개를 넘어 이제는 소녀라고 하기에 조금 창피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오만이 22~3일 즈음의 일일 것이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오만은 혼기를 놓친 채 츠키야마도노를 모시는 시녀로써 평범한 인생을 보냈음에 틀림이 없다.

 이에야스는 오카자키 성(城)에 돌아오면, 매일 밤 안채로 건너갔다.
 당연했다. 안채가 이에야스의 가정인 것이다. 안채의 주인은 정실 츠키야마도노이며,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시녀들은 모두 츠키야마도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이에야스는 안채로 건너가는 복도에서 오만에게 눈이 가 그녀를 품었다.
 오만이 이에야스에게 안긴 장소에 대해서 역사도, 오만도 침묵하고 있다. 필시 츠키야마도노가 거주하는 안채 건물은 아닐 것이다. 츠키야마도노는 질투심이 강하였고 이에야스 역시 항상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채가 아닌 성내의 다른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어쨌든 이에야스는 이 오만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시녀에게 허리를 주무르게 하고 있었다. 어쩌다 그게 오만이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더구나 이에야스는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한여름에 조금 더위를 식히기 위해 오이라도 먹는 듯 별다른 생각 없이 오만과 육체관계를 맺었다. 그랬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그 후, 예를 들면 먹은 오이의 색이나 모습 등을 잊어버리듯이 오만을 잊었다. 모든 것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 별다름 없음이 별다름 없는 채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 단 한번의 기회로 오만이 임신한 것에 있었다. 오만은 그 사실을 이에야스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 알릴 기회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오만의 직접적인 주인은 츠키야마도노이며, 오만은 그녀의 거처에서 일했고, 평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다 그 거처나 복도에서 이에야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있어도 동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고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에야스는 25리(里[각주:1]
) 동쪽에 있는 하마마츠에서 항상 일하고 있어 오카자키 성(城)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좋을까…’
 하고 오만은 굉장히 심각하게 그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와 관습이 계속 그녀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었다.

 수개월이 지났다.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그것이 밝혀졌다. 임신한 모습이 여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츠키야마도노에게 알린 사람이 나왔던 것이다. 츠키야마도노는 오만을 불렀다. 무릎 근처까지 불러서는,

 “묻노니 너의 몸은 홀몸이 아닌 듯 하구나”

 하고 내장까지 파고드는 듯한 시선으로 오만을 째려보며 심문이 개시되었다. 부친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도리에 어긋난다면 죽여버려도 상관 없었다.
 츠키야마도노가 품고 있던 의심 중 가장 두려웠던 것은 부친이 이에야스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라면 문제가 간단치가 않았다.

 츠키야마도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이미 15살이 되어 있는 토쿠가와 가문의 적자 노부야스였다. 토쿠가와 가문에는 그 외에 아들이 없었다. 만약 첩에게서 둘째가 태어난다면 가문이 번창할 수는 있겠지만 츠키야마도노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 는 사정도 있지만 무엇보다 츠키야마도노를 미치게 한 것은 남들보다 훨씬 강한 그녀의 질투심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벌을 내리겠다!”

 하고 낯빛을 바꾸어 소리지르면서 피고를 협박하였다. 오만에게 있어 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이에야스가 부친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밖에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오만은 외쳤다.

 “이 씨는 주군의 것입니다”

 고 말했을 때, 위에서 내려다 보던 츠키야마도노의 얼굴은 더욱 섬뜩하게 변하였고 일순 침묵하며 잠시 궁리하는 듯했다. 츠키야마도노는 생각했다.
 ‘태내에 있는 아이까지 한꺼번에 죽여버리자’
 이런 경우, 죽이는 것이 가장 좋았다.

 “거짓말 하지 말아라! 네 년이 미쳤구나!”

 고 츠키야마도노는 더욱 큰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께서 너처럼 흙내 나는 계집에게 정을 주실 리 없다. 너는 미친 것이 아니면 거짓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몸으로 듣겠다. 너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여 진실을 말하게 하겠다 - 고 츠키야마도노는 말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 죽여버리자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지혜라고 말해도 좋았다.

