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히데요시(秀吉)가 남들과 다른 것 중에 하나는, 그가 너무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것에 있을 것이다. 장년일 즈음에는 그것을 자제하였다. 말년에는 자제의 테가 느슨해졌다. 요도도노(淀殿)는 그 시기에 히데요시에게 사랑 받았고, 히데요리()를 낳았다.

 

 이 여성은 오우미(近江) 출신이다. 꼬마숙녀일 즈음 - 7살까지 오우미에서 살았다.

 친가(親家)는 오우미 북부의 지배자였던 아자이()()이다. 거성(居城)은 오다니(小谷)에 있었다.

 오다니 성(城)은 산꼭대기에 있던 성이었다. 뒤로 이어진 산맥은 멀리 호쿠리쿠(北陸)까지 이어졌으며, 동남쪽으로 이부키야마(伊吹山) 이 있고, 산꼭대기에 서면 눈 아래로 비와(琵琶) 호수를 오가는 흰 돛단배가 조그만 벌레의 날개와 같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산꼭대기의 성새(城塞)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생이 다할 때까지 그녀는 이 성과 이곳의 풍경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꼬마숙녀기는 슬픔이 많았다. 철이 들었을 때는 성과 산이 적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산허리까지 차오른 적의 깃발과 인마(人馬) 속에서 꼬마숙녀기를 보내며, 매일 총소리를 들었으며 그 총소리 아래서의 생활은 아득할 정도로 길었다. 1570 7월부터 1573 9월까지 만 3년하고 2개월이나 이어졌다.

 

 - 적은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 히데요시(木下 藤吉 秀吉)

 라고 유모 후에 오오쿠라쿄우노츠보네(卿局) – 의 입에서 나오는 증오가 담긴 이름을 계속 들어왔다. 정확하게 하자면 적의 이름은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라고 말해야만 옳았다. 그러나 유모는 그 이름에 삼감이 있었다. 오다 가문은 꼬마숙녀의 모친 오이치()의 친정으로, 노부나가는 오이치의 오빠이기에 이 꼬마숙녀에게 있어서는 외삼촌이었다.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는 그의 부하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토우키치로우라는 인물은 이 아자이 씨()의 오다니 성() 공격을 위한, 오다 가문에 있어서의 담당관이었다. 그 이름을 증오하면 지장이 없었다.

 

 꼬마숙녀는 평생 기억하고 있었다. 성의 남측 벽에 있는 활을 쏘는 구멍()을 통해 내려다 보면, 멀리 아래로 벌판을 사이에 두고 언덕이 있고 거기에 적인 토우키치로우의 본진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역민들은 그 언덕을 요코야마(山) 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완만한 경사의 고분(古墳)이었다. 고분에는 견고한 성이 세워져 있어 낮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고, 밤에는 무수한 화톳불이 춤을 추었다. 그것이 32개월 동안의 풍경이었으며, 거기에서 아시가루()부터 벼락출세했다는 오다 가문의 부하장수 토우키치로우가 핍박하는 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저 남자를 아시옵니까?”

 

 하고 모친인 오이치에게 물어보았다. 오이치는 알고 있을 터였다. 오이치가 이 아자이 가문에 시집올 즈음 이미 히데요시는 상당한 지위에 있었고, 실제로 그녀가 기후(岐阜)에서 오우미(近江)로 시집가는 행렬의 관리관 중 한 명이었다. 애교 있는 미소와 날카로운 눈, 밝고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난쟁이처럼 작고, 얼굴은 막 태어난 미숙아처럼 추했다.

 

 “……………”

 

 오이치는 아무 말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는 것도 싫다 고 할 정도로 세찬 증오심이 날카로운 칼과 같이 번득거리고 있었다. 꼬마숙녀는 모친의 얼굴에 생긴 험악함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낙성의 날이 왔다. 꼬마숙녀에게는 전황에 대해 어떠한 지식도 전해지지 않았으며, 단지 이날 아침 미명에 깨워져 부친 나가마사(長政)와 대면했다. 그 후 모친인 오이치, 유모들, 거기에 두 여동생들과 함께 각각 가마(駕籠)에 태워져 성문을 나왔다.

