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상순[각주:1]. 스루가[駿河]의 무사들이 미카와[三河]의 쇼우다하라[正田原] 들판으로 진출하여 7개의 부대로 나뉘어 진을 쳤다.[각주:2]
그 즈음 미카와의 안죠우[安祥]라는 성을 오다 빈고노카미[織田 備後守][각주:3]가 지키고 있었다. 스루가의 유하라[由原][각주:4]가 선봉에 서서 아즈키 고개로 군사를 파견하였다. 곧바로 빈고노카미는 안죠우에서 야하기[矢作]로 달려가 아즈키 고개에서 빈고노카미 님의 동생분들이신 요지로우[与次郎] 님[각주:5], 마고사부로우[孫三郎] 님[각주:6], 시로우지로우[四郎次郎] 님[각주:7]과 함께 적과 접촉하여 결국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때 활약한 사람들 - 오다 빈고노카미, 오다 요지로우 님, 오다 마고사부로우 님, 오다 시로우지로우 님.
 오다 사케노죠우[織田 造酒丞] 님[각주:8]은 창에 상처를 입었고,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는 굉장히 강한 적 무사를 쓰러뜨려 무명을 높였다. 키요스[清洲]의 무사인 나고야 야고로우[名古屋 弥五郎]는 전사하였다. 시모카타 사콘[下方 左近][각주:9], 삿사 하야토노카미[佐々 隼人正], 삿사 마고스케[佐々 孫介][각주:10], 나카노 마타베에[中野 又兵衛][각주:11], 아카가와 히코에몬[赤川 彦右衛門][각주:12], 칸베 이치사에몬[神戸 市左衛門], 나가타 지로우에몬[永田 次郎右衛門], 야마구치 사마노스케[山口 左馬助][각주:13]는 서너 번에 걸쳐 적에게 돌격하여 공적을 세웠다.
 이 전투에서 나고야 야고로우[那古野 弥五郎]의 목은 이하라[由原]가 취했다. 이때부터 (오다의 영지에) 스루가의 군세가 침입하게 되었다. 

  1. 1542년 추정. [본문으로]
  2. 七段은 - 돌격대[先頭], 선봉[先備え], 측면부대[脇備え], 중앙친위부대[旗本], 후군[後備え], 수송대[小荷駄], 유군[遊軍]으로 구성된 진영. [본문으로]
  3. 노부나가의 애비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4. 스루가의 유력한 가문인 이하라[庵原]. [본문으로]
  5.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6. 노부사다의 삼남 오다 노부미츠[織田 信光]. [본문으로]
  7. 노부사다의 넷째 아들 오다 노부자네[織田 信実]. [본문으로]
  8. 성이 오다[織田]긴 하지만 오다 일족은 아니다. 사케노죠우의 아비는 아마도 승려(이름이 간조우보우[岸蔵坊]인 것을 보면)였으며, 노부히데를 섬기게 된 것도 사케노죠우 때부터라고 한다. 아마도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에 노부히데가 일문에 편입시킨 듯. 여담으로 사케노죠우의 아들은 노부나가의 최측근 중 하나인 스가야 나가요리[菅屋長頼]이다. [본문으로]
  9. 시모카타 사다키요[下方 貞清] [본문으로]
  10. 둘 다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의 형. 둘 중에서는 하야토노카미가 큰형. [본문으로]
  11. 나카노 카즈야스[中野 一安]. [본문으로]
  12. 아카가와 카게히로[赤川 景弘]로 추정됨. [본문으로]
  13. 야마구치 노리츠구[山口 教継]. [본문으로]

오와리[尾張]는 여덟 개의 군(郡)이다. 오와리 위쪽에 네 개의 군(郡)[각주:1]이 있어 이곳은 오다 이세노카미[織田 伊勢守][각주:2]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다스리며 이와쿠라[岩倉]를 거성으로 하고 있었다. 오와리 반국(半国) 아래의 군(郡)도 네 개 군[각주:3]으로 오다 야마토노카미[織田 大和守][각주:4]가 다스리고 있었다. 위와 아래의 군(郡)은 강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다 야마토노카미는 키요스[清洲]의 성에 부에이 님[武衛様][각주:5]을 모시며 보호하고 있었다. 오다 야마토노가미 휘하에 삼봉행(三奉行)이 있었는데 오다 이나바노카미[織田 因幡守], 오다 토우자에몬[織田 藤左衛門], 오다 단죠우노죠우[織田 弾正中] 세 봉행(奉行)이다.[각주:6]

이 중 단죠우노죠우는 오와리의 변방 쇼바타[勝幡]라는 곳에 거성을 두고 있었다. 사이간[西巌][각주:7], 겟간[月巌][각주:8] 그리고 지금의 당주 빈고노카미[備後守][각주:9]의 동생인 요지로우 님[與二郎殿][각주:10], 마고사부로우 님[孫三郎殿][각주:11], 시로우지로우 님[四郎二郎殿][각주:12], 우에몬노죠우[右衛門尉][각주:13]라고 있었다. 이 가문은 대대로 무명이 높은가문이다. 빈고노카미 님은 특히나 뛰어난 기량을 갖춘 사람으로, 여러 가문의 능력있는 사람들과 친교를 맺으며 아군으로 삼았다.

