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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마사히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1.06 금오중납언(金吾中納言)-5- (7)
  2. 2007.12.22 금오중납언(金吾中納言)-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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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해인 1598 4.

 히데아키[秀秋]는 귀환 명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키요마[清正] 이하 수비군을 전장(戰場)에 남겨둔 채 후시미[伏見]개선(凱旋)하였다. 히데아키는 전쟁터에서 얻은 햇볕에 멋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멋진 때였을 것이다. 출발할 때는 아직 공사 중이었던 후시미 성[伏見城]은 완성되어 있었다. 히데아키는 가슴을 펴고 입성하여 히데요시를 배알(拜謁)하였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히데요시[秀吉]의 노성(怒聲)이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다.

 히데요시는 울산성 구원 때 히데아키가 졸병들과 함께 창질이나 한 것에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나는 너 같은 놈을 상장(上將)으로 삼을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까지 말하여 히데아키의 공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뭔 일이래

 처음엔 멍했다. 이어서 이거야 말로 조선에 있는 여러 장수들 모두가 원망하고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참언(讒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히데아키는 천성이 소심한 탓인지 격앙()하여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 더듬은 탓인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것이 양아버지였으면서 이모부를 공갈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 않아…아니…않사옵니다. 전하는 트린 틀린 보고를 받으신 거다 아니 겁니다.”

 

 라고 외치곤,

 

 그렇다면 여기에 감찰관들을 불러 주십시오. 그 지부노쇼우[冶部少=미츠나리] 놈도 불러주세요. 전하의 앞에서 흑배 아니 흑백을 가릴 테니

 

 니 뭔 말을 한다냐?”

 

 히데요시도 오와리[尾張]의 사투리로 히데아키보다 더 큰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비해 히데요시는 이미 (老衰)해 있어 그 쇠약함에는 죽음의 그림자 조차 드리워져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때 역사를 창조했던 그의 이성(理性)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단지 감정(感情)만이 그의 몸을 가늘게 흔들고 있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이 괴이한 소년을(이라고는 해도 21살이었지만) 귀족으로 만들어 주며, 거대 다이묘우도 만들어 준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은혜를 망각하고 이 늙어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큰소리 치며 공갈을 하다니 이 무슨 배은망덕이란 말인가.

 

 히데요시는 혓바닥을 잃어버린 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슬픔과 분노가 그를 지배하여 호우(설명, 그림) 속에서 떨었다. 히데요시가 이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원래 말이 많았으며 재치가 뛰어났고, 너무나도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던 히데요시는 - 그런 점에서도 지금까지의 히데요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 말 않은 채로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자리에 들겠다

 

 히데요시는 시중드는 신하에게 그리 말했다. 먼젓번에는 몸이 쇠약한 나머지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려 몸이 오줌으로 적셔진 적도 있었다. 오늘의 히데요시는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분했고 불안했다. 저 배은망덕한 놈이 히데요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 상태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히데요시는 히데아키의 처분을 새삼 결심하였다.

 

 한편 히데아키는 아직도 성안에서 큰소리를 질러대며 히데요시의 측근들에게 욕설을 퍼부는 식으로 지랄하고 있었다. 미츠나리를 이리 내오라~ 고 하였다.
 그
미츠나리가 나왔다.

 

 킨고님 부르셨습니까?”

 

 미츠나리는 양 눈을 똑바로 쳐들고, 히데아키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히데아키님의 지금 상태로는 히데요시님의 분노가 당장 풀릴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나중에 히데요시님의 기분이 풀리시면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겠사오니 오늘은 일찍 자택으로 돌아가시옵소서

 

 라고 조금도 떨림 없이 말했다.

 

 ……지부쇼우!!”

 

 히데아키는 작은 [脇差]의 칼자루를 쥐고 달려 들었다. 진짜로 벨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승이며 가로(家老)인 야마구치 겐바노카미 마사히로[山口 玄蕃頭 正弘]가 제지했다. 그 손을 히데아키는 떨쳐버리고서는,

 

 네 놈도 저 지부쇼우와 한 편이냐?”

