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

 “이리 오시게. 술을 드리겠네”

 상냥한 목소리로 손을 잡았다. 불쌍한 장님이 고개를 들어,

 “어이쿠~ 이렇게 친절할 수가! 어디에 뉘신감?”

 라고 희희거리며 따라왔지만 얼마 안가 히데츠구는 허리를 돌리며 장님의 어깻죽지부터 오른팔을 베어 떨어뜨렸다. 지금까지 히데츠구의 경험상 보통 이런 충격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절하였다. 하지만 이 장님의 심리 세계는 어딘가 틀린지 이 순간 삼 척이나 껑충 뛰며 소리 높여,

 “어디 사람 없소~! 나쁜 놈이 사람을 죽이려 하오~ 사람들아 저 놈을 쫓으소~ 나를 구해주소~”

 하고 느릿느릿 그러나 침착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놈은 특이한 맛을 하고 있군”

 히데츠구가 말하자 이런 종류의 살생에는 항상 따라붙으며 히데츠구의 비위를 맞추는 쿠마가이 다이젠노스케 나오유키(熊谷 大善亮 直之)라는 젊은 다이묘우(大名)가 히데츠구의 흥을 더 돋구기 위해서 장님에게 다가가,

 “네 놈에게는 이제 팔이 없지. 피도 둑이 터진 것 같이 흐르고 있지”

 라고 현실을 가르쳐주어 알면 괴로워하며 기절할 거라 생각하여 그 반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장님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을 하였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목소리도 이외로 낮추어,

 “그래 알겠다. 그랬었군”

 하고 중얼거렸다.

 “이 나쁜 놈은 평소 이 부근에 나타난다는 살생 칸파쿠(殺生 関白)[각주:1]인가? 반드시 그럴 거다.”

 히데츠구를 호종하고 있는 쿠마가이는 - 쿠마가이 지로우 나오자네(熊谷次郎 直実 – 하단 역자주)의 후손이라는 인물이다. 가문은 한 때 무로마치 바쿠후(室町 幕府)에서는 후다이(譜代[각주:2])의 명문가로 대대로 쿄우(京)에 살며, 지금은 와카사(若狭) 이사키(井崎)의 성주(城主)이기도 했다. 잔머리가 잘 돌아갔던 만큼 히데츠구가 어떤 점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 상태라도 알려주는 듯이,

 “네 놈은 눈이 보이지 않지. 더구나 이제는 팔도 없지. 이렇게 장애가 둘로 늘었지. 그래도 네 놈은 살고 싶은지?”

 어떤 심경이냐? 라는 것이었다. 히데츠구도 쿠마가이의 어깨너머로 목을 쭉 내밀고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장님이 뭐라 하는지를 기다렸다.

 “살고 싶지 않아!”

 라고 소리치는 것이 장님의 회답이었다.

 “이 이상 이런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냥 죽여라! 이 목을 베란 말이다! 봐라!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낌새는 동네사람들이 문 틈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여 내 목을 베라! 네 놈의 사악한 이름을 후세에 남겨라! 인과응보를 기다려라!”

 라고 외쳤다. 이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에 히데츠구는 자아(自我)를 잃고 흥분하여 칼을 휘둘렀지만 장님의 팔을 자를 때 칼날에 사람 기름기가 들러붙었는지 베어지질 않아 어깨뼈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다. 이 때문에 장님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굴렀다. 그러자 더욱 더 히데츠구의 손이 폭주하였다.
 칼로 얼굴을 치고 다리를 베고 배를 찌르자, 이빨이 날라가고 손이 잘리고 손가락이 떨어져 더 이상 사람의 형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잘리고 나서야, 겨우 이 장님의 숨을 끊을 수 있었다.
 길거리로 나와 사람 죽이는 것에 재미가 들린 이래, 이렇게 손이 간 작업은 없었다.

