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加藤 ]
1611년 6월 24일 병사(病死) 50세.

1562년 ~ 1611년.
시즈가타케[賤ヶ岳] 칠본창(七本槍)[각주:1]중 한 명. 히데요시[秀吉]가 큐우슈우[九州]를 제압하자 히데요시에게서 히고[肥後]의 반(半)을 하사받았다.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에서는 동군(東軍)에 속하였고, 히고 일국(一国)를 영유하며 쿠마모토 성[熊本城]을 축성하였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와 토요토미노 히데요리[豊臣 秀頼]의 회견을 성사시켰지만 곧바로 병이 나서 죽었다.



갈등으로 고심한 말년

 카토우 키요마사가 일부 지역을 뺀 히고[肥後]와 붕고[豊後]의 3개 군(郡)[각주:2]을 합하여 54만석을 소유하게 된 것은 세키가하라 전쟁[関ヶ原の役] 후인 1600년 11월.

 키요마사의 "말년"은 용맹을 바탕 삼아 혁혁한 공을 세워 온 센고쿠[戦国] 무장에서 위정자(爲政者)로 변신한 이 해의 38살부터 한창 일할 나이인 50세로 죽었을 때까지인 12년간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쿠마모토에서는 키요마사를 [세이쇼우 코우(清正公 = 키요마사 공)]을 줄여 [세이쇼코 상(セイショコ さん = 키요마사 씨)]이라 부르며 키요마사의 은덕(恩徳)을 우러르는 풍습이 남아있다. 이 12년 동안 키요마사가 정력적으로 기반을 닦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이 후에 쿠마모토 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지금도 그 노력의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의 명성(名城)인 쿠마모토 성(城)의 축성, 가도(街道)의 정비, 관개(灌漑)의 확충, 간척(干拓) 등에 의한 경작지(耕作地)의 조성, 제사(製絲) 등의 산업 진흥 등이 그 후의 히고 쿠마모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히고 카토우 가문[加藤家]은 그 다음 대인 타다히로[忠広]의 삭탈관직[改易[각주:3]]과 함께 끊어지지만, 카토우 가문 다음으로 이봉(移封)되어 온 호소카와 가문[細川家]이 카토우 가문의 유적, 풍습을 존중한 것도 키요마사에 대한 히고 사람들의 감사와 존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군(名君) 카토우 키요마사의 말년은 정말 충실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内面)에서는 토요토미 은고(恩顧)의 다이묘우[大名]이면서도, 토쿠가와 정권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인간적 갈등으로 고심했다고 여겨진다.

토요토미 안태(安泰)를 꾀하다

 키요마사에게는 세 명의 측실(側室)이 있었다고 한다.
 2남 1녀를 낳은 ‘혼가쿠인[本覚院 = 통칭 카와지리도노[川尻殿]]’, ‘죠우코우인[浄光院 = 통칭 키쿠치도노[菊池殿]]’, 후에 뒤를 잇는 셋째 아들 타다히로와 둘째 딸 아마[あま]의 1남1녀를 낳은 ‘쇼우오우인[正応院]’이다.

 키요마사가 죽은 뒤, 불과 12살며 셋째 아들 타다히로가 뒤를 이은 것은 이미 장남 토라노스케[虎之助]가 2살, 둘째인 타다마사[忠正]가 8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정실(正室)[각주:4]법호(法號)를 ‘쇼우죠우인[清浄院]’이라 하는데, 이에야스의 외숙부 미즈노 타다시게[水野 忠重]의 딸이다. 이에야스는 모친 오다이[於大 = 덴즈우인[伝通院]]의 동생인 이 타다시게의 딸을 양녀로 삼아서 키요마사에게 시집보냈다[각주:5].

 그리고 키요마사의 장녀인 코야[古屋 – 혼가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를 토쿠가와 사천왕[徳川 四天王][각주:6] 중 한 명인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아들 야스카츠[康勝]와 결혼시켰고, 둘째 딸 아마를 후에 어삼가(御三家[각주:7])인 키슈우 토쿠가와 가문[紀州家]를 세운 이에야스의 10째 아들 요리노부[徳川 頼宣]와 결혼시켰다.

 토쿠가와 가문과 키요마사가 이런 인척(姻戚)관계로 이어진 것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기 위한 책략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다. 토요토미 은고 다이묘우(大名)를 회유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키요마사가 비록 서국(西国) 큐우슈우[九州]에 있더라도, 키요마사라는 인물은 적으로 돌리면 또 이 정도로 성가신 무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키요마사는 밖에서 보면 토쿠가와와 친하며, 토요토미와는 거리가 생긴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우직한 인물은 고(故) 히데요시의 두터운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은혜를 갚는 길은 겉으론 토쿠가와에게 복종하면서, 히데요리를 당주로 하는 토요토미 가문의 안태를 꾀하는 것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이에야스가 강요하는 니죠우 성[二条城]에서 히데요리와의 회견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사노 요시나가[浅野 幸長] 등과 함께 요도도노[淀殿 – 히데요리의 생모]를 설득하여 실현시킨 것은 토요토미 가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귀국 도중에 병이 나다

쿠마모토 시[熊本城]에 있는 키요마사 동상.