 

 라고 소리질렀다. 이 폭언에는 아무리 마사히로라도 참을 수 없어, 이 일이 있은 뒤 히데요시에게 청하여 스승 겸 가로의 자리에서 물러나, 그의 영지(領地)카가[加賀] 다이쇼우지 성[大聖寺城](6만석)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이때 부속 가로인 스기하라 시게마사[杉原 重政]가 지랄하는 히데아키의 등 뒤에 매달리며 말렸다. 그러는 사이 이러한 소동을 알현(謁見)에 동석하고 있던 토요토미 가의 대로(大老)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곧이어 일어서서는,

 

 킨고님, 졸자는 성을 나서려 합니다. 함께 나가시지요

 

 라고 조용히 말하자, 히데아키는 일종의 위압감에 굴복했는지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몸이 일순간에 멈추어지며 얌전해졌다. 이 광경은 익살스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야스는 이 즈음 무게감있고 의지할만한 장로의 풍모로 토요토미 가문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자신의 뱃속은 히데요시가 죽은 뒤 반드시 올 것인 정변(政變) 만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예전부터 키타노만도코로[政所]에게 신뢰를 받고 있었던 운도 있기에, 키타노만도코로를 통해 그녀를 따르는 다이묘우[大名]들의 신뢰를 얻고자 틈만 나면 은혜를 팔려고 하였다. 히데아키는 어리석다고 하여도 52만석의 거대 다이묘우이며, 키타노만도코로의 조카이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에야스는 이 젊은이에 대해서 과분할 정도의 친절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히데아키는 이에야스에게 껴안기 듯 성을 나왔다. 자택에 돌아가 술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3~4잔 정도로 숨 쉬는 것을 괴로워할 정도로 취했다. 원래 이 남자는 술에 약했다.

 자택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히데요시에게서 히데아키에게 사자(使者)로 코우조우스[主]가 파견되었다. 코우조우스에 대해서는 제 1 [살생관백]에서 언급하였다. 토요토미 가문 가정 내의 것들을 다스리는 여관장(女官長)이다. 히데아키는 토요토미 일족의 예우를 받고 있었기에, 사자도 딱딱한 관리가 아닌 토요토미 가문의 여관장이 맡았다. 히데츠구의 쥬라쿠테이[第]에서 물러나게 설득한 것도 이 비구니였다. 사람됨이 둥글둥글하여 누구에게나 경애 받았다. 그 비구니가 토요토미 가문의 두 양자인 경우에는 2번 다 저승사자가 되었다. 비구니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치쿠젠[筑前]과 그 외의 영지(領地)들은 몰수 되었습니다. 어여 빨리 에치젠[越前]으로 옮기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외치려 하였다. 하지만 말문이 막혀 입만 뻐끔대며 숨이 거칠어 졌다. 코우조우스는 이런 모습에 두려움을 느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도망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히데아키가 비구니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봐~ 내는 죄가 없다

 

 전하의 말씀이십니다. 얌전히 따르시는 것이 신상(身上)에 좋습니다

 

 죄가 어없단 말이다. 그런데

 

 히데아키의 뇌리에, 형 뻘이었던 히데츠구와 그 처첩들의 비참한 최후가 떠올랐다.

 도 죄라고 하던 모반의 사실 등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가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다.

 

 나를 죽여라

 

 라고 외쳤다. 미친 것은 아니었다. 히데아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냉정하다고 생각하였다.

 

 죽여 주길 바란다. 살아 있는 동안은 전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에치젠[越前]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죽음을 내리신다면 더 이상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구니! 그렇게 전해주게. 차라리 이 킨고[金吾]를 죽이라고

 

 코우조우스는 도망치듯이 저택을 나왔지만, 그러나 이런 상태로 성으로 돌아가 아까 본 모습을 보고할 순 없었다. 곤란한 나머지 타고 있던 가마를 재촉하여 큰 길의 서쪽으로 가 이에야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에야스에게 구원을 청하고자 한 것이다.

 

 어찐 일이신가?”

 

 이에야스는 잘 여문듯한 볼에 미소를 만들며 말했다.

 

 킨고님에 대한 것입니다

 

 킨고님?”