 “..이런...놈일...수록.. 재..재미...가 없군”

 히데츠구는 헉헉대며 말했지만 피로로 다리가 풀려 호종하던 사람이 뒤에서 지탱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귀족들에게~~”

 술을 들이키며,

 “이 정도로 용기가 있을 턱이 없지”

 라고 옆에서 술을 따르던 부인에게 말했다.
 이 부인은 키쿠테이 다이나곤 하루스에(菊亭 大納言 晴季)의 딸로 '이치노다이(一ノ台)'라 불리고 있었다. 정실(正室)이었던 이케다(池田)씨(氏)가 죽었기 때문에 히데츠구는 하루스에에게 강탈하다시피 이 부인을 뺏어와 근래에 이를 정실로 삼았다.
 이치노다이의 나이는 히데츠구보다 열살 정도 많았지만 그 미모는 쿄우토(京都)에서 으뜸이었다. 한번 다른 곳에 시집을 갔었고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다. 아직 11살의 꼬꼬마에 지나지 않았지만,히데츠구는 이 딸까지 데리고 와서는 ‘오미야노카타(お宮ノ方)’라 부르며 첩으로 삼아 모녀와 함께 3P를 하였다.
 사람들은,

“모녀병간(母女倂姦)이라니 인륜(人倫)이 아니다. 축생도(畜生道)다.”

 라 소근거렸으며, 아비인 하루스에도 이 모녀병간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의 어긋남에 울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히데츠구가 자신의 무용을 이 이치노다이에게 자랑한 것은 그녀가 귀족(公家)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귀족 놈들은 문(文)을 비틀고 옛 일을 흥얼거리며 예식(禮式)에는 밝을 지 몰라도, 이 정도의 무(武)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지. 모두 칼이나 피를 보면 벌벌 떨 놈들뿐이다”

 라 말했다. 이치노다이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뭐라고 말을 해봐라!”

 하고 히데츠구는 항상 이 입을 열지 않는 모녀에게 말을 하게하고자 했지만, 그녀들은 쥬라쿠테이(聚楽第)에 와서 산지 일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태까지 히데츠구 앞에서는 목소리라는 것을 낸 적이 없었다.

 참고로 히데츠구 처첩의 수는 양아버지 히데요시가 제한했던 수를 훨씬 상회하였고 이 즈음에는 30명이 넘어 히데츠구라고 해도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혀가며 세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아무래도 나사가 빠졌나 보군’
 하고 히데츠구에게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게 권고했던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도 이 벼락치기 칸파쿠가 불과 1~2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한 것을 보고 후회보다는 오히려 공포를 느꼈다. 히타치노스케보다 히데요시 쪽이 훨씬 마고시치로우를 알고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렇게 쪼잔히 나사를 쉴 세 없이 조여야만 그제서야 이 인물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었다. 이 나사가 풀릴 대로 풀려 자기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남자는, 예를 들면 이런 일도 하였다.
 마루모 후신사이(丸毛 不心斎)라는 늙은 신하의 부인을 보고서는, 노파는 어떤 몸을 하고 있을까라는 흥미를 가져 억지로 데리고 와서는 첩으로 삼았다. ‘아즈마(東)’라고 부르며, 나이는 61살이었다.
 50대는 없었지만 43세의 여자는 있었다. 또한 오카모토 히코사부로우(岡本 彦三郎)라는 가신(家臣)에게 모친이 있어, 히데츠구는 어느 날 모친이라는 것 즉 그런 종류의 여자가 필요하다며 이도 첩으로 삼았다. ‘카우(かう)’라 불렀으며 38살이다.
 여성들을 나이별로 나누면 10대가 11명, 30대가 4명, 40대가 1명, 60대가 1명으로 나머지는 20대였다.
모가미 요시아키(最上 義光)의 딸 ‘오이마(お伊万)’와 같은 다이묘우(大名)의 딸도 있었으며, 거지 출신의 오타케(お竹)라는 이도 있었다. 이런 여성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모아져 쥬라쿠테이(聚楽第)라는 새장 속에서 사육되었다.[각주:3]

 히데요시는 쿄우토(京都)에서 펼쳐지는 히데츠구의 망나니짓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신들은 나중을 생각하여 몸 사리며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랐다. 단지 걱정하는 것이라고은 자기 피를 이은 히데요리의 미래뿐이었다. 히데요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국 생각을 정하여 히데츠구를 후시미(伏見)로 불렀다.

 “그 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일본을 다섯 개로 나누고자 한다”

 라고 히데요시는 제안했다.

 “이렇게 하자. 그 쪽에게 그 중 네 개까지는 주마. 나머지 하나를 히데요리에게 주면 어떻겠나?

