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막내 여동생 아사히[旭]가 결혼할 즈음에 큰 오빠 히데요시[秀吉]는 그 근방에 없었다.

 

 “너에게는 7살 연상의 오빠가 있단다. 착실하게 괭이하고 가래질을 하고 있었으면 부모를 대신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하고 모친인 오나카[仲]는 투덜댔을 것이다. 오나카에게 있어서 히데요시는 죽은 첫 번째 남편인 야에몬[弥右衛門]과의 사이에 나온 자식으로, 그 때문에 야에몬이 죽은 뒤 재혼한 치쿠아미[竹阿弥]에게는 이 히데요시라는 존재가 조심스러웠고 불안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히데요시는 치쿠아미를 싫어하여 아직 꼬꼬마일 때 가출해 버렸다.

 그 후 바늘 장사를 하거나, 미카와[三河] 만담의 보조 광대[三河万(관련 사진(링크)][각주:1]되어 떠돌거나, 그릇을 굽는 곳에 노예로 몸을 팔거나[각주:2], 오와리[尾張]의 유랑인 길드라고도 할 수 있는 하치스카 코로쿠[蜂須賀 小六]의 길드원이 되는 등 수상쩍은 사회를 전전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 히데요시가 오와리로 돌아와 오다 가문[織田家]의 허드레꾼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즈음, 여동생인 아사히는 결혼하였다.

 - 요즘은 키요스[洲] 오다 님의 하인들 무리에 꼽사리 껴서 산다고 하더군

 라는 소문이 나카무라[中村] 주변에서도 들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사히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 이름은 요즘 토우키치로우[藤吉郎]라고 고친 것 같더군

 라는 소문도 돌던 중 곧이어 하급 무사로 출세하여 키노시타[木下]라는 성(姓)을 쓰게 되었다고도 들었다. 그 사이 물론 그 토우키치로우가 이 나카무라에도 왔었다.

 

 아사히가 결혼한 곳에도 찾아왔다.

 

 “여기냐? 여기가 아사히의 집이냐?”

 

 하고 토우키치로우는 시끄러운 소리로 혼잣말하며 들어왔다. 시아버지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하였고, 처음 보는 남편에게도 여어~여어~하고 어깨동무라도 하며 친근감을 보였다.

 ‘시끄러운 사람이다’

 아사히에게는 이 어색하기만 한 오빠가 그렇게 비추어졌다. 극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오빠가 말을 걸어도 부끄러움이 앞서 아무 말 않고 끄덕이거나, 바쁜 척을 하거나 둘 중 하나여서 한 문장으로 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아사히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

 

 하고 토우키치로우는 말했다.

 

 “니는 누구하고 닮았을까~?”

 

 아사히는 말이 많은 이 오빠와 너무도 달랐는데 생김새라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사히는 토우키치로우의 기괴한 상판과는 닮은 곳이 없어, 오나카의 배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눈코가 뚜렷하였고, 피부색도 농사일로 검게 타기는 하였지만 바탕은 흰 것 같았다.

 ‘눈가는 아비인 치쿠아미를 닮은 것 같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토우키치로우는 이미 죽은 양아비가 정말로 싫은 듯 그렇게 느꼈지만,

 - 치쿠아미랑 닮았구나

 라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와 닮았건 토우키치로우는 아사히가 막내 여동생인 것도 있어 너무도 귀엽다는 느낌을 가졌다.

 

 “어서 애를 낳으렴”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라기 보다는 남자의 시선으로 이 작은 몸집의 여동생 허리 주변을 눈으로 핥았다. 작은 몸집이면서 전체적으로는 육덕져 허리 주변이 과즙을 담고 있는 듯이 싱싱했다. 이 정도의 몸을 남편에게 바치면서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토우키치로우가 오다 가문의 중급 장교가 되어 스노마타[墨股] 요새의 수비장수가 되었을 때는 그의 나이 28인가 29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토우키치로우는 나카무라에 사는 오나카 이하 혈연들을 이 성으로 초대하여 수일간 머물게 하며 대접하였다. 스노마타는 야전용 요새로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엮어 만들었을 뿐인 조악한 건물이었지만, 그래도 나카무라에 사는 미천한 백성의 마누라인 아시히에게는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듯한 궁궐같이 보였다.

 

 그 나카무라의 일행이 돌아간 뒤 부인인 네네(寧)가,

 

 “아사히님은 정말 얌전하시더군요.”

 

 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 연상의 막내 시누이는 머물던 중 어떤 일이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바보는 아니겠지?’

 네네는 생각했지만 토우키치로우는,

 

 “아녀~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 테지”

 

 하고 자신의 핏줄인 만큼 그러한 해석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토우키치로우에게 있어서 아사히보다도 더 관심이 갔던 것은 그 남편이었다. 켄스케[源助]라고 하던가? 카스케[嘉助]라고 했던가?

