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8. 미야[] 12살이 되었다.

 이 해의 봄, 히데요시[秀吉]는 이 나라의 궁정이 생긴 이래 가장 성대한 유흥을 기획하였다.

 흔히 말하는 쥬라쿠테이 행행[第 行幸]이다. 히데요시의 쿄우토[京都] 저택인 쥬라쿠테이에 텐노우[天皇] 이하 궁정사람들을 초대하여 무신(武臣)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었다.


 미야도 당연히 초대를 받았다. 미야는 히데요시의 쥬라쿠테이[第]를 예전부터 보고 싶어하였기 때문에, 이 기획을 들은 날부터 당일까지가 너무 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쥬라쿠테이[第]라는 성곽과 저택을 겸한 장대하고 아름다운 건조물은 작년 가을에 쿄우[京]의 우치노[野]에 준공하여, 큐우슈우[九州] 정복을 끝낸 히데요시는 개선 후에 거기서 살며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 장대하고 아름다움은 수도 안에 또 하나의 수도가 생긴 것과 같았으며, 어떤 화가(畵家)의 붓으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4 14일이 그 당일이었다.

 그날 아침. 히데요시는 직접 텐노우를 마중하러 나왔다. 텐노우[天皇]시신덴[紫宸殿]에서 출어(出御)하여 봉련(鳳輦)까지 걸어가는 동안 히데요시는 그 배후로 돌아가 텐노우의 옷 끝자락을 들고 모셨다.

 어소(御所)에서 쥬라쿠테이[第]까지 약 1636미터이다. 1636미터의 길을 경비하던 무사들의 수는 육 천명이었으며, 그 사이를 화려한 행렬이 지나갔다. 미야[]도 겉을 옻칠한 상자와 같은 가마(塗輿)에 타고 텐노우[天皇]의 뒤를 따랐다.

 

 건물 주위에 둘러친 해자(垓子)에 붉은색 다리가 세워져 있어 다리를 건너 쥬라쿠테이[第]의 성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미야는 별천지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 웅대하고 화려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기품 속에 화려함이 있어, 지금까지 대건축물의 상징인 사원(寺院)들과 같은 축축함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현세(現世)를 한 없이 즐기고자 하는 히데요시의 마음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것이 실속 없는 아름다움으로 격하될 지도 모르는 것을, 히데요시의 다도취향(茶道趣向)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서는 실속 없는 아름다움을 억눌러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호우칸파쿠[=히데요시]이니 할 수 있는.

 이라고 미야는 후년까지 이때의 감동을 잊지 못했다. 미야가 생각하기에 불도를 닦는 승이 그림으로 자신의 기개(氣槪)와 품격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과 같이 히데요시는 건축으로 그것을 하고자 하려는 것 같았다.

 

 텐노우[天皇]가 준비된 자리에 들어섰다. 히데요시가 나아가 착석의 의식을 치렀고 곧이어 주연(酒宴)이 시작되었다.

 연회가 행해지는 자리의 서쪽은 활짝 개방되어 있어 그 앞에는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원은 온통 새싹들의 향연이었다. 거기에 철 늦은 벚꽃, 일찍 핀 진달래, 제철인 황매화, 제비붓꽃 등이 색을 더해, 그 근방에서 피어오르는 꽃내음 속에서 연회가 진행되었다. 연회 중간에 히데요시가 수많은 헌상품을 받쳤다. 밤의 연회는 음악이 중심이었다. 텐노우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는지 직접 소우[]라는 악기를 옆에 누이고 멋지게 연주하였다.

 

 연회는 3일간 이어졌다. 3일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텐노우[天皇]는 더 즐기고 싶었는지이틀 더 있고 싶다고 말하였다. 유사이례 예가 없었던 일로 군신들은 놀랐다.

 미카도[帝]도 히데요시가 좋으신 것이다

 하고 미야는, 형인 텐노우와 좋아하는 점이 일치했다는 것에 날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뻤다. 미야는 이 텐노우[天皇]필시 역사상 어느 텐노우[天皇]보다도 교양이 높았을 이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를 평생 존경하였다. 텐노우는 미야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중국 시학(詩學)의 재미를 가르쳐 준 것도 이 텐노우였으며, 백씨문집[白氏文集]의 기초를 쌓아 준 것도 이 고요우제이[後陽成]였다.