 

 킨고님은 어릴 때부터 성질이 사나워 한번 신경을 폭발시키면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사옵니다

 

 라고 히데아키의 상태를 고한 뒤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야스는 수긍하여 부하에게 구두로 계책을 알려 코바야카와[小早川] 저택으로 보냈다. 이에야스의 계책은,

 

 신상을 위해서입니다. 우선 이봉(移封)을 받아들이십시오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히데아키는 치쿠젠[筑前]에서 곧바로 옮기지 말고, 또한 중신들도 옮기지 않으며, 우선은 부속 다이묘우[大名]의 부하들이나, 신규 채용한 부하들을 몇 명씩 에치젠[越前]으로 보내십시오. 한줄 요약하면 옮기는 척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졸자(이에야스)가 어떻게든 타이코우[太閤=히데요시] 전하에게 부탁하여, 명령을 철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이에야스의 이치에 맞는 더구나 마음이 담긴 조언에는 히데아키도 감격하여,

 

 어떻게든 잘 부탁 드립니다

 

 라고 모든 것을 맡겼다.

 

 다음 날 이에야스는 등성하여 누가 보아도 급한 일이 있는 듯이 히데요시에게 내알(內謁)을 청했다. 히데요시는 자리로 나왔지만 이에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쌍한 척을 하며 눈을 내리깔고 침묵하였다. 그 후 두 마디 정도 날씨나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한 후 물러났다.

 다음 날도 똑같이 내알을 청하였고 그러나 역시 똑 같은 짓을 하였다. 3일째도 그러했다. 히데요시는 수상히 여겨,

 

 나이후[内府=이에야스]께서는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라고 물었다. 히데요시는 항상 이에야스에 대해서만은 부하라기 보다는 손님의 예를 취하여 다른 제후와는 다른 말씨를 사용했다.

 이에야스는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킨고 츄우나곤님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해 드리고 싶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알현을 청하였으면서도 막상 말할 때가 되면 전하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하여 이렇게 말씀도 못 올리고 있습니다.”

 

 ~ 그일 때문인가

 

 히데요시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그 후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에야스는 굳이 말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다음 날도 성에 올랐으며 또한 그 다음 날도 알현하여 끈질기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왜 그러신가? 아직도 킨고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가?”

 

 몇 일 지나 히데요시는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이에야스의 대답은 먼젓번과 같았다. 히데요시는 결국 참지 못하고,

 

 히데아키의 죄는 명백. 그러나 처분에 대해서는 나이후에게 맡기겠소

 

 라고 말했다. 이에야스는 희열에 찬 표정을 만들어,

 

 그렇다면 토요토미 가문의 먼 장래를 위해서 좋은 계책을 내 놓겠습니다.”

 

 고 절을 하며 대답했다. 히데요시는 그 말 만으로도,

 

 아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나이후의 그 말 한마디. 부처님의 목소리처럼 성스럽게 들렸습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탁 드리겠다는 말은 히데아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히데요리를 말한 것이다. 히데요리를 위해서 히데아키의 처분을 잘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성을 나와 자택에 코바야카와 가문의 가로들을 불러 모아 히데요시의 말을 전했다.

 모두 이에야스의 호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또한 이에야스는,

 

 나는 공의(公儀=정부(政府))의 대로(大老)로서 킨고님의 처분을 행하게 되었다. 본심을 말하자면 영지(領地)에 대해서는 예전과 같이 치쿠젠의 영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 그러나 손바닥을 뒤집듯이 곧바로 그럴 수는 없다. 히데요시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송구스럽다

 

 는 것이었다. 이에야스의 처분은 세심했다.

 

 우선 각각의 자택에서 근신(謹愼)할 것

 

 이라는 것과,

 

 그 후 좋은 소식을 기다릴 것

 

 이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이에야스가 보기에 히데요시의 생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죽어버리면 그 뒤는 흐지부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야스의 이 처분은 사무면에서 다소의 혼란을 만들었다. 이미 히데아키의 치쿠젠[筑前]의 옛 영토는 토요토미 가문의 직할령이 되었기에, 미츠나리 등은 코바야카와 가문에게 비우라고 재촉을 하였다. 히데아키는 다시 이에야스에게 울며 매달렸다. 이에야스는 이에 대해서,

 