 츠키야마도노는 시녀들에게 명하여 오만의 수족을 잡게 하고, 그 옷을 쥐어 뜯어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 사지를 짐승처럼 새끼줄로 묶어 성 안에 있는 나무숲에 끌고 가서 나무의 가지에 매달았다.
 - 죽어라~
 시녀들은 때릴 때마다 외치며 부러진 활로 그 배를 채찍으로 때리듯이 때렸다. 오만은 이미 6개월의 임신부로, 어째서인지 보통보다 배가 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쌍둥이가 들어있었다. 때릴 때마다 마른 북을 치는 듯이 묘한 소리가 났다. 오만은 이미 생명체로서의 아름다움도 위엄도 없이 단지 허공에 매달려 배를 동성(同性)에게 계속 매질 당할 뿐이었다. 필시 태내의 아이는 유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찬 바람도 맞았다. 여자들은 숲을 떠났고 실신한 오만만이 허공에 떠 있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계절이 여름이라 얼어 죽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밤이 되자 모기가 달려들었다. 그녀는 실신에서 깨었다.

 자기 몸의 이런 비참함에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다. 통곡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남아있던 것도 다행이었다. 그 울음 소리가 다른 건물에까지 들렸다. 거기에서 숙직하고 있었던 것이 혼다 사쿠자에몬 시게츠구(本多 作左衛門 重次)였다.

 [오니사쿠자(鬼作左)][각주:2]
 라고 불리는 토쿠가와 가문의 명물(名物)이었다. 이미 전편에서도 히데요시의 생모 오오만도코로[大政所]의 숙소 주위에 태워 죽이려고 마른 장작을 쌓아 감시했던 남자로 등장하였다. 충실한 개와 같이 자신의 주가(主家)만을 생각하고 더구나 융통성이 없었으며 굉장히 강하다는 – 마치 표본과도 같은 미카와[三河] 사나이였다. 이 사쿠자가 숲에서 나는 소리를 수상히 여겨 짧은 창[手槍]을 꼬나 쥐고는 그 주변을 탐색하여 곧 거기에 매달려 있던 고깃덩이를 발견했다. 소리는 거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너는 오만이 아니냐?”

 사쿠자도 이 시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만의 큰어머니는 예전에 토쿠가와 가문의 안채에서 일했던 여성으로, 지금은 하마마츠 성 밑에서 살며 사쿠자의 친척을 남편으로 두고 있었기에 자연히 사쿠자는 친족 뻘인 오만을 알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에야스의 씨를 품고 있다고 한다.

 “설마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이 남자는 몇 번이나 확인하였다. 미카와 사람은 성실하지만 의심이 많다. 그것을 결국 납득한 후 사쿠자는 오만은 나뭇가지에서 끌어내려 풀 위에 눕혔다. 새끼줄을 풀어 주고는 남자 것이지만 옷도 주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그날 밤은 사쿠자의 독단으로 성에서 내보내 부하 세 명을 붙여서는 오만을 자기 큰어머니 집에 맡겼다.

 이에야스는 이 날 오카자키에 있었다. 사쿠자는 그 다음날 등성(登城)하여 곧바로 이에야스의 옷깃을 붙잡고는,

 “오만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없으십니까?”

 하고 확인하였다. 이에야스는, 그가 여러 차례 그러했듯이 표정을 숨겼다.

 “기억에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오만이 어떻게 되었는가?”

 “오만이 임신하였습니다”

 “설마!”

 라는 감정을 이에야스는 주체할 수 없었다. 사랑했다는 마음의 기억도 없었으며, 몇 날 밤을 함께 보냈다는 몸의 기억도 없었다. 단 한번 그냥 건드렸을 뿐이었고 얼굴조차도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으며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 정도로 희미한 상대가 갑자기 주군의 아이를 낳는다, 주군이야말로 부친이라는 말을 느닷없이 들어서는 아무런 감동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강제적으로 떠맡김 당하는 듯한 방식에 불유쾌한 감정까지 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해 두마”

 하고 이에야스는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 이에야스에게 오만을 처벌한 츠키야마도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해서 떠들썩하게 하지 않는 한 공식적인 것이 되지 않을 것이며, 공식적인 것이 되지 않는 한 그 아이는 토쿠가와 가문의 씨라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음 해 2월 8일. 오만은 쌍둥이를 낳았다. 하나는 질식사했으며, 하나는 이불 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남자 아이였다.
 사쿠자는 그 소식을 하마마츠의 이에야스에게 알렸다. 이에야스는 토쿠가와 가문의 문장(紋章)이 들어간 아이 옷을 내려 약식이지만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만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또한 생모와도 만나지 않았다. 깊은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과정과 사태가 아무래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어떠한 마음의 움직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군의 아이이십니다. 이름을… 붙여 주십시오”

 하고 사쿠자는 요구했다. 아이의 이름을 그 부친이 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야스는 그러나 생각하는 것도 귀찮은 듯 했다.