 히데요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미야는 신경이 쓰였지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이 이 연기(延期)를 가장 기뻐한 이는 당연히 히데요시 자신이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휘하의 다이묘우[大名]들을 텐노우[天皇] 앞에 모이게 하였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었다. 소집된 자는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에서 삼위[三位][각주:1] 이상의 계급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오다 노부카츠[織田 信雄],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 토요토미노 히데나가[豊臣 秀長], 토요토미노 히데츠구[豊臣 秀次],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였다. 이들보다 위계가 낮은 자들은 별실에 모여있었다.

 

 히데요시는 앞으로 나아가,

 -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다이묘우[大名]들에게 훈계를 하였다. 그 훈계의 주된 내용은,

 

 지금 이처럼 우리들 같이 무신(武臣)같은 것들에게 텐노우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허용해주신 이번 행행(行幸)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의 영광이다. 이 기쁨에 우리들은 몸 둘 바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들 자손은 어떨까? 성은을 잊거나 혹은 무()를 내세워 텐노우에 대해 무례를 꾀하는 자가 나타날지 두렵다. 그러니 서약서를 제출하여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텐노우에 대해 배신하는 일 없도록 맹세하도록

 

 라는 것이었다.

 모두 서약서를 제출하였다.

 미야는 그 자리의 처음과 끝을 그 눈으로 보았다. 보면서 위복(位服) 속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히데요시의 행동에 감격하였다. 미야의 조부(祖父)에 해당하는 선대 오오기마치 텐노우[正親町天皇]가 나이 어렸을 시기, 무가(武家)는 황실 같은 것이 있는 줄도 몰랐으며, 어소는 평소 수라(水剌)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빈곤하였는데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 히데요시와 같이 황실을 생각해 주는 인물이 나타난 것 자체가 기적이지 않은가?

 

 물론 히데요시는 히데요시대로의 꿍꿍이가 있었다. 히데요시 휘하의 다이묘우[大名]들은 예전 그 자신과 동격이거나 아니면 오다 노부카츠,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이 그 자신보다도 상격(上格)에 있던 자들이 많았지만, 앞으로도 토요토미 가문이 그런 그들을 통제하는 한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도 계속 이어지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텐노우[天皇]의 신성함을 빌려, 그 신성함을 여러 다이묘우[大名]들에게 철저하게 주입시켜서는 그로 인해 신하 중 제일인 칸파쿠 가문이 얼마나 중한가를 교육하여, 텐노우[天皇]를 따르는 것과 같이 토요토미 칸파쿠 가문을 따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야는 그렇듯 심술궂게 이 현상을 관찰할 정도로 성숙해 있지 않았으며 거기에 무엇보다도 미야는 히데요시 빠돌이였기에 히데요시의 순수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미야는 토쿠가와 다이나곤[大納言] 이에야스라는 인물을 보았다. 이에야스는 극히 최근까지 히데요시와 싸우고 있던 토우카이[東海]의 패자(覇者), 히데요시도 이 인물에게는 조심하여 휘하 다이묘우[大名]이면서도 빈객(賓客)을 대하는 것과 같이 응대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었다. 목이 두꺼운 인물이었다.

 구레나룻이 엷고 볼통통한 얼굴이었으며 동작에 지장을 줄 정도로 뚱뚱하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히데요시의 군사를 물리쳤다는 무인의 거만함 없이 공손하고 정중하여 그 행동거지나 풍모는 아무리 보아도 은거한 거상(巨商)과 같았다. 이에야스도 서약서를 써 제출하였다.

 

 시를 읊는 시회(詩會)의 행사도 행해졌다.

 참석자는 상급귀족(公卿) 측에서 24, 무가 측은 히데요시를 포함한 4명으로 합계 28명이었다. 자리순은 히데요시가 최상석으로 이어서 미야[], 말석에서 두 번째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각각의 무릎 앞에는 직접 지은 시를 필사하기 위한 벼루와 종이가 놓여졌다. 시회의 진행에 필요한 역할도 정해졌다. 시회 진행자[御歌奉行], 주제를 선정하는 사람[다이샤(題者)], 시가 쓰인 종이를 정리하여 낭독자[코우시(講師)]에게 전해주는 사람[도쿠시()], 낭독자 뒤에서 가락을 넣는 사람[핫세이(発声)] 등의 역할이다. 텐노우의 시가 적힌 종이를 옮기는 것[師]은 히데요시가 직접 하였다.

