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미요시요시후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1.10 살생관백(殺生関白)-3- (5)
  2. 2007.06.04 살생관백(殺生関白)-1- (2)

三.

 히데요시[秀吉]가 이 마고시치로우[孫七郎]를 위해서 붙여 준 숙노(宿老)라는 것은 - 나카무라 카즈우지[中村 一氏], 호리오 요시하루[堀尾 吉晴], 히토츠야나기 나오스에[一柳 直末],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 一豊]로 모두 히데요시가 오다 가문[織田家]의 장교일 때부터 직접 키워 온 다이묘우[大名]들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히데요시의 의도인지.
  그들은 공통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온화하며 상식적이고 세상일에 익숙하여 [얼굴에 주름 많고,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무슨 일이건 조용히, 어떤 일이건 모나지 않게, 무슨 일이건, 참으세요, 참으세요 - 하고 그들은 입을 열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계속 그렇게 말하며 마고시치로우를 인형처럼 다루며 마고시치로우의 자유를 능수능란하게 봉하였고 더구나 히데요시에게는,

 "굉장히 뛰어난 기획력이 가지고 계시옵니다.”

 라고 하며 자신들이 생각한 것을 마고시치로우가 생각한 것처럼 말하여 히데요시의 기분을 좋게 하는데 전념했다.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그 후에도 마고시치로우가 큰 잘못이 없자,
 '과연……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변하는 법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타사(又左 =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도 그랬지”

 하고 측근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마에다 토시이에도 10대일 때는 손을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양아치였지만,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토시이에가 옛날의 그 마타사인가하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중후한 인물로 변해있다.

“송충이가 나비가 나비가 되듯이 마고녀석도 언제까지나 송충이일 턱이 없지”

 라고 말했다.
 히데요시는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도 없고,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이 혈연자 중 우두머리인 젊은이를 다음 해인 1585년 아직 18살짜리를 키슈우[紀州] 정벌군의 부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운이 좋았는지 큰 실수는 없었다. 이어서 그 해에 시코쿠[四国]정벌에 참가시켰고 이때도 큰 실수 없이 부사령관을 맡았다.
 이 때문에 히데요시는 드디어 마음을 굳혀 같은 해의 윤8월 마고시치로우에게 하시바 성[羽柴姓]을 허용함과 동시에 오우미[近江]를 하사했다. 또한 히데요시가 칸파쿠[関白]가 되자 마고시치로우는 아직 18살이지만 – 조정에 요청하여 종사위하 우코노에츄우죠우[右近衛中将]로 만들었다.
 성(姓)도 없이 백성으로 자란 젊은이가 갑자기 조정의 대신이 된 적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다음해인 19살에 산기[参議]가 되었다. 이미 산기 이상은 공경(公卿)이다.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행운에 공포를 느낀 사람이 있었다.
 실부(實父)인 야스케[弥助] – 지금은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三好 武蔵守 一路]였다. 쿄우[京]에서 자신의 아들인 마고시치로우를 만나,

 “천도(天道)를 두려워혀라”

 하고 오와리 백성들이 사용하는 말로 지겹도록 목소리를 높여가며 말했다. 야스케는 어디서 들었는지,

 “감투가 크면 어깨를 누른다는 말이 있고, 높은 가지가 부러지기 쉽다는 말이 있다. 옛날부터 그 실력 없이 영달을 얻은 사람치고 제대로 된 말로를 보낸 사람이 읍어.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딘다. 두려워혀라”

 고 야스케는 말했다.

 “필시 너는 너무 빠른 승진 때문에 니 마음이 그것에 따라가지 못하여 결국 마음이건 뭐건 산산조각 나 버릴 것이여. 그것을 두려워혀라”

 하고 계속 말했다.

 “어떻게 두려워하라는 건데요?”

 마고시치로우는 무능한 그리고 언제나 무언가에 떨고 있는 듯한 이 친아비의 안스러운 농사꾼 얼굴이, 자신의 미천한 출신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볼 때마다 기분 좋지 않았다. 마고시치로우는 말했다.

