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다. 이에야스[家康]에게 측실은 다수 있었지만, 정실이었던 츠키야마도노[築山殿] 5년 전의 어느 안 좋은 사건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한 후 아무도 정실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츠키야마도노와의 부부싸움에 질려있었던 만큼 홀아비 생활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듯한 상태이기도 하였다. 요약하면 독신이기는 했다.

 나이는 44. 신부가 되는 아사히히메는 43세이며, 원래부터 미인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 밭에서 일하였기에 피부가 쭈글쭈글했고, 햇볕에 탄 잔주름이 깊어 화장으로는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거기에 출신의 미천함은 유명했으며, 지금까지 관위도 없는 무사의 마누라였다. 그런 여성을 이에야스가 받아들일지 어떨지……

 

-가부가 어떻든, 우선 지금은 해보자.

 그 중매를 오다 노부카츠[織田 信雄]가 서는 형식으로 하여, 사자(使者)로 노부카츠의 중신으로 지금은 하시바 가문[羽柴家]의 직속 신하[参]가 되어 있는 히지카타 칸베에[土方 勘兵衛], 토미타 사콘[富田 左近]들을 하마마츠[浜松]로 내려 보냈다. 히지카타 칸베에는 언변이 뛰어난 남자였다. 이에야스 앞에서 천하와 양 가문의 안태(安泰)를 위해서 이토록 경사스런 일은 없다 고 열변을 토했다. 이에야스는 단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에 입을 열어,

 

 하룻밤 생각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네들의 면목을 잃게 하지는 않겠다

 

 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안쪽으로 들어가 중신들을 모아 상의를 하고자 할 즈음에는 이미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중신들 대부분이 안색을 바뀌고 혐오감을 드러내며 반대하였다. 주가(主家)에 어디의 개뼈다귀인지도 모르는 미천한 피를 섞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히데요시가 종삼위(從三位) 곤다이나곤[大納言]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닥쳐라

 

 이에야스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감정론을 백날 밤 들어보았자 아무 소용없었다. 실제로 그 미천한 출신의 43세 노파와 살을 맞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이에야스 자신이며 좋고 싫다는 감정을 먼저 내세운다고 하면 자기부터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야스는 그 점을 꾹 참고 일은 어디까지나 정치 문제로써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신랑 후보자는 굉장한 참을성을 갖추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이웃나라의 이마가와 씨[今川氏]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이마가와 일족에서 연상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부인인 츠키야마도노를 이십 수 년 뒤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강요로 인해 적자(嫡子) 노부야스[信康]와 함께 죽였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산하에 있던 토쿠가와 가문은 하루도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며, 모든 것은 상기(上記)와 같이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 히데요시의 여동생이라는 막 이혼한 초로(初老)의 노파와 결혼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으로만 이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하시바 가문은 그 출신이 어떻든, 예전 이마가와 씨나 오다 씨[織田] 이상의 권세와 위세를 가지고 있고 또한 커져가는 중이었다. 정세가 그러한 이상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게

 

 이에야스는 다른 이유를 대서 가신들에게, 토쿠가와 가문 가신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사히히메는 그럴듯한 인질이라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히데요시는 천하의 반 이상을 손에 넣었지만 그러나 먼저 자기 쪽을 낮추어 여동생을 토우카이에 있는 자신에게 인질로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한번은 가신에게 시집 보냈던 사람을 되돌려 받아서까지 이런 일을 한다고 한다. 히데요시의 괴로움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정세를 보건대 - 하고 이에야스는 말을 이었다. 천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시바 가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하(隸下)에 속할 수 밖에 없다. 이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안 이상, 될 수 있는 한 좋은 형태로 속하는 것을 생각하는 편이 득이다. 이 정도의 일로 그와 다투지 않는 편이 좋다고 이에야스는 말했다.

 이 정도의 일 이라는 것은 아사히히메와의 결혼문제였다.

 이에야스는 승낙하여, 그 뜻을 사자에게 전하는 한편, 가신 혼다 타다카츠[本多 忠勝]에게 함을 들게 하여서는(納幣) 서둘러 오오사카[大坂]로 향하게 하였다.