어느 때인가 빈고노카미가 오와리 가운데에 있는 나고야[那古野]에 오셔서는 견고한 요새를 만들도록 명하신 후 이 성에 후계자인 오다 킷포우시 님[織田 吉法師殿][각주:14]에게 머물게 하며 필두 가로(家老) 하야시 신고로우[林 新五郎][각주:15], 차석 가로 히라테 나카츠카사[平手中務][각주:16], 삼번 가로 아오야마 요소우에몬[青山 與三右衛門][각주:17], 사번 가로에 나이토우 쇼우스케[内藤 勝介]를 배치하였으며, 재정을 히라테 나카츠카사에게 담당시켰다. 킷포우시는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텐노우보우[天王坊][각주:18]라는 절에 공부하러 다녔다.

빈고노카미는 나고야의 성을 킷포우시에게 물려주고 아츠타[熱田] 근방 후루와타리[古渡]라는 곳에 새로이 성을 쌓고 거성으로 삼으셨다. 재정담당으로 야마다 야에몬[山田彌右衛門]을 임명했다.

  1. 하구리 군[葉栗郡], 니와 군[丹羽郡], 나가시마 군[長島郡], 카스가이 군[春日井郡]. [본문으로]
  2. 오와리[尾張] 상사군(上四郡)의 슈고다이[守護代] 가문. 이 당시의 당주는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3. 카이사이 군[海西郡], 카이토우 군[海東郡], 아이치 군[愛知郡], 치타 군[知多郡]. [본문으로]
  4. 오와리 하사군(下四郡)의 슈고다이[守護代] 가문. 이 당시 당주는 오다 타츠카츠[織田 達勝]로 추정되고 있다. [본문으로]
  5.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수상 격인 칸레이[管領]가 될 수 있는 세 가문[三管領] 중 필두인 시바 가문[斯波家]의 종가(宗家). 무로마치 막부 중기부터 시바 가문 종가의 당주는 지부다이후[治部大輔]->사효우에노스케[左兵衛佐]->사효우에노카미[左兵衛督] 순으로 승진하였기에, 효우에[兵衛]의 당명(唐名)인 부에이[武衛]로 칭해졌다. 이 글에서 지칭하는 인물은 시바 요시무네[斯波 義統]. [본문으로]
  6. 소위 '키요스 삼봉행[清洲三奉行]'. [본문으로]
  7. 노부나가의 증조부 오다 나가노부[織田 良信]의 법명. [본문으로]
  8. 노부나가의 조부 오다 노부사다[織田 信定]. 사족으로 이 오다 노부사다가 당시 오와리 제일의 상업도시였던 츠시마[津島]를 장악한 것이 단죠우노죠우 가문[弾正忠家] 비약의 초석이 되었다. [본문으로]
  9. 노부나가의 부친 오다 노부히데[織田 信秀] [본문으로]
  10. 요지로우는 '與(与)次郎'라고도 씀. 노부사다의 차남 오다 노부야스[織田 信康]. [본문으로]
  11. 노부히데 사후 세력이 약화된 노부나가를 도와 오와리 통일에 조력한 오다 노부미츠[織田 信光]. 노부사다의 삼남. [본문으로]
  12. 노부사다의 넷째 아들 오다 노부자네[織田 信実] [본문으로]
  13. 노부사다의 다섯째 아들 오다 노부츠구[織田 信次]. [본문으로]
  14.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본문으로]
  15. 하야시 히데사다[林 秀貞]. [본문으로]
  16. 히라테 마사히데[平手 政秀]. [본문으로]
  17.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 秀勝]. 위키에서는 아오야마 노부마사[青山信昌]로 되어 있으나, 당시에는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라는 기록만 있다고 하니[谷口克広-織田信長家臣団辞典], 이 블로그에선 아오야마 히데카츠[青山秀勝]로 한다. [본문으로]
  18. 츠시마 신사[津島神社].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셨기에 별칭이 텐노우 사[津島天王社]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