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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케이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6.26 살생관백(殺生関白)-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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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는 성인식을 치른 후 카와치(
) 2만석의 영토를 하사 받고 이때부터 외삼촌인 히데요시를 따라다니며 10대 중반 즈음부터 전투에 참가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한 군단의 대장이었다. 16살 때는 이세(伊勢)타키가와 가즈마스(川 一益) 정벌에 참가했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라고 외삼촌 히데요시는 매번 말했다. 좋은 일이라는 것은 히데요시의 후계자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긴 했다. 이 세상에서 히데요시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것이 바로 이 마고시치로우였다.
 둘째인 고키치(小吉 = 히데카츠(秀勝))도 그렇기는 했지만 이 둘째는 지능이 좀 떨어졌고 더구나 태어날 때부터 외눈이었다.
 셋째인 아이는 후에 히데토시(秀俊)라는 인물이 되지만 이 아이는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이부제(異父弟)히데나가(秀長)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보아도 좋았다. 즉 히데요시의 혈통 중에 젊은 사람은 누나 오토모가 낳은 이 세 명밖에 없었다.

 
 ‘이 분이 후계자가 되신다.’
 라고 여러 장수들도 그리 생각하였다. 자연히 나이 먹은 장수들은 마고시치로우를 히데요시의 분신처럼 떠받들었다.
 이런 와중에 웃기지도 않다는 듯이 마고시치로우를 비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히데요시의 몇 없는 친척 중에 하나인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였다. 오와리 키요스(淸州)의 오케야(桶屋[각주:1])의 아들로 태어나 아명(
兒名

)
이치마츠(市松)인 마사노리(正則)는 히데요시의 죽은 아비의 혈연이었던 관계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하시바 가문(羽柴)의 부엌 밥을 먹고 자라며 코쇼우(小姓)가 되었고, 이어 시즈가타케(賤ヶ岳[각주:2])에서는 공을 세워 지금은 모노가시라(物頭[각주:3])가 되어 세 개의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원래 마사노리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였으며 광인(狂人)이라 생각되어 지는 곳도 있었고 또한 히데요시의 일족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남자였기 때문에 마고시치로우를 질투의 감정을 통해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괭이질 하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남자다”

 

 누군가가 마고시치로우를 '귀족'이라 말했을 때 마사노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저 놈이 귀족인가? 옷이야 귀족하고 같겠지만 안에 있는 몸뚱이는 보급대의 짐꾼조차 버거운 놈이다”

 
 고 말했다.
 그런 험담이 마고시치로우의 귀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종류의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자연히 허세를 부리게 되었고 보좌하는 노장들에게까지 거만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6살 때 말이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는 보좌역들이 모든 것을 관리하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기에 큰 공도 없었다. 이 젊은이가 전투를 - 라기보다는 역사를 좌우할 정도의 행동을 하게 된 것은 다음 해인 17살이었을 때였다.

 
 그 전투는 후에 코마키-나가쿠테(小牧-長久手)의 싸움이라고 일컬어 진다.
 때는 히데요시가 일본의 중앙 24개국을 휘하에 두었을 즈음으로 그 위세를 몰아 토우카이(東海)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
川 家康)를 제압하고자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로 진출했다. 이에야스도 본국인 미카와(三河)를 비워둔 체 오와리에 포진하여 거의 3배에 달하는 병력을 가진 히데요시군과 대치했다.
 서로 상대의 허실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대치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 견고한 야전진지를 구축하여 전선은 고착상태가 되었다. 이럴 경우 가벼이 군을 움직이는 쪽이 질 것이다. 적이 움직임에 따라 곧바로 대응하는 태세를 쌍방이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자중에 자중을 거듭하였지만 이럴 때 그에게 있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작전을 제안해 왔다.