 

 성공했구나~ 이런 경사스런 일이~”

 

 히데요시는 손뼉을 치며 굉장히 기쁜듯한 모습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내심 이 건을 이리도 쉽게 받아들인 이에야스라는 남자에게,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재빠른 응답의 경쾌함도 저 뚱뚱한 사나이의 무략(武略)일 것이다.

 

 일이 진행되어 결혼 행사는 성대히 행해졌다. 아사히히메는 단지 몸을 그 진행에 맡기고 맡긴 채 멍하니 있는 것 외에는 없었다.

 몸이 오오사카 성[大坂城] 안에 있는 건물에서 가마에 태워졌다. 곧이어 텐마[満]에서 배에 옮겨졌고, 물길을 거슬러 올라 쿄우[京]의 쥬라쿠테이[第]로 들여보내졌다. 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이 그녀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었다. 그녀는 식사를 하고 볼일을 보는 것 이외에는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으로, 모든 것이 알아서 진행되었다.

 

 결혼 성립 후 석 달이 지난 초여름.
 
그녀의 몸은 가마 위에 태워져 쿄우[]를 출발하였다. 그 결혼 행사의 담당관은 일족인 아사노 단죠우쇼우히츠 나가마사[
正少弼 長政], 오다 가문 일족인 츠다 하야토노쇼우 노부카츠[津田 隼人正 信勝], 타키가와 기다유우[ 儀太夫] 등으로 그들이 1000기 정도를 이끌고 앞뒤를 경호, 아사히히메 직속의 시녀와 호종의 무사 만으로 150여명, 부인용의 가마가 11, 끈으로 어깨에 매는 가마가 15채라는 마치 화려한 그림 속에 있는 듯한 행렬이 이어졌다.

 

 5 15일 하마마츠에 도착.

 그 날 곧바로 성 안에서 혼례가 치러졌고 끝나자마자 이 경사스런 행사가 무사히 마쳤음을 히데요시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토쿠가와 가문의 노신(老臣) 사카키바라 야스마사[原 康政]가 하마마츠를 출발했다.

 이에야스는 그날 밤, 당연하게도 아사히히메와 같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이에야스는 총애하는 측실이 많았다. 니시고오리노츠보네[西郡局][각주:1], 오만노카타[方][각주:2], 오아이노카타[方][각주:3], 오츠마노카타[都摩方][각주:4], 오차아노카타[茶阿方][각주:5], 오카메노카타[方][각주:6], 오카지노카타[お梶の方][각주:7] , 그 후궁들은 하나하나가 눈부신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기에, 이제 와서 이 노파 같은 아줌마와 같은 이불 속에서 즐기는 것에 색다른 맛을 추구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인물의 놀라운 점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열심히 남들만큼이긴 했지만 첫날밤을 보낸 것이었다. 신부와 접하는 방식도 상냥하여, 피곤에 쩔어 있을 그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자 필요한 위로의 말을 부족함 없이 사용하였다.

 아사히는 그에 대해 때때로 조그맣게 끄덕일 뿐으로 여전히 둔한 반응밖에 나타내지 않았지만 그러나 내심 신선한 충격에 놀라고 있었다.

 이에야스라고 하면 토우카이 제일의 무사[東海一弓取り]로 노부나가님조차 조심했다고 하는 대장(大將)이라 듣고 있었는데, 이 상냥함이란……  첫 남편인 소작농도, 다음 남편인 오와리[尾張]의 작은 호족 출신인 진베에[甚兵衛], 이만큼의 상냥함으로 아사히를 다뤄준 적이 없었다.

 그 감동이 아사히의 시선에 어리기 시작했을 때, 이에야스는 그것을 재빨리 눈치채고 이 다소 어려웠던 작업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아 가벼운 안도감을 느꼈다.

