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이 마고시치로우의 운명을 또다시 역전시켰다.

 토요토미 가문에서 이 젊은이의 운명은 전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츠루마츠가 죽은 지 석 달째가 지날 즈음.

 이 젊은이에게 히데요시의 사자(使者)가 와서 정식으로 토요토미 가문(豊臣家)의 후계자 겸 히데요시의 양자(養子)로 삼는다고 전했다. 츠루마츠의 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표면적인 축하연(祝賀宴)은 삼갔지만 그래도 마고시치로우의 저택에는 은밀히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방문하는 다이묘우(大名)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 방문객들은 3개월 전에 뇨신(如心)()의 츠루마츠 장례식 때 그 죽음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히데요시의 눈 앞에서 뒤질세라 너도나도 앞다투어 상투를 자르던 사람들이었다.

 

 이 해의 12.

 토요토미 가문은 조정(朝廷)에 요청하여 마고시치로우는 나이다이진(大臣)에 임명되었다.

 그 날부터 불과 24일이 지난 뒤에 마고시치로우는 천하에 있어서의 위치가 확 바뀌었다.

 칸파쿠()가 된 것이다.

 히데요시가 그 직()을 물려준 것이다.

 물려주고 히데요시는 조정의 직책에서 물러나 오오사카(大坂)()에서 살며 이후에는 타이코우(太閤)’라 불리게 되었다.

 칸파쿠 히데츠구 공()이 된 마고시치로우는 새로이 쿄우()의 쥬라쿠테이() 건물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주어졌고 쿄우()에 살면서 전하(殿下)’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전하인가……’

 마고시치로우는 자신의 존귀함을 어떻게 놀라야 하는지 처음엔 놀랄 만큼의 지식도 가지지 못했지만 차츰 사람들이 그것을 알려주었다.

 - 칸파쿠라는 것은 조정 넘버 원의 직책이며 신하로서 이 이상의 직책은 없다.

 그러했다. 천하의 지배권은 여전히 타이코우가 쥐고 있다고는 하여도 조정에 있어서는 마고시치로우가 상급귀족(公卿)의 필두였다.

 

 더구나 그의 거처인 쥬라쿠테이()가 그에게 자신의 존귀함을 충분히 실감시켜주었다.

  3000평이라는 광대한 땅 주위를 해자(垓字)가 둘러 치고 있었으며 담과 전망대(矢倉)가 놓여져 있었다. 그 안에는 숲과 큰 연못, 수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며 그 바깥에는 100이 넘는 다이묘우들의 저택이 늘어서 있었다.

 마고시치로우는 하나의 거대한 성과 같은 저택의 주인이 되어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았다.

 나는 이 정도의 몸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마고시치로우의 능력, 성격을 꿰뚫고 있던 히데요시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꿈에서라도 방심하지 않을까 하여 여전히 바보를 취급하듯이 마고시치로우의 생활을 법으로 얽매었다.

 법은 5개조로 편지 형식을 취했고 마고시치로우는 그것을 존수(尊守)한다는 뜻의 서약서를 쓰게 하였다.

  1조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2조는 상벌을 공평히 해라

  3조는 조정을 공경해라

  4조는 부하를 소중히 해라…… 라는 것으로, 그 내용은 전부 추상적인 표현을 피하여 어린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듯이 구체적이며 세밀했다.

 예를 들면 제 5조의 내용은 히데요시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는데, 히데요시는 자기 정권의 후계자가 단순한 바보였으면 오히려 편했을 것이다. 성가시게도 성욕(性欲)이 강하였고 그것도 장난이 아닐 정도였다. 단지 그 점만이 히데요시와 닮았는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았다.

 히데요시는 이 조문에서 [나를 따라 하지 말 것]이라고 하였다. [다도(茶道), 매사냥, 여성과의 잠자리 등을 너무 심하게 하지 말 것. 이 히데요시를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단지 다도는 휴식도 겸할 수 있으니 때때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초대해도 괜찮다. 근데 첩은 5~10명 정도 저택 안에 두어도 상관없다. 그 정도로 해라. 절대 저택 밖에서 음란한 짓은 하지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마고시치로우는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사천왕(四天王) 이하 일본에 있는 모든 신들에게 이를 어기지 않는다고 쿠마노 서약서(熊野 誓紙[각주:1])로 맹세하여 만약 어기는 일이 있으면, [이번 생에 있어서는 천하의 모든 고난을 받을 것이며 다음 생에 있어서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질 것]이라고, 서약서의 방식대로 글을 적었다.


 “이 서약서 맡겨두마

 

 하고 히데요시는 쿄우()에서 보내져 온 칸파쿠 히데츠구의 서약서를 비서인 키노시타 한스케(木下 半助)에게 보관시켰다.

 

 그 후 불과 1 9개월이 지나자 히데요시는 저 마고시치로우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물려준 것을 몹시 후회했다.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요도도노(淀殿)라 불리는 측실 아자이()()가 또다시 남자아이를 낳은 것이다. 히로이([각주:2])라고 이름 붙였다.