 조금씩 반환하시길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코바야카와 가문은 영지(領地)를 조금씩 반납했다. 때문에 일부의 가신들은 코바야카와 가문에서 받았던 영지(領地)를 잃었기에 낭인(浪人)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낭인들이 100명 정도 생겼을 즈음 히데요시가 죽었다. 히데아키가 죄를 얻어서부터 4달이 지난 1598 8 18일이었다. 이에야스의 예상대로 히데아키는 그대로 옛 영토에 눌러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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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츠나리의 막장은 계속되는군요(;;;)
    -쓰던 코멘트가 다 날아가 버려서 이거야 원;;-

    코우조우스는 전하도 돌아가셨는데 어쩔련지 모르겠습니다(-_-ㄲ..)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08 2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서 '가끔' 다 쓰고 난 뒤 우선 Ctrl+C를 눌러 복사를 해 둡니다 ^^
    (문제는 가끔 하다 보니 어떤 때는 왕창 쓰고 난 뒤 그냥 전송했다가 날라가고 난 뒤에야,
    '아~ 왜 하필 오늘따라 복사 해두지 않았지..'하면서 후회할 때가 더 많지만 말이죠..--;)

    코우조우스는 키타노만도코로 쪽 인간이다 보니 그 후에도 잘 살았겠죠.(줄 잘 서는 것도 능력)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 블로그에서 안전하게 코맨트를 남기려면 메모장에서 우선 써놓고 ctrl+a + ctrl+c ctrl+v 3연타를 때리는게 안전한데...

    군바리다 보니 귀찮군요(...;)

    기다리다 못해서(아.. 근성이 없어서 원;) 긴코츄나곤 뒷쪽도 좀 읽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후, 이에야스 앞에서 쭈삑쭈삣되는 히데아키를 외면하는 키타노만도코로 당 애들을 보니 참.. 한편의 블랙코메디랄까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1.0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킨고'가 맞겠지요..(이런 실수를;;)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1.08 2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리 읽으셨다면 저도 허투루 할 수 없으니 더 조심해서 써야겠죠 ^^

    그 애들도 우스웠겠죠. 자신들은 피를 뒤집어 쓰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지만, 혈통으로 그 자리에 오른 킨고가 좋게는 보이지 않았겠죠.(더구나 비굴한 모습을 보았으면 더욱 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1.09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7.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4: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야스 수완이 대단하네요. 계속 찾아가서 될때까지 뚱하니 있는다ㅎㅎ

二.

 조선 출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6살의 곤츄우나곤[権中納言]은 이미
히젠[肥前] 나고야[名護屋]로 내려간 히데요시를 뒤따르기 위해서, 새로 하사 받은 탄바[丹波] 카메야마 성[亀山城]에서 준비 중이었다.
 
참고로 히데요시는 이 행군에 특히 총애하던 요도도노[淀殿] 한 명만을 데려갔다. 많은 측실 중에서 특히 요도도노가 선택된 것은,

 “저번 오다와라 공략전[小田原の陣[각주:1]] 때 요도[淀] 녀석과 함께 하여 바라던 대로 승리를 얻었다. 요도 녀석은 이젠 전장(戰場)의 길례(吉例)이다”

 며 다른 측실의 질투를 막고자 하는 의미도 있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요도도노에게서는 자기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히데요시가 접한 수 많은 여성들 중 요도도노만이 히데요시의 아이를 낳았다. 츠루마츠[鶴松]였다. 이 츠루마츠는 안타깝게도 일찍 죽어지만 다시 한번 임신할 수도 있는 법. 이 희망이 히데요시에게 요도도노를 함께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히데아키는 다음 해인 1593년 3월에 히젠 나고야로 향하였는데 오오사카[大坂]를 출발함에 앞서 양어머니인 키타노만도코로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 성으로 갔다. 17살 때였다.

 “수고하는구나”

 키타노만도코로는 그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누구를 만나건 계속 미소를 띄우는 이 여성이, 킨고츄우나곤 히데아키에 대해서만은 미소를 보이는 것 자체가 드물었고 이때도 역시 입술을 조금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히데아키가 가진, 살아있는 생물의 추잡함이 배어 나오는 끈적끈적한 얼굴을 보는 것조차 싫었다.
 그런 주제에 히데아키에게는 뻔뻔함이 없었다. 두꺼운 얼굴로 양어머니에게 비위를 맞추면 좋을텐데, 그녀가 안 좋은 기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자 갑자기 겁먹은 강아지마냥 꼬리를 말고 불쌍한 표정을 만들어 내었다. 이 표정이 반대로 키타노만도코로의 비위를 더욱 더 상하게 만들었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힘이 들어가 더욱 더 찡그리는 얼굴을 만들어 버렸다.