 

 이에야스로서는 아사히를 상냥히 다루어야만 했다. 그 이불에 들어갈 때도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었고, 오히려 총애하는 측실들과 접할 때 이상으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히에게 붙어 온 노녀(老女)가 다음날 아사히에게 그것을 들을 것이다. 들으면 곧바로 장문의 편지를 히데요시의 밑에 있는 노녀에게 보낼 것이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가 아사히히메를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어하여, 그 편지가 언제 오나 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이에야스에게 있어 이처럼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정치였으며, 아사히의 탄력 잃은 몸을 애무하는 것이 다소 인내를 필요로 했지만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있어 히데요시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히데요시의 중요한 기대는 이 결혼에 의해 이에야스가 상락(上洛)해 올 것이라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아사히를 그 집에 담아두기만 하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으며, 토우카이의 경영에 열중하며 히데요시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식의 행동을 계속 견지했다.

 히데요시의 초조함이 커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혼례 이상의 희생을 치른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에야스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중요한 결심을 히데요시에게 하게 만들었다. 모친을 인질로 하마마츠로 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에야스 상락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보장을 하고자 하였다. 상락을 하여도 이에야스를 죽이는 일은 없다, 그 보증으로써 내 모친을 그 쪽으로 보낸다는 것이었으며, 이에야스에게 만에 하나라도 있을 시에는 이 모친을 죽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것이기도 했다.

 

 코이치로우, 그것을 어머니에게 말해봐 

 

 고 히데요시는 동생에게 명령하였다. 코이치로우 히데나가[小一 秀長]는 놀랐다. 칸파쿠[白] 히데요시라고 하면 이미 천하의 주인이다. 그런 분이 기껏해야 토우카이 수개 국의 지방 다이묘우[大名]를 상락시키기 위해서 여동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모친을 인질로 받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무문의 치욕이 아닌가? 하고 히데나가는 반대하였다.

 

 그렇게까지 해서 하마마츠님(이에야스)에게 조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상락을 재촉하고 따르지 않으면 싸워서 멸하면 될 뿐입니다.”

 

 고 말했다. 이것이 정론일 것이다. 필시 죽은 오다 노부나가라면 그렇게 했을 터이다. 이미 히데요시는 칸파쿠의 자리에 올라 그 판도에는 키슈우[紀州], 시코쿠[国]가 더해져 있었다. 이에야스를 복종시키기에 아무리 보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하고 히데요시는 말했다. 히데요시의 감각으로서는, 그러니까 무문의 치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의 강자(强者)가 시골의 약소한 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이라는 것이지 치욕은 아니며, 세상도 당연히 그렇게 느껴 오히려 아름다운 일로 볼 것이다. 내 통일 방침은 쉽게 가는 것을 방침으로 하여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아끼고, 무력을 피하며, 후환을 남기지 않도록 한다. 방침은 그것 하나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히데요시는 현재 큐우슈우[九州] 정벌을 이미 휘하의 군단에게 명령을 내려, 스스로도 원정군을 이끌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동방의 위협을 없애고 천하를 안정시켜 두고 싶다. 히데요시는 계속 말했다. – 하마마츠님은 돌아가신 노부나가님의 동맹자이며, 그 위세와 명성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하마마츠에서 달려 나와 내 막하에 들어온다고 하면, 그 순간 천하의 인심은 안정되고, 토요토미의 천하는 부동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적은 거기에 있다. 얻는 것은 이에야스를 공격하여 멸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었다.

 

 모친인 오나카[仲]는 작년, 히데요시가 칸파쿠에 취임됨과 동시에 오오만도코로[大政所]라는 호칭을 궁정과 세간에서 얻고 있었다.

 - 알겠다.

 고 이 오오만도코로는 이외로 순순히 승낙하였다. 히데나가가 이 늙은 어미에게 정치 정세로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녀를 당혹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기 때문에,

 

 어떻겠습니까? 오래간만에 아사히를 만나러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라는 것만을 그녀에게 말했을 뿐이다. 오나카에게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세간에도 그것을 이유로 공표하였다. 오오만도코로가 아사히히메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내려가신다 - 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의 이 제의에는 굴복하여 상락한다는 뜻을 전하고 그 준비를 하였다.

 곧이어 오오만도코로는 오오사카를 출발하여 동쪽으로 내려갔다. 이에야스는 오카자키[岡崎]까지 나와 마중하여, 손수 하마마츠에 안내할 예정을 세워두고 있었지만, 막료 중 한 사람이 굉장히 촌스러운 의견을 올렸다.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억측이었다. 그가 말하길, 저렇게 늙은 여자는 쿄우[]의 궁궐에 있는 여관(女官) 중에 넘칠 정도로 있습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속이기 위해 어딘가에서 끌고 온 늙은이를 오오만도코로라고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그건 그렇겠군.