 - 어디로 가는 건가요?

 하고 가마 안에서 창을 두들기며 몇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유모는 답해주지 않았다. 결국 오다 가문의 진중으로 옮겨져, 외삼촌이라는 노부나가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노부나가는 갑주를 입지 않고 시원하게 명주로 된 코소데(小袖) 한 벌만을 입고 있었다. 그 옆에 놀랄 만큼 왜소한 무장이 퉁퉁 부은 눈으로 여전히 울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라는 남자는 이 자가 아닐까?’

 하고 후년 어렴풋이 생각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애매한 기억으로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대로 그녀들은 오와리(尾張) 키요스(洲)성(城)으로 보내져 거기서 살았다.

 

 참고로 그녀는 그 생애에 있어 적어도 8개 이상의 성에 살았을 것이다. 평생 성에서 성으로 전전했다. 오우미(近江) 오다니(小谷)(), 오와리(尾張) 키요스 성(), 에치젠(越前) 키타노쇼우(北ノ庄) 성(城), 야마시로(山城) 요도(淀)성(城), 사가미(相模) 오다와라(小田原)성(城)을 포위하던 성, 치쿠젠(筑前) 나고야(名護屋) 성(城), 야마시로(山城) 후시미(伏見) 성(城), 오오사카(大坂) 성(城). …

 

 오와리 키요스 성()에서 생활한 기간도 길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치젠 키타노쇼우 성()으로 옮겼다. 왜냐하면 그 성의 성주이며, 또한 오다 가문의 호쿠리쿠(北陸) 방면 총사령관(元締)이었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에게 그녀의 모친인 오이치가 재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성도 함락당한다.


 적은 친가인 오다니 성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토우키치로우였다. 10년 동안 토우키치로우의 신분은 변화하여 그 호칭도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 筑前守 秀吉)로 바뀌어있었다. 이전 오다니 공격 때와 달라져 있던 것은, 그가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에치젠에 난입한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의지로 대군을 일으켜 그 인마(人馬)를 이끌고 키노메토우게(芽峠) 고개를 넘어 에치젠 평야에 난입해서는 키타노쇼우 성을 포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노부나가가 이 세상에 없었다. 이 해의 전년, 쿄우토(京都)의 혼노우(本能)()에서 자신의 부하장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그 미츠히데는 히데요시의 재빠른 도전에 의해 쓰러졌다. 자연히 오다 정권의 후계자 자리에 히데요시가 앉을 듯한 기세로 이어졌지만, 그러나 노신(老臣) No.1인 시바타 카츠이에가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서로 반목하고 단교(斷交)하여 결국 북부 오우미(近江)시즈가타케(賤ヶ岳)옛 오다니 성에서 가까운 에서 결전을 벌이기에 이르러서는, 히데요시가 해낸 절묘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군사를 잘 이끌어 카츠이에의 진영은 무너졌고 카츠이에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카츠이에는 자신의 거성 키타노쇼우(北ノ庄) ()에 도망쳐 들어와 성문을 닫았다. 히데요시는 쉬지 않고 그것을 추적했다. 그 하시바 측의 대군이 성을 포위하였을 때,

 어째서 저 남자는 이러는 것인가?’

 하고 그녀는 자신의 생애에서 두 번이나 자신의 생활을 부수려는 듯 총을 쏘아 대는 그 남자에게 증오보다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4 24, 밤이 아직 밝기 전 즈음, 성이 무너질 정도로 흔드는 총성이 일제히 일어나, 그녀는 자신의 침실에서 튕겨지듯이 일어나고 곧 쓰러졌다. 유모가 그녀의 포동포동한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녀는 17살이 되어있었다. 어두웠다. 방에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밤입니까?”

 

 겨우 말을 하였다.

 

 아니옵니다. 좀 있으면 밝아지겠지만, 그러나 아직 밝지는 않사옵니다

 

 하고 유모가 귀에 대고 느릿하게 소곤거렸다. 그렇게 소곤대는 것은 기억의 한 구석에 있었다. 오다니 성이 함락될 때도, 이 유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간도, 그 미칠듯한 총 소리도, 하나하나가 오다니 성에서의 그 때와 닮아있었다.