 “어떤 얼굴인가?”

 하고 사쿠자에게 물었다. 사쿠자는 붓을 들고 그 아기의 얼굴을 그렸다. 처참하게 못 그린 그림이었다. 어딘가 메기와 닮았다. 이에야스는 그 그림을 받아서는,

 “이건 동자개(ギギ)다”

 하고 중얼거렸다. 동자개(기기, 黄顙魚)라는 것은 미카와[三河] 근방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기바치’, ‘게바치’, ‘긴교’라고도 하며 메기의 일종이지만 메기보다는 몸통이 가늘다. 수염이 8개이다. 지느러미에 가시가 있어 찔리면 굉장히 아프고 이것을 잡으면 공중에서 ‘기기’하고 운다. 미카와 근방에서는 통째로 잘라서 된장국에 넣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오기이(於義伊), 라고 해라”

 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익살을 느껴서 붙인 것이 아니라 이에야스에게 있어서 이 출산은 그 정도밖에 아니었고 실제로는 조금 귀찮았을 뿐이었다. 사쿠자는 그 이름을 가지고 성 밑에 있는 상가(商家)에서 산후 조리하고 있는 오만에게 가서, 그것을 알렸다.

 “[오기이]님 입니까?”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오기이’라고 불리며, ‘오기마루(於義丸)’라고도 불렸다. 정말 물고기와 같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기마루는 3살이 되었다.

 그러나 토쿠가와 가문의 아들이 되어 있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사쿠자가 키운 것이 되어 버렸는데, 이에야스의 버젓한 둘째 아들이면서도 토쿠가와 가문의 가족이 되지는 못하고, 부자 대면도 아직 행하지 못한 이 불행한 아이를 사쿠자는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 궁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토쿠가와 가문의 적자인 노부야스의 동정을 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적자 노부야스는 이에야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거기에 젊은이다운 정의감이 있었다. 사쿠자는 이 때문에 일부러 오카자키까지 가서 사정을 호소하였다. 생각했던 대로 노부야스는 동정심을 보였다.

 “그런 동생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모친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노부야스는 말했다. 모친인 츠키야마도노가 알게 된다면 오기마루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까지, 이 20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는 알고 있었다. 모두 자신에게 맡기라고 노부야스는 말했다. 노부야스는 정의감을 자극 받아 꽤 흥분해 있었다.

 노부야스는 연극을 계획했다. 요 몇 일 내에 이에야스는 기후의 노부나가에게 호출 받아 하마마츠를 출발하여 도중에 이 오카자키 성(城)에서 하룻밤 머문다. 그 때 부자 대면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날이 왔다. 이에야스는 그 숙소인 오카자키 성(城)에 입성하여 적자이자 성주인 노부야스와 일실에서 대면하였다.

 “건강해 보이니 정말 기쁘구나. 그 외에 별다른 일은 없었느냐?”

 고 이에야스는 인사를 대신하여 말했다. 노부야스는 눈을 치켜 뜨고 이에야스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썹에 노기가 서려있었다. 이에야스는 그 시선에 당혹했고 조금 상대방의 기분을 풀기 위해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느냐? 별다른 일이라도 있느냐?”

 “대단히”

 하고 노부야스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방의 복도 쪽 문이 달캉달캉하며 누군가가 열려고 하였다. 더구나 그 누군가가, 말했다.

 "아빠~, 아빠~"

 꼬꼬마의 목소리로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이에야스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노부야스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또 하나 이에야스에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사쿠자가 키우고 있는 오기마루였다. 이에야스는 곧바로 그것을 헤아려 노부야스의 얼굴을 보았다. 노부야스는 따지는 듯한 시선으로 이에야스를 응시한 채였다.