 ‘무사로 만들어 주자’

 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도 어엿한 중급 장교 나부랭이가 된 이상, 친척과 인척을 끌어들여 가신단의 중추로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의 출신이 만약 태어나면서부터의 무사나 호족이었다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하나 분가(分家)의 무리들을 데리고 강고한 가신단을 형성해 가는데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랑인 출신에 빈농의 자식인 토우키치로우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던 만큼, 어서 빨리 자신의 주변을 살펴 무사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네네 쪽의 친척에서 그녀의 양갓집 동생인 아사노 나가마사[野長政 – 아키[安芸] 아사노 가문의 가조(家祖)]나 숙부인 스기하라 시치로우자에몬[杉原 七左衛門 – 후에 후쿠치야마[福知山] 성주(城主)]을 채용하여, 각각 이 스노마타의 중요한 부서에서 일하게 하고 있었다.

 토우키치로우의 일족에서는 동생인 코이치로우[小一郎]를 지금부터 교육하고자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아사히의 남편은 어떤가? 쓸만하다면 쓰고 싶다고 토우키치로우는 기대하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번 스노마타 초대를 기회로 면밀히 관찰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이 남편에게는 눈여겨볼만한 곳이 없었다. 눈코는 사람이었지만 머리는 소나 말과 다를 바 없었고, 더구나 소하고 말만큼의 힘도 없으며 눈동자가 멍했다. 무사는 재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래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백성인가’

 라고 생각하여 실망한 만큼이나 아사히가 불쌍해졌다. 적어도 출납 장부라도 볼 줄 아는 남편이었다면 곧바로 창고나 수송대의 대장 정도는 맡겨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정도도 못하니 아사히는 평생 저 남편을 위해서 밭에서 기어 다녀야만 할 것이다.

 다만, 토우키치로우의 이성은 그렇게 실망하였지만 감정은 남에게 한 없는 호의를 가지는 성격이었기에,

 

 “어떻겠나? 키노시타 성(姓)을 쓰시게”

 

 라고 말해 보았다. 자기와 동족(同族)으로 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무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사히의 남편은 썩소를 지으며 아니 원래가 그런 상판인 듯 했지만 –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양하게쯥니다”

 

 라고 쌀쌀맞게 대답했다.

 

 “싫은가?”

 

 라고 묻자,

 

 “싫건 좋건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선조들의 위패가 있쯥지요”

 

 라고 말했다. 즉 미천한 백성이긴 하지만 어엿하게 이어 내려오는 가문이다, 그리 쉽게 마누라 쪽의 가문에 몸을 파는 듯한 행위는 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런 의미라고 한다면 이 좆병진 같은 남자라도 역시 나름대로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맘대로 하게”

 

 하고 화가 나 냅두고 있었지만, 그 후 10년 정도 히데요시가 전쟁터를 질주하는 동안, 오다 가문의 세력이 커져 히데요시의 사정도 크게 변했다. 노부나가오우미[近江]의 아자이 씨[井氏], 에치젠[越前]의 아사쿠라 씨[朝倉氏]를 멸한 뒤, 자신 휘하의 군사령관들에게 지역을 나누어 준 것이다.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에게는 에치젠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에게는 남부 오우미[南近江]를, 히데요시에게는 북부 오우미[北近江]를 하사하였다. 히데요시는 비와[琵琶] 호반의 나가하마[長浜]에 성을 쌓아, 이때부터 성주(城主)의 신분이 되었다. 그 봉토는 20만석이었다. 이제는 신흥 귀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사히를 저대로 버려 둘 수는 없다’

 불쌍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미 동생 코이치로우뿐만이 아닌 모친과 누나도 불러와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20만석 다이묘우[大名]의 여동생 되시는 분이 언제까지나 오와리 나카무라의 최하층 백성의 마누라로 좋은 것일까?

 

 “호우키[伯耆] 어떻게든 해봐”

 

 하고 히데요시는 명령했다.

 호우키[伯耆] - 라고 대단한 호칭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이 사람은 네네의 숙부 스기하라 시치로우자에몬 이에츠구[家次]였다. 무사로서는 능력이 없기에 하시바 가문[羽柴家] – 히데요시는 이 나가하마에 성을 쌓은 다음부터 키노시타에서 하시바 성으로 고쳤다 – 의 가재(家宰)를 맡고 있었다. 호우키는 곧바로 오와리로 내려가 아사히의 남편을 만나,

 

 “고맙게 생각하라. 자네를 무사로 만들어 주겠다”

 

 라고 전해자, 남편은 아둔한 얼굴로 아무 말 않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고 스기하라 호우키가 목소리를 높이자?

 

 “싫쯥니다”

 

 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유를 대라”

 

 고 호우키는 반쯤 소리지르듯이 말하자, 이 백성에게는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한 줄 정리하면 있던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 싫었던 것뿐으로 환경이 변하는 것을 무조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것을 호우키가 달래듯이 하여 겨우 나가하마 이주를 승낙시켰다. 나가하마에는 으리으리한 저택이 준비되어 있었고, 놀면서 살면 되었다. 그러나 무가(武家)답게 성(姓)이 필요했다. 그 성도 스기하라 호우키는 준비해 두고 있었다. ‘사지[佐治]’라는 성이었다.

