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토미 씨[豊臣氏]는 갑자기 출현했다.

 지금까지 지상(地上)에 나타난 어떠한 정권보다도 호화롭고 장대한 이 정권은 불과 십여 일만에 1582 6 2일에 노부나가[信長] 횡사(橫死), 같은 달 13일에 미츠히데[光秀] 패사(敗死)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 만에 홀연히 지상에 나타났다. 귀족(貴族)이 되기 위한 어떠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채 이 일족은 서둘러 귀족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여러 형태의 뒤틀림을 낳았다. 그 혈족, 인척, 그리고 양자들은 이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우둔한 자는 우둔했던 만큼 똑똑한 자는 똑똑했던 만큼 편히 숨도 못 쉴 수가 없어 평온하게 있지 못하고 불에라도 덴 듯 항상 미쳐 날뛰었으며 때로는 무너져 갔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그만이 냉정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만은 계속해서 평온했으며 이 새로운 시대와 환경을 잘 견딜 수가 있었다.

 우리미노미야[瓜見宮][각주:1]

 라는 젊은이이다.

 정확하게는 하치죠우노미야 토모히토[宮 智仁] 친왕(親王)’이라고 한다. 텐노우[天皇]의 동생이다. 당연하게도 이 태어나면서부터의 귀족은 토요토미 가문의 양자들 중에서 혈통이라는 점으로는 군계일학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학문에 더해 정치감각까지도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쿄우토[京都]의 남쪽 교외에 있는 카츠라[桂]의 마을에는 보기 좋은 오이 밭이 펼쳐져 있다.

 쿄우토의 사람들에게는 사계절마다 즐길 수 있는 것이 많다. 봄에는 아라시야마[嵐山]에서 놀며, 신록(新綠)의 계절에는 키요미즈[水]에서 태양빛에 반짝이는 비()를 구경하고, 가을에는 타카오[高雄]에서 단풍놀이를 한다. 한여름에도 즐길 거리가 있었다. 한낮에 탄바 가도[丹波 街道]를 이용하여 카츠라[]로 가, 그 근방에 자라고 있는 굵직한 오이를 보며 즐기는 '우리미[瓜見]'를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밭에 내려 쪼이는 강렬한 여름 햇빛을 오이 맛의 시원함 속에 담아서 맛보고자 하는 것이 이 우리미()의 풍취일 것이다.

 그 한여름의 풍취를 가장 즐긴 것이 이 친왕이었기에 [우리미노미야]라는 별명이 붙었다.

 

 토모히토[智仁] 1577년 정월에 태어났다[각주:2]. 아명을 코사마루[古佐丸]라 한다. 태어났을 시기, 이미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는 아즈치 성[安土城]을 완성하였고, 또한 츄우고쿠[国]의 모우리[毛利]나 오오사카[大坂]의 혼간지[本願寺]와 싸우면서 쿄우토의 시정(市政)에도 신경을 써, 그 질서를 안정시키는 것에 힘을 쏟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궁정을 존숭(尊崇)했다. 궁정이나 상급 귀족[公卿]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에도 마음을 써 그들에게 땅을 주고, 그 저택을 계속해서 새로 짓게 하였다. 궁궐 주변은 항상 망치소리로 활기차, 미야[본 항의 주인공 하치죠우노미야[]’를 부르는 말. 이하 그를 미야'로 지칭한다. – 역자 주]는 목수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인이 되었다. 후년 이 미야가 건축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어렸을 즈음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부친은 사네히토[誠仁] 친왕이다. 모친은 카쥬우지 하루코[修寺 晴子]라고 하였다.

 미야는 귀족의 관습으로 모친의 친정인 카쥬우지 가문에서 태어나고 또한 자랐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이 있었다. 후에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가 된다. 성인식을 치른 후에 이름을 카네히토[周仁]라고 하며, 6살 위에 형이었다[각주:3].

 

 꼬꼬마일 적에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였다.

 그러다 미야의 6살이 된 여름. 오다 노부나가가 쿄우[京]에서 죽었다. 이것이 미야가 꼬꼬마일 즈음 최대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1582 6 2일 새벽, 미야는 혼노우 사[本能寺]의 하늘을 붉게 물들인 화염을 카쥬우지 저택의 담 너머로 지켜보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지켜보면서 몸이 떨려 우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미야가 가진 용모의 특징인 면도날로 짼 듯이 길고 얇은 실눈으로 그 화염을 계속 지켜보았다. 곧이어,

 

 휴우가노카미[日向守=미츠히데]는 여기까지 쳐들어 올까?”