 과거 오다 가문(織田家)의 동료였던 이케다 쇼우뉴우(池田 勝入[각주:4])와 테루마사(輝政) 부자(父子), 천하를 손에 넣고자 하는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기분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이케다 쇼우뉴우는 공을 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가 제안한 작전이라는 것은 -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미카와가 비어있다. 지금 은밀히 별동대를 편성하여 이에야스 모르게 우회 행군하여 곧바로 미카와를 공격하면 이에야스는 놀라 이곳을 버리고 지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별동대의 선봉을 자신에게 맡겨주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찬동할 수 없었다. 이에야스가 알아채고 행여라도 패배라도 당한다면 이것을 계기로 전군의 사기가 떨어져 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쇼우뉴우는 다음날 다시 한번 간청했다. 히데요시는 쇼우뉴우의 마음이 멀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결국 허용했다. 단 하나하나 세세히 주의시켰다.

 

 곧바로 별동대가 편성되었다.
 선봉은 이케다 쇼우뉴우, 중군은 모리 나가요시(森 長可), 호리 히데마사(堀 秀政)라는 식으로 오다(織田) 시대부터 맹장으로 유명한 장수가 선발되었고, 후군은 미요시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가 담당함과 동시에 별동대 전체의 대장도 겸했다.
 유격군 총 1 5천이 오와리 가쿠덴(樂田)의 진지를 출발한 것은 1584 4 6일 심야였다. 모노쿠루이(物狂) 언덕을 살며시 넘어 이에야스의 진지 전방을 통과, 첫째 날은 무사히 그 행동이 탐지되는 일 없이 넘어갔다.
 이에야스가 알게 된 것은 다음날인 7, 그것도 노을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에야스가 히데요시군에 밀정으로 파견했던 이가(伊賀) 닌쟈(忍者) 핫토리 헤이로쿠(服部平六)라는 자가 돌아와서 이것을 보고했다.
 히데요시의 한 부대가 움직였다는 보고에 이에야스는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해가 짐과 동시에 행동을 개시했다. 그가 취한 방법은 은밀히 움직이는 적군을, 이 또한 은밀히 추격하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코마키의 본영에서 9천의 병사를 히데요시군이 알아채지 못하게 빼내는 데 성공, 그 뒤 재빨른 행군으로 뒤를 쫓았고 곧이어 심야에 적 후미를 발견했다.

 

 “적 후군의 장수는 누구더냐?

 

 “미요시 마고시치로우님이십니다.

 
 고 부하 중에 하나가 답했다.
 이에야스가 히데츠구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어떤 인물인가?

 
 고 적 정세를 자세히 아는 자에게 물었다. 히데요시의 양자라고 한다. 나이는 17. 다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했던 것은 이 어린 대장이 몸에 걸치고 있는 무구(武具)였다.
 마고시치로우 히데츠구는 그의 인생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수집했었는데 이 시기에는 열심히 유명한 무장의 무구를 모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 남자의 대장으로써의 특징인 부대표식에치젠(越前) 키타노쇼(北ノ庄)에서 패사(敗死)한 오다 가문 제일의 용장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의 금색 마토이([각주:5])이다.
 쓰고 있는 투구는 미노(美濃)출신의 무예가 뛰어난 무사로 지금은 히데요시를 섬기고 있는 히네노 빗츄우노카미 히로나리(
日根野 備中守 弘就)의 중국 관모(官帽)모양의 투구를 억지로 청해서 손에 넣은 것이었고, 몸에 걸치고 있는 새털로 된 진바오리(陣羽織[각주:6])오우미(近江)출신의 호걸(豪傑)로 지금은 히데요시의 군중에 있는 키무라 히타치노스케(木村 常陸介)가 항상 걸치던 것을 졸라서 손에 넣은 것이다. 말하자면 당대 영웅호걸의 전장도구들을 끌어 모아서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었다.