 “나는 무예가 뛰어나요. 지위는 그것에 걸맞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아녀 아녀, 너는 잘못 생각혀고 있다”

 고 야스케는 말했지만, 산기[參議] 히데츠구 공[秀次公]이 된 마고시치로우의 날카로운 시선을 되받아 칠 기력도 없어 고개를 숙였다. 침묵은 했지만 야스케는 마고시치로우가 장식 인형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일 턱이 없다.
 단순히 토요토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 증거가 자신이었다. 오와리 오오타카 마을에서 끌려와 세 명의 아들을 전부 빼앗겼고, 더구나 자신은 토요토미 가문의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서 자기 성과 이름도 아닌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고향 사람들은 이런 나를 뒤에서 뭐라고들 지껄이고 있을까?

 “아버지. 이젠 오지 마세요”

 마고시치로우는 참다 못하여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말하였다. 이미 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받았으며, 후지와라 성[藤原姓]을 가진 입만 산 공경(公卿)들과 사귀지 않으면 안 되는 이때에, 궁상맞은 얼굴을 하고 이곳에 와서는 오와리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것을 하나하나 말하는 부친이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날 괴롭히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양부(養父)인 히데요시는 달랐다.
 마고시치로우에게 부귀영화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천하의 모두가 납득할 만한 화려한 이력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었다.

 20살 때에는 히데요시를 따라 큐우슈우[九州] 정벌에 종군하였다. 이때도 숙노(宿老)들의 보좌로 큰 잘못 없이 맡았고, 다음 해인 1588년에는 정삼위(正三位) 곤쥬우나곤[権中納言]으로 승진했다. 거기에 그 다음 달에는 종이위(從二位)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이례였다.

 “이 상태라면 필시 내년에는 다이나곤[大納言]이 되실 것입니다”

 하고, 이 즈음 토요토미 가문에서 조정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던 승려 출신의 쿄우토 봉행[京都奉行] 마에다 겡이[前田 玄以]는 맛깔머리 없는 아부를 하여, 이 토요토미 가문의 후계자가 될 것 같은 젊은이를 기쁘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마고시치로우는 너무도 빠른 승진에 이미 감동이 둔해져 있었다.

 “그런가……내년에는 다이나곤인가”

 하고 멍해서는 기뻐하지도 않았기에 겡이는 마음속으로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바보녀석’

 겡이는 안색 하나 바꾸진 않았지만 마고시치로우의 예법지도를 담당하고 있었던 겡이였던 만큼, 이 마고시치로우를 경멸하는데 겡이만한  인간도 없었다.
 ‘이건 암만 가르쳐도 안 되겠군’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필시 다이나곤이 얼마나 높은 지위인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다이나곤이라는 함은 후지와라 가문[藤原家]의 공경(公卿)중에서도 아네코우지[姉小路], 아스카이[飛鳥井] 가문이라는 우린[羽林[각주:1]]의 가격을 지닌 가문조차 노년(老年)이 되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관위(官位)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이진[大臣[각주:2]] 다음 가는 관위이옵지요.”

 라고 말을 하자, 과연 마고시치로우도 안색을 바꾸며,

“그런가? 그런 다이나곤에 내년에는 될 수 있는 것인가?”

 하고 기뻐 되물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사건이 일어났다. 아니 사건이라고 해선 안 될 것이다. 토요토미 정권에게 있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사였다. 히데요시의 측실 아자이씨[浅井氏[각주:3]]
에게서 남자아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내 몸에는 아기씨가 없는 것인가 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던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이 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름은 장수(長壽)를 약속한다는 미신에 따라, 스테[捨[각주:4]]라고 이름 지어졌다.
 어쨌든 히데요시는 미칠 듯이 기뻤했다.
 천하는 거기에 맞추어 여러 다이묘우[大名]들은 각각 영지(領地)가 휘청댈 정도로 수 많은 양의 축하 선물을 보냈었으며, 텐노우[天皇]조차 이 새롭게 등장한 토요토미 가문의 후계자를 위해 호화로운 애기 옷을 보냈다. 이 덴노우의 하사품(下賜品) 행사를 빈틈없이 처리한 것이 마에다 겡이였다.