 고 말했다. 말하면서 히데츠구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히데요시에게 있어서는 이미 후계 상속을 한 뒤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말하기도 뭐한 것도 있어, 그것을 이래저래 염려하며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제안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데츠구의 표정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히데츠구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 둔하고 무신경한, 어느 쪽인가 하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는 상판때기를 보고 있자니
자기 혼자만 기를 쓰고 있는 듯한 모습에 오히려 우스웠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라기보다 히데요시는 히데츠구의 동정에 기대고자 하는 자신을 보았다. 히데요시의 심정은 이젠 애원에 가까웠다.
 늙어서 아이를 얻은 이 노인이 불쌍하지도 않냐? 나는 이렇게까지 고뇌하고 있다. 그 기분을 읽어다오~ 읽었다면 칸파쿠를
사직(辭職)하고, 양자(養子)와 후계자를 관두겠다는 말을 해다오~ 라고 히데요시는 은근슬쩍 기대했다.
 하지만 히데츠구의 감수성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대답은 했다.

 “아버님이 편하신대로”

 라고 말하였지만 그 상판때기에는 표정이 없었고 입술 끝엔 토라진 기색까지 담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그렇게 보았다. 아니 오히려 억지로라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심경에 히데요시는 몰리고 있었다.
 ‘천하는 누구의 천하더냐!’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참았다. 그 분노를, 히데요시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훈계로 바꾸었다. 하지만 훈계를 듣는 표정과 태도조차 히데츠구는 어딘가 이전의 마고시치로우같지는 않았다. 마고시치로우였을 때에는 아직 작은 새와 같이 두려움에 떠는 부분이라도 있어 그런 면에서 간신히 귀여운 맛이 있었던 듯했다.
 ‘이 녀석 변했군’
 히데요시는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다. 자신이 죽은 뒤 히데요리를 보호해 줄 인물은 이 히데츠구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이제는 히데요시 쪽이야말로 애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후, 히데요시는 이 일에 대해서 또 생각하여 하나의 꾀를 생각해내었다.
 히데츠구에게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를 장래에 히데요리의 부인으로 하는 것이었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의 배후자를 지금 정한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히데요시는 거기에 매달렸다. 그런 끈이라도 이어 놓으면 히데츠구는 장래 히데요리에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급사(急使)를 보내려 하였다.

 “음…… 그게 좀…… 서두르실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측근은 말했다. 무엇보다 먼 장래의 일이다. 측근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러나 히데요시에게 있어선 빨리 그리해두지 않으면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 즈음 히데츠구는 이즈(伊豆)의 아타미(熱海)에 온천 치료를 하러 동쪽으로 가 있어 쿄우토(京都)에는 없었다. 히데츠구에게는 두통이 있었다. 온천에서 그걸 치료하고자 하는 여행이었다.
 아타미에서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급사를 맞이하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편지를 펼치자 기껏해야 그 정도의 일이었다.

 “알겠다고 말씀 드려라”

 히데츠구는 사자(使者)에게 그렇게 답했다. 사자가 후시미(伏見)로 돌아와 히데요시에게 보고했다.

 “칸파쿠는 그렇게만 말했을 뿐인가?”

 히데요시는 자신의 불안과 의욕에 비해 상대가 너무도 냉정한 것에 불만과 불쾌감까지 느꼈다. 사직한다 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히데요리가 성인이 된 후에는 천하를 물려주겠다 라고 말만이라도 이 노인을 안심시키고 기쁘게 해 줄듯한 말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정도 없고 달래려는 마음 조차도 없다.
 ‘
축생이다’
 고 생각했다. 그 때 키쿠테이 다이나곤이 후시미(伏見)에 와서는 히데츠구의 모녀병간의 사실을 눈물 섞어 호소하였다.
 ‘설마 그 마고시치로우 녀석이?’
 그렇게까지 막되먹은 일을 할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히데츠구의 사생활을 조사시켰다. 조사를 담당했던 것은
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와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였다.

 역시 마고시치로우는 사람이 변해 있었다.
 칸파쿠 전하의 놀랄만한 행태가 이때 하나도 빠짐없이 한꺼번에 히데요시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기절할 정도로 놀라 히데요시나 되는 인물이 얼마 동안 감정의 정리가 되지 않아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한 말이,

 “저건 사람이 아니다”

 였다.

 “축생이다”

 고 말했다. 이 때부터 저 단어를 사용하여 히데츠구를 그렇게 정의(定義)했다. 그렇게 정의하는 것 말고는 토요토미 정권을 구할 길이 없었다. 이미 히데츠구의 악행으로 인해 쿄우토(京都)의 지도층이나 서민들이 가진 토요토미 정권의 인기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사람들은 히데츠구를 미워하기보다 그 배후에 있는 토요토미 가문을 원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토요토미 가문과는 별개의 존재이다는 것 말고는 그 원망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축생이다. 그 증거는 모녀병간이다고 - 히데요시는 그 이론을 명쾌히 이시다와 나츠카에게 고했다.

