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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8 하치죠우노미야[八条宮]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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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6년 정월.

 미야[宮]는 열 살이 되었다. 이 달의 14일에 히데요시[秀吉]가 신년의 축사를 올리기 위해 입궐하였다. 이 즈음 히데요시는 이미 칸파쿠[白]가 되어 있었으며, 토요토미 씨[豊臣氏]를 칭할 정도로 지반을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토우카이도우[東海道]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는 그의 휘하에 들어와있지 않은 상태였고, 큐우슈우[九州]도 또한 히데요시 세력 밖에 있었기에 그의 일상은 아직도 다망한 상태였다. 입궐하자마자 곧바로 퇴출하였고 서둘러 쿄우[]에서 물러갔다.

 

 그런데 다다음날, 다시 쿄우[京]에 나타나 뛰어들기라도 하듯 어소(御所)에 들어갔다.

 - 칸파쿠님은 어떤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듯 하다. 라는 소문이 전날부터 궁정에서 떠돌고 있었다.
 
이날 미야는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몸이었지만 갑자기 입궐하라는 명을 받아 헤어스타일이 여전히 아이인 [童形]로 형과 함께 어소에 입궐하였다. 히데요시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미야는 아직 히데요시라는 이 시대를 창조한 인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날, 히데요시는 기이한 것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이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동용 다실(茶室)을 어소 안으로 옮겨와, 그것을 코고쇼[小御所][각주:1] 내에서 조립하여, 당시의 텐노우[天皇]인 오오기마치[正親町]에게 보여주고 또한 헌상하고자 하려는 것이었다.

 미야도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텐노우[天皇]와 함께 코고쇼에 들어섰다. 코고쇼의 마루 위에 그 화제의 작은 건조물이 눈부신 광망(光芒)을 뿜어대며 놓여있었다.

 

 다실의 기둥도 아랫미닫이틀윗미닫이틀도 모두 두터운 금박(金箔)을 입혔고, 벽도 천정도 황금일색이었다. 창호지를 붙인 틀이나 널까지 황금이었으며, 불과 장이 깔린 타타미() 만이 황금이 아니었다[각주:2]. 어두운 진홍색의 가죽이었다. 더구나 타타미의 둘레는 녹황색 비단으로 만든 바탕에 금을 입힌 실로 작은 무늬들을 박아 넣은 것이라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뺏었다.

 

 차제구(茶諸具)도 황금투성이였다. 탁자(台子), 과자를 담는 네모난 그릇(四方盆), 차 가루를 담는 그릇(なつめ), 물 끓이는 풍로(), (), 국자(柄杓), 물을 버리는 그릇(こぼし), 찻잔에 물을 보충하는 작은 그릇(水差), 보통 대나무로 만드는 차 가루를 뜨기 위한 숟가락(茶杓), 심지어는 숯을 담는 것(炭取)마저 전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일본이라는 땅이 생긴 이래, 이 지상에서 이렇게 엄청난 황금을 누가 보았단 말인가?

 

 이런 일이…’

 하고 미야는 이 한도 끝도 없는 호사스러움에 정신을 빼앗겼다. 가슴이 기묘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것은 미()가 아니다. 적어도 옛 시가(詩歌)에서 말해주는 미()가 아니었으며, 적어도 궁정 사람들의 전통적인 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자연스럽게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충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금색(金色)이 가진 힘인가? 금색에는 지금껏 품고 있던 미를 초월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미야뿐 아니라 모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이 조금 벌려져 있었다. 텐노우[天皇]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히데요시의 의도는 성공했다.

 - 히데요시는?

 하고 미야는 눈을 돌렸다. 찾을 필요도 없이 히데요시는 이 황금의 조립식 다실 옆, 조금 물러난 곳에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본디 검은색일 터인 그가 입고 있는 조복(袍衣)조차 어깨부터 소매에 걸친 곳이 반쯤 금색으로 물들어져 있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황금에는 어두움이 없다. 어두움 없는 광택, 신음을 내고 싶을 정도로 야릇한 화려함 속에 히데요시는 엎드려, 그 황금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그 상판은 어딘가 웃기려는 듯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농담을 말할 것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 어쩌면 이 인물은 장난을 칠 생각으로 이 황금다실을 어소 안으로 가지고 왔을지도 몰랐다. 미야가 듣고 있던 세간의 소문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젊었을 즈음부터 굉장한 익살꾼이었다고 한다.

 그럴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고 미야는 어린이답게 그런 상상을 막연이 이기는 하지만 이 야릇한 풍경 속에서 하고 있었다.