 마고시치로우의 존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다이나곤은?’
 하고, 이 해에 마고시치로우는 기대했지만 결국 히데요시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당연했다. 마고시치로우의 관작(官爵)을 너무 높여버리면 이 아기의 장래를 위해선 좋지 않다는 명쾌한 그리고 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히데요시와 토요토미 가문의 관료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마고시치로우의 막중한 임무는 예전과 같았다. 스테가 탄생한 다음 해에 행해진 오다와라[小田原] 정벌[각주:5]에서도 이 인물은 여전히 부사령관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 정벌이 끝나자 히데요시는 후계자의 위치를 잃은 마고시치로우를 위해서 공경(公卿)으로서의 관작은 올려주지 않았지만 다이묘우[大名]로는 가장 내실있는 위로를 해 주었다. 석고가 일약 100만석이 되었다. 주어진 것은 태어난 고향인 오와리[尾張]와 그 옆의 이세[伊勢]였다.

 “기쁘지?”

 라는 말을 히데요시에게 들었지만, 마고시치로우는 어떻게 기뻐하면 좋을지 몰랐다.

 “열심히 해라”

 라고 히데요시는 또 말했다. 더 이상 열심히 하면 후계자로 한다는, 오랫동안 계속했던 그 말은 없었지만 대신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너는 내 대리인이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가 생각하기에 대리인은 직무이지 관작이 아니다.
 어쨌든 히데요시는 이 젊은이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오다와라 정벌이 끝나자 마자 계속해서 마고시치로우는 오우슈우[奥州] 정벌에 종군하였고, 개선하자 마자 쿄우[京]에서 쉴 틈도 없이 다시 쿠노헤의 반란 진압을 위해서 오우슈우로 출정했다.
 이때는 히데요시가 직접 가지 않고 마고시치로우가 처음으로 히데요시를 대리하여 참전하였다. 단지 히데요시는 이 젊은이의 실력이 불안하였기에 사실상의 총사령관으로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를 동행시켰다. 이때 어쩌다 보니 이에야스의 관직이 다이나곤이었기 때문에 격을 맞추기 위해서, 단지 그런 이유 하나 만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 젊은이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곤다이나곤[権大納言[각주:6]]에 임명받았다. 그러나 기뻐할 틈도 없이 출정하였고 오우슈우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 후 반란은 진압된 이 해 10월 오오사카로 개선했다.

 오오사카에서 히데요시를 알현하고 형식적인 치하를 받았지만, 놀랍게도 이 외숙부의 자랑이며 육체적 특징 중에 하나인 북을 치는 듯한 목소리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말에 힘이 없었기에 떨어져서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예전엔 시끄러울 정도로 활기찼던 쥬라쿠테이[聚楽第]도 마치 절간과 같이 조용했다.
 마고시치로우는 그 이유를 개선하는 도중 들었다. 2개월 정도 전에 츠루마츠[鶴松 – 스테를 말 함]가 병으로 죽은 것이었다.

  1. 고급 귀족인 공경(公卿)의 가문의 격(格) 중 4번째에 해당하는 문벌. 코노에쇼우쇼우[近衛少将], 코노에츄우죠우[近衛中将] 등 무관을 거쳐 다이나곤까지 될 수 있었다. [본문으로]
  2. 조선시대 식으로 말하면 좌의정이나 영의정 급을 말한다. [본문으로]
  3. 후에 요도도노[淀殿]를 말함. [본문으로]
  4. 버린 애라는 뜻. 즉 내 놓은 자식은 오래 산다는 미신. [본문으로]
  5. 후 호우죠우 씨[後北条氏]를 멸망시킨 전쟁. [본문으로]
  6. 곤[権]은 정규인수 외에 임명받은 사람에게 붙는 것. [본문으로]