 “알았다”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가서는 문을 열어 주었다. 복도에는 꼬꼬마가 부들부들 떨면서 이에야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그것을 안아 올려 방으로 돌아와서,

 “내가 너의 아빠다”

 라고 무릎 위에 있는 꼬꼬마에게 말했다. 꼬꼬마는 울지 않고 이에야스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 때 노부야스는 고개를 숙이며,

 “정말 축하 드리옵니다”

 라고 말하며 이 장면의 의미를 축복하였고, 그렇게 하여 이 대면을 공식적인 것으로 하였다. 이 순간부터 오기마루 – 후에 토요토미 가문의 양자가 되는 유우키 히데야스는 이에야스의 둘째 아들이 되어 버젓한 토쿠가와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Ps; 내가 너의 아빠다 - 라고 했을 때 세찬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1. 1리는 약 3927미터. 25리는 약 98킬로미터. [본문으로]
  2. 당시 오카자키 행정관료 세 명[岡崎三奉行]를 일컬어, 仏高力、鬼作左、どちへんなきは天野三郎兵衛(부처님(관대한) 코우리키, 저승사자(엄격한) 사쿠사, 치우치지 않은 아마노 사부로베에)...라고 했다 한다. 저 중 저승사자 사쿠사[鬼作左]가 혼다 시게츠구이다. 전쟁터에서는 괴물같은 활약을 펼쳤으며, 법에는 엄격하고 강직했음을 평가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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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21 2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려 조선우표(;)군요.. 다난했던 ?은 삶을 살았던 사람 치고는 희극적 시작이니 보기 좋군요(;;__)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1 2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편부터는 연속되는 우울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2 1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 참~ 스포 금지라니까요~
    (...이런 것도 스포일러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22 2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조의 거부반응은 정말 적절한 링크입니다'-^)b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22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너무 재미를 반감시킨것 같아 얼른 수정했습니다
    물론 보신 분들은 다 보셨겠지만요.. 그런 분들은 죄송합니다 (-_-)(_ _)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3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헤헤 감사 (굽신~굽신~)

  7.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7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키 히데야스가 왜 그렇게 미움받았는지 몰랐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가는군요. 남자는 출산을 하지 않기에 기억하는건 엄마되는 여자의 몸 뿐이니 여자를 사랑하는만큼 아이를 사랑하게되겠군요. 유키와 그 어머니의 일생이 너무 가엾군요. 서자의 인생이란 이런것인가봅니다.

.

 

 그랬다. 이에야스[家康]에게 측실은 다수 있었지만, 정실이었던 츠키야마도노[築山殿] 5년 전의 어느 안 좋은 사건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한 후 아무도 정실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츠키야마도노와의 부부싸움에 질려있었던 만큼 홀아비 생활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듯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요약하면 독신이기는 했다.

 나이는 44. 신부가 되는 아사히히메는 43세이며, 원래부터 미인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 밭에서 일하였기에 피부가 쭈글쭈글했고, 햇볕에 탄 잔주름이 깊어 화장으로는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거기에 출신의 미천함은 유명했으며, 지금까지 관위도 없는 무사의 마누라였다. 그런 여성을 이에야스가 받아들일지 어떨지……

 

-가부가 어떻든, 우선 지금은 해보자.

 그 중매를 오다 노부카츠[織田 信雄]가 서는 형식으로 하여, 사자(使者)로 노부카츠의 중신으로 지금은 하시바 가문[羽柴家]의 직속 신하[参]가 되어 있는 히지카타 칸베에[土方 勘兵衛], 토미타 사콘[富田 左近]들을 하마마츠[浜松]로 내려 보냈다. 히지카타 칸베에는 언변이 뛰어난 남자였다. 이에야스 앞에서 천하와 양 가문의 안태(安泰)를 위해서 이토록 경사스런 일은 없다 고 열변을 토했다. 이에야스는 단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에 입을 열어,

 

 하룻밤 생각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네들의 면목을 잃게 하지는 않겠다

 

 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안쪽으로 들어가 중신들을 모아 상의를 하고자 할 즈음에는 이미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중신들 대부분이 안색을 바뀌고 혐오감을 드러내며 반대하였다. 주가(主家)에 어디의 개뼈다귀인지도 모르는 미천한 피를 섞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히데요시가 종삼위(從三位) 곤다이나곤[大納言]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닥쳐라

 

 이에야스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감정론을 백날 밤 들어보았자 아무 소용없었다. 실제로 그 미천한 출신의 43세 노파와 살을 맞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이에야스 자신이며 좋고 싫다는 감정을 먼저 내세운다고 하면 자기부터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야스는 그 점을 꾹 참고 일은 어디까지나 정치 문제로써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신랑 후보자는 굉장한 참을성을 갖추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이웃나라의 이마가와 씨[今川氏]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이마가와 일족에서 연상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부인인 츠키야마도노를 이십 수 년 뒤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강요로 인해 적자(嫡子) 노부야스[信康]와 함께 죽였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산하에 있던 토쿠가와 가문은 하루도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며, 모든 것은 상기(上記)와 같이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 히데요시의 여동생이라는 막 이혼한 초로(初老)의 노파와 결혼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으로만 이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하시바 가문은 그 출신이 어떻든, 예전 이마가와 씨나 오다 씨[織田] 이상의 권세와 위세를 가지고 있고 또한 커져가는 중이었다. 정세가 그러한 이상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게

