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이 오기마루[於義丸]라는 인질은 히데요시[秀吉]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무엇보다 토쿠가와 가문[徳川家] 있어서 가장 연장자인 남자 아이이며, 이에야스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자식임에 틀림이 없었던 만큼 인질로서의 가치는 컸다.

 “그런가~ 이에야스 님은 오기마루를 주시는 건가? 그렇다면 내 자식으로 귀여워하겠으며, 좋은 대장(大將)으로 키우마. 기량에 따라서는 나중에 이 하시바 가문[羽柴家]을 이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고 히데요시는 중개자에게 말했다. 곧이어 그 오기마루가 토쿠가와 가문의 가로(家老) 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 数正]의 아들 카츠치요[勝千代[각주:1]], 지금까지 오기마루를 키워왔던 혼다 사쿠자[本多 作左]의 아들 센치요[仙千代]와 함께 이 해의 12월 12일 하마마츠[浜松]를 출발하여 오오사카[大坂]로 올라왔다. – 라기보다는 그 기구한 운명으로 출발을 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오사카 성(城)에서 양부(養父)-양자(養子)의 대면이 행해졌다. 상단에 앉아있는 히데요시라는 양부는 오기마루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여어~ 내가 너의 아비란다. 이쪽으로 오렴”

 하고 큰 목소리로 손짓 하였지만 오기마루가 삼가며 가만히 있자, 히데요시는 직접 내려와 오기마루의 어깨를 손을 얹었다. 히데요시는 다른 사람의 어깨나 머리에 손을 올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자신에게 넘어오게 만들곤 했다. 이 경우도 그러했다.

 “오늘부터 너는 이 집의 아이다.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워두도록”

 하고 말했다. 오기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년의 직감으로 말하자면 실재 아비인 이에야스보다 이 양아비 쪽이 훨씬 부친다운 내음을 가지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시간을 들이는 일 없이 그날 안으로 별실을 마련하여 오기마루를 하시바 가문의 자식으로서 성인식(元服)을 치르게 하였다.

 이름은 히데요시가 '히데야스[秀康]'라고 지었다. 하시바 히데야스[羽柴 秀康]라고 했다. 양아비의 ‘히데[秀]’, 친아비의 ‘야스[康]’가 취해졌다. 천하에 이보다 사치스러운 이름은 없을 것이다.

 “이름의 영향을 받는다면 일본 제일의 무사가 될 수 있단다”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는 조정에 주청(奏請)하여 히데야스를 위해서 관위(官位)를 받아다 주었다. 히데야스는 종오위하(從五位下) 지쥬우[侍従] 겸 미카와노카미[三河守]에 임명 받았다. 영지(領地)도 하사 받았다.
카와치[河内]에 1만석으로 아직 더부살이를 하는 소년으로서는 적지 않았다. 히데야스는 토쿠가와 가문에 있을 때보다도 모든 것이 좋아졌다.

 1587년의 히데요시의 큐우슈우[九州] 정벌에 히데야스는 14살로 종군하였다.
 다음 해인 1588년 4월, 양아비 히데요시가 고요우제이 텐노우[後陽成天皇]를 자택으로 초대한 [쥬라쿠테이
행행(聚楽第 行幸)]의 성대한 의식이 치러질 때는, 불과 15살의 나이로 코노에쇼우쇼우[近衛少将]가 되어 다른 고관들과 함께 봉련(鳳輦)의 바로 뒤를 따르는 역할을 맡았다. 그때 그와 함께한 면면들은 카가 쇼우쇼우[加賀 少将]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 고(故) 노부나가의 적손인 지쥬우[侍従] 오다 히데노부[織田 秀信], 거기에 그와 같은 히데요시의 양자인 쇼우쇼우[少将] 하시바 히데카츠[羽柴 秀勝[각주:2]], 역시 쇼우쇼우[少将]인 히데아키[秀秋]라는 토요토미 가문의 귀공자들이기에 히데야스에게 있어서 이 날 자신의 화려함은 온 생애에 있어서도 잊기 힘든 것이었다.

 이 시기, 작은 사건이 있었다.
 히데야스는 토요토미 가문의 직속 신하[旗本]들에게 반드시 존숭(尊崇)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 형식상으로는 히데요시의 양자이며 관위도 보통의 다이묘우[大名]보다 위였다. 그러나,
 - 저 분은 인질이다.
 라는 관념이 사람들 태도의 밑바탕에 깔려 있어 성안의 말단 관리들의 응대에도 어딘가 무례함이 있었다.
 히데야스는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15~6살이 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주변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보다 배는 더 자존심이 센 성격이었다.

 어느 날.
 성안에서 말단 관리가 히데야스에게 소홀함이 있었다. 라기 보다는 싸가지 없는 얼굴을 했다.

 “게 섰거라! 다시 한번 그 표정을 지어 보거라”

 하고 히데야스는 복도에서 뒤돌아 서자마자 날카롭게 외쳤다. 말단 관리는 여전히 뻔뻔히 서있었다. 히데요시는 일갈하며 팔을 들어 뒷덜미를 잡아 마루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말해 두마. 나는 불초(不肖)하지만 이에야스의 아들이며 이 가문의 양자이다. 그러니 다른 자들에게도 알려라. 앞으로 무례한 자는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는 것을!”

 그 관리는 공포로 부들부들 떨었다. 곧이어 이 말이 히데요시의 귀에도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이 소년이 이외로 호탕한 기질을 숨기고 있었음에 놀랐다.