'일본서적 번역 > 豊臣家의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생관백(殺生関白)-6-  (5) 2007.11.30
살생관백(殺生関白)-5-  (0) 2007.11.24
살생관백(殺生関白)-4-  (3) 2007.11.17
살생관백(殺生関白)-3-  (5) 2007.11.10
살생관백(殺生関白)-2-  (2) 2007.06.26
살생관백(殺生関白)-1-  (2) 2007.06.0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7.11.11 0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되고 말았군요.
    더군다나 양자인 그는 히데요시에게 적자가 생기면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였구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12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는 나름 능력있었기에,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고도 합니다.
    역사의 패자(敗者)란 없던 사실도 뒤집어 쓰는 것이다 보니, 정말 실제로는 어땠을지...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7.11.13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긴 그런 경우도 많죠. 역사는 승자가 써내려간 것이라고들 하니까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15 15: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야 ㅎㄷㄷ군요.. 이녀석을 보니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떠오르는군요;;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도 무능의 극치로만 그려진다지만 실체는 어땠을련지..;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15 17: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갸는 무능했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좋게 생각할려고 해도 그렇게 삽질만 하는지... 뚜렷하게 뭔가를 정해놓은 것도 없이, 그 때 그 때 땜빵메우기 식이다 보니 줏대도 없어보이고...결국엔 배신자라는 낙인밖에 남은 것이 없으니까요.

一.


 오와리(尾張), 치타(知多) 반도의 뿌리 부근에 오오타카(大高)라는 적적한 곳이 있다.

 예전엔 나루미 개펄을 끼고 있던 어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센고쿠(戰國) 중기 즈음, 오다(織田)가문이 계속해서 이 근방을 간척(干拓)했기 때문에 바닷바람에서 상당히 멀어진 농촌이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을에서 높은 곳에 오르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푸른 이세(伊勢)의 바다가 넘실대는 것이 보인다.

 아무 특징 없는 그런 마을이다. 마을의 사당이 이외로 엔기식(延喜式)[각주:1]에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랜 사당인 것을 보면 굉장히 옛날부터 마을이 생겼던 것 같다. 사당의 이름을  [히카미아네코(火上姉子)신사(神社)]라고 한다.

 [아네코[각주:2]]

라는 사당의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모시는 신은 상고(上古)시대 이 근방에 살고 있던 여인이다.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라고 한다.

 아주 옛날 이 지역의 추장이었던 이나타네(稲種)라는 사람의 여동생으로, 야마토(大和)에서 동쪽 오랑캐 정벌하러 온 야마토 타케루(日本 武尊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여러 밤 같이 보냈을 것이다. 단지 고대 영웅과 그 정도의 연(緣)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여인의 이름은 고사기(古事記[각주:3])에 기록되어 이 지방에서는 숲에 사당을 짓고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숭배해 왔다.


 인간이란 단지 하나의 개체로 존재할 때는 단순히 동물과 다르지 않다.

 연(緣)으로 존재한다.

 연(緣)이라는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으로 성립한다고 불가(佛家)는 말한다. 이 미야즈히메(美夜受比賣)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말하려는 이야기와 상징적인 관계가 있는 것 같다.


*******************************************************************************************************


 센고쿠 시대(戰國 時代).

 이 오오타카 마을에 빼빼마른 농부가 있었다.

 야스케(弥助)가 그의 이름이었으며 손바닥만한 밭과 소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능력도 없고 용모도 추했다. 마누라를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새 마누라를 찾고 있었다.

 이런 마을과 마을들 사이에 행상인(行商人)들이 오고 간다. 이런 상인들이 마치 바람이 꽃씨를 옮기는 것과 같이 남자와 여자를 중매한다.

 나카무라(中村) 마을에 - 하고 그런 행상인 중에 하나가 말했다.

 알맞은 여자가 있다.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운 좋게 애도 없지. 어때? 하고 다리를 놓는다는 사람이 있어 혼담이 맺어졌다.

 여자는 ‘오토모’라고 한다. 추녀였다. 야스케는 실망했지만, 이 여자가 후에 즈이류우인 닛슈유(瑞龍院 日秀)라는 일본에서 아주 이름 있는 귀부인이 될 것이라고는, 물론 야스케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이 계층의 사람들에게 결혼식이라는 것은 없다.