 이에야스와 히데요리의 회견은 1611년 3월 27일 무사히 끝났다.
 니죠우 성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온 키요마사가 침실에서 몸 안에 품고 있던 단도를 꺼내고 잠시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慶元記[각주:8]].

 회견장에서 만약의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그 단도로 히데요리를 지킬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태가 되지 않았다는 안심에서 흐른 눈물일 것이다.

 히데요리를 오오사카 성[大坂城]으로 경호하며 돌려보내는 도중에 후시미[伏見]에 들렸다. 그곳에 있는 자기 저택 앞을 흐르는 강에 배를 띄우고 그 배에서 잔치를 연 키요마사는 그제서야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린 듯한 생각이 들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같은 해 5월 하순.
 귀국하던 배에서 갑자기 병이 나 병든 몸을 질질 끌듯이 하며 쿠마모토로 돌아왔다. 혀가 꼬이는 증상의 병이었는데 확실한 병명(病名)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병은 나날이 악화되어 6월 24일 숨을 거두었다.

 오오사카 여름의 싸움[大坂 夏の陣]에서 토요토미가(家)가 멸망하기 4년 전이었다.

  1. 1583년 오우미[近江]에서 히데요시[秀吉]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가 싸운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운 7명의 무장.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 正則], 카토우 키요마사[加藤 清正], 카토우 요시아키[加藤 嘉明],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 安治], 히라노 나가야스[平野 長泰], 카스야 타케노리[糟屋 武則], 카타기리 카츠모토[片桐 且元]를 지칭함. [본문으로]
  2. 후에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의 무대가 되는 아마쿠사[天草] 섬 등은 기독교도들이 많았기에 막부에 부탁하여 옆 지방인 붕고[豊後]의 세 개군(郡)과 교환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3. 카이에키[改易]라 읽는다. 영지를 몰수하고 평민으로 강등시키거나 영토를 대폭 줄임. [본문으로]
  4. 키요마사의 정실은 야마자키 카타이에[山崎 片家]의 딸로, 키요마사가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건너가 있던 중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쇼우죠우인[清浄院]은 후실(後室). [본문으로]
  5. 그녀의 나이 18세. 키요마사와는 20살 차이가 난다. [본문으로]
  6. 사카이 타다츠구[酒井 忠次], 혼다 타다카츠[本多 忠勝],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 康政], 이이 나오마사[井伊 直政]. 토쿠가와가(家)를 지탱한 네 명의 공신을 지칭. [본문으로]
  7. 오와리[尾張], 키슈우[紀州], 미토[水戸]에 이에야스의 각각 9째, 10째, 11째 아들들이 임명된 가문으로, 후에 쇼우군 본가가 끊길 경우 쇼우군을 배출할 수 있는 가문. 특징 겸 우대로써 토쿠가와[徳川]라는 성(姓)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에도 바쿠후에서는 다방면에 걸쳐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본문으로]
  8. 호우죠우 츠나시게(北条 綱成)의 증손자 호우죠우 우지나가(北条 氏長)가 쓴 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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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19 2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아저씨도 암살인지 독살인지 하는 설이 있더군요..ㅎㄷㄷ

