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영어판 >

 타케다 신겐(武田 信玄)의 부하 장수로 유명한 아나야마 바이세츠(穴山 梅雪)는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그는 용모가 특이했다고 한다. 거기에 에비스(えびす(모습))다이고쿠텐((모습))이 입고 있는듯한 카미코로모(紙衣 두꺼운 종이에 과일인 감의 즙을 발라 만든 천)로 된 하오리(羽織)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남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듯 하다[각주:1]. 품행은 특이했지만 붓글씨는 상당히 뛰어났다고 한다.


 주가(主家)인 타케다(武田) 가문과는 대단히 짙은 혈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 타케다 가문의 선조 노부타케(信武[각주:2])의 넷째 아들인 시로우 요시타케( 義武)카이(甲斐)아나야마(穴山)를 영지(領地)로 삼아서는 아나야마 씨()를 칭했다고 한다. 그것뿐이라면 동족(同族)에 지나지 않겠지만 바이세츠의 모친은 신겐의 누나이며, 신겐의 딸 켄쇼우인(見性院)은 그의 부인인 것이다. 신겐은 외삼촌이며 또한 장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나 짙은 혈연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세츠는 타케다 가문을 배신하고 적 측인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에게 간 것이다.


 신겐이 죽고 젊은 카츠요리()가 타케다 가문의 당주가 되고 난 바로 다음부터 바이세츠는 타케다 가문을 배신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이세츠는 당시 스루가(駿河) 에지리(江尻) 성주[각주:3],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하마마츠(浜松)성(城)과는 거리적으로도 가까워, 카이(甲斐)의 산골과는 달리 오다(織田)()나 토쿠가와 씨에 관한 새롭고 자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던 장소에 있었다.


 바이세츠가 일찍부터 배신을 마음에 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1575 5월 나가시노(長篠) 전투 때의 일이다. 바이세츠는 아군의 질 것이라는 것을 남들보다 먼저 예상하고는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정강(精剛)을 자랑하던 코우슈우 군단(甲州軍團)은 근대전법의 오다-토쿠가와 연합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신겐 때부터 무용을 자랑하던 많은 장수들이 전사하였다.


 1581.

 바이세츠는 카츠요리에게 진언하여 니라사키(韮崎)신푸(府)성(城)을 쌓게 만들었다. 코우후(甲府)에서 이곳으로 타케다의 본거지를 옮긴 것인데, [사람은 성벽, 사람은 성]이라 말하며 성()이라는 것을 쌓지 않았던 신겐 시대를 뒤돌아볼 것도 없이, 이 축성이야말로 타케다 가문에 말기적 증상이 도래했음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이 다음 해(1582), 타케다의 유력한 부하장수인 키소 요시마사( 義昌)가 노부나가에게 달려갔다. 카츠요리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둔 일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직후 바이세츠도 배신하였다. 그는 배신에 앞서 신푸 성()에 인질로 보냈던 처자식을 빼돌리는 빈틈없음도 보여주었다. 불쌍하게도 키소 요시마사의 모친과 여동생은 신푸 성()의 정문으로 끌려 나와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린 채 옆구리를 창으로 꿰뚫려 죽었다. 신푸 성()의 인질 천 여명 중 900명이 배신자들의 가족이었다고 한다.


 바이세츠가 배반한 이유는 타케다에 가망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호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명문 타케다 가()의 혈통을 끊어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바이세츠는 카츠요리의 자식 노부카츠(信勝)보다 자신의 자식인 카츠치요(勝千代) 쪽이 타케다의 혈통이라는 점에서 더 짙다고 생각한 듯하다. 언젠가 카츠요리 계통은 전쟁 속에서 끊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계통의 존속을 꾀하고자 고심한 것은 아닐까? 카츠치요의 할머니는 신겐의 누나이며, 모친은 신겐의 딸인 것이다.


 어쨌든 이에야스의 알선으로 오다의 군문(軍門)에 항복한 바이세츠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에 일본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과 조우하게 된다.

 혼노우(本能)사(寺) 이었다. 이때 바이세츠는 영지(領地)를 안도해준 것에 대한 사례인사차 아즈치(安土)의 오다 노부나가를 만난 후 사카이(堺)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도 함께였다. 거기에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변보가 전해진 것이다.