 그녀가 쓰러진 이 시각에, 이미 히데요시의 군사들은 성내의 한곳에 돌입해 있었다. 성 안이 전쟁터가 되었다. 카츠이에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텐슈(天守)로 이동했다. 이미 이 성주와 그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가 200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양부(養父) – 시바타 카츠이에가 그녀의 망부(亡父) 아자이 나가마사와 농후하게 공통되는 점은, 자신의 마지막에 화려함을 희구하고자 하는 기질에 있었다. 실제로 카츠이에는 그러하였다.

 카츠이에는 적을 향해서, 자신이 자인(自刃)한다는 뜻을 통고했다. 그 후 텐슈의 누상에서 주연(酒宴)을 열었다. 살아남은 무사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신은 검붉은색의 잠옷을 입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낙성 당할 때의 연회를 작법대로 행한 후, 이어서 적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지금부터 텐슈에 불을 질러 자인한다. 그러니 멀리 물러나 있으라

 

 하고 충고하였다. 텐슈에는 20년간 모은 화약이 꽉 차있었다. 불타오르면 여기에 불이 붙고 폭발해서 기둥이건 지붕이건 날려버릴 것이다. 부상 당하지 마라 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텐슈는 굉음과 함께 땅을 울렸고 곧이어 하늘 쪽으로 날라갔다. 양부 카츠이에, 친모 오이치는 30여명의 신하들과 함께 자신들의 시체를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이번에도 더 살게 만들었다. 그녀는 두 여동생들과 함께 카츠이에의 명령으로 적 측으로 보내졌다. 카츠이에는 자살하기 전에, 

 - 이 세 소녀를 구하도록 

 하고 히데요시에게 요구했다. 그 이유는, 

이 세 소녀는 귀하도 아는 바대로 이 카츠이에의 자식이 아니라, 아자이 나가마사의 아이들일세. 따라서 돌아가신 우다이진(右大臣=노부나가) 님의 조카딸이며, 귀하에게 있어서는 주인댁이다. 보호할 것.
 이라는 것으로, 히데요시는 물론 받아들였다. 이런 점도 오다니 함락 시와 같았으며, 오히려 너무 똑같았다. 이 아명이 챠챠()라는 소녀는 - 꼬마숙녀 때부터 한창 꽃필 나이에 걸쳐, 살아서 지옥의 업화를 경험하였고 더구나 그것도 마치 지옥의 옥졸들이 착각이라도 한 듯이 같은 종류의 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지옥에서 친아비가 죽었고, 다음 지옥에서 친어미가 죽었다. 항상 그 지옥을 출현시켰던 것은 같은 남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적극성 있다고 평가 받는 남자였다. 그 남자…… 예전엔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였고, 지금은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라고 불리고 있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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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orekun BlogIcon 고어핀드 2008.10.05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정성스레 번역해 주신 글 잘 읽고 갑니다. 난세가 다 그렇지만, 요도도노의 삶은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군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10.05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아자이때도 히데요시고 시바타때도 히데요시군요..-_-; 충분히 증오할만도 하겠다 싶습니다마는, 그렇다고는 해도 뭐 히데요시 말년에는 충분히 그 노망난 영감을 이용했으니 피장파장이려나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zardizm BlogIcon zardizm 2008.10.06 0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내년에 시작하는 nhk 대하드라마에서 요도기미를 후카다 쿄코가 연기한다더군요.
    일단 보기전 느낌은 뭔가 영 매치가 안되는 느낌;;;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10.06 1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어핀드님//좋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亂世라 불리나 봅니다.

    다메엣찌님//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이용했다면 다메엣찌님 말씀마따나 피장파장이라는 생각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제 머리 속의 요도도노는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움직인 것 같지는 않더군요.

    zardizm님//오~ 그렇습니까??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후카?을 일본 여성 중에서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기대감 만빵입니다. 우헤헤~ (어울리지 않나요? 맹하고 어눌한 말투하며... 거기다 통통하기까지!!!)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10.07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덕진 후카다 쿄코 -_-)b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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