 옆에 있던 히데아키의 수하는 조마조마했다.
 이 즈음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토요토미 가문의 가신(家臣) 중 한명인 야마구치 겐바노카미 마사히로[山口 玄蕃頭 正弘]가 스승을 겸한 부속 가로(家老)가 되어 있었다.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오우미[近江] 출신으로, 히데요시가 오우미 나가하마 성[長浜城]의 성주를 하던 때부터 섬겼으며 전쟁터에서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데도 밝아 히데요시의 가장 중요한 토지 정책이었던 소위 태합 검지(太閤 検地[각주:2])의 실무 담당자로서 이름을 높였다. 백성을 잘 다스렸던 만큼 세상 물정에 밝았고 처세에 능했다.
 앞으로 나가서는,

 “키타노만도코로님. 실례입니다만 킨고님에게 여행 떠나는 석별(惜別)의 말씀이라도 받고자 합니다”

 라고 히데아키를 대신하여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이다. 토요토미 가문의 자식이 전쟁터로 떠난다고 하는데 양어머니가 이래서만은 안 되었다.

 “그런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히젠[肥前]에서는 마시는 물에 신경을 쓰시길”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당연히 이런 경우라면 통례인 여행길에 쓰라고 주는 선물도 없었다. 히데아키는 면목을 잃은 채 성을 나섰다.

 히젠 나고야에 도착한 것은 3월 22일이었다.
 히데아키는 화려한 갑옷을 입고 나고야 성에 입성하여 양아버지인 히데요시를
알현(謁見)했다.
 히데요시는 히데아키가 몸에 건친 갑옷의 화려함에 대단히 만족하였다.

 “출발에 앞서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받았나 보구나”

 라고 기분 좋은 듯 물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라 하였다. 히데요시는 어느 정도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기분은 어떠시던가?”

 하고 야마구치 마사히로에게 물었다. 마사히로는 정직히 그 모습을 전했다.

 “허허~ 길 떠나는 자식에게 두 마디뿐인가”

 히데요시는 웃으면서 끄덕거렸지만 내심 당혹스러웠다. 히데츠구[秀次]에게 만일의 일이라도 있을 시에는 히데아키를 토요토미 가문의 후계자로 세워야 하는데도 양어미라는 처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
 -당신은 잘못했네
 하고 질책하는 뜻을 담은 편지를 곧바로 오오사카(大坂)의 처에게 보냈다.

킨고는 22일에 나고야에 도착하였소.
수하들도 많이 동원해 왔으며, 거기에 행장(行裝)도 화려해서 나는 칭찬을 해 주었네.
히데아키가 오오사카에 고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당신은 기분이 나쁜 듯한 표정을 지었고 필요한 도구들도 준비해서 주지도 않았다고 하더군. 왜 그러하였는가?
당신에게는 자식이 없네. 저 아이를 귀여워하지 않고 어느 자식을 귀여워하려고 하는가?
킨고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에 따라 나는 저 아이에게 나의 은거료(隱居料[각주:3])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네.[각주:4]
그 정도로 이 히데요시가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당신도 너무 구두쇠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되오.
라 써서 보냈다.

 하지만 그날부터 2개월도 지나지 않았을 때 토요토미 가문의 사정이 변했다. 요도도노가 임신을 한 것이다.
 히데요시는 미칠 듯이 기뻐했다.
 이 기쁨을 곧바로 오오사카의 키타노만도코로에게 써 보냈지만 내용이 미묘했다.