 이 아이가 태어난 소식을 마고시치로우가 처음 접했을 때, 어째서인지 아무런 불안도 느끼질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토요토미 가문의 후계자인 것도 양자인 것도 반환해야만 했을 것이다. 단순히 자신이라는 존재가 후계권을 가진 장식 인형이었던 만큼 더 이상 그 존재의 이유는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야만 했다.

 칸파쿠가 되기 전이라면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고시치로우는 변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이 젊은이는 이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인형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른다.

 18살 때부터 관직, 지위가 눈깜짝할 새에 급상승했지만 현실은 종이 인형처럼 옷을 바꿔 입혀졌을 뿐으로 자신이 무엇을 했다는 기억이 없었다.

 단지 이 빼빼 마른 육체를 호흡시키며 먹고 마시고 싸고 있으면 싸움도 그걸로 끝났고 관위도 히데요시가 올려 주었다.

 마고시치로우는 하루에 두 번 똥을 싸는 버릇이 있었는데 오우슈우() 정벌에서도 머무는 곳마다 두 번씩 똥을 싸대며 츠가루()까지 갔고, 단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것 만으로도 오우슈우()는 평정되었다. 고래(古來) 이렇게 편한 원정()을 한 장군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이외에는 모든지 금지라고 히데요시에게 구속당하고 있었다.

 나가쿠테(長久手) 패배 때의 5개조 편지가 - 그 이후 칸파쿠가 되기까지의 만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마고시치로우를 강하게 구속해 왔다. 마고시치로우의 자율에 의해서가 아닌 숙노(宿老)인 호리오(堀尾), 나카무라(中村), 미야베(宮部), 야마우치()라는 네 명의 다이묘우(大名)가 그렇게 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파쿠가 되자 그 숙노들은 오오사카로 떠나고, 그들을 대신하여 오오사카에서 키무라 히타치노스케(木村 常陸介)라는 사람이 칸파쿠 소속의 가로(家老)로 쿄우()에 왔다.

 이 측근 인사를 새로이 한 것이 마고시치로우를 해방시켰다.

 

 키무라 히타치노스케는 야전(野戰), 공성(功城)의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행정관에 가까웠다.

 오우미(近江) 출신으로 동향(同鄕)이시다 미츠나리(石田 三成)와 함께 하시바 가문이 토요토미 가문으로 변신하는 동안 계속해서 행정을 담당해 왔지만 도중 히데요시의 미움을 받아 옛 동료인 미츠나리나 나츠카 마사이에(長束 正家)만큼 출세하지 못하고 자신의 불운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마고시치로우가 칸파쿠가 됨과 동시에 히타치노스케는 이를 좋은 기회라 여겨 히데요시에게 간청()하여 칸파쿠 가문 소속의 가로가 되었다.

 그는 당대에서의 출세를 포기하고 다음 대()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히데요시가 죽고 히데츠구가 다음 대의 지배자가 되면, 히타치노스케는 당연히 권세(權勢)를 누릴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자연히 히타치노스케는 마고시치로우의 개성()에 대해서 관대했다.

 취임했을 때,

 

 전하. 이제는 칸파쿠이옵니다. 원하는 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까지 말했다.

 마고시치로우는 여태까지 이렇게 매력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은가?”

 

 이 말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도 마고시치로우는 오랜 습성으로 인하여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히타치노스케는 믿음직스럽게,

 

 오오사카(大坂)에는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행하시옵소서

 

 라 말해 주었다.

 히타치노스케는 그렇게 마고시치로우를 기쁘게 함으로써 신뢰를 얻으려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이 재능 넘치는 인물은 마고시치로우라는 남자를, 이 시대의 인기인(人氣人)으로 만들 궁리를 하였다. 히타치노스케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고시치로우가 학문(學問)을 좋아한다고 선전하여 학문의 보호(保護)와 격려자(激勵者)로 만든 것이다.
  1. 쿠마노는 일본의 거대한 신사(神社)가 있던 곳으로, 여기서 발행되는 부적과 같은 서약서 뒤에 서로 약속한 것을 쓰고 맹세했다고 한다. 이를 어기면 하늘의 벌을 받아 반드시 죽는다고 했다. 후에 히데요시가 죽기 직전에 토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오대로(五大老)와도 서로 교환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주워온 아이’라는 뜻으로, 주워온 자식은 오래 산다는 미신 때문이다. 후에 히데요리(秀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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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17 1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야 이 친구도 슬슬 막장으로 갈 느낌이 풍기는군요..

    히데아키는 적어도 배변장애는 없지 않았나요..(쿨러럭;)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17 2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바 료우타로우 선생의 글은 사실 7: 거짓 3...이라는 말들이 있더군요. 일본 역사 학자중에 어떤 이는 강의할 때마다 듣는 말이 "시바 선생의 글과는 틀리네요"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 스트레스 받는 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18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ㄷㄷ.. 이거야 이문열 삼국지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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