 

 이에야스는 다른 이유를 대서 가신들에게, 토쿠가와 가문 가신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사히히메는 그럴듯한 인질이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히데요시는 천하의 반 이상을 손에 넣었지만 그러나 먼저 자기 쪽을 낮추어 여동생을 토우카이에 있는 자신에게 인질로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번은 가신에게 시집 보냈던 사람을 되돌려 받아서까지 이런 일을 한다고 한다. 히데요시의 괴로움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정세를 보건대 - 하고 이에야스는 말을 이었다. 천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시바 가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하(隸下)에 속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안 이상, 될 수 있는 한 좋은 형태로 속하는 것을 생각하는 편이 득이다. 이 정도의 일로 그와 다투지 않는 편이 좋다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이 정도의 일 이라는 것은 아사히히메와의 결혼문제였다.

 이에야스는 승낙하여, 그 뜻을 사자에게 전하는 한편, 가신 혼다 타다카츠[本多 忠勝]에게 함을 들게 하여서는(納幣) 서둘러 오오사카[大坂]로 향하게 하였다.

 

 성공했구나~ 이런 경사스런 일이~”

 

 히데요시는 손뼉을 치며 굉장히 기쁜듯한 모습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내심 이 건을 이리도 쉽게 받아들인 이에야스라는 남자에게,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재빠른 응답의 경쾌함도 저 뚱뚱한 사나이의 무략(武略)일 것이다.

 

 일이 진행되어 결혼 행사는 성대히 행해졌다. 아사히히메는 단지 몸을 그 진행에 맡기고 맡긴 채 멍하니 있는 것 외에는 없었다.

 몸이 오오사카 성[大坂城] 안에 있는 건물에서 가마에 태워졌다. 곧이어 텐마[満]에서 배에 옮겨졌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 쿄우[京]의 쥬라쿠테이[第]로 들여보내졌다. 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이 그녀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다. 그녀는 식사를 하고 볼일을 보는 것 이외에는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으로, 모든 것이 알아서 진행되었다.

 

 결혼 성립 후 석 달이 지난 초여름.
 
그녀의 몸은 가마 위에 태워져 쿄우[]를 출발하였다. 그 결혼 행사의 담당관은 일족인 아사노 단죠우쇼우히츠 나가마사[
正少弼 長政], 오다 가문 일족인 츠다 하야토노쇼우 노부카츠[津田 隼人正 信勝], 타키가와 기다유우[ 儀太夫] 등으로 그들이 1000기 정도를 이끌고 앞뒤를 경호, 아사히히메 직속의 시녀와 호종의 무사 만으로 150여명, 부인용의 가마가 11, 끈으로 어깨에 매는 가마가 15채라는 마치 화려한 그림 속에 있는 듯한 행렬이 이어졌다.

 

 5 15일 하마마츠에 도착.

 그 날 곧바로 성 안에서 혼례가 치러졌고 끝나자마자 이 경사스런 행사가 무사히 마쳤음을 히데요시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토쿠가와 가문의 노신(老臣) 사카키바라 야스마사[原 康政]가 하마마츠를 출발했다.

 이에야스는 그날 밤, 당연하게도 아사히히메와 같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이에야스는 총애하는 측실이 많았다. 니시고오리노츠보네[西郡局][각주:1], 오만노카타[方][각주:2], 오아이노카타[方][각주:3], 오츠마노카타[都摩方][각주:4], 오차아노카타[茶阿方][각주:5], 오카메노카타[方][각주:6], 오카지노카타[お梶の方][각주:7] , 그 후궁들은 하나하나가 눈부신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기에, 이제 와서 이 노파 같은 아줌마와 같은 이불 속에서 즐기는 것에 색다른 맛을 추구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인물의 놀라운 점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열심히 남들만큼이긴 했지만 첫날밤을 보낸 것이었다. 신부와 접하는 방식도 상냥하여, 피곤에 쩔어 있을 그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자 필요한 위로의 말을 부족함 없이 사용하였다.