 하고 이에야스도 수긍하여, 이미 그는 오카자키 성에 도착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계책을 짜 예정을 바꾸었다. 서둘러 하마마츠에서 아사히히메를 불러들였다. 그 꿍꿍이는 아사히히메가 오오만도코로와 대면하였을 때의 모습이나 행동을 가지고 판단하고자 한 것으로, 이에야스와 막료들은 전부 이 꿍꿍이를 맘 속에 숨겼다.

 하지만 저 부인은 기색을 확실히 읽을 수 없기에, 잘 될지…’

 라는 걱정도 있었다. 반사가 둔했고, 무표정이기에 마음 속을 알기 힘들었다.

 

 아사히히메가 예정 변경으로 인하여 황망히 하마마츠를 출발한 것은 10 17일이었다. 오카자키로는 이틀간의 여정이다. 그녀의 행렬이 오카자키의 성 밑 마을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인 18일 저녁 즈음이었다.

 그때 마침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오오만도코로의 행렬이 서쪽에서 오카자키로 들어와, 두 행렬이 성의 대문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마주쳤다.

 

 저건 오오만도코로의 행렬이 아닌가?”

 

 아사히히메는 가마의 창문을 오려 시녀들에게 말했다. 그녀로서는 신기하게도 빠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만도코로도 눈치챘다. 서로가 동물 같은 후각과 반응이었다. 오오만도코로도 가마를 멈추게 하여 창문을 올렸다. 회색 머리를 가진 목이 창에서 나왔다.

 

 ~!”

 

 하고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지른 것은 아사히히메 쪽이었다. 가마에서 굴러 나와 치마를 밟으며 내달렸고 그 때문에 넘어졌다. 아사히히메가 일어나는 것과 오오만도코로가 서둘러 가마에서 굴러 나온 것이 동시였다. 그 기세로 모녀가 길 위에서 서로 부둥켜 안았다. 아사히히메는 치마를 흙투성이로 만들면서 꼬꼬마 여자애와 같이 몸부림치며 울었다.

 - 틀림 없군.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실험실의 늙은 학자와 같이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에야스의 막료 혼다 시게츠구[本多 重次]였다. 현명한 실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반면에 있는 잔인함은 나중에까지 이어지는 토쿠가와 가문 특유의 가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이에 안심하여, 다다음날 쿄우[京]를 향해 출발했다.
 
이에야스 상락 중인 25일간, 오오만도코로와 아사히히메는 오카자키 성안에 있는 건물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러는 동안 토쿠가와 가문의 장수들인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 오오쿠보 타다요[大久保 忠世]와 상기의 혼다 시게츠구가 수하들을 이끌고 그 건물을 감시했다. 혼다 시게츠구는 오오만도코로의 건물 주변에 산과 같이 마른 풀과 장작을 쌓아놓고 사졸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켜보게 하며, 쿄우[]에서 이에야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불을 붙여 모녀 함께 태워 죽인다는 자세를 보였다.

 - 너는 이런 집에 시집을 온 것이냐?

 하고 오오만도코로도 놀라, 이 막내딸의 불행을 지옥에서라도 발견한 듯한 생각이 들어 25일간 모녀가 함께 울며 보냈다. 이 오카자키에서 8[각주:8] 서쪽에, 그녀들이 나고 자라며 생활했던 오와리 나카무라[中村]가 있다. 그 땅에서 가난한 소작농일 즈음 지냈던 나날들이 얼마나 즐거웠던 가를 번갈아 가며 질리지도 않은 듯 말을 서로 주고 받았을 것이다.

 

 이에야스가 무사히 상락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 오오만도코로는 오카자키를 떠났다. 이 직후, 이에야스는 그 거성(居城)을 하마마츠에서 순푸[駿府]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아사히도 그에 따라 이후 순푸 [駿府城]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스루가 고젠[駿河御前]

 

 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 기간도 오래는 못 갔다.