 급히 본거지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가(伊賀)를 지나려 했지만 이때 어째서인지 이에야스와는 다른 길을 취한 바이세츠는 그 도중에 쿠사치(草地())의 나루터에서 농민반란군(一揆)의 습격을 받아 어이없이 죽음을 당했다.


[아나야마 바이세츠(穴山 梅雪)]
어렸을 때의 이름(幼名)은 카츠치요(勝千代). 이름은 노부키미(信君). 겐바노카미(玄蕃頭), 므츠노카미(陸奥守)를 칭했으며, 1580년 머리를 밀고 불문(佛門)에 들어가 바이세츠사이(梅雪斎)라는 호를 칭했다. 1582년 타케다 멸망 시에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에게 붙어 소유하고 있던 영지(領地)를 인정 받지만 혼노우(本能)() 변 후 귀국 도중 농민반란군(一揆)에게 습격 당하여 살해당했다.

  1. 당시 무가의 사람이나 하이쿠(俳句 - 일본의 시)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행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카이 타케다 10대 당주. 참고로 신겐은 19대 당주. [본문으로]
  3. 정확히는 행정과 사법, 군정을 위임받은 죠우다이(城代)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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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10.03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무한 죽음 덕분에 배신이 많이 까이는 사람이라지만.. 뭐 그렇게 따지면 토도 다카토라도 세키가하라에서 전사 했다면 더 까일 구석이 많을 사람이니;;

    적어도 그 시점에서 선택이 아주 틀려먹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뭐 다케다가에 끼치는 영향이야 어떻든 간에;;)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10.03 2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이에야스 이외의 누군가가 다음 세대의 정권을 잡았으면 그렇게까지 까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듣보잡 취급은 받을지 언정). 이 인물이 까이는 것은 자기를 이긴 인물이 킹왕짱이 아니면 안 되도록 만든 이에야스의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당시로써는 적절한 배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타케다 가문과는 동맹국 사이였다고 하니까요(일문이기는 하지만). 굳이 망해가는 동맹국과 함께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xjapan1231 BlogIcon 나오 2008.10.04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아나야마 바이세츠의 혈육은 타케다씨를 칭하는 것에 대해 이에야스놈에게 허가를 얻고 막신으로 일하게 되는 ㅋㅋㅋㅋㅋㅋ 가문살리기의 측면에서 보면 괜찮은 결정을 내린듯하기도..ㅎㅎㅎ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10.04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세츠의 아들 카츠치요는 일찍 죽어서 막신이라고 평가할 수 없지 않나요?
    또한 신하라기 보다는 휘하의 다이묘우로 봐야 하지 않을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시로써는 그리고 그로써는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xjapan1231 BlogIcon 나오 2008.10.04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겐 동생놈중에서 헷갈렸네요.. 타케다 노부자네의 후손들이 막신으로까지 일했는데 아나야마 바이세쯔의 계통과 헷갈린모양입니다 ㅎㅎ 타케다 성을 받은건 확실하니 ㅋㅋㅋ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10.06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바이세츠의 갑옷은 좀 옛날(?)형식인건가요? 오요로이라던가..
    전국시대 말기의 무사들 갑옷을 보면 거의 당세구족(?)형태 같은데.. 바이세츠는 달라보이네요.
    좀 딱딱한 디자인이랄까..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10.07 0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눈썰미 좋으시군요. 전 생각도 못했는데...

    확실히 오오요로이(大鎧)인 것 같습니다.
    허리 아래 부분이 딱딱한 쿠사즈리(草摺), 양 가슴을 보호하는 이타(鳩尾板, &amp;#26676;檀板) 등을 보니 그러한 것 같습니다.

  8. 보통사람 2009.11.26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과적으로 보면 반년도 못되는 삶을 위해서
    배신을 택했군요. 저승에서 크게 후회했을듯...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09.11.26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명(家名) 존속은 최중요 사항 중에 하나였습죠. 특히나 겐지[源氏]의 명문 타케다 가문[武田家]이라면 바이세츠에겐 배신 보다 가명이 더 중했을 수도 있고요.

      후회보단 오히려....아케치 ㅆㅂㄻ...라는 원망이 더 강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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