 문 앞에 모닥불 좀 피워 밝히고 친척이나 이웃사람들에게 식초 같은 술을 먹이면 그걸로 끝난다.

 초대한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오토모는 마루바닥에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돌아갈 곳이 없사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귀여워 해 주세요.”

 

 하고 겉모습과는 달리 애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괜찮을 지도’

 하고 야스케가 생각한 것은 이 목소리와 순진함 때문이었다.

 그랬다. 오토모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친아비는 자신과 동생을 어머니에게 낳게 한 뒤 죽었다. 어머니는 옆집의 치쿠아미(竹阿弥)라는 남자를 집에 들여 재혼하여 이 치쿠아미의 자식을 이번에 낳았다. 의붓아비인 치쿠아미는 성격이 뭐 같은 남자로, 이 때문에 오토모와 같은 아비의 자식인 동생은 집을 나가버렸다. 자신도 자기가 태어난 집이면서도 친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고맙다”


고 야스케는 말했다. 

 언제까지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누라와 함께 산다는 것은 남편에게도 불행일 것이다. 어서 빨리 뿌리를 내려 이 마을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생각하길…….

 

 “뭐든 연(緣)이니까”


 라고 야스케는 말했다.


 “뭐든 연(緣)이니까”


 고 야스케는 말한다.

 그런데 기묘한 연(緣)이 이 세상 한 구석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것도 야스케 부부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싹트고 자라 쭉쭉 커가고 있었다.

 원숭이 - 라는 것이 이 마누라 동생의 어릴 적 이름이다.

 참고로 타이코우수세이키(太閤素生記)라는 책이 있다. 술자는 이나쿠마 스케에몬(稲熊 助右衛門)이란 나카무라 촌의 대관(代官[각주:4]) 의 딸로, 어렸을 때 이 누나하고도 동생하고도 놀았다. 그녀는 늙어서 양자인 츠치야 토모사다(土屋 智貞)에게 자신의 고향에서 나온 희대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그것을 기록시켰다. 거기에 말하길 [아명을 원숭이,  고쳐서 토우키치로우(藤吉郞). 후에, 치쿠젠노카미(筑前守[각주:5])] 이것이 오토모의 동생을 기록한 글의 첫머리이다.

 계속해서 이 책은 말한다, [노부나가공에게서 하시바(羽柴)라는 성을 받았다. 그렇기에 하시바 치쿠젠노카미라고 불리운다. 후에 칸파쿠(関白[각주:6])에 임명받아 토요토미(豊臣) 성을 받다. ...(중략)..타이코우(太閤[각주:7])의 누나, 같은 곳(오와리 나카무라)에 태어나다. 즈이류우인(瑞龍院)이라 불리다. 위 두 사람은 같은 배에서 태어나다].


 이 처남 히데요시의 영달이 오오타카 마을의 야스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운명을 걷게 하였다.

 야스케는 이름까지 바뀌어졌다. 그 이름이라는 것도,

 미요시 무사시노카미 카즈미치(三好 武蔵守 一路)[각주:8]

 이다. 자신의 신분의 변화에 놀랄 틈도 없이,

 

 “매형 다이묘우(大名)가 되세요.”

 

 하고 처남인 히데요시가 말하며 오와리 이누야마(犬山)에 10만석의 제후로 봉했다. 아무리 그래도 야스케는 다이묘우가 될 자신이 없어 봉지에 가지는 않고 히데요시의 직할령으로 하여 녹봉만 얻어서 오오사카(大坂)에서 사는 형식을 취했다. 