 

 “특이한 분이시군

 
 이에야스는 머리를 조금 갸웃거리더니 비웃었. 이에야스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적장의 강하고 약함이었다. 선봉인 이케다 쇼우뉴우의 용맹함은 천하에 떨치고 있었으며, 중군인 호리 히데마사는 역전(歷戰)의 용사였고, 모리 나가요시는 미노 사이토우(
)()의 옛 신하출신으로 무사시노카미()를 칭하며 노부나가를 섬겨 여러 전장을 경험하면서 오니무사시(鬼武蔵[각주:7])라는 이명(異名)을 얻고 있었다. 또한 이 일족은 그의 동생 란마루(蘭丸), 리키마루(力丸)가 혼노우(本能)()에서 노부나가를 지키며 분전하다 그와 함께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들 너무 강했다. 기습의 효과는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에 있다. 이에야스는 마고시치로우의 겉모습의 기묘함을 듣고,

 

 “그 분은 분명 약할 것이다

 
 고 말했다.
 이에야스가 보건데 그 히데요시의 친척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용렬함과 무능함을 그러한 허세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인간 관찰을 끝낸 후 이에야스는 마고시치로우로를 공격의 중점으로  두기로 하고
포위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하쿠산(白山)
 이라는 곳에 마고시치로우군() 야영했다.
 동쪽은 고지(高地) 서쪽으로 경사졌으며, 계곡 사이에 남북으로 길이 하나 나있을 뿐으로 주변은 울창한 숲이었다. 이런 지형으로 보건대 마고시치로우는 마치 습격 당하기 위해서 야영하고 있다고 밖에 없었다.
 더구나 공격하는 이에야스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척후는 커녕 보초도 게을리 하고 있는 상태였다.

 

 “편한 싸움이 되겠군. 명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고 이에야스는 명령하며 야심함을 틈타 9천명을 속에 잠입시켜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렸다.

 
 아침이 되어 마고시치로우군은 일어났고 일어났지만 주변에 이에야스군이 잠복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한 채 왁자지껄대며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야스군이 공격을 시작한 것은 때였다.


 이미
전투가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대부분의 사졸들은 식기를 버리고 말을 버리며 맨몸으로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고시치로우는 이미 대장이 아니었다. 사냥터의 동물과 같은 신경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도망가기 위해서 옆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숲에서 돌격해 오는 토쿠가와의 병사들을 보고 몸을 반대로 돌렸고 막상 갈 곳도 없어 주변을 우왕좌왕 하기만 하였다. 이러는 동안 그가 내린 명령은 하나밖에 없었다.

 

 “큐우베에(久兵衛) 불러라! 큐우베에를 불러라~!


 고 외쳤다.
 큐우베에는
그의 선봉대의 대장인 타나카 요시마사(田中 吉政)를 말한다.
 요시마사는 오우미(近江) 출신으로 아시가루(足軽[각주:8])부터 시작하여 출세, 여러 직책을 역임하는 동안 히데요시의 눈에 띄어 지금은 마고시치로우에게 파견된 전술 지휘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남자였다. 남자의 부대만이 이런 혼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간신히 버티며 적을 막아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요시마사는 이상히 여겨 방어선을 철수시키고 왔다.

 

 “쇼우뉴우나 무사시에게 사태를 알려라~ 도우러 오라고 말해!

 
 하고 소리쳐댔다.
 요시마사는 어처구니 없었다.
 전령 역할이라면 츠카이반(使番[각주:9]) 대장 옆에 있다.
 제1선의 지휘관을... 그것도 방어하기에바쁜 와중에 불러서는 전령으로 삼으려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거기에명령이라는 것도 좋지 않았다.
 지금 혼란은 후군이 혼자서 막아야만 하지 리나 앞서 있는 전방의 부대를 불러, 설사 그들이 구원하러 오더라도 개미지옥과도 같은 적의 함정에 빠져 속에서 각개격파 당해 버릴 것이다. 그런 가지 이유로 요시마사는 거절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미친 듯이 외쳤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죽인다!!”