 

 하고 유모에게 물었다. 미야는 꼬꼬마이면서도 미츠히데라는 이름에 적의(敵意)를 느꼈다. 당연할 것이다. 지금 저 화염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는 궁정의 사람들에게 있어 요 수세기 동안 처음으로 출현한 구세주였으며, 궁정이나 상급 귀족들에게 땅을 내리고 저택을 지어주며, 옛 의식을 부활시키는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행복을 계속해서 가져다 준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지금 미츠히데가 공격하였다. 더구나 가신인 주제에 주인을 시해(弑害)하려고 하고 있었다. 소년의 마음에는 미츠히데라는 자가 악마(惡魔)같이 느껴졌다. 소년뿐만 아니라 궁정의 사람이라면 텐노우[天皇] 이하 누구나가 다 같은 생각을 - 저 불길을 보며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증오보다도 우선 공포 쪽이 더 컸다. 노부나가가 궁정의 아군인 이상,

 휴우가노카미는 필시 궁궐로 쳐들어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모를 뒤돌아 보며 그것을 몇 번이나 물었다.

 유모는 오오쿠라쿄우[卿]라고 하였다. 궁정의 여관(女官)들 중에서는 시가(詩歌)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미야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아니요. 아마도

 

 공격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군사들을 이끌고 온다고 하여도, 그것은 텐노우[天皇]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 고 유모는 반쯤 자신에게 납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믿고자 했다. 미츠히데는 무가(武家)이지만 공가(公家)만큼이나 교양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옛 것을 사랑하고, 옛 권위에 낭만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 궁정을 적으로 돌리겠는가?

 

 …”

 

 하고 유모는 미야를 안은 손에 힘을 담았다.

 

 가만히 계십시오. 이렇게 가만히 있는 한, 무가(武家)의 무리들이 여태껏 쿠게(公家)에 손을 댄 적은 없사옵니다. 침착하게 있으시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침착하고 담담함을 계속 지키는 것이 쿠게(公家)의 길이옵니다

 

 하고 유모는 말했다. 그랬지만 미야는 조용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으며, 오히려 유모 쪽이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낭패함을, 자신의 교훈으로 안정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교훈에 틀림이 있지는 않았다. 역사라는 것이 유모의 교훈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공가(公家)텐노우[天皇]와 궁정 신하 가 침착하고 담담하게 있는 한 권력을 놓고 싸우는 자들이 공가에 손을 쓴 예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가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공가를 자신들이 옹립할 수 있는지에 부심하였다. 유모는 미야에게 그것을 가르치고자 하였다.
  공가(
公家), 무가(武家)의 권력자들이 권력을 서로 빼앗기고 뺏고 있을 때, 어느 한쪽에 말씀을 주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항상 방관하며 어느 쪽에건 서지 마시길. 승패가 확정되고 승자가 살아남으면 그 살아남은 자가 맞이하러 올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 고 유모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미야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침묵하며 두 눈을 밝아오는 하늘로 열어두고 있었다. 유모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기에는 아직 미야가 너무 어렸으며, 거기에 그 정도의 교훈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미츠히데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지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1. ‘우리[瓜]’는 오이를 말한다. 우리미[瓜見]는 꽃구경이라 번역되는 ‘하나미[花見]’와 같은 개념으로, 오이 밭에서 시원한 오이를 먹으며 피서를 즐기는 것. ‘미야[宮]’는 황족의 존칭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위키에 따르면 1579년 2월 생. [본문으로]
  3. 역시 위키에 따르면 ‘周仁’는 ‘카타히토’라고 읽으며 8살 위(1571년 생)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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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8.06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황실의 핏줄이 원숭이의 유자가 됐을까요.. 잘 모르던 인물인데 이번 편을 통해서 좀 알아야겠습니다. 기대되네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06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잘 모르는 인물이어서, 이번에 번역하면서 좀 찾아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쿠게(公家) 쪽은 관심을 덜 가지고 있다 보니..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8.07 0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게들이 조총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면 메이지때까지 기다려야하니..(ㅎㅎ;) 이분도 조용히 전란을 구경하는 삶으로 일관했을 것 같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8.07 1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잘모르는 생소한 인물이라 다음 편도 기대되네요^^;

  5. Favicon of http://hyunby1986.tistory.com BlogIcon 턴오버 2008.08.16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바 료타로의 소설은 역시 재밌습니다. 저 슬램덩크 만화책 일본어판으로 샀어요. 지금 1권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어렵네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17 14: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늦어져 정말 죄송합니다. -- __ ^^

    다메엣찌님//메이지 때라고 해도 쿠게 정도면 다들 멋진 정복을 입고, 본영에 앉아 있기만 하지 않았던가요? 메이지 때 전쟁이라고 하면 세이난 전쟁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서..

    NOA님//잘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사 전면에 나서질 못한 곳에 있던 사람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턴오버님//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슬램덩크라... 저도 처음엔 H2로 시작했지만, 젊은 학생들이 나오는 만화는 아무래도 슬랭어나 말줄임 말이 많은 편이라 조금 힘들수도 있습니다. 뭐 그만큼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요.(전 그 다음에 본 만화가 '변변찮은 청춘들(ろくでなしBLUES)'이라 H2에서 배운 것이 나름 도움 되더군요 ^^)
    처음엔 뭐든 힘들더군요.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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