 텐노우[天皇]의 시는 정말 군자(君子)답다는 그의 인격에 어울리는 가락의 산뜻함이 갖추어진 것이었다.

그리도 오늘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으니 소나무 가지에

온 세상의 언약을 매달아 보면서

わきて今日待つ甲斐あれや松が枝の

の契りをかけてみせつつ

 미야가 그것에 화답시를 만들었고, 거기에 히데요시도 그것의 화답시를 지었다. 히데요시의 그것은,

만대에 걸쳐 임금이 놀러 오시는 것을 익숙한 풍경으로 한다.

나무가 높은 건물에 쓰이는 것과 같이

よろづ代の君がみゆき(行幸)になれなれむ

みどり木高玉松 


 ‘이에야스는 어떨까?’

 하고 미야는 말석에 가까운 이에야스를 보았다. 미야는 이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영웅이라는 소문을 예전부터 듣고 있었기에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었다. 메노토[傅人]인 카쥬우지 하루토요[修寺 晴豊]의 말에 의하면, 히데요시와 같은 예술적 취미를 일체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라고 한다. 화려한 의상을 좋아하지 않고 화려한 건축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 거성(居城)하마마츠 성[浜松城]도 극히 실용적이며 소박한 건조물에 지나지 않아, 성안에는 다실(茶室)도 없다고 한다. ()를 이에야스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으며, 와카[和歌] 등도 일체 읊는 적이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사나이가 시회에 섞여 있었다. 읊었을 턱이 없는 와카를 저 뚱뚱한 사나이는 어떻게 읊을 것일까?

 

 미야는 계속 관심을 가졌다. 곧이어 이에야스는 품 안에 손을 집어넣어 작은 종이쪽지를 꺼냈다. 그것을 한자한자 옮겨 적기 시작했다.

 옮겨 적다니!’

 하고 미야는 놀랐다. 필시 대작(代作)일 것이다. 호소카와 유우사이[細川 幽斎]임에 틀림이 없다고 미야는 생각했다. 왜냐면 이 이에야스가 재작년 10, 히데요시와 강화를 맺어 그 휘하에 들어오기 위한 의식을 치르러 오오사카[大坂]에 왔을 때, 그 회견석의 접대역을 예식(禮式)에 밝은 유우사이가 맡았다. 그것을 미야는 유우사이에게 직접 들었었다. 그 이래 유우사이는 이에야스와 친교를 두터이 하고 있다고 한다. 대작을 했다고 하면 필시 유우사이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조금 남의 눈을 피하면서 베껴 적으면 좋을 것을 이에야스는 당당히 종이쪽지를 펼쳐 거리낌없이 베껴 적고 있었다. 그 모습에 미야는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취했던 공손한 태도와는 대략 다른 뻔뻔스러움이 있어, 과장되게 말하면 텐노우[天皇]의 앞에 있다는 경외감(敬畏感)같은 것을 조금도 가지지 않은 듯 했다. 곧이어 읽는이[講師]가 그 이에야스의 시를 읽었다.

녹색 창연한 소나무 잎마다 임금의

천 년을 언약으로 본다.

たつ松の葉ごとにこの君の

を契りてぞ見る 

 라는 것이었다. 소나무의 잎은 수없이 많다. 그 수많은 소나무 잎마다 텐노우[天皇] 천 년의 번영을 빌었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시가 만약 지은이의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에야스도 또한 이 시에 따라 궁정의 번영을 보증했다 - 는 것이 될 듯했다.

 

 1590년이 되었다.

 미야는 이제 성인식을 치러 '토모히토 친왕[智仁 親王][각주:2]'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이 14세였다.