 아사히는 그에 대해 때때로 조그맣게 끄덕일 뿐으로 여전히 둔한 반응밖에 나타내지 않았지만 그러나 내심 신선한 충격에 놀라고 있었다.

 이에야스라고 하면 토우카이 제일의 무사[東海一弓取り]로 노부나가님조차 조심했다고 하는 대장(大將)이라 듣고 있었는데, 이 상냥함이란……  첫 남편인 소작농도, 다음 남편인 오와리[尾張]의 작은 호족 출신인 진베에[甚兵衛], 이만큼의 상냥함으로 아사히를 다뤄준 적이 없었다.

 그 감동이 아사히의 시선에 어리기 시작했을 때, 이에야스는 그것을 재빨리 눈치채고 이 다소 어려웠던 작업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아 가벼운 안도감을 느꼈다.

 

 이에야스로서는 아사히를 상냥히 다루어야만 했다. 그 이불에 들어갈 때도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었고, 오히려 총애하는 측실들과 접할 때 이상으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히에게 붙어 온 노녀(老女)가 다음날 아사히에게 그것을 들을 것이다. 들으면 곧바로 장문의 편지를 히데요시의 밑에 있는 노녀에게 보낼 것이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아사히히메를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어하여, 그 편지가 언제 오나 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이에야스에게 있어 이처럼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정치였으며, 아사히의 탄력 잃은 몸을 애무하는 것이 다소 인내를 필요로 했지만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있어 히데요시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히데요시의 중요한 기대는 이 결혼에 의해 이에야스가 상락(上洛)해 올 것이라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아사히를 그 집에 담아두기만 하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으며, 토우카이의 경영에 열중하며 히데요시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식의 행동을 계속 견지했다.

 히데요시의 초조함이 커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혼례 이상의 희생을 치른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에야스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중요한 결심을 히데요시에게 하게 만들었다. 모친을 인질로 하마마츠로 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에야스 상락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보장을 하고자 하였다. 상락을 하여도 이에야스를 죽이는 일은 없다, 그 보증으로써 내 모친을 그 쪽으로 보낸다는 것이었으며, 이에야스에게 만에 하나라도 있을 시에는 이 모친을 죽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것이기도 했다.

 

 코이치로우, 그것을 어머니에게 말해봐 

 

 고 히데요시는 동생에게 명령하였다. 코이치로우 히데나가[小一 秀長]는 놀랐다. 칸파쿠[白] 히데요시라고 하면 이미 천하의 주인이다. 그런 분이 기껏해야 토우카이 수개 국의 지방 다이묘우[大名]를 상락시키기 위해서 여동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친을 인질로 받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무문의 치욕이 아닌가? 하고 히데나가는 반대하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하마마츠님(이에야스)에게 조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상락을 재촉하고 따르지 않으면 싸워서 멸하면 될 뿐입니다.”

 

 고 말했다. 이것이 정론일 것이다. 필시 죽은 오다 노부나가라면 그렇게 했을 터이다. 이미 히데요시는 칸파쿠의 자리에 올라 그 판도에는 키슈우[紀州], 시코쿠[国]가 더해져 있었다. 이에야스를 복종시키기에 아무리 보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의 감각으로서는, 그러니까 무문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의 강자(强者)가 시골의 약소한 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이라는 것이지 치욕은 아니며, 세상도 당연히 그렇게 느껴 오히려 아름다운 일로 볼 것이다. 내 통일 방침은 쉽게 가는 것을 방침으로 하여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아끼고, 무력을 피하며, 후환을 남기지 않도록 한다. 방침은 그것 하나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히데요시는 현재 큐우슈우[九州] 정벌을 이미 휘하의 군단에게 명령을 내려, 스스로도 원정군을 이끌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동방의 위협을 없애고 천하를 안정시켜 두고 싶다. 히데요시는 계속 말했다. – 하마마츠님은 돌아가신 노부나가님의 동맹자이며, 그 위세와 명성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하마마츠에서 달려 나와 내 막하에 들어온다고 하면, 그 순간 천하의 인심은 안정되고, 토요토미의 천하는 부동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적은 거기에 있다. 얻는 것은 이에야스를 공격하여 멸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었다.

 

 모친인 오나카[仲]는 작년, 히데요시가 칸파쿠에 취임됨과 동시에 오오만도코로[大政所]라는 호칭을 궁정과 세간에서 얻고 있었다.

 - 알겠다.