 
 고 소리쳐댔기 때문에 어쩔 없이 부하도 없이 혼자서 말을 몰고 전방 부대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열심히 달려 호리 히데마사의 부대를 따라 잡아 후군이 무너졌다고 알리자,

 

 “큐우베에. 자네는 츠카이반이 아니다, 미요시 가문에서 지휘를 하는 신분이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겁을 먹고 도망쳐 것이군

 
 하고 모두 앞에서 창피를 주었다. 요시마사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물러나 전장에서 이탈하면서
 ‘
장래 가능성이 있는 대장은 아니다
 며 마고시치로우에게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전투 후에 사표를 내고 낭인이 되었다.
 그 여담이지만 남자는 고향이 같았던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 주선으로 히데요시의 직속 신하가 되어, 기량에 걸맞게 10만석이 주어졌고 후에 세키가하라(ヶ原)에서는 이에야스측에 선 덕분에 치쿠고 야나기카와(筑後 柳川) 30여만석을 영유하게 된다.

 
 요시마사가 전령으로 떠나면서부터 마고시치로우의 군은 이상 군대가 아니었다. 모두 말을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다. 마고시치로우도 도망치면서 잔머리를 굴렸다. 중국 관모 모양의 투구, 금색 마토이의 우마지루시, 새털로 진바오리라는 호걸의 상징은 모두 버리고 역시 맨발로 도망쳤다. 이렇게 하면 적은 자기를 말단 무사로 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앞을 카니 사이조우(可児 才蔵) 언제나 자랑하던 말에 채찍질하며 조릿대로 개인표식을 비스듬히 등에 단 채 유유히 도망치고 있었다.
 카니는
미노 출신으로, 창을 쥐면 남자를 당해낼 사람이 없다고 하는 남자이다. 히데요시는 마고시치로우에게 도움 된다고 생각하여 이런 종류의 능숙한 전쟁꾼들을 많이 배속시켜 주었다.

 카니는 역시 전장에 익숙한지 도망치는 방법도 어딘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이조우~ 사이조우~”

 
 하고 마고시치로우는 애원하는 듯이 불렀다. 물론 마고시치로우는 카니에게 아무런 용무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그가 타고 있는 말이었다.

 

 “말을 나에게 다오

 

 마고시치로우가 말하자 카니는 눈동자를 굴리며 뒤돌아서는,

 

 “비올 때의 우산이외다

 
 라고 말하고선 도망쳤다. 비가 때는 우산이 필요하다. 퇴각할 때는 말이 필요하다. 그리 쉽게 말을 줄까하는 말이었다. 카니와 같은 미노 사이토우 가문에서 오와리 오다 가문으로 말을 갈아타며 수 많은 전쟁터를 경험해 전쟁전문가들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패하는 모습을 보고 주인의 앞길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남자는 후에 사표를 내던지고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섬기게 된다.

 
 그러는 동안 마고시치로우에게 배속된 부대장 중에 명인 키노시타 토시나오(木下 利直) 도망치면서 마고시치로우를 발견하곤 자신의 말에 태워 도망치게 하였고 자신은 맨땅에 서서 개인표식을 등에서 뽑아 땅에 꽂고서는 달려드는 적병을 막았지만 전사했다. 역시 그의 동생인 스오우노카미 토시마사(周防守 利匡) 형을 도와 말 없이 맨땅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마고시치로우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도망쳤기 때문에 둘의 마지막조차도 알지 못했다.

 
 이 붕괴는 곧바로 전방의 아군들에게도 파급되어 선봉대장인 이케다 쇼우뉴우는 아들인 모토스케(之助) 함께 전사하였고 명장이라 일컬어졌던 모리 나가요시도 적의 두터운 포위망 속에서 이마에 철포 탄환을 맞고 죽었다. 어쨌든 별동대는 전멸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 나가쿠테(長久手) 패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외교로 고립시킨 화해하여 결국은 신종(臣從)시켜 토요토미 가문 휘하 다이묘우(大名)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 이것이 오히려 그의 무위(武威) 나타내는 최대의 이력이 되었으며 히데요시는 죽을 때까지 이에야스에게 큰소리를 못쳤다. 또한 덕분에 히데요시가 죽은 천하를 손에 넣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약 마고시치로우의 실패가 없었다면 히데요시가 이겼고 이에야스는 패망(敗亡)하여 히데요시 정권 불안의 불씨는 꺼졌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히데요시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몰랐다. 도망친 히데요시에게 전령을 보내어,