 그 전해에 토요토미 가문에 친자식이 태어났다. 츠루마츠[鶴松]였다.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는 칙사를 오오사카[大坂]로 내려 보내어 축하선물로 큰 칼[太刀]을 하사하였다. 이후 화제는 자연스럽게 미야를 토요토미 가문 유자(猶子)라는 신분에서 풀어놓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논으로 이어졌다. 히데요시에게 친자식이 생겼고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었다. 이 기회에 미야를 원래의 순수한 궁정인으로 되돌려놔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히데요시는 한때 자신의 유자였던 이 미야를 위해서 어떤 보답이건 해 주고 싶었다. 생각 끝에 독립된 궁가(宮家)를 창설시키자는 것으로 생각이 미쳤다. 궁가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영지(領地)와 저택이 필요했다. 우선 영지(領地) 3000석을 주었고, 이 새로운 가문의 명칭을 [하치죠우노미야 가문[]]으로 하였으며, 그 저택을 하치죠우[条] 강변[河原]에 마련해 주었다.

 

 이해의 정월. 히데요시는 오다와라 정벌[小田原征伐][각주:3] 준비로 매우 바빴지만, 틈을 보아 입궐해서는 미야를 저택공사지로 데려갔다.

 

 미야의 저택 건물배치는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건축을 좋아했다. 히데요시는 미야를 저택의 예정지로 데리고 가서는 현장에 토목(普請), 건축(作事) 담당관리(奉行)와 장인(匠人)들을 불러 우선 기본방침을 세웠다.

 

 굉장히 어렵게들 생각하는군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친왕의 주거지이기에 어소(御所) 풍의 - 즉 토노모 형식[主殿造り][각주:4]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쾌함이 결여된다. 채광(採光)도 나빴고 무엇보다 너무 고풍스러웠다. 거기에 신흥(新興)의 스키야 형식[奇屋造 다실(茶室) 풍의 건축]도 가미하라 - 는 것이 히데요시의 주문이었다.

 

 미야도 무언가 말씀하시길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지만, 미야는 아직 건축에 대해 잘 몰라,

 

 모두 공(公)에게 맡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히데요시는 장인에게 도면을 그리게 하여 오오사카[大坂]에 돌아가서 그것을 받아보고서는 직접 붉은 먹을 먹인 붓으로 수정을 한 뒤,

 - 미야께도 보여드려라

 고 명했다. 미야는 그 도면을 보았다. 히데요시의 것은 너무 다도(茶道)의 취향이 드러나 있는 듯 했다. 미야는 그 점에 대해 그다지 불만이 있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말하자면 위로 매달아 열어 햇빛이나 비를 막는 시토미[蔀] 등을 사용한 왕조(王朝) 풍의 요소도 다소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 즈음 형인 텐노우[天皇]와 함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고찰에 몰두하고 있던 미야로서는 그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했을 것이다. 그 의견이 히데요시에게 전해졌다. 히데요시는,

 

 지당하신 말씀이다

 

 라며 마지막 붉은 선을 그려 넣고서는 오다와라 정벌을 향해 출발하였다. 하지만 오다와라의 진영에서도 건축 진행 상태를 신경 써 하나하나 보고시켰다.

 미야도 자주 건축현장에 가서는 장인들 틈에 섞여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미야가 차츰 건물과 건축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이 하치죠우[条] 저택의 건축부터일 것이다.

 

 연말에 건물이 거의 완성되었다. 히데요시는 오다와라에서 그것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맹장지에 그려지는 그림()만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후원하던 화가 카노우 에이토쿠[狩野 永徳]에게 재촉했다. 그 해의 마지막 날 전에 그것이 완성되어 저택에 설치되었다.

 그림의 주제는 노송나무였다.

 큰 화면 가득 짙은 묵의 선을 달리게 하여 노송나무를 그렸고 거기에 농후한 색채의 물, 하늘, 바위를 곁들인 그야말로 히데요시가 좋아하는 - 말하자면 쥬라쿠테이[第] 풍의 호화장려(豪華壯麗)한 구도로 히데요시가 만들어 낸 이 시대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듯 했다.

카노우 에이토쿠[狩野 永徳]의 그림. 현재는 병풍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참고로 화가인 카노우 에이토쿠는 그 해의 10월(1590년 10월)에 사망하였기에, 완성을 한 것은 아마 제자일 것이라고 한다.