요즘 감기에 조금 걸려서 붓을 들지 않았네.
지금은 나아져, 이 편지는 나아서 처음 붓을 들어서 쓰는 것이네
 즉, 붓으로 뭘 쓸 때도 키타노만도코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제일 먼저 쓴다는 것을 말하며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리고……
라고 덧붙여서 쓰는 듯이 히데요시는 썼다.
니노마루도노[二の丸殿=요도도노]가 임신했다고 들었네.
고 남 이야기하는 듯 말했다.
경사스러운 일이긴 한데 이 히데요시는 아이가 필요하지 않네. 정말 필요하지 않아. 당신도 그런 생각으로 이 타이코우[太閤]를 이해해주시게.
하긴 이 하데요시에게 아이는 있었지. 츠루마츠[鶴松]라는. 그건 다른 집에 주었지.[각주:5]
그러니 이번 아이는 히데요시의 아이가 아니네. ‘니노마루도노’만의 아이이네
히데요시는 키타노만도코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런 말돌리기를 하였지만 물론 본심이 아니었다. 다만 이 이상한 논리의 뒤에는 당시의 미신과 관계가 있다.
- 내 아이가 아니다. 주워온 아이다
 이러면 아이가 건강히 자란다고 한다. 죽은 츠루마츠가 태어났을 때의 이름을 버린 아이라는 뜻으로 ‘스테[捨]’라고 하였다. 이번에 태어난 아이는 머지않아 ‘히데요리[秀頼]’가 되지만, 태어났을 때는 주워 온 아이라는 뜻으로 ‘히로이[拾]’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미신을, 즉 요도도노 한 사람만의 아이라는 것을 신불(神仏)에게 강조하기 위해서 히데요시는 요도도노를 나고야 성[名護屋城]에서 내보네 야마시로[山城]의 요도 성[淀城]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오오사카 성[大坂城]의 두번 째 성곽[二の丸=니노마루]로 거처를 옮겨 남자 아이를 낳았다. 이해의 8월 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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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요시는 기뻐서 사람들이 ‘이제는 미치신 건가’하고 걱정할 정도로 날뛰었다.
 이 천재도 이 즈음부터는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노망기(老妄氣)가 들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원정군의 지휘를 내던져둔 채 나고야 성을 나와 오오사카로 돌아왔다. 그 사이 키타노만도코로에게 편지를 보내어,

쌓인 이야기라도 함께 하세
라고 써서 보냈으며 요도도노에게도,
거듭거듭 말하지만 히로이에게는 젖을 잘 먹이거라. 젖이 많이 나오도록 너도 밥을 많이 먹어라. 또한 여러가지 신경을 쓰면 젖이 잘 안 나오니 신경 쓰지 않도록 해라
라 써 보냈다. 거기에 한 번 더,
건강을 위해서 을 받거라. 단, 히로이에게 뜸은 필요 없다. 엄마(요도도노)가 해 주어도 안 된다.
라는 편지도 보냈다.

 히데요시가 기뻐 날뛰면 날뛴 만큼 킨고츄우나곤의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이래서는 토요토미 가문에 언젠가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라고 내다본 것은
쿠로다 죠스이[黒田 如水]였다.

 죠스이.
 통칭 칸베에[官兵衛]. 관(官)은 카게유노사칸[勘解由次官].
 히데요시가 천하를 쥘 즈음부터의 꾀주머니였다. 계략, 책략을 굉장히 좋아했다. 단지 기묘할 정도로 사리사욕이 없었다. 그에게 책모(策謀)란 사욕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주객(酒客)이 술을 사랑하는 것처럼 책모를 좋아했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일종의
선풍도골(仙風道骨)까지 느끼곤 하였다. 오오사카[大坂], 후시미[伏見] 등지에는 죠스이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많았고, '타이코우님이 세우신 공(功)의 절반은 저 절름발이님(죠스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토요토미의 천하가 되어서 죠스이가 얻은 것이라고는 불과 부젠[豊前] 나카츠[中津] 10여 만석으로 보잘 것 없었다.

 여담이 되겠지만 어느 사람이 히데요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히데요시는,

 “농담하지 마라”

 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 절름발이에게 100만석이라도 쥐어주면 나중엔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장소에서도 말했다.

 어느 날 밤 측근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였다. 화제가 제후(諸侯)의 품평이 되었다. 히데요시가 갑자기,

 “내가 죽으면 누가 천하를 손에 넣을까?”

 라고 물어보았다. 물론 좌흥(座興)을 돋우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말했지만 히데요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건 절름발이다”

 라고 말했다. 모두 납득할 수 없었다. 왜냐면 쿠로다 죠스이는 기껏해야 10여 만석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런 조그만 영지(領地)로는 많은 병사를 모으기도 힘들다. 그렇게 이의(異議)를 말하자 히데요시는, '아니지~ 아니지~'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 절름발이의 굉장함을 너희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옛날에 그와 거친 전쟁터에서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나만이 그의 굉장함을 알고 있지”

 라고 말했다.
 