 ‘이제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미요시라는 성을 얻은 이유도 하나의 술책과 같은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비천한 신분에서 올라온 만큼 일족을 -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화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아와(阿 波)의 명족 미요시씨는 한 때 쿄우(京)도 지배한 적이 있는 거족이었지만 지금은 몰락하여 간신히 쇼우간 뉴우도(笑巌 入道)라는 노인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전성기 때는 미요시 야마시로노카미 야스나가(三好 山城守 康長)라는 이름으로 셋츠(摂津), 카와치(河内), 이즈미(和泉) 3주(州)에서 무위를 떨쳤었지만 노부나가에게 패하여 쫓겨났다. 지금은 나이 먹은 몸을 히데요시에게 의지하고 있었고,히데요시도 이 사람을 제후 격으로 예우하며 오토기슈우(御伽衆[각주:9])로 삼았다. 이 쇼우간 뉴우도에게,

 

“뉴우도. 자네의 성(姓)을 나한테 빌려주게”

 

 라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의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야스케 부부를 양자로 삼았다. 부부뿐만 아니라 부부가 낳은 자식들도 손자로 삼아 그 중에서 키베에(次兵衛)라는 인간을 미요시 가문의 후계자로 삼아, 미요시가의 후계자가 받는 이름인 마고시치로우(孫七郞)이라는 이름을 칭하게 하였다.

 - 미요시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三好 孫七郞 秀次)

라는 것이 후의 칸파쿠(関白) 히데츠구이다. 


 그러니까 그의 부모인 야스케 부부는 자신의 운명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으며 무엇이든 '연(緣)'으로 인해 귀족이 되었다.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도 이 행운의 은혜를 받았다. 받기는 했지만 마고시치로우는 그의 부모와는 달리 다소의 노력은 했다. 아니 다소정도가 아니었다.


=================================================================================================

이 글은 시바 료우타로우(司馬 遼太郎)선생의 토요토미가의 사람들(豊臣家の人々)를

번역한 것입니다.

시바 선생은 워낙 유명해서 어느 출판사인가가 판권 가지고 있겠지만,

상용이 아니니까 용서해 줄지도.. (용서 안해주면 대략 난감 --;)

원래는 타올라라 검(燃えよ剣)하고 싶었지만, 이거야 시중에서 팔리고 있으니까 안 하지만,

이건 없는 것 같으니...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할 예정...(예정이란 어긋나기 위해 존재한다!!)

  1. 967년에 작성된 율령제 시행 세칙. 종교에 관련된 신기관(神祇官) 제 9,10에 각 지역(国)마다 일본 조정에서 중요시하여 지원한 신사들이 실려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누나'라는 의미 [본문으로]
  3. 일본 신화 모음집. 여담으로 고사기에 등장하는 야마토타케루는 이 미야즈히메에게 쿠사나기 검(草薙剣)을 놓고서 이부키야마(伊吹山)의 악신을 정벌하러 갔다가 죽는다. 미야즈히메가 야마토타케루를 그리워 하며 검을 봉납시킨 신사가 후에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공격을 나가기 전에 들린 아츠타 신궁(熱田 神宮)이다. [본문으로]
  4. 그 땅의 주인을 대신해서 관리하는 사람. [본문으로]
  5.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처음 받은 관도명 [본문으로]
  6. 옛 일본 텐노우(天皇)를 대신하며 정무를 처리한 직책. [본문으로]
  7. 칸파쿠를 그만 둔 사람의 존칭. [본문으로]
  8. 카즈미치(一路)는 호이기에 '이치로우'라고 읽어야 할 듯. 그의 이름(諱)는 미요시 요시후사(三好 吉房)이다. [본문으로]
  9. 히데요시와 말상대를 하는 무리. 히데요시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식의 지식을 늘려나갔다고 한다. [본문으로]

'일본서적 번역 > 豊臣家의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생관백(殺生関白)-6-  (5) 2007.11.30
살생관백(殺生関白)-5-  (0) 2007.11.24
살생관백(殺生関白)-4-  (3) 2007.11.17
살생관백(殺生関白)-3-  (5) 2007.11.10
살생관백(殺生関白)-2-  (2) 2007.06.26
살생관백(殺生関白)-1-  (2) 2007.06.0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hyunby1986 BlogIcon 턴오버 2007.06.04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간만에 전국시대 이야기군요^^

  2. BlogIcon 블루 2016.03.28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바 선생님 팬입니다 잘보겠습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