  새해가 되자, 미야는 이 새로운 저택으로 옮겼다. 이어 9월에 히데요시는 동방에서 개선한 뒤에 이 저택에 들렸다.

 

 잘 만들어진 것 같군요

 

 히데요시는 저택 안을 확인해 보면서 몇 번이나 말하였는데, 단지 정원만이 맘에 들지 않은 듯 직접 지휘를 해서는 바위를 이곳 저곳으로 옮겼다.

 

  1591년은 토요토미 가문에 불행이 이어졌다. 정월에 히데요시의 동생인 야마토다이나곤[大和大納言] 히데나가[秀長] 죽었으며, 8월에는 츠루마츠가 죽었다.

 토요토미 가문은 다시 후계자를 잃었다. 히데요시는 결국 결심을 하여, 이 해의 11월 조카인 히데츠구[秀次] 받아들여 자로 삼고, 그 다음 달에 칸파쿠 직책을 이 양자에게 물려주었다. 그 후 조선 침략이 시작되었지만 히데요시는 이 즈음부터 몸의 심이 부러졌는지 갑자기 노쇠하기 시작했다.

  1. 이 삼위(三位)가 되면 당상가라 하여 궁궐에 입궐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공경(公卿)라 하여 상급귀족이 되었다. - 사족으로 정사위(正四位) 산기[参議]에 임명된 자는 사위(四位)임에도 특별히 공경이 되었다. [본문으로]
  2. 위키에는 ‘토시히토’라고 한다. [본문으로]
  3. 칸토우[関東] 호우죠우 씨[北条氏]와의 전쟁. [본문으로]
  4. 그 건물 안에 여러 행사나 침식 등을 모두 행할 수 있는 다목적 슈덴(主殿)이라는 건축물이 저택의 중심에 있는 저택형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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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9.21 2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인물이라,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이번편도 잘 읽었습니다.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1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옛시가 많다는 이유로 질질 끌어왔던 이 '하치죠우노미야'편도 다음이 마지막입니다....(근데 그러고 보니 시는 몇 편 없었네요 ^^;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9.22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조선이고 일본이고 시는 어렵군요. ^^; 재밌게 읽었습니다. ^^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9.22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겨, 카노우 에이토쿠에 대해 찾아보니 의외로 요절했더군요. 위키에서는 과로사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적혀있었지만서도...

    문화인은 대체로 장수하는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조금 의외였습니다(~~;)

    이에야스 경우엔 참.. 뚱뚱이 외관을 잘 묘사했더군요~~; 뭐, 취미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만서도 그래도 대놓고 컨닝은 좀(~~;)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2 1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다충승님//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참고로 시의 해석은 엉터리입니다. 고어는 자신도 없고,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보니 그냥 단어 뜻의 나열(겸 대충 때려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밑에 원어를 적어 넣었습니다. 잘 아시는 분이 보시면 알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 이건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다메엣찌님//그런 방면에 일이 많던 시기에, 그 분야에서 No.1급의 인물이다보니 이곳저곳 많이 불려다녀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정말 저렇게 뚱뚱하였을지... 제 이미지로는 그냥 북두의 권의 작가가 그린 "꽃의 케이지"에 나오는 정도입죠...(그것이 동작에 지장을 줄 정도로 뚱뚱함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이에야스니까 조금 당당하고 거만하게 비춰지는 것이겠죠... 하지만 찌찔이급이 그랬다면 어떤 이야기가 되었을지 궁금하군요.(무엇보다 저렇게 베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늦지 의문이지만요. 처음 들어 보는 일이다 보니... 함 찾아봐야 겠습니다.)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zardizm BlogIcon zardizm 2008.09.22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에야스가 단지 베껴썼다고 싫어하게된건가 싶었는데 위키를 보니 좀더 큰 일이 있었군요;;
    다음 화에 나오려나요...? 기대해봅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2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쨌든 다음이 마지막 편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9.23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곱게 자라 풍파없이 곱게 황실로 돌아간...
    과연 마지막 편에는 무슨 일이 있으려나요^^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3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떠한 고민도 가져다 주는 일 없이 잘 먹여주고, 잘 대접해주고, 집까지 지어주고....
    저래주었는데도 빠가 되어 주지 않았다면, 하치죠우노미야가 천하의 개*놈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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