 고 이 오오만도코로는 이외로 순순히 승낙하였다. 히데나가가 이 늙은 어미에게 정치 정세로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녀를 당혹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기 때문에,

 

 어떻겠습니까? 오래간만에 아사히를 만나러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라는 것만을 그녀에게 말했을 뿐이다. 오나카에게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세간에도 그것을 이유로 공표하였다. 오오만도코로가 아사히히메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내려가신다 - 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의 이 제의에는 굴복하여 상락한다는 뜻을 전하고 그 준비를 하였다.

 곧이어 오오만도코로는 오오사카를 출발하여 동쪽으로 내려갔다. 이에야스는 오카자키[岡崎]까지 나와 마중하여, 손수 하마마츠에 안내할 예정을 세워두고 있었지만, 막료 중 한 사람이 굉장히 촌스러운 의견을 올렸다.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억측이었다. 그가 말하길, 저렇게 늙은 여자는 쿄우[]의 궁궐에 있는 여관(女官) 중에 넘칠 정도로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속이기 위해 어딘가에서 끌고 온 늙은이를 오오만도코로라고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그건 그렇겠군.

 하고 이에야스도 수긍하여, 이미 그는 오카자키 성에 도착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계책을 짜 예정을 바꾸었다. 서둘러 하마마츠에서 아사히히메를 불러들였다. 그 꿍꿍이는 아사히히메가 오오만도코로와 대면하였을 때의 모습이나 행동을 가지고 판단하고자 한 것으로, 이에야스와 막료들은 전부 이 꿍꿍이를 맘 속에 숨겼다.

 하지만 저 부인은 기색을 확실히 읽을 수 없기에, 잘 될지…’

 라는 걱정도 있었다. 반사가 둔했고, 무표정이기에 마음 속을 알기 힘들었다.

 

 아사히히메가 예정 변경으로 인하여 황망히 하마마츠를 출발한 것은 10 17일이었다. 오카자키로는 이틀간의 여정이다. 그녀의 행렬이 오카자키의 성 밑 마을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인 18일 저녁 즈음이었다.

 그때 마침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오오만도코로의 행렬이 서쪽에서 오카자키로 들어와, 두 행렬이 성의 대문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마주쳤다.

 

 저건 오오만도코로의 행렬이 아닌가?”

 

 아사히히메는 가마의 창문을 오려 시녀들에게 말했다. 그녀로서는 신기하게도 빠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만도코로도 눈치챘다. 서로가 동물 같은 후각과 반응이었다. 오오만도코로도 가마를 멈추게 하여 창문을 올렸다. 회색 머리를 가진 목이 창에서 나왔다.

 

 ~!”

 

 하고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지른 것은 아사히히메 쪽이었다. 가마에서 굴러 나와 치마를 밟으며 내달렸고 그 때문에 넘어졌다. 아사히히메가 일어나는 것과 오오만도코로가 서둘러 가마에서 굴러 나온 것이 동시였다. 그 기세로 모녀가 길 위에서 서로 부둥켜 안았다. 아사히히메는 치마를 흙투성이로 만들면서 꼬꼬마 여자애와 같이 몸부림치며 울었다.

 - 틀림 없군.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실험실의 늙은 학자와 같이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에야스의 막료 혼다 시게츠구[本多 重次]였다. 현명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반면에 있는 잔인함은 나중에까지 이어지는 토쿠가와 가문 특유의 가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이에 안심하여, 다다음날 쿄우[京]를 향해 출발했다.
 
이에야스 상락 중인 25일간, 오오만도코로와 아사히히메는 오카자키 성안에 있는 건물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러는 동안 토쿠가와 가문의 장수들인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 忠世]와 상기의 혼다 시게츠구가 수하들을 이끌고 그 건물을 감시했다. 혼다 시게츠구는 오오만도코로의 건물 주변에 산과 같이 마른 풀과 장작을 쌓아놓고 사졸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켜보게 하며, 쿄우[]에서 이에야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불을 붙여 모녀 함께 태워 죽인다는 자세를 보였다.

 - 너는 이런 집에 시집을 온 것이냐?

 하고 오오만도코로도 놀라, 이 막내딸의 불행을 지옥에서라도 발견한 듯한 생각이 들어 25일간 모녀가 함께 울며 보냈다. 이 오카자키에서 8[각주:8] 서쪽에, 그녀들이 나고 자라며 생활했던 오와리 나카무라[中村]가 있다. 그 땅에서 가난한 소작농일 즈음 지냈던 나날들이 얼마나 즐거웠던 가를 번갈아 가며 질리지도 않은 듯 말을 서로 주고 받았을 것이다.