 

 “대신할 장수를 주세요

 
 라고 하였다. 마고시치로우의 입장에서는 키노시타 형제가 죽었으니 그들을 대신할 인물이 필요하다, 히데요시 옆에 있는 인물 중에 하나를 보내주세요 - 라는 것이었다.
 이름까지 집어서 말했다. 무용(武勇) 뛰어난 이케다 켄모츠(池田 監物) 원합니다 하였다. 말투가 마치 물건이라도 바꾸자는 듯하였다.

 

 “ 놈이 인간이냐?”

 

 라고 히데요시는 뻔뻔스럽게 마고시치로우의 말을 가지고 사자 히토츠야나기 이치스케(一柳 市助 = 후에 이즈노카미(伊豆守)[각주:10])를 향해서 우선 격노하였다.

 

 “네 놈을 우선 죽이고 나중에 마고시치로우에게 배를 가르게 하겠다"


 까지 말하였다. 키노시타 형제를 개죽음 시키고 자신만 전쟁터에서 도망쳐 왔으며 거기에 그 때문에 모리 나가요시, 이케다 쇼우뉴우 부자까지 전사했다. 그것에 아무런 창피를 느끼지 못하고 도망쳐 오자마자 대신할 사람을 보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를 가진 것인가?
 '저건 그냥 바보인가
?’

 히데요시는 이 패전보다도 그 생각으로 인해 더욱 마음이 어두워졌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장래를 맡길 자신의 혈연이 어째서 하나같이 이렇게 졸렬한 놈들뿐인지 예전부터 생각했다.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동생인 히데나가(
秀長)를 제외하곤 모두 지능에 결함이 있던지 성격이 좇같았다. 처의 친척들을 둘러보아도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 중에서는 제대로 된 놈이 없었다. 적어도 마고시치로우 정도는 하고 생각하여 조금은 기대를 걸었다. 그 재능은 포기한다손 치더라도 저 가벼운 성격을 보면 자신의 뒤를 물려준다고 하여도 세상 사람들은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권력의 자리라는 것은 하루도 버틸 수 없다는 것을 히데요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히데요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젊은이를 어떻게든 제 앞가림은 하는 머리와 마음의 소유자로 만들어 그런대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후계자로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히데요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꾹 참고 있었지만, 일단락한 어느 날 조용히 자신의 비서를 불러, 붓과 종이를 준비케 한 후, 눈 앞에 땀구멍이 커다란 밉상 맞은 얼굴을 한 마고시치로우가 바로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받아 적게 하였다.

 
 [너는]이라는 말투로, 편지는 곧바로 본제로 들어갔다.

 평소 히데요시의 조카라는 것을 내세우며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이 많다.
 
꾸짖어야 할 때가 왔다. 마음가짐도 올바르지 못하다. 반대로 역시 히데요시의 조카라고 존경 받을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한 때는 죽이려고 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가엾다는 마음이 생겨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마음을 고쳐 남들에게도 제대로 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뭐든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어쨌든 이번 전투에 대해서다.
 키노시타 형제를 붙여주었더니 너는 그 둘을 개죽음 시켜 버렸다. 그것을 너는 미안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도 없이 히토츠야나기 이치스케를 보내와 이케다 켄모츠를 달라고 말해 왔다. 창피함을 느끼고 분발해야 할 때에, 그 대신할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냐? 그 말을 전하러 온 놈도 얼간이여서 한 때는 내 직접 죽이려고 생각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심사 숙고하여, 히데요시의 조카는 굉장한 인물이라고 남들에게 들을 수 있게 되어 준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에 만족하겠다.
 지금의 마음 가짐만 고친다면 어느 나라건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얼간이라면 아무리 목숨을 구해주어도 내 체면에 걸린 문제이기에 내 손으로 직접 베겠다. 히데요시는 사람 베는 것을 싫어하지만 너를 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은 더욱 창피해지기에 다른 사람 손을 쓰지 않고 내 손으로 너를 죽이겠다.
  누가 봐도 훈계(訓戒)의 편지임을 알 수 있듯이 똑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항목에,
 [너는 요령 좋고 잔재주가 많다
.]