    소녀닌자 이즈미던가..라는 막장 망가에서는 이 아저씨를 비롯 세키가하라 이후에 죽은 다이묘는 all암살이라는 황당한 설정의 망가도 있었지만;;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19 2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사카 공략전을 앞두고 무용이 뛰어나고, 오오사카 바로 아래인 키이(紀伊)를 영유하고 있던 아사노 요시나가(浅野 幸長), 호쿠리쿠(北陸)의 마에다 토시나가(前田 利長), 히메지(姫路)의 이케다 테루마사(池田 輝政)등... 각각의 위치에서 바쿠후의 군을 견제할 수 있고, 또한 토요토미家와 굉장히 친했던 가문의 당주들이 비슷한 병 혹은 급사라는 형식으로 동일한 시기에 죽었던 것이 그런 설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반대로... 그런 이들이 동일한 시기에 죽어서 이에야스에게는 오오사카 공략을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겠지만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19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즈미... 만화는 본 적이 없고, 영화 아즈미 2탄만 쪼금 보다가 다 못 보았습니다만... 만화 재미있나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20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 황당한 만화의 리뷰만 본거라서.. 따로 말은 못 드리겠지만 리뷰만 봐도 참 막장..(-_-;;)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nagoomo BlogIcon 볼리바르 2007.11.20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만화는 재미 면에서는 아주 충실합니다. 만화라는걸 염두에 두고 보면 아주 재미있죠.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21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 볼리바르님~ 반갑습니다. 그렇군요. 재미는 있나보군요. 왠만하면 전국물은 다 읽는데(사무라이 디퍼 쿄우~도 읽었는데..) 소년 검객이라는 말에... 연약한 여자애가 썩둑썩둑 사람 자른다는데 왠지 말이 안된다는 생각에 읽지 않았는데, 함 봐야 겠네요.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korea40003 BlogIcon korea40003 2007.12.14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토기요마사아닌가?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2.14 2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립 국어원의 일본어 표기법
    http://www.korean.go.kr/06_new/rule/rule05_01_04.jsp
    에 따르면 korea40003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전 예전에 그 표기법 때문에 아직도 발음에 무리를 겪고 있어서,
    일부러 글자 발음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05.04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니시와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무장이 아닐까 생각..(모 게임사의 게임의 영향으로 인해 -0-)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04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진년 1진과 2진일테니까요. 함경도 담당이라 저 북쪽까지 갔으니 아무래도 그만큼 유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에...어떤 게임이요? 코니시까지 나올 정도면 코에이 신장이나 태합 시리즈 같은데...)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05.04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 게임사의 임진록 시리즈와 거상시리즈죠.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05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름만 들어보고 해 본적이 없어서...^^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ttl00013 BlogIcon 라빈스텐 2008.08.31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진왜란때 조선 사람들 중에서 제일 무섭운 사람중 넘버원이 가토 기요마사임...
    쾌지나 칭칭나네 이말도 조선사람이 기요마사를 너무 무서워서 해서 아직도 전해지는 노랫말이죠,
    예전 조선 사당이나 무당에 기요마사의 그림을 붙여서 귀신을 쫓을정도로 기요마사는 조선에서 원수인 놈과 동시에 가장 무서운 인물입니다.
    조선의 호랑이를 좋아해서 조선 호랑이를 씨를 말릴정도로 잡아 가서 히데요시에게 호랑이 가죽 선물도 주고~설에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쳐 잡앗다고 하지만 그건 쫌 구라가 섞인듯 합니다.
    기요마사설에는 영웅은 색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너무 여자를 밝힌 탓인지 셩병인 매독으로 죽엇다는 설이있습니다.
    아즈미 같은 쓰레기 SF 잡 영화에서 독살로 죽은게 아닙니다.~~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8.31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말은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확정을 지어서까지 말씀하실 만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한 인물이 몇 년간 몇 마리 잡았다고 씨가 마를 정도면 이미 그 전에 멸종에 가까운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요?

    창으로 잡았다는 설이 있지만, 맨주먹은 처음 듣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만화에서는 아즈미가 칼로 죽이던데 영화에서는 독살로 나오나요?

  1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06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쾌지나칭칭나네라는..말은...카토기요사마녀석댐에..생긴말..맞고요..제가..이글..모두..댓글읽어본결과..발해지랑님은..자신이..일본역사인물올리면서..일본역사인물들을..비하하시더군요..아주..니만의생각으로..반박하시던대...증거자료를보여줘도..말을4가지없게..마무리하고..아주..보기안좋내요...

  1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06 0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ko.wikipedia.org/wiki/%EC%BE%8C%EC%A7%80%EB%82%98_%EC%B9%AD%EC%B9%AD%EB%82%98%EB%84%A4
    위키의 '쾌지나 칭칭나네'의 항목입니다. 키요마사의 이야기는 하나의 설일 뿐입니다.

    증거자료 보여 주셨습니까? 우선 해당 링크라도 걸어 주시던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분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만 우선 제 말에 반론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거나 링크를 걸어 주셔야지, 4가지 없게 한다는 말씀만 하시니.... 그래서는 서로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끝내면 서로 기분만 나뻐지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가 뭐가 있나요?

  17. 참~ 2011.01.26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님이 참으세요 아골이 여까지출몰하네요

  18. 아이즈 2012.07.13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같은맥락으로
    그래도 나름 도요토미가 충신이엇기때문에
    도쿠가와한테 부담된것도 잇겟지요?

    • Favicon of http://valhae.kr BlogIcon 渤海之狼 2012.07.20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변 굉장히 늦은 점 사과드립니다.

      뭐...토요토미 가문과 이러저러 연이 깊던 가문들의 주인들이 비슷한 시기에 죽어나갔다는 정황증거는 있습니다만... 아직 더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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