 3년 후인 1589 7. 쿄우[]에 있던 오오만도코로가 병들었을 때, 병간호를 위해서 상락하였고, 다행스럽게도 오오만도코로는 완쾌하였지만 아사히히메는 정신이 병들어 그대로 쿄우에서 요양을 하였다. 실상은 순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정신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차츰 쇠약해져, 다음 해인 1590 1 14. 쥬라쿠테이[第]에서 죽었다.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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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요시는 그녀의 유골을, 그녀의 정신에 병이 들 정도로 계속 가기 꺼려했던 토쿠가와 가문에 보내지 않고, 쿄우[]의 교외 토바[鳥羽] 가도 옆에 있는 토우후쿠 사[東福寺]에 안장하여, [남명원전광실총욱자(南明院殿光室旭姉)]이라는 시호를 주고, 곧이어 칸토우[東]의 호우죠우 정벌[条征伐]을 위해 출발하였다.

 그 동정(東征)의 도중 순푸를 지날 때, 아사히히메가 생전에 아베 군[安倍郡] 즈이류우 사[竜寺]에 자주 참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박복함에 애처로움을 느껴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안에 공양탑 한 기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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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히히메의 기묘함은 이 세상에 한 편의 와카[和歌] 조차 남기지 않은 것에 있다. 와카뿐만 아니다.

 이 시대, 토요토미와 토쿠가와 내외에는 다수의 기록자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기록을 후세에 남겼지만, 그녀의 말이라는 것을 어떤 기록도 전해주질 않는다. 굉장히 말이 없었던 것인지아니면 사람과 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인지

 어쨌든 역사 속에서 영원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駿河御前==================
  1. 이케다 테루마사[池田 輝政]의 부인 토쿠히메[督姫]의 모친. [본문으로]
  2. 유우키 히데야스[結城 秀康]의 모친. [본문으로]
  3. 보통 '사이고우노츠보네[西郷局]'로 알려져 있다, 2대 쇼우군[将軍] 히데타다[秀忠]의 모친. [본문으로]
  4. 이에야스 5남 타케다 노부요시[武田 信吉]의 모친. [본문으로]
  5. 이에야스 6남 마츠다이라 타다테루[松平 忠輝]의 모친 [본문으로]
  6. 후에 어삼가(御三家) 필두 토쿠가와 요시나오[徳川 義直]를 낳지만, 사실 이 당시는 아직 이에야스와 만나기 전. [본문으로]
  7. 이 당시 8살. 13살에 이에야스와 만났다고 하니 아직 측실은 아니었다. [본문으로]
  8. 1리는 약 4km(3927.2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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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6.12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편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은 유우키 히데야스군요. 기대가 되네요. ^^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에 상응하니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귀무자에서도 나오는 유우키 히데야스군요. 많이 기대되네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6.12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아사히 히메는 참 불쌍하네요. 그리고 이에야스의 자식들이 모두 모친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2 2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공님//그러니까~~~ 기대하지 마시라니까요!! ^^; (헤에~ 그렇군요. 귀무자 씨리즈는 일편 말고는 본 적이 없어서...)

    본다충승님//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그리고 이에야스의 자식 모친이 전부 다른 것은 아닙니다.
    2대 쇼우군 히데타다와 세키가하라 전투의 시작을 알린 철포 사격을 한 4남 마츠다이라 타다요시(松平 忠吉)의 모친은 같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일본판 위키 토쿠가와 이에야스 항목의 하단 부분을 참조해 주시길...
    http://ja.wikipedia.org/wiki/%E5%BE%B3%E5%B7%9D%E5%AE%B6%E5%BA%B7#.E7.B3.BB.E8.AD.9C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14 0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데요시의 이부제들은 전부 고생만 하다 가는군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6.14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국여성의 운명이란...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고생하거나 정략의 도구로 이용되네요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도 줄을 잘 서야(일평생의 줄)된다는 걸 새삼느끼고 갑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6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메엣찌님//아들 빼앗기고 남편 귀양 간 친누나도 뭐...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박선생님//힘이 모든 것을 우선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은 힘의 유무에 관계 없이...남녀에 관계없이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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