 

 이에야스가 무사히 상락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오오만도코로는 오카자키를 떠났다. 이 직후, 이에야스는 그 거성(居城)을 하마마츠에서 순푸[駿府]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아사히도 그에 따라 이후 순푸 [駿府城]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스루가 고젠[駿河御前]

 

 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 기간도 오래는 못 갔다.

 3년 후인 1589 7. 쿄우[]에 있던 오오만도코로가 병들었을 때, 병간호를 위해서 상락하였고, 다행스럽게도 오오만도코로는 완쾌하였지만 아사히히메는 정신이 병들어 그대로 쿄우에서 요양을 하였다. 실상은 순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정신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차츰 쇠약해져, 다음 해인 1590 1 14. 쥬라쿠테이[第]에서 죽었다.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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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요시는 그녀의 유골을, 그녀의 정신에 병이 들 정도로 계속 가기 꺼려했던 토쿠가와 가문에 보내지 않고, 쿄우[]의 교외 토바[鳥羽] 가도 옆에 있는 토우후쿠 사[東福寺]에 안장하여, [남명원전광실총욱자(南明院殿光室旭姉)]이라는 시호를 주고, 곧이어 칸토우[東]의 호우죠우 정벌[条征伐]을 위해 출발하였다.

 그 동정(東征)의 도중 순푸를 지날 때, 아사히히메가 생전에 아베 군[安倍郡] 즈이류우 사[竜寺]에 자주 참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박복함에 애처로움을 느껴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안에 공양탑 한 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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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히히메의 기묘함은 이 세상에 한 편의 와카[和歌] 조차 남기지 않은 것에 있다. 와카뿐만 아니다.

 이 시대, 토요토미와 토쿠가와 내외에는 다수의 기록자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기록을 후세에 남겼지만, 그녀의 말이라는 것을 어떤 기록도 전해주질 않는다. 굉장히 말이 없었던 것인지아니면 사람과 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인지

 어쨌든 역사 속에서 영원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駿河御前==================
  1. 이케다 테루마사[池田 輝政]의 부인 토쿠히메[督姫]의 모친. [본문으로]
  2.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의 모친. [본문으로]
  3. 보통 '사이고우노츠보네[西郷局]'로 알려져 있다, 2대 쇼우군[将軍] 히데타다[秀忠]의 모친. [본문으로]
  4. 이에야스 5남 타케다 노부요시[武田 信吉]의 모친. [본문으로]
  5. 이에야스 6남 마츠다이라 타다테루[松平 忠輝]의 모친 [본문으로]
  6. 후에 어삼가(御三家) 필두 토쿠가와 요시나오[徳川 義直]를 낳지만, 사실 이 당시는 아직 이에야스와 만나기 전. [본문으로]
  7. 이 당시 8살. 13살에 이에야스와 만났다고 하니 아직 측실은 아니었다. [본문으로]
  8. 1리는 약 4km(3927.2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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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6.12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편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은 유우키 히데야스군요. 기대가 되네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에 상응하니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귀무자에서도 나오는 유우키 히데야스군요. 많이 기대되네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6.12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아사히 히메는 참 불쌍하네요. 그리고 이에야스의 자식들이 모두 모친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공님//그러니까~~~ 기대하지 마시라니까요!! ^^; (헤에~ 그렇군요. 귀무자 씨리즈는 일편 말고는 본 적이 없어서...)

    본다충승님//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그리고 이에야스의 자식 모친이 전부 다른 것은 아닙니다.
    2대 쇼우군 히데타다와 세키가하라 전투의 시작을 알린 철포 사격을 한 4남 마츠다이라 타다요시(松平 忠吉)의 모친은 같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일본판 위키 토쿠가와 이에야스 항목의 하단 부분을 참조해 주시길...
    http://ja.wikipedia.org/wiki/%E5%BE%B3%E5%B7%9D%E5%AE%B6%E5%BA%B7#.E7.B3.BB.E8.AD.9C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14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데요시의 이부제들은 전부 고생만 하다 가는군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14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국여성의 운명이란...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고생하거나 정략의 도구로 이용되네요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줄을 잘 서야(일평생의 줄)된다는 걸 새삼느끼고 갑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6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아들 빼앗기고 남편 귀양 간 친누나도 뭐...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박선생님//힘이 모든 것을 우선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은 힘의 유무에 관계 없이...남녀에 관계없이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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