 죠스이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히데요시가 자신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이외라 할 수 있는 야박한 처우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하는 낌새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뛰어난 공적을 많이 세워 자신의 주군을 떨게 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고 한다. 죠스이의 지식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옛 공을 내세워 은상을 많이 바라면 죠스이의 몸은 파멸할 것이다.
 히데요시는 천하를 손에 넣자 죠스이를 중요한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죠스이라면 나의 두려움도, 진심도 알아줄 것이다’
 라는 죠스이의 총명함에 기대는 부분도 있었다. 대신하여 문관(文官)들인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 마시타 나가모리[増田 長盛]들이 토요토미 가문의 집정관(執政官)이 되었다. 때때로 그들은 토요토미 가문의 공로자들을 거북하게 여겼기에, 히데요시와 그들 사이를 멀어지게 하였다. 죠스이는 그것에 불만을 표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은 하나의 시대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이 남자는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 후 죠스이는
보신(保身)을 위해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은거를 결심. 가문도 성도 영지(領地)도 아들인 나가마사[長政]에게 물려주었다.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이때는 놀라,

 “영지(領地)로 돌아갈 생각은 마시게. 쿄우[京]에서 내 상담상대가 되어 주게”

 라 말하며 쿄우에서 생활할 수 있게 500석을 주었고 이어서 2000석으로 가증해 주었다.
 그 죠스이가,
 ‘토요토미 가문의 평온을 위해서’
 라며 계책을 세웠다.
 취미나 오락 같은 것이다.
 선조 대대로 두터운 은혜를 받아 왔던 가신(家臣)이 아니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죠스이는 히로이 – 히데요리[秀頼]의 출생으로 인해 관백 히데츠구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히데츠구의 행패는 천하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명목으로 살해당할 것이다. 죠스이는 항상 히데츠구의 바둑 상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넌지시 몸조심할 것을
간언(諫言)하였으며 또한,

 “자진해서라도 원정군의 총지휘를 맡고 싶다고 하십시오. 타이코우[太閤] 전하는 그런 모습을 가련(可憐)히 여기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었지만 히데츠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죠스이는 히데츠구에겐 가망이 없다고 단념하여 그의 저택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다음은 킨고 히데아키였다.
 ‘히로이님이 태어난 이상, 킨고는
폐물(廢物)이 될 뿐이다. 킨고를 어떻게든 해 드려야지..'
 라고 죠스이는 생각했다.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것이었다.
 죠스이는 더이상 히데요시의 꾀주머니도 아니었으며, 또한 토요토미 가문에 대한 것을 신경써야 하는 역할도 주어져 있지 않았다. 거기에 토요토미 가문의 사람들이 죠스이를 특별히 의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디까지나 이 남자만의 취미였다고 할 수 있다.
 죠스이는 그 재능을 표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매일매일이 심심했다.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쓸데없는 참견에 나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칸토우[関東]의 호우죠우 씨[北条氏]를 정벌한 전쟁. [본문으로]
  2. 히데요시[太閤]가 통일된 규격으로 논밭(영지안의 산과 숲은 제외)의 생산량을 계산하여 세금, 부역 등을 산출 혹은 할당하게 한 것. [본문으로]
  3. 은거한 사람에게 주는 쌀 또는 그 만큼의 이익이 나는 영지. [본문으로]
  4. 다른 부분은 관백(関白) 히데츠구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본문으로]
  5. ‘죽음’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 위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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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25 16: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 시메온 죠스이께서 저 폐물에게 무슨 계책을 주려고 하는지.. (예수 믿으면 천국갑니다.. 류의 전도?!)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25 1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예전 김성한 작가님의 '소설 임진왜란'(제가 이길로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에서는,
    물러나는 원균의 조선수군을 무작정 쫓아가자는 킨고님을 돈 시메온이 말리며 계책을 하나 알려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뜸금없는 말이지만, 계책을 준다고하니 갑자기 생각나네요 ^^

  3.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죠스이 소개가 너무 재밌네요 책략 계략이 취미ㅎㅎ 얼마나 심심했으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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