 라는 말로 마고시치로우의 능력을 평하였. 요령 좋고 잔재주가 많다는 말을 제대로 인간이 들으면 내겠지만,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정도의 표현만이 간신히 마고시치로우를 칭찬할 있는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언젠가는 나의 묘우다이(名代[각주:11]) 시켜주려고 까지 생각했었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끝이 보였다. 이것은 하늘이 히데요시의 이름을 남기지마라, 가문이 끊어져라라고 말씀하시는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라고 계속해서 훈계를 주제로 강조했다.
 그러나 마고시치로우는 편지의 의미를 이해할 없었다. 읽고 나서는,

 

 “나는 무예도 부족하 겁쟁이다라는 뜻인가?”

 
 라고 말했다. 말한 상대는 편지를 전하러 미야베 젠쇼우보우(宮部 善祥坊), 하치스카 히코에몬(蜂須賀 彦右衛門) 사람에게 였다. 둘은 마고시치로우의 난독증 놀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하고 둘은 히데요시의 진의를 열심히 설명했다.

 

 “알고 있다!

 
 고 마고시치로우는 소리 높여 날카롭게 말했다. 정도의 독해력이라면 젊은이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단지 가지 이해할 없는 것이 히데요시의 분노였다.
 마음가짐, 마음가짐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의 부족한 무예와 많음을 질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히데요시는 마고시치로우라는 인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틀리다 마고시치로우는 생각했다. 억울하다.
 ‘
나는 원래 용감한 남자다
 마고시치로우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는 습관이 되어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듯이 이렇게 믿는 습관을 항상 마음속에 갖추고 있기에 군단의 대장으로써 말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용감함을 히데요시는 모른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한번의 패배로 이렇게 질책 받지 않아도 되잖아? 라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마고시치로우는 아무리 그래도 말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둘에게 물었다. 세상살이에 익숙한 둘이라면 히데요시의 분노를 피하여 그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엇을 하던지, 히데요시님에게서 붙여드린 숙노(宿老)들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심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둘은 말했다.

  1. 상자나 통 등을 제조, 판매하는 가게 혹은 사람을 뜻함. [본문으로]
  2. 오다(織田)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가 싸운 전투. [본문으로]
  3. 중급 지휘관. [본문으로]
  4. 이케다 츠네오키(池田 恒興)를 말함. [본문으로]
  5. 대장 옆에 세우던 표식. [본문으로]
  6. 갑옷 위에 조끼처럼 걸쳐 있는 옷. [본문으로]
  7. 전장에서의 모습이 괴물(鬼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과 그의 관도명을 붙인 것. [본문으로]
  8. 최하층 무사(侍). [본문으로]
  9. 전령(傳令)을 말함. [본문으로]
  10. 히토츠야나기 나오스에(一柳 直末).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든 듯 호우죠우(北条)를 멸한 오다와라 정벌에서 그가 전사하자 "칸토우를 손에 넣은 것보다 그를 잃은 슬픔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하다. [본문으로]
  11. 대리인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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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ayasea BlogIcon 오연 2007.06.27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느껴보는 역사소설의 즐거움입니다...감사합니당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06.27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지만, 워낙 제 번역 실력이 딸려서 시바 선생의 필력을 전해드리지 못함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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