 “그런가~ 히데야스가 그렇게 말했는가? 미카와노카미(=히데야스)가 하는 말은 지당한 것이다”

 하고 성안 부하들에게 훈계하는 한편 그때까지 허용하고 있지 않던 토요토미 가문의 문장(紋章)도 허용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히데요시는 은근히 히데야스에게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른 가문의 자식은 될 수 있는 한 우둔한 편이 히데요시에게는 바람직했다.

 그 후 히데요시가 주의해서 관찰해보니, 역시 소년기를 탈피하기 시작한 히데야스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여 얼굴 생김새마저 위풍당당해졌다. 행동거지에 위엄이 있어, 토요토미 가문의 다른 양자인 예를 들면 히데츠구[秀次], 히데아키[秀秋],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 秀家]와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사나이가 되려 하고 있었다. 혈연인 히데츠구는 너무 경박(明博)했으며, 마누라의 친척 히데아키는 우매하였고, 우키타 가문[宇喜多家]의 히데이에만은 다소 화려했지만 실속이 없는 편으로 어찌 보면 평범했다.

 이 중 단 하나 이에야스의 씨인 히데야스만은 전쟁터에서 삼군(三軍)을 지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쟁터에 있어 일개 병졸 하나하나까지 그 위령(威令)에 따르게 하기 위해서 장수인 자는 높은 위덕(威德)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히데야스에게는 그 위덕인(威德人)으로써 소질이 있는 듯 했다.
 어쩌면 히데야스는 스스로 신경 써서 그러한 기량을 자신의 안에서 기르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의식해서 한 것이라면 더더욱 예사로운 기량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히데야스는 후시미 성[伏見城] 내의 마장(馬場)에서 말을 길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 마장은 토요토미 가문의 전용 마장이기에 히데요시나 토요토미 가문의 귀공자들밖에 사용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히데야스에게는 그 사용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히데요시의 전용 말을 담당하는 마장 관리인이 말을 운동시키기 위해 마구간에서 끌고 나와 그 근처에서 달리게 하였고, 곧이어 말을 달리고 있던 히데야스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토요토미 가문의 귀공자에 대해서 이렇게 무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장 관리인조차 히데야스를 그 정도밖에 보지 않았다. 히데야스는 얼굴을 그 남자에게 향했다. 말을 달리면서 칼을 뽑자마자,

 “무례한 놈!!”

 하고 외치며 칼에 피 뭍을 새도 없이 안장에서 베어 죽여 버렸다. 그 재빠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구나 이 어마어마한 기개(氣槪)는 또 뭐란 말인가? 마장은 대소동이 일어났다. 어쨌든 피해자가 타고 있던 것은 히데요시의 전용 말이었다. 전용 말이라는 것만으로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히데야스는 거리낌없이 그 말을 피로 더럽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히데요시의 거소(居所)를 더럽혔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도 히데요시는 화를 내지 않고 반대로 이 양자의 강기(剛氣)를 칭찬하였다. 거기에 기술도 칭찬했다. 말을 달리며 상대를 베어 죽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듯하면서, 그러나 이외로 쉽지 않다. 그것을 히데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이 즈음 이미 토요토미 가문의 막하 다이묘우가 되어 있던 이에야스는, 이 소문을 듣고,
 - 역시 내 피군.
 하고 목소리 낮추어 근신들에게 살짝 말했다. 이에야스는 이 시기부터 확실히 히데야스를 달리 보기 시작하여 세자(世子)인 히데타다[秀忠]보다 뛰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제 와서 히데야스를 돌려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아깝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에야스에게 있어서 히데야스라는 아들은 가끔 머릿 속에서만 활동하는 존재였다.

 어쨌든 히데야스라는 젊은이가 시간이 흘러 만인을 뛰어넘는 기량을 갖춘다고 하여도 그 기량은 사용할 곳이 없었다. 토요토미 가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이에야스의 자식에게 천하를 물려줄 턱이 없을 것이며, 태어난 곳인 토쿠가와 가문에도 이미 히데타다라는 후계자가 있는 이상 히데야스는 쓸모가 없었다. 히데야스라는 인물은 기량이 있으면 있을수록 공중에 붕 뜬 기묘한 존재가 되어 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1. 카즈마사의 차남. 후에 야스카츠(康勝) [본문으로]
  2. 히데요시의 조카로 나중에 토요토미노 히데카츠[豊臣 秀勝]. 참고로 그의 친형은 살생관백 토요토미노 히데츠구[豊臣 秀次]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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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7.07 0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히데요시의 다른 양자들에 비하면 훨씬 낫군요.. 뭐, 그나마 제일 괜찮은 편이라는 우키다 히데이에도 사실 그저 범용했을 따름이니 원(..;)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7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의 재능과 미모로는 히데이에의 압승!!!....으로 하면 안 될까요? ^^
    (거기에 수명도...)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7.07 1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배 가까이 살았으니 압승이라면 대압승이군요(ㅎㅎㅎ) 사실 뭐 타다요시도 비슷한 시기에 죽은 이유 때문인지 히데야스 독살설도 보이는 걸 보면, 제명 다살고 돌아가신 미소년 히데이에 쪽이 더 나은 인생이었을지 모르겠네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7.07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글과는 빗나가는 얘기지만, 그런데 마츠다이라 타다요시라면야 세키가하라 부상으로 죽은걸로 알고 있는데.. 둘다 즉사 할 정도는 아닌 비슷한 부상이라면 부상인데 이이 나오마사는 2년만에 귀천하고,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쪽은 7년 뒤에 죽는건 또 무슨 조화인지..(냠.. 악성 종양이라는 말도 있고.. 이래서 역사란게 어려운가 싶습니닷)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8 1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아마... 상처가 덧 나서 악성 종양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만...의학적인 지식이라고는 닥터K 이후로 전무하다 보니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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