 이윽고 온천 치료의 여행에서 돌아온 히데츠구는 그 사태를 알게 되었다. 쿄우토(京都)에 머물러 있던 측근들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알 수 없군”

 그가 알고 있던 것은 자신의 딸을 먼 장래에 히데요리와 결혼시킨다는 기껏해야 그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발전한 것인가? 측근들은 아무래도 모녀병간 하나만은 말하기 그래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부노쇼우(冶部少=미츠나리(三成))들이, 참언(讒言)한 것이겠지요”

 라고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는 그렇게 말했다. 히타치노스케는 미츠나리 참언설을 믿고 있었다. 만약 타이코우(太閤)가 죽어 히데츠구의 시대가 되면, 타이코우 소속의 미츠나리들은 권세를 잃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그들의 정적(政敵)이었던 자신이 권세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여 빨리 히데츠구를 실각시켜 갓난아기인 히데요리의 후계권을 확립시켜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리 된 것은 미츠나리 등 타이코우 측근들의 음모다라고 히타치노스케는 말했다.

 히데츠구가 후시미(伏見) 방면의 소문을 살피게 하고 보니 사태는 예상외로 심각했다. 죽음을 언도 받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살해당하는 것인가”

 이른 밤,

 “그리 되겠지요”

 라는 예측을 힘주어 말한 것이 쿠마가이 다이젠노스케(나오유키 – 直之)였다. 그는 히데요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여 넌지시 그리고 자주 경계해야 한다고 히데츠구에게 말했던 것이다.

 “오히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 반대로 후시미를 습격하여 타이코우를 죽이고 일거에 정권을 안정시켜야만 하지요. 그에 대한 방법은 이렇습지요”

 라고 말하며 쿠마가이는 그 방법을 설명했다.

 “우선 후시미성(城)은 전쟁 준비가 덜 되어 있습지요. 습격하면 타이코우는 오오사카(大坂)로 도망치겠지요. 그것을 가정하여 요도(淀)와 히라카타(枚方)에 철포대(鉄砲隊) 천 명을 숨겨 놓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오오츠(大津) 등의 주변 도시와 다이부츠(大仏) 가도(街道), 타케다(竹田) 가도 등 후시미(伏見)와 연결된 도로에 병사들을 숨겨 놓으면,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습지요.”

 라는 것이었다. 히데츠구는 놀라 귀를 막으며,

 “...다이젠, 더 이상 말하지마! 모반은 무섭다구...”

 라고 핏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이 날부터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습격을 대비하여 외출할 때는 반드시 따르는 자들에게 갑주를 입게 하였다. 이것이 후시미로 곧바로 알려졌다.
 당연히 칸파쿠는 항상 후시미를 노리고 있다고 해석되었다.
 히데츠구는 자신이 조심한다는 것이 그렇게 해석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쿠마가이 나오자네(熊谷 直実)


  1. 일본어로 살생(殺生)와 섭정(摂政)은 발음이 셋쇼우(せっしょう)로 같다. 예전엔 섭정에 이어 관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섭정관백(摂政関白)라고도 하였다. 저 말은 섭정과 살생의 발음을 같은 것으로 한 언어유희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대대로 섬겨온 가문. [본문으로]
  3. 이해를 돕기 위한 사족을 두자면 히데츠구 죽을 때의 나이 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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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헤이케 이야기 번역본 읽어보니,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잡병들이 몰려오기에 하는 수 없이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나, 나름대로 애정인가(!)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쿠마가이 나오자네는 징기스칸4에도 나오더군요.. 관동 제일의 무법자..라는 별명이 있었다던데..(헤이케 이야기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가..)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09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이런 고귀한 무장을 잡병 따위에게 목숨을 잃게 할 수가 없다는 식의??

    헤에~ 징기스칸4라는 게임은 그런 게임입니까? 예전에 잠깐 해 보았지만, 그 놈의 도시 공략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아서... 무엇보다 맵이 너무 큽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2.09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징기스칸 4 도시 공략이야.. 화포병만 끌면 뭐..;;

    맵은.. 가도 안 깔면 기병 안 쓰는 이상 답답해서 못하죠..; 두번쯤 엔딩보다 접은 기억이;;

  5. BlogIcon 귀염판다 2014.08.0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생관백이라더니 어느 정돈지 잘 몰랐는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군요 죽어도 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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