 

 이때의 충격과 의문은 훗날까지 미야의 추억 속에서 살아 숨쉬었다. 익살꾼인 히데요시는 어소(御所)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한 마리의 개구리로 변신해서는 익살부리며 기어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 하고 미야는 훗날 생각했다. 어소는 모든 것이 청명(淸明)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청명함이 궁정사람들의 전통적인 미의식이었기에 어소의 건물이건 가구건 모두 맑고 시원시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오랜 왕실의 역사 속에서는 때때로 이 미의식에 대한 반역자도 나왔다. 예를 들면 고시라카와 법황[後白河 法皇][각주:3] 등이 그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황은 이마요우[今様=속류문학]라는 끈적끈적하고 인정미 넘치는 서민시(庶民詩)를 사랑하여 스스로도 불렀고 또한 그 가사(歌詞)의 선곡집인 [양진비초(료우진히쇼우=梁塵秘抄)]를 편집하였으며, 한편으로 지극히 강렬하게 금색을 칠한 조각을 사랑하여, 너무 사랑한 나머지 1001(座)[각주:4]의 금박을 한 목조 불상(佛像)을 만들게 하였다[각주:5]. 그러나 그 고시라카와 법황조차도 어소 안으로까지 그 취향을 가져오지 않았으며, 신도(神道)적인 청명함에는 손을 대는 일 없이, 그런 금색 불상의 무리들을 모아둔 절[각주:6]을 따로 둠으로써 어소와 격리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그런 어소에 짙은 황금의 건조물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 다도(茶道)를 하시길.

 이라는 것이 그 헌상의 이유였으며 히데요시의 의도였다.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다도(茶道)를 자신만이 독점하려고 하지 않고 궁정에까지 유행시키고자 하였다. 그 의도는 좋았다. 문제는 황금의 다실이었다. 다도(茶道)에서 말하는 와비[び]라는 것은 이러한 것일까?

 미야는 훗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근본은 히데요시빠였기에, 그 비판이 그 애정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마음은 더 깊은 곳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였다. 오오사카 성[大坂城]산골 성곽[山里廓]을 만든 것은 호사스러움 속에서 한 점의 한적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다도(茶道)의 마음일 것이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충분히 표현했다.


 그런 히데요시가 어소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 반대로 하였다. 어소의 청명함 – ‘와비[び]라는 것과는 달르지만 조금은 닮은 듯한 그러한 차분함 속에는 오히려 황금의 다실을 두어 그 근방을 화려하게 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대극(對極)의 재미를 반쯤 가벼운 마음으로, 즉 저 익살스러운 얼굴로 연출해 보이려 한 것이 아닐까? 미야는 그렇게 이해했다. 미야의 이해에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히데요시에 대한 애정과 경의 때문일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쨌든, 이때.

 이 코고쇼에서 미야는 히데요시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보았다. 조그만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꽉 쥔 주먹과 같이 팽팽했고, 전쟁터에서 햇볕에 탄 탓인지 색이 까맸으며, 커다란 양 눈이 있는 얼굴의 턱 아랫부분이 날카로울 정도로 뾰족하여, 어딘가 날카롭게 벼른 칼과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미야가 쳐다보고 있자 그 시선을 느꼈는지, 히데요시는 조금 얼굴을 들어 미야를 쳐다보며 갑자기 활짝 웃었다.

 웃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주름이 많았고 특히 눈꼬리의 주름은 원이라도 그리려는 듯이 아래로 아래로 움직여, 마치 늙은 농부와 같이 사람 좋은 얼굴이 되었다.

 이 얼굴이었다.

 이 얼굴을 미야는 처음부터 상상하고 있었다. 미야는 이 남자가 좋아졌다. 미츠히데를 물리친 정의로운 무인(武人)의 얼굴이라는 것은, 당연히 이러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1. 쿄우토[京都] 궁궐에 있는 건물의 하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는 쇼우군[将軍]이 입궐했을 때 휴식을 취하거나 대기하는 곳이었으며, 시대가 내려가 에도시대[江戸時代]가 되자, 텐노우[天皇]가 막부(幕府) 측의 사람들을 만날 때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본문으로]
  2. 타타미 한 장은 1m*2m. 석 장은 3m*2m 정도의 면적. [본문으로]
  3. 텐노우[天皇] 재위 1155~58. 생몰년은 1127~1192.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 義経]가 활약한 겐페이 쟁란(源平爭亂)기의 조정의 대표자. ‘법황’은 텐노우 직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불문(佛門)에 들어간 상황(上皇)이 된 사람을 말한다. [본문으로]
  4. 불상을 세는 단위. [본문으로]
  5. 무가(武家]로서는 처음으로 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 된 타이라노 키요모리[平 清盛]에게 명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6. 산쥬우산겐도우[三十三間堂]라는 곳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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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8.19 2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귀한 황실 혈통이 완전히 히데요시 빠가 되어버렸네요. 미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인물들도 히데요시에게 매력을 느꼈던걸 보면 정말 '히데요시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나봅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8.20 0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하동문입니다 '-^)b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8.20 0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의 2화와 함께 잘 읽었습니다.
    빠가 되었으니 이에야스를 싫어하게 되겠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20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나름 모 가야 왕실의 피를 잇고 있지만 누가 집 주고, 돈 주고, 땅 주면 그 사람의 '빠'가 될 자신이 있습니다. 시켜만 주세요~ ...
    ...라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20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 사이에 한 가지 사건이 더 생깁죠.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8.21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군요. 원래 지고의 삶을 누리는 사람인데다 심심할까봐 저런 이벤트도 시켜주고..;;

    여담이지만 선생은 텐노(뭐 戰前이라면 미야도 포함되는 말일테지만;)에겐 거주의 자유와 투표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없으니 다메다-_-;라고 했지만 그래도 저정도 호사가 주어진다면야(..;)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22 2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것에 답답해 하여 황족의 지위를 반상하고 평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근래에 들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막상 생각나질 않는군요)...직접 그런 것을 겪어 보지 않은 평민인 저로써는 어떠한 심정일지 알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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