 '사지'라는 성은 카마쿠라 시대[鎌倉時代] 때부터 오와리에 번영했던 명족으로, 치타 반도[知多半島]에 그 성터가 남아 있어, 지금은 힘이 없지만 그래도 오다 가문의 가신들 중에는 이 성을 쓰는 사람도 많았다. 그 중에 신관(神主)가 있어, 스기하라 호우키는 특별히 부탁하여 그 성을 쓸 수 있게 허락 받은 후 나가하마로 데려왔다.

 가문의 문장은 부채였다. 그 문장이 들어간 옷과 갑옷 등도 호우키는 준비해 두었다. 결국 이 남편은 무사로 만들어 졌다. 사지 휴우가[佐治 日向]이다.

 

 그러나 나가하마의 으리으리한 저택 생활이 정말 맞지 않았나 보다. 사지 휴우가는 이곳으로 온 후 얼마 동안은 일단 살이 쪘고 곧이어 이전보다 더 말라,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야채처럼 쇠약해져 죽어 버렸다. 그것을 전후로 하여 이 남자가 나카무라에서 데려 온 양친도 죽어, 모처럼의 사지 가문도 끊겼다. 아사히는 하시바 가문으로 되돌아왔다.


사지 씨[佐治氏]에 대해


  1. 사진 중 부채를 든 인물을 타유우[太夫]라고 하는데, 춤을 추거나 재미 있는 말을 한다. 검은 북을 든 사람는 ‘사이조우[才蔵]’라는 보조로, 북을 쳐서 타유우의 춤을 흥겹게 하거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어 준다. [본문으로]
  2. 말은 노예지만, 결국 돈을 빌리고는 대신해서 그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것. 나중에 돈을 갚거나하면 면천되었다. [본문으로]
  3. 당시의 도기와 자기는 지금의 반도체와 맞먹는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본문으로]
  4. 미모는 근방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한다. [본문으로]
  5. 후에 에도 막부[江戸幕府] 2대 쇼우군[将軍] 토쿠가와 히데타다[徳川 秀忠]의 부인. 2011년도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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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5.18 1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이에야스에게 시집가는 여인이지요? [대망]에서는 남편이 히데요시로부터 '마누라 회수' 명령을 받고 자결했다던데, 여기서는 그냥 죽어버리네요. 하긴 어느쪽이든 큰 상관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8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맞습니다. ...대망이라... 보다가 코웃음 치게 만드는 부분이 많아서 중간까지만 읽은 듯 합니다. 전...
    (여담으로... 바벨2센지 3센지 그린 요코야마 미츠테루 선생이 그린 대망의 만화판은 과감한 삭제와 노부나가를 오히려 주인공으로 여기게 하는 부분이 있어 전 이쪽을 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19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생각해봤는데 같은 대정소님(;)의 자식이지만 치쿠아미의 씨들은 빨리 죽어버리는 듯 하군요. 히데나가도 간신히 50에, 스루가 고젠도 40대에 죽었으니..

    뭐, 생각해보면 당시 평균수명에 비하면 그 정도면 선전 한 것 아닌가도 싶지만 자연사 한 센고쿠시대 인물들은 은근히 수명이 긴편이었던지라(...흠;)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19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자는... 당시 수명이 짧았다는 것은 통계의 허점이라고들 하더군요.
    유아 사망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지, 그걸 제외하면 평균 수명은 나름 있었던 편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다메엣찌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암은 유전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치쿠아미 측의 부계 유전이었는지도 모르죠.

    요즘엔 아예 히데츠구의 어미 닛슈우 부터 막내 아사히까지 전부 야에몬의 자식들이라고도 합니다만...

    여담으로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따르면(일본 측 기록에는 없다네요), 젊은이 한 명이 이세(伊勢)에서 20~30명의 무리를 끌고 와 히데요시의 동생이라고 우겼다가, 이것을 히데요시가 오오만도코로에게 물어보자 대답을 궁색히 하며 낳은 적 없다고 하여 일당 전부 참수. 그 이후 또 여동생 하나를 찾아내어(오와리의 백성의 여편네를 하고 있었다네요) 오오사카로 데려와 역시 참수... 그런 것을 따지면 위에 두 명(닛슈우와 히데요시) 빼 놓고는 히데나가가 제일 오래(51~2살) 살았군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4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터에서는 대표값도 중요하지만, 분산 역시 중요하죠…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w_walker BlogIcon 친구 2008.06.12 2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이 쪘다가 말라서 죽었다..라는 말을 보니 꼭 당뇨같네요.. 부귀영화가 몸에 안 맞았던 듯..^_^;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16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안 맞아도 좋으니, 꼭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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